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시작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사이의 전쟁이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에서 전쟁이 북조선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북조선에서는 남한이 먼저 북침했다고 주장한다. '''6.25''', '''조국해방전쟁''' 혹은 '''조선전쟁'''이라고도 불린다.

== 배경 ==

[[한반도]]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져, 북쪽에 [[소비에트연방]]의, 남쪽에 [[미합중국]]의 [[군정기|군정]]이 시작되었다. [[이승만]]과 [[김일성]]이 [[1948년]] 각각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함과 동시에 남북간의 긴장은 더욱 강화되었다.

== 명분 ==

대한민국과 인민공화국은 모두 상대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에 있어 한국전쟁은 적화통일의 야욕을 가진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저지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방어전이며, [[대한민국국군]]의 주적은 어디까지나 북조선의 인민무력이었다. 북조선의 경우는 약간 다른데, 북조선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도 철수하지 않고 남아있던 [[주한미군]]을 남한에 대한 미제의 침략으로 간주, 북조선 인민무력의 명분상 주적은 미군이었다. 일부 수정주의라고 불리는 입장에서는 북한의 남침을 인정하나, 이는 미국의 유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경과 ==

=== 전쟁의 발발과 유엔군의 참전 ===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한 국군은 한 대의 전차도 없이 240여 대의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해 오는 인민군에게 밀려 후퇴하였다. [[6월 27일]] 저녁에 [[서울]] 근교까지 밀어닥친 그들과 육박전을 감행했으나, 워낙 전세가 불리하여 정부를 [[대전]]으로 옮겼다. 한편 한국정부는 전쟁이 일어나자 주미국 대사에게 긴급 훈령을 내려 [[미국 국무성]]에 사태의 긴급성을 알렸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어 한국 문제를 건의했다. ‘북한군의 즉각 철퇴 촉구’를 결의하고 북한측에 통고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아 [[6월 27일]] 다시 안전 보장 이사회를 열었다. 결국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콜롬비아]], [[터키]] 등 16개국의 회원국이 유엔군을 조직하여 한국전에 참전하기에 이르렀다. 그 동안 대전까지 들어온 인민군이 진로를 세 방면으로 나누어 [[호남]], [[경북]] 왜관([[낙동강]]), [[영천]], [[포항]] 등지로 육박하자, 대전에서 대구로 내려와 있던 한국정부는 다시 [[부산]]으로 이동하였다. 한편 국군을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의 지휘하에 편입, 대폭 증강하여 낙동강 전선을 마지막 방어선으로 삼고 반격하였다.

한편 북한에서는 6월 25일 새벽 남한에서 38선전역에 걸쳐 무력침공을 감행하였고 최초에 전선 1-2킬로미터가량 북진에 성공했고 공화국 정부는 바로 공격을 중단할 것을 대한민국정부에 요구했으나 교섭이 결렬되었다. 인민군은 조직적인 반격을 개시해 국군을 38선 밑으로 몰아내고 낙동강까지 진격하였다고 주장하나, 북한의 점령 속도와 한국군의 준비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설득력이 없다.

=== 인천상륙작전 ===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하는 유엔군과 국군은 인천 상륙 작전([[9월 15일]])에 성공함으로써 서울을 빼앗긴 지 3개월 만인 [[9월 28일]]에 서울을 되찾았다. 이어 달아나는 인민군을 뒤쫓아 38선을 돌파하여 10월에는 [[평양]]을 거쳐 [[압록강]]에 이르렀고, 11월에는 [[두만강]] 일대까지 진격하였다. 

=== 중국의 참전과 1.4 후퇴 ===

대한민국군에 의한 무력통일을 눈앞에 두었을 때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해방군]]이 전쟁에 개입하여 인해 전술로 반격해 왔다. 다시 국군은 50여 만 명의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12월 14일]]부터 24일 사이에 동부 전선의 국군 12만과 피난민 10만이 흥남 부두에서 해상으로 철수했고, [[1월 4일]]에는 서울을 다시 내줄 수밖에 없었다. [[1월 7일]]에는 수원이 함락되어 인민무력은 계속 남진했으나, 국군은 이미 병력과 장비를 정비하여 반격 태세를 갖추었다. 인민군은 10여 만의 전사자를 내면서 퇴각하였고, [[3월 2일]]에 아군이 한강을 넘어서 14일에는 서울을 되찾았다. 다시 북진했으나 9·28 수복 후처럼 쉽지 않았다. 적이 이미 전 전선에 참호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38선 부근에서 일진 일퇴를 거듭하며 전쟁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 휴전협정 ===

1951년 7월에 정전 회담이 개시된 후 세계 전쟁사상 처음 보는 제한 전쟁( 휴전이 되면 각기 점령 지역에서 국경이 정해지는 조건으로 싸우는 전쟁)이 벌어졌다. 북한이 소련을 통해 휴전을 제의하였고 유엔군측의 승인으로 휴전이 되었다. 
[[1953년]] [[7월 27일]]에 휴전 협정이 조인됨으로써 3년 1개월 만에 한국전쟁 휴전으로 매듭을 지어졌고, 현재까지 그 효력이 이어지고 있다.

== 피해 ==
3년 1개월에 걸친 동족 상잔의 6·25 전쟁은 남· 북한의 전 국토를 폐허화했고, 참전한 외국의 병력에까지 극심한 해를 입혔다. 6·25 전쟁은 그 밖에도 약 20만 명의 전쟁 미망인과 10만 명이 넘는 전쟁 고아를 만들었다. 그리고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어 경제적, 사회적 암흑기를 초래했다.

=== 한국 ===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60만명이 전쟁중에 사망하였고, 전체 참전국의 사망자를 모두 합하면 2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한국인 사망자는 백만명이 넘으며 그중 85%는 민간인이다. 소련의 통계에 의하면 북한의 11.1%의 인구가 전쟁을 통하여 사망하였는데 이것은 113만명에 이른다. 남북한 모두 합하여 250만명이 사망하였다. 80%의 산업시설과 공공시설과 교통시설이 파괴되었고, 정부 건물의 사분의 삼이 파괴되었다. 가옥의 절반이 파괴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표}}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朝鮮 民主主義 人民 共和國, ) '''은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국가이다.

국제 언론계에서는 단순한 영어 명칭 ''''''가 가져올 수 있는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 (북조선)으로 속칭하듯이, [[대한민국]]을 '''' (남한) 으로 속칭한다.

북조선은 자신들이 [[조선 (국호)|조선]]을 계승했다는 뜻에서 국가명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남한]]을 남조선이라 구분하여 부른다. [[대한민국]]과는 상호 불인정 관계에 있으며, 대한민국은 북조선을 불법 반국가단체로 간주한다.

== 역사 ==
* [[일제 강점기]]에 놓여 있었던 [[조선반도]]는 [[1945년]] [[일본]]이 [[이차세계대전]]에서 항복함으로서 자립권을 다시 찾았으나,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상태에 빠졌다.
* [[1946년]] [[2월 8일]] : [[소련]] 군정의 지시에 따라 건국준비를 위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건설되었다.
* [[1948년]] [[9월 9일]] : [[맑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38선]] 이북에 건국되었다.
* [[1950년]] [[6월 25일]] : 인민무력과 [[대한민국국군]]과의 전쟁 시작, [[조국해방전쟁]] 혹은 [[6.25]]가 시작되다.
* [[1977년]] : [[조선인민공화국사회주의헌법]]에서 국가의 공식이념이 [[맑스-레닌주의]]에서 [[주체사상]]으로 바뀌다.
* [[1991년]] [[9월 17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과 [[대한민국]]의 [[]] 동시가입.

==수도==
헌법상 수도는 [[1972년]]까지 [[서울]]로 규정했다. ([[평양]]은 당시까지 림시수도로 취급되었다). 1972년의 개정 헌법은 수도를 평양으로 규정하고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수도 기능은 이전부터 평양이 담당했다.


==정치==
정치체제는 [[주체사상]]에 근거하는 공산주의 체제를 취하지만, 일당독재 체제를 담당하는 조선노동당의 지배 조직으로서의 형해화가 지적 되어 있어 현재는 국방위원장인 [[김정일]]의 개인 독재 체제라고 일컬어진다. 김정일은 [[선군정치]] 를 내걸고 있다. 元首에 관해서는 국방 위원장이 국가 최고의 직책으로서 사실상의 원수직이지만, 형식상은 외국 사절의 신임장 등을 다는 역할을 완수하는 최고 인민 회의 상임위원장이 원수에 상당하는 것으로 된다. 현재의 최고 인민 회의 상임위원장은 [[김영남]]이다.

[[김일성]]이 [[1994년]]에 죽고 나서는, 아들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총서기, 조선인민군최고 사령관, 공화국 국방 위원장이 되어 북조선을 통치하고 있다.

==군사==
과거 수십년에 걸쳐 국방을 위해서 막대한 자원을 쏟아 넣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120만에 달하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다. 김정일에 의해  [[선군정치]]가 시작된 이후로 북조선은 기존의 [[맑스-레닌주의]]와 결별, 노동자가 아니라 군인이 국가의 근간이라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귀었다. 선군정치가 시작된 이래 인민무력에 대한 대우는 한결 나아졌다.

==국제관계==

폐쇄적인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타국과의 교류가 지극히 적다. 특히 [[미국]]은 이 나라를 [[악의 축]]()의 하나로 평가해, [[일본]]이나 한국 등과 함께, 이 나라가 장기에 걸치는 미사일 개발 계획과 핵개발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주변국인 [[대한민국]]·[[일본]]·[[러시아]]·[[중국]]·[[미국]]과 함께, 핵문제를 중심으로 6자회담를 진행시키고 있지만 현재 교착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인, 일본인 등의 납치, 일본·한국에 존재하는 공작원, 여러 나라에 대한 마약의 밀수, 미 달러 지폐의 대량 위조, 과거에는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1987), [[랑군]]에서 한국의 요인 폭살 (1983), 한국 대통령 살해 미수 (1974), [[레바논]]인 여성 납치사건 등의 문제가 많다.

공작원에 대해서는, 이전에는 [[평양방송]] 의 라디오로 암호 전문을 사용해 지령을 보내고 있었지만, [[2000년]]에 종료했다. 현재는, 모르스 신호나 휴대전화나 [[컴퓨터]]의 메일을 사용해 지령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행정구역==
* [[북한의 행정구역]]

== 읽어보기 ==
* [[남북기본합의서]]

'''일제강점기'''([[1910년]] [[8월 29일]] ~ [[1945년]] [[8월 15일]])는 한국 근현대사를 시대별로 나누었을 때 주요 시대 중 하나로,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놓였던 시기이다. 일반적으로 이 시기를 일본의 한반도 지배 정책에 따라 3개 시대로 세분하는데, 헌병 경찰 통치기([[1910년]] ~ [[1919년]]), 문화 통치기([[1919년]] ~ [[1931년]]), 민족 말살 통치기([[1931년]] ~ [[1945년]])로 각각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일본의 우파적 사학자들과,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일부 한국 사학자들은 일제 강점기 전반기에는 일본이 한반도의 근대화를 도왔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 사학계에서는 [[조선후기 자본주의맹아론]]에 의거, 이러한 근대화 정책이 개항 이전 및 이후 자생적으로 성장했던 한반도 내의 민족 자본을 말살한 바탕 위에서 일본의 경제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일본의 영속적인 한반도 지배 의도를 실현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버드 대학에서 이루어진 토론에서는 "한국 병합은 합법적으로 행해졌으며, 이 시대의 시책으로는 선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었다.

==배경==
[[1873년]] [[사이고 다카모리]]가 [[조선]] 측에서 일본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거부한다는 것을 들어 공식적으로 [[정한론]]을 제기한 이래 [[메이지 덴노]] 시대의 과두 정부는 일본 국내에 [[정한론]]을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하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일본 정부는 조선을 식민지화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였고, [[1894년]] [[청일전쟁]]과 [[1905년]]의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여 한반도에서의 독점적인 권리를 따냈다. 그 외에도 [[영일동맹]] [[가쓰라-태프트 밀약]] 등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아,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침탈한 데 이어 [[한일신협약]], [[기유약조]] 등으로 [[대한제국]]의 배타적 권리를 차례차례 박탈하였다. (이 시기의 자세한 역사는 [[대한제국]]이나 [[개화기]] 등을 참조)

[[1909년]] 7월에 한국 병합이 각의 결정되었고, [[1909년]] [[10월 26일]]에 항일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면서, 일본 내에 정한 강경파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한국 병합의 추진이 가속화되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조약]]([[경술국치]]라고도 한다)이 맺어지면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천황 직속의 [[조선총독부]]에 의한 [[1945년]]까지 36년간의 긴 식민 통치가 시작되었다.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조약]]은 [[대한제국]]을 대표하던 황제의 재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조약으로, 이 점에 의거하여 당시 이 조약이 국제법상 무효임을 알 수 있다.

==헌병 경찰 통치기 : [[1910년]]에서 [[1919년]]까지==
헌병 경찰 통치기라는 명칭은 [[1910년]] [[9월]]에 창설된 헌병 경찰 제도에서 나왔다. 즉 헌병이 일반 경찰 행정까지 담당하면서, 즉결 처분권 등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이 당시 통치의 강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조선태형령]]으로, [[갑오개혁]] 때 폐지된 태형을 조선인에게만 적용하여 처벌한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는 조선인의 각종 단체가 해산당하였다. [[1911년]] [[신민회]]를 해산시킨 [[105인사건]]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1912년]]부터 시행된 [[토지조사사업]]을 진행하면서 기한부 신고제로 시행, 이를 잘 알지 못한 농민들의 토지를 침탈하였고, 소유권이 불분명한 마을이나 문중의 토지, 왕실의 토지 등도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넘겼다. 침탈된 토지는 일본 이민들에게 싼 값에 팔렸고 이 때에 고래의 [[소작권]] 개념이 무시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한반도에서 이뤄진 최초의 실질적 근대 토지 소유 개념을 도입한 정책이나, [[광무개혁]] 시기에 이뤄진 [[양전사업]]이나 [[지계]]의 발급이 일본측의 방해로 실패했다는 것을 되돌아보건대 그 실질적 의도는 토지의 침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총독부의 허가에 의해서만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는 [[회사령]]이나, [[산림령]]과 [[임야조사령]], [[어업령]], [[광업령]] 등으로 조선의 경제적 지배권은 대부분 일본에 넘어갔다. 동양 척식 주식회사의 수익이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 재벌이나 조선인 지주층의 회사에 투자되면서 한반도의 경제적 개발을 촉진시켰다고 볼 수는 있으나, 민족 자본의 성장은 철저히 금지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와중에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함에 따라 [[1919년]] [[3월 1일]] [[삼일운동]]이 일어나면서 전국적으로 평화적인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일본은 이를 적극적으로 탄압하여 결과적으로는 실패하였으나, 산발적인 독립 운동이 하나로 일치 단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통치 정책 방향 또한 급선회하게 되었다.

==문화 통치기 : [[1919년]]에서 [[1931년]]까지==
3·1 운동에 의해 일본 정부나 총독부측에서는 기존의 통치방식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파견을 기점으로 기존의 강압적 통치에서 회유적 통치로 그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그 결과 헌병 경찰 제도가 폐지되고 보통 경찰제가 도입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하였다. 이 시기에는 단체 활동 및 언론 활동이 허가되었고 아주 기초적인 초등 교육이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는 민족주의 독립운동 계열의 실력 양성 운동이 힘을 얻게 되고, 친일 인사들도 많이 생겨나게 된다. 이는 결국 한반도의 민족 지도자들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으로 이 당시에는 [[산미증식계획]]이 수립되어 한반도의 미곡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오히려 일본으로 유출되는 양이 더 높아져 한반도의 식량 부족이 심각해졌다.

==민족 말살 통치기 : [[1931년]]에서 [[1945년]]까지==
[[만주사변]]이 발발하면서 한반도는 일본의 대륙진출기지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며, 이에 따라 일본의 경제적 지배 정책도 병참 기지화 정책으로 선회한다. 한편으로는 조선인들을 완벽한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민족 말살 통치가 진행되어, [[내선일체]]와 [[일선동조론]]에 의거한 황국 신민화 정책이 실시된다. 이에 따라 일본은 [[황국신민서사]]의 암기와 [[신사]] 참배 및 "국어"의 사용을 강요하였다. 학교의 한글 교육은 중단되었고, [[창씨개명]]이 강압적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가 해방되면서 일제 강점기는 종결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표}}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朝鮮 民主主義 人民 共和國,  '''은 한반도 북쪽에 위치한 국가이다.

국제 언론계에서는 단순한 영어 명칭 ''''''가 가져올 수 있는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 (북조선)으로 속칭하듯이, [[대한민국]]을 '''' (남한) 으로 속칭한다.

북조선은 자신들이 [[조선 (국호)|조선]]을 계승했다는 뜻에서 국가명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에 따라 [[남한]]을 남조선이라 구분하여 부른다. [[대한민국]]과는 상호 불인정 관계에 있으며, 대한민국은 북조선을 불법 반국가단체로 간주한다.

== 역사 ==
* [[일제 강점기]]에 놓여 있었던 [[조선반도]]는 [[1945년]] [[일본]]이 [[이차세계대전]]에서 항복함으로서 자립권을 다시 찾았으나,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상태에 빠졌다.
* [[1946년]] [[2월 8일]] : [[소련]] 군정의 지시에 따라 건국준비를 위한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건설되었다.
* [[1948년]] [[9월 9일]] : [[맑스-레닌주의]]를 이념으로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38선]] 이북에 건국되었다.
* [[1950년]] [[6월 25일]] : 인민무력과 [[대한민국국군]]과의 전쟁 시작, [[조국해방전쟁]] 혹은 [[6.25]]가 시작되다.
* [[1977년]] : [[조선인민공화국사회주의헌법]]에서 국가의 공식이념이 [[맑스-레닌주의]]에서 [[주체사상]]으로 바뀌다.
* [[1991년]] [[9월 17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과 [[대한민국]]의 [[]] 동시가입.

==수도==
헌법상 수도는 [[1972년]]까지 [[서울]]로 규정했다. ([[평양]]은 당시까지 림시수도로 취급되었다). 1972년의 개정 헌법은 수도를 평양으로 규정하고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수도 기능은 이전부터 평양이 담당했다.


==정치==
정치체제는 [[주체사상]]에 근거하는 공산주의 체제를 취하지만, 일당독재 체제를 담당하는 조선노동당의 지배 조직으로서의 형해화가 지적 되어 있어 현재는 국방위원장인 [[김정일]]의 개인 독재 체제라고 일컬어진다. 김정일은 [[선군정치]] 를 내걸고 있다. 元首에 관해서는 국방 위원장이 국가 최고의 직책으로서 사실상의 원수직이지만, 형식상은 외국 사절의 신임장 등을 다는 역할을 완수하는 최고 인민 회의 상임위원장이 원수에 상당하는 것으로 된다. 현재의 최고 인민 회의 상임위원장은 [[김영남]]이다.

[[김일성]]이 [[1994년]]에 죽고 나서는, 아들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총서기, 조선인민군최고 사령관, 공화국 국방 위원장이 되어 북조선을 통치하고 있다.

==군사==
과거 수십년에 걸쳐 국방을 위해서 막대한 자원을 쏟아 넣어, 세계에서 4번째로 큰 120만에 달하는 대군을 보유하고 있다. 김정일에 의해  [[선군정치]]가 시작된 이후로 북조선은 기존의 [[맑스-레닌주의]]와 결별, 노동자가 아니라 군인이 국가의 근간이라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귀었다. 선군정치가 시작된 이래 인민무력에 대한 대우는 한결 나아졌다.

==국제관계==

폐쇄적인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를 제외하고, 타국과의 교류가 지극히 적다. 특히 [[미국]]은 이 나라를 [[악의 축]]()의 하나로 평가해, [[일본]]이나 한국 등과 함께, 이 나라가 장기에 걸치는 미사일 개발 계획과 핵개발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주변국인 [[대한민국]]·[[일본]]·[[러시아]]·[[중국]]·[[미국]]과 함께, 핵문제를 중심으로 6자회담를 진행시키고 있지만 현재 교착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인, 일본인 등의 납치, 일본·한국에 존재하는 공작원, 여러 나라에 대한 마약의 밀수, 미 달러 지폐의 대량 위조, 과거에는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 (1987), [[랑군]]에서 한국의 요인 폭살 (1983), 한국 대통령 살해 미수 (1974), [[레바논]]인 여성 납치사건 등의 문제가 많다.

공작원에 대해서는, 이전에는 [[평양방송]] 의 라디오로 암호 전문을 사용해 지령을 보내고 있었지만, [[2000년]]에 종료했다. 현재는, 모르스 신호나 휴대전화나 [[컴퓨터]]의 메일을 사용해 지령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행정구역==
* [[북한의 행정구역]]

== 읽어보기 ==
* [[남북기본합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