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자 2018년 예측, 새로운 한 해의 트렌드는 이런 것이다 등의 키워드들이 쏟아져 나오며 도서 시장을 잠식했다. 과연 그 이야기에 여성들의 시각은 얼마나 반영이 되어있는 것일까? 각기 다른 분야에 있는 네 명의 2030 페미니스트와 만나 2018년의 문화적 흐름을 짚으며 트렌드에 대해 분석하는 한편, 새해에 일어나길 바라는 일도 이야기해보았다. - 우리가 만나자마자 인사에 앞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다들 관심이 많은 것 같네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고 있지요. 2017년의 욜로(YOLO)에 이어 등장한 소확행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욜로: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의 줄임말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고 지금 가지고 싶은 걸 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를 즐기자는 얘기가 많은 2030세대의 공감을 얻음.)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6년에 발표한 에세이 에서 처음 등장한 말이다.) 미성: 소확행은 경기 침체로 활력을 잃은 분위기에서 나온 사람들의 생존본능인 동시에, 닫힌 지갑을 열려는 마케팅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키워드 같아요. 한국은 자기계발 외치면서 청년이라면 꿈을 가져야 된다고 다그치는 분위기나 출세지향의 사회, 표준의 삶을 강요했으니,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 일상이 최소한의 기준에 못 미치는 거죠. 예전의 저는 큰 욕심 없이 작은 전셋집과 소형차, 정규직 일자리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 소박한 삶이 이제는 야망이 되어버렸죠. 저같은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소확행은 지극히 제한적이에요. 자력으로는 죽을 때까지 작은 집도 못 가지죠. 차도 못 사구요. 이 상황에서 소확행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작은 사치나 하면서 숨 좀 돌리라고요. 소확행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대부분 취미생활이거든요. 거기에 시간과 (좀 더 많은) 돈을 쓰게끔 되고. 취미생활 자체는 문제가 아니죠. 예전에는 집, 안정적인 일자리(월급)가 계획에 속했는데 이제는 꿈이 되어버린 시간이 왔어요. 올해는 정규직이 되어야지 하다가 자꾸 안 되니까, 난 그래도 고양이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느끼는 것도 소중한 건 맞아요. 다만 이렇게 자신을 추스르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들이 자꾸 생기는 게 문제죠. 못 견디기 때문에 잠시나마 시름을 더는 장치가 필요한 걸로 보여요. 젊은 나이에 소소한 삶의 행복에 집중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는 건 기이하게 느껴져요. ▶ 2018 트렌드 관련 서적들. 남순아: 전 소확행이 2018년 트렌드로 이야기된다는 게 낯설어요, 소(小)가 점점 작아져서, 이제 엄청 작은 소가 된 느낌이랄까. 원래 이런 작은 행복들이 있었잖아요. 근데 이게 또? 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전 올 봄부터 자취를 시작했는데 한동안 작은집, 원룸 꾸미기 그런 게 유행처럼 많이 나왔잖아요. 나도 저렇게 꾸며야지 했는데 생각보다 비싼 거예요. 그래서 금방 포기하고 ‘뭘 이런 걸 사’ 했다가 겨울이 되면서 수납 공간이 필요하게 되고 커튼도 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데 여전히 그런 것들은 비싸고. 그래서 다이소에서 산 2천원짜리 줄자로 계속 길이만 이리 쟀다가 저리 쟀다가(웃음). 난 큰 걸 바라지 않고 그냥 집이 좀 예뻤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잘 안되고. 도대체 소확행이란 뭘까, 여기서 더 작아져야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오픈바이: 소확행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랑 비슷한 맥락에서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 같아요. 일과 삶이 당연히 균형이 맞아야 하는 건데, 그게 일상이어야 하는데,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안 되니까, 워라밸이란 말이 나오고 그게 뜨는 것 같아요. (※워라밸: 워크라이프 밸런스 Work life Balance의 줄임말로, 직장 및 일과 개인의 삶의 균형을 말함.) 미성: 워라밸, 당연한 걸 새삼스럽게 말하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일단 일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계약직일 때 너무 불안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없으니까.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다같이 웃음) 라는 생각도 들고. 일에 몰두하려고 하면 그 자리가 최소 2~3년은 보장이 되어야 할 수 있는데. 승진이나 장기 프로젝트를 맡고자 하는 욕망 자체가 불가능하죠. 스스로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면 보상이 없더라도 할 때도 있는데, 그것조차도 가능성이 별로 없으니까요. 퇴직금 안 주려고 11개월 단위로 계약을 하는 환경에서, 제가 일에 몰입하고 싶어도 항상 제한이 생기죠.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으로 ‘워라밸’을 원한다는 이야기들을 하는데요, 저는 이게 꼭 밀레니얼 세대만 원하는 건가? 이 세대가 그렇게 특별한가? 라는 생각도 들어요. 근로기준법 준수하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길 뿐인데(웃음). 오픈바이: 개인화 사회, 이런 이야기도 나오는데 저는 직장과 나의 생활을 분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 하고, 그런데 사실 모든 사람들이 퇴사를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일에 잠식되지 말고 일과 내 삶을 분리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남순아: 요즘 상업영화 쪽에서는 12시간만 일하자고 말하고 그걸 지키려고 한다고 들었어요. (12시간만 일한다고요? 12시간이나 일하는 게 아니고요? 라고 말하며 다같이 웃음) 근데 전 독립영화 쪽이라 그런 것도 체감이 안 되요. 저는 스스로 프리랜서 노동자로 생각하고 미래에 대해 별로 생각한 적이 없고, 또 그걸 생각하지 않는 편을 택하기도 한 것 같은데요. 요즘에는 뭘 많이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거든요. 일과 나를 꼭 떼놔야 하나? 라는 생각도 있고요. 미성: 요즘 구직 중인데, 제가 워커홀릭은 아니지만 ‘일을 안 하는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은 거죠. 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사회적으로 의미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워라밸이나 소확행이라는 트렌드에 동의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걸 낭만적으로 이야기하거나 지금의 세대가 그걸 중요시 여긴다, 어쩐다 하면서 별나게 구는 것에 웃음이 나요.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서 얻을 것도 없는데. 근로시간 준수,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것이고 이미 합의된 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는 것뿐인데 새삼스레 이름을 붙이니까. 그리고 이게 마치 요즘 세대들이 뭔가 특별해서 그렇다고 얘기하는 게 우습죠. 또 뭘 팔려고 그러나 싶고. 오픈바이: 맞아요. 혼밥(혼자 먹는 밥) 같은 경우도 그래요. 해야 하는 상황이 있으니까 하는 건데 특별하거나 이상한 것처럼 말하니까요. 미성: 워라밸이라는 말을 계속하다 보면 기업이 변할 수도 있고 정부에서 조치를 취하고 정책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말들이 너무 많이 떠다니고 있어요. 그에 비해서 아직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변화가 있었으면 좋지만 오히려 건조하게 말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 2017년 12월 26일,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발표한 <2017 청년고용정책 인지조사> 결과 중 일부. 청년들은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그 일자리가 복지가 갖춰진 곳이길 바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 소확행, 워라밸, 이런 말들이 무언가를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워라밸 세대’라는 말이 계속 언급되는 게 ‘이제 개인적 삶과 일 다 균형 맞출 수 있지 않아?’ 특히 여성들에게 ‘가정과 일의 균형 맞출 수 있지 않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걸 할 수 있는 이들과 할 수 없는 이들 간 간극이 커지는 것 같고요. 또 요즘은 개인, 나에게 집중에서 진정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사실 기댈 수 있는 타인이라는 게 점점 없어지는 현실이기도 하고요. ‘나로서기’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미성: 자기계발, 힐링과 다르게 소비되고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예전부터 이런 개인의 감정, 노력을 강조하는 걸 좀 다르게 변주해서 반복해 나오는 것 같아요. 예전에 이런 것들 많았잖아요. 여행 가서 힐링하고, 집에서도 못 찾은 자아를 인도까지 가서 찾고(웃음). 한국이 획일화된 삶의 방식을 강요해 왔지만 이제는 구조적으로 기존의 모델을 따르고 싶어도 따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도 있고, 사람들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커진 것도 그 배경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예전부터 회자되었던) 자존감이 중요하다, 개성이 중요하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요? 오픈바이: 나로서기를 우리 세대가 선택한 것처럼 말하는 게 좀 그래요. 나인투식스(오전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기)하고, 주변 친구들이나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나로서기 할 필요가 없죠. 그럴 시간이 없고, 그러니까 나 혼자서라도 나를 다독이고, 나로서기를 해야 하고. 정말 건강한 나로서기라는 건 외부로부터 따뜻한 도움도 받고 개인 시간도 가지면서 내 안에서 따뜻함도 만들어내고, 그렇게 상호작용함으로써 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으면 건강한 나로서기가 자연스럽게 될 거라 생각해요. 근데 그게 안 되니까 억지로 나로서기를 외치고 있는 느낌이에요. - 혼자만의 시간을 강조하면서 맨케이브(Man-cave,·남자의 동굴) 이야기만 나오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 여성들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데 말이죠. 여러분들은 혼자만의 시간이나 공간이 필요할 때 어떻게 하세요? 오픈바이: 저는 ‘100인의 좋은 사람 모임’이라는 단톡방을 만들었어요. 아직 100명은 아니고 20명 정도 있는데요. 같이 가고 싶은 행사나 공유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단톡방에 올리곤 하거든요. 여기가 약간 저의 힐링 공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남순아: 집안 청소하는 게 저의 큰 위안이었는데, 날씨가 추워지면서 자주 못하고 있어요. 그리고 전 프리랜서니까 평일 낮에 까페에 가는 게 좋더라구요. 도영원: 전 상황이 되면 여행을 가요. 그리고 스스로 의식을 만드는 걸 좋아해요. 절에 간다던가, 절에 가면 꼭 염주를 사와서 새 걸로 바꾼다든가 그런 식으로 스스로 축제, 특별한 날 같은 걸 만들죠. ‘이 날은 뭘 해야 해, 이 날은 목욕을 해야 겠어’ 그런 식으로요. 그리고 ‘오늘로 난 새로워지는 거야’ 같은 의미를 스스로 투영하는 거죠. 미성: 우동 면을 계속 만들었어요. 근데 생각보다 맛있진 않더라고요. (다같이 웃음) 하여튼 그런 반복적인 일을 했던 것 같아요. 몸을 고되게 하는 거죠. 3시간씩 산책한다던가. 가끔씩 책 정리를 해요. 표지 색깔 별로 정리한다던가, 출판사별로 한다던가, 장르 상관없이 주제별로 했다가. 주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재미난 걸 보려고 시도했는데, 진짜 볼 게 별로 없더라고요. 한국에선 코미디 프로그램 보면 결국 기분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아서.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는 게 잘 없는 것 같아요. 오픈바이: 궁극적인 힐링은 상담이죠. (웃음. 오픈바이는 상담소에서 홍보 관련 일을 하고 있다.) - 요즘 저의 고민 중에 하나는 독립을 하더라도 어떤 연대, 어떤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부분이에요. 최근에 ‘쉐어하우스’가 이슈가 되기도 했었죠. 꼭 그런 걸 꿈꾸는 건 아니지만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노년이 어떨까 걱정되기도 하고. 트렌드 분석을 보니까 ‘대안가족’, ‘대안관계’라는 말도 나오더군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오픈바이: 아까 말씀 드린 ‘100인의 좋은 사람 모임’이 저한테는 새로운 시도인 것 같아요. 미성: 쉐어하우스가 유행처럼 등장하긴 했는데, 공동주거를 하더라도 자기만의 공간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저는 공동주거보다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느슨하고 단단한 공동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제가 경험했던 것 중 하나는 소규모 페미니즘 스터디 모임이었어요. 주기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연결되어 있지만 따로 사는 게 좋아요. 도영원: 해외에 나가서 살았던 일이 있는데 초반에 좀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러다가 조금씩 지역 사람들을 알게 되고,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고 공동체의 일원임을 실감하면서 외로움이 사라졌어요. 전 오히려 ‘우리는 왜 비혼여성 마을이나 주택단지 같은 그런 물리적 공동체를 꿈꿀까? 왜 그런 걸 만들길 원할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오픈바이: 전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 이유가 평소에 많은 공격을 받기 때문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과 계속 싸우게 되는 게 피곤하고. 그래서 공동체를 만들고픈 욕구가 생기는 게 아닐까요? 미성: 최근 지인들이 건강 상 문제가 생겨 큰 수술하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현실적으로 비용도 걱정되고, 간병이나 이후의 생계도 앞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어요. 그리고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들도 뉴스에서 나오고. 나이 들어서 안전한 곳에서 살고 싶은데, 지금도 안전한 곳에서 못 사는데 나이 들어서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지금보다 그때 더 빈곤할 가능성도 높잖아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여성, 1인 가구, 비정규직이라는 조건들로 가능한 삶의 방식을 생각해요.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가 원하는 게 여전히 많고, 앞으로 사회에 던져야 할 질문과 요구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2018년에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희망뉴스를 얘기해보면 어떨까요. 남순아: 낙태죄가 폐지되었으면 좋겠어요! ▶ 2017 세계 낙태가 허용된 국가 지도. 낙태죄가 있는 한국은 주황색으로 근친이나 강간, 건강상의 이유에 한해서만 낙태할 수 있다. 2018년에는 우리도 변화할 수 있을까? (worldabortionlaws.com) ⒸCenter for Reproductive Rights 오픈바이: 다양한 파트너십, 대안가족을 인정하는 법이 통과되었으면 좋겠어요. (※2014년 10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이 ‘성인이 된 사람은 당사자끼리의 합의에 따라 생활동반자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생활동반자법’을 추진한 바 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동반자등록제’를 제시한 적이 있지만 현재까지 도입되진 않았다.) 미성: 여성 건강에 대한 교육과 제도가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받은 여성의 몸에 대한 교육은 임신과 출산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요. 여성이 몸의 당사자로서 알아야 하는 건 정작 배우지 못했고, 정보가 있어도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요. 생애 주기별로 자신의 몸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도 개선되고, 정보 격차가 없게끔 가이드북으로 적극 알렸으면 좋겠어요. 제도적인 지원도 되어야 하구요. 도영원: 로맨스가 중심이 아닌 대중문화 콘텐츠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성 캐릭터가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에 개봉한 에 대해 좋다는 평이 많이 나와서 기대하고 갔는데 사실 기대에 못 미쳤거든요. ‘여성 캐릭터가 이만큼이나 나와’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성비 비율뿐만 아니라 주제도 다양하고 캐릭터도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2016년에 영화 (이경미 감독, 2016), (이언희 감독, 2016)이 나왔을 때만 해도 엄청 기대하고, 와 이제 이런 영화가 계속 나오겠구나 했는데 그 뒤로 안 나오더라고요. 2018년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대중문화 트렌드에 대해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서로의 생각을 듣는 시간은, 자연스럽게 2018년에 해야 할 일들, 원하는 변화에 대해 말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작은 행복이 물론 소중하지만 그것에만 머무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페미니스트들이 올 한해도 지치지 말고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라며 2부로 이어진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일다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폭력 추방주간(11월 25일~12월 10일)을 기념하는 두 번째 인터뷰는 다른 이들에게 받았던 질문을 내게 직접 던지고, 내가 말하는 셀프 디펜스 지도자 최하란의 이야기다. Q. 왜 셀프 디펜스 지도자가 됐나? ▶ 셀프 디펜스를 배우러 어디든 배낭 메고 찾아갔다. ⓒ스쿨오브무브먼트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왜 셀프 디펜스 지도자가 됐나요?” 나는 사람들의 추측과 다르게 운동선수 출신도 아니고 체육 전공자도 아니다. 대학에서 전공은 철학이었다. 철학자들 얘기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결국 내 철학을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왜 운동 지도자가 됐나?”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첫째, 대학 졸업 즈음 너무 아팠다. 살기 위해 금연, 채식, 요가를 시작했다.둘째, 그런데 이내 ‘운동’이 아니라 ‘움직임’이 화두가 됐다.셋째, 그러다 결국 2010년에 스쿨오브무브먼트 즉 움직임의 학교를 창립했다. “운동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인간의 타고난 자질, 움직임을 조화로이 발달시키는 학교.” 이 아름다운 가치를 우린 끝내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꾸준히 구할수록 효과는 분명하다. 개선, 발전, 재미! 셀프 디펜스도 ‘움직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했다. 셀프 디펜스는 대인 움직임이며 복합 움직임이다. 흔히 현대인들은 운동을 해도 너무 고독하게 한다. 러닝머신을 타거나 요가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꼬고 째도 요가고, 아무리 사납게 들어도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둘 다 일종의 교정운동처럼 활용하는 것이 낫다. 움직임을 조화로이 발달시키려면 대인 움직임, 복합 움직임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 비율이 가장 큰 이유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다양한 움직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 에너지의 90퍼센트가 인체의 움직임에 사용된다. 나머지 10퍼센트를 가지고 치유, 면역, 신진대사, 생각하는데 쓴다”, “함께 집단을 이뤄 운동할 때 뇌가 더 활성화된다.” 모두 내 얘기가 아니다. 뇌 과학자들의 얘기다. Q. 왜 그렇게 여러 나라에 갔나? 먼저, 세르비아로 떠났다. 난생 처음 겪는 영하 25도의 혹한, 하루 종일 내린 눈을 보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내 모습. 그러나 두 달 과정을 무사히 마쳤고 생애 첫 방송 출연도 했다. 세르비아 아침 뉴스에 나왔다. “셀프 디펜스를 배우러 싸우스 코리아에서 찾아온 젊은 여성…” ▶ 세르비아, 2012년 ⓒ스쿨오브무브먼트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왜 그렇게 여러 나라에 갔나요?” 우리보다 80년, 50년 먼저 현대 셀프 디펜스의 체계를 세운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멀리 보고 싶었다. 제대로 배우지 않고 가르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라, 배울 것이 있다면 어디든 배낭을 메고 찾아갔다. 그렇게 미국, 세르비아, 덴마크, 스웨덴, 헝가리, 이스라엘, 체코, 그리스, 프랑스, 독일, 미얀마, 태국, 싱가폴, 중국에 가서 배웠다. Q. 수업의 원칙이 있다면? 지난 4년여 동안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셀프 디펜스 수업을 이끌어왔다. 회사원, 간호사, 대학생, 청소년, 어린이… 다양한 그룹,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위한 수업도 하고 있다. 가능한 셀프 디펜스 수업은 진지하면서 즐거워야 한다. 위험상황을 다루니까 당연히 진지하겠지만, 즐거움은? 즐거워야 참가자들이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더 잘 간직할 수 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Q. 폭력에 대해 얘기한다면? 폭력에 대해 알아야한다. 우리는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그런데 어쩌면 폭력에 대해 알지도 말라고 교육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폭력은 어디든 존재한다. 어린이집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대학원까지 학교폭력이 있다. 아기 때부터, 아동기, 청소년기, 부부 사이,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가정폭력이 있다. 데이트 폭력, 군대 내 폭력, 직장 내 폭력, 고객의 폭력도 있다.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을 향한 “묻지마 폭력”도 있지만, 위에서 나열한 것처럼 아는 관계에서 위계를 이용하는 폭력이 훨씬 더 흔하다. ▶ 공포심으로 몸이 마비된 상태 ⓒanimalslook.com 폭력에 대해 알지 못하고 평화를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폭력에 대해 알지 못할수록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만 더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폭력 상황은 우리에게 강력한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면 모든 동물들은 프리즈(freeze) 현상을 겪는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는 순간이 발생하는 것이다.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긴장이나 공포심으로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강간이나 재난의 피해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신체현상이다. Q. 폭력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연습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갑작스럽고 낯선 폭력 앞에서 우리 모두는 생각이 멈추고 몸이 굳는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 셀프 디펜스 연습은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문제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문제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해결 과정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다. 일종의 예방접종과 같다. 소방관들은 연습을 통해 불에 대한 면역력을 갖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물에 대한 면역력,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들은 높은 곳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셀프 디펜스 연습을 통해 우리는 문제 상황, 폭력 상황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수업 참가자들은 단 한 번의 수업으로도 효과가 있었다고 얘기해주었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 체육관에 다니는 학생들은 폭력 상황 뿐 아니라 일상에서 문제가 생길 때도 예전과 달리 침착하게 대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얘기해주었다. 갑작스런 상황, 강한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셀프 디펜스를 처음 배웠을 때 나 역시 ‘내가 왜 이제야 이런 걸 알게 되었지?’ ‘미리 알았다면 그때 내가 그렇게 하진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운 좋게도, 나는 그 생각을 실현하고 있다. ▶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수업 ⓒ스쿨오브무브먼트 나는 수업을 할 때 참가자들의 눈빛, 표정, 호흡, 목소리, 움직임을 보고 듣는다. 긴장하고, 쑥스러워하고, 때로는 얼굴이 하얗게 되기도,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도 본다. 그러나! 단 몇 초 만에 그들이 완전히 변하는 모습을 본다. 내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셀프 디펜스를 배우세요. 여러분의 삶에 변화가 생길 겁니다.” 일다
※ 지구별에 사는 34년산 인간종족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 소개: 아주] ▶ 조카데이 ⓒ아주의 지멋대로 일다
알바, 알바, 알바. 벗어날 수 없는 알바.어떤 사람들은 알바를 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으라고 한다.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 하지 말고 경력에 도움이 되는 인턴은 어떻겠니? 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 그러다 큰일 난다며 몸을 챙기라고도 한다. 사실 어떤 말도 나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비생산적 알바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한 것이 아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를 자랑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오늘도 반짝반짝한 가게를 지키는 알바들이 무슨 말을 듣고 사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알바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좋았던 6개월 나는 스물여덟 살이고 스무 살부터 알바를 했다. 집에 돈이 필요한 것에 비해서는 늦게 알바를 시작한 편이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는 지금도, 월급으로는 돈을 모을 수 없어 알바를 겸하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알바만을 고집하던 내가 몇 년 만에 개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원래 나는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한 큰 매장에서 일하기를 좋아했다. 바쁜 것이 좋고, 손님이 많고 직원도 많아 즐겁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퇴근 전후로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활발한 거리가 좋았다. 그러려면 도심에서 할 수 있는 알바가 가장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가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알바 하는 매장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 내가 아직도 취직을 못했다는 사실은 엄마의 은근한 압박과 더불어 스트레스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구직을 했지만, 알바를 해야만 가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디어 인지하고 주말 알바를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작은 개인사업장을 골랐다. 개인사업자들을 비하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한국의 알바들은 어디서든 고통을 받는다는 점만 말하고 싶다. 개인사업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정말 가족 같을 수도 있고, 가족에서 ‘가’를 빼고 X같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가족 또는 친구 같았던 사장님이 있었다. 싱글맘이었는데, 면접을 보더니 내가 일을 잘 할 것 같다며 가게에서 제시할 수 있는 금액에서 더 올려 주며 점심값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최저임금과 주휴 수당을 더한 시급 외에는 절대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장님이 거만하지 않고 왠지 좋았다. (면접 때는 나도 고용주에 대한 면접을 본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최저임금은 최고임금이 되게 마련이다. 최저임금을 제시하면서 프랜차이즈 본사 직영 수준이라며 아주 높게 쳐주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점심을 매장에 있는 무언가로 때우게 하지 않고 식비를 현금으로 주는 곳은 처음 보았다. 사장님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왠지 가게가 정말로 최저임금 못 줄 것처럼 생겼었다. 이 분이 나를 존중해 준다고 생각해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데도 일하기로 결정했다. 스물세 살 때의 일이다. 사장님은 내게 칭찬 일색이었고, 퇴근 후 아이스크림 기계 밑에 앉아 같이 맥주를 마셨다. 나의 알바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좋은 6개월이었다. 이렇게 좋은 기억도 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은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면 먼 곳에서 반짝거릴 뿐이다. ▶ 알바노동을 하는 나는 모래 산 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삽화 제작: 서영 출근 5개월만에 아파서 조퇴하겠다고 했을 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지금 일하는 사업장 덕분이다. 이곳은 내가 제시한 시급을 주기로 했고, 내가 원하는 시간대로 맞춰 주었다. 왜 그렇게 나를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내 이력서는 보지도 않았다), 나는 대체로 알바는 어느 시점부터는 이력서를 보고 부르는 곳으로 간다. 여기도 시간으로 따져 보면 주휴 수당을 받아야 하지만, 근무 인원이 적어 얼마를 버는지는 몰라도 주휴 수당을 받을 수는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개인사업장인데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박수를 쳐 줍시다!) 시급과 시간, 날짜 사인. 부부가 하는 곳이고(사실 이 지점에서 도망치라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식사를 챙겨 주(진 않고 먹으라고 걱정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주중 근무와 주말 알바를 뛰며 5개월간 일했다. 그러다 얼마 전 사무실의 에어컨과 밖의 온도 차로 심한 감기에 걸렸다. 평소 오천 년은 살 기세로 비타민과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는 내가 겨울에도 안 걸렸던 여름 감기에 걸렸다. 정신이 몽롱하고 초록색 가래와 기침이 나왔다. 그런 상태로 두 개의 직장 모두 출근했다. 토요일에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일찍 퇴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전 열한 시에 출근해서 저녁 일곱 시까지 일해야 했지만, 오늘은 오후 세 시에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이미 감기에 걸렸다고 말하자마자 ‘손님에게 옮는다’, ‘기침을 안 할 수 있겠냐’는 말을 들은 후였다. 평소 부부 중 한 사람은 나에게 ‘둘만 일하면 마음 편하고 좋지만 힘들기 때문에 알바를 쓰는 것’이라고 선심 쓰듯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아파서 조퇴를 하겠다고 하니 갑자기 나의 미소를 좋아하던 그 분은 표정이 굳었다. 일곱 시 퇴근인데 다섯 시까지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싸울 기력도 없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몸 깎아 일하는 것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게 일하던 중, 갑자기 부부 중 다른 한 사람이 나에게 세 시에 퇴근하라고 했다. “왔던 손님도 도망가겠다”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세 시에 퇴근하는 나의 뒤통수에는 “아프면 일시키는 입장에서도 불편하다”는 말이 꽂혔다. 순간, 나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었다. 두 개나 일을 하면서 몸 관리를 못한 내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은 아플 수 있다. 나의 평일 일터에서 주말 알바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각을 하고 아파서 출근을 못 할 때가 있다. 나는 아파서 조퇴하겠다고 한 그 날까지 지각과 조퇴, 무단결근은 절대 하지 않았고 항상 10분 전에 출근했다. 그런데 5개월 만에 아파서 일찍 퇴근하는데 내가 일시키기 불편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본인은 피곤한데 내가 해사하게 웃고 다녀서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아파도 계속 웃기를 원했나 보다. 그 한마디에 맘 상했다고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아플 때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곳에서 누가 일하고 싶을까? 그곳은 식사 시간이 따로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녁 시간대에 손님이 없으면 알바비 주는 게 아까워 나의 퇴근 시간을 조정하려 들곤 했다. 나는 나대로 그런 일에 이골이 나 있었으므로 나름의 방식으로 ‘계약서에 적혀 있는’ 시간을 지키려 노력했다. 영세사업자인데 그 정도가 뭐 어떠냐고? 글쎄… 그 분들은 최소한 나보단 잘 번다. 이 돈을 줄 만큼 벌지 못한다면 일거리도 없다는 걸 나는 안다.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알바의 노동 현장 근로계약서는 왜 있는 것일까?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면 한 시간 늦게 출근하는 게 어떻겠냐’, ‘아니요? 일어나기 힘들지 않은데요. 진시황처럼 영양제를 찾아 챙겨먹는답니다. 만성피로가 없어요.’ 사실 계약서와 사본은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그 계약서를 작성하려는 의지가 나한테 확실하게 일을 한다는 인상을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사업장 어딘가에 부부 중 한 사람이 내가 노동부에 신고할 경우를 대비하여 준비해 두었을 계약서 상에 적혀있는 시간보다 나는 적게 일하고 있다. 이미 출근 시간이 30분 일방적으로 늦춰진 상태이다. 근무 시간을 일방적으로 적게 통보하고 퇴근을 종용한다. 꺾기라고 부른다지. 이런 일이 싫어서 한때 대기업 본사 직영점만 찾아 일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초과수당, 야간수당을 주고 휴식 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상여 형태의 무언가도 주는 곳이었다. 일이 있으면 협의하여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었고, 아프면 조퇴할 수 있었으며 중간에 병원도 다녀올 수 있었다. 밖에서 보면 정말 평화롭고 편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다. 다만 휴식 시간 외에는 절대 앉거나, 기지개를 켜거나, 정해진 자세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청소도 절대 편한 자세로 할 수 없었다. 그 왜 있잖은가. 서비스직은 고객 앞에서 의자에 감히 앉을 수 없다. 영하의 날씨에도 문을 열어 두고 호객 행위를 하며 일해야 했다. 급성 축농증에 자주 걸렸고, 무릎과 발이 아파서 병원비가 월급의 절반을 차지할 때 그만두었다. 마지막 급여와 확실한 퇴직금이 조금 위안이 되었다. 대기업 직영점이라고 사정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관리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기업과 계열사에 따라 또 다르다. 나는 3일치 급여를 기록 실수로 받지 못할 뻔 한 적도 있다. 현재 임금체불로 난리가 난 곳도 대기업이다. 어디든 함정이 있다. 그리고 알바는 시급에 따라 월급이 달라지므로 만 원, 이만 원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어떻게든 점점 일하는 시간에 욕심이 생겨 생활에 균형이 깨지게 된다. 모래 산 맨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허우적대며 발을 빠르게 움직여도 점점 내려간다. 그런 와중에 기본적인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나의 무가치함을 계속적으로 확인 받는다. 내가 생각했던 내가 점점 흐려지고 넘어질 것 같아 허둥댄다. 대체로 빠져나갈 시간이 없다. 지난 주말에도 나는 한 시간 일찍 퇴근을 통보 받았고, 나의 고용주는 칠천 원을 아꼈다. 일다
※ 초보여행자 헤이유의 세계여행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른여덟에 혼자 떠난 배낭여행은 태국과 라오스, 인도를 거쳐 남아공과 잠비아, 탄자니아, 이집트 등에서 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혼+마흔+여성 여행자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 홀리 축제를 즐기러 마투라에 모여든 여행자들 가족이 생긴 자이푸르와 웅장한 타지마할을 거쳐서 마투라에 입성했다. 마투라는 홀리 축제(Holi, 2~3월에 열리는 힌두교도들의 봄맞이 축제. 색색의 가루와 물감으로 거리를 물들여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축제로 꼽힌다)의 근원지인 작은 도시다. 인도 전역에서 열리는 홀리 축제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우다이푸르에 있을 때 알게 된 한국인이 초대해줘서 인도 여행자들의 카카오톡 단체방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마침 홀리 축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마투라로 가려던 내게 단비 같은 소식이 들렸다. 한국인 한분이 그곳에 터를 잡고 있었던 것!(아직도 연락하는 아저씨~ 좋은 분이다. 알고 보면.) 그 분이 숙소를 잡아서 한국인들에게 대신 예약을 해주고 계셨다. 콜카타에서 만나 좋은 친구가 된 ‘유니’(내가 꼬셔서 학교를 휴학하고 아직도 인도 여행 중이다)와 ‘제일’을 마투라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 친구 ‘요셉’을 만났다. 요셉은 훗날 나와 아프리카 동행도 하게 되었다. 이집트 다합에서는 같이 생활하기도 하고….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 홀리 축제를 즐기러 온 마투라에서, 델리대학생인 디와 미국인 친구 라이언을 만났다.ⓒ헤이유 우리들은 의기투합하여 그 유명한 홀리 축제를 즐기기 위해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디’와 ‘라이언’을 만났다. 디는 인도 델리대학생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락하고 있는 소중한 친구다. 라이언은 디와 인도에서 만난 미국인 친구로, 둘이 함께 축제를 위해 마투라에 막 온 참이라고 했다. 결국 그 둘은 숙소도 우리 쪽으로 옮기고 홀리 축제 내내 한국인들과 함께 했다. 함께 즐기고 놀던 축제 전날 밤. 숙소를 잡아주었던 한국인 아저씨는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디에게 “너 여자친구 있어?” “너 결혼했어?” “그럼, 너 게이야?” 하며 말도 안 되는 삼단논법으로 추궁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저 아저씨 말을 되받아 쳐줄까 궁리하던 차에, 미국인 친구 라이언이 아저씨에게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너 여자친구있어?” “너 결혼했어?” “아! 그럼 너 게이구나?” 한방 맞은 듯이 허탈하게 웃는 아저씨를 보며 “우와 라이언 멋져~” 연발하던 그 순간이 계속 기억날 것 같다. (지극히 사견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딱 싫은 사람 두 명을 만났는데 우연히 그게 다 한국아저씨들이었다.) 아무튼 디와 나는 각별히 친했는데, 아직도 사랑과 삶을 공유하는 사이로 남았다. ▶ 인도의 홀리(Holi) 축제. 색색의 가루와 물감으로 거리를 물들여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축제로 꼽힌다. ⓒ헤이유 성추행범들과 싸우며 전진…‘홀리는 홀리구나’ 드디어 홀리 축제날!사방에서 물감을 뿌리고 색가루를 뿌리고 남자들이 몸을 부딪혀대고… 그래도 ‘역시 홀리는 홀리’라며 겁 없이 들어간 브린다반 템플에는 여자들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템플 안에 수백 명의 남자들이 몸을 부딪치며 스님들이 던지는 꽃가루와 색가루, 선물들을 받으려고 난리를 치고 있었으니… 여자들은 감히 끼어들 수가 없었으리라. 그 난리법석에 우리 일행 중에서 남자들도 사원에 들어가길 꺼렸고, 오직 나만이 그곳에 들어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수많은 힌두교도인들과 꽃가루, 색가루들의 향연-을 보았다. 그리고 인도의 악명 높은 성추행도 제대로 겪었지. 사람들 사이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수없이 많은 손들. 나는 그 손들을 따라가 일일이 꽈악 깨물어주고 도망치듯 템플을 나왔다. 나와서 보니 사원 앞에 놓아둔 내 신발은 사라져 있었다. 뭐 괜찮아, 홀리니까! 남녀가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홀리 축제 기간에 여자들은 미친 듯이 괴롭힘을 당한다. 하지만 한국의 배낭여행자들, 특히 여자들은 강하다. 우리는 축제를 즐기면서도 동시에 성추행범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싸우며 전진했으니까. ▶ 인도 마투라에서, 홀리 축제를 함께한 여행자들 ⓒ헤이유 이때 만난 친구들 중에 삼년이 지난 지금도 몇몇은 연락을 하고, 서로를 그리워한다. 마투라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아저씨는 1년 전에 다시 가 본 바라나시 길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다. 요셉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집트 여행을 하면서 다시 만났고, 유니와는 꾸준히 연락중이다. 디는 인도에 갈 때마다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라이언은 여행 떠날 때마다 내가 어디 있는지 묻고, 가능하면 내가 있는 장소로 오려고 노력한다. 여행은 역시 사람이 반인 것 같아! 그리고 홀리는 역시 인도 마투라에서 겪어볼만하다. 해피 홀리-환상적인 축제의 도시-마투라 일다
‘TV는 바보상자다’ 그러니까 TV를 많이 보면 안 된다는 말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다. 아무 생각 없이 TV 앞에서 몇 시간을 지내다 보면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TV의 형태는 변화하고 있다. 이제 TV는 우리를 그 앞에 앉혀두지만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있는 곳으로 TV를 가지고 올 수 있다. 가방에 넣고 다니는 노트북과 태블릿PC,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TV의 역할을 하고 있고, 심지어 보고 싶은 어떤 프로그램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기존 TV 형식의 라이브 TV, 놓쳤거나 다시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볼 수 있는 VOD, TV와 형태가 조금 다른 팟캐스트, 유튜브 등 더 많은 선택권이 생겼다. 그걸 선택하는 건 이제 내 몫이다. 다양해진 플랫폼만큼 콘텐츠도 많아졌다. 즐길 거리가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잘 골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즐길 거리’에는 분명 페미니즘도 있다. ‘TV에서 무슨 페미니즘이야? 벽에 밀치고 강제로 키스하는 걸 로맨스라고 하는 데이트 폭력이나, 백마 탄 재벌 왕자를 기다리는 수동적 여성캐릭터나 안 나오면 다행이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고르면 의외로 우리의 생각을 확장시켜주는 재미있고 유용한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다. 다양한 플랫폼 중 넷플릭스(Netflix)는 미국의 DVD 렌탈 업체로 시작했다가 미디어 산업 흐름에 맞춰 VOD 플랫폼으로 전환한 곳이다. 어느 집에나 깔려 있는 지상파 TV와 달리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플랫폼이었던 만큼, 기존 미디어가 전달하는 흔한 이야기에서 벗어난 다양한 소재를 담은 콘텐츠들을 제작, 배포하며 인기를 얻었다. 그런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콘텐츠 중 페미니스트들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소개해 볼까 한다. 다큐멘터리 (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 메리 도어 감독, 2014) ▶ 메리 도어 감독 다큐멘터리 2014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여성운동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성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당시 영상과 활동가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는 대학 학위를 가진 몇 안 되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졸업을 하고 나서 보니 여성문학, 여성예술, 여성사 등 여성에 대해서는 배운 게 하나도 없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 낙태죄 개정 운동, 강간 문화에 대항하는 장면, 그리고 월스트리트에서 여성활동가들이 당시 남성들이 월스트리트에서 여성을 대했던 것을 미러링하기 위해서 길을 걸으며 남성들에게 ‘거기 섹시. 다리가 잘 빠졌네’ 등의 추파를 던지며 행진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런 광경은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져서, 현재 우리의 역사가 어디까지 와 있나 생각해 보게 한다. 그리고 운동 내에서 백인과 흑인 여성 간의 간극,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여성 간의 간극이 어떻게 발생했는지에 대한 부분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여성운동 안의 ‘다름’, 그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나아가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고민하게 된다. “인종, 계급, 성을 통합할까 하는 생각으로 고민했죠. 그런 이유로 우리가 ‘페미니즘’ 용어에 여유 공간을 둔 거죠. 왜냐하면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여성의 존재적 측면만 나타내는 것 같거든요.” (We were grappling with that idea of how do you integrate race, class and gender. That’s the reason why we had some reservations about the term “feminism” Because “feminism” just seemed to be dealing with the female aspect of your being.) 한국의 여성운동사는 아니지만 여성운동이 어떤 문제를 다루고, 어떻게 대응했는지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여성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거친 역사를 헤쳐 온 페미니스트들의 생생한 증언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없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Miss Representation, 제니퍼 시벨 뉴섬 감독, 2011) ▶ 제니퍼 시벨 뉴섬 감독 다큐멘터리 2011 44 사이즈의 마른 몸이지만 왜인지 풍만한 가슴, 주먹만 한 얼굴에 완벽한 메이크업의 여성들만 나오는 잡지, TV, 영화 심지어 뉴스까지. 우리가 접하는 미디어산업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여성들로 하여금 ‘자기를 대상화하도록’ 만든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유치원에 다니는 여아와 남아들에게 ‘대통령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조사하면 거의 동일한 비율로 나온다. 그런데 중학생만 되면 성별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또한 13살 소녀의 53%가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17세가 되면 그 수치가 무려 78.7%로 상승한다. 10대 여성의 17%가 자해를 하며, 2000년과 대비해 2010년 여성의 우울증 지수는 두 배로 뛰었다. 다큐에서는 이런 수치를 보여주면서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했는지에 대해 파고든다. 미디어산업이 어떻게 꾸준히 여성을 대상화하면서 수익을 얻어왔는지, 그 미디어 산업을 주도하고 있었던 것은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도 밝힌다. 그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이들이다. ‘백인 남성들’, 그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여성의 이미지를 ‘시청자와 고객이 원한다’는 이유를 대며 마구 쏟아냈다. 그 결과는 사회 전반에 퍼지게 된 잘못된 성 관념, 특히 여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들이다. 미국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 전 국무장관이 ‘여성’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경험부터, MSNBC에서 정치논평가로 활동 중인 방송인 레이첼 매도우(Rachel Maddow)가 커밍아웃한 여성 정치논평가로 겪어야 했던 차별과 지금까지도 받는 폭행, 살해 협박에 대한 증언을 듣다 보면 사회가 갖는 여성혐오에 새삼 놀라게 된다. 미국에서 제작한 다큐이다 보니 등장인물들은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 미국 미디어산업의 폐해를 이야기하지만 다큐를 끝까지 보고 나면 아마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거 우리 이야기 아니었어?’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지겹게 들어왔는데 뭘 또 보기까지 해야 되나 싶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왜,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조금 더 세밀하게 파악하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앞으로 우리가 어떤 걸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니까. 이 다큐가 마지막에 던지는 메시지도 사실 그것이다. “롤 모델을 기다리지 말고 당신이 롤 모델이 될 수 있으니 뭐든지 하라.” TV시리즈, 드라마 (Madam Secretary) 성공한 여성 롤 모델을 말해보라고 할 때, 많은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실제 여성 롤 모델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있는데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일명 대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극히 낮은 수준이고, 여성정치인의 비율도 여남 동률을 이루기까지는 아직 당당 멀었다. 여성 리더십을 보여주는 콘텐츠도 그리 많지 않다. 2014년부터 방영 중인 TV시리즈 는 정치계의 여성을 전면으로 내세운 몇 안 되는 콘텐츠 중 하나다. 제목 그대로 여성 국무장관 이야기를 담고 있다. CIA 출신의 엘리자베스 맥코드가 국무장관(한국의 국무총리와 외교부 장관 역할이 섞여있다)으로 임명된 후 겪게 되는 다양한 사건 사고들, 정치 환경 그리고 가정생활과의 양립까지. 여성이 정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과, 국무장관이라는 위치가 주어졌을 때 겪게 되는 일들을 보는 것이 꽤나 흥미롭다. 미국의 정치 환경은 한국과는 다른 점들이 있긴 하지만, 국무장관이 하는 일 특히 타국들과 협상을 하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미국 정치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미국 정치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도 얻게 된다. 또 한국 정치와 비교하면서, 소란스러웠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임명 과정도 떠올리게 되고 한국 정치에서 여성의 입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여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이제 그런 미신 같은 말에서 벗어나자. ▶ TV시리즈, 코미디 (Grace & Frankie) TV시리즈, 코미디 드라마 (Grace & Frankie) 에서 언급되는 미디어산업의 특징 중 하나는 40대 이상의 여성들이 미디어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영포티’라는 말이 등장했지만 그 영포티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다.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40대 남성을 일컬을 뿐이다. 여성들은 언제까지나 20대에 머물러야 하는 신화적 존재인걸까? 미디어에서 나이 든 여성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너무나 적다. 는 1937년생인 제인 폰다(Jane Fonda)와 1939년생인 릴리 톰린(Lily Tomlin)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코미디 시리즈이다. 동네 노인정에 모여 고스톱이나 치면서 시간을 때우는 거의 80세에 가까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콘텐츠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인생 말년이라고 생각하는 시기, 편히 쉬면서 살려고 했던 그레이스와 프랭키는 어느 날 남편들의 부름을 받고 한 저녁 자리에 모인다. 그리고 남편들의 커밍아웃을 듣게 된다. 또한 그들이 연인이라는 사실도. 이후 그레이와 프랭키는 ‘남편과 자신의 삶’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딸에게 물려주고 그만뒀던 일에 다시 참여해 보려고 기웃거리기도 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멘토링 일을 하기도 하고, 노년의 여성들을 위한 자위용품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는 백인 중산층 가정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70~80대 여성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도전적이다. 실제 생활에서도 여성운동과 성소수자 인권운동 활동가로도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온 제인 폰다와 릴리 톰린이 업계에서 자리를 지키며 살아남아 연기하는 그레이스와 프랭키를 보는 것 그 자체로도 왠지 힘이 난다. (※ 흥미로운 작품 소개는 다음 화에서도 계속됩니다.) 일다
[잇을의 젠더 프리즘] ‘차별하지 말라’ 구호가 공허한 이유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잇을님은 세상에 대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퀴어-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 완전변태에 속해있습니다. -편집자 주 우리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지난 7월 온라인 매체 ‘닷페이스’는 한 초등학교 교사를 인터뷰했다. 인터뷰에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남자아이들이 훨씬 많이 사용한다는 사실과, 여자아이들이 땀 흘리며 뛰노는 것은 상대적으로 자연스럽지 않게 받아들여지거나 권유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었다. 나아가 ‘성별 고정관념에 근거하지 않은’ 교육이 필요하다는 철학이 제시되었다. 인터뷰는 큰 공감대를 얻었지만 이내 신상 털기와 항의 민원이 ‘페미니스트 교사’에게 쏟아졌다. 해당 교사가 수업에서 퀴어문화축제 영상을 보여준 것도 ‘동성애 옹호’라며 매도되었다. 성소수자의 다양한 이슈를 드러내는 대중문화행사인 퀴어문화축제는 내가 함부로 비하해도 된다고 여겼던 대상이 나와 동등하며, 존중해야 할 타인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적절한 교육 수단이기도 할 것이다. 더구나 퀴어문화축제는 약 10만 명이 퍼레이드 행사에 참여할 만큼, 이미 명실상부 국내 최대의 축제다. 초등성평등연구회는 해당 교사를 응원하는 ‘8·26 공동행동’을 진행했다. 많은 이들이 ‘#우리에겐_페미니스트_선생님이_필요합니다’ 손피켓을 들고 동참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내게도 그랬다. 학교는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모든 교사가 날 ‘여성스럽게’ 만들려 들진 않았지만, 내 말투와 걸음걸이부터 깎아내고 또 깎아낸 건 결국 학교였다. 우리는 인생에 당연히 결혼과 출산이 있는 ‘가임기 자궁’이어서, 여자 친구들은 막연하게 결혼을 상상했다. 그리고 결혼 전의 임신에는 두려움이 심어졌지만, 당장 피임은커녕 내 성적 지향을 인식하고 내 욕망을 협상하는 법을 배운 적도 없다. 나는 여자성기 ‘내부’를 그린 그림 하나만 해마다 보고 또 보면서 자랐다. 만약 내가 세상에 이성애만 있지 않다는 걸 더 일찍 배웠다면, ‘이성교제’의 중요성은 과대평가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사의 역량과 노력에만 맡길 일이 아니라 학교 전반의 변화에 기반해야 할 것이다. ▶ 8월 30일 광화문 광장에서 ‘국가수준의 학교성교육 표준안 폐기’를 위한 1만6천398명 서명 제출 기자회견이 열렸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우리는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 지난 달 30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폐기하고 성평등 기반의 성소수자 인권친화적 교육을 요구하는 1만6천398명의 서명을 제출했다. 하지만 교육부의 책임 있는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성교육 표준안에서 “성폭력 대처 방법”으로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여행가지 않는다.” 등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이 매우 질타를 받은 바 있다. 그러자 교육부는 자료를 홈페이지에서 내리고 일부 수정하는 선에서 그쳤다. 표준안은 성을 편협하고 차별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데서부터 그 문제가 시작되기에, 절대로 한두 대목만 삭제한다고 해서 개선될 수 없음에도 교육부는 아직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서 성은 “남녀의 관계”, “성은 남성(아빠)와 여성(엄마)의 혼인과 관련한 일”이라고 정의된다. 그러나 이 ‘관계’는, 표준안이 ‘남자’와 ‘여자’를 규정하는 바에 따르면 동등할 수 없다. “뇌구조를 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보기”, “남녀에게 맞는 안전하고 편안한 옷차림” 등의 교육내용은 성차를 강조하고 있다. 여성은 “임신 전부터 자궁 관리가 중요”하고, 남성은 “성에 대한 욕망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충동적으로 급격하게” 나타나므로, 여성이 “성과 관련한 거절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지 않았을 때 성폭력, 임신, 성병 등 성 문제가 발생”한다며 불평등한 책임을 부여한다. 또 성과 관련한 사회적 불평등의 현실은 모두 삭제한 채 “청첩장 만들기”, “미래의 나의 결혼을 계획해보기”, “성별에 따른 가족구성원 역할의 중요성 알아보기”처럼 획일적이고 성차별적인 삶의 모습을 강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성폭력은 다름 아닌 이러한 왜곡된 관점과 성적 불평등의 결과로 일어난다. 이제 여성은 치마를 입어야 하고, 친구와 여행 하면 안 되고, 금욕하고, 결혼하고, 상시 태교를 하는 자세로 살다가, 자녀를 낳아서 양육을 전담해야 한다는 수준은 벗어나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여성다운 취미와 남성다운 취미가 따로 있지 않고, 성별에 따라 적합한 직업이 있지 않고, 여성에게 더 바람직한 사회적 역할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당연히 말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동성을 사랑하거나, 내가 여성이거나 남성인지 고민하거나, 성별 정정을 원하거나, 나를 여성 또는 남성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면 그 역시도 삶의 다채로운 모습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여권에 여/남이 아닌 젠더를 기재하는 변화가 머잖아 올 것이다. 성별 정정의 조건으로 외부성기 수술을 요구하는 게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게 될 것이며, 우리사회 전 영역에서 성소수자 차별에는 어떠한 핑계도, ‘군대라는 특수성’도 소용없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막을 수 없는 흐름이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권의 실현이다. ▶ n개의 성, 우리는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 ⓒ이미지 제작: 조짱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야말로 ‘성편향’ 내가 학교 성교육 표준안에 문제를 제기했을 때 어떤 관계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성소수자의 이권을 위한 표준안이 아니’라는 말을. 그런데 묻고 싶다. 성소수자가 우리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성소수자의 이권을 위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된다고 말하기 이전에, 그렇다면 이 표준안에 누구의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했는지 밝혀야 하는 않는가? 연구진은 공청회 이후 보수단체들의 목소리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사회적 갈등 문제없이 중립적인 관점”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전문가 검토회의 역시 거쳤다고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영역에서 성교육, 젠더교육을 하고 있는 청소년성문화센터, 여성인권단체들, 일선의 보건교사들조차 이 과정 속에 없었다. 교육부야말로 이권이 아닌 인권을 위해 표준안을 만든 것이 맞는가? 유치원부터 초, 중, 고 전 과정을 아우르는 방대한 교육안 속에서 두세 단어를 삭제한다고 해서 표준안에 담긴 성차별과 소수자 혐오를 개선할 수 없다. 우리사회에서 ‘차별하지 말라’는 구호가 공허한 이유는 한부모가족, 비혼모, 트랜스젠더,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 등을 학교 교육에서 차별적으로 다루는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누가 왜 차별당하고 있는가? 있는 사람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거나, 나보다 하등한 사람이라고 가르치면서 같은 입으로 ‘타인을 평등하게 대하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성평등 기반의 성소수자 인권친화적 교육이 보편적으로 시행될 수 있기를 촉구하며, 현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폐기될 때까지 분노와 요구를 멈추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일다
‘여성의 몸 이미지’에 다양성과 자유를!③ 영국 사례 광고에서 다이어트와 성형 등으로 건강하지 않은 여성의 몸 이미지를 활용하거나 십대여성을 성애화하는 것을 금지한 영국에서는 ‘몸 이미지’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영국, 정부가 몸 이미지 연구에 전폭적인 지원 영국 정부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신체 자신감’ 캠페인을 전개했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2011년에 이라는 보고서를 발행한 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몸 이미지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가 이 시기에 이뤄졌다. 몸 이미지가 자존감, 업무역량, 성취능력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했을 뿐 아니라, 무분별한 성형수술 관행과 과도한 성형 광고 전략을 고발하는 조사연구 또한 지원해 향후 이어질 사업의 근거를 탄탄히 한 점이 특징적이다. 실제로 영국 정부가 연구 지원한 가 발행된 이후 성형산업의 문제점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높아졌다. 나아가 의료협회가 앞장서서 성형광고를 금지하라고 촉구하는 등 유의미한 변화가 이어졌다. 교사용 지도서 ‘몸 이미지 교육 표준안’ 발간 보고서는 각종 연구 결과들을 근거로 ‘몸 이미지 교육’이 초중등 교육 과정에 의무적으로 포함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기존의 교사뿐만 아니라 교직원들을 위해서도 관련 연수가 마련되어야 하며, 정교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연수 과정에서 예비교사들이 몸 이미지 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이 제안을 받고 영국 정부는 PSHE(Personal, Social and Health Education) 협회와 함께 교사들이 실제 교육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몸 이미지 교육 지도서를 발간했다. PSHE는 영국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노동을 준비하고, 스스로의 삶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 자질을 개발하는 교과다. 음주, 마약, 건강, 인간관계, 시민권과 인권, 성과 관련된 내용을 다루며, 몸 이미지 교육도 교과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다. (영국 교육부는 PSHE 교과가 포함하고 있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의무 사항으로 두고 있으나, 별개의 PSHE 교과 수업을 학교 교육 계획에 포함시키는 것은 선택 사항이다.) 몸 이미지 교육의 철학은 ‘다양성’과 ‘인권’ 영국의 은 교사가 몸 이미지 수업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수업을 진행하고 평가에 이르기까지의 전반 과정에서 필요한 자료들과 주의해야할 점들을 담은 지도서이다. 몸 이미지가 무엇이며 왜 몸 이미지 교육이 중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고, 몸 이미지 교육에 효과적인 교수법과 활용할 수 있는 교육 자료들까지 담고 있어, 몸 이미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쌓아가는 교사들에게 유용한 자료이다. ▶ 영국 평등부가 발행한 이 지도서에서 흥미로운 점은 몸 이미지 이슈를 신체 건강의 문제를 넘어 다양성과 인권의 문제로 폭넓게 조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취약 집단의 요구 다루기’ 파트를 보면 과체중이나 비만 학생, 섭식장애가 있는 학생, 성소수자 학생, 유색인 또는 소수민족 학생, 장애가 있는 학생 등과 함께 수업할 때 주의해야할 점과 집중해서 가르쳐야할 점을 세세하게 명시하고 있다. 젠더뿐만 아니라 체형, 인종, 성적 지향, 장애 등의 여러 경계를 고려하며 다양한 몸 이미지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음란물과 관련된 문제에 대처하기’ 파트에서는 음란물을 왜곡된 몸의 재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이는 몸 이미지 교육을 체육, 사회 교과와 함께 성교육의 차원에서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수사례 공개…한국 학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 이와 함께 영국 교육기준청(Ofsted)은 몸 이미지 교육의 우수사례 학교를 선발하여 그 교육 내용을 공개하고 있다. 정부의 PSHE 팀과 함께 진행한 오크 코티지 초등학교의 교육 사례를 보면 몸 이미지 교육이 한국의 학교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교육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전체 교직원과 학부모 연수를 진행한 후 교사들은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춰 수업 계획서를 작성한다. 타인과의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서로의 차이에서 비롯한 고유함을 강조하는 수업을,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는 고학년 아이들과는 미디어의 영향력과 구체적인 디지털 보정 과정, 외모와 유전의 관계 등에 대한 수업을 진행한다. 이처럼 정부가 몸 이미지 교육을 위한 교사 지도서를 발행하고 우수사례를 홍보하는 것이 의지를 가진 교사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호주의 사례에서처럼 의무가 아닌 교과의 교육을 권장하는 것의 한계는 명확하다. 아쉽게도 교직원의 의무 연수나 예비 교사의 몸 이미지 교육 이수는 의무화되지 않았다. 2015년에 영국 녹색당에서 몸 이미지 교육을 포함하고 있는 PSHE 교과 선택의 의무화 법안을 추진하였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지금도 여러 여성단체와 성소수자 단체, 섭식장애 관련 이슈를 제기하는 단체들은 PSHE 협회와 함께 몸 이미지 교육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현 교육부 장관은 올해 영국의 모든 초등학교 성교육을 의무화한 바와 같이, 미래에 PSHE 의무화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몸 이미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켜야 호주와 영국의 각 정책들의 한계에 대해 언급했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한계를 지적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여러 여성단체에서 몸 이미지 문제를 공론화하고 ‘몸 다양성 보장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문제가 여성의 건강권과 행복권을 침해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사회적 인식과 합의가 부족하다. 또한 한국의 사범대에는 몸 이미지 교육 의무화는커녕, 젠더 교육 혹은 인권감수성 교육조차 필수 과정으로 들어가 있지 않다. 교사를 위해 관련 자료를 저장해 둔 플랫폼조차 없다. 우울한 현실이지만 외국의 사례들을 살펴보는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에 없는 것을 찾아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더듬어보기 위함이다. 우리도 얼마든지 몸 이미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고 국회에 여성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해가 될 수 있는 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만들도록 요구하며, 현직 교사와 예비교사들이 몸 이미지 교육을 포함한 성평등 교육, 인권 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정부에 요구할 수 있다. 과연 그 일을 누가 할 것인가.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이,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그 ‘누구’ 중 한 명일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몸 이미지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 글은 작년 한국여성민우회가 발간한 자료집에 실은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다
# 사후피임약 처방받기 일요일 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겸 파트너와 섹스를 하다가 뒤늦게 콘돔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급한 마음에 날이 밝자 마자 사후피임약을 처방 받기로 결정했다. 약을 먹을 시간과 피임이 성공할 확률까지 계산해보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혼자서 병원에 갔다. 중년의 남자 의사는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보며 “피임 똑바로 하세요” 라고 훈계했다. 우연히 자궁을 가져서 내 몸에만 위험 부담을 ‘몰빵’하는 것도 억울한데! 불운한 사고에 대해 오히려 핀잔을 들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혹시 교통사고를 당해 실려 온 사람들도 수술 전에 의사에게 “운전 똑바로 하세요” 같은 소리를 듣곤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병원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대의학을 통해 더 나은 삶의 옵션을 제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런데 이런 기준에서 보면 산부인과는 조금 별난 병원이다. 여기서는 환자들이 치료나 적절한 의학적 도움을 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성생활에 대한 훈계를 듣곤 하니 말이다. 그래서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이라고 오해나 받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가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 ‘문란한 성관계’를 했다고 해도, 그걸 뭐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산부인과 의사에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문제는 어떤 성생활을 하고 있든 피임에 실패하거나 성병에 걸리는 일은 일어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콘돔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을 경우를 포함한다면 콘돔의 피임 성공률은 약 80%라는데, 이번에 나는 그 20%에 속하는 경우를 경험한 셈이다. 부작용(?) 치고는 꽤 높은 확률이다. 살면서 몇 번이라도 보지-자지 간 삽입섹스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콘돔이 실패하는 일을 겪게 될 것이다. 환절기에는 조심해도 감기에 걸리곤 하는 것처럼, 임신은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이 아니다. 내가 경구피임약을 먹으며 이중 피임을 했다면 피임 성공률은 훨씬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규칙적으로 섹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언제 있을지 모르는 그 한 번의 가능성을 위해서 매일매일 경구피임약을 챙겨 먹는 것은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덜렁거리는 나는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약을 빼먹곤 했다. 게다가 매달 피임약을 구입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나는 피임약을 복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변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가능한 가장 안전한 옵션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여 누구도 ‘도의적인 책임’을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 고행의 길, 피임법을 찾아서 사후피임약은 3만원 가량으로, 적지 않은 가격에 보험처리도 되지 않는 항목이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기준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병원에서 ‘비보험’이란 말을 들었던 건 미용 보톡스 주사를 맞을 때 정도였기에 사후피임약이 비급여 항목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역시나 임신은 상해나 질병의 경우와 달리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내 행동의 결과’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신이라는 리스크가 개인적인 일로 인식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나는 스스로를 위해서 더 나은 피임법을 찾아 나섰다. 더 확실한 안전성을 손에 넣어야 하겠다는 생각, 다시는 피임 실패로 이런 불쾌한 일을 당하기 싫다는 생각에 지금까지와는 드라마틱하게 다른 피임법을 원했다. 어쩌면 나는 나를 임신의 가능성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여성됨’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무언가를 필요로 한 걸지도 모른다. 그 때 마침 주위에 임플라논을 시술 받은 친구가 있었다. 임플라논은 팔 안에 삽입하는 피임기구로, 한 번 시술 받으면 효과가 약 3년간 지속된다. 피임에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은 나에게 적절한 옵션 같았다. 그러나 막상 임플라논 후기를 찾아보니 정보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부작용이 심하다고 들었기에 객관적인 위험이나 효과에 대해 다수의 경험담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글에는 몸에 뭔가를 집어넣는다는 것, 인공적으로 임신을 막는다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에서 기인한 것 같은 우려가 가득해서 답답했다. 결국 나는 ‘어차피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라는 생각에 시술을 강행했다. 이후 의사의 권고대로 목욕도 2주 이상 피했고, 격한 운동을 하면 자리 잡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 겁이 나서 운동은 1주가량 쉬었다. 상처가 아무는 과정은 꽤 번거로웠고 팔에는 작은 흉터가 남았지만, 반영구적인 피임 효과를 얻었다. 생리 기간의 출혈과 고통이 거의 없어졌다는 점도 최고로 만족스러웠다. 한 달에 한 번씩 입 주변에 뾰루지가 나는 등 부작용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3년간 피임과 생리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극적인 효과에 비하면 감당할 만했다. 안타깝게도 임플라논을 시술 받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부정출혈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오히려 한 달 내내 생리를 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다. 빨리 기술이 발전해서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 손쉽게 임신의 위험과 생리, 생리통이라는 번거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인간이 달에도 가는 시대에 이미 그런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좀 이상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과연 ‘여성이라면 출혈을 하면서 힘들어 하거나, 섹스를 하고 나서 임신을 걱정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없었더라도, 의학이 제공할 수 있는 수단들이 이렇게 꼭꼭 감춰져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 가격도 꽤 비쌌다. 33만원. 마찬가지로 의료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 시술이었다. # 아예 내 몸에 세금을 붙이지 그래 “그러게 피임 좀 하지!” 임신중절을 하거나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사연에는 꼭 이런 생각 없는 반응이 가장 많은 공감을 받는다. 그렇게 쉽게들 말하는 피임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의료보험 혜택이 이만큼 일반적인 나라에서 자궁을 가지고 성생활을 누리는 것에 따르는 비용만큼은 개인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려도 없이 말이다. 사람들은 ‘여성’이라는 몸에 세금을 붙이고 싶어 하는 것이 틀림없다. 남성용과 똑같은 제품에 ‘여성용’이라는 라벨만 붙여서 더 높은 가격을 받는 현상을 비판하는 ‘핑크 택스’(pink tax)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실상은 ‘핑크 택스’는 핑크색 면도기의 가격 정도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성’으로 인식되는 몸으로 살아가는 것은 라이프스타일 자체로 그렇지 않은 몸보다 많은 비용을 물게 된다. 그것도 꼭 금전적 비용에 한정되지 않는 많은 영역에서 말이다. ▶ 생리용품에 대해 배우고 필요한 용품을 구비하는 것은 오로지 생리하는 당사자의 책임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생리용품의 다양한 종류와 필요성은 ‘여자들만의 상식’ 정도로 사적인 것으로만 흔히 생각된다. (이미지: 셔터스톡) 생리용품만 해도 그렇다. 나는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처음 사용해 봤을 때, 두 가지 의미에서 놀랐다. 생리를 하면서도 이렇게 편하고 쾌적할 수 있다는 점, 또 이렇게 편한 것을 학교나 가정에서 널리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위에 물어가며 탐폰 사용 경험에 대해 듣고, 부실하다는 국내 회사 제품 대신에 추천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고 유명한 해외 제품을 직구로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까지 모든 것이 내가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탐폰 이전에는 면 생리대를 쓴 적도 있다. 가격이 상당히 비싼데다가 만드는 데 손이 많이 가고 그때는 제작하는 업체도 많지 않아서, 주문을 해놓고 한 달 가까이 기다려 제품을 받았다. 제품의 질은 만족스러웠지만 바쁜 와중에 매일 저녁 화장실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빨래를 하면서 보내는 게 너무 힘들었다. 피가 빠지도록 물에 담가만 놓고 다 빨지 못한 생리대가 늘어만 가고, 제 때에 빨지 못해서 비싼 것을 버리게 되기도 했다. 결국 다시 일회용 생리대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해한 생리대에 대한 기사에는 그렇게 쉽게들 “면 생리대를 쓰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대신 빨래라도 해 줄 셈인가? 생리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혼자서도 잘해요’ 식으로 모든 번거로운 일을 스스로 감당해내길 요구 받는다. 이렇게 나 혼자 알아보고 고생해가며 돌봐 온 몸에 대해 갑자기 내 의사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되는 때가 있는데, 내 자궁의 생산능력을 자궁 없는 사람들이나 공동체가 필요로 할 때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이나 여성들의 이기심 따위를 들먹이며, 나라를 위해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임신의 지속 여부를 당사자 대신에 결정하는 권한을 놓지 않으려 하고, 이미 일어난 임신중단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독박 육아’, ‘독박 가사’ 뿐만이 아니라 ‘독박 피임’, ‘독박 생식능력 관리’, 심지어는 나 혼자 지켜야 하는 ‘독박 성적 도덕성’이라는 말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와 몸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몸이 가진 어떤 기능 때문에 생겨나는 비용, 수고, 결과나 책임도 분담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생각은 다시 나를 훈계했던 산부인과 의사에게로 돌아간다. 피임 실패로 혼자 사후피임약을 처방 받으러 와서, 보험 처리도 안 되는 3만원짜리 약을 먹고 하혈을 했던 나의 현실이 의미하는 여러 가지 책임에서 그는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지 말이다. 일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도영원님은 영국 글래스고대학교에서 인권과 국제정치 석사를 전공하고, 현재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인권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영어’가 ‘한국어’에 정치적 올바름을? 얼마 전, 한 K팝 아이돌그룹 멤버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그가 TV쇼에서 했던 짧은 랩이 문제였다. “내가 왓썹(왔어)”이라는 한국어 가사를 흑인을 비하하는 영어 표현인 “n****, wassup(what’s up)”으로 들은 성난 해외 팬들이 줄을 이어 항의했다. 이에 맞서 한국 팬들은 비(非)영어권 TV쇼에서 들은 말을 자연스럽게 영어 단어로 해석하는 영어사용자들의 오만함을 지적했다. 과연 영어를 세상의 유일한 언어라고 착각하는 듯한 영어권 사람들의 태도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러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SNS계정의 프로필에 Black Lives Matter(흑인에 대한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반(反)인종차별 운동)를 써 놓은 시민운동가들인 것을 보면서, 문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느꼈다. 성난 해외 팬들은 사건의 진상을 알고 난 후에도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단어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할 때에는 각별히 신중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의사소통에서 비롯된 오해를 가지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인권의 이름으로, 국제 사회에서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 정치적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어떤 표현이 공동체에서 정치적으로 부적절하게 여겨지는 것은 종종 그 말이 사용되어온 사회적 맥락 때문이다. ‘N****’라는 단어는 특히 흑인 노예 제도와 인종분리 정책, 그리고 흑인에 대한 유구한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차별이 존재했던, 지금도 존재하는 많은 서구 사회에서 이러한 차별의 역사와 깊은 관련을 가지는 표현이다. 따라서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사회의 시민에게, 해당 표현의 부적절함에 대해 적절한 인식을 갖추는 것은 직접 차별을 행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 공동체들 사이에서는 문화의 교류가 일어나고, 역사는 국경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 가수의 ‘비하 표현처럼 들리는 가사’에 항의한 해외 팬들은 ‘영어 랩을 사용할 거라면 특정 영어 표현들의 부적절함도 마찬가지로 이해하기를 요구’함으로써 특수한 역사적 맥락에서 만들어진 정치적인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기준을 비(非)서구권인 한국인 가수와 팬들도 공유하도록 제안한 것이다. 문제는 주변부 언어가 세계공용어인 영어에 대해 갖는 위상의 차이이다. 언어가 가진 힘의 차이만큼 문화의 전달도 그 방향이 뚜렷하다. 대부분의 경우, 비(非)영어사용자들이 영어사용자의 ‘상식’에 영향을 받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많은 비(非)영어권 사회에서 중요한 자원으로 여겨지고, 그러한 능력을 갖추려면 해당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非)영어권에서 영어사용자의 일반적인 인권의식은 정치적 논의 이전에 '교육받은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할 상식'의 기준이 된다. 비(非)영어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그들에게 고유한 경험을 통하여 합의를 이루어 낸 시민의식이 영어권에서 존중받기 힘든 것과는 상반되는 일이다. 다른 언어를 이해하고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에 문제는 없다. 언어는 분명히 닮고 싶은 문화를 효과적으로 실어 나르는 용기(vessel)가 된다. 주변부 사회의 소수자들은 이것을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내 마누라 내가 팬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라는 한국어 문장을 “She is my wife, I can beat her”라는 영어 문장으로 듣고 비로소 충격적으로 느껴졌다는 한 네티즌의 일화는 ‘선진국’의 인식을 어떻게 억압자에 대항하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그러나 ‘N****’가 흑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라는 것을 기계적으로 외울 수밖에 없는 비(非)영어사용자가 그만한 세심함을 갖추기까지 과연 영어사용자와 동등한 노력을 할까? 서구문화의 영향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 않는 사람은 이 문화를 체득하지 못한 내가 하는 말이 국제사회에서 의도치 않게 부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검열한다. 표준으로 여겨지는 언어를 사용하는 원어민이라면 설령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문화에 대한 감각'만으로 능숙하게 그러한 혐의를 피해갈 수 있는 것과는 상반되게 말이다. 그래서 언어의 위계는 의사소통의 불평등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권의 지리적인 중심과 주변부의 구분은 언어의 권력차로 더욱 공고해진다. 서양의 트렌드는 베끼면서 인권의식은? 그렇다고 한국 사회에 인종차별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특히 K팝 문화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려 한다면, 유감스럽게도 레퍼런스는 어디에나 있다. 동남아시아인 및 중국인을 희화화하고 비하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유구한 사용은 예능 프로그램을 조금만 보다 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한국 TV엔터테인먼트 수출 산업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의 수요에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일차적으로 소비자 기만적인 태도이다. 그런데 더욱 무책임한 일은 제3세계 출신 외국인노동자의 값싼 노동력에 의지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이렇게 미디어가 비(非)한국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활발하게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인이 아닌 비(非)한국인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타자화하는 TV쇼들은 대중에게 한국계 원어민이 아닌 사람들은 영원한 2등 시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엄연히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이들의 소외와 주변화를 ‘승인’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서양의 트렌드를 받아들여 가수나 노래, TV쇼 포맷을 베끼고 유사한 이미지를 추구하면서, 이들 문화에서 사회적 약자를 존중하는 방식만큼은 받아들이지 않는 모순적인 태도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다국적 팬들을 의식하고 상품을 만드는 한국 TV엔터테인먼트 쇼와 기획사들이 아직도 미국 원어민을 인디언이라 칭하고, 흑인을 희화화하는 ‘블랙페이스’를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시키며,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의도적인 무지를 가지고 힙합과 같은 문화를 ‘쿨한 것’으로 전유하는 자세는 너무나 옳지 못하다. 이처럼 다양성에 무지한 K엔터테인먼트 문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일원적이고 폐쇄적인 팬덤 문화는 이들 콘텐츠에 들어간 인종차별적인 코드가 무비판적으로 소비되는 데에 일조한다. K팝 가수의 인종차별 논란이 있을 때, 영어사용자들의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 팬덤이 만들어낸 해시태그를 클릭했던 나는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영어사용자들의 자문화 우월주의적 태도를 비난하면서 스스로도 외국인 혐오 발언으로 맞서는 사람들이 잔뜩 있었다. 한국어를 하지 못하면 한국 가수를 좋아하지 말라든가, 해외 팬들을 ‘외퀴’라는 비하적인 속어로 부르는 상황에서 비(非)한국계 팬들이 한국 사회와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이처럼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문화를 공유하는 팬덤의 일원들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리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국제 사회의 기준이라는 칼바람에 창문을 꼭꼭 닫아 놓고 자기들만의 방어적인 차별 문화를 더욱 공고히 다듬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일면이다. ▶ 강남구가 해외관광객 유치 목적으로 압구정 로데오역 앞에 조성한 'K스타 로드'. 정부나 기획사가 콘텐츠 제작에 해외 K-pop 팬들의 수요를 고려하는 것에 비해, 다양한 팬들이 요구하는 PC함(정치적 올바름)을 갖추는 데는 소극적이다. ‘인권의 주변부’ 한국에서 인권을 말하기 ‘국제 사회에서 한국 여성의 지위 통계 115위’(세계경제포럼 성격차지수). 지수를 매기며 ‘줄 세우기’는 사회적 약자에게 지금도 유효한 무기이지만, 이제는 인권을 평가하는데 더 이상 그런 일관적인 기준이 쓰여도 되는지에 대해 회의가 느껴진다. 탈(脫)맥락화 되고 표준화된 인권의 기준은 일방적으로 인권을 부정하는 변명으로도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권 국가에서 인권을 공부하고 와서 한국 사회에서 인권을 논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특히 이런 주장을 할 때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의 말하기에 대해서 몇 가지 규칙을 세웠다. 첫째로, 에둘러서 ‘한국보다 서양이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효과는 더 이상 없고 부작용만 낳을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어디가 더 낫다고 말할 때는 해당 문화권의 보편적인 우월함으로 치환하지 않고 대상을 명확히 지정한다. 문화와 제도는 가변적인 것이며 인종의 우월성과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예컨대, 어느 나라의 임신중단에 대한 정책이 한국보다 더 여성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셋째, 나의 당사자적 경험에 기반하여 말한다. 데이트를 했을 때 한국 남성들의 이러한 행동보단 스위스 남성들의 이러한 행동이 더 적절했고 편안했다, 그러므로 한국 남성들에게는 여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현상을 일반화할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나의 위치를 분명히 하여 내 주장에 맥락을 부여할 수 있다. 서양의 무엇이 우리나라보다 낫다고 말하면, 사대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 반대로 서양의 무엇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고 말하면, 그것을 ‘우리나라 여자들은 호강한다’라는 주장에 대한 근거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영어사용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나는 한국의 열악한 여성 인권이나 유색인종 인권의 상황에 대해 고발하며, 동시에 이것이 비(非)서구 나라의 문화적인 열등함에 대한 오래된 인식을 재생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럴 때 나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발언하는 사람은 정말로 ‘미끄러운 비탈길’에 서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하나의 문제를 지적하면 그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문제의 중요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일들이 늘 생기는 것이다. 서양과 한국의 인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일다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육체와 정신의 분리 ▶ 미래소년 코난 중에서 ⓒStudio Ghibli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라는 우리가 ‘육체’라는 기계에 올라탄 것일까? 비유나 상상은 가능하다. 철학적으로는 데카르트가 380년 전에 시도했고, 예술 표현으로도 새삼스럽지 않다. 실제 우리 삶에서 신체활동과 정신활동은 분리된 듯하다. 우리는 종종 일과시간 내내 마치 육체와 분리된 ‘정신’처럼 산다. 일과를 끝내고 체육관에 와서야 비로소 ‘육체’를 기억해낸다. 우리 삶은 다양한 활동이 자연스럽게 통합된 생활이 아니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운동 시간이 따로 필요하다. 대부분 운동 공간도 따로 필요하다. 현대의 생활 공간은 점점 더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그 공간 안에서는 뛰기(skip, step, hop, jump, stomp, dash, sprint, run)를 할 수 없다. 즉 체육관이 따로 필요하다. 다양한 활동이 통합된 생활을 대다수가 누리려면 세상 전체를 뒤바꿔야 할 것이다. 아니면, 세상과 아예 담을 쌓고 살거나 특별한 극소수 사람들만 제한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러므로 운동 시간과 운동 공간의 필요성은 정신활동과 신체활동의 분리가 확고해 보이는 세계에서 균형을 잃고 사는 우리 대다수에게 불가피하게 필요한 ‘목발’과 같다. 인간, 복잡한 유기체 우리는 기계보다 복잡한 유기체다. 그래서 차를 바꿀 수 있고 집을 바꿀 수 있고 배우자도 바꿀 수 있지만, 육체를 다른 육체로 교체할 수 없다. 평생 이 하나의 몸이다. 한 명당 오직 하나의 몸이다. 우리는 식물도 광물도 아니다. 그러니 가만히 집중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장시간 학습과 장시간 노동은 우리에게 특히 나쁘다. 우리는 동물이다. 동물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움직임을 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뇌 비중이 가장 크고 초보 시절(아기)이 가장 길다. ‘초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움직임이다. ▶ 넘치는 호기심, 과감한 욕구 ⓒ스쿨오브무브먼트 기계도 식물도 광물도 아니라서 우리는 정서적 문제를 겪는다.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걱정, 불안, 우울감을 운동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물론, 장시간 학습과 노동이 심신에 끼치는 해로움도 운동을 통해 줄일 수 있다. 꾸준한 운동은 정서적 문제들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적절한 운동은 심지어 휴식보다 효과적이다. 단기적인 운동도 효과가 있다. 한 번의 운동만으로도 자신감과 활력 같은 긍정적 정서는 늘어나고 불안, 긴장, 우울, 분노 같은 부정적 정서는 줄어든다. 그러려면 운동 시간이 진지하면서도 즐거워야 한다. 즐거울 때 움직임이 보수적이지 않고 적극적이다. 변화에 개방적인 상태가 된다. 운동을 지속할 가능성도 커진다. 강해지기 위해, 날씬해지기 위해, 창의적인 생각을 위해 운동하라고 말하긴 싫다. 자기 경쟁력 증강을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기나긴 목록에 운동이라는 항목 하나를 추가하라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운동이 좋을까? 그러면 어떤 운동이 좋을까? 세 가지를 고려해보자. 첫째, 우리의 타고난 소질, 즉 움직임을 건강하게 발달시키는 활동이 좋다. 둘째, 여럿이 함께 운동하는 게 더 좋다. 뇌 과학은 여럿이 함께 운동할 때 뇌가 서로 연결된다 한다. 파시아 이론은 파시아(근막)의 교감과 통합이 생긴다고 한다. 인간 움직임의 3대 쾌감 요소인 달리기, 공놀이, 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는 여럿이 함께 달렸고, 여럿이 함께 공을 다뤘고, 여럿이 함께 춤을 추었다. ▶ 여럿이 함께 ⓒ스쿨오브무브먼트 셋째, 대인운동이라면 더욱 좋다. 대인운동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며 이해하고 협력한다. 대인운동은 대면하고, 파악하고, 해결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운동을 해도 너무 고독하게 운동하는 현대의 풍조는 앞서 말한 ‘분리’가 심화된 현대 사회의 반영물이다. 다른 사람들과 서로 접촉하며 운동하는 과정에서 주고받는 자극은 달리 대체할 만한 것이 없는 훌륭한 정서적 건강 요소다. 일다
⑤ 넷플릭스에서 페미니즘 발견하기 Ⅱ ‘여성 이슈’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성범죄를 포함한 젠더폭력이다. 여성운동은 오랜 시간 젠더폭력에 저항해왔지만, 그럼에도 가장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로 꼽힌다. ‘젠더폭력을 근절하자’는 말이나 캠페인 혹은 강력한 처벌 정책으로 근절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과 관념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치, 사회, 경제와 복잡하게 엮인 고리들을 하나하나 풀면서 끊어야 한다. 매일 젠더폭력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종종 이 분노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무엇보다도 나 혼자 간직하고 있는 아픔과 고통,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에 품고 있다가 더 큰 정신적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이런 일을 겪는 게 아니라는 것,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현실 세계에서 그걸 발견하고 위로를 받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를 내기가 아직 어렵다면, 먼저 스크린 앞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스크린 너머이긴 하지만, 여성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들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며, 그리고 폭력의 아픔을 치유하는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소개한다. ▶ (Audrie & Daisy) 배너 이미지 다큐멘터리 (Audrie & Daisy, 보니 코헨, 존 셍크 감독, 2016) 성폭행을 겪은 10대 여성 오드리와 데이지 그리고 또 다른 10대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다. 여성에 대한 잘못된 관념과 이미지가 얼마나 10대 여성들 그리고 10대 남성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성범죄와 연결되는지 발견하게 된다. 다큐에서 조명하는 이야기 중 하나인 오드리의 일화에서, 오드리는 성폭행 피해 사실이 학교 전체에 퍼진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이제 끝났어’ 라고 말한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성범죄 ‘피해자’의 위치가 얼마나 취약하고 공격받기 쉬운 대상인지 알고 있고, 그걸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주인공인 데이지는, 성폭행 이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다 겪는다. 동네 사람 누구나 서로를 알고 엮여있는 마을이었던 탓에, ‘문란한 여자애 하나 때문에 동네 망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은 다 풀려났다. 사건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비난은 데이지에게로 더 쏟아졌다. 정말 끔찍한 건, 사건을 담당했던 보안관의 인터뷰다. “이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소년들이 항상 비난을 받는다는 거에요.” 사건 담당자조차 데이지 때문에 애먼 소년들이 사건에 연루되고 범죄자로 비난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녀들은 침묵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찍힌 낙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망가지고 상처 입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피해자’로 남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서로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직접 만나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대중 앞에 나서 당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터뷰를 한다. “아무도 제 이야기를 안 하면, 제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I decided that, if no one is gonna talk about it, then I will.) 성범죄 피해자가 사건 이후 어떤 감정의 프로세스를 거치고, 어떻게 삶을 살아가는지 아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ㅎㅎ’라는 메시지를 성폭행 피해자가 절대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꼭 들어보길 권한다. 다큐멘터리 (I’m Jane Doe, 메리 마지오 감독, 2017) ‘제인 도’(Jane Doe)라는 건 어떤 범죄에서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거나 신원을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여성을 칭하는 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제인 도’로 남기를 원하는, 미국의 온라인 성판매 피해자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명이 나오진 않지만 다큐에서 얼굴을 드러낸 여성들은 모두 10대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하거나 실종되었다가, 다양한 광고가 올라오는 백페이지(Backpage.com)에서 발견된다. 속옷만 입고 야한 포즈를 한 사진과 함께 올라온 성판매 광고 글에서 말이다. 가출한 10대 여성들은 포주들에게 늘 타깃이 된다.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유혹부터 시작해서, 집을 나온 어린 여성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말들로 그들을 끌어들인다. 그 뒤로는 지옥의 시작이다. 포주들은 여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마약부터 투여한다. 마약에 중독된 여성들은 점점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되고, 돈은 다 포주에게 간다. 점점 벗어날 방법이 없어진다. 포주들은 ‘백페이지’라는 사이트를 공공연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 없다. 오히려 현재 미국 법은 제3자가 사이트에 올린 글에 대해 사이트 운영자는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운영자를 보호해 주고 있다.(통신품위법 Communication Decency Act CDA 230조) 피해자와 가족들은 사이트에 남아있는 피해여성들의 사진을 방관하고, 여성들-특히 미성년 여성들을 이용하고 성노예로 부려먹는 포주와 공조하고 있다고 의심되는 ‘백페이지’를 고소한다. 2010년 3월 첫 고소를 시작으로 CDA 230조로 인해 매번 벽에 부딪히면서도 피해자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의회에 나가서 증언하고 의원들을 압박하기도 하고, 언론 앞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움직임으로 인해 의회에서도 ‘백페이지’ 운영 책임자들을 소환하고 조사에 나선다. 이 다큐가 제작 완료된 2017년까지도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성범죄는 매체의 발달과 함께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특히사진이나 영상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질 수 있고, 그것은 곧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된다.국내에서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제인 도’의 이야기는 여성들이 마주하는 끔찍한 공포 중 하나이다. 피해자 가족의 증언인, 이런 일이 평범한 가정의 나에게 일어날지 몰랐다는 말이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다큐를 보는 내내 떠나질 않았는데, 피해자들이 ‘나는 제인 도다’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알 것 같았다. 그들은 ‘우리의 이야기가 묻혀 지지 않게’ 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 (Marvel’s Jessica Jones) 공식 이미지 TV 시리즈, 드라마 (Marvel’s Jessica Jones) 제시카 존스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온 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에게는 차도 던질 수 있고 주먹으로 벽도 부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다. 그런데 그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킬그레이브라는 남성에게 지배당해 끔찍한 데이트 폭력을 겪는다. 킬그레이브는 사람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제시카 존스는 킬그레이브에게 조정 당해 자신의 능력을 사람을 해치는데 쓴다. 그러다가 겨우 킬그레이브를 죽이고 탈출에 성공하는데…. 사실 그는 죽은 게 아니었다. 킬그레이브는 제시카 존스가 자신을 배반했다고 생각하며 집요하게 스토킹한다. 제시카 존스는 자신의 능력을 펼쳐서 세상을 구하는 것 따위에 관심 없다. 자신이 행했던 범죄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혼자 고립되어 살아간다. 사립탐정으로 일하면서 직접 의뢰가 들어오는 일이나 가끔 해결하면서 돈을 벌어 먹고 살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킬그레이브에게 조정 당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여성의 사건을 알게 되면서 상황이 변한다. 그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된 제시카 존스는 그의 악행을 멈추게 하기 위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킬그레이브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제시카 존스는 젠더 폭력의 피해자이지만 또한 생존자이다. 제시카 존스의 영웅 이야기는, 기존에 많이 보았던-멋있는 액션을 하며 세상을 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이야기는 그 생존자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다른 피해자들을 어떻게 돕는지, 가해자와 어떻게 싸우는지 보여준다. 영웅은 신이 아니어도, 최신 기술로 무장된 수트가 아니어도, 뛰어난 무술 없이도 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영화 (To the bone, 마티 녹스 감독, 2017) ‘이 영화는 실제로 섭식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제작했으며 현실적인 장면들이 나오기 때문에 유의 바란다’는 안내문으로 시작하는 영화. 주인공 앨런(나중에 이름이 일라이로 바뀐다)은 섭식 장애로 인해 음식을 먹지 않아서 영양실조로 죽기 직전이다. 많은 병원과 의사를 거쳤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의사를 통해 재활 치료소에 들어간다. 가정 집을 활용해서 운영되고 있는 그 곳에서 일라이는 다른 환자들과 함께 생활을 시작한다. 일라이가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섭식 장애가 생겼는지에 대해 나오지 않지만, 계속해서 살을 빼야 한다고 집착하는 모습이 나온다. 외모에 대한 집착은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젠더 폭력의 결과다. 아름다운 얼굴, 날씬하면서도 굴곡 있는 몸매를 어린 시절부터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그런 여성이 되지 않으면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고, 사랑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는 많은 여성들이 한 번씩 가지게 되는 공포다. 일라이는 몸무게가 더 줄어들면 자신의 몸이 정말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여동생이 ‘언니 그러다 죽으면 정말 죽여버릴 거야’ 라고 말하는 게 얼마나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줄어든 몸무게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띤다. 이 영화는 사실 많은 비판을 받았다. 깡마른 몸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 인해 섭식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트리거(trigger)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여성들을 치료하는 남성 의사의 쿨하고 때론 거만한 모습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게다가 다큐에선 섭식 장애 여성들이 이 병을 가지게 되는 근본적 이유, ‘여성 이미지’의 압박과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과정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섭식 장애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 더 가시화되었으면 하는 생각 때문이다. 나아가 이 영화에 대한 동의든 비판이든, 경험이 담긴 우리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다. ▶ (Crazy ex-girlfriend)공식 이미지 TV 시리즈 (Crazy ex-girlfriend, 코미디 드라마) 현재 시즌3이 방영 중인 이 시리즈는 하버드와 예일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고등학교 때 잠시 사귄 전 남친을 쫓아 웨스트 코비나라는 작은 동네로 삶의 터전을 옮긴 레베카의 연애와 성장을 담은 뮤지컬 형식의 코미디이다. 레베카는 누가 보기에도 성공한 경력의 잘 나가는 여성이지만 엄마의 기대에 늘 미치지 못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연애에 서투르고 삶을 어떻게 지탱해야 할 지 늘 불안하다. 사람들이 보는 자신과 스스로가 보는 자신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다. 약물에 기대보기도 하고, 나는 정말 괜찮은 여자야 라고 다독이며 나아가려고 하지만 감정 컨트롤이 잘 안 된다. 사회는 유독 여성에게 많은 걸 요구한다. 일하는 여성, 그리고 흔히 말하는 ‘잘 나가는 여성’에 대해서 말이다. 여성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성공한 여성들에게 과도한 잣대를 들이민다. 그리고 이제는 주체성 있는 여성에 대한 기대치도 있다. 때로는 그것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어려운 현실이 방관되기도 한다. ‘이제 돈 좀 번다면서 알아서 살 수 있는 거 아냐?’라고. 구태의연한 사회적 관습과 제도는 그대로인데 말이다. 레베카는 그런 사회에서 좌충우돌하며 살면서 친구들과 연대를 형성하며 나름의 방식대로 성장해 가려고 하는 우리들을 대변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걸 ‘미친 짓’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그럼 어때? 당신이 날 ‘미친 전 여친’이라 불러도 나는 나대로 살아갈 거다. (※ 흥미로운 작품 소개는 다음 화에서도 계속됩니다.) 일다
“부모님은 아세요?” 살면서 동성애자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럴 리 없지 않은가.사람들이 바글대는 공간, 이를테면 학교, 대중교통, 대형마트,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 병원…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곳을 다니면서 동성애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한 권력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권력, 원한다면 영원히 무지할 수 있는 권력이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동성애자인 것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걸 알 수가 있겠냐고 반박할 수 있겠다. 사실 정체성이라는 건 부러 감출 필요도, 드러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감춘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몇 달 전, 이십대 초반부터 십 년 동안 여자친구를 만나왔지만 자신이 레즈비언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사람과 마주했다. 그 사람은 초면인 나에게 “부모님은 아세요?”라고 물은 뒤 자신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그들에게 버림받는 것이 너무 두렵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적잖게 당황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고, 별다른 커뮤니티 활동 없이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연애 사실을 숨기며 지내서 그런지 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인정 집단은 부모인 듯했다. 부모에게 버림받을까 봐 불안에 떠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부모가 “동성연애 하지 마!” 호통 치면 내 사랑을 포기할 건가? 내 경우는 ‘내 정체성을 왜 부모에게 말해야 하지?’라는 마음으로 산 지 너무 오래되었다. 나는 부모에게서 물리적, 정신적으로 독립한 지 오래되었고, 내 사생활을 어디까지 공유할지는 전적으로 내 의지와 선택이라고 생각해왔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솔직히 나는 부모가 내 정체성을 ‘이해’하거나 ‘수용’할 거란 기대를 하지 않는다. ‘괜히 말해서’ ‘심려’를 끼치느니 말하지 않는 편이 ‘효도’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엔 나 같은 선택을 하는 친구들이 꽤 있는데, 가끔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중 극히 일부는 부모에게 동성애인을 소개시키고 함께 경조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내 눈에 그건 너무나 ‘비현실적인’ 일이다. 내 부모에겐 내 정체성 자체가 비현실적일지 모르겠지만. 레즈비언 딸의 사생활을 알게 된 엄마의 속내 ▶ 소설 (김혜진, 민음사, 2017) 표지 이미지 가끔 “동성애를 혐오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좀 불편하다”거나 “내 자식만 (동성애자가) 아니면 된다”고 말하는 호모 포비아들을 본다. 그들은 자신의 언행이 잘못인 줄도 모르고 남의 인생을 난도질한다. 그런데 내 부모가 그런 사람이라면? 내 가족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지 못한다. 아니란 걸 확인할 마음도 없다. 두렵기 때문이다. 자식 입장에선 부모의 입장, 부모의 속내는 늘 ‘짐작’의 대상이 된다. 지난 9월에 출간된 소설 (김혜진, 민음사, 2017)가 눈길을 끄는 건 이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딸과 딸의 동성애인과 한 집에서 살아가는 중년 여성이 화자로 등장한다. 레즈비언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 국내 소설은 많지 않을뿐더러 주인공이 레즈비언이 아니라 레즈비언의 엄마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작품에는 내내 짐작하던 ‘부모의 내면’이 펼쳐진다. 엄마가 ‘딸애의 사생활’을 알고 싶지 않은 것처럼, 딸 입장에서도 솔직해서 더 잔인한 ‘엄마의 속내’를 알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 소설에선 레즈비언 딸은 기어코 자신의 사생활을 엄마 눈앞에 드밀고, 레즈비언 딸의 엄마는 꽉 억눌린 자기 속내를 드러낸다. “저 애들과 지내는 동안 내가 또 무엇을 보게 될지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떤 순간과 장면 들이 아무런 예고 없이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과 맞닥뜨려야 하는 것. 내가 상상하고 짐작한 바로 그것들을 똑바로 봐야 하는 것. 어쩌면 내가 각오한 것보다 훨씬 끔찍하고 두려운 모습일지도 모르는 어떤 것. 마땅히 감춰져야 하는 것들이 드러나고 마침내 내가 목격하게 되는 순간이 오겠지. 하필이면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누군가는 그럴 만한 원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그런 시시껄렁한 속담을 소곤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럴 만한 이유도, 원인도, 잘못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속수무책 보고 싶지 않은 것들에 노출되면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엄마는 두렵다. 내가 낳은 아이가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 삶이 어떤 건지 내가 알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꼴을 보는 것도 두렵고, 그걸 본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도 두렵다.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두렵다. 개인의 두려움은 사회적 혐오와 맞물린다. 내가 두려워하던 엄마의 두려움이 펼쳐진다. 그런데 엄마의 두려움은 이게 끝이 아니다.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삶에 대한 두려움 이 소설은 주인공의 딸에 대한 이야기와 주인공이 요양원에서 돌보는 ‘젠’이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양축을 이룬다. 젠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유럽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한 후엔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데 평생을 허비한 사람”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 하나 낳지 못한” 탓에 요양원에서 국가 보조금으로 연명하며 “기저귀도 잘라 쓰는” 대접을 받는다. 주인공은 젠이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정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젠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불사한다. 그것은 그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생의 끄트머리에서 가장 외곽까지 내몰리는 젠의 모습에, 딸의 미래가 겹쳐지기 때문이다. 부당해고를 당한 동료를 위해 기꺼이 거리에 나서는 딸, 남들보다 많이 배운 딸, 하지만 자신처럼 육체노동으로 노년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딸…. 이 작품을 두고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칭하는 리뷰들을 보았는데, 이 말을 바라보는 마음은 조금 불만스럽고 조심스럽다.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여성은 아니다.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과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은 다르고, 자식을 낳은 여성과 낳지 않은 여성은 다르다. 어떤 조건을 갖추었는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에 따라 각기 다른 여성일 수밖에 없다. 다르다고 해서 손을 잡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배타심을 애써 누르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대해야 한다. 작품 안에서 화자는 딸과 딸의 애인, 그의 친구들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고 “놀랍게도 그들 중엔 결혼한 사람들도 있다. 직장도 있고 가족도 있는 사람들. 그들은 뭐가 아쉬워서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이런 일에 관심을 갖는 걸까.”라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독자 눈엔 훤히 들여다보는 속이지만, 이 같은 말들이 쉽사리 몸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이 뜨거운 자갈 같은 말들이 기어코 터져 나올 때, 돌에 맞는 사람에게 생채기가 생기는 것은 물론 그 말을 뱉은 이의 내면도 만신창이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신 눈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10년 전 “페미니스트를 본 적이 없다”는 사람을 마주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저 페미니스트인데요”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페미니스트가 천 명쯤 있냐”며 무식하고 용감하게 물었고, 나는 “세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는 온통 페미니스트니까 천 명보단 훨씬 많지 않겠냐”라며 비아냥거리며 답했다. 그때에 비해 페미니스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아졌는지 더욱 척박해졌는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페미니스트를 본 적 없다”는 소리 내어 말하는 사람들은 현저히 줄었을 줄 안다.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사람을 대면한 적 없을지라도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혹은 그의 친구가 ‘페미니스트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살면서 동성애자를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람에게 “제가 동성애잔데요”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내 정체성을 이야기할 만큼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커밍아웃 하는 순간 그가 나를 때릴지, 외면할지, 앞에선 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여놓고 뒤에선 역겹다고 욕할지, 어디 가서 내 정체성을 함부로 떠벌리지 않을지 나는 알 수 없다. 거래처 사람이, 직장 동료가, 내 가족이 내 정체성을 알았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나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음은 두려움을 키우고 침묵으로 이어진다. 이 두려움은 당사자들만의 문제인가.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이겨내야 하는 문제인가. 성정체성이 ‘찬성’과 ‘반대’의 문제가 아닌 것처럼, 가까운 이들로부터 ‘이해’받을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시시각각 변하는 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데, 타인이 “다 이해한다”며 격한 포옹을 하면 어색할 것 같기도 하다.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그저 좀 더 ‘조심스러워’지자는 것이다. 지금 당신 눈앞에 있는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모르지 않은가. 내가 아직도 이성애자로 보이니?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웃음을 터트릴 텐가, 눈살을 찌푸릴 텐가. 일다
※ 필자 소개: 지아(知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화칼럼을 비롯해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으로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 브루노 뒤몽 감독,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2013 지난여름 불특정 여성들을 대상으로 캡사이신 물총을 쏘고 달아난 남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캡사이신을 넣은 소주를 물총으로 쏘고 날달걀을 던졌다. 얼마 전에는 스타킹을 신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먹물 테러’도 있었다. 스타킹을 신은 여성들만을 상대로, 한 남자가 검은색 잉크를 뿌리고 도망갔다. 놀랍게도 그들이 밝힌 범행 동기는 여성들이 놀라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는 그저 ‘재미’였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여혐 범죄 뉴스를 자주 접하고 있다. 사실 이런 범죄가 최근 들어 갑자기 일어난 것도 아니다. 이탈리아의 여성운동가이자 철학자인 실비아 페데리치는 책 에서 오래전 유럽에서 일어난 여성혐오 범죄의 잔인한 실상을 드러냈다. 농노제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토지를 잃고 공장에서 일하게 된 남성노동자들이 여성을 집단강간하는 일이 빈번했다. 경제적인 조건 때문에 결혼을 미루게 된 남자들이 부자 자본가에게 느끼는 분노와 적의가 고스란히 여성들에게 향한 결과였다. 당시 권력을 지닌 사회 기득권 세력은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날 봉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여성들에 대한 그들의 집단강간을 묵인했다. 피해자가 하층민 여성의 경우에는 강간이 사실상 범죄가 아닌 것으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여성혐오 범죄의 이면에도 경제불황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는 것에 대한 남자들의 불안감이 잠재해 있다. 여기에 피해자인 여성을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부장제 사회가 양육한 여성혐오 범죄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오히려 여성에게 투사하는 방법을 사용해오고 있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을 ‘꽃뱀’으로 만들어 오히려 왕따 시키고 궁지로 모는 것이 바로 대표적인 실례일 터. ▶ 브루노 뒤몽 감독, 줄리엣 비노쉬 주연 브루노 뒤몽 감독,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2013년)에서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희생양이 된 한 여성을 만난다. 현대 조각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으로 더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천재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로댕의 그늘에 가려진 채 예술가로서 만개하지 못한 채 정신병원에서 고통스럽게 긴 여생을 보냈다. 영화의 배경은 1915년 프랑스 아비뇽 근처에 있는 몽드베르그 정신병원. 까미유의 뒷모습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은, 은둔을 강요당한 비운의 예술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적이다. 목욕을 하기 위해 벌거벗고 욕조에 들어가는 까미유에게 간호사들이 평범한 일상처럼 늘어놓는 대사들은 또 어떤가? “더러워서 씻어야 해요.”“항상 더럽잖아요, 그럼 씻어야지요.” “얼마나 더러운지 손 좀 보세요!” 기이하게도 니의 눈에는 관처럼 보였던 일인용 작은 욕조. 그 둥근 물속에 누운 까미유의 얼굴은 울음을 마음속으로 앙다문 것처럼 먹먹하다. 친어머니에게 심한 냉대를 받으며 성장한 까미유에게 유일한 위로는 숲에 가서 흙을 가지고 노는 것이었다. 그런데 숲에서 놀다 집에 돌아가면 어린 그녀가 어머니에게 어김없이 들었던 말이 바로 간호사들의 말과 겹쳐졌던 것이다. “넌 여자아이가 되어서 왜 손이 늘 흙투성이냐?”“네가 얼마나 지저분한 지 좀 봐라!” 작은 두 손으로 오물조물 빚어낸 흙 조각이 아무런 예술교육도 받지 않은 어린 소녀가 만들어냈다고는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하고 완성도 있는 것은 눈여겨보지 않은 채, 까미유의 어머니는 딸을 미워했다. 까미유 바로 위에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죽었다는 이유로. 거기다 그녀가 아들이 아닌 딸이라는 이유로. 아들의 죽음을 무의식적으로 딸과 연관 지어 생각했던 어머니는 까미유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을 때까지, 그녀가 안정이 되어 병원을 나가도 좋다는 병원장의 허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30년 넘게 병원에 방치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나 역시 아들이 아니란 이유로 가족의 적지 않은 실망을 한 몸에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경험이 있다. 언니 위로 여러 명의 아들과 딸을 유산한 엄마는 내가 뱃속에 있을 때 딸답지 않은 힘찬 태동이 느껴졌기에 당연히 아들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태몽 역시 전형적인 아들 낳는 꿈이었다는 이야기도 늘 덧붙이셨다. 까미유처럼 미움을 받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단지 성별이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날 때 환대받지 못한 출생의 이력을 지닌 여성들은 커서도 자신의 존재에 의문과 질문을 던지게 되기 쉽다. 어쩌면 그것은 세상에 첫 발을 내딛을 때부터 무의식적인 여성혐오를 스스로 덧입고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아닐는지. ▶ 브루노 뒤몽 감독, 줄리엣 비노쉬, 장-뤼크 뱅상, 로베르 르로이 주연의 영화 2013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대를 이을 아들에 의해 결정이 된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어머니의 딸에 대한 기대가 아들과는 달리 양의성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즉 어머니는 딸에게 ‘아들로서 성공하라’와 ‘ 딸(여자)로서 성공하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딸에게 보낸다는 것이다. 두 메시지 모두 여성의 지위가 대를 이을 아들에 의해 결정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엄마처럼 되지 말아 달라’는 자기희생의 메시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든 것은 바로 너’라는, 딸을 향한 질책의 메시지도 함의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메시지를 받은 딸들은 과연 어떻게 자라날까? 하나도 버거운데, 어머니가 무의식적으로 압박하며 송달하는 메시지가 두 개나 되니,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여성은 자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을 터. 남성중심적이며 여성혐오 문화가 팽배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자기혐오를 할 수밖에 없는 여성혐오의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런데 남성의 여성혐오와 달리 여성들의 여성혐오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아닌가?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그래서 여성혐오와의 갈등을 의미한다고, 우에노 지즈코가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목욕을 마치고 일어서는 까미유에게 간호사가 입혀준 하얀 옷이 마치 가부장제 사회가 수혜해준 또 다른 여성혐오의 옷처럼 보였던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다. 여성 조각가가 전무했던 시절,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조각가는 여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까미유 끌로델은 여성이기에 변변한 예술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놀랍게도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주자, 이번에 세상은 그녀에게 또 다른 돌을 던진다. 그녀의 작품을 작품 자체로 바라보고 평가하지 않고, 로댕의 연인 까미유의 작품으로만 바라보고 로댕이 조각 작업을 할 때 분명히 도와주었을 거라는 헛소문을 퍼뜨린 것이다. 실제로는 오히려 까미유 끌로델이 로뎅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고, 로댕이 그녀의 작품을 모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요즘에도 이런 일은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성공한 여성을 그 능력 자체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 말이다. 성공한 여성 이면에 남성의 도움이 있거나, 자신의 여성성을 무기로 성공을 했을 거라는 왜곡된 시선 말이다. ▶ 브루노 뒤몽 감독, 줄리엣 비노쉬, 장-뤼크 뱅상, 로베르 르로이 주연의 영화 2013 영화에서 까미유가 자신이 먹는 음식에 누군가 독약을 탔을 거라는 피해의식에 내내 시달리는 모습이 가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던 것은,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삶을 착취당한 여성이 자기보호를 할 수밖에 없는 모습처럼 다가왔기 때문일 터. 그녀가 정신병원 원장과 상담하며 울분에 차서 토해내는 말들도 가부장제 사회를 향한 비명처럼 들린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여기에 가두어 둔 거죠? 혼자 살아서? 고양이랑 살아서?”“저들이 보기에 난 자기들의 죄가 낳은 눈엣가시 같은 귀신이겠죠. 평생 가둬놓아야 안심이 되는!” 작업실에서 강제로 끌려 나와 정신병원에 수감된 뒤 편지도, 조각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녀에게 남동생 폴이 찾아왔을 때 하소연하는 까미유의 말들 역시 그러하다. “로댕은 그저 내 것을 훔칠 생각만 했었어. 내가 자신보다 잘 될까 봐 나를 조종하려고 했지.” 로댕이 자신에게 한 행동이 한 여성 조각가의 천재성을 망쳐버린 짓이었다고, 또한 여성에 대한 착취에 다름 아니라고 까미유가 동생 폴에게 외치고 방을 나가는 장면은, 그러나 아름다웠다. 가부장제 사회가 자신에게 퍼부었던 여성혐오의 시선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소리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눈물이 났다.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가 아닌가! 그녀의 외침에 세상은 눈을 감고 그녀를 여성혐오의 범주에 묶어둔 채 살아있는 미라로 만들려고 했지만, 까미유 끌로델의 외침은 세대를 거슬러, 지금 우리들에게 결국 깊은 울림을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 영화의 마지막, 병원 마당의 돌의자에 앉은 까미유 끌로델의 얼굴에는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진 채 드리워 있다. 쏟아지는 햇살을 음미하며 설핏 고개를 숙여 어눌하게 미소를 짓는데, 마치 모든 상처를 내려놓고 마치 자연 속 하나의 나무나 돌이 된 것만 같은, 그런 미소였다. 아프지만 자신의 상처를 직면한 사람의 얼굴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 브루노 뒤몽 감독, 줄리엣 비노쉬, 장-뤼크 뱅상, 로베르 르로이 주연의 영화 2013 [까미유 끌로델을 더 잘 읽기 위한 영화미학] 영화 은 프랑스의 천재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이 작업실에서 강제로 끌려 나와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감되어 보냈던 시절을, 3일이라는 짧은 시간 속에 담아내고 있다. 자신을 보러 병원으로 오고 있는 남동생 폴을 기다리며 정신병원을 나갈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가, 금세 감옥 같은 병원에 갇혀 있는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는 까미유의 요동치는 감정 기복은 영화를 이끄는 동인. 병원 주위의 황량하고 고요한 자연 풍경은 까미유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다. 또 병원 환자들의 절규 역시, 그녀의 마음속 절망과 고통을 대변해주고 있다. 특히 손은 영화 내내 등장하는 중요한 이미지다. 간호사와 함께 밖에서 산책하던 여성 환자가 ‘방에 들어가자’는 간호사의 말에 ‘싫다’고 절규를 하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까미유의 눈이 머문 것은 바로 그녀의 자유롭지 못한 손이다. 양 손에 수갑을 찬 채 절규하는 한 여성 환자의 모습은 병원에서 조각 작업을 할 수 없었던 까미유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그대로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까미유가 산책하면서 손으로 흙을 찰지게 만지는 장면 또한, 작품을 만들고 싶은 갈망을 허기처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을 터. 여러 명의 여성 환자들과 여성 간호사들이 병원을 나와 산으로 산책을 가는 장면은 하나의 거대한 상징처럼 다가온다. 상복처럼 검은 옷을 입은 그녀들이 오르는 하얀 암석산의 눈부신 빛이 마치 어둠에서 빛을 찾아가는 거대한 여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상처받고 이지러진 여성들의 연대와도 같았던 이 장면에서도 손은 중요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따라나선 까미유가 그들 중 한 여성 환자의 손을 잡게 된 것이다. ‘손잡고 갈래요?’ 라는 산책 제의에. 여자라는 이유로 예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을 거부당한 까미유 끌로델은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 로댕의 제안으로 그의 조수로서 일을 하게 된다. 까미유 끌로델이 불과 열아홉 살 때의 일이다. 무려 나이 차가 20년이 넘는 로댕과 함께 작업을 하며 깊은 정신적인 교감으로 연인이 된 까미유는 로댕이 옛 연인 로즈에게 돌아가자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 로댕의 방해로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없었다. 작품 “사쿤탈라”로 ‘프랑스 예술가 살롱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조각가로서 인정을 받았지만 여성이라는 편견과 제약, 로댕의 훼방으로 곤궁한 생활을 하며 작업실에 은둔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가족들에 의해 파리 근교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1차 세계대전 후 아비뇽 근처 정신병원에 갇혀 30여 년 동안 고독한 나날을 보내다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정신병원에 들어가 죽기까지의 여정을 3일이라는 시간에 축약해 담아낸 영화는 그녀가 이 어둠의 시절에 겪었던 거센 파도와도 같았을, 감정의 파고 역시 압축된 밀도로 전해주고 있다. 일다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한다는 뉴스가 나오던 지난 12월 7일 저녁 7시,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열린 장애여성극단 의 2017년 정기 공연을 관람했다. “불만폭주 라디오”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연극은 다양한 장애여성들의 사연을 접수하고 들려주는 라디오 컨셉으로 진행되었다. 세 가지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1막은 곧 서른이 되는 발달장애인 영진이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2막은 비장애 남성과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아 가족을 이루고, 단체에서 아르바이트 일도 하고 있어서 ‘성공한 장애여성’이라고 불리는 현주의 하루와 그녀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3막은 극단 활동을 10년 동안 해왔지만 여전히 ‘당신은 예술가입니까?’라는 질문을 받는 배우 나예슬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준다. 추운 날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열기에 보답하듯 멋진 연극을 보여준 극단에 대해 조금 더 궁금해져, 15일(금) 의 연습실이 있는 장애여성공감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의 창단 멤버이자 기획자인 이진희, 의 팀장 겸 배우인 서지원, 올해 공연에서 주연 배우로 활약한 조화영, 이 세 사람을 한 번에 만나 인터뷰하는 행운을 누렸다. ▶ 이진희 기획, 조화영 배우, 서지원 연출가 겸 배우 ⓒ일다(박주연) - 사실 저는 이번에 처음 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찾아보니까 2003년에 창단했더라고요. 어떻게 설립하게 되었는지 창단 관련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서지원/연출 및 배우) 저는 가 창단되고 난 후에 들어왔는데요. 장애여성공감이 1998년에 만들어지고 주로 인권 활동을 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장애여성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장애여성들의 고민을 더 잘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나오게 되었어요. 우리의 이야기를 직접 해 보자, 우리의 몸도 보여주고! 그러면서 연극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거죠. 라는 이름도 우리의 몸 그대로 휘어진 허리, 손 등을 보여주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지게 되었어요. - 10년 훌쩍 넘게 극단을 운영해오고 있는데,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장애여성 극단이라는 특수성도 있을 텐데요.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단원은 어떻게 선발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서지원) 단원을 매년 선발하고 있진 않아요. 요 몇 년 간 신규 단원을 선발하지 않았는데, 기존 단원들이 좀 더 깊이 있게 연극을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하고자 했어요. 단원끼리 차이도 있고 의견도 다르고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잘 조율해서 운영하는 게 중요하고 또 어려워요. 다른 장애인들과 생활하거나 활동해 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고, 학창 시절 특수학교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겪었던 경험이 좋지 않았던 사람도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서로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이진희/기획) 우리 안에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가 있어요. 지체장애인은 발달장애인이 대사 외우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발달장애인은 지체장애인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그래서 최근엔 내부 역량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배우가 연출에 참여하기도 하고, 무대 스텝이 되어 보기도 하면서 활동 영역도 넓히고 더 많은 걸 배우는 거죠. 제가 비장애 여성이어서, 많은 분들이 제가 에서 다른 단원들을 많이 도와주는 역할일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배우 워크샵의 경우 발달장애 여성이 지체장애 여성의 활동보조인이 되기도 하면서 서로 돌봄도 하거든요. 흔히 비장애/장애로만 구분해서 생각하지만 장애여성 간에도 다양한 차이가 있고 서로 그걸 배우면서 성장하고 있어요. - 지금 단원들은 지체장애 여성과 발달장애 여성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건가요? (서지원) 네, 예전에 청각장애인 분들과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어려웠어요. 저는 수화를 못하고, 청각장애인 분들은 제 입술을 읽어야 하는데, 제가 언어장애가 있으니 그 분들이 제 말을 알아듣기 힘들고… 그래서 소통이 어려웠어요. 다른 장애와 만나려면 더 많은 게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잘 생각 못해요. 장애는 다 똑같다고 생각하니까요. ▶ 연극 “불만폭주 라디오” 중 3막 서지원 배우의 모습 ⓒ춤추는 허리 - 이번 공연을 보면서 ‘연습을 많이 하셨구나’ 생각했습니다. 극 중에 나온 ‘성공한 여성의 하루’에서 양육과 일을 양립하는 주인공이 회의 한번 참석하는 것도 힘들어 하잖아요. 게다가 활동보조인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으니까 상황이 더 어려울 것 같은데, 다 같이 모여서 자주 연습할 수 있었나요? (이진희) 사실 연습에 대해서 말씀 드리자면, 비밀을 알려드려야 하는데… (웃음) 올해가 굉장히 특이한 경우였어요. 지난 정기 공연 “거북이 라디오”의 경우에는 같은 내용으로 3년을 공연했는데도 대사를 다 못 외웠거든요. (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연습을 2주였나? 2~3주 밖에 못했어요. (서지원) 정기적으로 연극 연습은 하고 있지만, 사정으로 대본이 늦게 나와서 공연 연습을 오래할 수 없었던 상황도 있어요. 이동이 어려우니까 연습을 자주하기는 어렵죠. 장애인 콜택시 부르고 해야 하니 연습 시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조화영/배우) 지원님이 섭섭할까봐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 (웃음) 지원님이 잘 해야 한다고 압박 주셔서 부담감에 대사를 다 외울 수밖에 없었어요. 거기다 공연 전에 발달장애인센터에 갔는데, 거기 활동가가 ‘대사 다 외웠냐?’ 물어보시더라고요.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구나 싶어서 대사를 다 외워야겠다 했어요. (※조화영 배우는 발달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공연에서 주연을 맡았다.) - 2막 ‘성공한 여자의 하루’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일을 가치 있는 것으로 봐주지 않는 남편과 다투고, 회의에 빠져도 되지 않냐며 나가지 말라고 얘기하는 활동보조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혼자 외출한 후, 마침내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연극에서 각각의 경험이 물씬 드러난다고 생각되었는데, 공연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서지원) 초창기부터 같이 해온 극작가 선생님이 있었어요. 같이 이야기나누고 워크샵도 하면서 단원들이 자신의 경험들을 말하면 극작가 선생님이 대본을 쓰시는 거죠. “거북이 라디오”라는 작품으로 3년 공연하고 나니, 내용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요즘 이슈에 맞는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도 나왔고. 그래서 이야기를 수정하고, 대본이 늦어졌어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단원들의 경험이 토대가 되는 것 같아요. 2막의 경우는 단원 중에 육아하는 장애여성이 몇 년 동안 어필한 게 있었어요.(웃음) ‘우리 그렇게 착하지 않다, 우리 그렇게 순정적이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그리고 흔히 여성에게 모성을 강요하면서 아이를 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또 한편으로 장애여성에게는 ‘네가 어떻게 애를 봐?’ 하는 사회의 모순이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이진희) 우리가 했던 모든 작품이 100% 창작이에요. 올해는 지난 “거북이 라디오” 내용을 좀 바꾸고 싶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1막에서 다뤘던 독립이라는 주제를 ‘발달장애 여성의 독립’ 내용으로 바꿨죠. 2막은 마지막 부분을 바꿨어요. 기존 내용에선 주인공 현주가 쓸쓸하게 나레이션을 하면서 끝나는 거였는데, 올해 워크샵에서 그렇게 순종적으로 끝나면 안 된다, 깽판 쳐야 한다(웃음) 그런 의견이 계속 나와서 그걸 반영한 거예요. 1막은 화영님이 통장 만들면서 있었던 일과 그걸로 1년 동안 마음앓이 한 걸 말씀해 주셔서 그걸 쓰기로 한 거죠. 그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극작가님이 화영님과 직접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렇게 협업을 통해 이야기가 완성되는 거죠. 제가 생각했을 때 공연의 특징은 무대 안팎의 구분이 있다기보다 삶의 경험이 무대로 가고, 무대에서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시 삶에서 힘이 되어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중요한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연습이 힘들고 모이는 것도 힘들고 한데, 저희한테는 무대가 특별하고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특별하게만 보이고 싶지는 않고… 이런 복합적인 고민들이 연극 안에 들어가 있어요. ▶ 연극 “불만폭주 라디오” 중 1막 조화영 배우의 모습 ⓒ춤추는 허리 - 1막에 서른이 되는 영진의 독립 이야기에서, 발달장애 여성의 고민과 도전이 나오는데요.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통념과 또 ‘장애인’에게 부여하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통념이 영진에게는 다 적용되는 걸로 보여집니다. 사실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는 또 쉽게 무시당하거나 때론 멸시 받는 존재가 되기도 해서 전 그게 굉장히 이중적인 사회적 낙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연극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영진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종종 그건 영진을 무시하는 태도와 함께 보여집니다. 어떻게 하면 장애여성들이 독립할 수 있고, 또 주위에서 그 독립을 제대로 지지할 수 있을까요? (조화영) 발달장애 여성들의 독립에도, 다른 독립처럼 일단 돈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하고요. 어제도 사실 발달장애인 취업 관련해서 발언하는 자리가 있어서 발언했는데,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에서 너무 도와주고 보호해주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사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거든요. 모든 걸 해 주려고 하지 말고 독립을 할 수 있도록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을 도와주거나 응원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 영진이 통장을 만들려고 은행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은행원에게 ‘출금이 제한되는 통장’을 만들어주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이처럼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장애인에게 보호장치를 핑계로 무언가 제한을 두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영진이 엄마와 그 외 보호자로부터 정신적인 독립뿐 아니라 경제적인 독립을 하기 위해서, 사회가 ‘제한하는 방식’ 대신 마련해줘야 할 것 중에 가장 시급한 게 뭘까요. (조화영) 일자리인 것 같아요. 지금 나라에서 하는 취업알선이라는 것이 굉장히 제한적이에요.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차별이 일어나기도 해요. 패스트푸드점이나 백화점 등의 아르바이트의 경우, 신체 체형과 몸무게 등을 물어보거든요. 심지어 살을 빼야 취업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요. 그런 신체조건이 안 맞을 경우에는 대체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일이 없는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어요. 장애인들이 더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공연이 여러 시사점을 던져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3막에서 나예슬 배우가 ‘나는 단지 비장애인을 그럴싸하게 따라 하는 장애인으로 보여지는 것뿐이고 예술가가 아닙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 저한테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한 개인이 단 하나의 무언가, 정체성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 혹은 장애여성의 삶이 장애라는 정체성만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닌데 말이죠. 퍼포먼스도 그렇고 극의 내용도 그렇고 전, 우리의 삶이 다양한 것과 교차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는데요. 이 공연으로 꼭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인가요? (서지원) 네, 그 부분이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부분이에요. 외부에서 보기엔 우리가 다 같은 장애여성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내부적으로도 차이가 있고 생각과 의견도 다르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최근에 장애인 극단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요, 그걸 보면서 우리의 방향을 더 고민하게 되었어요. 힘들더라도 우리끼리 해야 하나, 비장애인 전문가들과 같이 뭘 하면서 전문성을 더 키워야 하나 싶기도 하고. 전문가(연극인)가 아니라 ‘연극을 하는 장애여성들’로 보이는 고민을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동시에 가 왜 연극을 하고, 왜 저렇게 힘들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이진희) 이번 공연하면서 안쓰럽기도 하고 좀 감동받았던 게, 사실 지원님이 공연하면서 목 상태가 안 좋았어요. 연습할 때도 그렇고, 정확한 대사 전달에 신경을 많이 쓰시거든요. 본인이 언어장애가 있으니까 더 그런 점에 엄격한 것 같아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제대로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거죠. 마지막 날 기침을 콜록콜록 하는데도 대사를 정확하게 하려는 모습이 보여서, 그 장면이 우리의 지난 시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 뭉클했어요. 많은 분들이 우리한테 ‘힘들겠다’ 이런 말씀 하시거든요. 힘든데요, 그 힘듦은 상상 이상으로 디테일하고 다이나믹하고 때론 급진적이기도 해요. 그 힘든 순간들을 그 때 지원님이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힘들고, 나 장애인이야’ 이런 이야기라기보다 사람들이 우리의 예술의 방향을 모르더라도 우린 끊임없이 가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연극 “불만폭주 라디오” 중 3막 배우들의 퍼포먼스 ⓒ춤추는 허리 - 가 정기공연만 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내년, 2018년의 계획이 있다면요? (서지원)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과 함께 장애인지교육을 연극 통해서 하고 있거든요. 그걸 계속해서 할 것 같아요. 연극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으니까 그걸 이어가야겠고, 내용을 바꿀지에 대해서도 논의할 것 같아요. 사실 개인적으로도 연극이 좋아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제 어떻게 깊이를 더 할 수 있을까 점점 고민이 많아지고 있어요. 다른 단원들이 를 하는 이유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까 같이 공부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 앞으로도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직 못해봤지만 꼭 다뤄보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서지원) 이 이야기를 아직 내부적으로 해 보진 않았는데요, 장애인 중에서도 성소수자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런 이야기도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모자보건법 관련된 이야기도 해보고 싶어요. 지금 ‘낙태죄 폐지’ 이슈가 나오는데, 비장애 여성에게는 낙태하지 말라고 하면서 장애여성에게는 낙태를 권하기도 하는 이런 차별적 행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에, 조화영 배우는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하는 말이 있다며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어떤 소수자든 그에 대한 차별에 대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었다. 화영씨의 이 말과 함께, 유쾌하고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여성으로서, 장애여성으로서, 배우로서, 연출자로서, 또 어떤 무언가로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세상과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일다
가을을 알리는 단풍이 자연스럽게 눈에 담긴 지난 10월 21일,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뒤섞여 있는 인사동을 지나, 외부인의 출입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는 ‘살기 좋은 나라, 조이랜드’로 입국했다. 입국 심사장에서는 조이랜드 입국을 환영하는 안내원들이 나의 신원을 확인한 후, 어떤 기호가 그려진 노란색의 종이띠를 손목에 채워주고 안전통행증을 건넸다. 이름과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허가한다는 말이 적힌 안전통행증을 펼쳐보며 열려 있는 문 안으로 들어가던 그 때부터 나의 조이랜드 여행은 시작되었다. ▶ 조이랜드로의 입국을 허가하는 안전통행증 ⓒ박주연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바바라 크루거 안국역 근처에 위치한 아라리오 뮤지엄에서는 매달 “AM I ART&TALK”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 9월에 페미니스트 작가로 유명한 바바라 크루거의 예술세계에 대해 알려주는 “[AM l ART&TALK # 21] 바바라 크루거: I announce, therefore I am”가 열렸다. 10월에는 바바라 크루거의 예술세계에서 영감 받아 만들어진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AM l ART&TALK # 22] 바바라 크루거: 조이랜드”가 열렸다. 그 프로그램이 바로 조이랜드라는 세상으로의 여행을 제공한 곳이다. 이 조이랜드 프로그램을 탄생하게 한 작가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는 개념예술(conceptual art), 포스트모던(postmodern), 페미니스트 예술(Feminist Art)에 큰 영향력을 끼친 작가 중 한 명으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월 1일부터 뉴욕시에서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메트로카드를 5만 장 한정 발매하기도 했다. 이렇듯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성공을 함께 이뤄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가다. 바바라 크루거는 1945년 뉴저지에서 태어나 자랐다. 시라큐스 대학(Syracuse University)에 입학해 디자인 및 예술 관련 수업을 듣다 1년 만에 그만두고,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파슨스 스쿨(Parsons School of Design)에서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리고 하우스 앤 가든(House and Garden), 어퍼처(Aperture), 마드무아젤(Mademoiselle) 등의 잡지사에서 디자이너 및 편집자로 일했고, 22살의 나이에 리드 디자이너가 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1973년 세계적인 비엔날레로 손꼽히는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ial)에 작품이 전시되고 주목을 받았다. 1976년 뉴욕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거처를 옮긴 후에는 시와 글쓰기 공부에 집중했고, 이후 사진과 글을 조합하여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는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특히 소비주의와 여성 이슈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 내기는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 중 주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도 페미니즘 운동에서 인용되곤 하는 “너의 편안함은 나의 침묵이다”(Your comport is my silence, 1981), “너의 시선이 나의 빰을 때린다”(Your gaze hits the side of my face,1981), “우리는 또 다른 영웅은 필요 없다”(We don't need another hero, 1985), “너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battleground, 1989), “태어나지 않은 이에게 생명을, 태어난 이에게 죽음을”(Pro-life for the unborn, Pro-death for the born, 2000-2004)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바바라 크루거는 작품을 통해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으며 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조이랜드 입국 바바라 크루거의 예술의 영향을 받아 지금 우리 여성들의 이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고자 아라리오 뮤지엄과 세컨드필름매거진이 조이랜드를 만들어 냈다. 세컨드필름매거진은 온라인과 미디어를 중심으로 재생산되는 여성에 대한 일상적 차별에 주목하며, 여성캐릭터와 관련한 상상력의 빈곤을 지적하고, 더 나은 캐릭터를 위한 대안을 이야기하는 잡지다. 세컨드필름매거진 측은 게임과 영화, 연극이 복합된 이번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라리오 뮤지엄으로부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대해 제안을 받았고 내부적으로 논의를 시작했어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연사를 모시고 강연을 여는 것이었지만, 그냥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고루한 형식은 피하고 싶었어요. 조금 더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고, 그 때 떠올랐던 것이 ‘방탈출 게임’이었습니다. 요즘 젊은 층들이 흔히 소구하는 방탈출 게임의 포맷을 가져오고, 미스터리 추리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입혀보자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조이랜드는 많은 사람들이 살기 원하는 꿈의 나라 같은 곳이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는 사회,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사회다. 조이랜드에 입국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이랜드 시장으로부터 환영사를 듣는 것이었다. 시장은 조이랜드를 탄생시킨 장군에 대한 아름다운 스토리를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장군이 전쟁 속에서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조차 사람들을 구하려 한 행적들을 늘어놓으며, 어릴 적 자신이 그 장면을 보고 얼마나 감명 받았는지 말하면서 조이랜드는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시장의 환영사가 끝나자마자, 조이랜드 입국을 안내했던 안내원 중 한 명이 등장한다. 안내원은 사실 자신은 비밀요원이며, 조이랜드의 환상은 다 거짓이라고 조심스레 폭로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활동이 위험에 처해있으니 자신을 도와 조이랜드의 어두운 비밀을 밝혀내자고 말한다. ▶ 미션을 공유하는 비밀요원 ⓒ세컨드필름매거진 새로운 세상으로의 신비한 여행이 어두운 지하에서 옹기종기 모여 비밀요원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탐험으로 변한 것이 그 순간부터였다. 미션 수행 첫 번째 미션은 비밀요원의 친구이자 또 다른 비밀요원이라고 하는 ‘미스 봉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이다. 천만 관객 돌파로 유명한 영화 (2014)에서 장윤주가 연기하는 ‘미스 봉’은 황정민이 연기하는 주인공 ‘서도철’과 같은 팀으로, 영화 속에서 주요 사건을 해결하는 경찰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내내 ‘미스 봉’이라고 불린다. 다른 남성경찰들이 ‘윤 형사’, ‘왕 형사’로 불리는 와중에 ‘봉 형사’가 아닌 ‘미스 봉’으로 명명되는 것이다. 게다가 위장 전문이라는 특징이 무색하게,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약간의 역할을 할 뿐 그 외에는 팀에 민폐가 되거나 웃음을 제공한다. 이 첫 번째 미션은 여성경찰이라는 이유로 ‘미스 봉’으로 불리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 우리에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미스 봉’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우리는 일단 방에 잠입한 후, 다이어리 속에서 이름을 찾아낼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가지고 입국 시에 안전통행증과 함께 받았던 조이랜드 지도를 펼쳐놓고 암호를 풀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이인 팀원들과 갑자기 머리를 맞대고 암호를 풀어야 했지만 어색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집중했다. 다른 팀원의 활약으로 지도에서 찾아낸 글자의 조합으로 우리 팀은 ‘미스 봉’의 이름이 ‘봉윤주’라는 것을 알아냈다. 비밀요원이 건네 준 빈 메모지에 그 이름을 써서 다시 조용히 건넸다. 문제를 풀었다는 기쁨도 잠시, 비밀요원은 다시 우리에게 다른 암호를 찾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 암호를 풀어야 하는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참가자들 ⓒ세컨드필름매거진 두 번째 미션은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지만 바가지 긁는 아내가 되어 버린 ‘미옥’이 남긴 숫자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셜록을 꿈꾸는 만화방 주인인 ‘대만’과 레전드 형사 ‘태수’의 협력과 사건 해결을 다룬 (2015)에서, 셜록과 같은 탐정이 되는 꿈을 안고 사는 ‘대만’의 아내로 일과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미옥’의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꿈을 이루고자 하는 한 사람과, 그 사람을 끊임없이 지원해줘야 하는 사람의 관계와 위치 그리고 그것이 어떤 성별에 의해서 어떻게 고착되는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그리고 마지막 미션은 수많은 남자들로 하여금 순수하고 깨끗한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잘못을 한없이 미화할 수 있게 만든 (2012)에서 일명 ‘쌍년’이 되어버린 서연에 대한 암호를 푸는 것이었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였던 서연의 이야기는 지워지고, 서연을 좋아했던 승민의 상처받은 첫사랑에 대한 아픔이 부각되었던 그 이야기에서 우리가 읽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서연의 악보가 잔뜩 쌓인 방에 놓여있는 책 를 보면서, 난 서연이 이제라도 그 때 그 사건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를, 그 상처에서 치유되었기를 간절히 빌었다. ▶ 서연의 짐인 악보와 책이 있던 마지막 미션의 공간 ⓒ박주연 우리는 쫓아오는 조이랜드 관계자들을 피해 숨어서 책의 제목과 관련된 퀴즈를 풀고 거울을 이용하여 암호를 풀었다. 그 암호를 푸는 여정에서 만난 세 명의 여성캐릭터들이 나를 거울에 비췄을 때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세컨드필름매거진은 거울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거울은 방탈출 게임이나, 공포추리 게임에 흔히 등장 하는 트릭이에요. 진실에 거의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다시 한 번 그 진실을 뒤집어 보는 행위는 게임 자체에서 느끼는 희열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 편견이 뒤집히는 느낌을 받게 주죠. ‘내가 당연하다고 느꼈던 점들을 다시 한 번 뒤집어 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조이랜드 극에서 이 거울 트릭은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최종 퀴즈까지 다 풀고 나서 팀별로 각자 발견한 암호를 비밀요원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 암호가 차례대로 화면에 나타났을 때 조이랜드에서의 여정이 참여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조이랜드가 업그레이드시켜 준 나의 페미력 “Your comfort is my silence(당신의 평안은 나의 침묵으로 이루어진다)는 바바라 크루거의 유명 작품 중 하나에요. 바바라 크루거는 사진과 텍스트를 결합하는 예술 형식을 통해서 사회제도적 권력에 항거하는 아티스트이고 이 작품은 남성지배 구조하에 이루어진 ‘평안’이 결국에는 억압받고 고통 받는 자의 ‘침묵’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다수가 침묵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폭력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겠죠. 저희는 일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억압과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이 메시지와 결을 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이 점을 토대로 극을 구성하게 되었어요.” (세컨드필름매거진) 조이랜드에서의 여정, 조이랜드에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모험의 여정은 그렇게 끝났다. 연극, 영화, 게임이 절묘하게 조합을 이룬 약 세 시간 동안 영상을 보면서 화가 나기도, 머리를 굴리느라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기도, 웃기도, 성취에 만족하며 우쭐해지기도 하면서 다양한 감정 또한 배출되었다. 조이랜드는 조이랜드가 이야기하는 그런 조이랜드가 아니었다. 조이랜드에서의 시간은 또한 ‘모두가 평등하면서도 각자의 위치를 지키는 나라,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주는 나라’라는 말로 포장된 것들을 들추고, 지워지는 것들을 찾아내야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보통 온라인 게임에서 미션을 수행하고 나면 ‘항마력이 10% 상승했습니다’ 같은 어떤 능력이 상승한다. 조이랜드를 통해서 나의 페미력은 조금 더 상승했다. 다음엔 어떤 일이 나의 페미력을 올려줄지, 벌써부터 즐겁게 기다려진다. 일다
※ 초보여행자 헤이유의 세계여행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른여덟에 혼자 떠난 배낭여행은 태국과 라오스, 인도를 거쳐 남아공과 잠비아, 탄자니아, 이집트 등에서 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혼+마흔+여성 여행자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 ▶ 남아프리카공화국.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 모잠비크로 가는 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세상 밖으로 나오길 잘했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다. 인도를 떠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도착해서 모잠비크로 가는 길. 아무것도 못 봐놓고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남아공은 참 크다. 일단 하늘이 엄청 넓고 선명하다. 손에 잡힐 것 같은 하늘과 구름이 시야를 가리지 않고 끝없이 펼쳐져 있다. 창 밖에 보이는 집과 집 사이의 거리나, 농장이나, 초원이나 모든 것이 크고 넓다. 소들을 보고도 깜짝 놀랐다. 소가 무지하게 크구나! 헌데, 무지하게 작은 거다. 시아를 넓히면 엄청난 공간에 소 몇 십 마리가 그냥 점같이 보이는 느낌이다. 내가 정말 작은 나라에서 살고 있었구나 싶다. 이 알 수 없는 공간감각은 그간 작은 나라에서 수없이 많은 건물들과 차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다.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버스를 타려 해도 당장 허허벌판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할 판이니~ 버스가 있긴 한 걸까? 미니밴이나, 흑인택시나 뭐 이런 것들이 있다는데… 차 없이 살기 힘든 곳이다. 이곳도~ 도심 사막 같다. 도시 안에서도 걷다가 말라죽을지도 몰라. ▶ 낯설고 넓은 땅에 오니 시야가 넓어지고 생각도 다양해지는 기분이다. ⓒ헤이유 인도도 넓다 했지만, 사실 배낭여행자들이 다니는 곳은 뻔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빽빽한 인도에서는 붙들고 길을 물어볼 사람이라도 있지 않나. 남아공은 나에겐 낯선 존재인 흑인 반, 백인 반. 흑인들은 정말 영화에 나오는 흑인들이랑 똑같다. 말투와 걸음 모두 리드미컬하다. 백인도 진짜 영화에 나오는 백인들 같다. 둘이 교묘히 따로 노는 느낌도 영화에서랑 비슷하다. 길가에 앉아있는 가난해 보이는, 혹은 위험해 보이는 이들은 모두 흑인이다. 그렇다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이들 모두 백인은 아니다. 흑인도 잘 사는 사람이 많다. 대통령도 흑인이잖나. 인도인 친구가 자꾸 “흑인을 만지지 마. 너도 까매지니까. 까만 건 나쁜 거야” 라고 한다. 그래서 이미 나는 까맣다고 말해주었다. 그 친구에게 백인을 만지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볼까. 아프리카에 오길 잘했다. 시야가 넓어지고 있고, 생각이 다양해지는 기분이다. 모잠비크 토포 해변으로 가는 케이프버스를 타고 가는 길. 출발도 늦고, 도중에 사고도 났고… 아마 해지고 마푸토에 떨어질 듯한데, 혼자였으면 막막했을 것 같다. 친구 요셉이 있어서 다행이다. 플레토리아에서 토포로 가는 버스 안. 반은 백인 여행자, 반은 현지인들이다. 얼마나 꽉꽉 채우고 짐을 가득 실었는지 맨 뒤에 앉은 우리는 압사당할 것 같은 고통 속에서 11시간을 달렸다. 마푸토에 들어오는 것만도 비자비가 7만원, 버스 택시비가 6만원 돈. 들어오는 길은 험난함 그 자체다. 아프리카는 이동수단의 고통만으로도 최악의 여행지였는데, 그렇기에 이동하는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 모잠비크 토포 해변에서 석양이 질 무렵. ⓒ헤이유 아프리카에서 보는 별 어디든 마음 주면 다 좋은 거야.바다를 보는 순간 옷을 갈아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뭐랄까, 해운대 바다 같은데 파도며 하늘이며 스케일은 아프리카. 파도를 타다 멀미가 나서 잘 놀지도 못하고 나왔다. 원래 아침을 안 먹다가 여행지에서 먹고는 오전 내내 설사를 한 적이 있는지라, 전날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버스에서 내내 설사로 고생했다. 그렇지만 그간의 피로는 바다 속으로 휙! 도착하자마자 햄버거 하나를 사 먹고 저녁에 시장으로 나갔다. 시장은 내가 그리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놀이터. 어디서나 음악이 흐르고 춤이 있다. 흥겨운 마음에 들썩인다. 생선 정식을 먹고 숙소에 들어오니 여긴 또 다른 세상이다. 다음 날 아침. 바다를 혼자 거닐었다. 제주도 같은 느낌도 든다. 올레 길을 걷다 뒤돌아보면 내 발자욱이 하나둘 생기고 지워지고 하던 그 길. 이 곳 모래는 사그락 사그락 소리가 난다. 너무 얇아서 하늘을 비추는 유리가 되는데, 걸을 때도 빠끄닥 빠그닥 소리가 난다. 이 해변이 좋다. ▶ 열린 하늘과 시야에 다 담을 수 없는 수평선. ⓒ헤이유 은하수를 보았다. 보홀에서 반딧불 투어를 할 때 강위 카약에서 보던 별과 라오스 무앙응오이에서 보았던 간위 보트에서의 별. 그만큼 그보다 더 많은 별들이 손에 잡힐 듯 지천에 널렸다. 아. 이 별을 보기 위해 내가 아프리카에 왔구나…. 보는 순간 은하수인 걸 알았다. 동네 마실을 갔다 오는 길에 본 별들이다. 별을 보기 위해 어디론가 간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세상엔 원래 별들이 많았구나. 새삼 존재하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라도 봐야지. 보기 위해 왔으니…. 사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마음이 무거운 날이었다. 이 시국에 이렇게 남의 나라에 와서 돈을 쓰고 앉아있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웃고 있는 게 맞나 싶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아프리카의 흥겨운 음악을 들으며 널브러져 앉아 있다.이 밤을 느끼며. 일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비혼여성들이 부모나 조부모, 형제를 간병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개인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는 가족을 간병했거나 간병 중에 있는 비혼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공유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갑자기 나한테도 닥친 일 “등산용 지팡이라도 좀 찾아와 봐.” 앉지도 눕지도 못한 엄마가 힘이라곤 없는 목소리로 날 불러놓고 겨우 말했다. 식구들이 아침밥을 건너뛰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엄마가 일곱 시가 훌쩍 넘은 시각에 이부자리에서 말씀하신다는 것부터가 겁나는 일이었다. “내 팔 잡고 일어나봐. 도저히 못하겠어?” 나는 부축을 해보겠다면서 엄마를 조심조심 일으켜봤지만 소용없었다. 어떤 자세를 시도해도 엄마는 못 일어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고관절 쪽이 이상한 것 같다는 말은 엄마가 며칠째 해오던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전날에도 엄마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실 때 특히 다리에 힘을 못 주겠다면서 기다시피 하는 동작으로 방 밖을 나왔었다. 그때 당장 병원에 모시고 가야 했는데 오후에 다시 좀 괜찮아졌다는 말씀만 듣고 어영부영 시간을 끌고 말았다. 자책이 들었다. 그러나 넋 놓고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사태가 너무 중해 보였다. 어디라도 모시고 가야 하겠는데 거동을 못하시니 119에 전화를 해봐야 하나? 하필이면 아버지도 집을 비우셨던 참이라 잠깐은 혼자 허둥대다가 일단 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다른 자식이 하나라도 더 와서 이동하는 편이 불안해하고 있을 엄마한테는 나을 것 같았다. 당장 집에 좀 와줘, 엄마가 못 걸으셔. 동생을 불러놓고는 스마트폰으로 이른바 ‘폭풍 검색질’에 돌입했다. 하필이면 6월 6일 현충일. 공휴일인 탓에 엄마가 다니시던 동네 병원들은 죄다 문을 닫았다. 병도 휴일이라고 쉬면 얼마나 좋을까. 일단 공휴일에도 문을 여는 최대한 가까운 정형외과가 있는지 찾아봤다. 몇 가지 검색어를 동원한 결과 다행히 한 군데가 뜬다. 전화를 걸었더니 병원 직원이 일러준다. 진료가 오후 한 시까지니 최대한 빨리 오라고. 그때가 열한 시 반쯤이었다. 마침 도착한 남동생은 엄마를 번쩍 들어 올려 업고는 차로 이동했다. 우리는 곧바로 정형외과 주소를 ‘내비’에 입력했고, 내달렸다. 15분쯤 지났을까.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시간 반가량을 남겨놓고도 빨리 오라고 재촉하던 병원 직원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퉁명스러웠는지 알 것도 같았다. 다들 나처럼 ‘공휴일 진료 정형외과’를 검색창에 넣어보고 온 이들일까. 예상보다 훨씬 많은 환자들로 병원은 몹시 북적거렸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데스크에 가니 오늘 진료 접수는 끝났단다. “조금 전에 전화로 문의했을 때 빨리 오라고 하셔서 빨리 왔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싸움이라면 사랑싸움이고 키보드 싸움이고 간에 모조리 자신 없어 하는 내가 어느새 정색을 하며 따지고 있었다. 절박함이 통했는지 상대는 한없이 인심을 써주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럼 어머님까지만 받을게요”라고 한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 몇 분 뒤에 병원 문을 열고 절뚝거리면서 들어오는 환자는 돌려보낸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싸움을 잘 못하는 나는 초진 환자 정보란에 엄마 생년월일을 기입하면서 어쨌거나 한숨 돌렸다. 40~50분 정도 흘렀을까. 드디어 엄마 차례다.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진료 절차가 빠르게 돌아간다. 청력이 좋지 않은 엄마를 위해 크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씀해주시는 선생님이 새삼 고맙다. 그렇긴 한데 엑스레이 촬영을 진행하고 나서도 의사는 염증이 우려된다는 말 외에는 속 시원한 말을 들려주지 않는다. 내 귀엔 대학병원에 가보시라는 말만 분명하게 들렸다. ▶ 대학병원에 온 날, 이때부터 온갖 검사가 시작됐다. ⓒpixabay.com 별수 없이 우리는 정형외과에서 떼어준 서류를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다음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나와 큰언니, 아버지가 동행했던 이날부터 온갖 검사가 시작됐다. 나는 엄마가 탄 휠체어를 밀며 차갑고 낯선 병원 검사실을 정신없이 찾아 다녔다. 문득 그전까진 휠체어를 밀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몹시 서툰 동작으로 휠체어를 밀면서 때때로 엄마를 당황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더 딱해지는 순간은 검사실에 들어간 이후였다. 염증 수치를 측정하는 검사 때는 통증이 심할 거라고 주의를 들어둔 이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픔을 참기 힘들어하며 몸을 떨었다. 웬만큼 아프기 전까지는 티도 안 내는 엄마가 저 정도면 얼마나 힘든 걸까 싶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마음을 다잡기가 쉽지 않았다. 정형외과에서는 검사 결과로 볼 때, 정작 고관절 부위에는 이상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염증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오니 감염내과 협진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들려줬다. 우리는 다시 감염내과로 가서 접수를 마치고 의사의 진료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림 끝에 만난 감염내과 의사는 왠지 짜증이 가득 묻어나는 말투로 우리를 대한다. 걷지 못하는 환자를 앞에 두고 의심되는 원인에 대한 말은 전혀 없이 일단 입원해서 검사를 더해보자고 하는 것까지는 얼마든지 이해할 만했다. 그러나 보호자더러 정신 사나우니 한 분만 계시고 다른 분은 좀 나가달라며 언짢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도저히 그에게 엄마의 건강에 대해 상담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엄마한테 묻고 싶어졌다. ‘엄마, 우리 뭐 잘못했어? 왜 저렇게 고압적이야?’ 결국 언니와 나, 아버지는 엄마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 입원시키자는 결론을 내렸다. 병원이라는 어려운 곳 제대로 간병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의 과정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먼저 길게 풀어놓고 말았다. 그런데 나한텐 환자를 돌보는 일 이전부터 보호자라면 흔히 병원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과정이 또 하나의 거대한 난관이었다. 갑자기 혹은 서서히 환자가 되어버린 가까운 이를 지켜보기, 그리고 환자를 대신해서 쩔쩔매며 병원을 알아보고, 입원수속을 처리하고, 의사의 진찰결과를 듣는 일 등은 모두 마치 어려운 시험 같았다. 그건 앞으로 예상치 못한 고비에 수차례 봉착하게 될 보호자가 맞아두는 일종의 예방주사 격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지난하게 이어질 ‘돌봄’의 일상으로 돌입하기 전에 맷집은 다지고 쓸데없는 기대감 따위는 내려놓게 도와주는 절차였던 것이다.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일은 아니지만 이 과정 역시 또 다른 측면에서 매우 어렵고 성가시다. 병원 직원을 대하는 순간엔 이유도 모른 채 내가 ‘을’이 되어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럴 때면 궁금해졌다. ‘의료비 부담은 부담대로 짊어지고서 우리, 왜 이렇게 자주 굽신거리기까지 하니?’ 옮긴 병원에서도 모든 절차가 순조로웠을 리는 없다. 거동이 불가능한 엄마는 일단 응급실에 들어가 주사를 꽂은 채 대기했다. 원무과에 가서 5인실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달라는 내게, 직원은 언제 병실이 날지 알 수 없다며 1인실과 2인실도 기다려보란다. 그러면서 병실 비용이 걱정돼 망설이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치료는 해야 될 거 아니에요?” 하고 쏘아붙인다. 결국 강요와 핀잔 사이의 그 무엇에 넘어가 2인실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낮에는 함께 있었던 언니들과 아버지도 귀가를 하고 나와 엄마만 병원에 남았다. 등받이 없는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있자니 일단은 2인실이라도 어서 났으면 하는 생각도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다. 사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내 몸이 불편하면 변덕도 죽 끓듯 한다. 변명 같지만, 환자용 의자 역시 불편해 보였던 터라 엄마를 한시 바삐 옮겨드리고 싶었다. 결국 응급실에 들어온 지 열 시간이 훌쩍 지난 늦은 밤에야 침대가 있는 응급병동에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그 연락은 곧 본격적인 간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엄마는 응급병동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일반병실로 갈 수 있었다. 병실에 들어가서도 갖가지 검사는 계속됐다. 아침 일곱 시경부터 정형외과, 감염내과, 류마티스내과에서 번갈아 회진을 왔다. 교수님부터 레지던트까지 여러 선생님들이 다녀갔지만, 엄마가 걷지 못하게 될 정도로 통증이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들을 수 없었다. 검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말은 반복해서 들었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날들이 길어지겠구나 싶어 초조해졌다. 일단 시간이 되는 식구들이 돌아가며 못 걷는 엄마 곁을 지키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당장은 시간을 내기가 가장 수월한 사람이 나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효도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웬만하면 바쁜 척하지 말자고 다짐해봤다. ▶ 병실이 답답해질 때면 엄마는 산책을 나가고 싶어 했다. ⓒ권혜원 진통제를 투여한 덕에 엄마는 아주 힘겹게, 그리고 천천히 침대 밖으로 나와 한발씩 뗄 수 있게 됐다. 그래 봤자 몇 걸음 못 가 다시 돌아오기 일쑤였지만, 일단 화장실을 가는 일 정도는 한결 쉬워졌다. 엄마의 보호자는 소변 양을 측정할 의무가 있었다. 엄마가 화장실에 갈 때마다 따라 가서 해야 하는 이 일이 내 경우 낮엔 별로 귀찮은 줄 몰랐는데, 밤에는 좀 달랐다. 나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었고 편집 일을 프리랜서로 한 이후론 늦게 잠드는 날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병실은 야행성 인간에 친화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한밤중에도 갖가지 소음이 커튼을 넘나들곤 하는 그 공간에서 보호자는 언제나 일찍 자둘수록 유리하다. 한편 엄마는 평소에도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며 나와는 달리 밤중에 한번은 꼭 깬다. 이렇게 엄마랑 내가 다른 수면 패턴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나는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병원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식사는 못해도 수액은 종일 맞고 지내던 터라 엄마는 병원에서도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밤중에 한 번은 꼭 깨셨다. 그러면 나 역시 자동으로 기상했다. 그 순간 나는 좀비 같아진다. 몸은 일어났지만 눈은 거의 감은 채로 오물처리실에 가서는 소독되어 있는 소변통과 플라스틱 변기를 가져온다. 그러고는 플라스틱 변기를 양변기에 끼우고 기다린다. 용변을 마친 엄마는 침대로 돌아가고 나는 소변통에 소변을 옮겨 담고 양을 확인한다. 측정 후 소변 통을 오물 처리실로 다시 가져가서 헹구고는 소독통에 집어넣는다. 이 절차를 끝내면 병실로 돌아와 일지에 소변량을 기록한다. 습관이 들기 전에는 오물처리실에서 병실로 돌아온 후 기록하는 것을 깜빡하고 바로 다시 잠든 날도 있었다. 다음날 일지를 확인하는 간호사가 환자 분 소변 안 보셨냐는 질문을 하면 그때서야 아차 하면서 나는 또 작아졌다. 기록까지 끝내고 다시 잠에 빠져들면 새벽 네 시 반쯤 간호사가 엄마의 체온을 측정하러 들어와 한 번쯤 더 깨기 일쑤였다. 열이 오르지는 않았는지 알려주고 나가는 선생님에게 고맙다고 눈인사라도 하고 나면 문득 피곤이 절절히 느껴졌다. 다른 사람한테는 별일 아닐 수 있을 이 일에 적응하는 데 나는 시간이 좀 걸렸다. 밥보다 잠을 좋아하고 컨디션 난조도 잘 먹기보다 푹 자기로 해결하는 나로서는 밤에 두 번 정도 깨는 것이 꽤나 고역이었던가 보다. 물론 잘 알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분들 옆을 지키는 보호자가 혹시라도 이런 날 보게 된다면 얼마나 철없어 보일지 말이다. 치매 같은 질환으로 몇 년 동안 밤낮없이 끝도 보이지 않는 고생을 하는 보호자가 들어도 내 투정은 참으로 어처구니없겠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분명 투덜거리면서 신선놀음 하는 수준일 거다. 그러나 그때 나로서는 밤을 지내기가 꽤 고단했다. 그만큼 나는 준비가 안 된 보호자였던 것이다. ‘엄마, 더 아프면 우리 자매사이 금 가겠어’ 사실 올해 6월 전까지는 ‘간병’이라는 단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끔 누군가 병으로 고생한다는 말을 들을 때 나에게도 빠르게 늙어가는 부모가 있음을 문득 절감하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엄마는 체질이 약한 편이긴 해도 그동안 건강검진 결과에서 큰 이상이 발견되지는 않았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다니시는 아버지만큼은 아닐지언정 건강관리도 꽤나 부지런히 하고 계셨다. 작년에 교통사고로 팔을 다치시긴 했지만 회복하신 후에는 나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러니 병원에 들어오기 직전에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이나 그 일에 대한 걱정을 하는 데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다. 엄마가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 때에도 새로 벌인 일이 있다는 핑계로 득달같이 병원으로 모시고 가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의외로 쓸데없이 낙천적인 구석이 있고 준비성마저 부족한 30대 후반 막내딸은 70대 초반 엄마가 병원 신세를 지는 상황에 대해 이전까지는 정말이지 아무런 채비를 해두지 못했었다. 심적으로도, 물적으로도. ▶ 잡생각을 키워준 이 보호자용 간이침대를 그리워할 날도 올까? ⓒ권혜원 나는 일주일에 세 번쯤 사무실로 나가는 식으로 일하고 있었고, 내가 출근해 있는 동안에는 주로 언니들과 아버지가 엄마 곁을 지켰다. 밤잠도 나 혼자 일주일 내내 설쳤던 것은 아니다. 주말엔 언니들이나 동생이 병실에서 자곤 했다. 그러나 주중에는 내가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모양새가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다음날 해야 할 일에 대해 특히 신경 쓰였던 어느 날엔 병원에서 쪽잠 자는 게 영 내키지 않아 ‘주중에 와서 자줄 사람’을 가족 대화방에서 모집해보기도 했는데, 모집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언니들은 멀리 살고 있거나 가까이 살아도 입시를 앞둔 아이, 학원을 데려줘야 하는 아이, 밥 때를 챙겨줘야 할 아이들이 있었다. 대개 모성은 효심을 이긴다. 우애쯤이야 거뜬히 이기게 마련이고. 물론 언니들은 엄마한테 참 잘했다. 그저 평일엔 등교하는 애들을 돌봐줘야 했을 것이다. 한편 동생은 정규직으로 주5일 꽉꽉 채워 출퇴근하고 야근도 제법 자주 하는 처지다. 역시 한 가정을 이뤘고 비교적 튼튼한 돈벌이를 하고 있다. 누구도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하지 않지만,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어쩌면 당시가 그런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유일하게 아이가 없고 정규직 직장인도 아닌 내가 ‘미안해’ 혹은 ‘니가 고생이 많다’라는 말을 듣는 날이 늘었다. 실토하건대, 진짜 피곤해서 내 방, 내 침대에서 자고 싶었던 날 밤엔 지금은 없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며 ‘나도 어떻게든 결혼이란 걸 해서 자식도 낳아둘 걸 그랬나’ 같은 잡생각까지 해봤다. 오죽했으면. 또 어느 밤엔 곤히 잠든 엄마 얼굴을 보면서 중얼거려보기도 했다. 물론 속으로. ‘엄마, 절대 더 아프면 안 돼. 언니들이랑 나 정도면 진짜 사이좋은 편인데 엄마가 지금보다 더 아프면 자매사이 금 가겠다.’ 이제 입원은 그만 했으면… 가장 답답한 건 1주가 지나고 2주가 지나도 엄마의 병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피를 뽑고, 촬영을 하고, 더 비싼 장비로 또 다른 촬영을 해대도 좀 더 지켜보자는 답변 외엔 별 소식이 없었다. ‘별 이상 없겠지’ 하는 믿음과 ‘발견하기 어려운 암 같은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하루에도 몇 번씩 교차하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어떤 때는 통증의 원인이 이렇게 안 밝혀져도 되나 원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피곤에 겨워 쿨쿨 곯아떨어지는 내가 너무 우습기도 했다. 그러다 드디어 엄마 병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류마티스성 다발근통이란 생소한 질환에다 혈관염이 의심된다는 설명이 전혀 희소식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가족들은 한층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쨌든 진단을 듣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한시름 놓을 만했다. 엄마가 앓는 병이 흔치 않은 탓에 진단도 그토록 오래 걸린 것 같았다. 이날 이후로는 엄마도 마음이 더 편해져서인지 한결 편하게 몸을 움직였다. 스테로이드 약 때문인지 식욕도 나아졌다. 이 역시 약 부작용을 염두에 둬야 하니 좋은 일만은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마음이 좀 놓였다. 적어도 지켜보자는 말만 들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무력하게 놓여 있기보단 나았다. 그때 나한테는 그리고 엄마한테는 모르는 게 약이 아니라 병이었다. 내과 선생님들은 엄마 병의 원인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말도 전해줬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입원한 지 3주가 되어갈 무렵 퇴원해서 외래 진료로 추이를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뛰기는커녕 걷기도 무리였던 엄마가 뛸 듯이 기뻐했다. 엄마도 나도 즐겁게 짐을 쌌다. 희귀질환 산정특례를 위해 갖춰야 하는 서류를 기다리는 일 정도는 얼마든지 해낼 만했다. 결국 엄마는 그렇게나 고대하던 귀가의 감격을 누릴 수 있었다. ▶ 엄마가 퇴원하던 날은 날씨도 좋았다. ⓒ권혜원 약간의 반전이 있다면 그렇게 기분 좋게 퇴원한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엄마가 다시 입원을 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외래 진료 날 혈액검사를 한 결과 간에 이상이 생긴 사실을 알게 됐다. 같이 갔던 나는 응급 상황이라는 말을 듣고는 초긴장 상태에 돌입하며 또 다시 입원 절차를 밟았다. 처방받은 약이 간에 무리를 줬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엔 엄마가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약을 잘 챙겨 드신 탓에 다시 병원신세를 지는 셈이다. 화가 났지만 화내는 일보다는 엄마를 돌보는 일이 더 급했다. 지난번처럼 거동을 못하는 처지는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쨌든 원치 않는 생활은 다시 시작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엄마는 팔에 주사를 꽂은 채로 답답한 병원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다른 환자가 앓으며 내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깨는 일 없이 집에 가서 푹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중일 것 같다. 일일드라마가 나오는 휴게실 텔레비전 대신 우리 집 텔레비전으로 이 채널 저 채널 맘대로 돌려보고 싶기도 하겠지. 그래도 엄마는 샤워나 머리감기는 물론 옷 갈아입기에 필요한 요령도 이제 제법 터득한 것 같다. 나도 이번엔 조금 더 능숙하다. 이전에 이미 겪어둬서인지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가 한밤중에 소음을 내도 예전처럼 짜증을 내지 않는다. 환자, 보호자, 전문간병인 모두 짠해서 항의할 마음이 나질 않는다. ‘꿀잠’에 도움 되는 수면 자세도 어설프게나마 터득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서 자고 나서 출근하는 것도 처음보다는 좀 적응된 느낌이다. 다행이다. 물론 엄마가 거동하는 데 별 문제가 없기 때문에 나도 적응을 보다 쉽게 하는 중일 것이다. 얼마 전에 엄마 옆 침대에 계시다 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딸도 못 알아보는 채로 병실을 옮긴 환자처럼 거의 모든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잃은 이를 돌보는 일은 아직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오히려 보호자보다는 그런 환자의 입장에 몇 십 년 후의 나를 대입해 생각해보기가 더 쉽다. 현재 추세로는 새롭게 가족을 이루고 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니까 내가 혼자 살다가 늙고 중병에 든 상황을 생각해보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겠다. 그렇다면 가족의 간병은 겪지만 가족의 보호를 받지는 못할 가능성에 나는 뭘,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 너무 우울한 질문인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병원은 사람을 때론 우울하게, 때론 비겁하게, 또 때로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병원은 사람을 단순하게도 만드는가 보다. 일단 내일 아침 병원식사엔 엄마가 좋아하는 갈치조림이 반찬으로 나오면 반갑겠다 싶은 걸 보니. 뼈는 너무 많지 않은 갈치면 좋겠다. 너무 싱겁지는 않게 나오면 더 좋고. 일다
※ 불임(infertility)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조그룹(self-help) ‘핀레이지’ 회원이자 저널리스트인 구리하라 준코 씨가 기고한 기사입니다. -편집자 주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출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도 입원시키기 쉽지 않은 ‘대기아동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도 큰 문제다. 그런 가운데 작년에는 오사카시의 한 중학교 교장의 발언이 입방아에 올랐다. 교장은 전교생 앞에서 일본의 저출산 현상을 개탄하며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를 둘 이상 낳는 일이다. 출산과 양육은 일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높아진 혼인 연령과 출산 연령이다. 그 배경에는 비정규 고용 증가, 노동의 불안정화, 여성의 가사 부담이 크게 줄지 않은 점, 미혼 혹은 비혼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러한 배경을 무시한 해당 교장의 발언은 ‘경솔한 발언’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되었다. 또 3년 전에는, 도쿄도의회에서 불임에 대한 지원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 여성의원에게 자민당 의원이 “본인이 얼른 결혼하면 될 걸”, “애를 못 낳나?” 등의 야유를 보낸 일이 있었다. 성과 생식에 관한 건강권을 확산시켜야 할 의원의 인식이 이 정도로 심각하다는 데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여성에게 ‘얼른 결혼해라’, ‘아이를 낳으라’고 설교하는 정치가가 더욱 늘었다. 평화헌법을 수호해 온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꿔버린 정치인들이 태평양전쟁 당시 슬로건인 ‘낳고 늘리자’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삶에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낳고 늘리자’ 식의 발언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의 역할을 출산이나 양육으로 국한시키려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사회에서도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온전한 사람’이라는 가치관이 여전히 뿌리 깊다. 뒤집어 보면 일본은 아이를 낳지 않는(혹은 낳을 수 없는) 여성과 결혼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무시가 강한 사회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예전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성을 ‘우마즈메(석녀)’라고 부르며 ‘불길한 존재’로서 저어했다. 아이를 갖지 않거나 아이가 없는 것은 ‘수치’, ‘불명예’, ‘불행’, ‘불효’라는 오명과 낙인마저 존재한다. ▶ 일본 사회도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온전한 사람’이라는 가치관이 여전히 뿌리 깊다. (이미지: pixabay.com) 불임여성들 ‘나는 여성으로서 실격 아닐까’ 고민 앞선 교장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날, 나는 불임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조(self-help) 그룹 ‘핀레이지’ 모임의 회원들과 수다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과 아이 낳기를 포기했지만 스스로의 선택을 확신하지 못하고 아이가 없는 인생에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핀레이지 회원들과 두 달에 한 번 내가 살고 있는 시의 공공시설인 남녀공동참획센터에서 수다모임을 열고 있다. 불임으로 인해 고민해본 사람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나는 여성으로서 실격이 아닐까’,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는 온전한 인간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수다모임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실제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어딘가 부족하다”거나, “아이가 없는 여성은 이기적이다”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다. “아이가 없으면 삶이 외롭죠” 라는 말도 종종 듣게 된다. 불임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주위에서 인사 대신 건네는 “아이는?”이라는 한마디에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 수다모임에서 괴로운 심정을 토해내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모임은 괴로운 심정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한탄하고 싶은 만큼 한탄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곳이다. 삶의 형태는 다양하다…핀레이지 모임은? 핀레이지 모임은 1991년 1월에 발족해 올해로 27년을 맞이했다. 리네트 클라인(Renate Klein) 편저의 책 의 일본어판이 번역 출판되면서 이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리네트 클라인이 FINRRAGE(Feminist International Network of Resistance to Reproductive and Genetic Engineer)의 회원이었기 때문에, 일본어 번역그룹이 이 책을 출판하면서 핀레이지라는 이름을 썼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임여성들의 자조모임이라고 하면 보통은 ‘노력해서 다 같이 엄마가 되자’는 취지의 모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모임은 설립 당시부터 조금 달랐다. 모임이 지향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불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장,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경험과 아픔을 공유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불임의 문제를 스스로 다시 이해하도록 하자는 것. 둘째, 불임치료와 생식기술의 위험과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의료와 납득할 수 있는 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식을 얻고 생각을 나누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 ‘아이가 있건 없건 억압당하지 않고 차별 당하지 않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야 온전한 인간’이라는 가치관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송하자는 것. ▶ 여성의 아이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며, 안전한 낙태를 돕는 활동을 펴 온 네덜란드 단체 ‘파도 위 여성들’의 메시지 ⓒWomen on Wave 나는 1993년에 이 모임에 가입했다. 서른두 살 때였다. 20대 무렵,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좀처럼 임신이 되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큰 문제가 없어, 타이밍 지도 등의 간단한 불임치료를 받게 되었다. 한 차례 임신했지만 유산된 후, 다시 임신이 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불임치료를 받을 생각은 없어서 아이 낳기를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가 없는 인생은 불행하다’는 가치관에 사로잡혀 몹시 고민하고 있었다. 체외수정으로 출산을 한 지인으로부터 “불임으로 고민하면서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심하게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서라도 아이를 낳아라” 라는 내용의 연하장을 받기도 하면서,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핀레이지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바로 가입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 마음을 치유 받고, 내가 불임치료를 하지 않기로 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회원들과 불임 고민을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고 새롭게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가족은 이러해야 한다’는 환상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삶은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불임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 불임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줬는지 돌아본다. 아이가 없는 인생은 그 나름대로 행복하다. 불임치료와 생식기술 발달이 우려되는 이유 지금 일본에서는 해외에서 난자 제공자와 대리임신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제3자의 정자와 난자의 제공, 대리임신을 인정하는 법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제3자가 연루되는 생식기술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이를 제공하는 측의 신체적, 정신적 위험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또 태어날 아이의 복지와 권리에도 큰 위험 요소가 동반된다. 불임 당사자와 제공자뿐 아니라 각각의 가족에게도 영향을 준다. “(불쌍한) 당사자가 그토록 아이를 원하니까”라는 동정심과 ‘아이가 없으면 불행하다’는 사회의 가치관은 생식기술과 의료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을 덮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난자(정자) 제공과 대리임신을 법제화하고자 한다면, 제3자와 생식의료를 통해 태어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욱 많이 경청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입장을 포함하여 국민적 논의를 반드시 거친 후에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불임치료에 대한 지원 정책은 다른 선택을 가로막는 출산 압박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이미지: pixabay.com)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여성에 대한 지원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지원책이 아이를 낳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출산압박 장치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불임치료에 대한 지원은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체외수정 등의 치료비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치료 받지 않는’ 선택을 하기 어렵게 만들며, 불임치료를 통해 아이를 갖도록 부추기는 정책으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압력의 장치가 되는 정책은 여성들에게 스트레스와 부담을 준다. 나는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대비책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든 안하든,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관계없이, 싱글이라도 아이를 키울 수 있고, 입양을 통해 가족을 만들 수 있고, 동성 간에도 가족으로 함께 사는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이 용인되는 사회라면 어떨까. 고령자나 어린이,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도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도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 아닐까. 사실 일본은 아이를 낳아도 키우기 힘든 사회다. 더 관용적인 사회가 된다면, 아이를 낳고 키우기 쉬워지고,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저출산이 문제라면 아이를 낳으라고 압박을 주고 불임치료를 지원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관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해결책이 될 것이다. (번역: 고주영) 일다
※ 필자 소개: 요오드, 철가루, 비이커로 이루어진 퀴어문예창작집단 ‘물체주머니’는 2014년 , 2차백합 동인지 를 발행하였고, 문예지 를 준비 중이다. (*후조시: Boys’ Love를 향유하는 사람들) 내 방 책상머리는 후조시(腐女子)들이 펴낸 2차 동인지 표지와 팬 굿즈로 제작한 일러스트들로 가득하다. 소년 둘의 연애를 묘사하는 것 같은 공X수 스티커도 한편에 붙어있다. 소년의 아래에 누운 소년은 고개를 지그시 돌리고 볼을 붉힌 채 엷은 미소 짓고 있다. 이 광경을 본 외국인 친구는 공X수의 한자를 알아보고 흥미로워하다가 이렇게 물었다. “이런 건 레즈비언이 좋아하는 것 아니야?” 팬픽이반 친구들과 학생 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 생인 나였지만, 나는 친구의 질문에 새삼 호기심을 느꼈다. ‘남성성을 가지고 노는 것은 레즈비언 실천이군!’ ▶ 공X수 스티커. あたらしい くみたいそう(새로운 짝이 되고 싶어) shop-bside-label.com (출처: B-SIDE LABEL) #여성적 쾌락과 ‘남성성’ 열 두어 살 이후로 학생 시절 나는 항상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내가 사랑받고 싶은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걷는 중에 뒤에서 포옹을 하고 몸을 만져오는 남자친구, ‘나 지금 너무 화가 나 있는데, 우리 만나서 빨리 자자’(?)고 문자를 보내는 남자친구, 나를 앞에 두고 친구들과 음담패설을 나누는 남자친구, 좋아한다고 고백하고는 뒤에서 몰래 브래지어 끈을 풀어버리는 남자 애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은 언제나 조금씩 폭력적이었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것’은 또래들의 연애에 깊이 들어와 있었지만, 나는 항상 상대보다 성에 관해 덜 알았고, 성적인 경험들은 그렇게 야릇하지만 매우 불쾌한 것으로 경험되곤 했다. 그리고 스무 살 무렵 농밀한 성적 묘사를 그린 한 외국 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자위를 하고 난 후, 나의 삶은 크게 변해버렸다. 성적 쾌락을 혼자도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섹스는 내게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경험으로 기대되기보다는 급히 해치워야 할 것에 더 가까워졌다. 또 자기네끼리만 아는 비밀인 양 키득거리며 야한 얘기를 나누거나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스킨십을 해 오는 남자들이 우스워졌다. 그들이 거들먹거리며 드러내는 ‘남성성’은 내게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느껴졌고, 나는 연애보다는 나처럼 ‘뇌가 썩은’ 여자 친구들과 음담패설을 나누거나 자위를 하는 게 내게 더 큰 만족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쾌한 포르노를 찾아서 이성애의 판타지가 부서져버린 후의 주체를 이전과 같은 이성애 주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정성스럽게 자위하는 나보다도 기쁨을 주지 못하는 연애에 시큰둥해진 후로, 나는 남자친구라는 대상 없이 스스로의 성적 욕구를 탐색하는 일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포르노그래피를 접하면서 나의 성적 판타지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성적 실천을 욕망하는지 더 많이 묻게 되었다. 하지만 특정 직업의 여성이 등장하는 포르노, 항문성교나 구강성교 등이 등장하는 포르노, 관음적 섹스 포르노, 다수 간 섹스 혹은 난교 포르노부터 시작해서 형수나 여동생과의 섹스 포르노, 혹은 유아나 심신미약 상태에 있는 대상과의 섹스를 재현하는 포르노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금기도 없는 것처럼 ‘남성향’ 포르노가 쏟아지는 것에 반해, 여성으로서 즐길 만한 콘텐츠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20대 여성들의 커뮤니티에는 ‘언니들’이 모아둔 포르노 버스가 정기적으로 올라왔지만, 남성향 속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한 미녀 배우들이 못생긴 남성의 지루하게 긴 피스톤 운동을 견뎌내는 포르노를 보며 자위를 하고 나면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여성향 포르노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언제나 많았지만 잘 만들어지지도, 구해지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여성향 포르노가 무엇이 될 수 있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부족했다.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이른바 야오이 만화와 애니메이션 또는 영화의 인물들을 커플로 엮는 BL(Boy’s Love) 2차 창작지 또는 트위터 썰 계정들은 내게 생생한 여성적 욕구의 표현들로 가득한 놀이터이자 유쾌한 포르노의 장이다. ▶ 쿄야마 아츠키 (삼양출판사, 2016) 영국에서 향수병으로 고생하다 우연히 재회한 두 동창생이 가벼운 스킨십과 정서적 교감을 시작으로 연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 게이라고 정체화한 적이 없는 주인공들은 향수병이라는 예외 상태에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며 가변적 섹슈얼리티를 경험한다. 이성애 판타지에서 여전히 지배적으로 재현되는, 강렬하고 공격적으로 스킨십을 주도하는 남성상은 더 이상 유일한 것으로 그려지지 않으며, 공X수라는 클리셰를 기반으로 다양하게 변주되는 BL 서사 속에서 젠더 역할이 불분명한 주인공들은 상상력을 동반한 많은 남성성을 재현한다. 그러한 다양한 남성성을 반기면서, 임신수에게 출산을 종용하거나 강공의 최애캐가 육아에 지친 파트너를 지극정성으로 마사지하는 장면을 연성하는 후조시들의 판타지와 욕망은 폭력적으로 경험되는 일상의 이성애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후조시들은 그러한 재현을 통해 폭력적 주체라 여겨지는 남성주체에 이입함으로써 이성애 관계에 불안하게 잠재돼 있는 폭력을 스스로 실현해 보기도 하고, 폭력적 관계를 바꾸고자 시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놀이와 실험에 익숙한 후조시들에게 폭력적인 이성애 연애 서사나 규범적 젠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남성상이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공X수라는 BL 커플의 공식이 남녀의 위계적 젠더 역할을 재현하기 때문에 비판한다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내가 보는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또한 BL물이나 그것을 즐기는 후조시들이 현실의 게이들을 대상화하기 때문에 비도덕적이라는 비판과는 달리, 오히려 성별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젠더 역할에 공감함으로써 스스로의 섹슈얼리티 또한 가변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후조시에 대한 그와 같은 비판은, 변하지 않는 이성애적 주체를 가정함으로써 오히려 이성애 관계를 정상화하는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닐까? #이성애 관계에 의문을 던지는 후조시 실천 ‘한남과는 도대체 연애를 못하겠다!’는 헬조선 여성들의 비혼 선언은 이성애 판타지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이성애 관계는 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성애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인류학자 게일 루빈이 잘 지적했듯이, 그것은 특정한 성애를 지배적인 것으로 작동시키는 담론 위에서 기능하는 사회적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 여성성/남성성과 이성애 연애에 관한 판타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내가 널 죽였어야 했는데’ 죽이지 못하고 잠입경찰 현수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져버리는 재호의 연애담에 열광하다가, ‘마누라’ 험담을 남성동맹의 확인쯤으로 생각하며 퇴근 후 아내 몰래 성매매나 일삼는 한남들의 남성성과 마주치면 그것이 얼마나 하찮게 느껴지는가! 연인과 함께하는 식사를 정성스레 준비하는 의 냉(冷)미남 시로와 비교하면, 아내의 도마 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는 여성성에 관한 한남들의 판타지는 또 얼마나 덜떨어지게 느껴지는지! ▶ 영화 스틸 컷. 소위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남자들의 사투를 그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재현되는 권력자들의 룸살롱 문화는 남성관객들로부터 현실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재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 영화 스틸 컷. 잠입경찰 현수에게 사랑을 느끼는 재호 폭력적인 스킨십을 환상적으로 재현하는 드라마, 구수한 운율을 만들기 위해서 입에 찰싹 달라붙는 여성혐오의 언어를 갖다 쓰는 래퍼들의 음악, 각종 사회정의를 말하기 위해 어김없이 희생당하는 여성 성폭력 피해자의 이미지를 등장시키는 영화나 소위 룸살롱 장르영화 이미지의 범람 속에서, BL 속에 살아 숨 쉬는 다양한 남성성과 사랑의 언어들은 현실의 도피처가 되어줄 뿐 아니라 어떤 식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지, 어떤 방식의연애를 더 꿈꿔 볼 수 있는지 질문할 수 있게 해준다. #후조시들, 어쩌면 이미 퀴어? ▶ 파트너 켄지와 함께 먹기 위해 요리하는 (요시나가 후미 작, 삼양출판사)의 시로 남성 주체들이 여성을 교환하는 문화 위에 세워져 있는 이성애 규범적 남성 지배의 문화는 여성을 주체가 아닌 ‘교환의 대상’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여성 간 연대를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때 지배적 규범이 부과하는 여성성과 남성성의 단순성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성적 욕망에 대해 함께 말하며 끊임없이 성적 판타지를 개발해 가는 후조시 여성들의 연대는 어쩌면 이성애 규범이 허가하지 않은 관계에까지 욕망을 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일 수 있다. 이쯤에서 다시 질문해 보자. 남성성을 가지고 노는 것은 정말 레즈비언 실천일까? 어쩌면 후조시들은 여체보다는 미려한 남체에 더 흥미와 성적 욕구를 가질 수도 있고, 또 후조시 실천에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것을 감추기도 한다는 점에서 이성애자에 다름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정성별에 맞는 규범에서 미끄러져나가는 후조시 실천을 지속하고, 또 규범적 남성성을 의문시하며 고정된 성적 역할을 거부함으로써 그것에 의존하고 있는 이성애 관계를 뒤흔든다는 점에서, 후조시들은 어쩌면 퀴어 주체를 유희의 대상으로 소비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실천 속에서 이미 퀴어한 존재라고 볼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런 점에서 후조시들은 퀴어 운동과 연대할 수 있는 동지가 아닐까? 여기서 필자들은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서로 진영을 긋고 서로에게서 분리되게 만드는 성별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본질주의적 이해를 넘어서, 이성애 중심주의와 그것이 의존하는 젠더규범성에 문제제기하고 좀 더 해방적인 성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후조시와 퀴어 주체들이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끝) ※ 이 연재의 제목인 는 이도 기호우(井戸ぎほう) 1차 BL만화책 (やさしくおしえて)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일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비혼여성들이 부모나 조부모, 형제를 간병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개인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는 가족을 간병했거나 간병 중에 있는 비혼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공유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보람찬 인생을 계획하고, 실천하세요!’ 계획하고 그에 따라 실천해가는 삶은 마땅하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고 중장기 단계를 설정한다. 그 계획을 거꾸로 밟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나가는 삶. 고난도 있겠지만 묵묵히 견뎌낸다면 성취감과 함께 발전한 나를 만날 것이다! 열심히 살자, 그것이 참으로 보람찬 인생! 어른들이나 미디어, 책을 통해 접해온 인생에 대한 상(image)은 대략 저러했다. 열심히 살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그림말이다. 그런데 삼십 년 넘게 살다 보니, 거기에는 빠진 게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돌발 상황’이다. 살아갈수록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내 앞에 툭툭 떨어졌다. 아니, 인생에 이미 그런 상황들이 무수히 놓여있는데, 그것들을 향해 차곡차곡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인생에서 힘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하느냐가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계획에 넣지 않는다. 아니, 넣지 못한다. 어떻게 ‘우리 엄마가 암에 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병 생활을 할 것이다’를 인생 계획에 넣을 수 있을까? 그건 드라마 혹은 절절한 다큐에서나 나올 일이다. 나는, 우리 가족은 평범하니까. 모든 이들의 인생에 여러 변곡점이 있지만, 나 역시 인생에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타고난 몸치에, 유연성 제로인 요가강사. 친구들은 아직도 내가 요가 수업을 하고 만족하며 사는 걸 신기해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원래 자리로 돌아오겠지’ 생각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하지만 천만의 말씀!) 회사를 다니면서 번아웃(burn out) 됐다. 건강을 위해 시작했던 요가로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경험을 하고, 우연한 계기로 강사 교육을 받게 됐다. 그리고 서른, 초보 요가강사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이제 막 초보강사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며 수업과 수련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게 그 즈음이었다. 2013년 5월 말, 모든 게 따듯하고 투명했던 계절. ▶ 몇 번째 입원했을 때일까. 병원 복도를 걷는 엄마의 뒷모습. ⓒ배윤정 “내가 엄마를 30년간 써버린 느낌이야” 하인두? 하인두는 어디일까? 엄마는 거기에 암이 생겼다고 했다. 하인두는 목 안에 공기와 소리, 음식이 드나드는 길목이며 두경부에 포함된다. (두경부는 눈과 귀를 제외한 얼굴과 목 부위를 지칭한다. 비강, 혀, 입, 후두, 인두, 침샘 등 30곳이 해당되며, 이 기관에 생긴 암을 통틀어 두경부암이라고 부른다.) 의사 선생님이 수술 방법을 설명했다. 임파선을 포함해 암 전체를 제거하고, 허벅지 근육과 손목의 신경 조직을 들어내어 다시 목 안에 이식하는 방법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담담하게 설명해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들으면서도 그게 어떤 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실은 그때 ‘엄마가 암이라고?’ 하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고 있지 못하는 상태여서 의사 선생님의 설명이 더욱 와 닿지 않았다. 이미 3기까지 진행된 암이었기 때문에, 수술 방법에 있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는 대목에서 엄마의 표정이 달라졌다. 목소리를 포기하거나(후두 제거), 입으로 먹는 걸 포기하거나(식도 제거, 평생 배에 호스를 끼고 위장으로 음식을 넣는다), 둘 중 하나라고 했다. 둘 다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암이 자리한 위치상 성공률이 10% 내외였다. 세 번째 방법이 실패하면 어차피 앞의 두 방법 중 하나를 다시 선택해야 하고, 성공한다고 해도 목소리와 섭식 둘 다 예전처럼 원활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래서 앞의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게 선생님의 결론이었다. 엄마는 10% 성공률이라는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아직 해야 할 게 있어서요.” 나와 동생, 그리고 아빠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언젠가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내가 엄마를 30년 동안 써버린 느낌이야.” 첫 수술, 아침 9시에 수술실에 들어간 엄마가 밤 12시가 넘도록 나오지 못했다. 새벽이 되어서야 중환자실에서 만난 엄마는 너무 차가웠다. 목과 머리 주변으로 피통이 여러 개 나와 있었다. (두경부 수술은 귀 뒤쪽을 열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수술 시 머리와 목의 피를 내보내는 피통을 밖으로 연결하고, 수술 부위의 회복을 가늠한다.) 목 앞쪽으로는 철심이 둘러 박혀 있었다. 추운 걸 제일 못 견뎌 하는데, 엄마가 찬 곳에서 너무 오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수술 후라 염증이 생길 수 있어서 최대한 차게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암이라는 것, 수술이라는 것, 병원 생활이라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채 간병 생활이 시작됐다. 우리는 모두 앞으로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 채 살아간다. 그리고 실제로 그 상황에 놓여야 앞의 말을 몸으로 깨닫는다. 목도한 그것을 살아내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그 때 나와 엄마, 우리 가족이 그랬다.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겪어낼 수밖에 없었다. ▶ 비오는 날. 함께 병원 창 밖을 바라보는 동생과 엄마. ⓒ배윤정 첫 수술 후 3년간 수술, 또 수술… 수술 후 며칠 동안 온가족이 병원에 붙어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간병인을 신청했다. 집도, 일도, 우리도 정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면, 반나절 만에 간병인을 되돌려 보냈다. 엄마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침도 삼키면 안됐다. 목을 움직일 수 없었고, 이식 수술로 다리와 팔도 움직일 수 없었다. 암은 완전히 제거됐지만 그 위에 이식한 다른 조직들이 잘 붙기까지 그대로 버텨내야 했다. 침이 조금이라도 수술 부위로 흐르면 살이 썩는다고 했다.(실제로 그 후 몇 차례 더 큰 수술을 한 원인이 됐다.) 늘 입안에 석션(침을 빨아들이는 고무관)을 물고 있어야 하고, 누군가 옆에서 계속 가래침을 뽑아줘야 했다. 마약성 마취제가 있어야 잠들 수 있었고, 깨어 있는 시간은 오로지 통증이었다. 마취제로 정신이 혼미하거나, 통증으로 계속 몸부림을 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런 엄마를 간병인에게 맡기고 나오는데,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불안감 다음에는 죄책감이 따랐다. 집으로 와서 간병인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았다. 불안은 더 커졌다. 결국 늦은 밤 담당의사 선생님에게 연락을 해서 병실을 살펴 달라 말씀 드렸다. (사실 의사의 개인 연락처를 환자의 가족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엄마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배려해주신 걸로 안다.) 그러자 간호사 선생님에게 연락해 병실 상황을 일러주셨다. 동생과 나는 병원에서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다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간병인은 전화기도 무음으로 해둔 채, 식사를 한 후 잠들어 있었다. 엄마는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우리를 보자마자 울었다.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말도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엄마이기에 특별히 부탁했었다. 힘든 환자라 고생스러울 게 너무 미안했다. 비용은 얼마든지 추가로 드릴 수 있으니, 밤 동안만 옆에서 지켜달라고 사정했었는데…. 그만 가시라고 했다. 전에는 어른에게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아마 이게 첫 기억일 것이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든, 나이가 많든, 그게 누구든 환자를 배려하지 않는 말과 행동에 아주 단호해졌다. 한 순간 ‘슈퍼우먼’에서 ‘아기’가 된 엄마를 지켜야 했다. 엄마는 첫 수술 후 3년 동안 열 번이 넘는 수술을 견뎌냈다. 당장 입으로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위장과 소장을 뚫어 호스를 연결해 영양제를 넣었다. 식도 주변이 점점 수축해서 흉골(가슴 앞쪽 뼈)을 잘라낸 뒤 수축한 식도를 제거하고 위를 끌어올리는 수술도 더해졌다. 의사들이 엄마 몸을 놓고 실험하는가 싶었다. 병원을 가면 늘 온 신경이 곤두서고, 화가 올랐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 늘 방어태세였다. 대형 종합병원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피로에너지’(뭔가 바닥으로 끌어당겨지는 느낌)는 3년이 다 되어도 적응이 안됐다. 입원과 퇴원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회복된다 생각하면 다시 나빠지고,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하는 수술은 계속 이어졌다. ▶ 우리의 운동 시작 포인트! ⓒ배윤정 불안과 패닉, 피로가 겹쳐진 가족의 시간 아빠는 회사를 정리했다. 병원 바로 옆으로 급하게 집을 구했고 우리는 이사를 했다. 동생도 당시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때라 셋이 3교대로 병원을 다녔다. 누군가 일을 하고 있으면 누군가는 집안일을 하고, 누군가는 엄마 옆에 붙어 있었다. 그 때 나는 초보강사라 수업이 있으면 어디든 가야 했는데, 이사 전 광명 집에서 신촌 병원으로, 강남으로, 안산으로, 나중에는 일산으로 다녔다. 요가원은 나에게 일을 하는 곳인데, 오히려 요가원을 가야 쉬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엄마는 물을 마실 수 없는 상태였고, 혼자 걸어서 화장실을 가기 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요가원은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하려는 분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곳이다. 병원은 아픈 분들이 있는 곳이다. 두 극과 극의 공간을 넘나들며 참 여러 감정이 스쳤던 것 같다. 엄마는 통증을 견디면서 힘들어하는 시간에, 나는 회원들 앞에서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수업했다. 피로에너지는 최대한 벗겨내고 생생한 마음으로 회원들을 대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보호자, 직장에서는 요가 선생님. 둘 다 당시의 나에게는 참으로 버거운 옷이었다. 엄마는 아픈데, 내가 요가원에 와서 ‘건강’에 대해 떠들고 있는 게 맞나? 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한 번은 담당의사 선생님이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수술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이비인후과 소속이었는데, 그때 수술은 부위가 달라 외과에서 맡았었다. 나에게 ‘엄마’지만, 처음 보는 그 외과의사에게는 차트 상 ‘흉골(가슴뼈)을 자르고 식도를 이어 붙여야 할 암환자’일 뿐이었다. 맞다, 대형 종합병원에서는 의사가 담당이 아닌 환자 개인을 섬세하게 배려할 여유가 없다. 그 날은 아빠가 병원에 있어야 했고, 나는 상황이 다 끝난 뒤에야 병원에 도착했다. 수술 후 병실로 돌아온 엄마 배에 갑자기 복수가 차올랐다고 했다. 엄마는 통증을 호소했고, 복부가 터질 듯이 커지면서 괴로워했단다. 당황한 아빠는 담당의를 찾았는데, 외과로 돌아간 의사는 아무리 호출해도 오지 않았다. 아빠 역시 누구에게 험한 말 못 하는 사람인데, 병원 복도를 소리치며 돌아다녔다. 외과 의사가 왔을 때 결국 욕을 뱉고 화를 냈다는 게 나중에 엄마가 써준 메모에 있었다. 바지가 다 젖도록 소변을 본 줄도 모르고, 아빠는 병원을 정신없이 뛰어다녔었다. 패닉이 된 아빠, 또 큰 고비를 넘긴 엄마가 내 앞에 있었다. 우리는 언제쯤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 엄마 아빠이기 이전에, 점점 약해져가는 두 사람을 마주하면서 나는 무섭고 두렵기만 했다. 겉으로는 수업과 간병을 너끈히 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속에서는 달라진 부모님 모습이 생경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목 안의 수술 부위가 아무는 기간 동안 엄마는 위장과 소장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삽입해 음식을 주사해 버텼다. 호스와 살이 닿는 부분은 잘 곪아서, 매일 드레싱을 해야 한다. 잘못해서 호스가 빠지면 다시 끼워야하는데, 그 통증도 심하다고 했다. 처음 빠져서 다시 끼울 때 너무 아팠던 엄마는, 두 번째 빠졌을 때 절망했다. 안 하고 싶다는 엄마를 간신히 달래서 치료실로 갔다. 호스를 끼우기 위해 엄마를 눕히고 외과 레지던트를 기다렸다. 의사가 왔는데 엄마가 너무 무서워하니까 ‘뭘 그렇게 겁내느냐’며 ‘빨리 하자’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의사에게 쏘아붙였다. “배 갈라봤어요? 선생님, 배 째봤냐구요. 환자가 두려워하면 좀 기다려주면 안돼요?” 말을 뱉고 나서 아차! 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혹시 엄마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간병을 하는 가족들은 물리적으로도 힘들지만 이렇게 정신적으로 특히 지친다. 긴장과 불안감, 분노, 초조함, 무력감, 오랜 기다림으로 인한 피로감. 매일매일 이런 감정 속을 떠돌며 병원에 있다 보면 나도 환자가 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몸만큼 마음을 챙기는 게 중요했다. 너무 감사하고 다행인 것은 내가 요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련이나 수업을 하면서 채운 에너지 덕분에 그래도 3년을 버텼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매트 위에서만큼은 오로지 내 안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매트를 벗어나 병원에 있어도 주변 에너지에 휩쓸리지 않도록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시련을 맞은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짜잔! 한순간에 인생이 다시 바뀐다. 하지만 겪어보니, 우리들의 삶에서는 그 시련이 한순간 바뀌지 않았다. 아주 느리게 지나갔고, 하루하루 힘들고 지루한 시간을 온전히 다 보내야 꼭 그만큼 나아졌다. ▶ 아빠의 선물, 가을 낙엽 ⓒ배윤정 ‘만약’을 생각한다 ‘이제 다시 입원하지 마세요!’ 엄마가 입원, 퇴원을 많이 하자 이비인후과 병동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작년에 퇴원하면서 모든 선생님들이 ‘이제 외래로만 봬요’ 라고 인사할 정도였으니까.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목을 가누고 몸을 일으키고, 걷는 연습부터 다시 시작한 엄마는 3년을 거치면서 아주 느리게 회복해갔다.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나는 피곤해서 요가 수련을 빠져도 엄마는 하루도 운동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위장과 소장에 있는 호스도 빼고, 반 이상은 기침으로 뱉어내도 입으로 먹는 연습도 시작했다. 그제서야 나도 나의 일과 생활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 엄마가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있다. 지금은 집에서 병원을 다니며 진료를 받고 있다. 섭식이 아주 불편하지만 조금씩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목소리도 완전히 달라졌지만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다. 이렇게 엄마와 함께 밥을 먹을 수 있기를 늘 기도했었다. 엄마와 조용하고 평온한 숲길을 함께 산책할 수 있기를 희망했었다. 너무 당연했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깨닫는 데 우리는 많은 시간과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 ‘만약’을 생각한다. 만약에 그때 내가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면? 우리 집이 서울이 아닌 먼 곳이었다면? 보험이 없었다면?(엄마는 1인실에 있는 기간 동안 늘 병원비를 걱정했다.) 동생이 결혼을 해서(동생은 최근 결혼했다) 간병을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래서 엄마가 위급한 상황에 간병인을 써야 했다면? 혹시 아빠도 편찮은 상황이었다면? 그랬다면 우리가 그 많은 수술과 입원과 퇴원, 병원생활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엄마는 내년 이후로 건강보험 중증환자 적용을 받지 못한다.(지금은 전체 진료비와 약값의 5%만 지불한다.) 엄마와 아빠는 그 때보다 더 연세가 들었고, 아빠는 퇴직을 했다. 앞으로 진료비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건 우리 가정만의 상황이 아니라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이다. 지금 내 나이 대 결혼한 친구들은 육아와 업무로 정신없이 바쁘다. 부모님이 편찮은 상황과 간병 역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생각할 여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누구나 마주해야 할 시기가 온다. ▶ 엄마가 퇴원한 후 처음으로 가족이 함께한 제주여행. ⓒ배윤정 그럴듯한 인생계획 대신 ‘이 순간 충실하게’ 모든 병원의 장례식장은 제일 눈에 띄지 않는 곳, 멀리 돌아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죽음’에서 멀어지고 싶은 인간의 마음 때문일까? 혹은 죽음이 나와 멀리 있을 거라는 ‘착각’ 때문일까? 죽음은 어둡고, 괴롭고, 힘든 것일까? 제일 가까운 사람이 죽음의 직전까지 몰린 상황을 겪어내며, 결국 마지막에 남은 마음은 그것이 우리 생과 바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순간 한 순간, 내가 마시고 내뱉는 모든 숨에서 우리는 ‘살아있음’과 ‘죽음’을 경험한다. 어떻게 죽어가는가와 어떻게 사는가는 결국 같은 말이었다. 어렸을 때처럼 그럴듯한 계획을 세우는 일이 줄었다. 대신 이 순간을 어떻게 하면 ‘충만’하게 보낼 것인지가 목표가 되었다.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할까. 이번 주 휴일에는 엄마와 선유도공원에 갈까 한다. 가까이 있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가을이 오는 숲길을 함께 오래 걸을 생각이다. 일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도영원님은 영국 글래스고대학교에서 인권과 국제정치 석사를 전공하고, 현재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인권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 해쉬태그 #트랜스젠더 농담 올해 여름, 나는 한 세미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몇 명은 화장실에 가고, 나를 포함해 남은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옆에 있던 한 남성 참가자가 이런 말을 해서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성분들은 다 화장실에 가셨네요.” 그 자리에는 내 친구인 다른 여성이 있었으므로, 그가 나의 비(非)여성적 젠더 정체성을 존중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다. 우리 둘과 화장실에 간 여성 참가자들 사이의 차이가 뭐였냐고? 그렇다, 나와 내 친구는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고, 화장실에 간 여성들은 모두 ‘청순한’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다. 종종 그러하듯이 이 날도 머리 길이가 내 성별을 결정했던 것이다! ▶ 무엇이 여자를 여자로 만드는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이 가시화되면서 혐오발언을 마주할 일도 그만큼 많아진 것 같다. 특히 최근에는 트랜스젠더 배제적인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며 (페미니즘의 주체가 될 자격이 있는) ‘여성’은 스스로 이름 붙임으로써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절대적인(또는 타고난) 속성이라는 주장을 종종 접한다. 그러나 페니스 대신에 클리토리스를 달고 있는 나를 볼 때, 이들은 결국 알아볼 방법도 없는 나의 본질(?)보다는 ‘여성적인’ 얼굴이나, ‘여성적인’ 꾸미기, 혹은 신체의 모양과 같은 정보에 의해 나의 성별을 판단할 것이다. 만약 여자를 여자라고 부르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가 정말로 존재했다면, 성별을 구분하기 위해 굳이 성별 스테레오 타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 성별을 판단한다고 생각할 때 정말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출처: 셔터스톡) 또 하루는 와인 테이스팅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 엘리베이터 사건이 있었던 바로 그 세미나 참가자들과 함께였다. 경력 있는 소믈리에가 코르크 여는 법을 시연해 보이고 따라해 볼 사람을 자원 받았다. ‘보통 코르크는 남성분이 연다’는 말에 악동처럼 반항심을 자극 받은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강사는 예상대로 난처한 얼굴을 했다. “남성분께 양보하시겠습니까?” 분명히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나를 가리켜 남성이라고 했던 사람이, 이제는 나에게 여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나는 상황에 따라 비(非)여성이기도 하고 비(非)남성이기도 한데, 아무도 거기에 모순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성별이라는 꼬리표가 수시로 그 내용을 바꾼다는 사실에 상당히 익숙한 것이 아닐까? 성별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고정적인 기호가 아니다. 한 마디로 여성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매번 다른 것을 가리키고, 또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맥락에 따라 어떤 ‘여성’을 가리키는 것인지를 금방 파악한다. 예를 들어 산부인과에서 말하는 ‘여성’은 해부학적으로 질과 자궁 등 ‘여성기’가 달린 사람이다. 또 소개팅을 시켜 달라는 비(非)성소수자 친구가 “아는 여자애 있냐”고 물어볼 때의 ‘여자’는 ‘여성의 외형’을 가진 남성애자라는 뜻으로 통한다. 언젠가는 내가 가방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았을 때 주위에 서있던 사람들이 “여자다!”하며 놀린 적이 있는데, 이 때 ‘여자’는 물론 ‘여성적인’ 취향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을 이르는 것이다. 이 생각에 처음 다다랐을 때, 나는 내가 가진 장난감 블록들을 다른 모양으로 조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었다. 변화는 나의 무의식에 호소했는지, 꿈속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성별 표현도 달라졌다. 나는 꿈에서 전형적인 여성의 외모를 하고 있지만 남성이라고 느껴지거나, 그 반대인 인물들을 보기 시작했다. 한 번은 꿈이 아닌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파티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파티가 끝난 뒤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성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성별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만나보니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성이라고 생각할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내게 자신이 여성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는 그가 여성이라는 인상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 여성성, 남성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역할(극)에 가깝다. (출처: 셔터스톡) ▶ 여성이라는 이름에 들러붙은 고리들 그러고 보면 ‘여성성’, ‘여성 신체’, 그리고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은 다 여성이라는 관념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서로 다른 것들을 말하고 있다. 때로는 마치 무작위로 맺어진 것처럼, 대부분의 ‘여성적’인 것에는 여성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어떤 필연적인 연관성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흔히 조신함이나 상냥함 같은 것을 ‘여성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들이 여성의 태생적 성질이라는 믿음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이미 페미니즘에 의해 수없이 격파되었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성이 없을지언정, 여성이라는 이름에 의해 연결되어 어느새 서로를 단단히 붙들고 강화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 같다. 여성성은 여성들이 가진 성질이기 때문에 여성성이라 불리고, 그러니까 여성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마땅히 이런 성질을 가져야 한다는 식이다. 여성과 여성성 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마치 닭과 달걀 중 어느 쪽이 먼저냐는 질문 같다. 이제는 누가 나를 함부로 여성이라고 지칭해도 쉽사리 불편해지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여성’이란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해봐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성기 모양을 말하고 있는가? 내가 사회적으로 여성이라고 지정되고 인식되는 사람임을 말하고 있는가? 내가 여성의 성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남성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말하고 있는가? 그렇게 의미를 유추하다 보면 어느새 화를 낼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페터 빅셀의 유명한 단편소설 에는, 혼자서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남자가 등장한다. 모든 사물의 이름을 뒤섞어버리면서 단조롭고 무료하던 그의 일상은 흥미롭게 탈바꿈하지만, 대신에 다른 사람과 평범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는 남자가 된 걸까? 그런데 정말 침대를 꼭 침대라고 부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일다
찐 고구마 3천원어치를 샀다. 주먹보다 작은 밤고구마 여섯 개를 봉지에 담아 달랑달랑 들고 지하철에 올랐다. 유독 배고픈 아침이었다. 카페 오픈 전, 황급히 고구마를 하나 까먹고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니 이내 고구마를 산 게 후회됐다. 생활비가 쪼들려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부터 3천원을 쓴 게 괜히 아깝다. 처음부터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한 건 아니었다. 일터 주변에서 밥을 먹으려면 기본 7천원은 필요했다. 매일 그만큼 식비를 지불하기엔 부담스러웠고, 그나마 저렴한 김밥○○ 같은 곳에서 5천원짜리 밥을 먹었다. 그마저도 부담스러워 3천원짜리 김밥을 사먹기도 했다. 결국 줄이고 줄여 편의점까지 온 것이다. 편의점에서는 2천원이 안 되는 돈으로 삼각김밥과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속이 조금 더부룩하긴 해도 꽤 든든한 한 끼 식사다. 카페에서 일하면 하루에 한 잔씩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카페 근무 최고의 메리트인 셈이다. 겨우 커피 한 잔이지만 무려 커피 한 잔이었다. 2천원으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2천원짜리 커피라니. 보통 커피를 마시는 건 카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지만 이 커피는 커피를 위한 커피다. 이런 나의 상황이 딱히 슬픈 건 아니다. 다만 이것저것 고려해가며 고민하는 게 성가시고 피곤할 뿐이다. 나 스스로를 돌보고 먹이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엔 에너지가, 돈이 부족하다. 임금노동은 나를 돌보는 일을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지만, 어느 순간 임금노동을 위해 나를 돌봐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불균형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한숨이 나온다. 내가 더 ‘노오력’할 필요가 있는 걸까. 애초에 ‘노오력’으로 해결될 문제이긴 한 건가. ▶ 포장마차 앞에서 ⓒ머리 짧은 여자, 조재 퇴근길 버스정류장. 이곳엔 길거리 포장마차가 빽빽이 들어서있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꼭 닭꼬치를 사먹는다. 일종의 보상심리다. 내가 하루종일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닭꼬치 하나를 못 사먹어? 돈 아끼겠다고 점심을 그렇게 때우고 퇴근길에 맨날 닭꼬치를 사먹다니 웃기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스튜핏”(하지 않아도 될 소비를 할 때 쓰는 말)이다. 그래도 먹는다. 일하기 위해 허기를 채워주는 음식만 먹고 살기엔 하루가 너무 팍팍하다. 일다
※ 필자 정욜님은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운영위원장입니다. -편집자 주 ‘첫’ 부산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오는 23일 토요일, 서울과 대구에 이어 부산에서 처음으로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다. 올해 서울시청 광장에는 7만이 집결했고, 대구백화점 앞에 1천 명 넘는 시민들이 모인 것을 감안하면 부산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는 해운대역 광장 앞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해운대구청이 도로 점용 허가를 내지 않은 상황이라 여러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구청 측은 행사가 겹쳐서 허가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전에 같은 행사가 열렸을 때 ‘자유한국당 대표의 토크콘서트’가 개최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비겁한 변명을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보수 기독교계의 항의 때문에 입장이 난처하다고 밝히는 게 솔직한 답변일 것이다. 서울과 대구에서 이미 경험했던 것처럼 부산에서도 ‘2017, 레알러브시민축제’라는 이름으로 보수 기독교 신자들의 맞불집회도 예정되어 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보류하고 외면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지방에서 퀴어문화축제를 개최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전이다. 부산 퀴어문화축제가 정말 성소수자 혐오 선동의 패악질에 위축되지 않고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10월에는 제주에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내년에는 매달 각 지역에서 성소수자 자긍심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된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회를 살면서, 성소수자들에게 퀴어문화축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성소수자 단체들과 지지단체들이 마련한 부스 행사에 참여하고, 퀴어문화축제의 백미인 퍼레이드 한복판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 서울시청 광장에서 개최된 퀴어문화축제에서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부스 모습. ⓒ띵동 제공 축제에 참여했다고 욕설, 폭력 겪은 청소년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이하 띵동)은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끝나고 나서, 그 후유증과 관련한 상담을 몇 건 진행했다. 축제를 통해 만끽했던 자긍심은 축제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부모님에게 발각되면서 산산조각 났고, 심지어 폭행을 당했다는 이도 있었다. 띵동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퀴어문화축제 참가 전후 위기발생 실태조사’를 7월 22일부터 31일까지 열흘 간 진행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설문조사에는 총 257명이 참여했는데, 응답자의 평균 나이는 18세(2000년생)다. 그중 서울 또는 대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217명(84.4%) 가운데 약 45.5%(101명)가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사실을 보호자가 알게 되었다고 답했고, 그 이후 36.3%(37명)가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집안에는 그런 년이 하나도 없었는데 왜 너만 유독 그딴 식이냐, 같은 이야기를 들었어요.”“커밍아웃할 생각 절대 하지 말라고, 너는 하면 끝이지만 부모한테 주는 상처는 엄청 크다 이러고… 성소수자 근처도 가지 말라고 했어요.”“그렇게 살지 마. 이건 죄악이야…”“티내지 말라고, 동네 쪽팔려서 못 다니겠다고 하였습니다.”-「청소년 성소수자의 퀴어문화축제 참가 전후 위기발생 실태조사」(2017) 응답자들의 답변 중에서 보호자로부터 겪은 부당 대우에는 위 사례와 같은 폭언/협박(24명)이 가장 많았고, 휴대폰이 압수되거나 검사를 받는 등 사생활을 침해당한 경우(15명), 외출금지 등 이동의 제한(15명)을 받았다고 응답한 청소년들도 있다. 퀴어문화축제에서 구입한 물품이 압수(9명)되거나 심지어 아래 사례처럼 폭행(4명)을 당한 이도 있다. “새벽 1시쯤 부모님께 퀴퍼 물품을 들키고, 핸드폰의 사진을 들켜서 다 뺏기고 불태우고 폰도 망가져서 혼자 고쳤습니다. 커튼고정 시키는 기다란 봉으로 10대 정도 허벅지를 맞아 피멍이 들고 식칼을 던지셔서 팔에 스쳐지나가 살짝 베였습니다.” 퀴어문화축제에서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 이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경험한 현실은 너무나 참담한 것이었다. 부모들이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도 한 몫 한다. ‘더럽고’ ‘문란하고’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보수교계의 선동과 보수 언론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마 ‘성소수자 부모모임’이 축제에 참여해 프리허그 행사를 진행한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지 모르겠다. 혐오세력의 선동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꿈꾸며 이처럼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이후 부모님 등이 알게 되어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우도 있었지만, 축제에 참석하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설문조사 응답자들 중에서 40명(15.6%)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제 가족은 호모포비아입니다.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하기가 매우 무섭고 또 다른 폭력을 당할까 무서웠습니다.”“가고 싶었지만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주위 시선이 두려웠다.”“혹시나 보수 기독교재단이랑 부딪힐까봐.”“부모님이 그런 델 왜 가냐, 너 동성애자 아니잖아, 거기 게이들이 키스하는 곳 아니니, 못 간다며 반대하셨습니다.”“엄마는 나한테 커밍아웃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한 적도 있다. 아마 (축제에) 가서 뭘 샀다면 다 버려졌을 것이고, 갔다 왔다는 자체로도 심하게 혼났을 것이다.”-「청소년 성소수자의 퀴어문화축제 참가 전후 위기발생 실태조사」(2017) 응답자들의 답변 중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부모님의 반대로,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여서, 아웃팅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성소수자 혐오 세력의 선동이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두려움을 주었고, 평소 성소수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가족들의 태도가 선뜻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띵동은 고민이 많아졌다. 누구나 즐겁게 참여하고 ‘자긍심’을 표현할 수 있는 퀴어문화축제에 ‘두려움’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한 이후 부당한 대우를 겪은 사례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부당한 대우를 당한 37명의 응답자 가운데 7명만이 띵동 등의 단체에 상담을 요청했다. 어쩌면 이러한 설문조사에 참여하는 과정 자체가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는 자신이 겪은 차별과 폭력에 대해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띵동은 이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더 안전하게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할 수 있도록 (2018년 발간 예정)를 준비할 계획이다. 부산 퀴어문화축제에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참여할 것이다. 서울과 대구까지 오지 못했던 지역사회 청소년들이 생애 첫 퀴어문화축제를 생각하며 기대와 망설임의 감정이 교차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축제에서 띵동은 대표 프로그램인 ‘띵동식당’을 통해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날 예정이다. 용기 내어 세상을 향해 한 발 더 내딛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만날 수 있길 손꼽아 기다린다. 또한 이들이 부당한 대우에 맞서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늘 함께할 것이다. ※ 「청소년 성소수자의 퀴어문화축제 참가 전후 위기발생 실태조사」에 참여해 준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말하기 쉽지 않은 경험을 이야기해주었기 때문에 이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일다
※ , 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매일 아침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우리 손으로 다시 만들어져 우리들 자신의 손에서 ‘탄생되어 나올’ 수 있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위대한 삶이 되랴!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 봄날의 부엌 ⓒ김혜련 아름다운 부엌을 꿈꾸다 “압구정동 같은 부엌에 선비의 방이라…” 우리 집에 처음 온, 육십 대의 재일교포 남성의 말이다. 그는 부엌은 최신식으로 세련되었고, 방은 조선시대 선비의 방처럼 청빈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집은 방과 부엌 공간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부엌은 가능한 편하고 환한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건 내가 부엌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부엌에 들어서려면 뭔지 모르지만 큰 병명이 나올 것만 같은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병원엘 가야할 때나,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가며 타고 가야할 때처럼 몸은 저절로 무기력해지고 기운이 쫙 빠진다. 등에 거대한 짐을 잔뜩 진 것 같이 피곤해진다. 이런 내가 남은 생애 동안 스스로에게 정성스런 밥을 올리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부엌을 가능한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려 했다. 들어서고 싶은 공간, 활기에 찬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채워서 아름다운 공간’이 있고 ‘비워서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남쪽의 산사(山寺)가 있다. 선암사와 송광사. 두 절은 비슷한 위치에 있는데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둘 다 사람을 끄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의 차이가 ‘채움’과 ‘비움’으로 느껴졌다. 송광사는 비워서 절제된 꼿꼿한 아름다움이라면 선암사는 꽉 채운 아름다움이었다. 이런저런 사채들과 건축물로 채워져 있는데 그것이 어수선하거나 번다함이 아니라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내적 자기 질서를 지닌 ‘채움’ 이었다. 방은 비우고 부엌은 채워서 각기 다른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처음엔 아름다운 부엌에 대한 별 개념이 없으니 인터넷을 찾아봤다. ‘아름다운 부엌’으로 치니 정말 많은 부엌들이 주르르 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부엌들이 많았지만 그 부엌들은 보이기 위한 부엌이지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공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래 보다보면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남의 집에 가면 부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부엌들은 다 비슷했다. 최근에 지어지고 평수가 큰 아파트에는 시스템 키친이라는 세련되고 멋진 부엌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그 부엌이 내게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경주에서도 골짜기에 들어가 살고 있는 한 다인(茶人)의 집 부엌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한 그의 집은 아름다웠고 모든 게 다 작았다. 그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 부엌이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 움직이기도 어려운 공간이었다. 게다가 몹시 추웠다. 부엌에서 사람의 체취를 맡기도 어려웠다. 차 마시는 공간은 작아서 따뜻하고 아름다운데, 부엌은 협소하고 불편했다. 그 집은 밥보다는 차(茶)가 중요하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웃의 부엌 ▶ 서쪽 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면 부엌의 사물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김혜련 부엌이 집의 중심으로 보이는 집이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육십이 넘은 분의 부엌이다. 일찍이 ‘심심하게 살고 싶어서’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인 경주로 내려와 살고 계시다. 그 집은 부엌 채가 따로 있다. 오래된 옛집의 안채는 헐고 새로 집을 지었는데 사랑채는 그대로 두고 부엌으로 쓰고 있다. 그 부엌에 가면 뭔가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어디서 올까? 어느 가을 그 부엌의 풍경과 느낌이다. “작고 오밀조밀한 부엌엔 온갖 색깔이 있다. 선명한 원색 빛을 지닌 그릇들, 모양이 서로 다른 오래된 아름다운 의자들, 든든한 식탁, 작은 가구들이 햇살 속에 반짝거린다. 마당에는 가을 햇살을 받은 벚나무의 붉고 노란 단풍들이 투명한 빛으로 빛난다. 푸른 대나무 잎 사이사이 빛의 물결이 흐른다. 밥의 온기가 퍼지는 공간에 산스크리트어로 발음되는 만트라가 고요히 작은 웅얼거림으로 흐르고 있다. 문득 이토록 눈부시도록 강렬한 色이야말로 空이구나 하는 느낌. 이 부엌의 강렬한 빛깔들, 아름다움 속에서 비로소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의미가 활짝 드러난다.” (2014년 11월) 사십여 년 부엌 살림을 해 온, 그 살림에 애정을 지니고 살아온 한 개성 있는 존재의 부엌을 보는 일. 그것이 굉장한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어떤 종교성까지를 느끼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침에 차 한 잔을 들고 뒤뜰로 걸어갈 때, 그 찰랑거리는 차가 쏟아지지 않게 차 한 잔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나의 수행입니다.” 또 다른 부엌이 있다. 이웃의 부엌이다. 집도 작고 부엌도 작다. 부엌의 물건들은 다 손수 만든 것들이다. 행주, 식탁보, 찻잔받침, 냄비받침… 모두 바느질하고 수를 놓아 만들었다. 식탁, 찬장, 의자 같은 부엌 가구들도 스스로 만든 유일한 것들이다. 그릇들은 한꺼번에 세트로 구매한 게 아니라 수 십 년 차곡차곡 모아온 것들이어서 제각각의 특징이 있다. 이 부엌에 들어서면 ‘아…’ 하고 숨이 크게 쉬어진다. 정갈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다. 작은 키에 몸무게가 오십 키로가 채 안 되는 가난한 여인이 창조한 자기 세계다. “어제는 참 힘든 하루였어요. 이런저런 걱정스런 일들도 많고…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 부엌에 서니, 내 공간에 들어서니, 이게 내 삶이구나, 내가 내 삶을 살고 있구나… 스스로 믿어지고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어요.” 단 한 번도 부엌이 내 공간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는 나는, 그의 말에 놀란다. ‘부엌이 자신의 공간이라고 느끼는 구나…’ 누구나 자신의 공간에 있을 때 자기답다고 느낀다. 평생 밥을 해도 부엌을 자신의 공간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수십 년 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학교를 내 공간이라고 느껴보지 못한 것처럼…. 자신의 공간이 어디인가? ‘내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가 믿어지는’ 공간은 어딜까? 그런 공간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의 말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부엌을 자기 공간이라고 느끼고,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이 믿어지는 사람의 삶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삶은 든든해 보였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남다른 기품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가장 근원적인 것에 정성과 애정을 바치는 이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품격이었다. 나는 부엌이라는 공간의 외관을 관찰하고 찾아보는 내 행위의 부질없음을 이해했다. ▶ 겨울의 부엌 한쪽 ⓒ김혜련 부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살림’ 부엌의 차이는 공간의 크기 또는 싱크대나 그릇, 부엌 기구의 고급스러움 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부엌에서 밥을 하고, 살림을 사는 태도의 차이였다. 기계적으로 그 일을 하는지, 지겨워하며 할 수 없어 하는지, 아니면 그 일에서 자기다움이나 삶의 기쁨을 느끼는지…. 말 그대로의 ‘살림’을 살고 있는 부엌에는 그 ‘살림살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 공간에 부여된 빛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가장 자기답고 종교적이고 초월적 공간이기조차 했다. ‘살림 여성주의자’ 김정희는 ‘살림’이라는 한 마디는 일자무식의 어머니들이 도달한 정신적 경지를 유감없이 드러내준다고 말한다. 이 한 마디가 남성이 만들어낸 모든 사상이나 철학을 압도할 만한 위용을 내품는다고 느낀다. 문자 이전의 구전시대에 발화되었을 이 말이 ‘원수를 내 몸 같이 사랑하라’ ‘자리이타(自利利他)’와 같은 예수나 부처의 성구(聖句)에 비견될만한 깨달음과 웅장한 울림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김정희, ) 나는 그 위대한 언어가 구체적으로 실현된 부엌을 본 것이다. 내가 부엌 공간을 세련되고 아름다운 물건들로 아무리 채운다 한들, ‘살림’을 살지 않는 한 나의 부엌은 아무런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은 여전히 뿌리 없이 허공 위에서 흔들릴 것이다. 일다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갑자기 떨어지는 소나기, 교복을 입은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처마 있는 곳을 향해 달린다. 그런데 그중 유난히 작고 뒤처진 아이가 보인다. 아이는 깔깔거리며 “현기증 때문에 빨리 못 뛰어”라고 말하고, 앞선 아이들도 깔깔거리며 “병신같이 왜 못 따라와”라고 말한다. 다들 유쾌해 보인다. 병신이라는 말을 듣고, 뱉은 실제 마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병신(病身), 글자 그대로의 원뜻은 ‘병이든 몸’이다. 그러니까 현기증이 있다는 그 아이도 나도 병신이다. 그리고 현대인의 상당수가 병신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병신의 원뜻은 사실상 사라졌고, 질병이 있는 몸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거나, 보다 직접적으로는 장애가 있는 몸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말이 되었다. (사실 질병과 장애는 명징하게 분리하기 복잡한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질병과 장애는 긴장이 존재하는 관계로, 이 글의 주제와도 연결되어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이슈인데, 많은 설명이 필요하므로 다음 기회로 넘긴다.) 어쨌거나 병신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웃으면서도 화내면서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멸시의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병신이라는 말만큼 강력하고 배타적이진 않지만, 아픈 몸을 차별하는 말들이 일상에서 흔하게 돌아다닌다. ▶ 아픈 사람을 차별하는 표현 ⓒ이미지 제작: 조짱 # 질병과 정체성 “긍정적이네요, 아픈 사람 같지 않아.”“유쾌하네요, 장애인 같지 않아.”“의리있네요, 여자 같지 않아.” 세 문장의 공통점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수용해야 ‘칭찬’을 긍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픈 몸 정체성과 계속 함께 살아야 하는 이들에게 아픈 몸을 부정하는 것은 질병과 함께 사는 삶을 계속 한탄하거나, 지속적으로 극복하고 갱신해야 할 정체성과 함께 산다는 의미다. 본디 차별이란 명시적으로 차별을 의도하거나 목표로 하지 않아도 발생한다. 그리고 차별 표현 수위가 낮다고 해서, 해악이 낮은 것도 아니다. 장기적으로 혹은 평생을 아픈 몸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 아픈 몸 정체성을 비하하는 표현은 우울과 소외, 자존감 저하를 불러온다. 결국 질병을 삶의 일부로 통합하는 걸 방해한다. 질병을 삶 속으로 통합해 낼 수 있느냐 없느냐는 아픈 사람 삶의 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 # 질병의 희화화 “난독증 있냐?”“암 걸리겠네!” 자신의 고통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농담’이나 한없이 가벼운 비유가 됐을 때 당사자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모두 웃음으로 받아 치는데, 당사자가 당혹스러움과 불쾌감을 표하면 비웃음을 받거나 고립되기 쉽다. 그런데 우리는 인터넷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난독증을 겪고 있는 이들이 놀림과 소외의 대상이 되는 현실, 암환자들이 완치 판정을 받은 후조차 단지 병력(medical history)이 있다는 이유로 취업과 교육에서 배제되기도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누구에게나 질병을 겪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생명체로서 질병에 대한 생래적 두려움도 있지만, 질병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은 불안을 크게 가중시켰다. 결국 박탈감 가득한 광폭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질병은 내 삶의 안전을 위협하는, 외면하고 싶은 위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아픈 몸이나 질병을 희화화함으로써 질병에 대한 깊은 불안을 잠시라도 해소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 건강 중심성 “건강이 최고지, 건강을 잃는 건 모든 걸 잃는 거야.”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협박성 예방 표현이다. 그런데 건강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고,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기도 하고 계속해서 꿈을 꾸기도 한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아픈 사람도 아픈 대로 공동체 안에서 돌봄을 주고받으며 나름의 역할과 존중 안에서 살 수 있는 사회라면, 저 말은 건강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표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질병에 차별과 낙인이 붙어 다니는 사회에서는 위험해 보인다. ▶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행위 진정 사건 통계 (2016년) 어떤 이들은 AIDS처럼 극단적 낙인이 부여된 질병이 아닌 한, 일반적으로 질병에 대한 차별은 미미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국가인권위원회 차별 시정 자료에서도 질병에 의한 차별 진정은 다른 영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2016년 국가인권위 차별 행위 진정 현황 중 병력에 따른 차별은 1.2%) 하지만 그건 지금과 같은 고실업 사회에서 병력 없는 ‘깨끗한’ 사람을 고용하길 원하는 건 당연하다는 태도, 혹은 너나없이 고통 받는 사회에서 ‘아프니까’ 그런 대우를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는 태도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즉 당사자에게 차별이 내면화되어, 차별을 차별로 명명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차별이 적기 때문이 아니라, 질병과 인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 수위가 낮고 오히려 아픈 사람의 인권이 취약한 현실의 반영이 아닐까. # 질병 개인화 “저러니까 병 걸렸지.”“조심했어야지 젊은 사람이 왜 병에 걸려?”“어떻게 살았길래 저 집은 암환자가 여럿이야.” 질병의 원인을 성격이나 생활습관에서 찾고 자기 관리의 실패로 보는 태도는 질병의 귀책을 철저히 개인에게 돌린다. 과거에는 신이 내린 형벌로 질병에 걸렸다고 여겼고, 요즘은 생활습관이 나빠서 질병이 왔다는 믿음이 강력하다. 실제 지금도 중증질병을 진단 받았을 때, 노년층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청년층은 ‘나의 어떤 습관이 문제였을까?’를 고민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어쨌거나 아픈 사람이 자책감을 갖게 된다는 점은 양쪽 다 공통적이다. 건강은 사회적 권력이나 차별과도 밀접하기 때문에 빈곤층일수록, 다양한 차별을 겪는 소수자일수록 더욱 아프기 쉽다. 사람들 또한 그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동시에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문화에 너무나 익숙하다. 그리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아픈 이들과 선을 그음으로써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이나 안전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 질병관리본부는 대사증후군을 생활습관에 의한 병으로 설명하고 있다. ⓒ출처: 질병관리본부 국가정보포털 덧붙여, 누가 그런 문화를 더욱 조장하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종편을 중심으로 한 방송은 물론, 정부에서 만든 질병 관련 사이트에도 개인의 생활습관을 강조할 뿐, 건강에 위해한 사회적 요소에 의해 질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누가 질병의 개인화 논리를 원하는지, 그를 통해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질병을 개인 책임으로 몰아갔을 때, 건강 불평등을 만드는 사회 구조는 희미하게만 보인다. 정부가 산재, 야근, 가정폭력, 젠더 불평등, 미세먼지 같은 사회적 건강 위해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새삼 또 생각하게 된다. # 정상성에 대해 ‘질문하는 몸’ 이처럼 질병을 둘러싼 차별적 말과 태도는 아픈 몸들이 사회에 평등하게 참여하며 존중 받아야 할 권리를 제약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질병을 개인의 불행, 수치, 책임으로 귀속시킴으로서 열등감을 갖게 하고, 종종 질병을 숨기기 위한 긴장이 유발된다는 점이다. 혹은 반대로 몸이 아프지만 쓸모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인정투쟁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질병을 극복했거나, 질병으로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거나, 질병이 있음에도 뛰어난 삶을 살았음을 입증하고자 노력한다. 나를 포함해서 질병과 함께 사는 이들이, 그 양쪽 모두 그만둘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알다시피 문제는 우리의 아픈 몸이 아니라, 질병을 삶의 일부가 아닌 배타적 대상으로 만든 사회다. 지배 권력의 필요에 맞는 정상과 효율의 기준을 만들고, 그것에서 벗어난 몸들을 모조리 차별하는 몹쓸 사회다. 오히려 자신의 쓸모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그만둘 때, 아픈 몸을 극복해서 정상이나 표준이 되려는 흉내를 그만둘 때, 그리고 아픈 몸과 불협화음을 만드는 이 사회를 자책 없이 성찰할 때. 바로 그때, 아픈 몸의 ‘쓸모’가 빛을 발한다. 건강과 효율이 정의(justice)가 된 사회에서 아픈 몸은 질문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 중심과 정상에서 밀려난 우리는 이 현실을 조망하며 새로운 정의를 질문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위치에 있다. 나는 계속해서 질문을 쏟아내는 내 몸을 조금씩 긍정해가는 중이다. 사실 아픈 몸을 긍정한다는 것은 아픈 몸을 거부하는 사회의 태도를 거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알다시피 병신의 사전적 의미 중 하나는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아픈 몸을 정상으로 복구하는데 전력투구하지 않고, 이렇게 사회의 태도를 거부하며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내 행동은, 그들 기준에서는 한참 모자라는 그야말로 ‘병신 짓’이다. 질병과 함께 사는 이들이 아픈 몸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규정에 갇히지 않길 바란다. 정상성에 대한 균열, 지배 권력에 대한 저항, 다른 상상력을 생성시키는 ‘질문하는 몸’으로 우리가 함께 트렌스(trans)할 수 있길 바란다. 일다
※ 지구별에 사는 34년산 인간종족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 소개: 아주] 스무 살. 집에서 용돈을 넉넉히 받는 처지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생활비를 써야 했다. 호감이 오고 가는 사이인 이에게 비싼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다. 부담스럽긴 했지만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니까 라고 생각했다. 맛있긴 맛있었다. 밥 먹고 나오는데 나한테는 ‘갑자기’이고, 그 쪽에게는 자연스러웠는지 내 허리를 손으로 감쌌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아직 그럴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이야 ‘뭐 하는 짓이냐!’ 할 테지만 그때는 15년 전이었고, 난 내 감정을 타인에게 직접 전달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다. 집에 와서 그 불편한 상황을 내내 복기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난 뭘 잘못한 거지? 내가 빌미를 준건가? 결국, 마음에 걸리는 건 그 사람이 비싼 밥값을 냈다는 거였다. 엄마가 ‘세상엔 공짜가 없다’ 신신당부하던 게 생각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랑도, 내 몸도 돈이구나 싶었다. 그다음부터는 철저하게 반반을 내거나, 내가 더 내는 게 마음이 편했다. 스물여섯 살. 명동에 있는 호텔 앞이 공사 중이라 차량 진행방향을 안내하거나 주차 안내를 하는 주차요원 일을 했다. 매일 아침 성당에 다니시는 할아버지가 ‘젊은이가 수고한다’, ‘열심히 산다’ 격려하시면서 아침마다 사탕을 주셨다. 사탕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르신이 주시는 거니까, 마음이 고마웠고, 도닥여 주시는 게 고마웠다. 그래서 가끔 나도 껌이나 캐러멜을 사두었다가 드리곤 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가 꼭 밥을 사주고 싶다 하시기에 일 끝나고 밥을 같이 먹게 되었다. 술도 한잔했다. 이야기가 야릇하게 흘러갔다. 당신이 OO건설 회장, OO전자 회장들의 자연 치유사라며 한번 치료하면 몇 백씩 받는다고 했다. 마포에 큰 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고 자식들은 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고 살고 있다며 ‘방이 많으니 들어와 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한사코 괜찮다고 했다. 어르신에게 버릇없게 굴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사실 뭘 모르기도 했다. 월세가 있긴 하지만 나는 혼자 사는 게 편했고 굳이 할아버지네 집에 들어가 살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지 난 너무 순진했다. 그 후에 당신 친구분이 최근에 서른 살 어린 여자를 집에 들여 자식을 낳았는데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며, 연신 부럽다며 자신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공부며 집이며 다 지원해 줄 수 있다고 했다. 헷갈렸다. 나한테 하는 이야기인가? 설마… 자꾸 술을 권해서 무서웠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인지 나는 그 할아버지보다 술이 세서 택시 태워 보내고 집으로 왔다. 며칠 후, 공사가 끝나고 내가 하던 일도 끝나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었다.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서른 살. OO대표한테 강연 사례비와 감사의 뜻으로 행사 주최 측 실무자인 내가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였다. 5년 전 그를 한 술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다. ‘여자가 술을 따라야 제 맛’이란 말을 들은 이후부터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그 대표가 있는 술자리에는 앉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행사 섭외를 맡게 되어 피해갈 수가 없었다. 사회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했으니 이젠 그쪽도 조심하겠지 싶었다. 그는 이런저런 내 사정을 어디서 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넘겨짚는 건지, 자기가 이 동네에 오피스텔이 있으니 들어와 살라고 했다. 친구네 전전하지 말고, 월세는 필요 없다고 편하게 지내라고, 자신이 일주일에 한두 번 서울에 오는데 그때만 같이 쓰면 된다고. 또 이건 뭔 소리지? 싶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강연비를 전달하는 자리였고, 나는 감사의 뜻만 표하고 밥을 먹고 헤어지면 되는 자리였다. 딱 술 한 잔만 하자고 하여 심하게 거절하는 것도 곤란하고 해서 간 술자리였다. 점점 말의 수위가 높아졌다. 거절했다. 난 당신과 잘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도망가는 내 등 뒤에 대고 ‘외로운 것도 죄냐!’ ‘나랑은 왜 안 자냐!’ 술은 별로 먹지도 않았는데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듯 집에 와 계속 울리는 전화기를 껐다. 다음 날 아침에 전화기를 켜보니 80통 넘게 전화와 문자가 와 있었다. 6개월 후 적성에 맞지 않아 그 일을 그만뒀고, 내가 다니던 회사는 1년 후에 문을 닫았다. 최근 그 대표 소식을 지인에게서 들었는데 술자리에서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이지’ 말하고 나서는 ‘아, 요즘에는 이런 말도 조심히 해야 하지’라고 덧붙인다고 했다. 요즘 것들은 쓸데없이 많이 알고 예민해져서 세상 불편하고 시끄러워졌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 들었다. 서른두 살. 내가 따르던 오라버니가 있었다. 믿었다. 오빠란 말은 친오빠한테밖에 안 쓴다. 오라버지는 몇 안 되는 어른에게 쓰는 친밀함의 호칭이었다. 금전적인 큰 실패를 겪으시고도 ‘인생은 유머 있게 살아야 한다’며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뭐든지 맡은 일은 열심히 하고 나이를 먹어서도 배우려는 자세와 열정적인 태도로 임했다. 배울 점도 많고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발목을 삐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심적으로도 우울했을 때, 온천행을 제안했다.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 때라 돈이 없다고, 부담되기 싫다고 했더니, 사람이 몸이 낫고 봐야지 무슨 돈이냐고 했다. 발목 삔 대는 온천욕이 최고라고 했다. 내가 상태 좋았을 때 자신도 좋은 기운을 받았으니 이럴 때 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고마운 마음이었다. 드라이브 하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서울 외곽 아주 큰 온천으로 갔다. 대중온천탕 줄에 서서 ‘그런데 저는 목욕탕에 숨이 막혀서 30분밖에 못 있는데, 얼마나 있다 나오실 거예요?’ 라고 묻는데, 그가 나를 잡아끌었다. 절뚝거리며 ‘왜요?’라고 했더니 가족탕이 있다며 대중온천탕은 사람도 많고 발도 삐었는데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가족탕으로 가자고 했다. 비쌌다. 현금으로 척척 계산하더니 키를 받았다. 이건 또 뭐지? 사고 회로 정지, 온 몸이 굳었다. 가족탕에는 침대 두 개와 간유리로 된 탕이 있었다. 물을 받고 탕에 들어갔다 나오면 마사지를 해주겠다고 했다. 일단 탕에 들어가서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밖에서는 필요하면 꼭 부르라고 세 번이나 이야기했다. 나는 문을 부여잡고서 괜찮다고, 쉬시라고 했다. 탕 안에 숨어 있다가 몸을 대충 닦고 마르지도 않은 몸에 가운 대신 입고 들어갔던 내 옷을 싹 다 챙겨 입고 나왔다. 마사지를 해주시겠다는 걸, 내가 하겠다고 했다. 마사지크림까지 챙겨오셨길래 뺏어 들었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땐 탕에 대여섯 번은 들어갔다 나와야 한다고, 그래야 발목이 낫는다고 하더니, 내가 나올 때마다 양말까지 챙겨 신고 나왔더니 두 번 만에 이젠 됐다며 본인은 씻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결국 40분만에 방에서 나왔다. 밥을 먹으며 그는 ‘아주는 정말 순수하구나’ 했다. 기가 찼다. 어쨌든 집까지 와야 했으므로 순순히 그의 차를 타고 왔다. 그 후로는 연락을 안 받는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 ▶ 웬만한 술값, 밥값, 찻값, 모텔비의 반 이상은 내가 낸다. ⓒ아주의 지멋대로 내가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과도 모텔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모텔 문도 내가 열고 모텔 계산대 직원도 내가 상대한다. 물론 카드결제도 내가 한다. 상대는 다음 날 밥을 산다거나 차를 사는 식으로 한다. 돈 때문이다. 그런 것을 기반으로 자세나 태도 면에서 섹스할 때도 나의 즐거울 권리를 당당히 요구한다. ‘사정할 거 같으면 이야기 해’ 라고 말한 다음 내가 느끼지 못했는데 상대가 사정할 것 같으면 내 몸을 뺀다. 내가 오르가슴까지 오르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사정을 해버리면 그 시간과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해야 하는데 힘들다. 굳이 상대의 사정하는 때와 나의 오르가슴 느끼는 순간을 맞추는 편이다. 돈으로 인해 감정노동을 하고 싶지 않다. 돈을 빌미로 상대가 내 몸이나 감정에 어느 정도의 지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싫다. 더럽고 치사해서 똔똔(손익분기점)으로 하자 이거다. 안다. 모든 비용을 반반 내는 것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는 걸.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도 해결되어야 하고, 남녀만이 아닌 계층과 계급의 문제로 기본수당도 고민할 부분이 많다는 거. 사람이 사람을 돈으로 거래하는 것이 아닌 사람으로 봐야한다는 의식 문제가 큰 그림으로 그려져야 한다는 거. 하지만 지금 당장 내 둘레 안에서라도 떳떳하고 당당하고 안전하고 싶어서 이렇게라도 하는 거다. 당신 마음에 들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들려고 악착같이 하는 거다. (※ 요즘 그림 작업을 무리하게 하는 바람에 손목염증을 앓고 있어서 이번 화에 손글씨는 쉬어갑니다.) 일다
※ , 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 빛이 들어온 식탁 ⓒ김혜련 왜 밥하는 일이 늘 낯설까? 잠 속에서 어슴푸레 눈을 뜬다. 다다다닥, 다다다다…도닥도닥, 도닥도닥 도도도…통통통통. 토동토동, 통통통… 도마 소리다. 오래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마치 행진곡을 듣듯 경쾌하고 발랄하다. 한 가지 소리가 아니라 다양하기도 하다. 도마 소리가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불규칙하고 둔탁한 도마 소리 따라 쿵닥쿵닥 불안하게 뛰던 내 심장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직 덜 깬 몸이 느끼는 방의 따뜻한 온기를 즐긴다. 삶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는 든든한 느낌. 이런 내가 낯설다. 아침이면 엄마의 화난 도마 소리와 ‘빨리 일어나서 일하라’는 고함 소리에 익숙한 나는 늘 도마 소리가 불안했다. 빨리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지 않으면 언제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선전포고처럼 들리던 소리다. 늘 나를 허둥지둥하게 만드는 소리다. 성인이 된 뒤 나도 엄마처럼 밥 하는 일을 지겨워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누군가 밥을 하고 있으면 괜히 불안해졌다. 옆에서 거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가 내게 화를 내거나 미워할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내가 밥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빈둥대고 놀고 있으면 화가 났다. 밥 하는 일은 고역이므로 누가하든 함께 같이 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했다. M이 밥을 할 때도 나는 옆에서 거들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그가 자신이 밥하는 전 과정을 계획하고 자기 속도와 흐름에 따라 하고 있다는 것, 내가 거드는 것이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밥 하는 행위를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그가 정성스럽게 해주는 아침밥을 꼬박꼬박 받아먹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불안과 어리둥절함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이윽고 잠자리에 누워 그의 도마 소리를 들으며 감미롭게 다시 잠이 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 밥에 대한 질문들이 많아졌다. 나는 왜 밥을 하러 부엌에 들어가는 행위가 그리도 힘들까? 왜 밥하는 일이 늘 낯설까?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늘 막막하기만 한 것일까? 음식 재료들을 가지런히 담아놓다. ⓒ김혜련 M이 밥하는 행위와 태도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밥 하는 일에 대해 아무런 개념도, 숙달도 없다는 거였다. 수십 년 밥을 했는데 밥하는 일에 대해 어떤 물리도 익힌 게 없다니… 난감했으나 그게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싫은 일을 하는데 거기서 무엇을 익힐 것인가? 오히려 증오심만 키웠을 뿐이었다. “언니야, 언니가 된장찌개 끓여 밥해준다 하면서 세 번이나 쓰러진 거 기억하나?” 후배의 말대로 나는 밥 한 번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내가 밥 한 자리는 폭탄이 서너 개쯤은 터진 것 같았다. 냄비와 솥, 그릇들이 온통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다. 이거하다 저거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채소를 씻고 있는데, 가스 불 위에 올려놓은 찌개는 끓어 넘치고, 그걸 끄고 오면 물은 온통 여기저기로 튀고… 그러다보면 정신이 다 나간 듯 혼비백산이다. “공부 못 하는 것들은 청소도 못 한다니까…” 교사 시절 동료가 하던 말이다. 나는 그 말이 잔인하게 들리기도 하고 좀 찔리기도 했다. 나도 청소를 잘 못하는 사람이다. 이유를 물으니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청소할 때도 머릴 써서 책상을 다 밀고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은 뒤 다시 책상을 정리정돈해서 시간도 노력도 덜 쓰면서 깨끗하게 하는데,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청소하는 걸 보면 여기 쓸었다 저기 쓸었다, 걸레질 했다 책상 옮겼다, 분주하고 힘만 들이지 질서도 없고 청소도 깔끔하지 못하다는 거였다. 나도 그랬다. 밥을 할 때 나는 이 거했다 저 거했다 힘만 들었지 도대체 질서도 없고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M을 관찰해보니 부엌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해먹을지 미리 생각했다. 머릿속에서 밥하는 전 과정을 꿰고 있었다.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부엌에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부엌을 항상 깨끗이 정돈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해보니 불필요한 에너지가 안 들고 기분도 상쾌했다.) 쌀은 밥하기 30분 전에 담가두고, 필요한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꺼내오고, 국물을 낼 야채나 멸치를 다듬어서 국물을 내고, 반찬거리나 국거리들은 썰어서 큰 접시에 각각 담아두었다. 일정한 두께와 크기로 썰어 놓은 재료들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그 전 과정에서 싱크대에 널리는 그릇이나 도마 칼 등을 제자리에 정리하고, 행주로 닦았다. 물 튀김이 없도록 수돗물은 적당한 수준으로 틀고, 물일을 하다 다른 일로 옮길 때는 손을 행주에 닦았다. (늘 물을 질질질 흘리며 밥을 하는 나는 무슨 대 발견을 한 양 기뻤다. 아, 행주로 손을 닦으면 되는 거였구나!) 밥하는 과정에 복잡하고도 다양한 질서가 있는데, 그게 오래 몸에 배어 거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하나의 음식을 만드는 일은 메뉴 구상부터 설거지까지 여러 단계의 과제들을 포함한다. (…) 음식을 만드는 작업이 이 단계에 따라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복잡성을 더한다. 한 번에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기도 하지만 한 가지 음식을 만들 때도 설거지와 정리정돈, 조리·가열은 동시에 진행된다. 또 메뉴 구상이 재료 구입에 앞서기도 하지만 장을 보다가 메뉴를 바꾸기도 하고,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의 상태가 메뉴를 결정짓기도 한다. 이 모두는 짧게는 하루, 길게는 1년 뒤의 밥상까지 내다보는 작업이다. 주부는 내일 먹을 쌀을 오늘 밤에 불려 놓고 여름에 나는 재료로 가을까지 먹을 장아찌를 담그며 가을 김장은 1년에 걸쳐 준비한다. 이 누적된 노동이 모여 한 끼의 밥상이 차려진다. (…) 아주 길고 다차원적인 시간에 걸쳐 행해지면서도 바로 그 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적시 노동이란 게 집밥 노동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한마디로 ‘엄청나다.’ -김원정, “집밥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집밥의 미래설계는 페미니즘 과제, 레디앙, 2015년 7월 22일자 김원정의 말대로 한 끼의 밥이 밥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하고도 ‘엄청난’ 일이 일어나야 한다.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하찮게 보고 대충 때우려했으니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밥 하는 일의 구체적인 질서나 규칙을 익힌 게 없으니 부엌에 들어가는 일이 막막하기만 한 거였다. 항상 처음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 들판 가득 벼들이 익는다, 밥이다! ⓒ김혜련 밥의 개념 “나 밥 잘 해요~” 나이 들어가면서 부부가 함께 밥을 해야 사는 게 평화롭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 남편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전기밥솥에 쌀 씻어 누르는 게 밥하는 거라면 유치원생도 하지.”친구는 기가 찬다는 듯이 혀를 찼다. ‘밥만’ 하는 걸 밥 한다고 여기는 친구 남편을 보면서, 그나 나나 별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밥’하면 그저 한상 잘 차려놓은 밥상을 떠올리는 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밥의 소비자’의 위치에 자신을 세워둔 것이었다. 그러나 밥을 한다는 행위를 제외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가? 밥을 먹는다는 건 ‘밥을 하는 행위’와 ‘밥의 재료’가 밥 개념에 들어가야 가능해진다. 밥의 외연을 넓히면 밥은 ‘한 입 톡 털어 넣는’ 게 아니라 아주 육중한 문제가 된다. 밥의 개념 속에 ‘밥하는 행위’가 들어오면 밥이 달라진다. 밥을 하는 ‘과정’을 이야기하게 된다. 억지로 하는 밥, 기계적으로 하는 밥, 대충하는 밥, 정성스러운 밥, 즐거운 밥… 다양한 밥이 있다. 그러면 묻게 된다. 누가 밥을 하는지, 왜 계속하는지… 정성스러운 밥, 즐거운 밥이 되려면 어떤 사회경제적, 개인적 조건이 필요한 것인지 질문하게 된다. 또한 밥의 개념엔 당연히 밥의 재료들이 들어가야 한다. 마트에 진열된 재료를 돈 주고 사는 걸 넘어서, 작물을 땅에 심는 것까지 가야만 최소한의 밥 개념이 될 수 있다. 농사짓는 행위가 곧 밥이다. 유전자 조작된 농산물이나 농약을 먹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 국적불명의 재료나, 음식이 아닌 데 음식인 척 하는 가공품들을 먹는 일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 작지만 단단한 가을무 ⓒ김혜련 밥하기의 즐거움 밭에서 무 하나를 뽑는다. 비료를 먹지 않고 제 힘으로 자란 무는 작지만 단단하다. 햇빛에 드러난 푸른 부분은 단아하고 땅 속에서 올라온 흰 부분은 말갛다. 늦여름에 씨를 뿌리고 물을 준 생명이 씩씩하게 잘 자라 가을 햇살에 반짝이며 줄 지어 서 있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무청은 잘라서 무시래기를 만들면 겨울 내내 맛있는 시래깃국을 먹을 수 있다. 무를 흐르는 물에 씻는다. 단단하고도 묵직한 무의 몸이 믿음직스럽다. 무로 만드는 음식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들깨국이다. 냄비에 다시마, 굵은 멸치, 말린 표고버섯을 넣어 다싯물을 낸다. 무를 약간 도톰하게 채를 쳐 들기름에 볶다가 우려낸 육수를 붓고 끓인다. 들깨가루를 큰 숟가락으로 듬뿍 넣고 은은한 불에 좀 더 끓인다. 집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다진 마늘과 파로 양념을 한 다음,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불며 맛을 본다. 담백하면서 구수하고 달달하다. “와아~ 바로 이 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뭇국의 완성이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정성들여 밥을 한다. 밥 하는 전 과정을 자각적으로 느끼면서 ‘허겁지겁’이 아니라 천천히, 어떤 질서를 가지고. 그러면 밥 하는 행위에 기쁨이나 빛 같은 것이 들어온다. 쌀을 씻을 때와 미역을 씻을 때의 손의 감촉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되고, 그 감촉의 차이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다. 밥하기의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어가는, 느리고도 긴 내 여정이 스스로 믿음직해질 날이 머지않아 오리라. 일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비혼여성들이 부모나 조부모, 형제를 간병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개인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는 가족을 간병했거나 간병 중에 있는 비혼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공유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 엄마와 함께 산책을. ⓒ이현미 2017년 현재, 만32세 비혼 여성인 나는 몇 년째 몸무게가 39kg에 불과하다. 부모 돌봄 경력은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도 베테랑이다. 올해 만62세로, 발병 전까지 워킹맘이었던 엄마는 2002년 첫 수술을 한 이래 뇌혈관수술 두 번, 심장혈관수술 세 번의 이력이 있다. 크고 작은 시술은 제외하고…. 2012년 6월, 언니가 손녀딸을 출산하고 딱 열흘 만에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가신 아빠는 사망 당시 만52세였다. 몸에서 대장암을 발견하고 3년을 채 못 사셨다. 언니는 만34세, 남매를 둔 엄마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 중이다. 하고 싶은 일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던 언니는 스무 살 때부터 이어진 엄마 돌봄에 지쳐 스물일곱 살 되던 해 도망치듯 결혼을 택했다. 그때는 결혼이 필수인 줄 알았고, 지긋지긋한 집에서 욕 안 먹고 나올 수 있는 유일한 활로라고 생각했다 한다. 오빠는 1982년생이고, 새언니와 함께 아들만 다섯(9살 쌍둥이, 7살, 5살, 3살)을 키우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외벌이다. 오빠는 엄마 발병 당시 군대에 가야 했고, 아빠 발병 당시 이미 삼형제를 키우는 가장이었다. 가족 간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 머리 속에 떠오른 대로 써 본 우리 가족 소개가 참 우울하기 그지없다. #2017년 9월 17일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멀리 있는 언니에게 전화하기 정말 싫었다. 나: 언니야! 엄마가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어. 금요일부터 이상했는데 어제, 그제 밤새도록 거의 못 잤어. 꼭 뭐에 쓰인 사람마냥 고함치고… 일어나지도 못해서 누운 채로 소변까지 봤어. 근데 내가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하게 해. 옷 갈아입히려고 엄마 옆에 가면 근처에도 못 오게 발로 차고… 일어나려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려다 넘어지고 해서 내가 잡아주려고 하면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내가 뭘 잘못했냐고~!” 하고 소리 소리를 지르면서 자꾸 때리려고 해. 이제 나도 못 알아보나봐. 어떻게 해. 언니: 왜? 도대체 왜? 컨디션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했잖아. 8월 초에 서울 왔을 때만해도 정신은 말짱했고, 엊그제 통화할 때도 멀쩡했는데… 나: 응. 6월에 수술하고 나서부터 조금씩 기력도 회복하고, 먹는 것도 잘 먹고, 컨디션도 점점 좋아지고 있었는데… 지난 주말에 엄마가 아빠 보고 싶다고 해서 납골당 갔다 오고 나서 먹는 것도 영 시원찮고 기분도 다운돼 보이더니만 결국에… 괜히 갔다 왔나 봐. 언니, 오늘은 정말로 나 혼자서 너무 힘드네. 언니: 미안해. 미안해……. 이모는? 연락해봤어? 내가 지금 대구 내려갈까? 나: 왜 언니가 미안해. 이모는 오전에 선약 있어서 오후는 되어야 올 수 있대. 언니도 애들은 어떡하고 서울에서 여길 오냐? 일단 지금은 엄마 막 잠 들어서 이불만 갈아주고 나왔는데… 내일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나 이미 상반기에 엄마 입원으로 연차 다 쓰고 더 이상 연차는 없어. 회사에 미리 이야기해도 그냥 무단결근 처리야. 회사에서도 내 사정 봐줄 만큼 봐줬다고… 이번 연말에 구조조정 한다는데 아무래도 나 잘릴 것 같아. 언니: (…) 일단 엄마 잘 때 너도 좀 자! 내가 요양원 알아볼게. 나: 잘 시간 없어. 이불 빨아 말려야 해. 저게 마지막 이불이야… 다행히도 엄마는 다음날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요즈음 엄마는 집근처 데이케어센터에서 낮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엄마를 시설에 보내는 것만큼은 최후로 미루고 싶었다. 하지만 올해 연초부터 엄마의 상태는 심상치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에게 치매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병원이 지긋지긋하다고, 꼭 감옥이다 했었다. 외벌이로 아들만 다섯 키우는 오빠내외에게 나는 차마 엄마 돌봄까지 분담하자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육아휴직 중인 언니가 잠시라도 엄마를 서울로 모시고 가겠다고 했지만, 매주 가는 병원 진료는 어떡할 것이며, 무엇보다 내 집을 떠나기 싫어하는 엄마를 무턱대고 서울로 보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비혼이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우리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내가 왜 이 나이에 벌써 이런 곳에 와야 하는지 내 신세가 서글프다’며 죽어도 가기 싫다고 3일을 울던 엄마는 막내딸 생각해서 며칠만 가보겠다고 하시더니 다행히 센터에 정을 붙이고 계신다. -데이케어센터의 돌봄 지원이 절실했다 올해 초, 이런 저런 이유로 우울증이 온 엄마는(나는 정말로 우울증인 줄도 몰랐다. 정신력만큼은 강인했던 엄마가 말이다.) 내가 출근하고 난 이후 시간, 혼자 집에서 식사도 약도 챙겨 드시지 않았다. 현재 모두 삼십 대인 3남매는 먹고 살기 바쁜 일상 중에 고작 전화 한 통으로 점심은 드셨냐? 약은 꼬박꼬박 챙겨 드셨냐? 운동은 하셨냐?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응, 그래’ 라고 대답뿐이던 엄마는 당신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젊고 건강한 나도 혼자 먹는 끼니를 꼬박꼬박 챙기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만만치 않은 병원비와 생활비를 책임지면서 돌봄을 하는 자녀의 일상이 돌아가려면, 이제 기관의 도움은 불가피하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돌봄의 주체와 객체가 바뀌면서 겪어야 하는 정신적 충격과 감정 노동은 어마무시하게 힘들었다. 서로가 서로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 또한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부모를 시설에 보낸다는 것이 현대판 고려장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제발 타인의 삶의 맥락을 모르면서 가슴을 후벼 파는 소리를 함부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설에서는 영양에 맞춰 식사를 챙겨준다. 때 맞춰 약도 챙긴다. 우리는 이것만해도 감사했다. 그런데 물리치료와 운동, 미술, 음악치료 등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그뿐인가? 하루 종일 혼자 멍하니 TV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 새로운 말벗까지 생겼다. 무엇보다 엄마의 보호자인 나는 아주 잠시라도 내 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나마 이렇게 기관에서 시간제 돌봄이라도 받으려면, 노인장기요양 등급을 받아야 개인의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엄마처럼 만65세 미만인 경우 각종 구비 서류가 많고 까다롭다. 그 중 의사 소견서가 꼭 필요하다. 엄마는 뇌경색으로 인한 상세 불명의 치매, 심근경색이라는 대학병원의 진단서가 있었다. 그런데 당최 의사가 소견서를 써주려고 하지 않았다. 최초의 뇌경색 진단을 받았던 대학병원으로 가서 소견서를 받으란다. 그러려면 또 진료 예약을 하고 기다려야 하고, 각종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 나는 하루가 급한데 전문의가 소견서를 써주지 않으려는 이유를 도대체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다행히 9월 말, 센터의 도움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양등급 신청을 하고 심사를 받는 중이다. 공단에서 가정방문 조사 후 심사 결과만 한 달째 기다리고 있다. 심사에서 떨어질 경우 적지 않은 비용을 어떻게 부담해야 하나 또 막막하다. 만65세라는 수치도 참 그렇다. 그때까지 살아계실지도 모르는 일인데…. 나와 엄마는 당장의 도움이 절실한데 말이다. ▶ 데이케어센터에서 프로그램 참여 중인 엄마. ⓒ이현미 #2017년 6월 26일 월요일 오후 후텁지근한 날씨처럼 찐득한 기다림이 드디어 끝났다. 나: 언니! 시술 잘 끝났어. 폐에 물이 차서 숨 쉬기 힘들었던 거래. 검사 결과 다행히 심장은 올 봄보다 좋아졌어. 근데 언니… 크고 작은 비용들은 내가 다 결재했는데 이번에 퇴원할 때는 언니랑 오빠도 입금 좀 해줘야겠다. 언니: 그래, 알았어. 나: 우선 언니! 내가 문자 보내는 곳으로 간병비 좀 송금해줘. 언니: 왜 벌써? 간병서비스 며칠 더 받지. 너 일주일 내내 잠도 거의 못 잤다면서… 나: 언니, 말도 마. 환자를 방치하는데 서비스는 무슨. 나름대로야 업무 매뉴얼대로 한다고 하겠지만 내가 봤을 땐 방치 수준이야. 엄마도 최대한 빨리 퇴원하고 싶다고 해서, 의사가 퇴원해도 된다고 하면 바로 퇴원할 거야. 언니: 하지만 집에서는 네가 너무 힘들잖아. 나: 병원이라고 해서 수월하지 않아. 회사-집만 왔다 갔다 하는 것도 힘든데 회사-집-병원까지 오고 가는 게 더 힘들어. 병원에서는 엄마도 나도 도저히 잠을 못 자겠어. 과거에는 입원했을 때에는 꼭 간병 서비스를 받아야 했던 게 아니었다. 올해 6월만 하더라도 엄마는 의식이 또렷하고 의료진과 의사소통이 되는 환자여서, 입원 기간 중 낮 시간에 내가 한두 시간 자리를 비우고 은행이나 간단한 업무 등을 볼 수 있었다. 이모나 엄마의 친구가 와서 보호자 역할을 대신해 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 직계존속 관계인 보호자가 24시간 환자 곁에 있지 않으면 일반병실 대신 무조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병실로 입원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뭔가 불편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으면 입원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병원 측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 갑자기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바람에 엄마가 늘 가던 대학병원이 아니라 119 구급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응급실과 장기/노인성질환관리센터까지 운영하는 꽤 규모가 있는 병원이었다. 다른 병원들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병원은 간병인 한 사람이 환자 여덟 명을 보고 있었다. 간병인은 엄마의 소변통을 제대로 비워주지도 못했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까딱하면 넘칠 만큼 가득 차 있는 소변통을 비우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했다. 시술 직후 엄마의 기저귀를 갈아야 해서 간병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싫은 내색을 하며 “이런 건 보호자가 하는 일이에요”라고 했다. 정부에서 요즘 홍보하고 있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가뜩이나 바쁜 간호사에게 간병 업무까지 더해주었다고 하여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많은 제도라는 것을 이번에 제대로 경험했다. 일선에서는 결국 간호 인력이 부족해서 간병서비스를 하는 업체들과 제휴해 간병인을 병원에 파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개인사업자 계좌로 간병비를 따로 입금했으니 말이다. 일반병실에 있으면서 낮에는 이모나 엄마 친구가 와 계시면 엄마도 편하고 더 좋은데, 병원비는 병원비대로 나가고, 간병비는 또 간병비대로 나가고… 도대체 환자, 보호자 모두 불편한 이 제도는 누구를 위한 제도란 말인가? 간호사든 간병인이든 고된 노동과 역할에 비해 적절한 보수가 책정되지 않은 이 제도의 부당함이 결국 환자와 가족들에게 피해로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2년 월드컵 열기가 채 식지 않은 7월 한여름 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엄마가 갑자기 쓰려져서 지금 대학병원이라는 것이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언니가 가장 먼저 대학병원 응급실에 도착하고, 외근 중이었던 아빠와 군 입대를 앞두고 있던 오빠가 뒤이어 도착했다. 그 해 고2였던 나는 ‘수업 마치면 집에서 기다리라’는 문자를 받고 안절부절 못했다. 당시 만46세였던 엄마의 병명은 뇌경색이었다. 응급실에 몇 시간 있다가 바로 수술실로 옮겨졌다. 의사는 정신없던 아빠와 언니에게 수술 전 동의서를 내밀며 간단하게 설명했다. “수술 중에 사망하실 확률이 80%이고, 깨어나셔도 언어장애나 신체 불구가 되실 확률이 거의 90% 이상입니다. 수술에 동의하십니까? 여기 서명하시고, 원무과 가셔서 수납하세요.” 일단 번갯불에 콩 볶듯 서명을 했고 카드를 긁었다. 우리 가족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당장 엄마를 살려 놓는 것 말고는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불안감과 황당함이란 말로도 글로도 표현이 안 된다. 6시간의 수술 끝에 중환자실로 옮겨진 엄마는 23일 동안 무의식 상태였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식물인간’ 상태라는 거다. 우리는 그 때 평생에 걸쳐 흘릴 눈물을 23일 동안 모두 다 흘렸던 것 같다. ▶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약. ⓒ이현미 엄마가 의식을 차리고부터는 본격적인 간병이 시작되었다. 뼈와 가죽만 남은 엄마를 간병하기 위해 아빠와 언니가 24시간 나누어 병원과 집을 번갈아 오고갔다. 우리 자매는 하루아침에 엄마가 하던 5인 가족의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의식을 차리는 순간 통증이 온몸을 조여와 너무 괴로워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겠다던 엄마, 아직 자식들 뒷바라지가 끝나지 않아서 이 악물고 재활의 의지를 다졌다는 엄마는 병원 생활 3년 8개월 만에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의사가 말했던 “사망하실 확률, 불구가 되실 확률”에서 모두 벗어나 얼마나 감사했던지….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한 번 더 뇌수술을 받아야했다. 그리고 15년째 혈관계 수술을 반복적으로 해오고 있다. 올해 봄 다섯 번째 수술이 분명 끝은 아닐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각종 검사와 진료,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약,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엄마도 우리도 병원은 징글징글하다. #2010년 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던 날 나: 언니~ 배 뭉친다는 건 좀 괜찮아? 출산예정일이 6월 말이랬지? 놀라지 말고 들어. 언니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언니: 뭔데 그래? 뜸 들이지 말고 빨랑 얘기해. 나: 아빠가… 아빠가 대장암이란다. 언니: (…) 왜? 도대체 왜? 끊임없이 우리 가족에게 이러는 거냐고 예수님이든 부처님이든 붙잡고 따지고 싶었다. 처음 1년간은 항암치료를 하면서 아빠는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하지만 긴 병에 장사 없다더니 아빠는 1년 후부터 눈에 띄게 불안해하고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수술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당신 몸에서 하루라도 빨리 암세포를 떼어 놓고 싶다고 하셨다. 수술은 서울에서 하시겠다고 결정했다. 수술 전 언니는 18개월 첫째아이 육아에 둘째까지 임신한 몸으로 엄마와 함께 아빠를 간병했다. 언니도 나처럼 엄마와 번갈아가며 밤새 아빠 다리를 주물렀겠지? 항암치료의 부작용인지 원체 약했던 체질이라 그런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아빠의 말초신경 중에서도 종아리신경과 발가락신경이 그렇게 우리 가족을 잠 안 재우고 힘들게 했다. 언니도 나도 간병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잠 못 자는 고통이었다. 서울에서 수술을 마치고 대구에 내려와 후속 치료를 진행하던 차에,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되면서 아빠는 살겠다는 의지를 놔 버리신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아빠는 무서운 속도로 암에게 잠식당했다. 그 무서운 간병 역시 비혼 여성인 내 몫이 되었다. 엄마도 성치 않은 몸인지라 나는 부모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해 회사까지 그만 두고 2년을 그렇게 아빠 곁을 지켰다. 할머니, 엄마, 딸. 세 여자가 매달렸지만 결국 아빠는 떠났다. 살아남은 아내를 죄인으로 만들어 놓고…. 경상도 종갓집 장남이 일찍 병을 얻은 맏며느리 때문에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 암에 걸렸다는 둥, 없는 집안에 시집가 젊어서부터 뼈 빠지게 고생만 하다가 남은 것은 병뿐이라는 둥, 친가와 외가의 소리 없이 시끄러운 신경전은 내가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기로 선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간병으로 결근 8일, 정리해고가 눈앞 우리 삼남매는 20대 때부터 원가족공동체를 위해 부모의 병원비와 보험료, 생활비를 부담했다. 장남인 오빠와 큰딸인 언니는 결혼 후에도 결혼 전보다는 액수가 적지만 계속해서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의 결혼 후에는 많은 부분이 비혼인 나의 몫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지금까지 엄마 부양을 묵묵히 해올 수 있었지만, 올해 말 만일의 실업 후가 정말 막막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정규직 전환을 늘리겠다고 했고, 치매 부모를 돌보는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책도 펴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희망이라는 것에 기대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희망의 불빛은 정말 잠깐 타오르다 말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중소기업에서 계약직 직원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어 평가 기간을 두고 일부 직원만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회사 내규의 기준에 미달하는 자는 정리해고 한단다. 난 그 평가 기간에 엄마 간병으로 이미 무단결근만 8일이다. 정규직의 꿈은 애당초 물 건너갔다. 엄마의 데이케어센터 이용 국비 지원도 아직 결정 난 게 없다. 매년, 아니 매일 나는 엄마의 건강 상태가 이 정도만이라도 유지해주길… 하고 바란다.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정말 내 인생에도 봄날이 올까. 이런 몸 고생, 마음 고생은 억만금을 준다 해도 제발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 일다
※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전업으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필자 블럭] 여성괴물 성공시대 어느덧 올해도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10월이 지나고 11월이 다가오면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동시에 다음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하지만 2017년이 지나려면 아직 두 달하고도 조금 더 남았다. 이 시점에서 결산 같은 것을 내놓기는 애매하지만, 올해 팝 음악 전반의 흐름과 현상에 관한 이야기는 지금이라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기존의 가치관이 만들어낸 ‘여성스러움’을 벗어난 이들이 다수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 2014년 비욘세와 니키 미나즈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Flawless” 리믹스 버전 이미지 바바라 크리드는 영화 영역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한, 그리고 ‘여성 괴물’(The Monstrous Feminine)이라는 개념을 꺼낸 사람이다. 그는 바기나 덴타타(Vagina Dentata)라는, 그러니까 ‘이빨 달린 질’이라는 개념을 통해 수많은 신화와 영화 속에서 여성의 존재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분석한다. 여성으로부터 거세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가진 남성들이 어떤 식으로 그러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비유했는지를 영화에서 살펴보면 나 부터 , 등 여러 영화 속 ‘입’과 ‘절단’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다시 해석할 수 있다. 거세하는 성기 앞에 선 남성의 두려움인 것이다. 여성 괴물이라는 개념은 이제 음악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최근 알앤비 음악은 능동적인 여성이 직접 자신의 성적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과거 음악에서 여성은 언제나 수동적이었다. 남성을 기다리고, 남성이 무언가를 해주길 바라며 심지어는 성적 욕망을 이야기할 때도 ‘해 달라’ 혹은 ‘하고 싶다’, ‘해 줘’가 대부분 곡이 지닌 말투였다. 머라이어 캐리를 비롯한 1990년대, 2000년대 팝 가수들이 부른 노래의 대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최근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가 위켄드(The Weeknd)와 함께 불렀던 “Love Me Harder”까지도 그랬다. Tell me something I need to know 내가 알아야 할 걸 말해줘 Then take my breath and never let it go그리고 내 숨까지 가져가서 나를 놓지 말아줘If you just let me invade your space만약 네가 날 너의 품에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한다면I’ll take the pleasure, take it with the pain아프더라도 기꺼이 그 기쁨을 받을게-Ariana Grande “Love Me Harder” 가사 하지만 이제 예쁘고 섹시한 여성이 수동적인 성적 욕망을 이야기하는 시대도 저물었다. 올해부터는 여성 괴물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비욘세(Beyonce)나 리아나(Rihanna) 등 예쁘고 섹시한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욕망을 드러낼 때, 기존의 가부장적 시선으로 여성음악가를 대상화하는 면은 여전히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 그 흐름마저도 조금씩은 바뀌고 있다. ‘여성스러움’ 기대를 깬 여성뮤지션들 2014년에 니키 미나즈(Nicki Minaj)는 거친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화두를 낳았지만, 지금의 니키 미나즈는 명실상부 스스로 여성 괴물을 자처한 강하고 멋진 음악가다. [관련 기사] “여성 괴물”을 자처하다, 혹은 포장되다 http://ildaro.com/6777 ▶ 케이 미셸(K. Michelle)이 작년 발표한 앨범 [More Issues Than Vogue] 자켓 이미지 기존의 가치관이 만들어낸 ‘여성스러움’을 벗어난, 그렇게 기존의 가치관이 기대하는 모습을 깨는 여성들이 다수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러한 시도가 처음 있는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초반, 케이 미셸(K. Michelle)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그러한 흐름의 시작(?)을 알렸는데,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주목을 하지 않았다. 과거 알앤비 음악이 남성중심적이었고, 남성음악가들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곡이 1980년대부터 오랜 시간 유지되어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케이 미셸의 알앤비는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뚜렷한 의미가 있다. Missing you is way too hard to do, I’d rather be fucking you너를 그리워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야, 차라리 너와 섹스하고 싶어-K. Michelle “Hard To Do” 가사 지금까지 이런 음악이 작품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면, 올해 시저(SZA)가 발표한 앨범 [CTRL]은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매체로부터 호평을 얻는 동시에 가사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Heard you got some new homies/Got some new hobbies Even a new hoe too 새 친구들이 생겼다고 들었어.새로운 취미도 생기고, 새로운 년도 생겼다며Maybe she can come hump you/ Maybe she can come lick you after we’re done어쩌면 걔가 너와 그 짓을 하고 네 걸 해줄 수도 있겠네 우리가 끝나고 나면What’s done is done/ I don’t want nothing else to do with it끝난 건 끝난 거니까 딱히 뭘 하거나 그러고 싶진 않아Let me tell you a secret/ I been secretly banging your homeboy비밀을 말해줄게, 난 네 절친이랑 몰래 자곤 했어While you in Vegas all up on Valentine’s Day네가 발렌타인 데이에 종일 라스베가스에 있을 때 말이야-SZA “Supermodel” 가사 ▶ 올해 시저(SZA)가 발표한 앨범 [CTRL] 자켓 이미지 이곡 외에도 “Love Galore”에서는 ‘니네 남자 놈들처럼 나도 여자 좋아하고 그래’와 같은 내용과 요즘의 연애 문화를, “Drew Barrymore”에서는 데이트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Normal Girl”에서는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앨범은 평범한, 미국에 사는 20대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에도 그 내용 하나하나가 지독히 현실적이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알앤비 음악가 중 한 명인 저네이 아이코(Jhene Aiko)는 [TRIP]이라는 앨범을 통해 약물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저네이 아이코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순수한 여성 이미지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지적했다. 자신은 딸이 있는데도 어떻게 그런 이미지를 생각할 수 있는지 의아하다고도 말했다. 앨범 [TRIP]은 전반적으로 약물에 관한 경험담을 담았다. 앨범은 단편영화와 앨범, 책이 하나로 묶여있는 프로젝트 중 일부이며, 저네이 아이코는 어둡고 깊이 있는 세계를 선보인다. 이처럼 스테레오 타입을 거부하는 동시에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여성음악가들이 올해 부각되었다. 프린세스 노키아(Princess Nokia)와 켈라니(Kehlani)는 각각 [1992 Deluxe]와 [SweetSexySavage]라는 작품을 통해 두 사람이 태어난, 그리고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은 1990년대의 무언가를 선보인다. 두 사람 모두 ‘톰보이’ 이미지를 드러내는가 하면 ‘여성성’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I really like Marvel ’cause characters look just like me난 정말 마블(미국의 코믹스와 영화 제작사)을 좋아해, 캐릭터들이 나 같거든And women don’t have roles that make them look too sexually그리고 여성들이 너무 섹슈얼하게 보이는 역할을 안 하잖아- Princess Nokia “G.O.A.T” 가사 ▶ 올해 프린세스 노키아(Princess Nokia)가 발표한 앨범 [1992 Deluxe] 자켓 이미지 레게, 힙합, 댄스홀에서도 드러나는 여성의 목소리 카디 비(Cardi B)는 1998년 로린 힐(Lauryn Hill)이 “Doo Wop (That Thing)” 이후 처음으로 피쳐링(곡에 목소리를 보태는 것) 없이 본인의 랩만으로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했다. 다른 피쳐링이 있는 곡까지 포함하더라도 카디 비는 역대 다섯 번째 빌보드 1위 여성래퍼다. 카디 비는 외에도 많은 기록을 경신하며 새 역사를 썼는데, 오랜 시간 니키 미나즈 외에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는 여성 래퍼가 전무했던 가운데 등장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여기에 카디 비는 니키 미나즈와 축하, 감사의 메시지를 SNS로 나누기도 했다. 카디 비는 니키 미나즈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카디 비는 마담느와르(Madamenoire)를 비롯한 복수의 매체에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해 그를 여성의 힘 모으기에 있어 10대, 20대에게 영웅과 같은 존재라고 평가하는 매체도 있었다. 사실 카디 비는 클럽 스트리퍼 출신인 동시에 SNS 유명 인물로 먼저 알려졌다. 이후 TV 프로그램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얼굴을 드러내는가 하면, 레게와 힙합을 아우르는 음악 스타일로 음악적인 정체성을 구축하기도 했다. 자신의 과거를 당당하게 여기며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카디 비는 매력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래퍼 배드 베이비(Bhad Bhabie) 역시 주변인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 ▶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래퍼 카디 비(Cardi B)의 싱글 “Bodak Yellow” 이미지 리코 내스티(Rico Nasty), 이샤나(Ishawna) 등 대중음악 시장의 새로운 문을 여는 데 있어 힘이 되는 음악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이샤나는 남성중심적이며 동성애 혐오 가사가 만연했던 레게, 댄스홀 시장에서 여성의 힘과 목소리를 이야기한다. 올해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던 이샤나의 “Equal Rights”의 가사에는 자신의 남성에게 구강성교를 받고 싶다고 말하는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상황과 표면적인 이야기 자체는 이렇지만 그 안에는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댄스홀 커뮤니티에서 많은 논쟁을 낳았다. 이처럼 올해는 끊임없이 좋은 작품, 의미 있는 사건들이 있었다. 지니어스(Genius)를 비롯한 몇 해외 매체에서 2017년의 팝 음악은 과거와는 다른 현재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아직 그러한 목소리가 많지는 않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더라도 올해는 앞선 2010년대 어느 해보다 여성뮤지션의 새로운 시도 면에서 가장 의미 있는 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7년의 팝 음악은 과연 어떤 느낌인지, 앞서 소개한 음악을 하나씩 찾아 들어보길 권한다. ※ 비욘세 feat 니키 미나즈(Nicki Minaj) “***Flawless”(remix) http://bit.ly/1rSrYLP ※ 케이 미셸(K. Michelle) “Hard To Do” http://bit.ly/1HpVOPc ※ 시저(SZA) “Supermodel” (Acoustic Version) MTV http://bit.ly/2haE2dh ※ 저네이 아이코(Jhene Aiko) “Overstimulated” (Audio) http://bit.ly/2y4pJkW ※ 프린세스 노키아(Princess Nokia) “G.O.A.T” http://bit.ly/2t8yFSc ※ 카디 비(Cardi B) “Bodak Yellow” http://bit.ly/2tdJ6Et ※ 이샤나(Ishawna) “Equal Rights” http://bit.ly/2i64vIA 일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남순아님은 페미니스트 영화인입니다. -편집자 주 촬영 현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강의하다 얼마 전 백승화 감독(걷기왕, 2016)이 연출한 웹드라마 촬영을 마쳤다. 나는 이 작품에 인물 담당 연출부로 참여했고 스태프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했다. 촬영 때는 교육을 받는 스태프 위치였던 내가 이번에는 강사로 참여할 수 있었던 건 올해 6월,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여성민우회가 공동 주관한 ‘영화산업 내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단 양성교육’을 받은 덕분이다. ▶ 웹드라마 스탭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하는 모습 ⓒ남순아 때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제안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불평할까봐 지레 걱정했다. 다른 현장에서는 ‘우리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는 거냐’며 교육에 불만을 표한 스태프도 있었다고 한다. 어째서 ‘잠재적 조력자’가 아니라 ‘잠재적 가해자’에 감정 이입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행히 에서는 자연스럽게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이슈가 되면서 백승화 감독 현장에서는 당연히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성희롱 예방지침도 콘티북에는 맨 뒤에 실렸다면, 콘티북에는 앞 쪽에 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현장의 성희롱 예방교육을 내가 진행하면 어떻겠냐고 제안 받았을 때는 걱정부터 앞섰다. 강의를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이면서 동시에 이 작품에 속한 스태프란 이유로 홀로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젠더폭력에 책임을 쳐야할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가 되었다고 해서,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화내는 사람이 무섭다. 여기서 말하는 ‘화'는 특정한 화를 의미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이 자신의 기분에 따라 드러내는 짜증, 고성과 욕설, 나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를 비롯한 사람들)를 긴장하게 만드는 행위들이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영화 현장에서 나를 버티기 어렵게 만든 것은 성폭력만이 아니었다. 직급과 나이, 경험 차에 의한 위계폭력도 늘 위협적이었고, 훨씬 자주 일어났다. 그러나 위계폭력의 경우엔 ‘영화 현장이 원래 그렇지, 뭐’라거나 ‘바쁘니까 어쩔 수 없잖아’ 하는 식으로 성폭력에 비해 가볍게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겁이 많은 나는 항상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한동안 극영화 일을 하지 않았던 것도, 혼자서 작업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것도, 촬영 때 성희롱 예방교육을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 촬영 중 배우 가이다마(앵글과 조명을 보기 위해 배우 대신 위치하는 것) 서는 모습 ⓒ남순아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한 것이 알려져 주목받았을 때, 사람들은 우리가 교육을 받았으니 다른 현장과 달랐을 거라고 기대했다. 심각한 폭력은 없었지만 평등하고 민주적인 분위기였다고 할 수는 없어서, 이전에 참여했던 현장과 다른 게 있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한 기분이 들곤 했다. 사실 겨우 두 시간의 성희롱 예방교육으로 변하는 것은 많지 않다. 평등은 한 번의 교육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위계를 허용하고, 영화라는 대의를 지향하는 문화에 익숙하다. 의 콘티북에 실린 성희롱 예방지침을 보면, 성희롱은 ‘문제 있는 개인’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가 묵인되고 재생산되는 조직문화로 인해 발생한다고 나와 있다. 조직문화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무엇이 바람직한 행동인지 알게 하고, 구성원들의 행동과 태도를 결정한다. 이 조직에서 바람직한 행동이 무엇인지 구성원들은 내부에서 학습하게 된다. 따라서 조직문화는 서로에게서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재생산되며 변화한다. 레베카 솔닛은 책 에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가르치려 들고 여성의 발언권을 빼앗는 행위가 여성에 대한 강간과 살인까지 이어지는 연속선 상의 현상들이라고 지적한다. 폭력은 점진적으로 커지고 강화된다. 조직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 조직에서 무엇을 허용하느냐에 따라, 일상적 행위가 위계폭력과 성폭력으로까지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가 봐도 분명한 위계폭력과 성폭력보다, 폭력이라고 하기 애매한 것 사이의 것들을 더 많이 겪는다. 따라서 위계폭력과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조직에서 가해자만 배제하는 것은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가해 행위를 가능하도록 허용했던 조직문화를 돌아보고 수정해야 한다. 성폭력은 젠더 위계가 주요하게 작동하는 폭력이므로, 성폭력도 위계폭력과 별개의 것으로 볼 수 없다. 나는 혼자서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개인이 조직문화를 만들거나 바꿀 수 없기에, 변화의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하고 그 변화의 방향이 합의되어야 한다. ‘폭력을 저지르지 말자’라는 추상적 합의가 아니라, 무엇을 폭력이라고 생각하는지 각자의 감수성을 맞추는 것도 중요했다. 다른 스태프들과 이전 작업들에서 폭력적인 상황을 겪거나 목격한 적 있었는지, 우리 현장은 어땠으면 좋겠는지, 그러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대화를 잠깐씩 쉬면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혹은 귀갓길에 일상적으로 나누었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끝난 뒤에는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고민과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대화의 과정에서 어떨 때는 우리의 문화를 돌아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방법이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명쾌한 해결법은 없어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외롭지 않았다. 문제가 생겨도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 사무실에 프린트해서 붙여두었던 평등문화 약속문. 감독의 당부가 가져올 수 있는 효과 촬영 첫째 날, 첫 컷을 찍기 전 백승화 감독은 전체 스태프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꺼냈다. “촬영장에서 바쁘고 긴장된다는 이유로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등의 위계 폭력을 많이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이번 현장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저부터 그러한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각 파트의 스태프들과 특히 헤드 스태프들께 당부 드립니다. 이미 알고 계신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첫 촬영 전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9회차 잘 부탁합니다.” 촬영장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갖고 있는 감독이 위와 같은 당부를 한 것은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에게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이번 현장 스태프의 75%, 키 스태프의 3분의 2가 여성이었다(보통 현장은 반대의 경우가 많다).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백승화 감독도 저 공지를 할 때 매우 떨렸다고 한다. 다만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성/평등한 조직이 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교육에서 나온 내용을 예방지침으로 만들어 콘티북에 실은 것처럼,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한 번 더 스태프와 배우들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늘 그렇듯 이번 촬영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완벽한 현장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과 관련되지 않은, 상하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훨씬 적었기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공동체는 윤리적일 뿐만 아니라 능률 측면에서도 효율적이다. 주요 스태프들이 그런 분위기를 형성하니 다들 따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스태프와 배우들도 소리 지르거나 위압적으로 현장을 이끄는 사람이 촬영장에 없어서 좋았다고 한다. 한 스태프는 소리를 지르지 않고도 돌아가는 현장을 처음 보았다고 했다. ‘우리를 지켰구나’ 하는 생각에 만족하고 있을 때, 보조출연으로 오신 배우 분이 이 현장에는 욕설도, 닦달도, 무시도 없어서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 예상치 못한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기쁜 마음이 들면서도 내가 얼마나 협소하게 ‘우리’와 ‘영화계’의 범주를 잡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 촬영 중 슬레이트를 치는 모습 ⓒ남순아 ‘#영화계_내_성폭력’ 누가 해결할 것인가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가 나온 지 1년이 지났다. 해시태그 운동 이후 나는 ‘#영화계_내_성폭력’에서 영화계는 어디인지 계속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현장에서 겪은 성/폭력 피해 경험을 말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과 관계없는 일인 것처럼 선을 그었다. 한 남성 영화인이 자신은 그런 일을 듣도 보도 못했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내 피해 경험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키 스태프의 위치에 오른 여성 영화인들에게는 아직도 그런 일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상업영화를 하는 영화인들로부터는 단편영화, 교육기관, 독립영화 판에서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상업영화 현장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들었고, 반대로 독립영화 하는 사람으로부터는 상업영화 현장에서나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은 ‘극영화계에 문제가 많지’ 라고 말했다. 아무도 폭력과 관계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 폭력은 도대체 누가 저지르는 것이며 어떻게 허용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누가 해결해야 하는지도. 자신이 폭력과 관계가 없다고 여기면 폭력은 계속 남의 문제가 된다. 그렇게 되면 나는 폭력의 고리를 끊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다른 누군가 혹은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변화는 영화계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나고, 어떤 현장이 좋은 현장인지 토론하고, 좋은 현장을 경험하고,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면서 영화계의 구성원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다. 이러한 태도가 게으르고 순진한 것은 아닐까 고민할 때도 있지만, 해결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는 않으려 한다. 폭력을 버티지 못한 이들이 떠나면 그것을 버틸 수 있는 이들만 현장에 남게 되고, 그들에 의해 폭력을 허용하는 문화는 강화된다. 나는 떠나지 않고 변화를 만들고 싶다. 일다
※ 지구별에 사는 34년산 인간종족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 소개: 아주] ▶ 안녕?! ⓒ일다(아주) 일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이가현님은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12월 22일은 오랜만에 좀 추위가 가신 날이었다. 아침부터 날씨를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연말 금요일 밤, 건대입구역 사거리에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사람들이 북적였다. ‘2017 밤길걷기 시위’를 하기 위해 피켓을 잡고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앞에 모여 있는 불꽃페미액션단은 거대한 파도처럼 흘러가는 인파들 속에 소수였고, 그래서 더 결연해보였다. ▶ 12월 22일 금요일 밤, 건대입구역 사거리에서 열린 ‘2017 밤길걷기 시위’ ⓒ불꽃페미액션 “보호가 아니라 안전이 필요하다”“안심하고 사과주스 마시고 싶다”“동의 없는 SEX는 강간이다” 이번 밤길걷기 시위는 아직도 밤길을 걸을 때 별다른 안정장치 없이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여성들의 처지를 토로하고, 사회가 안전해져야 밤거리를 불안하지 않게 다닐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열린 것이다. 또, 술 마실 일이 많은 연말에 술에 취했다는 것을 핑계로 모텔이나 자취방에 여성을 데려가 강간하고, ‘너도 동의했으니까 따라왔겠지’라며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는 한국 사회의 강간 문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몰래 술에 약물을 타 넣어서 강간하는 이른바 약물 강간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5월 대선 당시 홍준표 후보가 젊은 시절 친구들과 돼지발정제로 강간모의를 했다는 내용이 책에 실리면서 논란이 되었다. 홍준표 지지자들은 ‘젊은 시절 치기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너그러이 넘어가자고들 했다. 하지만 실제 약물 강간의 피해자들은 강간을 당하고 몸 사진이 찍혀 불법촬영물 공유사이트에서 ‘무한공유’되기도 한다. 약물 강간은 ‘너그러이’ 넘어가서는 안 될 강력 범죄다. 몰래 약물을 탈 수도 있으니 술잔에 술을 남겨놓고 화장실을 가면 안 된다는 흉흉한 이야기가 이미 여성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밤길걷기 시위를 시작하고 참가자의 발언이 이어졌다. 아래는 두 사람의 이야기다. ▶ 12월 22일 금요일 밤, 건대입구역 사거리에서 열린 ‘2017 밤길걷기 시위’ ⓒ불꽃페미액션 저는 더 이상 모텔을 가도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믿지 않았기에, 세 번 중 한명의 남성에게는 내가 왜 모텔에 가고 싶지 않은지, 모텔이 왜 무서운지를 설명했습니다. 그 남성은 썸을 탔을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설득하고 싶었고, 잊고 싶은 경험을 이야기해서라도 공감을 얻어내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남성을 일반화한다’며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데도 같이 자주지 않는다며 서운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건이 있고 난 후 제가 너무 힘들어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을 때, 친구가 저에게 “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어? 난 그 자리에 가만히 있던 너한테 더 화가나”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 여성친구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상대가 더 이상 대화가 가능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바로 도망치라고 말했습니다. 여성친구들의 답변은 비슷했습니다. 저도 그래서 더 이상 상대방이 나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했을 때, 나또한 그 사람의 이성을 잠식한 성욕을 무시하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저도 일반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 왜 우리 모두 ‘남자는 다 늑대야’라는 말을 정설로 알고 있으며, 그 말을 왜 누가 하는 겁니까? 그건 ‘언제든지 너를 강간할 수 있어’라는 협박 아닙니까? 지금 페미니스트를 대하는 태도는 남자는 다 늑대야, 라고 해서 그렇군, 조심해야 겠다, 했더니 무슨 소리야? 일반화하지 마! 남혐 하지마! 라고 소리치는 격 아닙니까? 정말 둘 중에 하나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란 말인가 트위스트 추면서… 한국 남성들은 진실로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이성의 존재에서 끌어내리는 소위 ‘남혐’을 하게 만들 겁니까? 아니면 술 먹이고 강간하는 그 뻔한 시나리오를 이제 멈추겠습니까? 스스로를 늑대로 위치시키는 남혐을 멈춰주세요! 구호 한번 외치겠습니다. 너랑 술을 먹는다고 섹스하겠다는 뜻은 아니야! 너랑 모텔 간다고 섹스하겠단 뜻은 아니야!> (밤길걷기 시위 참가자 발언) 시위 도중에는 “나도 섹스하고 싶다”는 시위대의 절규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사람이랑 섹스를 하는 것, 그것이 왜 이리 한국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서는 어려운 일인지 답답함에 터져 나온 말이었다. 내가 지금 당신과 섹스하지 않는다고 해서 ‘순결주의자’거나 ‘성모마리아’가 되고 싶어하는 건 아니란 걸 알아야 한다. 우리도 섹스하고 싶다. 다만 하고 싶을 때가 아닌 것 뿐이다. 아마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지. ▶ 12월 22일 금요일 밤, 건대입구역 사거리에서 열린 ‘2017 밤길걷기 시위’ ⓒ불꽃페미액션 사회는 여성에게 성적 각본을 쥐어주고 수행하게 합니다. 여성 스스로 여성을 향한 이중규범을 지키고 나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은 순결한 사람과 음탕한 사람, 이 두 가지로 나뉘지 않습니다. 여성은 임신을 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사람과 쾌락을 위해 섹스를 하는 사람, 이 두 가지로 나뉘지 않습니다. 여성은 어머니가 될 사람과 창녀가 될 사람, 이 두 가지로 나뉘지 않습니다. 여성은 개개인만의 섹슈얼리티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머리를 짧게 잘랐습니다. 자르고 싶어서요. 자르고 난 뒤 편한 바지를 입고 다니는 지금, 저는 시선강간으로부터 확실히 정말 자유롭습니다. 제 옷차림 때문에 성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아서 자유로운 게 아니라, 사회가 저를 여성이라고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사회가 하던 대로 저를 이중규범에 넣는 것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사회가 이중규범이라는 틀 안에 넣을 수 없는 것은 저뿐만이 아니라 저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여성입니다. 짧은 옷차림으로 밤길 다니는 게 위험하다구요? 네 위험합니다. 제가 아니라 강간문화가요. 조신해야 될 건 제가 아니라 가해자이고, 바뀌어야 할 건 제 옷차림이 아니라 사회입니다. 우리는 계속 밤길을 걸을 겁니다.> (밤길걷기 시위 참가자 발언) ▶ 12월 22일 금요일 밤, 건대입구역 사거리에서 열린 ‘2017 밤길걷기 시위’ ⓒ불꽃페미액션 시위대는 캐롤을 개사한 노래를 불렀다. 이제는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의 시위의 한 방식으로 자리 잡힌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내 경험으로는 지난 해 검은 시위에서 ‘마귀들과 싸울지라’를 ‘낙태죄와 싸울지라’로 개사해서 불렀던 것이 시작이었다. 개사곡밤거리에서/ 무슨 옷 입든/ 여성들은/ 성적대상화 돼짧은 옷 입든/ 긴 옷을 입든/ 여자들은 항상 시선/ 강간당하네 (헤이!)안전한/ 밤거리/ 나도 좀 걷자뿌셔뿌셔/ 강간문화/ 뿌셔버리자아안전한/ 밤거리/ 내겐 왜 없냐시선강간/ 없는 세상/ 페미들 세상 (호잇!) 행진을 하면서 여느 때처럼 시위 현장을 촬영하려는 사람들에게, 확성기로 ‘동의 받지 않은 촬영은 삼가달라’고 안내했다. 그런데 길을 지나는 젊은 여성 두 분이 깔깔대며 시위대를 향해 소리치는 말이 들려왔다. “무슨 사진촬영이야, 너희는 사회악이야!”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웅성대던 시위대를 다잡은 건 하나의 구호였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 외치고 싶었던 그 말.“강간범이 사회악!”“강간범이 사회악!”“강간범이 사회악!” 감동이었던 순간도 있었다. 맛의 거리 일대의 수많은 술집 중 2층에서 여성분들이 창문을 열고 우리에게 격한 환호를 보내주었다. 결국 그렇게 구체적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회식을 바꾼다”“우리가 여기서 종강파티를 바꾼다”“우리가 여기서 뒤풀이를 바꾼다”“우리가 여기서 술자리를 바꾼다” ▶ 12월 22일 금요일 밤, 건대입구역 사거리에서 열린 ‘2017 밤길걷기 시위’ ⓒ불꽃페미액션 길을 지나던 할아버지가 번뜩 놀라는 얼굴로 “어? 근데 왜 여기 섹스가 적혀있어?”라고 묻기도 했다. “술 먹고 강간하지 말라구요”라고 설명해 드렸더니 ‘아~’ 하고 이해하는 표정을 지으신다. “길 막혀서 죽겠다!”고 외치는 아저씨도 있었다. 좀 예쁜 말로 했으면 나도 예쁘게 응대했을 텐데 다짜고짜 반말로 시비를 거니 “집회 신고했어요, 집회 신고했다고요!” 하고 소리 질러버렸다.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하고는 어딜 가든 이렇게 시비 거는 아저씨들과 만나게 된다. 거리행진을 마치고 시위대를 기다리고 있던 페미니스트들을 만났다. 행진대오를 찾을 수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람들,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으로 우리의 밤길을 담고 싶었다는 영화감독, 해외 언론 기자… 그리고 시민들이 여전히 바글댔다. 나는 술을 참 좋아한다. 페미니스트들과 술을 마시는 건 큰 즐거움이다. 이 날 불꽃페미들은 건대의 한 음식점에서 맛있는 음식에 술을 곁들여 먹었다. 그리고 당당히 걸어와 우리 집에 모여 또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해 새벽 다섯 시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구는 집에 돌아가고,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건대입구에 가득 찬 사람들이 나처럼 술을 많이 마셔 취했더라도 오빠가, 아빠가, 남자친구가 지켜줘야만 안전하게 집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도 안전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밤거리를 걸으며 술집 창문으로 즐겁게 발개진 얼굴들이 비칠 때 들었던 생각이다. 일다
(※쿵쾅쿵쾅: 모 여성혐오 사이트에서 ‘메퇘지(메갈리아 돼지)들이 쿵쾅거리며 시끄럽게 한다’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보라X뮤직페스티벌 기획단을 비롯해 페미니스트들 중에는 이를 전복적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생겼다.) 여성 뮤지션들과 여성 관객들이 만나다 지난 추석 연휴의 끝자락이었던 지난 10월 8일 일요일, 홍대 웨스트브릿지 라이브 극장에서는 ‘음악하는 여성들과 즐기는 여성들이 함께 하는 축제’라는 컨셉의 여성들만의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제1회 보라X뮤직페스티벌. ▶ 제1회 보라X뮤직페스티벌이 열린 공연장 외관 ⓒ보라X뮤직페스티벌기획단 사실 여성들만의 공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그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지금, 누군가는 여성들만의 뮤직 페스티벌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또 ‘여성만의’ 행사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실제로 여성들의 음악축제로 유명한, 1976년부터 시작된 ‘미시건 여성음악축제’(Michigan Womyn's Music Festival)는 참가자를 ‘여성으로 태어난 여성’(Women born Women)으로 한정하여 트랜스젠더 커뮤니티를 비롯한 LGBT 단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성의 범주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여성만의 공간, 여성만의 음악 축제에 대한 요구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작년, 세계 최대 음악축제 중 하나인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에서는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모든 사람들’(all people who identify as women)이 입장할 수 있는 ‘더 시스터후드’(The sisterhood) 구역을 처음으로 운영했다. 그리고 남성이 없는(Men-free) 음악축제가 내년, 스웨덴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지난 7월에 들려왔다. 그런 흐름 속에서 국내에서도 여성들의 음악축제로 기획된 보라X뮤직페스티벌이 열렸다. ‘추석 연휴 기간 동안에 받은 스트레스를 뮤직페스티벌 와서 풀어라!’ 라고 홍보했던 축제는 오후 1시부터 다양한 페미니스트 모임들이 참여하는 사전 부스 행사를 진행했다. 전국디바협회, 불꽃페미액션, 은하선토이즈, 버자이너빅토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이 페미 굿즈를 판매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리고 오후 2시 30분, 홍대입구역에서 페미 풍물패 ‘페악질’의 거리 행진 공연을 시작으로 데드가카스(DEAD GAKKAHS), 슬릭(SLEEQ), 시와, 최삼, 에이퍼스(A-FUZZ), 오지은, 디제이 씨씨(DJ SEESEA)로 이어지는 라이브 공연이 지하 공연장에서 진행됐다. ▶ 싱어송라이터 오지은과 래퍼 슬릭의 서프라이즈 콜라보 공연 장면 ⓒ보라X뮤직페스티벌기획단 인디 싱어송라이터 오지은과 래퍼 슬릭의 서프라이즈 콜라보와, 퓨전 재즈밴드 에이퍼즈와 래퍼 최삼의 콜라보는 여느 공연에서 볼 수 없었던 레퍼토리다. 각자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여성아티스트들이 연대하여 호흡을 맞추는 모습과, 공연이 끝나고 아티스트들이 서로를 토닥이며 안는 모습은 보라X뮤직페스티벌의 기획 의도를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아티스트들은 공연이 끝나고 사인회에 참여해 관객들 그리고 다른 아티스트들과 교감을 나누고, 서로 선물을 주고받기도 하며 감사와 응원의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은 단순한 팬과 가수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 나의 야이기를 들어주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끈끈한 무언가와 행복처럼 보였다. 주최 측 추산 약 5백여 명의 여성들이 행사장을 찾았다. SNS에는 즐거웠던 경험을 생생히 전하는 후기들과 함께, 내년에도 꼭 열렸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즐겁게 했을까? 페미니즘으로 재밌게 노는 사람들을 찾는 기획 에서, 이번에는 보라X뮤직페스티벌을 만든 ‘보라X뮤직페스티벌 기획단’(이하 ‘보라X기획단’)을 만나보았다. ▶ 보라X뮤직페스티벌 후기 공모 당선작 ⓒ보라X뮤직페스티벌기획단 자기검열 없이, 편안하게 즐기는 장을 만들고 싶어 보라X뮤직페스티벌의 시작은 올해 2월에 열린 ‘2030 페미캠프’였다고 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기획된 2030 페미캠프는 텀블벅 모금에서 목표액을 훌쩍 넘기는 283%를 달성하고 약 850만원의 후원금을 모으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페미캠프 참가자였다가가 보라X뮤직페스티벌 기획단이 된 ‘라꾸’는 ‘고독사, 고립사 할 뻔한 페미니스트들이 모여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며 웃는다. “페미니즘 공부하고 페미니스트 되면 인간관계 박살나잖아요.(웃음) 아버지랑 사이 안 좋아지고 그러다가 엄마랑도 사이 안 좋아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예민한 애 되고. 그래서 혼자 지내다가 페미캠프에 갔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집회나 시위에 가야 만날 수 있었던 페미니스트들을 이런 자리에서도 만날 수 있구나 싶어서 너무 좋았어요.”(라꾸) 페미캠프가 끝나고도 참가자들은 그 여운을 계속 잊지 못했다. 캠프 행사 중 함께 춤추고 놀 수 있는 파티 시간이 있었는데,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그러면서 락페스티벌을 비롯한 음악 공연장에서 남성들로부터 겪은 시선강간과 성추행, 불쾌함, 두려움 등을 토로하게 되었다. 왜 우리는 즐거운 페스티벌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밖에 없는가, 왜 그런 경험들 때문에 우리는 공연장 가는 걸 꺼리게 되었을까에 이야기도 나왔다. 그 즈음, 스웨덴의 가장 큰 음악축제인 브라발라(Bråvalla)에서 다수의 성범죄가 발생했고 계속되는 성범죄 ��문에 내년 행사는 취소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리고 맨프리(Men-free) 음악축제가 열릴 것이라는 뉴스가 연이어 나왔다. 보라X기획단은 ‘우리도 한번 해 볼까’하는 영감을 얻었다. 페미캠프 참가자들 위주로 기획단이 꾸려졌고 주최 단위도 모집하기 시작했다. ▶ 보라X뮤직페스티벌 공연 모습 ⓒ보라X뮤직페스티벌기획단 보라X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시선강간, 몰카, 성범죄 없는 뮤직페스티벌을 만들어서 참가자들이 편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축제를 여성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여성들만 참여한다고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여성들만 있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있잖아요. 전 중학교 때 남녀공학이었는데 여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손 드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손 들고 이야기하거나 의견을 말하면, 여자애가 깝친다고 남자들이 놀렸거든요. 그런데 고등학교를 여고로 진학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거예요. 눈치 보거나 고민할 일 없이 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았어요.”(미현) 두 번째 목표는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설 기회를 별로 얻지 못하고 있다. 또 무대 위에서 성적으로 대상화되거나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로운 음악축제를 만들고자 했다. 실제로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른 여성 아티스트들은 이런 무대에 올라와 너무 기쁘다며 여성으로서,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오늘 여기 있으신 분들 1%잖아요. 헬페미 1%’ 라고 말하며 관객과 소통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 동안 많은 것들이 남성 기준이었으니까… 보라X뮤직페스티벌에서는 그 외에도 여느 음악축제나 행사에서 보기 어려웠던 반차별-비폭력 서명 후 입장, 베리어프리존, 비건푸드존, 아이돌봄존이라는 특이점이 있었다. 공연 보러 와서 무슨 서명까지 해야 하나, 페미니스트들은 역시 피곤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반차별-비폭력 서명’은 기획단이 가장 신경 쓰고 고민하면서 준비한 일이었다. “그런 서명이 피곤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순 있지만 또 그런 서명이 반가운 사람도 있을 거예요. 보호받을 수 있으니까요. (서명 없이도) 당연히 지켜야 하는 일들인데 그 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거죠.”(미현) 여성이면 ‘누구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축제를 표방한 만큼, 보라X기획단은 다양한 여성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했다. 락페(락페스티벌)가서 먹을 게 없어 맥주로 배를 채웠다는, 기획단 내부의 채식인의 경험이 반영되기도 했다. 또 여러 단체에 자문을 얻으면서 만들어진 것이 베리어프리존, 비건푸드존, 아이돌봄존이다. “다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요. 그 동안 많은 것들이 건장한 남성 기준으로 되어있었잖아요. 그게 아니라 장애여성, 기혼여성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나아가 암컷 젖소가 얼마나 착취를 당하는가 등의 ‘비거니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미현) ▶ 비건 타코를 판매하고 있는 부스 ⓒ보라X뮤직페스티벌기획단 행사 당일 공연장 베리어프리존(barrier free zone: 장애인과 노인 등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되는 물리적 심리적 장벽을 없앤 공간. 보라X기획단은 휠체어 이용자와 청각장애인, 그리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공간을 지정함)에서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관객이 공연을 즐겼다. 또 아이 둘의 손을 잡고 온 관객이 아이돌봄존에 아이를 맡기고 공연을 관람했으며, 나중엔 베리어프리존에서 아이와 함께 춤추며 놀기도 했다. ‘즐기는 여성들의 축제’라는 건 ‘모든 여성들이 장벽 없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뜻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이제 진짜 재미가 뭔지 알았어요’ 집회나 시위, 세미나 등에 참석해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 페미니스트들을 놀면서 만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고, 그런 장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축제를 만들었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 보라X기획단. 이들은 이번 행사에 친구들과 지인들을 초대하기 용이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친구한테 시위 가자, 집회 가자고 말하기 쉽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페스티벌에 놀러 오라고 하긴 쉬웠어요. 왔던 친구들도 반차별-비폭력 서명하는 게 참신하고 좋았다고 하고… 이런 행사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고 하더라구요.”(미현) 이제는 페미니즘을 몰랐던 삶, 페미니스트가 아닌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졌다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보라X기획단은 페미니즘으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내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페미캠프 이전에 진짜 재미가 뭔지 몰랐던 것 같아요. 대학 들어가서 모임이나 MT 같은 거 가면 남학생들이 섹드립 치고 누구 놀리고 갈구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런 게 재미라고 생각하고…. 페미니스트로 살면서 친구 관계가 불편해졌지만 그 전의 재미가 (진짜) 재미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제 더 많은 재미를 찾고 알게된 것 같아요. 새로운 친구도 많이 생겼고 이렇게 살 수 있고 저렇게도 살 수 있다는 걸 느껴서 너무 좋아요.”(세정) 첫 행사를 치른 보라X기획단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벌써 물어보는 것이 조심스럽긴 했지만 의외로 대답이 술술 나왔다. ▶ 축제에서 서로 지켜야 하는 약속을 담은 스텝 티셔츠 ⓒ보라X뮤직페스티벌기획단 “어떤 식으로든, 홀로 고독사하진 않겠다! 재미있게 살고 싶은 욕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페미캠프에서 손에 잡히는 페미니스트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게 너무 좋았어요. 그런 기회가 생기는 장을 더 만들고 싶어요.”(라꾸) “다음에는 장벽을 더 낮추고 싶어요. 최저임금으로 두 시간 일하고 올 수 있는 행사라던가, 부스 행사도 사람들이 조금 더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넣는다거나. 퀴어대명절처럼 ‘페미대명절’ 같은 지속성 있는 행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페미니즘이 이런 것이라는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걸 계속하고 싶어요.”(미현) “여성 버전 알뜰신잡 같은 유튜브도 하고 싶고, 대중적인 콘텐츠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행사를 만들해보고 싶어요.”(세정) 보라X뮤직페스티벌은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함께할 수 있는 영역이 그 동안 알려져 있던 전형적인 것들이 아니라 훨씬 더 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쿵쾅쿵쾅 뛰어 놀 수 있다는 희망, 그 설렘으로 나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 보라X뮤직페스티벌의 생생한 현장이 담긴 관객 후기 영상들-굴러라! 구르미 https://youtube.com/watch?v=OEOiKXaJovE-생각많은 둘째언니 https://youtube.com/watch?v=d-eQdt_bwJI-그래Gre https://youtube.com/watch?v=DwJ47hDUIJ4-AKWI https://youtube.com/watch?v=JsHuvoUzlB4 일다
결혼하지 않거나 이혼 등으로 인해 혼자 사는 여성의 빈곤율은 남성보다 높으며, 고령기에 확대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생활 자체가 드러난 바는 없었다. 일본에서는 올해 5월 중고령 싱글여성의 생활실태와 이들이 필요로 하는 지원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돼,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50대 이상의 싱글여성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상담할 수 있는 ‘와쿠와쿠 시니어싱글즈’가 작년 설립되어 실시한 프로젝트다. 이 단체의 대표인 오야 사요코 씨가 시니어 싱글여성의 생활실태를 보고하고, 유자와 나오미 릿쿄대학 교수가 사회적 과제를 정리하였으며,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들어본다. [편집자 주] 싱글여성의 생활,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커 ‘와쿠와쿠 시니어싱글즈’가 실시한 이번 실태조사의 대상은 현재 혼자 생활하고 있거나, 자녀를 혼자 키우고 있는 50대 이상의 여성이다. 동거나 사실혼 등 파트너가 있는 사람은 제외했지만, 부모나 조부모와 함께 살며 이들을 부양하는 경우는 포함시켰다. 조사 방법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통한 온라인 조사 및 우편 조사였다. ▶ ‘와쿠와쿠 시니어싱글즈’ 오야 사요코 대표. 중고령 독거 여성의 생활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제공: 페민) 총 530명의 응답자 가운데 50대가 약 57%를 차지한다. 60대는 34%, 70대 이상은 9%이며 혼자서 살아가는 경우가 절반을 넘는다. 싱글인 이유는 이혼에 따른 것이 45%로 가장 높고, 이어서 독신인 경우, 남편과의 사별, 비혼모, 별거 순으로 이어진다. 학력은 전문대졸 이상이 62%로 비교적 고학력자가 많다. 취업률은 50대가 87%에 달하며 60대도 70%로 매우 높다. 하지만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충분한 수입이 있는 사람은 적다. 작년 한 해 수입이 200만엔 미만인 사람이 42%를 차지한다. 연간 수입이 500만엔 이상인 사람은 겨우 14%에 불과하다. 일하는 여성들의 고용 형태를 보면, 50대의 경우 자영업과 프리랜서를 포함한 비정규직이 60%를 차지하며, 60대에서는 무려 80%에 이른다. 또한 정규직 여성의 경우 연간 300만엔을 버는 사람이 70% 이상인데 반해, 비정규직 여성의 경우는 15%에 머무는 등 고용 형태에 따른 수입 격차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금과 유가증권에 관해서도 ‘1000만엔 이상’인 경우와 ‘없음~200만엔 미만’인 경우가 각각 30% 정도로, 양극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설문의 자유응답란에는 “풀타임으로 일해도 매월 실 수령액이 11~14만엔 사이다. 최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입을 원한다”,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는 등의 목소리가 있었다. 노인여성들이 경우 노후 생활을 지탱하는 연금은 어떨까. 이 역시 월 연금 수령액이 ‘10만엔 이하’라고 답한 사람이 48%였다.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는데 충분치 않은 연금을 받는 사람이 절반에 가깝다. ▶ 65세 이상 수급자의 공적 연금액과 일하는 사람의 전년도 근로 수입 (출처: 와쿠와쿠 시니어싱글즈) 삶의 3가지 불안 요소: 건강, 수입, 돌봄 ‘몇 살까지 일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일할 수 있는 한 계속”이라고 답한 비율이 60%로 굉장히 높다. 어떠한 사정이 생겨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될 경우, 얼마간 생활이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1년 미만”이 26%이며, “생각할 수 없다, 모르겠다”가 14%에 달했다. 이들은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거나, 아프거나 다쳐서 돌봄이 필요해질 때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자유응답 중에는 “자살하겠습니다”, “안락사를 고려하고 있다”거나 “(노후를) 고민해야 하지만 지쳐서 머리가 안 돌아간다” 등의 말도 적혀 있었다. 고령의 독신여성이 가진 3대 불안은 ①질병 등의 건강 문제 ②수입 ③돌봄이 필요한 경우로 이어진다. 자녀가 있는 싱글여성 중에서는 자녀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불안해하는 경우가 20%를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정규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중고령 ‘싱글맘’ 시니어 싱글여성 조사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도 포함시켰다. 국가 조사는 비교적 젊은 싱글맘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홀로 자녀를 키우는 시니어 싱글맘의 경우에는 50대 전반의 거의 대부분(97%)이 취업 상태였고, 50대 후반에서도 89%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규직 비율은 20.8%에 그치며, 수입이 200만엔 미만이라는 사람도 50%에 이른다. 경제성장기에 대학을 졸업한 다케우치 미와 씨(69세)의 사례를 들어보자. 다케우치 씨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며 30대엔 연 수입 300만엔, 1990년대 거품경제 시절에는 400만엔의 수입을 얻었다. 그러나 이혼 후 싱글맘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1996년에 회사가 부도나며 어린 자녀들을 안고 2년간 구직 활동을 했다. 대학 교무과에 비상근으로 취업했지만,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살았지만, 8년 후 정리해고를 당했다. 이후 고용주를 파견회사로 바꿔, 같은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20년간 일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는 4-5배나 되는 월급 차이가 있으며, 동료들과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현재 연금 수령액은 월 11만엔 정도밖에 안 되지만, 공공주택에 살 수 있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다케우치 씨는 “다양한 사람이 서로 연결되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11년 전 이혼한 다나카 요코 씨(가명, 61세)는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에 다니는 네 명의 아이를 양육하고 있다. 취업을 하려고 하면 백이면 백, 최종면접에서 “아이가 있으면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못하지 않냐, 부모는 누가 돌보나” 등의 추궁을 당했다. “당신 대신 남자를 뽑겠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결국, 출산휴가 대체인력으로 일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계속 비정규 취업을 되풀이하고 있다. 언제 계약 해지될지 몰라 항상 불안한 상태다. 어느 직장이든 과거 일의 경력이 임금에 반영되지 않았고, 항상 신입사원과 다를 바 없는 월급을 받는 등 억울한 일도 많았다. 다나카 씨는 이번 조사를 통해 자신이 겪는 상황은 “나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니, 사회를 향해 크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싱글맘이 일하며 생활할 수 있는 일자리를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 싱글여성이 안심하고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출처: 와쿠와쿠 시니어싱글즈) 공공주택, 행정에서 소외되는 ‘비혼’ 여성 비혼으로 생활하는 여성들에게 심각한 문제는 주거다. 모자가정이 아니면 공공주택에 입주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듯, 공공주택 입주 비율은 겨우 3.8%에 불과했다. (자기 집인 비율이 약 46%, 친척 집이 22%) 자유응답란에는 “민간 임대주택에 살고 있는데 70세가 넘어도 계약이 별 탈 없이 갱신될지 걱정이다”, “주택 대출을 자매가 공동으로 받을 수는 없을까?” 등의 목소리도 있었다. 게다가 가족을 돌보는 역할이 여성에게 편중되어 있다는 사실과, 여러 행정 절차에서 싱글이라는 사실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보편적이다. 중학생 때 부모님이 연달아 돌아가신 후, 여동생을 대학에 진학, 취직까지 시키고 독신인 채 50대가 된 여성의 사례도 있었다. 또 연금을 받지 못하는 부모의 생계를 떠안고, 자신도 암 치료를 받으며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도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부모를 돌보는 것에 대한 걱정, 상담 상대나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불안감, 병이나 교통사고 등의 불의의 사태를 겪었을 때 연락할 곳이 없는 점,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때 보증인이 없는 점 등은 제도의 문제와 맞닿아있다. 이대로는 젊은 세대에게 빈곤이 대물림될 것 설문조사에서는 마지막으로 시니어 여성이 안심하고 생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복수 응답) 물었다. 가장 많은 응답은 ‘취업과 이직에 대한 충실한 지원’이 56%였고, 다음이 비정규직 처우 개선 51%로 취업에 관련된 수요가 역시 가장 높았다. 최저임금 인상, 의료와 주거의 보증인 제도에 대한 공적 지원 등도 원하고 있다. 공공주택 내 독신 세대 입주 확대, 국민연금 부담 경감, ‘부부 단위’로 설계된 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또한 자녀가 있는 싱글맘의 경우엔 교육비도 생활을 압박하고 있는 요인으로 제기됐다. ▶ 5월 도쿄에서 열린 결과 보고회에서 발언하는 유자와 나오미 릿쿄대학 교수 (제공: 페민) ‘와쿠와쿠 시니어싱글즈’의 오야 사요코 대표는 “지금까지도 사회에 계속 호소해왔지만, 싱글여성들은 생계를 꾸릴 수 있는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을 갖고 싶어 한다. 부부 단위의 제도 설계나 성별 역할 분업, 남녀의 임금격차를 개선하지 않는 한 같은 상황은 젊은 세대 여성들에게로 대물림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시니어 싱글여성의 생활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유자와 나오미 릿쿄대학 교수는 “여성이 세대주인 세대가 하나의 세대로서 인정받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라는 큰 그림을 사회적 과제로 제시하였다. ‘와쿠와쿠 시니어싱글즈’는 향후 싱글여성을 위한 전화 상담을 개설하고, 웹진(seniorsingles.webnode.jp)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지역 사회에서 교류모임도 추진할 예정이다. ※ 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일다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공격자는 아는 사람일 수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일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가정, 학교, 군대, 직장 내 폭력이 대표적이다. 강간도 77.7퍼센트가 아는 사람이 저지른다.(2016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여성가족부) 그리고 위계를 이용하는 폭력이 더 흔하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폭력도 있지만, 훨씬 드물다. 우리는 셀프 디펜스 수업을 위해 공격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다루고 있다.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 첫째,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이다. 내가 네 위다, 이점을 인정해라, 눈을 깔아라, 머리를 쳐들지 마라. 이것이 공격이 의도하는 바다. 이런 유형이 우리가 살면서 겪는 가장 흔한 폭력이다. 우리는 수업에서 흔히 말로 시작되는 상황, 밀치는 공격, 뺨을 때리는 공격, 잡아끄는 공격 등을 이런 유형의 상징처럼 사용한다. 많은 수업 참가자들이 자신도 뺨을 때리는 공격의 피해자였거나 목격자였다고 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당해봤거나 적어도 지켜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 ⓒ스쿨오브무브먼트 사실, 복종과 순응을 원하는 관계와 질서는 사회 구석구석에 있다. 어린이집에서 대학원까지, 가정과 직장, 군대, 상점, 거리에서도 이런 폭력의 기운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세상사 흐름에 따라 그 기운이 더욱 고취되기도 한다. 수직적으로 억압 구조가 강해질수록 수평적으로도 작은 악심들이 자극 받아 활개치려고 한다. 반대로 어떤 한 세대를 전염시킬 정도로 강렬한 저항과 용기의 시대가 펼쳐진다면, 이제껏 관습처럼 여겨지거나 세상의 이치처럼 굳건해 보였던 통념과 관행들이 곳곳에서 도전받게 된다. 그럴 때면 이런 유형의 폭력들도 함께 도전받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아동에 대한 어른의 폭력,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군대 내 폭력 등)은 상대를 이기려는 의도보다 혼내거나 벌주려는 의도가 더 크다. 그러면 공격이 주는 손상보다 공격의 태도가 더 중요해진다. 공격자는 자신의 지배적이고 우월한 이미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흔히 가까운 거리에서 허술하지만 지배적인 자세, 예를 들어 한 손을 자신의 허리에 놓고 다른 한 손으로 뺨을 때리려는 자세 같은 게 나온다. 만약 이때 우리가 신속하게 방어한다면, 공격자를 놀라게 하거나 멈칫하게 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 포식자 같은 공격 둘째, 포식자 같은 공격이다. 이런 유형에서 우리의 인간성은 부정된다. 공격자는 우리를 같은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셈이다. 일종의 먹잇감처럼 여긴다. 빼앗기 위해, 쾌감을 위해. 그러므로 이런 유형은 공격이 아니라 사냥에 가깝다. 양상도 사냥과 비슷하다. 포식자들의 사냥은 거의 기습이며, 흔히 매복에서 나온다. 즉 이런 유형의 공격자는 대체로 장소, 시간, 대상을 고른다. 우리는 수업에서 뒤에서 덮치는 공격, 바닥으로 덮치는 공격, 칼 위협 등을 이런 유형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 포식자 같은 공격 ⓒ스쿨오브무브먼트 참가자들 대부분 이런 유형의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더 크다. 실제로는 훨씬 더 드문데도 말이다. 미디어와 일부 이데올로그들의 공포 마케팅 탓이 크다. 물론, 기습공격이란 점은 대응하기 더 어려운 부분이다.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과 포식자 같은 공격, 이 두 가지 유형이 칼같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잔인함의 정도로 두 가지가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도 매우 무섭고 집요할 수 있다. 특히 집단이 행하는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이 그렇다. 상대를 얼마나 처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가 집단 내 지위나 충성심의 경쟁수단이 되기도 하고, 죄의식이 집단 속에서 분산되고 희석되기 때문이다. 변화와 용기 셀프 디펜스 수업에서 우리는 지식과 경험을 나눈다. 우리 체육관에서는 주5일 수업이 열리지만, 체육관 밖에서는 주로 세 시간씩 1회 또는 2회의 특별수업을 한다. 첫 수업(1회 수업)에서는 주로 ‘순응을 요구하는 공격’을 다루고, 두 번째 수업에서는 주로 ‘포식자 같은 공격’을 다룬다. ▶ 변화와 용기 ⓒ문화기획달 나는 몇몇 참가자들에게 세 시간짜리 1회 수업을 듣고 경험한 변화에 대해 들었다. “골목에서 어떤 남자가 한 여자 분에게 소리를 지르더니 과격한 행동을 하는데, 여차하면 때릴 기세였어요. 무서웠지만 돕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여성 분 옆에 서서 수업 때 배운 대로 손을 앞에 들고 하지 마세요! 가세요! 라고 외쳤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때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데, 그 남자가 방어 자세를 취하고 소리치는 저를 보고는 그대로 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여성을 데리고 거기서 나왔어요.” “저는 운동도 좀 했고, 체격도 있어서 당당하고 무서울 거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저는 시누이 그림자만 보여도 너무 무서워서 피하기에 정신없었어요. 전에 한 번 의견 대립이 있었는데, 시누이가 갑자기 제 머리채를 잡고 바닥에 팽개치고는 질질 끌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아이들 나이가 비슷하고 동네도 같아서 놀이터나 단지에서 마주칠 일이 꽤 있어요. 그 이후로 눈도 못 마주치고 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선생님에게 한 번 수업을 받고, 얼마 안 있어서 시누이를 놀이터에서 마주쳤는데요…. 제가 시누이 얼굴을 똑바로 보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했어요. 하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트라우마를 극복했어요.” “선생님 수업 끝나고 아르바이트 하러 빵집에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화를 냈어요. 수업 때 배운 게 생각나서 바로 거리를 벌리고 손을 올려서 긴장되지만 침착하게 설명하는데, 막무가내로 듣지도 않고 빵을 저한테 막 집어 던지는 거예요. 다행히 손을 올리고 있고 거리를 벌리고 있어서 빵에 맞지는 않았어요. 옆에 있던 다른 알바생이 저를 도와 사장님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고요. 사장님이 경찰에 신고하라고 해서 신고했고, 경찰이 와서 그 손님을 데리고 나갔어요. 기분은 무척 나빴지만, 상황을 인식하면서 ‘더 위험해지진 않겠구나…’ 하고 판단하고 있는 제 자신이 신기했어요.” 그들은 ‘소프트 솔루션’으로 대응하기 충분했다. 그런데 더 어렵고 힘든 상황을 부딪쳐 해결하는 경험을 쌓으면, 그보다 쉬운 상황은 더 잘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을 심각한 위험상황에 대한 ‘하드 솔루션’을 훈련한다. 우리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한 수업도 하고 있다. 그들의 경험은 이미 ‘소프트 솔루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극복하고 싶은 상황을 함께 정리하고 기획해서 ‘하드 솔루션’을 훈련하고 마침내 그 상황을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안내한다. 나는 수업 참가자들이 실제 삶에서 ‘하드 솔루션’을 사용해본 경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다행이다. 앞으로도 다들 그럴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가능한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길 기원한다. 일다
아메리칸 허니 ※ 필자 소개: 지아(知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화칼럼을 비롯해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으로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사샤 레인, 샤이아 라보프, 라일리 코프 주연 (2016, 영국 외) “남자들 머리 위에서 노는 아이들이에요” 언젠가 택시에서 운전기사와 뜻하지 않은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 라디오에서는 성매매 10대 여성들에 관한 뉴스가 나왔고 택시기사는 혀를 차며 욕을 했다. 설전의 촉발점은 나의 질문이었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한 성인 남자들이 잘못한 것 아닐까요?” 내 질문에 그는 급격히 흥분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그 아이들이 얼마다 선수들인데, 남자들 머리 위에서 노는 아이들이에요.” 그는 미성년자 성매매의 잘못을 오로지 십대여성들에게 짐 지우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그의 표현에 의하면, 성매수를 한 남자들은 성에 일찍이 눈을 뜬-섹스를 워낙 좋아하거나 돈을 밝혀서 성매매까지 하는-십대여성들의 꼬임에 넘어간 것뿐이었다. 다분히 왜곡되고 뻔뻔한 논리였다. 십대여성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그의 태도가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여성만을 향해, 그것도 피해자인 여성에게 낙인찍기를 즐겨하는 이 사회에 대해 여성으로서 억눌린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그 날 내가 강한 반격을 하지 못한 것은, 야심한 밤에 얼척없는 논리로 무장한 중년의 한국남자와 단둘이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자신만의 비뚤어진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는 남자는 밀폐된 택시라는 공간에서 위험한 존재로 비쳤던 까닭이다. 성매매를 하는 십대여성들을 비난하는 그의 눈빛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만약 그 택시를 다시 탈 수 있다면 그 청소년들이 왜 가출을 해서 성매매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을 알고나 있냐고 반문하고 싶다. ▶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사샤 레인, 샤이아 라보프, 라일리 코프 주연 (2016, 영국 외) 거칠 것 없어보이는, 그러나 자본에 예속된 자유 영화 (American Honey, 2016)의 주인공인 열여덟 살 스타도 가출을 한다. 엄마가 죽은 후 새아빠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며 어린 두 이복동생들을 데리고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는 삶에서 탈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출의 기회를 그녀는 우연히 발견한다. 승합차로 미국 전역을 떠돌며 낮에는 잡지를 팔고 밤에는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자기 또래의 젊은이들을 오클라호마의 마트 주차장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 무리 중의 한 명인 제이크가 스타에게 자기 일행에 합류하라고 권하자, 그 다음 날 바로 일자리를 얻었다고 가족에게 말한 뒤 집을 나오는 스타. 그들의 삶은 비록 앵벌이와도 흡사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거칠 것 없는 자유로운 젊음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자존심까지 함께 패키지로 팔아야 하는 잡지 판매일은 결코 녹록지 않다. 술과 담배를 소모하며 밤마다 히피처럼 낭만적인 파티를 벌인다고는 하지만, 날마다 장시간 차로 이동하며 허름한 모텔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생활은 부초처럼 떠다니는 떠돌이의 삶일 뿐. 잡지를 팔기 위해 낯선 집을 방문하는 일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 자신까지 팔아야 하는 일로 전락하고 만다. 더구나 스타는 고객에게 유사 성행위까지 하는 벼랑 끝 처지로 내몰린다. 사우스다코타의 황량한 유전 지역에 이르렀을 때 모임의 리더인 크리스털이 스타를 비롯한 여성 크루들에게만 얇은 원피스를 한 겹 입힌 채 승합차에서 내려주었을 때부터 어쩌면 예견되었던 일인지도. 한바탕 흥겨운 춤을 추며 영업 활동을 펼치는 그녀들을 바라보는 남자노동자들은 잡지보다는 그녀들의 몸에 더 관심이 많은 듯 보인다. 일이 끝나는 저녁에 만나면 잡지를 사주겠다는 한 남자 고객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러니까 스타에게는 그날 판매 할당량을 채우는 생존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십대여성들의 성매매가 확산되고 있는 주된 이유를 전문가들은 ‘사회 안전망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해마다 가출하는 청소년이 대략 20만 명 정도, 그중 1/4이 성매매에 유입이 된다고 하니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스타처럼 많은 경우 이들은 학대와 폭력이 일상으로 자행되는 가난한 집에서 탈출한 십대여성들이다. 당장 잘 곳조차 구할 수 없는 처지에서, 성병으로부터 안전하고 값이 싼 성매매를 원하는 남자 성구매자들이 제안하는 단 돈 몇 만 원을 받고 성매매를 시작한다는 사실이, 스타처럼 그녀들도 사회 구조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반증한다. 게다가 경찰 단속에 걸리면 성구매 남자들은 갈 곳 없는 가출 청소년들을 도와주었다는 파렴치한 변명을 하기 일쑤라고 한다. 미성년자 성매수 범죄를 엄중히 다루어야 할 경찰들, 대부분 남자경찰들은 십대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자로 바라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성구매 남자들이 강력하게 처벌되는 일도 드물다. 영화의 부제처럼 가출한 십대여성들은 ‘방황하는 별들’이다. 빛나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검은 하늘을 유영하는 별들처럼, 자유로움을 찾아 집을 나왔지만 세상은 안전하지도, 심지어 자유롭지도 않다. 하루치 판매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한 달에 한 번 ‘루저의 밤’이란 파티에서 최하위 판매 실적을 지닌 두 사람끼리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자유는 철저히 자본에 예속된 그 날 그 날 소진되는 자유에 불과한 것이다. 잡지 판매 모임에 여성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저마다 집을 나온 사정은 다르겠지만, 스타가 속한 모임은 자유를 표방한 또 하나의 울타리가 아닌가. ‘소속감을 주지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말인가. 한없이 자유로운 젊음을 구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한없이 가난한 약자인 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여성들이 자리한 좌표점과 너무도 유사해 보인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가장 친밀한 부부, 연인 사이에서도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아픈 자리 말이다. ▶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사샤 레인, 샤이아 라보프, 라일리 코프 주연 (2016, 영국 외)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는 ‘집’ 한국여성의전화는 언론에 보도된 살인 사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이 최소 82명이고,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 또한 최소 105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피해여성의 부모, 자녀, 친구 등 주변사람들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도 최소 51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가해 남자들 대부분은 피해여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서 홧김에 저질렀다’ 는 둥, 여성이 폭력을 일으킨 원인이라는 왜곡된 시선으로 자신을 변명하는 것이다. 폭력과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대부분 피해여성의 집이나 일하는 곳이라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가장 안전하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어떤 여성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현실, 또한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을 보호하는 사회적 환경 또한 아주 열악하고 미비하다는 것은 안타깝고도 슬픈 일이다. 최근 이별에 앙심을 품은 전 남자친구의 협박에 두려움을 느낀 한 여성이 경찰서에 가서 보호를 요청하여 언제든 위험이 감지되면 경찰이 즉시 출동할 수 있는 비상벨을 자신이 일하는 가게에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남자친구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녀가 일하는 가게 주위에 전 남자친구가 나타나서 바로 비상벨을 눌렀지만 경찰은 여성이 죽은 뒤에야 그곳에 왔다. 단 몇 분의 차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그 여성의 두려움을, 사실 이 땅을 살아가는 여성들은 하루하루 공유하고 있다. 비상벨이라는 sos 신호가 무색한 이 사회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집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폭력이 잘 눈에 보이지 않다는 것도 여성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이다. 오래전 교회에 다닐 때 만난 한 기혼여성은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울먹였었다. 그녀의 남편은 교회 안에서 한없이 자상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집에서는 조금만 기분이 좀 나쁘다 싶으면 그녀에게 함부로 말을 하고 무시하는 언어폭력을 자행하는 위선적인 남자였다. 하루하루 질긴 고통 속에 살아가던 그녀가 이혼을 결심하고 일자리를 알아보며 새로운 삶을 꿈꾸던 그때, 그녀의 남편은 저항하는 그녀에게 강압적으로 성폭력을 자행했다. 그 사건 이후 둘째가 태어났고 그녀는 결국 이혼을 포기하고 말았는데, 사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잘 보이지 않을 뿐. 만약 당시 그녀가 이혼을 감행했다면, 그들 부부를 아는 주위 사람들은 속내도 알지 못한 채 그녀만을 비난했을 것이다. 아이가 둘이나 있고 남편은 저렇게 착한데, 사소한 성격 차이로 이혼을 하다니… 하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녀에게만 돌을 던졌을 것이다. 그 돌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다고 그녀가 나중에 고백하기도 했으니. 가정에서 오히려 보호받지 못하는 삶. 이 땅의 여성들에게 그래서 가정은 이중의 의미다. 스타에게는 명목상 보호자가 있었지만 이들은 스타를 비롯한 아이들을 보살피지 않았고, 오히려 학대를 했다. 그녀가 어린 동생들과 함께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게 만드는, 무책임하고 더 나아가 성폭력까지 행사하는 보호자였던 것이다. ▶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사샤 레인, 샤이아 라보프, 라일리 코프 주연 (2016, 영국 외) ‘나의 집’을 갖고 싶다는 스타의 꿈 아이러니하게도 스타의 꿈은 집을 갖는 것이다. 집을 나왔지만 그녀는 언젠가 ‘나의 집’을 갖고 싶다. 마당이 딸린 집도 좋고 트레일러도 좋으니 내 집에서 아이를 많이 낳고 싶다고 말하는 스타의 얼굴은 먼 곳을 향해 있다. 그녀 자체가 꿈이 된 것만 같은 표정이다. 어느 날 스타가 자신이 좋아하는 제이크에게 던지는 질문도 꿈에 관한 이야기다. “꿈이 뭐야?” 스타가 묻자 제이크는 당황스러워하며 말한다.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봐.” 하지만 그날 밤 제이크는 스타에게 가방에 숨겨둔 반짝이는 것들을 보여준다. 잡지를 팔기 위해 집을 방문할 때마다 몰래 훔친 돈과 금붙이의 빛. 그는 이것들이 언젠가는 꿈을 사 줄 수 있다고, 숲에 집을 지어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마치 노예의 퇴직금처럼 말이다. 그렇다. 스타와 제이크의 꿈은 같다. 그들은 집을 갖고 싶다. 지금은 비록 떠돌아다니며 아무도 사려고 하지 않는 잡지를 파는 가난한 크루에 불과하지만. 제이크가 스타에게 보여준 빛은, 둘이 처음으로 만난 마트 주차장에서 햇살에 부딪혀 눈부시게 빛나던 제이크의 핸드폰, 그 한 면을 가득 채운 반짝이, 판매기록을 적는 수첩을 받은 새로운 크루들에게 마치 환영 의례처럼 주어지는 반짝이는 스티커, 아니 그녀의 이름인 ‘스타’와 모두 닮았다. 또 밤이면 따스한 수프 냄새가 진동할 것만 같은, 스타가 꿈꾸는 ‘나의 집’ 창에서 새어 나오는 빛과도 닮아있다. 하지만 제이크가 자본이라는 현실에 예속된 채 꿈을 꾸지만 실은 꿈을 잃어버린 것에 반해, 스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꿈을 꾼다. 자존심을 기꺼이 돈과 맞바꾸며 잡지를 팔기 위해 매 순간 거짓말하는 제이크와는 달리 스타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현실과 대면한다. 그런 그녀를 제이크는 ‘거친 아이’로 표현하며 길들이려 하지만 스타는 ‘나는 황소가 아니’라며 말한다. “난 네가 필요 없어. 내가 할 수 있어!” 어쩌면 스타와 제이크, 이 둘이 꿈꾸는 집은 다른 곳인지도 모르겠다. 잡지를 팔아 돈을 모아 집을 갖는다는 것은 먼 미래, 어쩌면 이루어지지도 못할 환상 같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의 강변에서 열린 파티에서 제이크에게 선물 받은 새끼 거북이를 스타는 다시 강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거북이가 집을 찾아 돌아갔듯 자신도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스스로를 물세례 하듯 강물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다시 나온다. 그 순간, 스타는 그녀의 어머니가 이름 지어준 의미의 ‘죽음의 별’이 아닌 새롭게 부활하려는 별이 된다. 왜냐하면 강물 주위로 반딧불이 별처럼 날아올랐기 때문이다. 눈물로 흐려진 나의 눈에는 분명 들렸다. 폭력으로 여성을 길들이려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죽지 마! 살아 나! 우리들이 돌아갈 집을 지어줘, 이제는.’ 그녀들이 어둠 속에서 반딧불처럼 반짝이며 살아나 외치고 있었다. 눈물의 빛으로 살아나 스타에게 힘과 위로를 심어주고 있었다. ▶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사샤 레인, 샤이아 라보프, 라일리 코프 주연 (2016, 영국 외) [아메리칸 허니를 더 잘 읽기 위한 영화미학] 영화 제목인 아메리칸 허니(American honey)는 미국 남부 출신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을 이르는 말로, 집을 나온 젊은이들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수의 시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 좁은 승합차 안에서 동명의 노래인 ‘아메리칸 허니’를 한 목소리로 부르는 10대 젊은이들의 얼굴은 마음을 더욱 서늘하게 저민다. 제이크에게 스타는 그가 오래전 잃어버린 순수다. 또 청교도의 청렴한 가치로 세워졌지만 현재는 부패한 미국이 잃어버린 순수이기도 하다. 스타가 모임에 합류한 뒤 처음으로 간 곳이 동화 의 도시 캔자스라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알맹이보다 외양이 부풀려진 마법사 오즈처럼, 미국이란 나라가 실체가 없는 환상 같은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캔자스에 이어 네브래스카의 부유한 마을, 사우스다코타의 유전 지역, 미네소타의 빈민촌 등을 로드무비로 따라가며 빈부 격차가 심한 미국의 이면을 보여주는 영화 아메리칸 허니. 위선적인 기독교인 고객들을 보여주면서 쇠락한 청교도 가치를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이중적인 미국의 실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전혀 달콤하지 않고 풍자적이다.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성조기 이미지 역시, 불안하게 떠도는 젊은이들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를 풍자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반증일 터. 인공지능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잡지를 파는 젊은 크루들의 모습이야말로, 쇠락해가는 미국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상징은 아닐까. 노래 American honey가 미국에서 백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컨트리 송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그 외에도 시종일관 흐르는 다양한 음악은 163분이라는 런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족히 즐길 수 있게 해준다. 한편, 흔하지 않은 4:3이라는 좁은 화면 비율은 그나마 좁은 승합차 내부를 더 비좁게 보여주며, 열 명 남짓한 젊은이들이 마치 소모적인 도구처럼 서랍 속에 채워진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초상화(portrait)에 가장 적합한 프레임이기 때문에 4:3이라는 화면 비율을 선택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카메라는 10대 젊은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직면해서 보여준다. 머무르지 않고 날마다 떠나지만 정작 삶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승합차는 마치 비상구가 부재한 작은 세상 같다. 매 순간 불안하게 소진되는 그들의 일상처럼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시선 또한 그런 불안함을 역동적으로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영화에서 자주 출몰하는 동물 이미지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주워온 다람쥐, 훔친 개 등 길들여진 동물만을 좋아하는 젊은이들. 하지만 어둔 들판에서 야생의 곰과 두려움 없이 만나는 스타의 실루엣. 그녀는 집 안에 갇힌 벌레를 다시 밖으로 날려 보내주고 수영장에 빠진 벌레를 물 밖으로 끄집어 구해준다. 닫힌 세상에서 끊임없이 자유를 향해 비상하려는 스타의 간절함이 전해지는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일다
※ 를 펴 낸 김영옥(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대표)님이 나이 듦에 관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 칼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1. ‘죽다’와 ‘죽어가다’의 사이 혹은 차이 ‘죽어간다’라는 말이 가능한가. 죽음을 진행 과정으로 기술하는 말이 용인될 수 있는가. 오랜 시간 누군가의 병상을 지키며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동행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질문을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죽다’와 ‘죽어간다’의 의미론적 차이를 정확하게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카프카에게 죽어가는 것은 죽는 것이 불가능해진 사람이 처하게 된 영원한 비-구원의 상태를 의미했다. 죽을 수 있음과 제대로 살아있음을 동일한 것으로 보았던 그에게 날마다 조금씩 죽어간다는 것은 삶도 죽음도 무한정 유예된 운명을 가리켰다. 매순간이 메시야, 즉 구원이 들어설 수 있는 시간의 틈새임을 강조했던 유대교 신비주의와 맥이 닿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세속의 장면 안에서도 우리는 ‘죽다’와 ‘죽어간다’의 엄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 두 개의 단어는 필연적으로 삶과 죽음의 연관(가능)성을 질문하도록 촉구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 구체적인 치료와 치유, 그리고 돌봄의 현장과 관련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적이고 윤리 철학적이다. 당사자가 아니라 의료 전문가나 곁에서 돌보는 사람 혹은 제3자가 누군가를 두고 ‘죽어간다’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효과를 발생시키는가. 죽음의 순간이 정확히 언제일지 모른다 해도, 죽음이 이미 문지방을 넘어섰다고 짐작할 수 있을 때라면 ‘죽어간다’는 말을 입에 올려도 되는 것일까. 더 이상 무례가 아닐 수 있는가. 미미한 움직임조차 힘겨워진 상태에서 타인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존한 채 하루하루 사위어 가는 환자/노년을 대할 때면, 나는 혹시라도 ‘죽어간다’는 동사가 떠오를까봐 긴장하곤 한다. 본능적으로 어떤 금기의 목소리를 듣는다. 죽음의 오고 감을 당사자 아닌 내가 판단의 눈으로 응시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서다. 초/고령 노년들의 여전한 ‘식욕’을 ‘걱정’하거나(“저렇게 음식을 좋아하시면 치우는 사람만 고생이지”라든가 “돌아가실 때 얼마나 고생하시려구…”) 노인요양원에서 드물지 않게 책임자로부터 “적당한 때 돌아가셔야 하는데… 올해도 넘기실 모양이네요… 보호자분들께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요”라는 애매모호한 말을 듣게 되면서 들기 시작한 이 경각심은 보다 복잡한 생각으로 이어지곤 했다. ▶ 94세 노모의 ‘마지막 날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실뱅 비글라이즌, 벨기에 이스라엘, 2015) 94세 노모의 ‘마지막 날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실뱅 비글라이즌 Sylvain Biegeleisen, 2015)를 보면서 나는 평소에 품고 있던 이런 질문 속의 ‘신비로운’ 부분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우선 ‘죽다’와 ‘죽어간다’와 관련해 영화 속 노모의 단호한 견해를 들어보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의사가 말한 뒤로도 8개월이나 더 살고 계시다는 아들의 경탄에 노모는 “어떻게 감히 남의 날들을 셀 수 있는가”라고 응대한다. (다큐멘터리의 한국 제목을 로 정한 건 따라서 그녀의 뜻에는 맞지 않는다. 그 특별한 삶의 시간은 영어제목인 Twilight of Life가 더 적합하게 포착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Twilight를 어원에 입각해 두 개의 영역,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품고 있는 빛, 즉 사이-빛tweenlight으로 이해한다.) 그녀의 이 말을 들으며 나는 한국의 어느 호스피스 병원과 그곳에 머무는 환자들을 기록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이창재, 2014)을 보면서 내내 불편했던 마음을 떠올렸다. 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을 기록하는 것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가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또는 죽음을 앞둔 사람을 매개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죽는 태도를(그와 더불어 건강할 때 제대로 사는 태도를)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호스피스 병원 원장이 그곳에 입원해있는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거나 아니면 장면들을 하나의 텍스트로 구성한 감독의 입장에서 감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다큐멘터리라고해도 텍스트는 구성-편집된 것이니까. 이것은 영화가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이야기라기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을 기록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러한 기록에는 죽음에 관한, 그리고 죽음과 삶의 관계에 관한 (감독과 편집자의) 어떤 관점이 이미 설정되어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2. 죽음, 자아 그리고 타자 죽음이야말로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평등하게 만드는 보편적 진실이다. 절대 돌이킬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당신 몸 내부의 섬유질까지 파고드는 죽어야 할 운명이라는 인식의 경험”(다나 J. 해러웨이 , 민경숙 옮김, 43쪽)은 그만큼 가차 없는 단절과 절대적 낯섦의 직면이다. 그래서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은 다나 해러웨이처럼 거의 4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자기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상실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참을성 있게 가까운 이의 병상을 지키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 하나를 들라면 존재의 궁극적 비의를 향한 깨어있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범속한 삶 속에서 어제에 이어 오늘과 내일의 안전과 안녕을 추구하는 것은 그 범속한 삶의 명백한 한계 내지는 경계를 직면하는 태도에 힘입어야 방향 감각을 잃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역사가들이나 죽음 연구가들은 현대인의 삶-의식 속에서 점점 더 빠르게 지워지는 죽음의 흔적을 지적한다. (자살이나 살인이 증가하는 현상은 이러한 사실의 반증이 아니라 또 다른 증거다.) 이것은 질병이나 장애를 극복의 대상이나 결핍, 실패, 불완전성 등으로 보는 근대식 의료체계의 왜곡된 시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소비문화의 유행 속에서 부정되는 지속성이나 영원성의 시간감각과도 맞물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한가운데에는 불안하고 소외된 개인의 자아의식이 있다. 아날 학파의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에 따르면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개인의 자아의식 사이에는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 자명해 보이는 이 사실을 역사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그는 문학, 종교적 전례, 유언장, 묘비명, 도상 등을 중심으로 거의 천 년에 가까운 광활한 세월을 탐색한다. 탐색의 결과는 길들여진 죽음, 자신의 죽음, 먼 죽음과 가까운 죽음, 타인의 죽음, 역전된 죽음 등 5가지 죽음모델이다.(필립 아리에스, ) 이 죽음 모델들은 자아의식, 야생적 자연에 대항하기 위한 사회적 방어 시스템, 내세에 대한 믿음, 그리고 악의 존재에 대한 믿음 등 4가지 요소의 변주에 따라 구성된다. 11세기에서 시작해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진행되면서 공동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던 개인은 자율적 개체로 독립해나간다. 이 분화과정의 핵심이 ‘자기’ 의식이고 이것은 물론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도 반영된다. 구성원들이 의례를 통해 함께 자연의 폭력적 힘으로부터 죽음을 빼내 죽음을 길들이고 죽음과 친해짐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길들여진 죽음’이 있는가 하면, 단독자로서의 자기의식에 기반을 두는 ‘자신의 죽음’이 있다. 감수성의 변화와 함께 적나라한 죽음의 목격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도 변한다. 두려움의 대상이 된 죽음은 점점 더 먼 야생 쪽으로 밀려나게 되고 그럼으로써 동시에 매혹의 대상이 된다. ‘먼 죽음과 가까운 죽음’의 공존이 가능한 이유다. 보다 심미적인, 비장함을 포함한 여러 감정이 풍요롭게 표현되는 죽음 의례가 형성된 것은 자기의식이 ‘특별한 타자’를 발견하면서부터다. 19세기에 낭만주의와 함께 출현한 ‘사생활’은 특별한 타자와의 의미심장한 관계 속에서 온전한 자기가 되는 개인을 찬양했다. 이러한 관계에서 죽음의 순간은 특별한 타자와의 육체적 이별을 의미했으나, 남아있는 사람이 느끼는 비통함은 죽음 자체가 비장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변용하는 과정의 일부로 통합되었다. 천상의 세계는 지상의 감정들이 완벽하게 정제된 상태로 복원되어 영원성을 확보하는 곳, 그 복원된 감정으로 특별한 타자와 재회하는 곳이라고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현대로 오면서 사랑과 연애가 정체성과 자아감의 핵심이 되면 될수록, 자본주의 시장사회에서 사랑과 연애는 철저하게 계급과 연동된 상품소비문화에 포섭된다. ‘특별한 타자’와의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든스는 (열정적 사랑도 아니고 낭만적 사랑도 아닌)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열어 보임으로써 유대관계를 조형하는 합류적 사랑을 언급했지만, 사랑과 연애의 상업화는 이마저도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서로 특별한 타자가 되어주는 관계는 점점 더 어렵고 힘든 과제가 되고 있다.(에바 일루즈, ) 여기에다 죽음 또한 질병의 비정상적 추함과 함께 더 이상 친숙함도 매혹도 없는 채 두려움과 수치심의 대상이 되면서(김열규, ) 특별한 타자와의 육체적 이별의 의미라든가, 그 이별의 장면을 고양시키는 내밀함이나 친밀함, 비장감 등의 정동도 같이 사라지고 있다. 이것을 아리에스는 ‘역전된 죽음’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죽음은 더 이상 죽어가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신이나 산 사람들과의 마지막 교류가 죽어가는 사람의 가장 큰 특권이었던 시기는 지나갔다. 다른 이의 죽음에 연루되었다고 느꼈던 그래서 애도 행위를 존중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겼던 예전의 공동체와 달리, 이제 죽음 앞에서 수치심을 갖게 된 사회는 죽음과 애도행위를 금기시하고 마치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행동한다. 질병이나 통증, 이별의 고통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에 실패했을 경우 막지 못한 추문으로 전락한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이나 미수습자들의 유가족과 친지에게 향해지던 ‘이제 그만하라’는 은근한 압박은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대 사회는 분명 아리에스가 명명한 ‘역전된 죽음’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죽음을 은폐시키거나 인간화하는 데 반대하고, 절대적 낯섦 자체로서 직면하고 보존하려는 작은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각종 보조 장치에 의한 생명연장을 거부하거나, 치료의 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고통스런 의료적 시도를 계속하기보다는 호스피스병원에 머물면서 살아온 삶과 화해하고 다가올 죽음과도 평온하게 만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좋은 죽음’에 대한 소망과 함께 죽음을 삶에, 혹은 삶을 죽음에 통합시키려는 이론적·실천적 노력들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의료기술 ‘덕분에’ 이제 대략 십여 년 정도는 질병과 기능저하 또는 장애,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늘어난 생존 시간 속에서 가까웠던 동년배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슬픔도 감내해야 한다. 또한 삶의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혈연 혹은 유사 가족과의 관계가 서서히 끊어지는 일도 이젠 드물지 않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홀로 살다가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본래도 그러하지만 지금은 더더군다나 사적 불행으로 간주될 수 없는 공적 의제가 되고 있다. 길이 꺾이는 지점/시점인데 이 길이 어느 방향으로 꺾일지 알 수 없다. 죽음, 자아, 타자가 어떤 방식으로 만나게 될지, 이제 과연 누가 ‘특별한 타자’일 것인지, 특별한 타자와의 관계성은 어떤 모습일지, 삶과 죽음의 시간성에 관해서 목하 생성 중인 사유와 감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건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말할 수 있는 것은, ‘특별한 타자’가 흔히 일상어에서 사용되듯이 성적 긴장을 품고 있는 ‘연인’을 넘어서 다양한 동반자나 반려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은 특별한 타자다. 새로 생성 중인 변화의 단초들 속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기록하는 작업이 늘고 있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말, 느낌, 행동, 표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고독한 죽음 이전에 고독한 삶이 있다는 사실을(우에노 치즈코, ) 정치경제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올바르게 환기시키기보다는 비윤리적인 관음증으로 미끄러질 수 있고, 그로써 산 사람들의 무례한 침범이나 오만한 자기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와 같은 기록들은 삶과 죽음, 그리고 죽어감에 대한 지각과 성찰을 회복시키고, ‘잘 늙어가기’의 길라잡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특별한 타자에서 ‘특별함’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질문 또한 다른 각도에서 하라고 촉구하기도 한다. 3. 그러나 죽음과 ‘죽어가는’ 사람이 소외된다면 은 호스피스에 머무는 말기 암환자들의 마지막 날들을 기록하고 있다. 호스피스에 들어왔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 내려놓을 수는 없다. ‘바깥 병원’에서 기계적으로 알려준, 선택할 수 있는 몇몇 치료들이 계속해서 환자의 뇌리 속을 맴돈다. 산업이 되어버린 의료 체계는 진단 후 있을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일종의 자율적 선택지인 것처럼 (거의 상품 수준으로) 제공한다. ‘치료’라는 이름으로 제공된 정보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환자들에게 계속 달라붙는다. 특히 사십대 가장 박수명의 경우처럼 가족이 이별을 못 견뎌할 때, ‘식물인간으로라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 달라, 하루라도 좋으니 더 곁에 있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할 때, 그 눈물에서 새로 싹트는 어떤 사랑의 진정성을 보게 될 때, 환자는 죽음의 수용 단계로 ‘나아가기’ 힘들다. 이런 ‘지체’를 환자에게 일깨우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가? 바람직하다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일깨워야 할 것인가? ▶ 호스피스 병원과 환자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이창재, 2014) 중 한 장면 “걸어 다녀야 살아있는 거지”라고 말하며, 걷기 힘든 몸으로 굳이 바깥에 나가 ‘짜장면’을 사먹는 박진우 할아버지의 ‘일탈’과 그로 인해 얼굴에 남은 상처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처럼 느껴진다. 이제 ‘방에 머물며’ 살아온 삶을 정리해야 할 시간 아니겠냐는 호스피스병원 원장의 말은 그래서 더욱 수행적 힘을 발휘한다. 호스피스병원에서도 여전히 수학 선생님 이력을 자랑하던 장난기 많고 유쾌한 환자였던 박진우 할아버지는, 긴 시간 방에서 나오지 않고 자신과 씨름하다가 결국 ‘죽음을 수용’하는 환자가 된다. 그의 죽음의 침상에서 죽음의 실체를 목도하고 두려움에 흔들리는 남은 환자들이 있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관객인 나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이 ‘남은’ 환자들을 ‘아직 죽지 않은’ 환자들로 지각하게 된다. 2시간짜리 다큐멘터리는 등장인물, 즉 환자들 모두가 죽음으로써 끝나기 때문이다.) 장난기 많은 유쾌한 환자에서 명백히 ‘죽어가는’ 환자로 넘어가는 경계선에 짜장면을 향한 욕망이 있다. ‘안전한’ 삶의 지대에 있는 관객은 ‘짜장면’ 너머의 시공간으로 그와 함께 가지 못한다. 그곳은 그 혼자만이 가야하는 곳이다. 영화는 이 사실을 무겁게 각인시킨다. 물론 모든 사람은 혼자서 죽는다. 누구도 죽음에 동행할 수는 없다. 그러나 죽음은 누군가의 곁에서의 죽음이기도 하다. 지금은 이것 역시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없는 특별한 ‘행운’이 되어가고 있지만, ‘누군가의 곁’에서 죽는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가능성 여부를 떠나 ‘혼자 죽음’을 이해하기 위한 의미론적·실존적 대상이 되어야 한다. 죽는 순간 혼자였어도 마찬가지며, 그 누군가가 누구인가 또한 부차적이다. “사는 게 좋은 걸 잊은 당신에게 권합니다.” 영화 홍보가 암시하듯이, 영화는 죽음이 당신을 찾기 전에 살아있음이 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충분히 누리라는 교훈으로 마무리된다. 죽음을 삶의 결여로 보는 이러한 시각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의 그 마지막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의 타당성을 질문하게 만든다. 이러한 기록이 치료에 관한 의료과학의 집착과 권위 곁에서, ‘살고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 모두를 일종의 ‘계몽’이 필요한 미완의 존재로 보이게 한다면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의료인도, 돌보는 사람도, 멀리서 바라보는 수많은 제3자들도, ‘몸으로 살다 몸으로 죽는다’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지각하고, 다면적으로 성찰·각성하기를 원했을 영화는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모든 이들에게 ‘연결된 연루자’의 자리를 마련해주지는 못했다. 에서 이제까지 살아온 삶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정리’하는 초탈한 환자의 모습은 드물다. 같이 막걸리를 마시며 웃고, 마술쇼를 하며 박수를 치던, 과자를 나눠 먹고 복도를 거닐었던 환자가 죽었을 때, 아직 삶에 머물고 있는 환자가 그에게 하는 작별인사는 평온하기 힘들다. 이것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누구에게 문제인가. 또는 ‘어떤’ 문제인가.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이런저런 모습으로 관객들에게도 익숙해진 얼굴들이 (한 사람만 빼고) 모두 ‘죽은 이들’이 된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내 느낌은 ‘이런저런 모습으로 관객들에게도 익숙해진 얼굴들이 (한 사람만 빼고) 모두 죽은 이들이 되자 영화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마치 무대 위에서 모든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커튼이 내려지고 불이 꺼지는 것처럼. 앞에서도 말했듯이 95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등장인물 모두의 죽음을 담는 방식으로 편집·구성된 이 다큐멘터리의 재현이 나는 불편했다. ‘죽어가며 살았던, 살면서 죽어갔던’ 삶의 시간, 그 시간의 물질성이 사려 깊게 존중되지 못했고, 그로써 그들의 (그리고 이 다큐를 보는 ‘우리’의) 삶-죽음의 존엄도 훼손되었다고 느꼈다. 삶과 죽음의 서로 소외와 서로 대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느낌이었다. “어떻게 감히 남의 날들을 셀 수 있는가.” 나의 느낌은 위에서 소개한 의 노모가 한 이 질문과 같은 윤리적 태도에 뿌리내리고 있다. 죽음을 향한 ‘나’의 기다림은 ‘내’ 살아온 생의 리듬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당신네들’이 내 남은 날들을 셀 때 그것은 내 생의 리듬이 ‘이미 멈추었다’고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셈법의 어긋남은 우리가 살게 된 소위 100세 시대에 죽음이 처한 곤경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4. 선물: ‘불확실하고 신비로운’ 시간이 주는 지혜 ▶ 다큐멘터리 (실뱅 비글라이즌, 2015) 포스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의사가 말한다. 감독은 이 마지막 시간을 노모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다. ‘불확실하고 신비로운’ 이 시간을 카메라로 동행하겠다는 아들에게 그녀는 거의 호탕하게 말한다. “나는 미래를 구상하고 있지,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아들은 묻는다. “죽음에 관해서요?” 그녀는 대답한다.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해서. 죽음이라면 TV에서 보지 않니.” 시작부터 영화 는 의미심장하고 유머러스하다. ‘삶’의 마지막 시간과 임박한 ‘죽음’의 상관/갈등/관계를 무대 앞에 내세운다. 자신의 ‘마지막’ 날들을 기록하겠다는 아들에게 94세 노모가 쐐기를 박듯이 강조한 저 말을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면 이런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건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저 돼먹지 않은 TV들이 뻔뻔하게 찍어대고 전시하는 죽음이 아니라!’ 그녀의 말에서 나는 이중의 메시지를 듣는다. 죽음은 현실에서 내쫓겨 겨우 TV에서나 센세이셔널하게, 혹은 낭만화된 방식으로, 혹은 불편한 죄책감을 강요하면서 전시된다. ‘타인의 고통’을 승리감에 찬 태도로 이미지화하는 것에 대한 수잔 손탁의 경고는 죽음의 이미지화에도 해당된다. 재현 불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현(re-present) 불가능성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현현케(present) 하는 고뇌어린 시도를 만나기란 그러나 쉽지 않다. 다큐의 노모는 죽음의 현현과 멀어진 현대인의 삶의 습관과, 고뇌가 삭제된 죽음 전시 모두에 간단명료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과거 아닌 미래’라는 것은 살아낸 삶의 부정이나 죽음의 (정신분석이 말하는 ‘~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식의) 부인이 아니다. ‘나의 죽음’은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지금 여기에서 숨 쉬고 느끼고 행위하고 반응하는 ‘나의 삶’이라는 것이다. 다큐 내내 그녀는 유머와 에로스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 정신이 혼미해질 때조차도 삶을 추동시키는 에로스 에너지의 반등은 멈추지 않는다. 에는 삶의 화두로 삼기에 딱 맞춤인 지혜가 풍부하다.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는 책과 같다. 장면은 장면대로 다 멈추게 하고 싶고, 어머니와 아들이 주고받는 말들은 말들대로 다 받아 적고 싶다. 편집을 통해 한편의 드라마로 탄생했으니 감독이 부르곤 하는 ‘마 셰리’(어머니)가 일관되게 이런 언어와 태도로 죽음의 문지방을 건넜으리라 짐작하긴 어렵겠지만, 장면 하나하나가 파편이 아니라 온전한 하나, 즉 일종의 단자(monade)로 존재한다. 이 단자들은 긴 시간 삶을 살아낸 ‘늙은이’의, 그것도 죽음과 대면한 채 하루하루를 사는 늙은이의 유현한 지혜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그 세계에서는 시간의 주름들 사이사이로 경구가 된 지혜들이 조개 속 진주처럼 은은히 빛난다. 진주 몇 개만 꺼내보자. -Twilight of life 속 진주 하나 영화 속 주인공은 두 사람이다. 사랑하는 어머니 ‘마 셰리’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들과, 아들을/이곳을 떠나야 하는 어머니. 두 사람은 아리에스가 ‘길들어진 죽음’에서 설명한 바대로, 떠나는/죽는 사람과 떠나보내는/남는 사람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싶다. 적어도 아들의 경우는 확실히 그렇다. 그러나 ‘역전된 죽음’의 시대를 살고 있는 아들에게 ‘나의 사랑’을 떠나보내는 일은 이제껏 배워본 적이 없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알지 못하니 답답하다”고 아들은 근심어린 얼굴로 어머니에게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에 대한 어머니의 반응은 “평생 배우며 사는데, 살아왔는데… 알 것 같으면 이미 알았어야지… 뭘 새삼스럽게 새로 배우나”이다. 잘 헤어지는 ‘법’은 평생 살면서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설렘과 웃음, 고통과 눈물 속에서 겪어낸 경험들의 총합으로 우리 몸 속 혈관을 돌고 있다고, 그러니 그냥 맞닥뜨리면 되는 거라고, 노모는 말하는 것 같다. ‘~하는 법 ~가지’ 식의 자기계발서가 끝도 없이 필요한 이 시대 자기계발 주체들의 시지포스 노력에 관한 명료한 코멘트가 아닐 수 없다. 노모가 아들에게 건네는 저 말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그녀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그녀는 지금 이 날에 이르기까지 (담배를) 피우고 (감자를) 먹고 (언론기사를) 읽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포도주를) 마시며, 그리고 싸우며(!) 살아온 대로, 멈춤 없이 계속해서 그리하면서, 자신의 삶을 채웠던 사물들이 있는 집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니, 라며 무언의 목소리들이 집단적으로 조언하는 화해나 내려놓음, 무심 등과는 무관한 명랑함과 놀라움, 추구와 질문이 있다. ▶ i24news에 보도된 다큐멘터리 의 한 장면. ⓒ i24news.tv 죽는 과정은 삶의 마지막 ‘사건’이다. 그녀/그가 살아온 삶과 그녀/그의 마지막 모습이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죽음의 존엄성을 구성하는 기본개념이다.(페터 비에리, ) 삶이 그렇듯 죽음 또한 ‘개별적이고 유일한 개인’의 정체성 관점에서 배려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어떤 목적에 자신의 삶을 정향시켰는지, 자신이 정의한 자아이미지는 어떠한지는 죽는 과정을 선택하는데 있어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폴 칼라니티, ) (인지 장애가 심해져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정체성에 따른 존엄의 존중은 돌보는 사람들의 몫이다.) 평소에 당신이 살아내는 일상에 죽음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당신의 모습이 깃들어 자리잡는다’고 다큐 속 그녀가 넌지시 전한다. 꼭 준비된 죽음이나 자연사가 아니라도 죽음은 그 죽음의 시점까지 살아온 삶 안에 이미 또렷한 형상으로 깃들어 있다. 어쩌면 당연하게 들리는 이 말은 그러나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의 동시적 사유와 지각이 없이는, 지혜연할 뿐 정작 지혜와는 거리가 먼 빈정거림이나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Twilight of life 속 진주 둘 94세 이 여성은 앞에 있는 아들을 비껴가는 시선으로, 마치 무대 위에서 관객들을 향해 방백을 하듯이, “나는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왜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기다리며 사는 것일까. (…) 고도를 기다린다고 했지…”라고 중얼거린다. 이 질문은 ‘생 전체’라 할 수 있는 무엇을 끌어당겨 하나의 점으로 응축시킨다. 그녀의 생 뿐 아니라, 그녀의 마지막 시간을 동반하는 아들의 생과, 다큐를 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생을 불러 세우는 두 가지 질문.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왜 평생 기다리는가. 이 질문은 그녀 내면의 독백이면서 관객을 향한 전언이다. 생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림이라는 질문으로 구성된다는 전언. 철학은 끊임없이 새롭게 열리는 질문으로 구성된다는 하이데거의 말에, ‘질문은 그런데 기다림이지’라고 늙은 노파의 지혜가 응수한다. 그녀의 질문 속에서 메멘토 모리와 카르페 디엠이 만나 하나의 변증법적 이미지로 멈춰 선다. 바로 이 질문을 하는 그녀의 얼굴 말이다. 영화에서 94세의 여성이 기다리는 어떤 ‘최종적인 것 the terminal’, 미지의 것, 불확실한 것은 생 전체를 관통하는 기다림의 핵심이면서 삶-죽음/죽음-삶의 은유이고 또 실제다. 어쩌면 이미 곁에 와 있지만, 아직 완전히 자기주장을 하지 않는, 그러니까 여전히 ‘도래할 것’이라고 불러야 할 ‘그 시간’을 기다리기. ‘그 시간’은 의사가 확인하고 선언할 죽음의 순간인가, 종교들이 말하는 구원이나 해탈의 순간인가, 인민들과 역사적 유물론이 목적하는 해방의 순간인가. 아니면 범속한 일상에서 맞이할 의미 충만한 행복의 순간인가. 어떤 것이든 이 ‘질문으로서의 기다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또한 이것을 지탱하고 있는 힘은 타나토스가 아니라 에로스다. 적어도 다큐가 증명하는 그녀의 경우는 그렇다. 그녀는 ‘고도’를 언급하고 있지만, 베케트의 와는 달리 그녀의 기다림 무대에서는 누군가가 목매다는 일은 없을 것 같다. 5. 죽음을 앞둔 그녀/그들의 에로스 프로이트는 생명체의 통일성과 관련해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두 개의 에너지 욕동(Trieb)을 공식화했다. 그에 따르면 타나토스는 덜 분화되고 덜 조직화된 이전 상태로 회귀하려는, 최후에는 에너지의 수준 차이가 없는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욕동으로서 열반(nirvana)의 원칙이기도 하다. 우리는 잠을 자고 싶고 (그래서 자고), 때론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으며, 혹은 긴장이 완전히 평정의 상태(열반)에 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의 실천은 자살일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근본적으로 통일성의 파괴나 해체를 향하는 타나토스의 욕동이다. 반면에 에로스는 존재하는 생명체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보다 포괄적인 통일성을 구성하려 한다. 자기보존 욕동이나 자기애적 리비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적 욕동과 연관되는 에로스는 보다 분화되고 보다 조직화된 형태, 보다 큰 통일을 이루어 존재를 유지하려 한다. 그는 에로스의 모든 에너지를 리비도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프로이트, ) ▶ 다큐멘터리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얀 코리디안, 프랑스, 2016)의 한 장면. 우리는 매우 늙은 사람,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 크고 작은 질병으로 아픈 몸을 살고 있는 사람, 특히 명백히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에게서 에로스보다 타나토스의 욕동을 더 빈번히 보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분법적으로 이미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상투적 이미지에 따른 결과일 확률이 높다. 통증이 심한 사람이나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사람’에게 에로스란 가능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깊게 생각하거나 관찰할 필요도 없다고 간주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 또 다른 다큐 (A Young Girl in Her Nineties, 발레리아 브뤼니 테데스키‧얀 코리디앙, 2016)의 주인공들은 죽을 날을 받아 놓았어도, 아흔 살에 인지장애가 있어도 높은 에로스 지수를 유지할 수 있음을 또렷이 보여준다. 이 ‘할매들’은 감성적으로 지각하며 적극적으로 표현하고(Twilight of Life), 또한 새로 다가온 관계에 몰입하며 사랑에 빠진다(아흔 살 소녀 블랑슈). 두 영화 모두 에로스는 리듬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아니 리듬임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리듬의 두 요소, 즉 노래와 춤이야말로 부분과 부분을,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사물을 연결시키는 활기임을 노년은 그 어떤 다른 연령대보다 더 분명하게 확인시킨다. 무기력이나 전면적인 비활성의 상태에 빠진 인지장애 노년조차도 노래의 리듬에 힘입어, 리듬을 타고 생기와 활기를, 더 나아가 사라진 기억을 되찾을 때( Alive Inside, 마이클 로사토-베넷, 2014) 우리의 인간 이해는 서너 뼘 확장된다. 인지증이 심해져 깊고 어두운 침묵에, 우물 같고 갱 같은, 미로가 아닌 미궁에 갇혀 있는 사람의 세포에도 여전히 리듬이 ‘기다리고’ 있다. 리듬은 에로스의 중추다. 리듬에 따라 분절되어 파편으로 흩어져 있던 삶의 각 요소들이 ‘하나의 기억’으로 모아지고(마치 뼈들이 서로를 찾아 다시 하나의 형체로 맞춰지는 것처럼) 비인격, 탈정체성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녀/그는 삶의 주인공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사실은 노년을 직접 대하거나 상상할 때 노년을 이러저러하게 이해/오해하는 비-노년들에게 중요한 각성의 계기를 마련한다. 또한 제도 차원에서 (인지장애)노년들에게 어떤 의료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가와 관련해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 다큐멘터리 (Alive Inside, 2014, 마이클 로사토-베넷, 미국, 2014)의 한 장면. 이제 나의 각성을 말해보자. 에서 아들은 음악을 틀어놓고 침대 위 어머니와 춤을 춘다. 어떻게? 손과 손으로. 손과 손의 듀엣. 허공에서 만나 기뻐하고 미소 지으며 품어주고 사랑한다 고맙다 전하는 두 손. 손과 손이 어우러져 추는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춤은, ‘춤이란 리듬에 따라 몸이 움직이는 것’이라는 춤의 정의를 모자람 없이 충만하게 구현할 뿐 아니라, 손과 손의 접촉 자체가 이미 춤임을, 즉 마음과 마음의 접속을 ‘따라하는’ 미메시스임을 증명한다. ‘손은 센슈얼sensual하다’는 그녀의 말에 나의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나는 허공에서 부드럽게 유영하는 노모와 아들의 손과 손에서 에로스가 생성하는 몽환적 세계를 느낀다. ‘죽음’이 아니라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던, 대항해 싸우는 일을 멈추지 않을 거라던 그녀의 말은 모두 에로스 에너지를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거동이 불가능한 채 침대에 누워있던 엄마의 손을 잡고 쓰다듬고 기껏해야 내 뺨에 갖다 대곤 했을 뿐인 나는 이 손과 손의 듀엣 장면에서 크게 놀랐다. 각성의 순간이었다. 사랑은 매번 재발명이어야 한다는 랭보의 말을, 94세 죽음을 앞둔 어머니와 그녀를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모르겠는 아들이 리듬에 따라 맞대고 떼며 유희하는 손과 손의 ‘감각sense’이 확인하고 있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랑의 삶 곁에서 죽음이 온유한 얼굴로 어깨를 내주고 있었다. 카르페 디엠과 메멘토 모리의 평화로운 공존이었다. 6. 시간의 춤은 윤무다 죽음은 인간이 유한한 시간을 사는 단독자임을 가장 투명하면서도 가장 날카롭게 증명하는 사건이다. 삶은 그 첫 순간부터 죽음을 품고 펼쳐지며, 죽음은 삶의 필연적 귀결이다. 그러나 삶이 누군가들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여행이라면 죽음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사건이다. 죽음의 침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구나 그녀/그가 삶의 여정에서 서로 곁이 되어주며 이런저런 경험과 친밀함을 나누던 사람이라면 이 마지막 사건의 진행도 의미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에서 우리는 노모와 아들 사이의 유대감과 친밀감, 애정의 감각이 어떻게 이 사건을 격이 있는 삶의 마지막으로 만드는지 본다. 그러나 이것이 점점 더 희귀한 은총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의료기술이 확장시킨 기대수명은 만성질환을 견디며 사는 시간도 그만큼 늘려놓았고, 이 시간 속에서 배우자나 가까웠던 동년배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도 감내해야 한다. 삶의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혈연 혹은 유사 가족과의 관계가 서서히 끊어지는 일도 이젠 드물지 않다. ‘누구나 혼자 살고 혼자 죽는 시대에 병원이나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죽기’가(우에노 치즈코, ) 생애 후반부 프로젝트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혼자 죽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혼자 죽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경험의 주체로서 자율과 소멸의 만남을 스스로에게 이해시킨 상태라면 혼자서라도 큰 충격 없이 죽을 수 있을 것이다. 기능저하와 고통이 견딤의 수위를 넘었다면 혼자든 누구와 함께든 원하던 종결을 환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니,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홀로 살다가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은 (본래도 그러하거니와) 지금은 더더군다나 사적 행·불행으로 간주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삶과 죽음은 똑같이 안전과 존엄을 누려야하고, 그 보편성에서 ‘모두’의 일이며 정치적인 사안이다. 혼자 사는 빈곤 노년들이 ‘대학병원 시신 기증’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이 죽은 후 발견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는(최현숙, “사적이고 정치적인 늙어죽음”) 사실을 단지 사적 개인의 불행한, 그래서 공적으로 사소한 일로 여기면 안 된다. 죽음 자체가 단독자의 사건이라고 해도, 지금 현실이 허용하는 죽음이 점차 홀로의 죽음 쪽으로 기운다고 해도 누군가의 진솔하고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죽는 죽음의 가치나 의미까지 다 부정하거나 포기할 수는 없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 모두에서 가능의 폭을 넓히는 쪽으로 방향 조정을 하자고 제안한다. ▶ 영화 (Antonia's Line, 마를렌 고리스, 1995)은 안토니아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은 자연사와 역사에 동시적으로 귀속된다. 긴 연쇄로 이어지는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은 자연사와 역사 모두에서 시간의 춤이다. 그리고 이 춤은 단독자의 춤이 아니라 여럿이 어울려 추는 윤무다! 이 윤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리듬으로, 어떤 형상으로, 어떤 결단과 사랑과 상처와 비탄과 돌봄과 허무와 자유와 욕망을 품고 이어지는지 알고 싶은 사람은 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설득력 있게, 유머러스하고 당당하게, 거침도 타협도 없이 그려내고 있는 포스트가부장제, 포스트자본주의 공동체 삶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사회문화적으로, 탄생은 죽음을 배웅하고, 죽음은 탄생을 축복한다. 무언가를 남기지 않는 죽음은 없고, 죽음이 남긴 그 무언가를 기억하지 않는 탄생은 없다. 이 유토피아에서 시간의 윤무는 당연하게도(!) 첫 가모장 안토니아의 죽음 침상에서 시작된다. 안토니아는 그녀의 침상에 둘러선 4대 식구들 한 명 한 명에게 눈으로 작별인사를 한다. 이제 날개가 안에서부터 계속 펼쳐져 나오듯, 4대의 삶-죽음 이야기가 펼쳐진다. 역사가, 씨 뿌리고 수확하는 자연사가, 윤무의 이야기가. 일다
S가 놀러왔다. 대한민국 지도 끝과 끝에 떨어져서 사는 우리는 퀴어문화축제를 계기로 친구가 됐다. 부산에서 꼬박 5시간. S는 눈을 보고 싶어 했다. 부산에서는 쌓인 눈을 보기 어렵다나. 마침 S가 오기 전날 이곳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나는 아빠에게 친구가 부산에서 놀러오는데 눈이 와서 다행이라며 재잘거렸다. 아빠는 “눈 구경 제대로 하겠네” 하시더니 대뜸 네가 부산에 무슨 친구가 있냐고 물어왔다. 인간관계의 폭이 워낙 좁기에 아빠는 내 친구들을 어느 정도 다 꿰고 있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봉사활동하면서 친해졌어요.” 갑자기 무슨 봉사활동이냐고 다시 물어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빠는 더 물어보지 않았다. “조재님 친구 분이라구요? 어떻게 부산에 친구가 있으세요?” 같은 질문을 받았다. 내가 S에게 소개해준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질문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한 것과 같은 대답을 했고, 괜히 더 긴장됐다. 사장님은 내가 성소수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 괜한 말을 해서 S를 아웃팅시키는 게 아닐까 조심스러웠다. 다른 대답으로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나는 순발력이 영 부족한 사람이다. 거짓말도 잘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기에는 참 아쉬운 조건이다. 둘러대는 거짓말에 재능이 없다니. 어쨌거나 다행히 우려할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아버지: 지수하곤 어떻게…. 학교 친군가?윤주: 아, 제가…지수: 그냥 친한 언니.아버지: 서울 살면 여기가 꽤 멀 텐데. 멀리까지 왔네. 영화 (이현주 감독, 이상희 류선영 주연, 2016)에는 지수와 윤주, 그리고 지수 아버지가 어색하게 밥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 지수 아버지는 침묵을 깨려는 듯 둘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거리가 먼데 어쩌다 왔는지. 지수와 윤주는 연인 사이지만 아버지 앞에서 둘은 그저 친한 언니 동생 사이일 뿐이다. S와 나는 지역적으로 봤을 때 교류할 일이 적다는 이유로 질문을 받는다. 서로 어떻게 아는 사이냐는 것이다. 그나마 친구는 친구라고 소개할 수 있지만, 연인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처럼 애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친구 또는 아는 사람이 된다. 에서 지수가 윤주를 ‘친한 언니’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오프라인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성소수자일수록 온라인에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로 인해 타 지역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더 많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은 질문을 받을 일이 더 많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사자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사람들이 굳이 관계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그럴 리 없으니 역시 거짓말로 둘러대는 순발력을 기르는 편이 나은 걸까, 하고 헛헛한 생각을 한다. ▶ 애인을 애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일다
돌이켜보면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확실히 상큼하진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탈학교’를 외쳤지만 그걸 지지해 주는 사람도, 응원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담임선생님 중에 한 분이 의례적인 상담을 받으러 간 어머니한테 “얘는 해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한참 나중에 전해 들었다. 무엇이 그렇게 학교를 좋아하지 않게 만들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내가 교실을 가득 채운 40명의 학생 중 하나이고, 나는 분명 남들과 다른데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굉장한 나르시스트였던 것일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치곤 매우 조용히 학교를 잘 다녔다. 그렇다고 학업에 열심히 임했던 것도 아니다. 그냥 학교를 다녔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가 특히 그랬다. 시간상으로 보면 고등학교에 다니던 기억이 더 남아있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의 기억이 있을 뿐 고등학교 시절의 특별한 기억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였을까? 에서 출연진들이 환하게 웃으며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눈물을 흘린 건, 부러움의 눈물이었을까? ▶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땐뽀 동아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이승문 연출) (이승문 연출, 2016, 현재 극장 상영 중)는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를 다니며 ‘땐뽀’ 동아리 활동을 하는 고등학생들과 그 동아리를 지도하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담긴 다큐멘터리다. 일본 청춘 영화들이 생각나는 화사한 화면의 색감은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학생들의 웃는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찰 때는, 약간 우려가 들기도 했다. 영화가 이 ‘여고생’들을 어떻게 그려내고자 하는 걸까, 다분히 여고생을 소비하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춤을 추는 여고생들의 모습을 담았다고 하길래 자연스럽게 TV 브라운관을 장악했던 여성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춤추는 여고생들의 꿈’ 이런 말을 들으면 교복을 입고 아기자기한 춤을 추는 여성 아이돌이라는 공식 같은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도 여고생들의 그런 부분을 조명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땐뽀걸즈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화면에 담긴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나의 생각이 완전히 틀렸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이승문 연출의 다큐멘터리 영화 포스터 의 주인공들은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물론 처음에는 선생님이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땐뽀’를 추고 있으면서도, 그 춤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급격하게 나빠진 거제의 경제 상황의 영향으로 가족을 멀리 떠나보내거나 가족 부양에 일부 힘을 보태야 하는 현실이 그들로 하여금 어떤 반짝이는 꿈을 꾸지 못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그 답을 정확히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그 지점이 바로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여고생들을 어쩔 수 없이 꿈을 잃은 소녀들로 묘사하지 않고, 꿈을 좇아 뭐든 해야 하는 소녀들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물론 땐뽀걸즈에게 아예 꿈이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은 댄스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고, 그걸 위해 땀 흘리며 늦은 밤까지 연습을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만을 위해 다른 일들을 희생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소녀들로 조명하지 않는다. 눈물 흘리며 꿈을 이루기 위해 당신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수하고 여린 소녀들로 조명하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쫓아다니며 무언가를 담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일상을 어디에선가 서서 지켜봐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담아낸 화면들이 땐뽀 동아리에 들어오고 나서 학교에 잘 나오게 되었다며 ‘이번 달은 한 번밖에 지각 안 했어요’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인물의 모습, 법적 성인 없이 생활하기 때문에 월세도 직접 벌어야 해서 알바와 동아리 활동을 병행하는 인물이 고기집에서 틈틈이 스텝을 밟으며 연습하는 모습, 그리고 또 취업 준비를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는 모습 등이다.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자 화를 내기도 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고, 고마운 사람에게 그 감정을 어색하게 표현하기도 하는 인물들의 모습도 나온다. 그런 인물들을 보면서 ‘여고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구나’, ‘내가 하는 고민들을 그들이 하고 있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나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여고생과 내가 크게 다를 일이 없다. 여고생, 청소년기라는 건 누구나 겪는 과정이고 한 때 나도 그들이었고 또 그들도 내가 될 테니까. 개개인의 각자 다른 경험을 무시하고 퉁치자는 게 아니라 어린 여성, 청소년 여성, 여중생, 여고생에게 자꾸 어떤 프레임을 씌우고 있지 않는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는 얘기다. ▶ 다큐멘터리 의 한 장면 를 보고난 후에 계속 이 영화가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그리고 뭔가 마음에 짚히는 게 있는데 그게 뭘까 한참을 고민했다. 영화를 곱씹으며 생각하다가 어느 여성 아이돌의 노래 가사에서 나의 풀리지 않았던 무언가에 대한 이유를 찾았다.“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 돼. 그래야 네가 날 더 좋아하게 될 걸. 태연하게 연기할래. 아무렇지 않게. 내가 널 좋아하는 맘 모르게”, “그저 바라보고 있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지. 조금만 더 다가와요. 내 맘 알아줘요.” 이 노래 가사로 대변되는, 흔히 말하는 요즘 어린 여성들의 태도라는 걸 땐뽀걸즈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의 인물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줄 알고,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성취할 줄 아는 주체성이 있다. 지금의 많은 여고생에게 씌워진 프레임에는 없는 그것이 땐뽀걸즈에는 있었다. 땐뽀걸즈가 특별했던 것일까? 아니면 여고생 프레임이 잘못된 것일까? 구글에서 ‘여고생’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이미지들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포털 사이트에서 여고생이라는 단어와 함께 뜨는 연관 검색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후자가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 것이다. 성적으로 대상화를 하거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리고 때 묻지 않는 순수함을 지닌 존재로 미화시키거나. 어린 여성들을 대거 출연시켜놓고 꿈을 위해서라며 체중계에 오르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그런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현실이 잘못이라는 걸 알 것이다. ▶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땐뽀' 동아리 학생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이승문 연출) 영화의 마지막에서 눈물이 났던 건, 내가 가지지 못했던 추억이 아쉽거나 그들의 싱그러움이 부러워서가 아니라 사실은 미안함 때문이었을지 모르겠다. 웃는 모습이 예쁜 그들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데 싶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에 대한 배우들의 고발 이후, 리즈 위더스푼이 얼마 전 ‘우먼 인 헐리우드’(Women in Hollywood) 행사장에서 발언했다는 내용이다. “여기 있는 어린 여성들에게, 당신의 인생은 다를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있으니까. 우리가 당신의 뒤를 지켜줄 거니까.” 지켜준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건지 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땐뽀걸즈의 환한 웃음에서, 더 많은 땐뽀걸즈가 나올 수 있고 그게 가시화될 수 있도록 그래서 더 많은 여성들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그걸 전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들이 받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땐뽀걸즈는 진행 중이다. 일다
지난 8월, 카페 극성수기에 해당하는 여름 시즌부터 일을 시작했다. 카페 오픈 전부터 밀려드는 손님에 허덕이는 하루하루. 비좁은 공간에서 커피 자판기가 된 것 마냥 커피를 내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된데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틈틈이 해야 하는 매장관리다. 과일, 일회용품, 원두, 기타 재료, 소모품 등 물건을 부족하지 않게, 하지만 좁은 공간에 넘치지 않게 차곡차곡 채워 놓는다. 또 여러 과일을 자르고, 다듬고, 무게를 재고, 얼리고, 정리하는 것도 하루 일과다. 이 모든 것은 따로 정해진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없는 틈틈이 눈치껏 해내야하는 일이다. 이 카페에서 손님이 없는 시간이란 길어야 5분 남짓. 종일 엉덩이 붙일 틈 없이 일해도 매장관리가 수월하지 않다. 매장을 관리한다기보다는 내 앞에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해치우다보면 퇴근할 시간이 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다. 처음엔 나의 무능함에 자책했다. 아무리 신경 쓰며 일해도 꼭 한 가지씩 문제가 생겼다. 재료가 부족하다든지, 곰팡이가 피는 경우도 있었다. 하여간 이걸 신경 쓰면 저게 문제를 일으키고, 저걸 신경 쓰면 요게 문제를 일으키는 식이었다. 나중에는 이 반복되는 상황이 정말 내가 문제라서 생기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애초에 최소한의 인원으로는 최소한의 관리만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사장님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관리를 요구했다. 사람을 더 고용해야 마땅한 노동환경이지만 천오백 원, 이천 원 하는 커피를 박리다매로 팔아서 이윤을 남기려면 인건비를 줄여야 했다. 결국 사람을 갈아서 이윤을 남기는 셈이다. ▶ 내가 원두인지 원두가 나인지 ⓒ머리 짧은 여자, 조재 가장 큰 문제는 사장님이 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관리자라는 사실이다. 카페 운영 시스템에 대해서, 직원의 업무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었다. 전에 일하던 직원이든, 다른 지점의 직원들이든 어떻게든 꾸역꾸역 매장을 굴러가게 만드니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매장이 그만큼 굴러가는 건 직원들이 엉덩이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일하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걸 알 턱이 없다. 그러니 만날 “할 만하지?” “여기만큼 좋은 조건도 없어”, “아직 부족해”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이겠지. 눈에 보이는 업무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을까? 오죽하면 단골손님들이 “여기는 일이 많나 봐요. 직원들이 쉬는 걸 본적이 없네요” 라며 오히려 우리를 걱정해줄까. 면접 볼 때 사장님은 말했다.“우리는 법은 다 지켜요.”근무 전, 순진하게도 나는 그 말을 얼마나 신뢰했던가.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말을 재해석한다. 여긴 법‘만’ 지킨다. 법에는 노동 강도가 이만큼일 때 일손이 이만큼 필요하다는 내용 같은 건 없으니까. 기계적으로 법 테두리를 따르는 그에게 직원들은 어떤 존재일까. 함께 일하는 동료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를 매일 갈아치우는 원두보다는 나은 존재로 여기고 있기를 바랄뿐이다. 일다
-이희은 교수, 젠더 정형화된 목소리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 분석 SKT에서 만든 인공지능 음성인식 디바이스 NUGU 광고는 몇 가지 버전이 있다. ‘워킹맘 편’, ‘기러기아빠 편’, ‘스마트녀 편’, ‘남자 편’, ‘여자 편’ 등. 왜 ‘스마트녀 편’이라는 이름의 광고가 왜 있어야 되는지에 대한 비판은 일단 뒤로 하고, ‘기러기아빠 편’을 보면 NUGU의 ‘아리아’라는 여성 목소리와 아빠와의 관계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기러기아빠에게 생긴 음성인식 디바이스의 역할은, ‘가스 밸브가 열렸어요’, ‘열심히 돈 버셔야죠’ 등의 말을 하는 부인, 딸의 자리 채워주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워킹맘편에서 이 디바이스가 아이의 친구처럼 반응하며, 남편의 역할을 해 주지 않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 같은 양상은 이희은 교수(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가 인공지능 음성인식 디바이스에 대해 분석하며 지적한 내용이다. 지난 11월 18일(토) 한양여자대학교에서 열린 2017년 한국여성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이 교수는 ‘사운드로 살펴본 인간과 미디어의 공생’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희은 교수에 따르면 이런 음성인식 디바이스의 목소리는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이다. 애플사의 시리(Siri)는 젠더 선택이 가능하긴 하지만 처음에는 여성의 목소리만 있었다. 구글의 어시스턴트(Assistant)는 젠더가 없다고 했지만 분명 여성의 목소리로 만들어져 있다. 하필 이름도 어시스턴트(=비서)다. 구글은 그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인지 어시스턴트의 출시 이후 1년 만인 지난 10월 남성의 목소리를 추가했다. 아마존의 알렉사(Alexa),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타나(Cortana) 모두 여성의 목소리다. 그리고 이 디바이스들은 일종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오늘의 날씨 좀 알려줘’, ‘내일 내 스케줄을 알려줘’, ‘음악 좀 틀어줘’. 제작사들도 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구글은 아예 ‘어시스턴트’라는 이름까지 지어줬으니까 말이다. ▶ SKT 인공지능 음성인식 디바이스 NUGU 기러기아빠 편 광고 중에서 2008년, 인공지능에 대해 연구하는 인디아나 대학의 칼 맷도맨(Karl MacDorman) 교수가 행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남성 참가자 모두 여성의 목소리를 ‘더 따뜻하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 참가자의 그룹이 여성의 목소리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진행한 시장 조사의 결과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더 ‘도움되고 신뢰할 수 있는 비서의 목소리’에 적합하다고 나왔다고 한다. (WSJ 2017년 2월 21일자, ”Alexa, Siri, Cortana: The Problem With All-Female Digital Assistants”) 거의 20년 전 스탠포드 대학에서 클리포드 나스(Clifford Nass)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컴퓨터화된 남성의 목소리는 컴퓨터에 대해 가르치는 선생님의 목소리로 인지되고 컴퓨터화된 여성의 목소리는 사랑과 관계에 대한 조언을 주는 조언자로 선호된다고 한다. 명령을 받는 비서 같은 역할에서는 여성의 목소리가 사용되지만 도미노 피자의 온라인/앱 피자 서비스처럼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에는 ‘신뢰감이 가는’ 남성의 목소리가 사용된다.(WSJ 2017년 2월 21일자, 위와 동일 기사) 그렇다면 왜 이렇게 목소리의 역할이 나뉘게 된 것일까? 이희은 교수의 발표에 의하면, 산업이나 학계가 제시하는 이유들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시끄러운 도시소음 속에서는 여성의 높은 목소리가 더 잘 들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 주장이 오히려 근대사회 공적 공간의 대다수가 남성의 목소리로 뒤덮여 있음을 말해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재생되는 것은 명령이 아닌 도움이나 안내의 목적일 때뿐이다. 둘째, 사람들이 여성의 목소리에 더 친근함을 느낀다는 설이다. 인간의 뇌는 자궁에 있을 때부터 들었던 엄마(=여성)의 목소리에 선천적으로 더 반응한다는 환원론적인 해석이 대표적이다. 셋째, 역사적으로 기계음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때 전투기의 항법장치였고 이는 주로 남성이었던 조종사들 사이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귀에 쏙 들어오도록 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은희 교수는 1990년대 후반 독일의 BMW가 여성의 목소리가 사용된 네비게이션을 출시했다가, 여성의 목소리로 된 지시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 많은 남성 운전자들의 항의가 있었던 사례를 들며 그 주장의 빈약함을 지적한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전화 산업 초기에는 주로 남성을 전화교환수로 채용했었다. 초창기 교환수의 일은 대부분 부르주아 계층이었던 전화 가입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일이었다. 기술적 지식 이상으로 고객 접대가 중요 요소가 되었고 전화 산업은 이 일이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는 20세기 초 여성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경제적 이유와 여성의 목소리가 더 ‘상냥하고 친절하여’ 고객에게 평판이 좋다는 문화적 이유가 모두 작용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여성의 목소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라고, 이희은 교수는 지적한다. 교환원들의 말은 처음엔 제각각이었으나 일정한 틀을 갖추는 방식으로 정비되었고, 그것은 교육으로 전수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규격화되었다. 이처럼 자본주의 테크놀로지와 여성의 목소리는 기술적이고 문화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결국 ‘듣기 좋은’ 소리라는 의미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젠더로 나뉘어진 목소리의 역할이 가지고 오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아닐까.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여성의 목소리로 강요된다는 것. 생각해보면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의 시작되는 아름답고 상냥한 안내의 목소리가 우리 세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이용하는 교통 수단부터 불편함을 겪었을 때 연락하게 되는 다양한 안내처 그리고 내 손에 늘 쥐어져 있는 작은 기기에서도. ▶ 시리와의 대화 중 ⓒ박주연 그리고 그 목소리는 거절을 하지 않는다. 나의 아이폰의 ‘시리’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죄송해요, 이해를 못했어요. 한 번 더 말씀해 주시겠어요?’라고 한다. 시리에게 대화의 주도권은 없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물을 뿐이다. 그 목소리는 여성의 목소리로 계속 반복된다. (시리의 경우, 언어를 영어로 선택하면 여성과 남성 중 선택을 할 수 있지만 한국어를 선택하면 여성 밖에 선택지가 없다.) 여성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계속 지워지는 이유, 그리고 적절한 목소리를 냈을 때 ‘니가 뭘 알고 감히 그런 말을 하냐?’ 라는 강압적 태도에 마주하게 되는 것은 이렇게 우리 사회 곳곳에 여성의 목소리를 정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목소리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다. 우리는 늘 상냥하고 친절하고 부드러운 존재가 아니다. 항상 누군가를 ‘오구오구’ 달래며 안내해야 하는 임무를 타고 나지 않았다. 그건 그러길 바라는 누군가가 ‘기대’하는 임무일 뿐이다. 이런 정형화를 가속시키는 사회의 반복되는 움직임에 대해 이제 제동을 걸어야 한다. 우리에겐 ‘팅커벨, 아리아, 크리스탈, 레베카’의 선택(SKT의 NUGU는 이 이름 중 선택할 수 있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제인, 잭슨’의 선택이 필요하다. 아니, 인공지능 로봇에 정말 성별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부터 필요하다는 것을, 이희은 교수의 연구는 시사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오늘 당신이 듣길 기대하는 그 ‘듣기 좋은’ 목소리는 만들어진 것이다. 일다
※ , 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먹는 행위에 대한 무신경은 우리 자신과 자연에 대한 무지와 망각에서 비롯된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밥 먹기 [아침에 식구들은 제각각 밥을 먹었다. 아빠는 아침 드라마를 보며 서서 밥을 먹고, 초등 6학년인 딸은 부엌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서서 밥을 먹었다. 그들이 밥을 각자 먹고 난 뒤 엄마는 대충 설거지거리를 정리하고 밥을 들고 방으로 들어와 역시 TV를 보며 먹었다. TV 속 드라마는 아주 끔찍한 거짓을 태연하게 연출하는 어떤 여자와 그 일을 당하는 사람들의 분노로 격렬했다. 그런 화면을 보면서 밥을 먹다가, 먼저 나가는 딸의 인사를 받으며 ‘잘 갔다 오라’고 반은 현관을 향해, 반은 TV를 향해 서서 말했다. 나도 덩달아 TV를 보다가 집을 나가는 조카에게 건성 마음으로 대충 인사를 했다. 나는 TV 속 상황에 빨려 들어가 현실에 있으면서도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이상한 상태에 놓여 있다. 현실과 드라마가 얽히고, 먹는 것과 보고 듣는 것이 얽히고, 앉는 것과 서는 것이 잘 분간이 안 간다. 몸도 마음도 뒤숭숭한 채로 공중에 붕 떠 밥을 먹는 건지, 드라마를 보는 건지 모르는 채로 밥을 먹었다. 그리고 허겁지겁 출근하는 동생 부부를 따라 나도 허겁지겁 그 집을 나왔다. -2016년 3월] 도시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젊은 사촌동생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을 먹은 일이다.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가 떠올랐다. 아침 시간은 1분을 다투는 바쁘기 짝이 없는 시간이다. “도대체 밥을 먹는 건지 흡입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동생의 말대로, 먹는다는 행위에 아무런 의미도 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 집 식구들은 아침 드라마를 즐겨서 TV까지 봐야 하니 더더욱 먹는 행위가 아무 것도 아닌 무화(無化)된 행위였다. ▶ 정성스러운 밥상.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되었다. ⓒ김혜련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내가 밥 먹는 행위에 대해 의식하게 된 것은 삼십대 초반의 일이다. 위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그렇게 밥을 안 씹고 계속 먹으면 위가 다 헐고, 위하수가 되어 고생을 심하게 한다고 했다. 밥 먹을 때의 나를 관찰하니 밥을 씹지도 않고 넘기거나 물이나 국 같은 것에 말아서 훌훌 들이 마시는 식이었다. 아침밥은 걸렀고, 배가 고픈지 어쩐지도 잘 몰랐다. 이유 없이 짜증이 나거나 화가 올라오면 배가 고픈 거였다. 그러다 식당 같은 곳에서 맛있는 게 나오면 게걸스럽게 먹어대며 과식을 했다. 배가 고프니 밥을 먹지만, 먹는 행위에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았다. ‘그까짓 밥’은 후딱 먹어치우고 다른 일을 해야 했다. 밥은 생존을 위해, 의미 있는 다른 삶을 위해 할 수 없이 먹어야 하는 무엇이었다. 귀찮아하면서 억지로, 대충, 자동차에 주유하듯, 휴지통에 쓰레기 집어넣듯 그렇게 먹었다. 먹는 습관은 어떤 습관보다도 질겨서 잘 바뀌지 않는다. 지리산 수행 시절, 호두마을에 위파사나 수행을 하러 갔을 때다. 위파사나는 ‘알아차림의 명상’이다.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을 잘 보는 것이다. 밥 먹을 때도 바라본다. 밥이 입에 들어가는 것, 씹는 것, 목으로 넘어가는 것, 숟가락을 다시 들고 젓가락을 내려놓는 것… 그 모든 동작을 알아차린다. 그러면 자각적으로, 천천히 밥을 먹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바라봐도 목구멍 저 안쪽에 무슨 허기진 짐승이 살고 있어 음식이 들어오자마자 게걸스럽게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구강기의 결핍을 채우듯 한 입 가득 떠 넣은 음식은 들어가자마자 목구멍으로 꿀꺼덕 넘어갔다. M이 차려주는 정성스런 밥상 앞에서도 나의 밥 먹는 태도는 감출 수 없이 드러났다. 겉으로는 천천히 밥을 잘 먹고 있는 것 같아도 안에서 허겁지겁하는 태도가 그의 정갈하고 아름다운 밥상에 고스란히 비춰졌다. 게다가 아무렇게나 먹는 태도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는 위 때문에 나는 계속 고통 받았다. 위가 고통을 호소하면 그제야 어쩔 수 없이 밥 먹는 태도를 바꿨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오래 음식을 씹어야 하고, 오롯이 먹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되었다. 대충 먹기…현대인의 ‘페스트 라이프’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아주 다른 차원의 밥을 보여준다. 아무렇게나 먹는 밥, 서서 대충 먹는 밥, TV나 핸드폰 보면서 먹는 밥, 꾸역꾸역 먹는 밥… 이 때 밥은 아마도 자동차에 연료를 넣는 의미 이상은 못될 것이다. 그럴 때 나의 삶은 자동차나 기계가 된다. 대충 먹는 밥은 대충 사는 삶이다. 꾸역꾸역 먹는 밥은 꾸역꾸역 사는 삶이다. 를 쓴 마이클 폴란 같은 사람은 엉뚱하게도 ‘음식을 먹어라’, ‘식사를 하라’고 권한다. 누구나 음식을 먹고 누구나 식사를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는 거다. 현대 미국인들은 음식이 아닌 ‘상품’을 먹고, 식사가 아닌 식사를 한다. TV를 보거나 운전이나 다른 일을 하면서 ‘우물거리고 있다.’ 우리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성공지향적인 사회, 더 많은 시간 일하는 사회는 페스트 푸드를 먹으며 페스트 라이프(Fast Life)라는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마이클 폴란의 행복한 밥상)다. 빨리빨리 먹고 빨리빨리 살아야 한다. 몇 달 전 에서 “굶고 때우고 견디는 청년 ‘흙밥’ 보고서”(2017년 2월 25일~3월 4일)를 연속으로 다루었다. 청년들은 수중에 돈이 떨어졌을 때 제일 먼저 먹는 것을 포기했다. 통신비나 사회생활비는 줄이기 싫고 먹는 것을 줄였다. 만화가 김보통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도 백수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줄인 게 식비였다. 어느 날 그는 팬티 바람으로 부엌에 서서 식빵에서 곰팡이를 뜯어내며 ‘착실하게 스스로의 존엄을 바닥에 내려놓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김보통 제12화 ‘식빵맨의 하루’) ▶ “굶고 때우고 견디는 청년 ‘흙밥’ 보고서”와 (촬영: 김혜련) “아이고, 노인네가 영양실조라 병원 가서 링겔 맞고 왔어요. 밥을 안 해먹어요, 밥을! 꽃도 가꾸고, 밭일도 하면서 밥은 왜 안 해먹지 몰라.” “어쩌다 엄마 집에 가 보면 컵라면 봉지가 수두룩이야. 밥 해먹일 자식들 없으니 밥을 대충 드시는 거야. 그러지 마시라 해도 안 돼. 평생 배인 습관이라… 저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이 돼.” 친구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보면서 하는 한탄이다. 평생 밥을 했지만 자신을 위한 밥을 정성스레 한 경험이 없는 여성들은 나이 들어 홀로 되면 ‘제대로 안 먹거나’ ‘아무렇게나 먹거나’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 바빠서, 할 일이 많아서, 가난해서, 젊어서, 늙어서, 홀로라서… 대충 먹고 산다, ‘스스로의 존엄을 내려놓으면서.’ 한 사회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 밥이 아름다운 세상 압력밥솥 뚜껑을 열고 김이 막 오르는 밥을 나무주걱으로 살살 젓는다. 먹빛이 도는 자그마한 자기 그릇에 소복이 담는다. 현미잡곡밥에 들깨 미역국, 두부구이, 김치. 식탁에 단정히 앉아 손을 모아 감사드린다. [한 입씩 먹는다. 현미밥은 오래 씹을수록 단 맛이 난다. 밥이 다 넘어가면 국을 뜬다. 미역의 미끌한 느낌과 들깨의 고소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현미유에 구운 따끈한 두부의 말랑하면서도 졸깃한 맛, 약간 신 김치의 톡 쏘는 알싸한 맛을 느끼면서 천천히 먹는다. 저무는 햇살이 갓 튀겨낸 튀김처럼 투명하게 바삭거린다. 반찬으로 가을 저녁 햇살 한 줌 뿌린다. 딱새 한 마리 먹이를 물고 소나무 가지에 앉았다. 함께 식사를 한다. -2016년 11월] ▶ 딱새와 나, 함께 식사를 한다. (그림: 김혜련) 직업이나 바쁜 사회적 활동이 없는 나의 식사다. 늘 이런 식으로 밥을 먹는 건 아니다. 드물게 자각적으로 깨어서 음식을 먹을 때 이렇게 한다. 이 때 밥 먹는 행위는 맑고 아름답다. 먹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자각적으로 깨어서 먹으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음식을 먹고 있는지 음식 흉내를 낸 음식 아닌 것을 먹고 있는지, 건강한 재료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 몸의 감각에 민감해져 각각의 재료들이 지닌 맛을 충분히 음미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쓸데없이 많이 먹지 않게 되고, 배가 부르다는 몸의 신호를 알아듣게 된다. ‘밥을 먹는다’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나와 이 세계의 신성(神聖)을 깨닫게 한다. ‘먹는 나도 하늘님이고, 먹고 있는 존재도 하늘님이라는’ 위대한 사유가 내 이빨 사이에서 톡톡 터지는 생생한 순간을 맞는다. 한 끼 밥을 대하는 태도가 나를 대하는 태도, 내 삶을 대하는 태도이다. 밥을 정성스럽게 먹는 행위는 나를 정성스럽게 대하는 것이고, 내 삶을 정성스럽게 창조하는 일이다. 생명은 아름답게 살아주어야만 죄 짓지 않는 것이다. 밥이 아름다워 생명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세상을 꿈꾼다. 일다
2015년 메갈리아의 탄생과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reboot) 현상과 영영페미니스트의 등장, 그리고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페미니즘을 둘러싼 여러 논쟁 속에서 보낸 2017년. 다른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이 한 해가 어떤 의미였을까?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네 명의 2030 페미니스트와 대담의 자리를 마련했다. 2017년이 며칠 남지 않은 12월 19일(화),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카페에 모인 네 사람은 초면의 어색함을 금세 이겨내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해를 돌아보며 페미니즘 키워드를 꼽아보고, 앞으로의 사회문화적 트렌드에 대해서도 논의해 본 이 날 대담의 내용을 2회에 걸쳐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 2017년 페미니즘 키워드를 꼽아보는 대담에 참여한 오픈바이, 미성 Ⓒ일다(박주연) - 시간 내어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자 다른 분야에 있는 2030 페미니스트들을 모셨는데요. 간략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요. 남순아: 남순아라고 하고요, 영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픈바이: 전 퀴어-프렌들리(queer-friendly)하고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심리상담소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오픈바이라고 합니다. 미성: 미성입니다. 사회적 경제 영역을 지원하는 조직에서 일했고요, 지금은 구직 활동 중입니다. 도영원: 저도 얼마 전에 일을 그만 뒀어요. (다같이 웃음) 에 젠더 프리즘 칼럼을 기고했고, SNS를 통한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프리랜서 인권노동자 도영원입니다. - 이 자리를 마련한 건, 2017년을 보내야 할 시점이 오면서 페미니스트로서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하고 내년을 맞이하면 좋을지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었어요. 정초부터 정말 많은 사건들이 있었는데 어떤 것들을 꼽을 수 있을까요? 남순아:올해는 상반기의 키워드는 탁현민이고 하반기는 애호박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다같이 웃음) 그리고 또 생각해봤는데 영화 , 왁싱샵 살인 사건, 갓건배 살해 협박 사건… 올해 인상 깊었던 일들이 왜 다 이런 것들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영화 토일렛: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그린 영화로 강남역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구성과 내용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왁싱샵 살인 사건: 인터넷 방송 BJ가 혼자 일하는 여성이 있는 왁싱(제모)샵을 소개했고, 이후 한 남성이 그 샵을 찾아가 성범죄를 저지르고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다. 또 하나의 여성혐오 살인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갓건배 살해 협박 사건: 여성 게이머이자 유튜버인 갓건배에 대해, 남성 BJ가 ‘메갈’이라며 살해 협박을 하고 신상을 털고 집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경찰이 체포했지만 범칙금 5만원을 내고 풀려났다.) ▶ 여성비하로 논란이 된 탁현민의 , 강남역 살인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의 영화 포스터, 페미니스트 논쟁을 벌이며 애호박 게이트로 불리게 된 배우 유아인의 트위터 작년 이 즈음에는 ‘XXX_내 성폭력’ 고발 등으로 페미니즘이 힘을 받는 느낌이 있었는데, 올해의 경우에는 그런 고발이 있었고 ‘그럼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저 개인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거예요. 내가 뭘 해야 하지? 하는 생각에 좀 방황을 한 것 같아요. 오픈바이: 전 제일 먼저 대선 과정이 생각나는데요. 대선 토론에서 당시 후보였던 문재인의 ‘동성애 반대’ 발언이 나오고 난 후, 그 때부터 이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주변 친구들의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제 인간관계가 정리되기도 했고 좀 힘든 부분이 있었어요. 미성: 올해에 있었던 일 중에 무고죄와 관련한 이슈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작년에 성폭력 고발들이 해시태그를 통해서 있었는데, 그 가운데 법원에서 무혐의 처분이 난 사건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무혐의 처분=무죄’라는 식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많은 사람들이 당황했던 것 같아요. 법의 영역에서 혐의없음(증거불충분)이라고 해서 정말 문제가 없었다는 건 아니잖아요. 몰카 찍는 성범죄 전담 판사도 있고, 미성년자를 강간한 40대 남성에 대해 (사귄 거라며) 무죄라고 판결한 사건도 있죠.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해시태그(#Me too)를 보면서 느꼈던 게 ‘한국이 정말 빠르구나’ 하는 거예요. 우리는 이미 작년에 ‘XXX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죠. 그 때 저도 좀 고양되었던 느낌이었어요. ‘우리가 더 많아질 수 있구나’라는 느낌이 있었죠. 물론 우리가 다 같은 건 아니지만.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피로도가 올라간 것 같아요. 저도 올해가 힘들게 느껴졌는데, ‘한샘 사건’(신입사원 성폭행 사건)도 그렇고… 계속해서 (성범죄) 사건들이 해결되지 않고 이어졌기 때문이죠. 도영원: 제가 느낀 것과 다들 비슷한 것 같은데, 저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서 조금 마음이 식은 부분이 있어요. 작년, 재작년까지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고,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완전히 동화되어서 함께 가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제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달까. 왜일까 생각해 봤는데, 이 움직임의 다음을 보고 싶었던 같은데 그걸 찾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정치적으로 무언가 변화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화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게 느껴지지가 않았고…. 고양감을 불러오는 것까지만 계속 생산되고 있다는 느낌을 좀 받았어요. 그 안에서 제 위치가 어디인가를 봤을 때 오히려 소외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전 젠더플루이드(genderfluid, 유동적인 젠더), 에이로맨틱(Aromantic, 無로맨틱)인데 이 성정체성과 성적 지향이 잘 알려져 있지 않거든요. 성소수자 혐오 관련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그 혐오에 대항하는 게 통쾌하고 좋았는데, 저의 성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서는 그런 반응을 보기가 힘든 거죠. 무언가의 세력을 만들기도 힘들고… 그런 일들을 좀 겪고 나니까 ‘내가 변화를 봤었는데, 그 변화가 진짜 일어나고 있나?’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 2017년 페미니즘 키워드를 꼽아보는 대담에 참여한 도영원, 남순아 Ⓒ일다(박주연) - 그래도 조금의 변화가 있진 않았나요? 페미니즘이 가져온 긍정적인 영향들이요. 미성: 페미니즘에 대한 인지도는 조금 더 높아진 것 같아요. 그러나 저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아직 시민단체, 시민사회 중간지원조직과 출연기관에서도 ‘직장 내 성평등’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세대 간의 인식 차이도 꽤 크고요. 다양한 루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교육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예전에 비해 의무적으로나마 하고 있죠. 또 한편으로 제가 느꼈던 건, 성평등 교육이 지침이나 매뉴얼만 의무적으로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런 말은 하면 안 되고 이런 말은 쓰면 안 됩니다 같은, 조심해야 하는 것들만 전달하는 거죠. 주의사항만 잘 지킨다고 해서 성평등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인식이 바뀌어야 하니까요. 양질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오픈바이: 페미니즘이나 여성 이슈에 대한 반응이 변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요즘 웹툰 인스타 댓글을 보면, 예전에 비해 반응이 호의적이거든요. 전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만 나왔던 페미니즘 관련한 이야기들이 이제 인스타에서도 이야기되기 시작한다는 점도 변화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관심 없었던 친구들도 점점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그래서 전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다만 사람들이 페미굿즈를 사고 각자 가시화하고자 했지만, 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일어나지 않아 조금 의기소침해 있는 상태 같아요. (※며느라기: 결혼한 여성이 며느리로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웹툰(@min4rin)이다.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으며 인기 웹툰으로 성장했다.) ▶ 웹툰 의 장면 중 Ⓒ며느라기 페이스북 facebook.com/min4rin - 변화는 더디고, 기대를 품었던 페미니스트들이 조금씩 지쳐가는 것 같네요. 이런 상황 속에서 각자 어떤 고민들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더 얘기해주세요. 남순아: 전 ‘찍는페미’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지금은 활동을 안 하는 상태인데요. 그러고 나니 소속된 곳이 없으니까 페미니즘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료들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저도 다음 단계를 고민하고 있는데요. 피해를 호소하며 ‘힘들어요’ 라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어떤 변화를 가지고 와야 하는가? 등에 대한 고민을 해요. 개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서도요. 미성: 젠더감수성 교육을 진행하면서 고민한 건데, 대부분의 페미니즘 세미나나 강의는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잖아요. 그런데 단체/기관에서 전체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자발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잘 기획해야 해요. 모두에게 친절히 떠먹여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페미니즘이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여러 단계의 교육이 개발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관련한 교육을 들으면서 고민했던 것도 같아요.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그 다음 스텝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꽤 본 것 같아요. 스터디 모임을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갈증도 있고요. 올해 작년에 비해 페미니즘 관련 책이 두 배 이상 팔렸다는 기사가 나왔더라고요. 전 이런 통계가 페미니즘 책의 종수가 늘어난 이유가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분명 몇 년 전에 비하면 많아졌지만, 최근 우리(페미니스트)의 범위가 정말 넓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조금 의문이 들기도 해요. -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네 분이 올해 고민한 내용이 비슷하네요. 2015년부터 페미니즘이 다시 부각되면서 많은 여성이 용기 내어 다양한 목소리로 외쳤지만, 체감 상 크게 바뀐 것은 없는 것 같은데 해결되지 않는 논쟁은 심화되고… 과연 내가 해야 하는 건 뭘까, 라는 생각이 깊어진 한 해였군요.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올해의 키워드나 고민이 있다면? 오픈바이: 전 ‘매일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싶어요.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을 때 했던 페미니스트 대통령 선언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후에 일어난 일들과 최근 애호박 게이트까지 보면서 ‘페미니스트 선언’이라는 게 진정성이 사라지는 걸 목격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누군가는 페미니즘을 자신을 포장하는 포장재로 쓰는 게 아닌가? 라고 생각되는 거죠. 도영원: 정확한 키워드를 뽑은 건 아닌데, 저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이전보다 더 힘든 부분이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에는 SNS에서 여성이나 성소수자 관련된 정책 등에 대해 잘못된 부분을 짚으면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올해는 (정부에 대해) 어떤 비판적 발언을 하면 왜 그런 말을 하냐는 식의 공격을 받는 일들이 있었어요. 한두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그런 말을 저 스스로도 안 하게 되었어요. 정신적 소모도 너무 크고 상처받기도 하고 그래서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게 맞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더 힘든 것 같아요. 굉장히 많이 나아진 것도 아닌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어졌으니까요. 또, 요즘 ‘페미니즘이라는 기호’에 대한 쟁탈전이 생긴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요. 예전에는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어떤 도전 같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나도 페미니즘하고 너도 페미니즘하고 이러면서 내가 하는 페미니즘이 옳아, 이게 진짜 페미니즘이야,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되고 그 안에서 세력이 나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픈바이: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게 ‘나중에’(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에게 ‘나중에’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하고 참가자들이 ‘나중에’를 연호한 것에서 비롯된 용어)라는 키워드에요. 최근에 페미니즘 내부에서도 ‘나중에’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거든요. 그게 또 다른 소수자를 배제하는 것 같아서 좀 걱정스러워요. 2017년 연말, 페미니즘은 지금 어떤 위치이고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걸 고민하는지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렀다. 한 해의 사건들을 되돌아보니 유쾌한 이야기가 나오진 않았지만, 현재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며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또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공감을 얻기도 했다. 한숨을 돌리고 그 이야기를 정리한 후, 2018년은 어떤 한 해가 될 수 있을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일다
울산에서, 여성들이 ‘생리’에 대해 묻다 ※ 생리대 안전문제를 계기로, 울산에서 열린 [생리 수다는 처음이지?] 강좌 내용과 후기를 기록노동자 희정 님이 기고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울산 거주 4년 차. 가게 주인은 생리대 담을 검은 봉지가 없다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일명 생리대 감금. 주인이 검은 봉지를 구석에서 찾아낸 후에야 풀려났다. 한번은 화장실에 생리대 상자를 놓았다고(물론 생리용품은 습기 찬 곳에 두면 안 된다) 같은 사무실 여성 직원이 쫓아왔다. “이런 거 두면 안 돼요.” 내 생리대는 ‘이런 게’ 됐다. 생리의 고통을 SNS에 읊조렸다가는 한 소리 듣는다.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한다니. 홍길동만큼이나 서러웠다. 생리라는 것은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니 서러움을 잊지도 못했다.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으나, 내가 거주하는 남초 공업도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생리 앞에 다들 ‘쉿!’이라도 달아놓고 사는 것 같았다. 그러다 더는 쉿! 하지 못할 일이 터졌다. 텔레비전을 틀면 생리대 이야기가 나왔다. 시중 판매되는 일회용 생리대에서 벤진, 스티렌 등의 유해물질이 검출됐단다. SNS, 카카오톡 단톡방마다 여자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제 뭘 써야 해?” 해외 직구 생리대를 구입하려면 배송비를 감수해야 했다. 면생리대는 품절 현상을 겪었다. 대안으로 이야기된 생리컵을 두고 일부 남성들은 질 삽입 시 “잃어버릴” 처녀막을 운운했다. 여자들은 매장에 진열된 화학덩어리들 앞에서 전전긍긍하는데 인터넷에서는 “생리가 벼슬이냐”는 소리가 퍼졌다. 홍길동이라면 이제 머리카락이라도 뽑아 분신술을 펼칠 때였다. 그래서일까. 10월 경 울산에서도 사람들이 모였다. 생리대 캠페인을 하면 그 앞을 지나가는 여성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빨라진다는 울산에서 말이다. 여성-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주축이 됐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시작이었다. ▶ 12월 1일 울산에서 열린 “생리 수다는 처음이지?” 강좌 웹홍보물. ⓒ생리강좌 기획단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가 보여주는 것 시작은 가볍게 하기로 했다. [생리 수다는 처음이지?]를 제목으로 하여, 생리에 대한 Q&A를 컨셉으로 걸었다. 여성이 공개적으로 자신의 몸과 생리에 관해 묻고 말한다. 강좌 웹홍보물에 생리대 그림을 크게 실어버렸다. 생리가 뭐라고 말을 못 해? 생리대 그림이 말해주길 바랐다. 12월 1일, 울산아이쿱생협 무거공간을 빌려 강좌를 열었다. 효과는 있었을까? 있다고 본다. 강좌 사회를 본 남성은 처음 알았다고 했다. 생리가 하루이틀만에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성희롱 예방교육이 실시되지 않았던 시절에 컸다. ‘사내자식이’를 주문처럼 읊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았다. 그러다 쉰 줄에 생리 강좌 사회자로 서게 됐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공부를 해야 했다. 그의 첫 의문은 “왜 이렇게 비싸?”였다고 한다. 사회구성원 중 상당수가 생리대를 필수품으로 사용하는데 왜 이렇게 높은 가격에 판매될까? “생리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이야기할 수 없게 만드는 현실에 그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나름 원인을 추측해 내놓는다. 그 자신 또한 생리대 가격과 하루 생리대 사용량과 생리일수를 알고서야 생리대 가격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강좌를 연 이들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입 다물고 살면, 누군가는 운동화 깔창을 써야 할 정도로 비싼 생리대에서 벤젠이 나오는 세상이 된다는 것. 이번 강연에 초대된 조현희 강사(가톨릭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 의사)는 생리대 유해 사태로 밝혀진 일회용 생리대의 브랜드별 유해물질을 표로 보여주며 말했다. “지금 이 표를 보면서, 어느 생리대가 더 위험하다를 찾으시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생리대가 정말 하나도 관리가 안 되고 있구나. 이 사실에 분노를 느껴야 합니다.” 그 자신이 산부인과 전문의인데도, 생리대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고서야 월경용품이 이토록 조사연구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 국내에는 생리대 유해물질 조사방법조차 구축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성의 몸과 건강에 대한 연구는 현저히 적다. 그런데도 사건이 터지자,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기관은 증거부터 요구했다. 유해하다는 증거가 없다. 식약처의 주장이다. 생리대에 함유된 화학물질의 농도가 낮다며 인체에 끼칠 위험성을 부정했다. 그러나 여성의 질은 각질화가 되어 있지 않은 곳이기에 일반적인 수치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조현희 강사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대음순의 각질화 부분에 실험한 결과, 팔 안쪽보다 6배 높은 약물 투과율을 보였습니다. 대음순도 이럴 진데, 각질화 되어 있지 않은 질과 소음순에는 약물이 흡수되는 정도가 더 클 거라는 건 충분히 예측되지요.” 여기에 더해 생리 기간에는 세포 간격이 넓어져 투과성이 더 높아진다. 피가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흔히들 사용하는 방수팬티 등으로 인해 변화하는 습도와 온도도 고려되어 한다. 질 부근에 노출된 화학물질을 무해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아직 증명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조현희 강사는 관련 연구와 조사의 필요성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여성이 자신의 몸에 관심 두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생리대 유해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자 주변에서 이리 묻는다고 했다. “의사 안 하고 환경운동 할 거니?” 그녀의 대답은? “여성은 환경운동가가 될 필요가 있어요.” ▶ 조현희 산부인과 의사가 ‘생리대 유해물질과 여성건강’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생리강좌 기획단 ‘예민한 몸’에 핍박을 가하는 사회 조현희 강사는 상대적으로 여성이 외부환경에 더 ‘예민한’ 몸을 가졌다고 했다. “그 예민함이 남성우월 사회에서는 무시당하고 핍박 받아온 거지요.” 사회는 여성의 예민함을 무시한다. 관심 두고 주의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근거 없는 일, 증명되지 않은 일로 치부한다. 간혹 들려오는 “남자가 생리를 했어도 이랬을까?”하는 한탄은 과민한 반응이 아니다.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뚝딱 먹어버리지 않으니’ 정치인 같으면 관련 법을 만들고 재산가 같으면 병원이나 시설을 지으려 한다는 거지요.” (김민아 저)에서 인용된 말이다. 여성의 경험도 뚝딱 먹혀졌다. 그간 생리통은 “애 낳으면 괜찮아지는” 것으로, 생리 전후 감정변화는 유난떠는 것으로 치부됐다.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조사할 대상이 아니었다. 수전 웬델은 저서 에서 “다른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어떤 영향을 받는지 상상할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의 주체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생리 하냐?”가 비난이자 농담인 사회를 산다. 이 사회는 여성의 경험과 아픔을 상상하지 못한다. 여성의 생리(와 그 경험)를 상상하지 못 한다. 그것은 수전 웬델의 입을 빌린다면,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다. 유난이고 감정적이라 치부 당해온 몸의 예민함. 이날 강좌에서 여성들은 핍박 받아온 예민함을 전면에 내세우고 대놓고 몸 걱정을 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질문 자체는 평이했다. “생리통이 심한데 병원에 가는 게 나을까요?” “인체 삽입 피임을 하고 싶은데 몸에 해롭진 않나요?” “폐경 후에 조심해야 할 것이 뭔가요?” 내 옆자리 누군가가 속삭였다. “산부인과 가기 힘들잖아요. 이참에 다 물어봐야지.” 아플 때 가라고 있는 것이 병원이고, 생식질환이 있을 때 찾아가라고 있는 것이 산부인과다. 그러나 못 간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산부인과 병원 문턱은 높다. 그러니 산부인과 전문의가 강사로 온 김에 다 묻고자 했다. 사람들은 집중했다. 강의는 성공적이었으나 슬픈 일이었다. 기업을 감시하고, 국가에 요구하라 사회가 상상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까지 가만있을 순 없다. 생리컵의 안전성을 묻는 질문에 조현희 강사는 “자신의 질을 알 필요가 있다”로 답을 맺었다. 안전한 생리용품을 사용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안전하다는 소문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닐 수만은 없다. 강사가 “자신의 질 모양을 아는 분?”이라 묻자 강연장이 술렁거렸다. 생리컵을 사용하기 위해서라도 질 크기를 아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나의 질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 비해 루프, 생리컵 등 질 삽입 기구의 장벽이 높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이것은 한국 여성이 가진 자기 몸의 통제력이 상대적으로 더 낮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질 모양과 크기를 알아야 한다며 충격을 준 강사는 이어 말했다. “자신의 몸을 일단 알아야 내 몸을 지키고, 내 몸과 관계된 안전 규제를 더 강한 목소리로 요구할 수 있어요” 안전하기 위해 조현희 강사는 당부했다. 안전한 먹거리와 생필품에 눈높이를 높일 것, 몸속에 들어온 독을 잘 배출하는 일도 중요하니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섬유질 섭취에 신경 쓸 것.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쩌면 작은 일이다. “현재의 화학물질 오염도는 한 사람이 노력해서 내 가족이라도 지킬 수준이 아닙니다.” 화학물질은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이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500여 개의 발암물질 목록을 보유하고 있으나,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화학물질은 13만여 종이다. 이 중 국제암연구소가 조사한 물질은 1천여 종. 유해하다고 판명되지 않았다고 무해하다고 말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다. 생리컵의 안전을 묻는 질문에 강사는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독성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뿐”이라 했다. 화학물질은 편리하고 풍요롭게 살고자 한 인간의 욕구, 아니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한 자본의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독성은 그 대가다. 다만 풍요를 누린 순서와는 정반대로 대가가 온다. 힘 없는 자가 화학물질 독성에 먼저 노출된다. 이 중 여성의 몸이 포함되어 있다. “내 몸의 안전을 위해 환경을 개선하도록 사회에 요구할 이유가 우리에게 있는 거지요.” ▶ 생리대 유해물질 전수조사와 인체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청와대 홈페이지 기업을 감시하고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그 일은 이뤄지고 있다. 시중 판매되는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전수조사와 역학조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이어졌다. 그 결과 전문가 협의를 거쳐 정부(환경부)는 일회용 생리대에 대한 전수조사를 결정했다. 여전히 뻣뻣한 태도이긴 하지만 식약처도 압박을 받으며 2018년까지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측정 방법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제출했다. 우리는 요구했고, 조금은 안전에 가까워졌다. 이번에도 여성들은 자신이 사회의 구성원이자 주체임을 보여줬다. 우리 사회는 이전보다는 여성의 경험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울산에서 열린 생리 강좌 또한 그 시작점에 있다. 다물어 온 입을 열고 첫 마디를 소리 내어 보는 일이 시작됐다. 일다
내가 사는 지역의 구인/구직 등 다양한 정보가 올라오는 커뮤니티와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종일 들여다본다. “언니, 아직 쉰지 3일 밖에 안 됐어요.” G가 말했다. 일을 그만둔 뒤 12월 한 달은 편히 쉬려 했지만 괜히 마음이 조급하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상태를 견디기 힘들다. 도저히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하루짜리 강연을 신청해서 다른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는 일이 잦다. 각자의 고민과 경험이 오가는 자리에서 나는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청자’ 위치에만 머물러 있다. 열심히 자기 경험을 나눠준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자주 허무해진다. 나도 내가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 ▶ 일단 멈춤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방 구조를 바꾸겠다고 책장을 들어 옮기고, 안 입는 옷들을 주섬주섬 챙겨 담고, 공간만 차지하던 온갖 물건들을 빼버렸다. 집에 쌓여있던 쓰레기까지 포함해 20L 봉지로 거의 10봉지 가량의 쓰레기가 나왔다. 이 작은 집에 별로 사들이는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이 나올까. 그래도 한바탕 비워내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그래,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이런 ‘비우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도 집이 있다면, 내 마음의 집은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을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들이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있어서, 가치 있는 물건을 새로 들여도 금방 잊혀 질 것이다. 늘 어딘가 공허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생산적으로’ 물건을 쌓아놓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생산성’인가. 자꾸만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것을 멈추고,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유일한 혁명은 게으름이라는 말을 임옥희 선생님에게서 들었는데,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게으름’일지도 모른다. 일다
※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바쳐 시작한 프로젝트를 통해 동등한 사회를 향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밀레니얼 여성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시리즈입니다. -편집자 주 김지양을 구글 검색하면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찍은 다양한 촬영사진, 그녀가 대표로 있는 ‘빅앤뷰티풀’ 플러스사이즈 잡지 66100 기사, 외모와 바디이미지에 관해 강연한 그녀의 인터뷰 영상과 글이 주욱 뜬다. 그녀가 국내에서 플러스사이즈에 관해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이후 8년 동안 그녀의 스타일 변화, 몸무게 변화뿐만 아니라 작년에 올린 결혼식을 포함한 개인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검색사이트에 보이는 그녀는 이를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한결같다. ▶ 플러스사이즈 잡지 66100 김지양 대표 ⓒ김지양 모델, MC, 편집장, 쇼핑몰, 행사…“컨트롤 덕후”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지양 대표는 화장기 없이 약간 피곤하여 살짝 창백한 얼굴로 그녀의 쇼핑몰 스튜디오에서 맞아주었다. 25살의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처음 데뷔했을 때와 현재 플러스사이즈 잡지와 플러스사이즈 패션 온라인 쇼핑몰 대표로서 가장 크게 바뀐 점을 굳이 찾자면, 예전보다 평정심이 생겼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어느 하나(프로젝트)가 조금 잘 돼서 좋아하고 또 조금 안 돼서 슬퍼하고 그러면 너무 힘든데, 지금은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슬픈 일에 대해선 ‘그래, 다음 번에 더 잘되겠지’ 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김지양 대표는 가장 최근에 온스타일의 ‘바디 액츄얼리’라는 TV 프로그램의 MC로 “당연한 걸 당당하게!” 슬로건을 외치며 활약하는 중으로, 기대치보다 “5배는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바디 액츄얼리’는 MC들이 길거리에서 여성의 클리토리스를 그려보는 신개념 성교육부터 질염 검사를 위한 산부인과 방문과 생리컵 착용까지 여성건강 이슈에 관해 과감히 보여주고 이야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자신감에서 나오는 차분한 말투와 태도로 자신을 보여주지만, 그녀가 새로 시작하는 움직임에 대중이나 독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작은 파도가 큰 물결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은 방향성을 몰고 온다. ▶ 미국의 패션브랜드 아메리칸 어패럴 (American Apparel) 의 플러스사이즈 모델 지원 당시 사진 ⓒ김지양 처음 플러스사이즈 모델로 미국 LA에서 열린 Full Figured Fashion Week에서 데뷔하고 한국에서 모델 겸 플러스사이즈 잡지 66100 편집장으로 나선 그녀의 데뷔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내에서는 플러스사이즈의 모델이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었기에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또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빅사이즈에 관한 편견을 조곤 조곤 꼬집어 주면서 일찍이 ‘걸크러쉬’ 옆집 언니 이미지로 다가온 그녀의 “셀프 브랜딩” 스킬도 이른 성공에 한 몫 하였다. 또한 그녀는 독립잡지로는 흔치 않게 3개월마다 인쇄물로 내고 브랜딩 행사 기획까지 쉬지 않고 해온 워커홀릭에(“잡지를 낼 때는 해가 뜨기 전에 잠든 적이 없었어요”) 자칭 “컨트롤 덕후”이다. 잡지의 편집장인 동시에 대부분 이슈의 표지 모델뿐만 아니라 사진영상의 기획과 연출, 기사 취재와 편집 그리고 인쇄까지 총체적 멀티테스킹을 해야 했다. 또한 66100 잡지를 넘어서 플러스사이즈 이슈와 관련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행사들도 기획하고 진행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필름파티: 일 년에 한 번씩 다다름 네트워크팀과 같이 공동 주관하는 행사로, 의미 있는 영화를 같이 감상하고 즐기는 파티이다. ※ ‘빅앤뷰티풀’ 캘린더: 지난해 빅피겨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터들과 같이 달력을 작업하고 전시, 판매를 했다. ※ ‘이노센트 플레저’: 길티 플래저의 반대 뜻으로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자는 미식모임이다. ※ ‘셀프 메이크오버’: 자존감이 낮거나 스타일링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4주짜리 강의 프로그램이다. 스스로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아가는 코스부터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쇼핑도 해보고, 메이크업과 스타일 코칭을 받고 마지막으로 프로파일 사진촬영을 함으로서 스스로의 변화를 남기는 과정이다. ※ 사진포비아를 위한 심포지움: 자기 사진 찍히는 게 너무 어려운 사람을 위한 세미나와 워크샵의 형태로, 인기가 좋아 여러 번 진행했다. 최근에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주최한 “외모?왜뭐!” 행사에서 의류브랜드의 한정된 사이즈 다양성, 비정상적인 마네킹 몸매를 비꼬는 퍼포먼스에 참여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안티팬”들의 시선 ▶ 66100 잡지 속 모델로 포즈를 취한 김지양 대표 ⓒ66100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66100 매거진을 쿼터제로 2년 동안 출간하고 휴식기를 가진 후, 최근 다음 호를 다시 내기 위해 준비 중이다. 휴식기를 가진 이유는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2015년에 정부에서 받은 사회적 기업 지원금을 2016년에는 받지 못했고, 개인적으로 따로 하는 잡지 화보촬영 정도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이 보장되지 않아 힘든 결정을 하게 되었다. 잡지를 위해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현재 각자의 일을 하고 있고, 김 대표는 동묘 사무실로 옮겨 온라인 쇼핑몰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플러스사이즈 의류가 대부분 온라인에만 한정되어있는 탓에 직접 입어보고 전신 사이즈 측정, 스타일링, 자세교정 서비스도 해주는 방문착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혹시 경제적 요인을 배제하고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모델 일만 했으면 행복할까, 편집장 일만 하면 행복할까? 그렇지는 않아요. 이 일들이 미묘하게 다 연결되어있어요. 예를 들어 모델 일을 하면서 메시지를 빼놓고 일을 할 수 없고, 편집장이면서 패션 아이템에 대해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대표이면서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거에요.” 천상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관리해야 하는 “컨트롤덕후”가 맞는 것 같다. 쇼핑몰 운영 역시 혼자 멀티테스킹 해야 하는 일로 쉽지 않다. 우선 매일 아침 주문이 들어온 물건을 매입하러 동대문에 간다. 배송과 고객 문의, 직접 방문착장하는 고객 응대 그리고 신상품 라인이 들어오면 사진촬영과 모델까지 한다. 그러나 여러 역할을 담당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점은 “안티팬”들의 시선이었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모델이나 이벤트성 잡지를 낸 거 아니냐’ 라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였다. 또한 그녀 스스로도 내가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업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방문착장하러 오는 손님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그녀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이 옷을 사러 와서 그렇게 울어요.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많은 거죠.” 내 돈 내고 옷을 사러 온 손님인데도 불구하고 모욕적인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언니한테 맞는 거 없어요.” “언니가 입으려구요?” (입어볼 수 있냐고 물어보면) “늘어나서 안돼요.” 언어폭력은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 것보다 나를 아는 가족, 친구, 지인들로부터 받는 것이 더 심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언제 살 빼냐’, ‘니가 그러니까 애인이 없지…’ 이런 말을 매일 들으니, 그 사람의 외모가 사회적 기준의 평균에 맞지 않으면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팽배한데, 그게 잘못됐다고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오는 안도감이 있는 거죠.” 그녀는 ‘내가 옷을 파는 거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구나’를 느끼면서 자신도 힐링이 됨을 느꼈다. ▶ 최근 패션잡지 보그(Vogue)에 실린 화보촬영 사진 ⓒ보그코리아(Vogue Korea) 언어폭력뿐 아니라 시선폭력도 심각해 작년 6월 3일 여성환경연대에서 주최한 에코컨퍼런스 #외모?왜뭐! 초청 강연에서, 시선폭력에 대해 김지양 대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사람들은 이런 시선으로 말을 합니다.‘세상에, 몇 킬로나 나갈까?’‘나는 아직 괜찮아, 쟤보다 덜 나가니까.’이런 시선의 폭력은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고, 언어폭력으로 다가올 때서야 우리는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갖게 되는데요. 이런 시선폭력에 더 예민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뚱뚱한 사람에 대해 만연한 또 다른 편견중의 하나는 자기관리를 안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 편견과 폭력의 목소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뚱뚱한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내면화되어 있다. 김지양 대표 역시 살이 쪘을 때 스스로 거울을 보며 ‘내가 정말 게으른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게 아니라면 지금의 내 모습으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러스사이즈 롤모델이 많이 나와야 해요 66100 잡지의 다음 이슈는 “기분이 조크든요”라는 컨셉으로 준비 중이다. 예전에는 자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 줄 인터뷰 대상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이번 5월에 열린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에 참여했을 때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공유하고 싶어 사람들이 줄을 섰었다. “그전에는 나한테 문제가 있어서 내가 살을 빼야한다고 여기고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가 자존감이 아직 높지는 않지만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나 여전히 “와, 저 플러스사이즈 모델 멋져. 그렇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뚱뚱한 건 싫어”라는 이중적 잣대 의견도 듣는다. 플러스사이즈에 관한 오픈마인드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려면 긍정적 사건이나 롤모델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예를 들어, 굉장히 성공한 플러스사이즈 모델이나 엔터테이너(“이국주씨가 대표적이죠”) 등 그런 롤모델들이 많아지면 인식의 변화가 생길 텐데 또 한편으로 누군가 하겠지 하고 기다린다고 바뀌는 일은 아니다. 그 때문에 김지양 대표는 쉬지 못하고 지금도 “한결같이” 계속 일을 벌이는 중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기부여는 같지만 그 때는 내가 하면 누군가 알아 줄 거야 라는 마음으로 했던 거 같아요. 도움이 될 거야 할 때 그 누군가가 누군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이제는 보이는 것 같아요.” [필자 소개] 강예원 님은 서울에서 외신기자로 활동하였고, 현재 PLATOON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예술문화를 다루는 잡지와 에이전시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다
※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는 전업으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합니다. [필자 블럭] ▶ 퍼렐(Pharrell)이 2014년에 발표한 앨범 [G I R L] 자켓 팝 음악 역사에 있어 2014년은 매우 의미 있는 해였다. 특히 팝 페미니즘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비욘세의 [Beyonce], 마일리 사이러스의 [Bangerz], 퍼렐의 [G I R L], 릴리 알렌의 [Sheezus] 등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앨범이 많이 발표된 해이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테일러 스위프트, 로드(Lorde)와 케이티 페리(Katy Perry),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라나 델 레이(Lana Del Rey)까지 팝 페미니즘 범주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해에 아델(Adele), 레이디 가가(Lady Gaga) 등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팝 페미니즘의 본격적인 기반을 다졌다. 2014년은 팝 페미니즘의 해 비욘세의 [Beyonce]는 그의 긴 음악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앨범이다. 비욘세는 사전 홍보도 없이 갑작스럽게 앨범을 발표했고, 모든 곡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그러한 방식으로 비욘세는 자신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했고, 그 어떤 외부의 기준이나 시선보다는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담았다. 또한 여성들로 하여금 솔직한 욕망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적 기준을 비판하는 목소리까지 담았다. (관련 기사: 비욘세가 보여주는 블랙 페미니즘 파워 ildaro.com/7902) 비욘세가 어떤 기준의 해체를 이야기했다면,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는 그 기준을 거꾸로 이용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세간이 만든 기준에서 벗어난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오히려 이용하며 사회를 비꼬았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며 지금은 좀 더 차분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마일리 사이러스는 공격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으며 페미니즘 논의에 큰 불씨를 지핀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시네드 오코너(Sinead O'Connor)와 성 상품화에 관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후에 두 사람은 화해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는 “여성들에게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내 생각에 나는 가장 큰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마일리 읽기’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에요 ildaro.com/6503) ▶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Wrecking Ball” 뮤직비디오 중에서 퍼렐(Pharrell)은 [G I R L] 앨범에서 일관되게 ‘여성에 대한 애정과 존중, 예찬’을 드러내며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름답기 위해서는 꼭 피부가 하얘야 하고 말라야 한다는 미쳐버린 기준을 없애고, 또 바꾸고 싶었다”고 한 그의 발언은 피부색이 어떠하든 체형이 어떠하든 성적 취향이 어떠하든지 간에 당신을 여성으로서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은 앨범의 첫 곡 “Marilyn Monroe”의 가사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I want every woman to make a pledge with me) (모든 여성들이 나와 함께 맹세했으면 좋겠어) Say your name, I pledge, to live life, on the edge 이름을 밝히고 ‘나는 속박되지 않는 삶을 살 것을 맹세합니다’ 라고. Want you to know, I see, the power is in me 알았으면 해, 힘은나 자신 안에 있다는 걸 No more, acquiesce, standin' up, with no stress 이제 더는 그만, 순종하지 말고 일어서. 스트레스 없이 Will do, what I need, 'til every woman on the Earth is free 난내게 요구되는 일을 할 거야, 세상 모든 여성이 자유로워질 때까지 -퍼렐(Pharrell) “Know Who You Are” 릴리 알렌(Lily Allen)은 후에 ‘절반의 성공에 그친 미러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팝 음악 시장 내에 만연한 남성중심적 사고와 태도, 기준 등의 이슈를 꺼냈다. 특히 "Hard Out Here"의 가사와 뮤직비디오를 통해 음악시장이 고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남성중심성을 드러냈다. 남성 스타들이 차와 돈과 같은 물질적인 성과를 과시하며, 여성의 성을 상품화시키고 그러한 문화를 강요하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릴리 알렌은 인종 문제에는 둔감한 모습을 보였고, 지적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섬세한 표현에는 실패했다는 평을 얻었다. (관련 기사: 몸을 둘러싸고 ‘성별’과 ‘인종’ 문제가 만날 때 ildaro.com/6516) ▶ 릴리 알렌(Lily Allen) “Hard Out Here” 뮤직비디오 중에서 이처럼 2014년은 팝 페미니즘의 해였다고 평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의 자체가 활성화되었고 많은 이들이 팝을 통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 자체도 성공적이라 생각한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성추행 ‘1달러 소송’ 2014년 이후, 팝 음악시장 내에서 페미니즘 논의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정돈되는 한편 더 깊이 있는 담론으로 확장되어갔다. 비욘세는 블랙 페미니즘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던졌다. 흑인여성으로서 미국 사회를 살아갈 때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는지, 여러 조건과 문제들이 교차할 때 어떤 메시지를 낼 것인지, 또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여성들이 어떤 시선을 받고 있으며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앨범 [Lemonade]의 전곡 뮤직비디오를 통해 잘 보여줬다.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경우 ‘1달러 소송’을 통해 행동으로 보여줬다. 콜로라도주 덴버라는 도시에서 팬 미팅 행사를 가졌을 때, 지역 라디오 디제이였던 데이비드 뮬러(David Mueller)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테일러 스위프트 측은 이 사실을 라디오에 알렸고, 그는 즉각 해고됐다. 이후 데이비드 뮬러는 자신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거짓말로 인해 해고를 당했다며 3백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성추행 혐의로 그를 맞고소했는데, 당시 민사소송의 배상금을 1달러로 책정했다. 경제적 배상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의 현실에 대해 알리기 위한 소송이라는 사실을 부각한 것이다. 결국 데이비드 뮬러의 소송은 기각되었고, 그의 성추행 혐의는 인정되었다. 이 사건은 성추행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 올해 9월, 싱글 ‘...Ready For It?’을 공개한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스파이스 걸스 이후 지속되는 ‘걸 파워’ 팝스타들이 던진 페미니즘 메시지가 모두 훈훈하게 수용된 것은 아니다. 2013년에 발표된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Work Bitch”라든지 리아나(Rihanna)의 “Bitch Better Have My Money”는 이러한 수사가 유의미한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일었다. 하나는 bitch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다. 전복적으로 점령하여 사용하자는 쪽과, 여성을 비하하는 뜻이니 더 사용하지 말자는 쪽이 나뉘어 논쟁을 했다. Work it hard like it's your profession 열심히 일하는 거야, 네가 전문인 것처럼 Watch out now cause here it comes 자, 봐봐. 지금 오고 있으니까 -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Work Bitch” 그러나 사실 이 곡들은 강압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더 큰 화두로 떠올랐다. 강한 여성, 욕하는 여성, 센 여성은 대중문화에서 전복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쾌감을 준다. 그래서 이러한 이미지(걸 파워)를 페미니즘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그러한 여성 이미지는 결국 비즈니스 아이템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Louis XIII and it's all on me, nigga you just bought a shot 루이 13세(프랑스의 고급 술)는 내가 통째로 살게, 너희 자식들은 그저 잔으로 사지 Shit, your wife in the backseat of my brand new foreign car 젠장, 네 아내도 새로 산 내 외제차 뒷자석에 있어 Don't act like you forgot, I call the shots, shots, shots 잊어버린 척 하지 마, 명령은 내가 한다고 -리아나(Rihanna) “Bitch Better Have My Money” ▶ 리아나(Rihanna) “Bitch Better Have My Money” 뮤직비디오 중에서 한국에서도 ‘걸 크러쉬’라는 이름을 무분별하게 붙이는 경향이 있다. 센 여성 이미지가 여성수용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엔터테인먼트업계 다수가 중성적 이미지, 강한 여성이라는 외피만 취하는 경우가 많다. 세일즈를 위한 ‘걸 파워’는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이후 꾸준히 존재해 왔다. 최근에는 저가와 고가를 불문하고 패션 브랜드에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문구를 상품에 쓰고 있다. 그러한 움직임을 페미니즘에 대한 지지 선언으로 볼 것인가, 혹은 마케팅 전략으로 문화적 흐름에 편승하는 시도일 뿐인가는 누가 규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수용자들이 이를 어떠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할 것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사는 경우도, 죽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뮤지션은 예쁘고 섹시’…아이러니한 숙제 이제 페미니즘이 기업들이나 음악가들에게 하나의 성공 전략으로, 브랜딩 과정에서 쓰이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내 생각에 여전히 남은 가장 아이러니한 숙제는, 페미니즘을 외치는 팝 음악가들이 여전히 남성중심의 시각에서도 예쁘고 섹시하다는 점이다. 물론 섹시함이나 섹스어필은 시장에서 판매되는 대상이기만 한 것은 아니고, 주체적으로 욕망을 드러내는 과정으로 본다면 하나의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디어를 통해 이를 접하는 수용자들은 직접 의사소통의 과정을 거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가부장적인 시선으로 여성 음악가들과 페미니즘의 외피를 소비하게 되기 쉽다. 결국 팝 페미니즘이 성숙하려면 음악시장에서 종사하는 다수, 또 이를 수용하는 다수가 페미니즘을 접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방법 외엔 명쾌한 답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고무적이라 할 수 있는 건, 페미니즘이 브랜딩 전략으로 쓰일 만큼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고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제 1의 물결과 제 2의 물결, 제 3의 물결과 현재의 영 페미니스트들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이들이 페미니즘을 실천해오고 있지만, 지금만큼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이 어떤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든지 간에 페미니즘은 소중하고 필요하며, 이러한 상황을 동력 삼아서 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페미니즘 열풍은 이제 시작이다. ※ 마일리 사이러스 “Wrecking Ball” M/V http://bit.ly/18z8ZKy ※ 퍼렐 “Know Who You Are” M/V http://bit.ly/2fLIktS ※ 릴리 알렌 “Hard Out Here” M/V http://bit.ly/1mnW3zt ※ 리아나 “Bitch Better Have My Money”(Live) http://bit.ly/1NCKjVo ※ 브리트니 스피어스 “Work Bitch”(Live) http://bit.ly/2xXax7N 일다
‘여성의 몸 이미지’에 다양성과 자유를!② 호주 사례 작년 도브(Dove)는 13개국에 걸쳐 16세~60세 여성들 만오백 명을 대상으로 ‘몸 이미지와 자존감’에 대해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는 나이, 인종, 지역을 넘어 전 세계의 여성들이 외모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 2016년 도브에서 진행한 연구 결과 중 일부. 매체가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여성상에 도달해야 한다는 일상적인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여성의 자존감과 사회활동 역량에 나쁜 영향을 미치며,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선택을 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상대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나라의 여성들조차 낮은 몸 자존감을 갖고 있고 십대들의 섭식장애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논의되고 있는 현실은 여성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은 소식이다. 십대여성 성애화 광고 금지, 포토샵 법 시행… 그러나 외모 스트레스가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해서 모두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자율심의기구인 광고표준위원회는 십대 여성을 성애화하거나, 과도하게 마른 여성의 몸 이미지를 광고에 활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는 내년부터 성 고정관념을 확산시키는 광고, 이를테면 가사노동이 여성의 일이라고 암시하는 광고나 성별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조롱하는 내용의 광고 또한 규제 범위에 포함된다. 이미 노르웨이, 스페인, 핀란드, 아일랜드, 프랑스 등 28개국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광고를 규제하고 있다. 또한 2015년 일명 ‘포토샵 법’을 통과시킨 프랑스는 올해 10월부터 보정된 모든 사진에 그 사실을 표기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움직임은 왜곡된 몸 이미지가 성인 여성뿐만 아니라 십대 여성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해온 시민-여성단체들이 정부와 함께 민관 협력 사업을 벌이고 캠페인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호주의 정책 제안서와 영국의 몸 이미지 교육 지도서를 통해 간략하게나마 두 나라에서는 어떻게 이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호주: 몸 이미지 문제의 해결 주체는 ‘정부’ ▶ 2010년 호주 정부가 구성한 자문단이 발행한 호주의 경우, 왜곡된 몸 이미지에 관한 이슈가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건 2010년 당시 청소년부 장관이었던 케이트 엘리스가 자문단을 구성하면서부터다. 보건부문, 패션계, 언론매체와 비정부기구 전문가들이 모인 이 자문단은 설문조사와 기존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실질적으로 정부가 몸 이미지 이슈와 관련해 진행할 수 있는 정책을 담아 (A Proposed National Strategy)를 제출했다. 제안서는 정부가 ‘몸 다양성’ 관련 연구를 지원하고, 관련 종사자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공공단체, 학교, 지역사회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중심 역할을 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자문단은 다양한 몸의 재현을 위해 지켜야 할 산업자율행동수칙을 제시하였다. 산업자율행동수칙은 기업들이 다양한 체격과 체형, 그리고 다양한 인종의 이미지를 활용하고, 디지털 기술을 통해 비현실적인 몸 이미지를 유포하는 것을 지양하며, 적정 체중의 모델을 고용하고, 성인복의 경우 16세 이상의 모델만 고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또한 학교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몸 이미지 교육을 포함하는 것을 권장하고, 몸 이미지 친화적인 학교를 만들기 위한 체크리스트(제안서에 포함되어 있음)를 학교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체 학교에 ‘모든 몸에 대한 존중’ 자료집 배포 호주 정부는 자문단의 제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2012년 ‘긍정적인 몸 이미지 어워드’를 개최해 산업자율수칙을 지킨 기업과 긍정적인 몸 이미지를 증진하는데 기여한 청년들을 선발했다. 무엇보다 2011년에 호주의 모든 학교에 몸 이미지 교육 정보를 담은 자료집 (the Respect Every Body)을 배포한 것은 자문단의 제안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에서 몸 이미지 문제의 해결 주체가 ‘정부’임을 명시한 것과 호주 정부가 산업자율수칙을 수용한 기업들을 선발, 홍보하여 방향을 제시하고 유인책을 마련한 것은 분명 큰 성과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수칙을 지키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퍼져있는 왜곡된 몸 이미지를 바로잡기에는 부족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교육 정책에 있어서도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도브가 진행한 ‘몸 이미지와 자존감’ 관련 연구 결과 http://prn.to/28UMcoh※ 영국 광고표준위원회의 성고정관념 유포 광고 규제http://bit.ly/2tqORQA (이 글은 작년 한국여성민우회가 발간한 자료집에 실은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다
※ 필자 소개: 지아(知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화칼럼을 비롯해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으로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 지금 나는 강원도 두메산골에 있는 토지문화관에 와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름 모를 커다란 산새들이 창가로 날아와 노래를 불러주고, 방문을 열면 순한 능선의 산이 에워싼 채 지그시 나를 바라보는 곳. 소소하지만 중요한 것들, 이를테면 하루 세끼 밥을 챙겨먹는 일을 비롯한 잡다한 일상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글만 쓸 수 있는 환경이 만족스럽고 감사할 뿐이다. 추석이 가까워오자 기혼여성 작가들 사이에서 걱정 섞인 대화가 두런두런 오고 가기 시작했다. 각종 다양한 전 부치기, 송편 빚기 등 추석 음식 준비를 거대한 해일이 오는 것에 비유한 어느 작가의 말은, 차라리 시적(詩的)이었다. 올해 추석은 지루하리만치 유난히 길지 않았던가. 연휴 동안 문을 닫는 식당 덕분에 다양한 햇반과 컵라면으로 일주일을 보내야 했지만, 그래서 기름진 전과 송편은 못 먹었지만, 좋았다. 오히려 더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을 더할 나위 없는 홀가분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리라. 추석 연휴 기간에 토지문화관에 남은 작가들은 대부분 결혼제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그런 우리들의 상황을 기혼여성 작가들은 내심 부러워하거나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명절이 끝난 뒤 이혼율이 늘어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법원행정처의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설날과 추석 전후 10일 동안에 하루 평균 577건의 이혼 신청 접수가 있었다고 한다. 명절 때 평상시보다 1.9배 많은 이혼 신청이 접수되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여성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매년 찾아오는 명절 후유증만 있을까. 여성을 남성보다 하위 존재로 상정한 채 차별하는 인습이 일상 구석구석 뿌리 깊게 박힌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싶다. 명절이면 집을 뛰쳐나오고 싶은 기혼여성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 라이언 머피 감독, 줄리아 로버츠 주연 (2010) 이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인가? 라이언 머피 감독의 2010년 작 의 주인공 리즈에게는 명절 공포증도, 사사건건 잔소리하며 괴롭히는 시어머니도 없다. 마음만 먹으면 해외여행을 훌쩍 다녀올 정도로 경제적인 여유도 있는 그녀는 성공한 작가다. 다만 리즈가 번 돈으로 사업을 벌였다 접기를 습관적으로 하며, 내내 자신의 꿈을 좇는 다소 철이 없는 남편 스티븐이 있을 뿐이다. 그의 뒷바라지에 지친 그녀는 한밤중에 욕실 바닥에 무릎 꿇고 흐느끼다가 신에게 도와달라는 기도까지 하며 걷잡을 수 없는 회의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지금 살고 있는 삶이 진짜 자신이 원했던 삶인지 모르겠다는 회의. 그래서 그녀는 진짜 자신을 찾기로 결심한다.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연인 데이비드와의 관계도 삐거덕거리자 일 년 간의 긴 해외여행을 무작정 떠난다. 그것은 이탈리아에서 즐겁게 먹고 마시고, 인도와 발리에서는 마음을 치유하는 일명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여행.’ 듣기만 해도 즐겁고 신나는, 어찌 보면 배부른 자의 여행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그녀의 심정을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리즈와 같이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여성조차도 느낄 수밖에 없는 결핍이 무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성이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세상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었을지. 리즈는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이 진짜 같지 않다고 말하는데, 그 고백이야말로 자신의 진짜 욕망에 충실한 채 살아가지 못하는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여행 중에 살이 찔까 봐 먹음직스러운 피자를 앞에 두고 먹지 못하는 여자 친구에게 리즈가 “남 시선 신경 쓰지 말고 한 번쯤은 온전히 나 스스로만 위해 보라”고 충고했던 것 역시 그동안 자신이 지키지 못했던, 그래서 이제부터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기도 할 터. 또 모임에서 “리즈! 당신과 무슨 단어가 어울리는 것 같아요?” 라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받았을 때 난감한 표정을 짓는 그녀는 아직 진짜 자신을 찾지 못한 여성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녀가 자신과 어울리는 단어로 대답한 것은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부인, 누군가의 여자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좀 더 발전한 대답이, 그녀의 직업인 작가였다니! 그러자 처음 질문을 던진 이는 리즈에게 마치 화두처럼, 쐐기 박듯 받아친다. “그건 직업이잖아요. 작가가 당신, 리즈는 아니잖아요.” 결국 그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진짜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는 여자’로, 자신의 대답을 마무리하면서. ▶ 라이언 머피 감독, 줄리아 로버츠, 하비에르 바르뎀, 리차드 젠킨스 주연 (2010) 타인에 의해 내 가치가 정해진다는 믿음 치유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언제 행복을 느끼냐는 질문을 던질 때면, 리즈처럼 난감한 표정을 짓는 여성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자신이 행복한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가 스스로 놀라워하는 여성들도 보게 된다. 내가 이런 것들에 행복을 느끼는구나, 내가 이런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구나, 비로소 깨달으며 환하게 미소 짓는, 심지어 눈물까지 보이는 그녀들을 볼 때면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에는 둔감함을 강요당했을지도 모를 지난 시간들이 겹쳐져 안쓰러움마저 인다. 심리상담가인 미리암 그린스팬은 (Healing through the Dark Emotions)라는 책에서, 가부장제 사회에서 분열할 수밖에 없는 여성과 남성의 감정에 관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남성들은 자신의 몸을 감정으로부터 방어해야 한다는 세뇌를 당하고 있다고, 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른바 남성다움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감정 학대로 이어진다고 말이다. 그에 반해 여성은 타인의 요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교육받지만, 자기 자신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정반대로 행동할 것을 교육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또 자신의 몸을 타인의 관심과 열정을 낚는 도구로 사용하도록 교육받는다고도 주장한다. 오랜 세월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들에게 주입한 성차별주의 가치로 인해, 여성들은 자신의 가치가 외모에 있으며, 특히 남자들에 의해 괜찮아 보인다고 인정받는 것에 따라 스스로의 가치가 정해진다는 암묵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왜곡된 가치로 인해 매스미디어를 통한 외모지상주의 열풍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여성의 외모는 규격화되었고 그 미의 조건에 들어맞기 위해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고 섭식장애를 앓고, 성형수술을 하는 여성들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든 행태가 바로 자신의 육체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남용하는 것일 터. 주인공 리즈가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기까지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타인의 요구에는 민감하지만 정작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에는 귀를 막았던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여자 친구로서 말이다. 남편 스티븐에게 늘 자신을 퍼주며 돌봐주기를 자처했던 아내로 말이다. 성공한 작가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정 주체로 서지 못하고 늘 누군가에게 속한 객체로 살아갔기에 아마도 그녀는 진짜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아니, 그동안 주어진 역할에만 충실한 채,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 라이언 머피 감독, 줄리아 로버츠 주연 영화 (2010) ‘여자가 왜 혼자 다니냐?’ 무례한 질문들 하지만 나를 찾는 여행 또한 순조롭지만은 않다. 왜 혼자 다니냐? 왜 결혼은 안 하냐? 언제 남자를 만날 거냐? 리즈는 여행지마다 호기심에 찬 사람들의 무례한 질문을 받는다. 그렇다. 여성에게 늘 남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인식, 남편이든 애인이든 남자가 옆에 없는 여성은-특히 그 여성이 나이가 들었다면 뭔가 더 불안하고 외롭고 소외된 여성일 거라는 선입견이 세상에는 아직도 충만하다. 재작년 기준 우리 사회의 40대 이하 사람들 중 52.8%가 1인 가구라고 하니, 그만큼 비혼은 일반적인 생활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비혼의 이유 또한 과거에 비해 다양해지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부장적인 결혼 제도에 들어가고 싶지 않거나,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고 기른 사람, 이혼과 사별을 한 사람 등 그 범주도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비혼을 대하는 사회적인 인식은 여전히 너그럽지 않다. 여전히 비혼(非婚)은 뭔가 모자라는 비정상 취급을 받을뿐더러, 기혼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유예된 과정으로 보는 것이 태반이다. 가난해서 결혼을 못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자발적인 비혼인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7년 전 혼자 시골로 이사하던 날, 이삿짐센터 남자는 왜 혼자 사냐? 결혼 왜 안 하냐? 무례하리만치 질문이 많았다. 그리고 결혼이란 제도가 나에게 안 맞는 것 같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의 잣대에 의해, 무책임하고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자기중심적인 여성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여자니까 그렇지’ 하는 여성혐오가 비혼여성들에게는 이중으로 부과되어 있는 셈이다. 여성인데다 결혼제도 밖의 여성이라니! 지극히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바라볼 때 이 여성들은 문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주범일 뿐만 아니라 여성을 순종적으로 길들이려는 가부장적인 결혼 제도에 편승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 이기적이고 까칠할 것이라는 편견도 여지없이 작용한다. ▶ 라이언 머피 감독, 줄리아 로버츠, 하비에르 바르뎀, 리차드 젠킨스 주연 (2010) 불완전한 자신을 용서하라 그러나 기혼과 미혼이라는 양 축으로만 달리던 시대가 깨져버린 지 오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려는 열린 마음이 아닐까. 정말 중요한 것은 자신을 용서하는 일, 불완전하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행복은 애써 먼 미래에서 찾는 게 아닌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다’는 영화 속 대사는 그래서 세계 이혼율 1위를 자랑하고, 그것도 모자라 세계 자살률 1위도 놓지 않는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에게 제발 이제는 외피를 보지 말고 본질을 보라는 메시지로 들린다. 발리에서 만난 스승 케투가 리즈에게 해주는 충고 역시, 비혼여성에 대한 편견의 잣대로 무장한 우리 사회의 굳은살을 녹이는 깊은 울림의 말이다. “때로는 균형이 깨져야 삶의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어요.” 또한 진짜 나를 찾아 나선, 그 험난하지만 눈부실 여행길 위에 서 있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해주는 귀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더 잘 읽기 위한 영화미학] ▶ 라이언 머피 감독 2006년 세계 40여 개국에서 출판되어 700만부나 팔린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전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 영화 내내 흐르는 이탈리아와 인도, 발리의 문화와 자연풍광은 그 자체로 너무도 풍성하고 아름답다. 첫 여행지인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사람들 특유의 ‘달콤한 게으름’을 보며 그동안 자신을 몰아세운 채 일하고 소진했던 삶을 되돌아보게 된 리즈는 남자와의 관계에서도 집착하며 자신 안의 허기를 관계를 통해 채우려 했던 스스로를 깨닫게 된다. 오래전 로마황제 옥타비아 아우구스투스가 만든 아우구스테움에 가서 한때 찬란했던 역사의 한 공간이 화재와 노략질로 파괴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투우장으로, 노숙자들의 쉼터로 변하는 것을 목도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 있다. 세상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하지만 파괴가 끝이 아닌 새로운 변화로 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남자와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늘 두려워했던 자신을 직면하는 계기가 되는데, 리즈가 아우구스테움을 보고 데이비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는 그녀가 조금씩 성장해감을 알 수 있다. 변화가 두려워서 고통에 안주하는 우리와는 달리 혼돈의 세월을 견뎌내고 변화에 적응하며 재난과 약탈을 극복한 아우구스테움을 보면서 느꼈다는, ​파괴가 선물임을- 파괴가 있어야 변화가 있음을 깨달았노라는 편지글을 통해서 말이다. 두려움에서 벗어난 리즈가 기도와 명상을 배우며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건너간 인도의 신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인도의 여러 신 중에 파괴의 신 시바가 가장 추앙받고 있는 이유가 바로 파괴만이 창조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이탈리아의 아우구스테움에서 리즈가 발견한 파괴의 미학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시바신의 형상인 마하칼라가 검은색을 띠고 있고 이 검은색이 모든 색을 빨아들이는 색으로, 모든 존재를 받아들이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도 리즈의 심리상태와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을 터. 인도에서 기도하며 그동안 힘들었던 것이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던 것임을 알게 된 리즈는 비로소 스스로를 용서하며 자신 안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신은 내 모습 그대로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마지막 여행지인 발리에서 리즈는 자신과 같은 이혼의 아픔을 지닌 남자 펠리프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힘겹게 구축한 내면의 평화가 또다시 남자로 인해 깨어질 것이 두렵다. 그러나 그녀가 용기 내어 펠리프와 동반하는 삶으로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발리에서 만난 스승 케투의 ‘때로는 균형이 깨져야 삶의 더 큰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조언 덕분. 영화 는 진짜 나를 찾기 위해서는 익숙한 모든 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여행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깨달음의 과정으로 여기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수만 있다면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함께 전해주고 있다. 일다
강아지 짖는 소리에 자주 잠에서 깼다. 깨서 시계를 보면 새벽 세 시나 네 시 즈음이었다. 가뜩이나 잠이 부족한 상황인데 매일 새벽에 두세 번씩 잠에서 깨니 강아지 입을 틀어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도 내게 몸을 꼭 맞대고 있는 녀석을 보고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A의 집에 신세지게 된지 딱 한 달이 되었다. A의 반려견 겨울이는 그새 나와 많이 친해졌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겨울이는 왜 이제 왔냐는 듯 앓는 소리를 내며 겅중거렸다. 온몸으로 환대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쩐지 든든했다. 퇴근 후엔 장난감 던져주는 기계로 빙의해서 겨울이와 놀곤 했다. 겨울이는 여느 때와 같았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오르락내리락 기복이 있는 인간이었다. 장난감을 던져주기엔 피로했고 집에 와서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장난감을 던져주지 않아도 겨울이는 아랑곳 않고 계속 내 앞에 장난감을 척척 가져다놨다. 환대해주는 든든한 존재는 어느 순간 나를 괴롭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내가 겨울이를 먹이고 닦이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랬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의 시시콜콜한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며 잠든 밤, 겨울이의 헛짖음 소리에 잠을 깬 나는 결국 폭발해버렸다. 강아지에게 화내고 짜증 부려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큰소리를 냈다. ▶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 ⓒ머리 짧은 여자, 조재 겨울이는 원래 A의 남편 B의 반려견이었다. B가 타지방으로 발령이 나면서 이사 전까지 A 혼자 겨울이를 도맡아 키우고 있는 상태였다. 둘이 함께 돌보다가 혼자 돌보려니 A는 점점 지쳐갔다. 아침이면 배변패드를 닦고 갈아주고 변을 치웠다. 밥과 물을 갈아줬다. 퇴근 후엔 또 변을 치우고, 염증약을 먹이고, 산책을 나갔다. 산책 후엔 발을 닦아주고, 밥과 물을 갈아줬다. 별것 아닌 일 같아보여도 반복적으로 꽤 힘을 들여야 하는 노동이었다. A도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이기에 기복이 있었다. 너무 힘든 날이면 퇴근 후에 또 노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일부러 밖에서 식사를 하고, 평소보다 늦게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이번에 겨울이를 혼자 돌보면서 독박육아와 산후 우울증을 간접 경험한 것 같았어.” 겨울이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너무 미워지는 순간을 경험했다고 A가 말했다. 그렇게 미워하다가 또 축 늘어져있는 겨울이를 보며 죄책감을 느낀다 했다. A는 애정과 증오 그리고 죄책감 사이를 널뛰며 점점 소진되어 갔다. “미디어에서는 너무 반려동물의 귀여움만 부각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 동물들도 다 감정이 있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데…. 또 그들이 늙거나 병든 모습도 보여주지 않잖아.” 처음에 A가 겨울이에게 기대했던 모습도 비슷했다. 귀엽고 천진한 모습. 이제 A는 동물을 기르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잘 모르는 타인과 함께 사는 것만큼이나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일다
※ 필자 김신효정 님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생리대는 어디에 생리대를 불태우고 싶다. 광화문 사거리에 나가 지금껏 내가 써왔던 수천 개의 생리대를 불태우고 싶다.(그러나 실제 그렇게 하면 방화죄로 벌금 500만원을 물어야 한다.) 배와 허리가 아프고 밑이 빠질 것 같았던 그 통증은 언제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메아리로 돌아왔었다. 통증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고기를 먹어서, 유제품과 밀가루를 먹어서, 술을 마셔서, 야근을 해서, 운동을 안 해서 이렇게 아픈 것이라고 나를 손가락질했다. 한 달에 한 번 자궁을 들어내고 싶은 통증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강력한 진통제를 찾아 먹은 후 참는 것뿐이었다. 생리통의 원인이 내가 마트에서 고르고 골라 할인 가격으로 샀던 생리대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8월 24일 여성환경연대의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 ⓒ여성환경연대 너무 화가 난다. 생리대에 뭐가 들어있는지, 어떤 생리대가 안전한지 소비자로서 알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왔다는 것이.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가 발생한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안전과 관련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 두 세배 더 비싸더라도 안전하다고 소문난 생리대를 구입하고 싶지만 언제나 품절이다. 면 생리대는 주문이 밀려서 내년이 되어야 배송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생리혈이 비치기 시작하면 무얼 써야 덜 위험할까 고민하지만 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또 문제가 되었던 일회용생리대를 사용한다. 생리대를 차고 있는 내내 찝찝하다.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있는지, 이것이 내 몸으로 들어와 어떤 반응을 할지, 아랫배가 묵직해지기 시작하면 불안에 휩싸이고 만다. 생리컵과 면 생리대가 정말 대안일까? 생리컵과 면 생리대가 대안으로 급부상했지만, 막상 사려고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사용하는 방법은 더욱 어렵다. 유투브로 생리컵 사용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봐도 신통치 않다. 비싼 생리컵을 실패 없이 구매하려면 내 몸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한다. 먼저 자궁 경부의 길이를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재야할지 막막하다. 더구나 생리컵이나 면 생리대는 독립된 화장실과 생리대를 말릴 햇볕이 드는 공간이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에겐 꿈같은 이야기이다. 고시원, 반지하, 쉐어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장애가 있는 여성들에게도 그림의 떡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임금노동에 매어있는 많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면 생리대를 씻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일은 가사노동에 더해지는 부담스런 노동이다. 우리에겐 안전하고 (자연에도 해가 되지 않는) 일회용 생리대가 필요하다. 생리대 사태가 발생한 이후 벌써 두 달째 차상위 계층 십대여성들에게 지급되던 무상생리대 지원이 끊겼다는 소식도 들린다. 깔창 생리대를 쓰던 소녀들은 지금 어떤 생리대를 쓰고 있을까. ▶ 9월 5일 정부서울청사 앞.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생리대 유해성분 전수조사와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하라” 기자회견 이후 진행된 퍼포먼스.ⓒ여성환경연대 식약처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인가 생리대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뒤늦게 한국에서 시판되는 56개사 생리대 896품목에 대해 86종의 휘발성유기화합물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생리대 하나에는 약 200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검출된다고 한다. 식약처는 오는 9월 말까지 휘발성유기화합물 10종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연말까지 나머지 76종의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벌써부터 식약처의 조사 결과가 의심스럽다. 식약처는 늑장대응으로 불신을 키운데다가 이번 전수조사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 외에 문제가 되었던 독성 화학물질인 다이옥신, 중금속, 잔류농약, 인공향 등을 조사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약처의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에는 여성·환경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위원회의 일부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위원 명단을 제공하지 않는 등 생리대 사태에 대한 식약처의 안전불감증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섰다. 대체 식약처는 국민이 아닌 누구의 편에 서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감에서 생리대가 아닌 여성단체를 문제 삼겠다고? 이런 와중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서구)은 오는 10월 국정감사에서 여성환경연대를 특정 생리대 기업과의 유착 관계를 밝히기 위한 증인으로 채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 3월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수면 위로 공론화하고, 3천 건이 넘는 생리대 피해 사례를 접수하는 등 여성건강권 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는 여성단체다. 그런데 국감에서 생리대 안전성을 확보하는 일보다 생리대 유해성 문제를 지금과 같이 촉발시킨 여성단체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유한국당의 정치공세에서 뭔가 냄새가 난다. 숨죽였던 고통을 소리 높여 외치고 사회의 구조적 차별을 밝혀내는 여성들을 향한 ‘마녀사냥’의 전형적인 프레임이다. 나는 김상훈 의원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생리대는? 생리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기업들이 수십 년간 수 천 억이 넘는 돈을 벌면서 팔아온 ‘유해 생리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원치 않는 순간에, 원치 않는 공간에서 매달 피를 흘려야 하는 여성들에게 필수품인 생리대를 어떻게 안전하게 만들 것인지가 주요 안건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여성의 몸을 담보로 돈을 벌어왔던 기업들을 전부 국회에 불러 모아 신문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는 자유한국당과 생리대 기업과의 유착 관계를 조사할 일이다. ▶ 5월 26일 여성환경연대가 광화문 광장에서 주최한 세계 월경의 날 기념 기자회견. ⓒ사진: 불꽃페미액션 바야흐로 ‘여성 건강 혁명’이 시작된다 안전한 생리대가 없는 나라, 낙태가 불법인 나라, 출산을 강요하는 나라. 지금 여성들이 몸으로 싸워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민낯이기도 하다. 이름 없는 통증과 기약 없는 공포 속에서 언제까지 숨죽여 기다려야 하는가. 누군가가 안전한 생리대를 만들어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엔 이미 내 몸은 충분히 겪었고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서랍 속 생리대를 불태워야 한다. 그리고 나의 몸에도, 환경에도 지속가능한 안전한 생리대를 사용할 권리를 되찾아오자. 여성들이 마음 놓고 월경하는 그날까지, 여성 건강을 위한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 생리대 유해물질 전수조사와 인체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월경하는 여성들) http://bit.ly/2wQZVYD ※ 식약처에 일회용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여성건강 보장을 요구하는 글로벌 행동 커뮤니티 ‘아바즈’ 시민청원 (여성환경연대) http://bit.ly/2yE8EuN 일다
※ 지구별에 사는 34년산 인간종족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 소개: 아주] ▶ ‘하다’와 ‘하지 않다’ ⓒ아주의 지멋대로 일다
※ 지구별에 사는 34년산 인간종족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 소개: 아주] ▶ [지울 수 없다면 더 써보려고] ⓒ아주의 지멋대로 일다
※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 페미니즘 사이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우리가 일상에서, 대중문화 사이에서 페미니즘을 드러내고 실천으로 이을 가능성까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필자 블럭] 글쓰기와 페미니즘 실천 나는 여성주의 저널 에 칼럼을 쓰고 있다. 동시에 음악이나 문화와 관련한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글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느끼겠지만 나 역시 수많은 사회 문제를 하루가 머다 하고, 아니 요즘은 한 시간 단위로 접하는 것 같다. 여성 혐오, 소수자 혐오 발언과 혐오 범죄를 수시로 접한다. 이에 대항하는 활동이나 성명에 동참하거나 가끔 후원금을 입금하고는 한다. 나는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편집장님과 대화를 나눈 뒤로는 사람을 지칭할 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성별을 따로 언급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또 사람을 단순개체처럼 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작품을 접하더라도 일차적으로 보이는 부분 외에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맥락을 읽어보려 애쓴다. 당연히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문장은 피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곳이 어느 매체든, 페미니즘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일종의 생활운동일수도 있다. 직업 자체가 글을 쓰는 일이다 보니,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실천하는 것은 내 평생의 과제이기도 하다. 음악이 아니더라도, 여성주의적 글쓰기를 지향하는 분들과 연대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정작 마감에 몸이 밀리다 보니, 마감을 지키는 것조차 버겁다. 기록에만 신경을 쓰고 내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페미니즘을 실천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불편한 이야기를 듣고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어딜 가서든 그런 발언을 접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편이다. 또 여성주의에 반하는 내용의 글을 쓰도록 요구 받을 때는 다른 방향을 제안하거나, 그게 수용되지 않는다면 거절할 때도 있다. 늘 페미니즘을 고민하고 어느 곳에서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사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 팝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마돈나의 세번째 베스트 음반 (2009) 왜 가요가 아닌 팝에 대해 얘기하냐고? 팝 페미니즘에 관해 쓰다 보니, 왜 하필 가요가 아닌 팝 음악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눈앞에 쌓여있는 한국 음악과 음악 시장의 문제점은 이야기하지 않고 왜 먼 나라 이야기를 하냐는 것이 주된 지적 내용이다. 그에 대해 답하자면, 우선 내 성향이 반영되어 있지 않나 싶다. 싫어하는 것, 좋지 않은 작품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것이다. 글을 처음 쓸 때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은 점이다. 팝 음악 시장이 페미니즘과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온 것은 사실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깊이 있는 논의도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 팝 음악가들을 모두 활동가라고 보긴 어렵지만, 꾸준히 페미니즘을 재생산하고 기존의 논의를 존중하는 동시에 깨뜨리며 한 단계 나아가는 작업을 보여준 이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팝 페미니즘을 좋아한다. 가령 팝 페미니즘의 경우에는 앞선 연재에서 설명했듯이 세대가 계속 교체되고 있다. 마돈나(Madonna)와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세대를 지나 지금은 레이디 가가(Lady Gaga)를 넘어 또 다른 세대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에 마돈나가 만들어낸, 그리고 레이디 가가가 만들어낸 논의는 존중받으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막연히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기성 논의에 무조건 저항하며 반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행동과 역사를 존중하는 동시에 그걸 또 깨고 나가는 것이다. 또한 팝 페미니즘은 여성의 힘 모으기에 관한 앤썸(anthem), 폭력, 퀴어 등 다양한 분야를 조명하고 있다. 그게 내가 팝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섹스와 젠더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새로운 페미니즘의 대명사가 된 레이디 가가의 음반 (2011) 커버 이미지 쓴 소리보다는 좋은 선례를 제시하고 싶다 이에 반해 한국의 음악에 관한 페미니즘적 비판은, 등장하는 소재가 제한적인 것만큼이나 한계가 클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모든 사안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어보아도 바뀌는 것 하나 없는 모습을 볼 때면 점차 힘이 빠지거나 동력을 잃게 되기도 한다. 나의 경우, 써야 할 글과 쓰고 싶은 글이 나뉠 때가 종종 있다. 어느 한 쪽에서는 나에게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내주길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 음악과 음악 시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장이나 환경을 향한 쓴 소리는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다만 소재가 주류든 비주류든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음악인이 있으면 그에 관해 글을 쓴다. 이러한 점이 장점으로 통할 때도 있지만 스스로도 아쉽게 느낄 때도 있다. 최근 임진모 음악평론가가 AMA 시상식 생중계 때 레이디 가가(Lady Gaga)를 두고 ‘공연녀’라는 단어를 붙여 논란이 되었다. 음악계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여러 페미니즘 이슈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분노에 차서 대응하는 글을 쓰기보다는, 오히려 힘이 빠지며 ‘과연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갈등하게 된다. 얼마 전부터 내가 지향하는 여성주의적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나는 여전히 팝 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이야기를 꺼내며 많은 이들에게 좋은 사례와 새로운 영감, 혹은 선례를 제시해주고 싶다. 앞으로도 팝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내 글만이 아니라 여성주의에 관한 자료와 글들이 불특정 다수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한다. 그게 내가 글을 써온 이유이기 때문이다. 일다
흔히 ‘여성의 것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는 것들이 있다. 여성이 있어야 하는 가정, 부엌과 여성이 해야 하는 가사노동, 육아, 돌봄 외의 많은 것들이 여전히 그렇게 취급된다. 특히 감정을 써야 하는 일이 아닌 논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 육체적 힘이 필요한 일은 여성들이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영역이 아닌 것으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여성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인형놀이, 소꿉놀이보다 레고 쌓기와 라디오 조립을 하며 과학자가 되길 원하는 아이의 꿈은, 여성이어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그런 꿈을 꾸는 아이가 덜 여성스러운 것일까? 페미니즘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유는 이렇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여성의 이미지, 능력, 역할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줌으로써 그 여성이라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해준다. 이번에 소개할 넷플릭스 콘텐츠들은 사회적 관습과 편견을 깨고 여성의 것 혹은 여성이라는 범위를 부수는 인물이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앞서 소개했던 다큐멘터리 에서 나온 말처럼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 F로 시작하지만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더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 다큐멘터리 공식 이미지 TV 시리즈, 다큐멘터리 8화(Cosmos: A spacetime odyssey ep.8) 요즘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어졌지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저 별들이 우리와 얼마큼 떨어져 있는지 저 별들은 다 똑같은 건지 궁금했던 적이 있을 거다. 그 물음에 해답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평생을 바쳐 연구를 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피커링의 하렘’으로 불리며 드러나지 못한 채 일했던 여성들이다. 여성이 입학할 수 없었던 1901년의 하버드 대학에서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Edward Charles Pickering)은 자신의 계산수(computers)로 여성을 고용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연구에 여성들을 참여시키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일이 ‘지루하고 전문화되지 않은 일’로 여겨져서, 계산수로 일하길 원하는 남성들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에겐 저임금을 줘도 괜찮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록 그렇게 시작되었지만 여성들은 단순한 계산수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가치와 능력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별의 분류법을 만들어 냈고, ‘별의 스펙트럼이 별의 온도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천문학 역사상 위대한 박사학위 논문으로 일컬어지는 태양의 구성 물질을 밝혀내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성 계산수들의 팀 리더였던 ‘애니 점프 캐넌’(Annie Jump Cannon)은 25만개가 넘는 항성 목록을 작성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청각장애인이기도 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위를 받지 못한 채 미국으로 건너와 하버드에서 계산수 팀에 들어갔으며, 이후 여성 최초로 천문학 대학원 과정에 들어간 세실리아 페인(Cecilia Payne)도 있다.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박사 논문으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회는 이 여성들에게 ‘계산수’의 역할을 주었다. 그게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 어떤 사람도 하지 못한 위대한 발견이었다. 얼마 전, 세계 상위 1% 우수 논문 연구자(HCR)에 2년 연속 오른 박은정 연구 교수의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결혼, 출산, 육아로 어렵게 학업을 마치고 교수 임용이 되지 못한 채 연구교수로 지낼 수밖에 없던 그에게 사회가 준 역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TV 시리즈, 드라마 (The Bletchley Circle) ▶ TV 시리즈 공식 이미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던 시절, 영국엔 전쟁 중 오고 가는 암호를 해독하는 ‘암호 해독자’(Codebreaker)들이 모여 일하는 블렛츨리 공원(Bletchley Park)이 있었다. 암호 해독자들 중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그들은 가정을 꾸려야 했고 부인, 엄마의 역할 혹은 미스터리한 싱글 여성의 역할을 부여 받았다. 그 여성들 중 한 명이었던 수잔은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된 어느 살인 사건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연쇄 살인범에 의한 것이며, 어떤 패턴이 있다는 걸 알아낸다. 경찰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하지만 ‘평범한 주부’로 보이는 수잔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 결국 수잔은 7년 만에 친구들을 소집하게 되고 그들의 진짜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추리는 셜록 홈즈 및 남성탐정들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콘텐츠에 조금 질렸다면 은 분명 신선한 재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남편에게 자신들이 하는 일을 설명하지 못하고 ‘책모임’이라고 둘러대는 모습이나 경찰들이 수잔의 말을 무시하는 장면에서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서클 멤버들이 모여서 각자의 능력을 펼치고 범인과 관련된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사건을 해결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경력단절 여성’으로 불려지곤 하는 그들은 단순히 일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아무 일이나 막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각각의 특출한 경험과 능력이 있다. 역할을 제대로 부여 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을 우리가 너무 쉽게 부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그리고 여성들이 활약하는 추리물에 ‘삘을 받았다면’ (Elementary)도 볼만 하다. 영화 로 알려져 있는 루시 리우(Lucy Liu)가 셜록의 파트너 ‘왓슨’으로 출연한다. 그렇다, 남성 왓슨이 아니라 여성 왓슨이다. 시즌 초반에는 셜록의 불안정한 상태를 감시 감독하면서 그를 보살피지만, 시즌이 더해갈수록 또 한 명의 특출한 탐정으로 능력을 발휘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Mission Blue, 피셔 스티븐스, 로버트 닉슨 감독, 2014) 별을 바라봤던 여성들이 있었다면 바다 속을 탐험한 여성도 있다. 1998년 타임지가 꼽은 지구의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한 실비아 얼(Sylvia Earle)은 과학자, 해양 생물학자, 탐험가이자 환경운동가이다. 이 다큐는 실비아 얼의 삶과 활동을 집중 조명한다. 실비아 얼은 흔히 말하는 여성치고는 대담하게 탐험에 나섰다. 나아가 탐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바다의 변화를 감지하고서 왜 이렇게 되었으며, 이것이 우리 모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했다. 소극적이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여성답지 않게’ 바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고 매우 적극적으로 말해왔다. 바다 보호에 대해 급진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실비아 얼은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걸 전 보기 때문일 거예요. 평생 다이빙하면서 보아온 것들과 몇 천 시간 수중에서 지내면서 얻게 된 시각을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다면 제가 급진주의로 보이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한다. 그의 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는 정말 여성치고는 대담한 것이었을까? 그런 유별남 덕분에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걸 볼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으며 그와 동시에 어떤 것에 대해 깊은 애정과 열정을 가졌던 것이다. 바다 속의 아름다운 모습과 그 안에서 날아다니듯이 헤엄을 치는 실비아 얼의 모습을 보면 압도된다. 그리고 설득력 있는 그의 야이기를 듣다 보면, 자연의 어머니로서의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이루는 하나의 존재로서 나의 보호 임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다큐멘터리 무비 트레일러 중에서 바다 속 실비아 얼의 모습 TV 시리즈, SF 드라마 (Orphan Black) 은 인간이 복제된다면 여성에게 주어진 출산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 그래도 여전히 배 속에서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필요할까? 그렇다면 그 대리모는 엄마일 수 있는가? 여러 가지 질문이 생기는 인간 복제를 주제로 한 SF 드라마다. 어떤 사고로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 사라가 자신의 복제인간 자매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그들을 만들어 낸 거대한 조직, 네오루션(Neolution)에 맞서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배우 타티아나 매슬래니(Tatiana Maslany)가 1인 다역을 하며(시즌 동안 총 14명을 연기한다)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그들이 어떻게 연대하며 적에 맞서는지 보여준다. 특별한 직업도, 무엇도 없이 방황하면서 살던 사라. 치마 바람을 일으키는 극성스런 엄마인 앨리슨. 당당한 레즈비언이며 과학자인 코지마. 종교단체에 이용당해 살인병기로 만들어진 헬레나. 네오루션의 일원인 레이첼 등. 삶과 성격이 모두 다른 여성들이 때로는 적으로 만나기도 하지만, 서로를 만나 변화한다. 그러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틀을 깨고 흥미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제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지겨운 프레임, 그 놈의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에서 벗어나자. TV 시리즈, 드라마 (The Fosters) ▶ TV 시리즈 포스터 또 하나의 ‘문제적’ 질문을 던져보자. 레즈비언 커플은 부모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그게 궁금하다면 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교감 선생님과 경찰인 레즈비언 커플이 청소년인 다섯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 드라마는 2013년 첫 방영 이후 현재까지 방영되면서 가족과 성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10대의 성장과 사랑 그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이 주 스토리이지만 특히 비혼모, 낙태, 약물 중독, 입양가정 등 어떤 이들은 ‘사회 통념상’ 논란이 많다고 이야기할 부분에 대해 과감하게 다룬다. 총괄 제작자 중 한 명이며 유명 배우이자 가수인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는 이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평생 사회 편견에 맞서서 살아야 했던 자신의 이모에게 받은 영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드라마는 1인 가족 및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현재 사회의 진짜 모습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해준다. 다큐멘터리 영화 (Growing up Coy, 에릭 주홀라 감독, 2016) 코이는 남자 아이로 태어났다. 하지만 코이는 18~19개월부터 자신이 여자 아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조차 민감하게 반응했다. 엄마에게 자신의 성기(페니스, Penis)를 언제 잘라가냐고 묻기 시작했을 때 코이의 부모는 코이가 정말 자신을 여자 아이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코이는 신체적 남자 아이로 태어났지만 남자 아이가 아니다. 이 다큐는 코이가 학교에서 ‘여자화장실’을 쓰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고 그 차별에 맞서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코이의 부모는 학교를 상대로 고소를 하고 이 사건은 미국 내에서 큰 논쟁을 불러왔다. 아직 어린 코이에게 자신의 젠더를 선택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아동학대라는 주장부터, 여자 아이인 코이가 여자화장실을 쓰는데 문제가 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주장까지.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다.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사용 관련 이슈는 트랜스젠더의 전반적인 삶에 관련된 논의까지 커져나갔다. ▶ 다큐멘터리 영화 포스터 결과적으로 학교를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법원은 학교가 코이의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고 화장실 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코이에게 행한 폭력이 있다는 점을 짚어주며 코이의 손을 들어줬다. 이 일은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의 큰 도약으로 기록되었다.(하지만 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랜스젠더의 군복무 금지를 지시하는 등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다시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코이가 어떤 인터뷰를 앞두고 ‘기분이 어떻냐’고 묻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실수로라도 나를 남자 아이(Boy)라고 말하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코이에게는 잠시라도 자신이 여자 아이로 보이지 않은 것이 공포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신이 여성으로 보이고 그 역할에 억매여야 한다는 것이 공포이다. 그렇다면 그 여성은 대체 무엇인걸까?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말은 여성들은 그냥 태어나는 것만으로는 주어지는 게 없기 때문에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쟁취해서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사회가 ‘여성’을 만들게 내버려 두지 말자. 내가 원하는 여성을 내가 만들 수 있도록 사회에 던져야 할 질문들이 우리에게는 아직 많다. 지금까지 소개한 콘텐츠들이 그런 질문들을 떠올리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끝) 일다
일본 사회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계획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공모죄법’(테러 등 준비죄) 시행으로 뜨거운 논쟁 중이다. 국가가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감시사회를 만들려 한다는 반발은 예술계에서도 거세다. 반전(反戰)을 택한 연극인들, 낙서를 권유하다 ‘반전(反戰)을 택한 연극인 모임’에서는 올해의 테마를 공모죄로 정했다. “돌이킬 수 없는 여름”이라는 타이틀의 희곡낭독공연으로 세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는데, 그 중 두 편이 극작가 사카테 요지의 희곡 와 이다. 는 이라크전쟁이 시작되던 2003년 봄, 도쿄도 스기나미구의 공원 화장실 외벽에 스프레이로 ‘반전(反戰)’이라고 쓴 남성이 체포된 사건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이루어진 사례로,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다시 거론할 의미가 있다고 사카테 씨는 말한다. 당시 그 남성은 건조물 손괴죄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그 시대를 돌아보고 공모죄가 시행된 현재와 연결시키기 위해 을 낭독하고 무대는 다시 로 돌아간다. ▶ ‘반전을 선택한 연극인 모임’이 매년 개최하는 희곡낭독공연 ‘피스 리딩’의 올해 공연에서는 스티커도 판매했다. 스프레이 병에 붙여 사용할 수 있다. ⓒ페민 제공 연극은 작년 10월, 오키나와 다카에에서 미군의 헬리포트(헬리콥터 착륙대) 공사에 항의하던 사람들이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기소된 것을 ‘공모죄법’의 선례로 묘사한다. 대본을 쓴 사카테 요지 씨는 “그때 체포된 목사 요시다 시게루 씨에 대한 7월 27일 판결문이 ‘마찬가지로 체포·기소된 야마시로 히로시 등과 공모한 사실이 분명하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공모죄가 현실로 보였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사카테 씨는 공모죄법 시행 이후의 상황에 대해 “경찰에 의한 도청이나 미행은 이미 몰래 시행되고 있었지만, 이러한 수사 방법이 ‘합법적’이 된다는 것이 큰 문제”라며, “시민들의 자기검열과 위축을 노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전 낙서’ 사건으로부터 14년이 흘렀습니다. 낙서는 용납되지 않는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공공연하게 표현하기 위해 낙서밖에 방법이 없다면, 낙서를 해도 됩니다. 법 자체가 잘못됐다면 법을 부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요? 희곡의 마지막 장면은 현재입니다. 출연자가 일제히 스프레이로 ‘반전’이라고 씁니다. 그리고 ‘반전 스프레이’를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웃음) 여기에는 ‘합의’와 ‘준비’가 존재하죠. ‘웰컴, 공모죄. 우리는 계속 낙서하겠습니다’ 그런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정치는 다루면 안 돼’ 사상통제는 벌써 시작됐다 기시다 구니오 희곡상 외 다수 수상 경력을 가진 극작가이자, 극단 린코군의 대표인 사카테 요지 씨에게 ‘공모죄’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예술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저는 지금까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나 전쟁, 천황제, 정치범에 관한 이야기, 사회적 차별 문제를 희곡으로 써왔습니다. 가족드라마나 연애극을 써도 그 안에서 정치 이슈를 다루면 ‘사회파’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일본의 특수한 상황입니다. 2002년에 초연한 는 무기징역수로 수감된 정치범 남성과 옥중 결혼을 한 여성이 주인공입니다. 남편이 갑자기 석방돼 그날 처음 함께 살기 시작한다는 멜로드라마로, 해외 상연 때는 ‘일본에도 어른을 위한 연극이 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일본과 달리, 정치적인 문제를 다뤄도 평범한 드라마로 수용되는 것입니다. 저는 연극적 실험을 거듭해 표현의 가능성을 끌어내면서, 동시대의 이슈를 날카롭게 다루는 것, 그 두 가지가 항상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오키나와 출신이기도 해서, 오키나와로부터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1987년 오키나와 국민체육대회에서 일장기를 내려 태우며 항의한 치바나 쇼이치 씨의 이야기를 담은 을 집필하기 위해 그의 집에 오래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필리핀에서 돈을 벌려고 와 미군캠프 앞 바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최신 정보를 듣기도 했는데, 미군들이 그녀들에게만은 속내를 털어놓는다고 하더군요. 오키나와에 관한 연극 에서는 2004년 대학에 미군 헬기가 추락한 사건을 재검증했습니다. 에서는 아내의 친척이자 오키나와의 재일미군기지노동조합 서기장이었던 분의 도움을 얻어 미군 철수와 고용 문제를 취재했습니다. ▶ 오키나와에서 대학에 미군 헬기가 추락한 사건을 다룬 연극 2011년 세이넨 극장. (촬영 Masahiko Yakou) 저는 연극이라는 방법으로 ‘이 세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려고 합니다. 연극은 창작 행위임과 동시에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가는 행위이자, 진실을 파헤쳐 발견하는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또한 연극에는 관객과의 쌍방향성이 있습니다. 배우의 어떤 표정을 알아채는 사람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대의 어디를 볼지는 관객의 선택입니다. 그런 관객들이 갖는 느낌이 연극을 지탱해왔습니다. 지금 “전쟁은 없어지지 않는다, 일본만 손 안 더럽히고 있을 수 있나”하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전 전쟁을 치른 후에 ‘다시는 전쟁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말의 무게가 제대로 전해 내려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가 헌법 전문 중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국민의 공정과 신의를 신뢰하고, 우리의 안전과 생존을 보존하고자 결의했다”는 부분입니다. 아베 총리는 2012년에 이 부분에 대해 “우리의 안전을 세계에 맡기겠다고 말”한 것이라며, “창피한 헌법”이라고 발언했습니다. 틀렸습니다. 저는 상대(모든 국민)를 신뢰하는 것, 상대가 움직이도록 추동함으로써 자신(일본)이 변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연극인 중에는 정치를 다루는 연극은 ‘안 팔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우리 세대와는 다릅니다. 지금, 일본 사회는 큰 전환점에 와있습니다. 사상 통제마저 이뤄지면, 어떤 경향의 연극에는 환경적·경제적 억압이 가해지고 심지어 그 경위조차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청년들이 표현의 자유의 소중함을 생각하길 바랍니다. ‘옳은가’, ‘받아들여질까’가 아닙니다. 자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체제의 가치관을 뛰어넘길 바랍니다. 7월의 도쿄도의원 선거를 위한 아키하바라 가두연설 중 아베 총리를 향해 ‘물러나라’고 외친 구호도 ‘공모’의 대상이 될까요? “반대한다고 말하기가 두렵다. 상업 베이스로 일을 하고 있으니 정치적인 것에 얽혀 일을 잃게 되면 곤란하다”는 위축의 목소리가 연극계에도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이미 시작된 셈입니다. “그 아키하바라의 구호가 ‘최후의 자유’였네”라고 말하는 사태가 발생해선 안 됩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저항과 호소에 대해 “정말로 심각해졌을 때 목소리를 내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 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일다
엠버와 여성성 아이돌 걸그룹 에프엑스(f(x))의 멤버인 엠버(Amber)가 지난 16일 유튜브에 영상을 하나 올렸다. 영상의 제목은 “내 가슴이 어디 갔지?”(Where is my chest?)이다. f(x)는 2009년 디지털 싱글 ‘라차타’로 데뷔한 걸그룹으로 빅토리아, 크리스탈, 루나, 엠버라는 네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설리도 멤버였지만 2015년 탈퇴했다.) f(x)는 다른 걸그룹들과 차별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엠버의 존재였다. 엠버는 기존 걸그룹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보이쉬한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며 나타났다. 그런 모습은 단순히 일시적인 컨셉이 아니었고, 엠버는 지금까지 꾸준히 그 매력을 발휘하면서 또한 진화시켜 왔다. 하지만 그 매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자애냐, 남자애냐?”라는 질문은 데뷔 때부터 쭉 엠버를 따라다녔다.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2015년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나왔을 때는, 반전 매력이라며 바느질 하는 엠버의 모습과 함께 자막으로 ‘규수’, ‘천상 여자’라는 말들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엠버에게 ‘여자다움’을 강요했다. 때로는 ‘알고 보니 여성스럽다’, ‘속은 천상 여자다’ 등의 말로 엠버를 보호하고자 하기도 했다. 엠버는 그런 주변의 혼란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솔로 활동을 하면서 발표한 싱글 ‘보더스’(Borders)의 가사에서 경계를 넘을 거라고 했을 때도 그랬고, 팬들에게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라고 얘기할 때도 그랬다. 엠버가 가슴을 찾으러 가는 여정 그런 엠버가 “내 가슴이 어디 갔지?”(Where is my chest?)라는 약 7분짜리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걸 봤을 때, 그 용기와 대담함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상에서 엠버는 흔히 말하는 ‘악플러’들이 단 ‘악플’을 읽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세상에, 엠버야 도대체 니 가슴은 어딨니?”이다. 엠버는 “좋은 질문이야. 그러게… 내 가슴이 어디 갔을까? 그게 없어진지 좀 된 것 같은데… 우리 한번 같이 찾으러 가볼까?”라고 말한다. ▶ 엠버의 유튜브 장면 http://bit.ly/2yL5PdS 영상에서 엠버는 가슴을 찾기 위해 친구와 밖을 돌아다니면서 또 다른 악플들을 읽으면서 거기에 대꾸해 준다. 엠버의 대응 방식이 너무 기발하고 영리해서 감탄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이 장면이었다. “그녀는 키가 큰데도 우아한 몸을 가지고 있어. 가는 다리와 긴 머리가 그녀를 여성스럽고 순수하게 보이게 만들어.” 라는 어떤 글을 읽고 난 후 엠버가 “흠…”이라고 갸우뚱하다가 친구를 찾아간다. 가는 다리와 긴 머리를 가진 ‘남자’ 친구에게 찾아가서 “나한테 줄 조언 있어?”라고 묻자, 그 친구는 해변 근처에 살면서 햇볕을 많이 쐬라, 야채 먹고 요가하면 된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여성성’, ‘여성스러움’, ‘여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비꼬는 엠버의 모습을 보고,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고 고민을 했는지가 느껴졌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 패션 산업에서는 안드로진(Androgyne,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젠더) 모델들이 눈에 띄게 활약하기 시작한지 몇 년이 되었다. 안드레아 페직(Andreja Pejic), 레인 도브(Rain Dove), 에리카 린더(Erika Linder) 등의 모델들이 유명 브랜드의 모델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남성복 모델이기도 했으며 여성복 모델이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 나카야마 사츠키의 인스타그램 얼마 전에 일본에서 안드로진 모델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에 등장하는 나카야마 사츠키(Nakayama Satsuki)는 12살에 소녀들을 위한 잡지인 으로 데뷔를 했다. 당시에는 긴 머리카락에 치마를 입고 귀여운 표정을 짓는 작업들을 주로 하던 모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드로진 모델을 보게 되었고,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그 매력에 빠져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에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치마를 모두 내다버렸다고 한다. 모델 일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기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고, 결국 그것은 나카야마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일본에서는 생물학적 남성이고 안드로진인 모델들이 있었고 주목 받았지만, 생물학적 여성이고 안드로진인 모델인 사람은 별로 없었던 탓에 나카야마는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4월, 중국에서는 에이크러쉬(Acrush)라는 그룹이 데뷔했는데 언뜻 봐서는 미소년들로 구성된 이 보이그룹은 사실 모든 멤버들이 여성이라는 것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올해 4월, 미국 GLAAD에서 발표된 보고서(Accelerating Acceptance 2017)에 따르면,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18-34세) 중 자신을 시스젠더(Cis-Gender, 사회에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 정체성이 같은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이 12%에 달했다. 그들의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52-71세)의 3%에 비해 4배 높았다.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들 논-바이너리(Non-binary), 안드로진(Androgyne),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 에이젠더(Agender), 젠더리스(Genderless) 등의 말들은 아직 조금 생소하다. 하지만 조금씩 우리 사회와 우리들 삶 속으로 들어오는 중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떤 특별한 성별 정체성의 호명 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의 견고한 틀을 흔들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며칠 전에 남자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인 태민의 솔로 무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태민의 춤과 몸동작은 멋있다고만 하기에는 부드러웠고, 요염하다고만 하기에는 파워가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멋있다는 말을 남성적, 요염하다는 말을 여성적이라는 기준 아래에서 생각하는 걸까? 무엇이 여성적이고 남성적인가?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범위는 어디인가? 우리는 그 범위를 지키는 사람들인가, 그것을 흔드는 사람들인가? 일다
성이 씨(1981년 생)는 캐주얼한 한복을 제안하는 브랜드 ‘성이한복’의 디자이너 겸 제작자이다. 일본 아이치현에 소재한 조선학교의 교사이자, 두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아이 키우며 직장에 다니기도 바쁜 가운데 ‘귀염’(일본어로는 가와이를 줄인 갸와)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한복을 만들고 있다. ▶ ‘성이한복’ 디자이너 겸 제작자 성이 씨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성이 씨는 자이니치(재일조선인) 3세.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조선학교에서 공부했다. 중등부 2학년 때, 여느 때처럼 한복 교복을 입고 하교 중이던 전철 안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있는 힘껏 성이 씨의 뺨을 때리며 “조센징(조선인)! 얼른 조선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무서워서 다음 역에서 내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후 한동안 교복을 입을 수 없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마저 조각조각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거나 책에 적었더니, 같은 세대로부터 자기나 자기 친구가 같은 일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또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 ‘핵 의혹’이 보도됐던 1990년대 중반, 조선학교 학생들의 한복 교복이 찢어지는 사건이 일본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조선학교에서는 블레이저 등의 제2교복이 정착되었다. 일본 사회는 자이니치 어린이들의 옷을 빼앗았다. 그로부터 20년. “지금도 조선학교 학생들은 폭언을 듣거나 전철에서 소동에 휘말리곤 합니다. 특히 여자가 계속 표적이 되고 있는 게 괴롭습니다.” 한복에 대한 성이 씨의 생각은 복잡했다. 어린 시절의 공포를 극복하고 한복을 입을 수 있게 된 후에도, 긴 소매 저고리는 여름에는 더워서 싫었다. 조선학교에서 선생님도, 학생도 여자만 저고리 착용 의무가 있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여름에 시원하고, 입기 편하고, 빨기 편한 저고리를 직접 만들어봤다. 그랬더니 계속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저고리를 입으면 원래의 자신이 된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고, 한복을 만들면서 자기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감각도 있었다. 몇 벌인가 만들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주문이 들어왔고 ‘귀염저고리’라는 호평을 얻었다. 2014년에 자이니치와 소수민족, 외국인 등에 대한 혐오발언에 대항하는 ‘차별반대 도쿄대행진’에서 성이 씨의 저고리를 입고 행진하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다. 참가자들의 뜻에 힘입어 ‘귀염한복 부대’가 결성되었다. 일본의 무늬 천으로 저고리를 만들어 성이 씨도 참가했다. 당일, 길 위에 제안을 받아 인터뷰도 했다. ‘귀염한복 부대’ 정보가 전해지자 갑자기 주문이 늘었다. 다음 해인 2015년에 온라인몰 ’성이한복‘을 오픈했다. ▶ ‘성이한복’ 저고리 ⓒsungihanbok.stores.jp ‘성이한복’은 한국의 전통을 반영하면서도 디자인은 현대적이다. 원피스인가 싶은 것도 있고, 세련되고 귀엽다! 주문자의 30%는 일본인이다. 혹시 일본인이 한복을 입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까? “한복을 입을 수 없는 사회를 자신들(일본인들)이 만들어놓고는 한복을 입다니, 문화도용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더군요. 하지만 한복이 패션으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분이 입을 필요도 있습니다. 저는 일본인이 한복을 입음으로써 여러 가지를 알게 되고, 생각이 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이 씨는 처음에 한복 짓는 법을 알려준 분도 일본인이었다고 말한다. “그 분은 오사카 출신으로, 지금은 히로시마에서 한복가게를 하시는 분이죠. 한복 짓는 법에 관한 책도 일본어로 내셨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지금도 그분에게 연락합니다. 일본인에게서 배우는 제가 신기한가요?” 지난 5월, 재일동포를 위한 이오신용조합 나고야 지점에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한국에 나쁜 인상을 갖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때 그 안에는 어른만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충격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같은 일이 학교에서 일어났다면 아이들은 평생 상처를 받을 거예요” 라는 성이 씨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활기차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올해 조선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들은 이웃 사람에게 “조선학교에 다녀요!”라고 활기차게 인사했죠. 고교 무상화 적용(일본의 취학 지원금 제도로, 조선학교만 배제되어 있음)을 호소하며 거리에 나가는 학생들은 주변에서 폭언을 들어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겠죠.” 성이 씨는 어떤 국적도 선택하지 않은 상태인 ‘조선(국)적’(조선의 독립 이후에도 한국 국적이나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음)으로 살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좋아요. 조선(국)적이라는 ‘틈새’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양과 서울, 도쿄를 무대로 패션 일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귀여움은 모두를 잡아끄는 힘이 있고, 차별을 넘고 사람들이 이어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귀염한복이 일본 패션업계에서 일반명사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저고리에 달린 여러 가지 노리개를 빼야 한다.” 성이 씨는 자신의 책 (트랜스뷰)에 그렇게 적었다. 이때의 노리개란 전통, 역사, 상징, 차별, 억압, 기호, 여성다움을 상징한 표현이다. ‘성이한복’에는 옷을 걸침으로써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 온라인몰 ‘성이한복’ http://sungihanbok.stores.jp ※ 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일다
※ 지구별에 사는 34년산 인간종족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 소개: 아주] ▶ 머물렀던 수정란 ⓒ아주의 지멋대로 일다
※ 지구별에 사는 34년산 인간종족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 소개: 아주] ▶ [그 나이] ⓒ아주의 지멋대로 일다
‘공정무역’이나 ‘유기농 작물’ 등 식품과 의류 산업에서 윤리적 생산과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은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마트폰과 휴대폰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광물을 둘러싸고, 세계적으로 처참한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까. 아시아태평양자료센터(PARC)에서 개최한 국제심포지엄 “윤리적 휴대폰을 만들 수 있을까?”에서 보고된 내용을 PARC 사무국장 다나카 시게루 씨가 전한다. 광산 개발에 반대하는 활동가들의 잇따른 죽음 ▶ 캐나다 채굴기업의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 문제를 조사해온 ‘마이닝 워치 캐나다’(Mining Watch Canada)의 캐서린 쿠먼즈 씨 ⓒ페민 제공 “우리들이 원했던 이주 생활과는 전혀 달랐다.”“모두 광산 개발에 동의했던 걸 후회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한 사람은 필리핀 원주민 마마누와족의 젊은 리더인 니코 델라멘테 씨다. 그는 광산 확장 계획에 반대하며 조상으로부터 이어져온 땅을 되찾고자 하는 활동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올해 1월 20일, 대낮에 광산회사 쪽 사람으로 추정되는 암살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한편, 온두라스에서는 원주민의 삶을 위협하는 광산 개발과 그와 연관된 댐 건설에 20년간 반대운동을 해 온 저명한 활동가 베르르타 카세레스 씨가 작년 3월 3일 새벽에 자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광산 개발은 대규모의 환경 파괴와 원주민들의 강제 이주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자체가 문제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광산 개발에 반대하는 활동가가 암살되거나 부당 체포되는 사건들 역시 심심치 않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광물자원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양한 금속을 필요로 하는 상품 중 하나가 스마트폰과 휴대폰이다. 40종류 이상의 원료, 1천 개 이상의 부품으로 조립된다. 그 안에는 대체 얼마만큼의 인권 침해와 환경 파괴가 채워져 있을까? 그리고 윤리적 휴대폰은 실현될 수 있을까? ‘책임 있는 광물 조달’은 공상에 불과하다?! 캐나다 채굴기업의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 문제를 조사해온 단체 ‘마이닝 워치 캐나다’(Mining Watch Canada)의 캐서린 쿠먼즈 씨는 채굴기업이 내건 ‘책임 있는 광물 조달’이라는 슬로건은 “공상 속의 동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두가 알지만 실체는 누구도 본 적 없다. 채굴기업에 의한 환경 파괴와 인권 침해 문제는 개발도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의 대부분은 캐나다, 호주 등의 선진국 기업이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선진국 내에서도 문제는 일어난다. 최근 캐나다에서는 광산에서 나온 방대한 폐액을 저장하는 댐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사고로, 방대한 양의 유해폐액이 하류로 흘러갔다. 사고는 공업기술력이 떨어지는 국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소규모 광산에서는 이러한 문제 역시 소규모로 끝나지만, 일단 대규모로 일어날 경우 자연의 재생능력을 월등히 능가하는 오염이 너무도 쉽게 일어나버린다. 현재의 공업기술력으로는 대규모 광산에서 ‘책임 있는 광물 조달’ 등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공상 속 산물인 것이다. ‘공정한 스마트폰’ 제조하는 페어폰 운동 도상국의 커뮤니티 중에는 소규모 채굴로 얻어지는 현금 수입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콩고 동부 지역의 채굴 커뮤니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콩고에서는 내전으로 인해 오랜 분쟁에서 일어서야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삶을 다시 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콩고의 일부 지역에서 지금도 활동 중인 무장 세력의 자금원에 광물이 이용되고 있다는 유엔의 보고도 있다. 미국과 유럽의 소비자단체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광물 자원이 ‘분쟁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운동을 강력하게 펼쳐, 기업과 정부가 분쟁 광물 문제에 대처하도록 요청했다. 그 결과 미국 정부는 분쟁 광물을 규제하는 토드 프랭크법을 2010년에 가결하고, 기업도 대책 마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결과, 공정한 광물까지도 공정한 가격으로 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인도적 배려를 위해 전 세계가 ‘콩고 보이콧’을 선언함으로써 곤경에 처한 것은 현지의 채굴 커뮤니티다. ▶네덜란드의 사회적 기업 페어폰이 제조한 스마트폰(Fairphone) ⓒ페민 제공 그래서 보다 ‘공정한 스마트폰’ 제조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네덜란드의 사회적 기업 페어폰(Fairphone)에서는 분쟁에서 일어서려는 콩고의 채굴 커뮤니티에서 광물을 구매해 지원하고 있다고 모니크 렌파스 씨는 이야기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벤자민 클레어 씨가 운영하는 ‘베터 소싱 프로그램’(BSP) 등의 현지 모니터링 프로젝트다. BSP에서는 분쟁 광물 의혹을 받는 콩고 현지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 수시로 현지 정보를 제공받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현지에서 세세한 정보를 받음으로써 분쟁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 엄격하게 체크함과 동시에, 돈의 용도와 노동자 안전 등도 점검하는 시스템이다. 페어폰은 그러한 새로운 시스템도 활용하며 광물 조달과 제조, 판매, 사용 후의 폐기에 이르기까지 보다 공정한 산업계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으로서 스마트폰을 제조하고 있다. 페어폰은 제조 과정이 윤리적일 뿐 아니라, 소비자가 이용하다가 고장이 나면 부품별로도 교체할 수 있다. 누구든 특수한 도구를 쓰지 않고도 쉽게 분해할 수 있다. 유럽의 소비자 역시 페어폰을 지지하여 3년 반 동안 10만대 이상이 판매되었다.(1대 약 80만원) 이는 지금 유럽의 전자기기 제조사 중 가장 점유율 상승이 높은 편에 속한다. 페어폰 운동 자체가 세계의 전기전자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 역시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 아시아태평양자료센터(PARC) 국제심포지엄 “윤리적 휴대폰을 만들 수 있을까?”에서 발표하는 페어폰(Fairphone)의 모니터 렌퍼스 씨 ⓒ페민 제공 제조사는 소비자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 일본의 전기전자 산업의 경우에는 콩고에서 분쟁에 가담한 광물, 소위 ‘분쟁광물’에 관해서는 미국 토드 프랭크법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인권배려 가이드 등 국제적인 규제의 영향을 받아 각 기업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진척이 보이지 않는다. 기업에게는 광산 현장의 세부까지 관리할 능력이 없고, 비정부기구의 정보만으로 중요한 경영 판단을 할 수 없다는 속내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일본의 전자기기 제조사 중 일부는 고객 불만을 회피하기 위해 광산 ‘블랙리스트’를 제시하도록 업계 단체인 일본 전자정보기술 산업협회(JEITA)에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시민사회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 제조사는 이미 소비자의 눈을 의식하고 있다. 멀리 해외의 광산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국내에서 확산시키는 활동은 현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니코와 베르르타의 죽음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세계의 광산 문제 실태를 알고 알릴 필요가 있다. ※ 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일다
하비 와인스틴과 그를 고발한 사람들 지난 5일,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몇 십 년 동안 하비 와인스틴에 대한 성추행 고발이 묻혀졌다”(Harvey Weinstein Paid Off Sexual Harassment Accusers for Decades)라는 기사를 통해 하비 와인스틴이 행해온 성추행들을 밝혔다. “하비 와이스틴과 관계가 틀어지지 않게 하면서 어떻게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 애슐리 주드는 그렇게 생각했었던 걸 얘기했다.> -뉴욕타임즈 발췌 뉴욕타임즈는 애슐리 주드의 고발뿐만 아니라 하비 와인스틴 회사에서 일했던 여직원이 당했던 성추행 및 배우 로즈 맥그완의 고발 등을 담아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합의되고 묻혀왔는가에 대해 정리했다. 하비 와인스틴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제작자 중 한 명으로 약 40년이 넘게 할리우드에서 활동해 왔으며 수많은 영화 제작에 참여해 왔다. (Pulp Fiction), (Sex, Lies, and Videotape) 같은 독립영화부터 (Shakespeare in Love), (Gangs of New York), (Kill Bill), (Scream) 시리즈 등을 제작한 그는 수많은 배우들과 작업해 왔다. 뉴욕타임즈의 기사 이후, 성추행을 고발한 배우들과 직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물론 자신도 와인스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잇따랐다. 현재까지 약 30명이 넘는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과거의 경험을 밝혔고 그 중에는 로잔나 아퀘트,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펠트로, 케이트 베킨세일 등의 유명 중견 배우도 있고, 카라 델러바인과 같은 떠오르는 신예 배우도 있으며 익명으로 고발한 사람도 있다. ▶ 미투(#Me too) 캠페인을 제안한 배우 알리사 밀라노의 트윗 #MeToo 캠페인으로 확산된 목소리 이런 고발 속에서 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16일 ‘성적으로 추행이나 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 모든 여자 분들은 #미투(#Me too)를 써 주시길 바랍니다. 이 행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라는 트윗으로 #미투(Me too)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트윗은 2만 건이 넘게 리트윗 되었으며, 트위터의 대변인에 따르면 알리사 밀라노의 트윗 이후 24시간 동안 약 50만 건의 트윗이 #미투(Me Too)와 함께 올라왔다고 한다. 트위터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에서도 #미투(Me Too)와 함께 수많은 글들이 올라왔고 많은 배우들도 동참하며 자신이 할리우드에서 겪었던 사건들을 밝혔다. 미투(#MeToo) 캠페인은 타라나 버크(Tarana Burke)라는 흑인 여성이 2007년 처음 시작한 캠페인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기본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계층의 여성들 중 성폭행 피해자인 사람들과 연결하고자 했던 풀뿌리 운동이었다. 17일, 타라나 버크는 데모크래시 나우(Democracy now)와의 인터뷰에서 이 캠페인을 시작했던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성폭력 피해자였던 나도 다른 누군가에게서 ‘나도야’(Me Too) 라는 말을 듣고 나서 절망에서 치유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왜 지금인가? 권력을 쥔 자의 성폭력에 경종을… 할리우드에서 일명 ‘성추행 스캔들’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할리우드의 역사만큼이나 그 역사도 깊다. 마릴린 먼로도 자서전에서 할리우드의 여자 배우 취급 방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있으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아동 여성배우 성폭행 사건, 빌 코스비의 성폭행 사건은 이미 유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건들이 늘 묻혔다는 것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그 사건을 ‘스캔들’로 취급하고 빠져나갔다. 배우 케이시 애플렉(Casey Affleck)은 성추행 혐의로 고발당했지만, 사실을 계속 부인했고 올해 아무런 문제없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할리우드에서 일명 ‘성추행 스캔들’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이미지: pixabay.com) 사실 미국에서는 지난 몇 년 간, 많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쟁으로 뜨거웠다. 대학 내 성폭력 또한 큰 이슈로 부상했으며 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the Hunting Ground, 2015)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콜럼비아 대학에서는 합의된 성관계 도중 폭력을 휘둘렀다고 고발한 여학생이 대학의 안일한 대응을 비꼬는 ‘매트리스 이동’ 퍼포먼스를 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그러나 추후 경찰과 대학은 조사 끝에 가해자에게 무혐의라는 결론을 내렸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목소리를 높여 성폭력의 심각성을 이야기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성폭력은 섹스가 아니다. 그것은 범죄다’ 라는 내용을 포함한 연설을 몇 번이나 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토론 중에 상대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불결한 여자다’(Nasty Woman)라고 발언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성추행 행적이 드러났음에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사회가 조금씩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던 많은 여성들이 느낀 절망은 컸다. 특히 권력이 있는 특권 계층의 남성들에 의해 자행되는 많은 성범죄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피해자와 그들의 고통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지금의 고발과 함께 불거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고발이 남긴 것, 절망에서 변화로 하비 와인스틴은 8일, 자신의 회사로부터 해고당했으며 필름 아카데미(Film Academy)로부터도 쫓겨났다. 미국 프로듀서 협회(PGA)에서도 내부 투표를 통해 하비 와인스틴의 회원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결정했으며, 또한 할리우드 내의 성추행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한 ‘반 성추행 TF’(Anti-Sexual Harassment Task Force)를 만드는 것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하비 와인스틴에 대한 혐의는 경찰 조사 중이며, 그는 현재 애리조나에서 섹스중독 재활 치료를 받으려고 한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의 사람들은 고발을 지켜보며, 지금은 유명해진 여자 배우들에게 왜 이제서야 고발을 하냐고 비판을 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고발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을 이용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 그리고 실제로 그걸 이용해서 경력을 쌓은 것이 아니냐, 그러고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냐고 말이다. 그 대답은 이미 고발자들의 증언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경력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28살의 여성이다. 하비 와인스틴은 자신의 회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64살이다. 파워의 균형은 나:0, 하비 와인스틴: 10이다.” -뉴욕타임즈를 통해 첫 고발을 한 직원 로렌 오코너(Lauren O'Cnnor)의 메모, 뉴욕타임즈 발췌 또한 일각에서는 #미투(Me Too) 캠페인이 여성들의 절망을 전시하는 형태로 쓰일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 고발뿐만 아니라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함께 변화시키자 등의 글과 메시지들이 공유되고 있고, 배우들도 변화의 행동에 나설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 한국에서도 영화계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중 ‘남배우 A 성폭력 사건’은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항소심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었으며 오는 24일 오전 11시에는 여배우 측에서 유죄 판결을 환영하는 기자 회견을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일다
새해가 됐다고 조금 들떴다. 어제나 오늘이나 크게 다를 것 없는 일상에서 새로운 다짐을 할 에너지를 얻는 것만으로도 그저 기분이 좋다. 올해는 ‘조금 너그러워지기’를 목표로 삼았다. 특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너그러워져야겠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고 난 뒤 많은 사람들이 일상 관계에서의 걸림 때문에 피로를 호소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몇 가지 단어로 사람들을 지레 판단하고 마음속으로 벽을 치기 바빴다. 물론, 때에 따라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어느 정도 관계 차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터지는 사건사고에 질려버린 상태이다 보니,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조차 섣불리 판단하는 경우가 꽤 있었던 거다. ‘그래서 넌 내 편이야? 적이야?’라는 식의 단순한 이분법에 갇혀 상대를 감별하기 바빴다. 조금 너그러워져야겠다고 생각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성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실제로 점수를 매기는 건 아니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플러스에서 시작해서 빼기를 한다면, 남성은 마이너스에서 시작해서 더하기를 하는 식이랄까. 새로 시작한 그림 수업 선생님은 기혼 남성이었다.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치는 거의 없었고, 수업에 대한 기대치만 이만큼 올라간 상태였다. 어쨌든 돈을 내고 듣는 수업이니 얻어갈 것만 얻어 가면 그만이지 않겠나 했다. 수업은 ‘생각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가지치기를 해서 이미지화 시킬 것인가’가 주된 내용이었다. 사회적 이슈나 개인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자리. 선생님이 먼저 젠더 문제를 거론했다. 본인은 잘 알지 못하지만 아내분과 경험을 나누면서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런 경험을 하는 남성들이야 많겠지만, 그 태도에서 묻어나오는 조심스러움이 보였다.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공감하며, 처방이 아니라 경험을 나누어주는 사람이었다. 본인의 경험이 꼭 답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이상적인 ‘완성형’의 상태는 없는 것 같다며, 늘 ‘과정형’으로 살아갈 뿐이라는 선생님의 말에 위안을 얻었다. 흔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그림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말이니까. ‘진짜 페미니스트’같은 건 없고 그저 다들 조금씩 배우고 행동할 뿐이다. 돌아보면 나도 얼마나 무지했었나. 미래에서 보면 지금도 무지한 상태겠지만. 너그러워진다는 건, 예민해지기를 포기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중무장하기보단 계속 성찰하고 그것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나는 별로인 인간이지만 어제보단 덜 별로인 인간이고 싶다. ▶ 어제보다 오늘 더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일다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왜 그리 바빠?” 사람들과 일정을 정할 때마다, 나는 안 돼는 날이 많다. 그들은 내가 다시 많은 일을 하며 지내는 건 아닌지 염려하지만, 전혀 그런 건 아니다. 나도 이따금 의아했다. 출퇴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지. 이제 더 이상 일상적으로 병원에 가느라 시간을 많이 쓰는 것도 아니고, 예전만큼 매일 여러 보조치료법을 하지도 않는다. 누워있는 시간도 예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그런데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 올 한해 극장 한번 간적 없고, 이따금 시집을 읽는 것 외엔 소설을 마지막으로 읽은 게 언제인지도 아득하다. 집에 티비를 놓고 살지 않으니 티비 앞에서 무심코 버리는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자주 만나거나 활동을 제대로 많이 하는 것도, 생계를 위해 돈을 변변히 버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늘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드는 걸까, 도대체 나의 시간은 다 어디로 가는 거지? ▶ 내가 몇 시에 무엇을 했는지를 기록한 시계부. ⓒ이미지 제작: 조짱 시계부(時計簿)를 쓰다 예전에 이따금 쓰던 시계부(時計簿: 실제로 이런 말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얼마큼의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 기록하는 것을 시계부라고 부른다)를 다시 써봤다. 매일 몇 시에 뭘 했는지 기록해 봤지만 새삼스러울 게 없다. 대체로의 일상은 비슷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아침을 먹고, 집 앞 산길을 걷거나 요가를 하러 간다. 다녀와서 점심을 해먹고, 잠시 낮잠을 자거나 쉬다가 텃밭이나 도서관에 간다. 저녁에 집에 오면 간단히 반찬을 만들어 놓거나 청소, 세탁 등의 집안일을 한다. 그렇게 하루가 저문다. 이렇게 보면 마치 한가로운 전원생활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회의 한번 하자는데, 밥 한번 먹자는데 왜 그렇게 일정 정하기 어려운 걸까 궁금해 한다. 하지만 이 한가로워 보이는 일정들은 마치 직장이나 병원 가는 일처럼,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다. 언젠가부터 담이 자주 결리는데, 아침 스트레칭을 하지 않거나, 요가를 일주일 넘게 안가면 거의 반드시 담이 결린다. 허리나 목, 등에 담이 결리면 짧게는 삼사 일이지만 길면 열흘 넘게 고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여러 병원을 전전했지만 치료가 안돼서 아주 오랫동안 고생하던 고질적 출혈이 요가를 하면서부터 많이 안정됐다. 요가는 전문 치료행위가 아니지만, 내게 요가는 병원 가는 행위에 준할 만큼 중요한 일정이 되었다. 아침에 산길을 걷는 것도 그렇다. 8월 중순이 지나면 수면양말과 극세사 이불 없이는 잠을 못잘 만큼 추위에 약한 몸이 되었고 면역력도 무척 떨어졌다. 그런 나에게 내과의사는 물론 한의사도 생활처방으로 제시한 게, 아침햇살 속에서 가볍게 땀이 날 만큼 산길을 걷는 일이다. 사실 이건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아침의 나무 냄새와 햇살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그리고 예전처럼 자주가진 않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가는 텃밭도 빼놓을 수 없다. 애초 텃밭을 가꾸는 건 아프기 전에도 즐기던 취미였다. 하지만 아프고 난 뒤 더 어려워진 경제상황에서 텃밭의 작물은 유용했다. 매우 작은 텃밭이지만, 작물을 다양하게 잘 선택하면 봄부터 초가을까지 장보는 비용이 확실히 줄었다. 엥겔지수가 절대적으로 높은 나로서는 텃밭의 수확물이 작으나마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 ▶ 일주일에 한두 번은 텃밭에 간다.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비트. ⓒ사진: 여은 또한 도서관에 가는 것도 조금 다르지만 의무적 노력이다. 나에게 도서관은 노동공간으로서 회의 준비나 강의, 원고 등의 작업을 하는 곳이다. 물론 집에서도 가능하지만, 집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주 누워있게 된다. 늘 몸이 무겁다보니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어진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현기증 등이 많이 안정된 상태라 적절한 쉼 이상의 시간을 누워 있는 건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오히려 해롭다. 그래서 특별히 컨디션이 난조인 시기가 아닌 한, 운동이나 식사 후에 일정하게 알람을 맞춰 놓고 누워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눕지 않으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차라리 도서관 같은 공간에 내 몸을 두는 게 좋다. 이처럼 마치 여가 생활의 일부처럼 보이는 산책, 요가, 텃밭, 도서관 등의 일상이 현재의 나에겐 필수적 시간들이다. 마치 건강한 이들은 비타민제를 건강보조제로 선택적으로 먹지만, 어떤 환자들은 비타민제를 치료약제의 일부로 의무적으로 복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특히 사람들과 일정을 정할 때마다 한 번씩 애를 먹는 건, 몇 가지 생활 규칙 때문에 그렇다. 병원에 가면 늘 피곤하지 않게 생활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듣기 때문에 생활 조절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투병과 완치사이 경계의 몸인 만큼, 약간의 사회생활을 병행하면서도 피곤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건강과 사회생활의 양립 가능한 삶을 모색하면서 여러 실험을 해보는데, 그 중 하나가 외부 일정을 정하는 규칙이다. 이를테면 외부 일정은 기본적으로 하루에 한 개 이상은 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녁에 회의가 있는 날은 전날과 다음날 외부 일정은 정하지 않는다. 낮 일정이라고 해도 강의가 있다면, 역시 전날과 다음날 외부 일정을 정하지 않는다. 그 외에 친구를 만나 가볍게 밥을 먹는 일정이라고 해도 다음날은 외부 일정을 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능한 이런 모든 외부 일정은 최대 주 3회 이하로만 정한다. 게다가 그마저도 체력이 더 저조해지는 시기, 그러니까 비가 잦은 때라거나 나의 월경주기가 예상되는 때는 외부 일정을 가능한 잡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실제로는 정말 며칠 남지 않는다. 누군가는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냐고 묻기도 하는데, 나는 워낙 전근대적 생활 습관을 갖고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일을 다 마치고서야 비로소 피로감과 몸이 아픈 게 느껴지고, 밥 때가 지나고 잘 때가 지났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 중독형 근대적 인간. 아프게 된 뒤로는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어떤 일에 마음을 빼앗기면 금세 몸의 소리를 완전히 잊고, 일정을 촘촘히 잡는 습관에 끌려가는 것을 몇 번 경험했다. 그 뒤로는 아예 규칙을 정했다. 아픈 사람이 겪는 세 가지 빈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고, 다들 시간에 여유가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보다시피 바쁘게 생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바쁘고 피곤하지 않게 생활하기 위해 규칙을 정하고, 일상을 산다. 그런데도 스스로 이토록 시간빈곤에 시달린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시계부를 한참 적고, 각 일상의 의미를 적어보며 비로소 알게 됐다. 나는 재량시간(discretionary time)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재량시간을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사용할지에 대한 통제권, 선택권, 자기결정권으로 정의한다고 할 때, 나는 활용가능한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사용에 대한 통제력과 자기결정권이 부족하다. 즉, 직장인의 시간이 SNS와 통신기술의 발달로 퇴근 이후는 물론 주말까지 근무시간으로 확장되어 버렸고, 결혼한 여성들의 시간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 가족의 공유재처럼 운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떠올려 보면 쉽다. 아픈 사람의 시간은 질병에게 언제든 침범당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일상적으로 질병과 공유해야만 하는 시간이라는 의미다. ▶ 재량 시간의 빈곤은 삶의 주도권 빈곤으로 이어진다. ⓒ이미지 출처: Pixabay 시간도 일종의 자원이다. 소득과 마찬가지로 시간은 개인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한 요소다. 그리고 수명은 곧 시간이다. 시간을 얼마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느냐는 곧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원하는 바대로 만들어 갈수 있느냐의 문제다. 결국 시간 사용의 자율성, 재량 시간의 양이 빈곤하다는 것은 개인의 역량을 발전시키고 발현해 나갈 조건이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꾸려나갈 수 있는 힘이, 기회가 통제된다. 아픈 사람은 최소한 세 가지 빈곤을 겪는다. 첫 번째가 앞서 말한 시간 빈곤이다. 시간 빈곤은 삶의 주체성을 빈곤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누구나 알고 있듯 경제 빈곤이다. 아파서 일할 수 없는데, 아프기 때문에 의료비는 물론 생활 관리에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그래서 질병은 더 낮은 빈곤층으로 내려가는 가장 가파른 미끄럼틀이다. 세 번째는 관계 빈곤이다. 체력의 한계로 다양한 이들과 사회적 관계 맺는데 쓸 수 있는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하다. 또한 아픈 몸에 대한 무지가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피로감과 무엇보다 설명할 언어의 부재 때문에, 만남을 회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 ‘경계의 몸’이라는 네 글자 안에는 이런 삶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시간 빈곤자인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한 번씩 묻곤 한다. 너무나 많은 소중한 의미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내 몸이 질병을 소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질병과 내 몸을 공유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질병과 함께 사는 방법을 익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민과 감정을 언어화 해보는 과정이, 나는 물론 나와 같은 처지의 이들에게 위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아픈 몸을 설명할 언어를 길어 올리고 싶다. ‘건강한 삶’이나 ‘정상의 몸’에 가려진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지, 더 많은 주제로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 충동을 나와 같은 ‘동료’들이 함께 느끼길 바란다. 일다
어엿한 ‘한남’으로 성장한 동생은 가족들 중에 자기 혼자만 사회생활을 하는 줄 안다. 동생은 요즘 회사 술자리에 “괜히 무서워서” 여자 사원들은 끼워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애초에 술자리에서 찔릴만한 짓을 하는 남자들이 문제라고 했더니, 누나가 뭘 아냐며 되레 큰 소리다. 동생은 나를 보면 늘 한심하다는 투로 말한다. 누나랑은 말이 안 통한다며, 자기 할 말 다 하고 내 입을 막아버린다. 상대가 나를 한심하게 볼 땐 나도 똑같이 상대를 한심하게 봐주는 게 내가 터득한 요령이다. 동생과 이미 많은 대화 시도 끝에 도출해낸 결론이다.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정보를 알려줘 봤자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내가 지난번에 술 마시러 후문 갔다가 역대급 진상을 봤잖아.”“왜? 어땠는데?”“키는 150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잔데, 머리를 모히칸(머리의 좌우를 바싹 깎거나 삭발을 하고 가운데 부분만 기르는 헤어스타일)으로 밀고 꽁지를 묶었더라고. 피어싱도 엄청 많이 하고, 타투도 엄청 하고. 길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욕을 막 하는데… 어휴, 그런 애는 또 처음 봤어.” 이야기를 듣다보니 동생이 묘사한 사람의 외모가 꼭 동생 같다. 모히칸 꽁지머리에 타투를 하고, 길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친구들과 욕하는 동생 모습이 그려졌다. “야, 그거 완전 너 아니냐. 피어싱만 하면 딱 너네!” 나는 일부러 더 크게 과장하며 말했다. “아니, 길에서 엄청 시끄럽게 자기 친구들이랑 욕을 막 하더라니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동생은 그 여자가 시끄럽게 욕하는 것이 싫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냥 젊은 여자가 ‘그 꼴’로, 담배까지 피우며, 욕설을 하는 게 맘에 안 들었던 거겠지. 살면서 길에서 시끄럽게 욕하는 남자를 백 번도 넘게 봤다. 하지만 동생은 한 번도 그들을 진상이라며 지목한 적이 없다. 옆에서 엄마가 “완전 미친애네” 라며 대화를 받아주니 동생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어쩜 저렇게 착실하게 ‘한남’으로 커버렸을까. ▶ 내로남불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일다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5년 9개월 전, 나는 셀프 디펜스(self-defence)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세르비아에 갔다. 그 다음 해에는 이스라엘과 체코에 가서 여성을 위한 셀프 디펜스 지도자가 됐고. 작년에는 독일에 가서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셀프 디펜스 지도자가 됐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셀프 디펜스가 좋은 운동이고 또 즐거운 활동이기 때문이다. 지난 4년여 동안 내 수업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왜 셀프 디펜스를 배우러 왔는지, 배워보니 어떤지, 어떤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11월 25일~12월 10일)을 앞두고 그들을 인터뷰하고, 셀프 디펜스 기술들도 소개하고자 한다. 첫 인터뷰는 지리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3개월 동안 에서 셀프 디펜스를 배우고 활동한 이지현 씨의 이야기다. ▶ 지리산 2박3일 셀프 디펜스 캠프 ⓒ스쿨오브무브먼트 Q. 왜 스쿨오브무브먼트에 왔나요? 올해 5월, 지리산 셀프 디펜스 캠프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요. 그때 수업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격렬하게 움직이고 뛰는 운동을 한 건데 저하고 잘 맞는 것 같았어요. 제가 다니는 실상사 작은학교 언니네(고등학교에 해당) 2년차가 되면, 미래시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3개월 동안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을 경험하는 과정이 있어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데, 선생님이 계신 스쿨오브무브먼트가 생각났어요. 또 학교 선생님들이 “너 캠프 때 보니까 소질 있더라! 최연소 셀프 디펜스 강사가 되어보는 것 어때?”라고 장난처럼 말씀하셨던 것도 있었고요. 원래는 생협이나 공정무역과 관계된 곳, 이런 익숙한 곳에 가고 싶었는데요. 선생님이 제가 전화해서 미래시민교육을 설명하자마자 “그래? 와!”라고 하셔서 꼭 가야할 것만 같았어요. 셀프 디펜스를 배워두면 좋을 것 같고, 제 친구가 에서 ‘인천 초등생 살인 사건’을 다룬 것을 보고 엄청 불안해하고 무서워하는 거예요. 그래서 셀프 디펜스를 더 배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 펀치와 킥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스쿨오브무브먼트 Q. 크라브 마가(Krav Maga) 수업은 어떻습니까?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사촌오빠들 하고 부딪치고 달려들고 도망가고 때리고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뭘 특별히 배운 것은 없어요. 미국에 잠깐 있을 때 운동 삼아 처음으로 태권도 도장에 한 번 갔었는데, 사범님이 잘 한다고 칭찬해주신 경험이 있는 정도고요. 복싱을 배워보고 싶었는데,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데서 배우려고 생각하니까 좀 두려워서 시도를 못 했어요. 제가 스쿨오브무브먼트에 있는 크라브 마가 수업 포함해서 요가랑 툴 수업까지 세 가지 수업을 모두 다 듣잖아요. 제일 좋아하는 수업은 힘 안 들고 노곤노곤하게 몸 풀고 시원하게 스트레칭 하는 요가고요. 재미로 치면 크라브 마가 수업이 제일 재미있어요. 성취감이 최고예요. 두 시간 넘게 승급 심사를 보고 P1레벨을 땄는데요. 아직 초보지만, 뭔가 성장한 느낌이 들어요. 뭐랄까? 예전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직 힘들지만 수업이 다 끝나고도 정신 차리고 잘 서있을 수 있어요. 아하하. 그리고 펀치랑 킥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선생님도 잘 한다고 칭찬해주시니까 좋고요. 지금까지 못 해왔던 것이 지금 때를 만나서 확 터진 것 같아요! ▶ 운동을 하고 살아야 해요. ⓒ스쿨오브무브먼트 Q. 앞으로의 계획은요? 우선 학교를 졸업하고요. 그 다음은 졸업한 후에 생각해보려고요. ‘최연소 셀프 디펜스 강사’가 돼볼까 하는 마음은 일단 접어놓았어요. 지금은 감히 그런 생각이 안 들어요. ‘P1레벨 올라가는 것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강사까지 어떻게 가나…’ 싶어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계속 크라브 마가를 배우는 것은 괜찮은 것 같아요. 몸에도 좋고, 재미도 있고, 유용하고, 소질도 있는 것 같고요. 그리고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안 되고 힘들던 것이 돼요. 척추롤링을 할 때 발이 바닥에 안 닿았는데, 이제는 닿고요. 푸쉬업도 좋아요. 아직 완전한 푸쉬업을 하진 못해서 도구를 사용해서 하고 있지만, 푸쉬업을 하면 뿌듯함이 생겨요. 사람들이 3개월 동안 뭐 했냐? 그러면 나는 근육이 생겼다, 이럴 수 있는 거죠. 선생님은 푸쉬업을 잘 하시잖아요. 푸쉬업 하는 여자 멋있어요. 사람은 운동하고 살아야 해요. 안 하고 살면 위험합니다. 테크닉: 인사이드 디펜스 누군가를 상대할 때 손을 들고 있을 것을 권한다. 손이 올라가 있을 때 방어가 훨씬 더 신속하고 유리하다. 여기서는 일단 밀치는 공격을 막고, (때리거나 차는) 반격이 없는 소프트 솔루션을 소개한다. 멱살을 잡거나 이마를 툭툭 치는 것처럼 방어자의 손 안쪽으로 들어오는 공격이라면 어느 것이든 막을 수 있는 기술이다. 이 인사이드 디펜스 기술에 때리거나 차는 반격 기술을 함께 쓰면, 칼로 찌르는 공격과 같은 심각한 위험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하드 솔루션으로도 이어지니 꼭 이 테크닉을 알아두면 좋겠다. (관련칼럼:꼭 알아야 할 다섯 가지 ‘반격’ 테크닉 ildaro.com/7897) ▶ 인사이드 디펜스 ⓒ스쿨오브무브먼트 ① 자연스러운 반응에서 출발해 공격적으로 → 갑자기 벌레가 얼굴 앞으로 날아들면, 우리는 벌레를 쫓기 위해 자연스럽게 손사래를 친다. 그런 반응을 기초로 더 강력한 공격 같은 방어를 하는 것이 목표다. ② 안쪽으로 막는 방어 → 손바닥의 아랫부분으로 강하게 때린다는 느낌으로 위험한 것을 내 몸에서 멀리 대각선 앞으로 보낸다. 손목을 위로 당기고 손가락 끝이 위를 향하게 한다. 그러면 더 넓고 안전하게 막을 수 있다. ③ 바디 디펜스 → 손으로 방어하면서 거의 동시에 공격자의 공격 방향에서 빠져나온다. 우선, 행동에 집중하고 나중에 말한다. 즉 먼저 막는 육체적 테크닉에 집중하고, 거리나 각도 상으로 멀어진 다음에 언어 테크닉을 사용한다. “하지 마세요.” “저리 가세요.” “하지 마!” “저리 가!” 등. 왜냐하면 말과 행동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이다. ※ 언어 테크닉의 기본 사항• 경어 사용• 상대에게 ‘어떻게’(해야 하는 지)를 짧고 분명하게 말해주기• 강약 변화는 상황에 맞게(주로 처음에 강하게 그 다음 약하게, 타이르듯) 상대에게서 멀어질 때는 아래 영상처럼 거리와 각도 상으로 모두 멀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 인사이드 디펜스 영상 http://bit.ly/2zbmkkf 일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비혼여성들이 부모나 조부모, 형제를 간병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개인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는 가족을 간병했거나 간병 중에 있는 비혼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공유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98세 아버지, 89세 어머니와 동거한 지 12년째 “이러다가 아버지가 막내를 잡겠소.” 얼마 전 새벽 3시, 화장실에서 일을 보시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를 낑낑대며 침대까지 옮긴 뒤, 귀가 먼 아버지를 향해 내가 뱉어낸 말이다. 며칠 째 밤만 되면 주무시지 않고 휘청거리는 몸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는 일은 고역이었다. 마치 밤낮이 바뀐 아이처럼 아버지는 낮에는 자고 밤에는 네다섯 번 화장실에 갔다. 거기다 밤낮으로 달달한 설탕물을 입에 달고 사시니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 설탕물을 드시면 몸에 좋지 않아요. 저녁에는 넘어질 수 있으니 물은 조금만 드세요.” 말씀드려보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아버지는 늙음을 무기 삼아 당신이 드시고 싶은 것은 드시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어 하신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릴 게 뭐냐는 것이다. ▶ 올해 98세인 아버지는 10년 전 뇌경색으로 뇌의 50%쯤 기능을 상실했다. ⓒ김수연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과 12년째 함께 살고 있는 48세의 비혼의 직장인 여성이다. 올해 우리 아버지는 98세가 되셨고, 어머니는 89세가 되셨다. 아버지는 10년 전에 뇌경색으로 뇌의 50%쯤 기능을 상실해서 5년을 넘기지 못하실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프셨다가 다시 소생하기를 반복하면서 10년을 버티고 계신다. 이 10년 동안 아버지는 여덟 자식들을 모아놓고 두 번 유언을 하셨고, 덤으로 치매 진단도 받았다. 어머니는 2년 전, 내가 2개월간의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 첫 치매 증세를 보이며 나를 맞이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를 떠맡길 수 없다며 당신의 건강을 자발적으로 돌보신다. 아버지 돌보는 일도 본인이 도맡아 하려 하신다. 그나마 내가 숨 쉬고 살 수 있는 이유다. -시간적, 공간적 자유를 제약받는다는 것 어머니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로하신 부모와 함께 사는 일은 쉽지가 않다.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자유를 제약받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에 대한 계획을 적어도 하나쯤은 세우고 산다. 이 계획들 속에는 다른 나라에 가서 장기적으로 정착을 하여 어떤 일을 해야 한다거나, 여행을 한다거나,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하는 일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연로한 부모와 함께 살게 되면 그런 계획들은 부모의 건강이나 심리상태와 연결되고야 만다. 나는 오랫동안 3세계에 관심을 가져왔고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 일과 관련된 국가에서의 사업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곳에서 오래 머물며 일을 관리하고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많아지고 있다. 나도 점점 나이도 들어가니 지금부터 열심히 해도 어느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가끔은 조바심이 나곤 한다. 나는 올해 잡혀있던 두 차례의 해외 출장을 모두 취소해야만 했다. 모두 아버지 때문이었다. 종종 ‘늙은 부모를 버리고 간다’며 노여워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출장 가방을 싸는 것을 보고는 그날부터 누워버렸다. 다음날부터는 열이 났다. 누워있는 아버지의 대소변을 어머니와 함께 받아내야 했다. ▶ 노년의 부모를 돌보는 가장 큰 어려움은 내 삶의 자유를 제약받는 일이다. ⓒ김수연 노년의 부모와 함께 살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내 삶의 제약은 자유의 제한 이외에도 심리적, 경제적, 육체적 어려움이 따른다. 그중 적어도 나에게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체력의 한계다. 아무리 100세를 앞둔 늙은 몸이지만 아흔여덟 아버지의 몸은 무겁다. 어머니와 함께지만 아버지의 두 다리를 움직여 기저귀를 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침대 아래로 미끄러진 노인을 위쪽으로 움직이는 일도, 목욕시키는 일도. 화장실과 침대 사이 몇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공간에 널부러진 아버지의 몸뚱이를 일으켜 세우는 일은 산을 움직이는 것처럼 힘들다.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는 나, 팔과 어깨가 항상 아픈 엄마. 우리는 아버지와 실랑이를 한 다음에 둘 다 초주검이 되고야 만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치 아기처럼 자기 욕구가 해결되면 그만이다. 그래서 가끔은, 오래도록 생명을 붙잡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아버지가 이제는 그만 돌아가셔도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의 죽음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고 믿는 고루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버지를 돌보는 이유 최근 어머니는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큰 오빠 부부에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 결심을 한 ‘막내딸에게 잘하라’고 하셨다. 결국 혼자 사는 막내조카가 큰 오빠 부부를 모셔야 하고, 오빠 부부가 아프면 직장을 그만 두고라도 그 아이가 돌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잘하라는 조언이었다.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일단은 좀 짜증이 몰려왔다. 오빠 부부가 돌아간 다음 어머니에게 ‘왜 벌써부터 조카의 발목을 잡으려 하느냐’고 말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자기 삶이 없고, 결혼한 사람만 자기 삶이 있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가끔 우리 어머니는 열 자식 한 부모 못 모신다는 옛 말이 맞다고 말씀하신다. 주변 노인들의 자식 이야기를 통해서 노인들의 슬픔에 공감하시기도 하고, 나를 포함해 당신 자식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시는 듯하다. 그러나 노인 부모와 사는 내 안에도 그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늙은 어머니에게 굳이 반론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 나는 노인들도 자기가 살았던 익숙한 환경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김수연 어떤 사람은 나의 불편하고 제약된 내 삶을 보며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은 어떤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으니까. 일부 가족들도 나에게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를 어떤 시설에 보낼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나의 결정은 당신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일 뿐, 내가 특별히 노년을 요양원이나 관련 시설에서 보내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효심이 출중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나는 아버지가 노인으로서, 세상의 약자 중에 약자라고 보고 있다. 아버지는 나의 부모인 동시에, 약자가 된 세상의 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애정과 돌봄을 받으며 자라나듯이, 노인들도 자기가 살았던 익숙한 환경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존재라고 믿는다. 그리고 약한 자를 보살피는 것이 나 자신의 인간성을 지키는 길이라고도 믿고 있다. 몇 년 전, 큰어머님이 돌아가시는 일이 있었다. 누구보다도 건강해서 사람들은 모두 장수하실 거라고 했지만 큰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었다. 큰어머니는 슬하에 육남매를 두고 계셨다. 자식들은 모두 자수성가해서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큰어머니가 병을 오래 앓게 되자 선뜻 모시겠다고 하는 이는 없었다. 자식들은 저마다 어머니를 모시지 못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급기야는 부모를 모시는 일로 자기들끼리 언쟁을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큰어머니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스스로 삶을 끝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생산할 수 없는 삶은 무의미한 것인가? 나는 98세의 아버지를 곁에서 돌보며, 죽음 앞에 홀로서야 하는 한 인간에게 연민을 느낀다. 사실 이 연민은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최근 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유사 이래 가장 근원적 공포와 불안을 가져온 죽음까지도 정복하려 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미래에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그것이 신의 축복일지 저주일지 나는 모르겠다. 어쨌든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큰 화두다. 그리고 그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인 노년이라는 이름은 우리의 인생주기에서 항상 불안과 공포로 다가온다. 성자로 불렸던 톨스토이 선생마저도 노년에 대하여 “성자도 견디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지의 죽음을 홀로 마주보아야 하는 두려움과 외로움, 자기가 인생을 걸고 쌓아올린 모든 것과의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아마도 노년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알 수 없는 것일 게다. 최근 아버지의 잦은 병치레를 간병하며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나는 아프면 요양원으로 갈란다” 라고 몇 날을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그 말을 반복하는 어머니에게서 나는 불안과 공포를 보았다. 내가 절대 시설에 보내지 않겠다고 몇 번을 다짐한 후에야 어머니는 안심한 듯 그 말씀을 멈추었다. 우리들의 세계는 급격하게 노령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생산의 가치를 최고의 것으로 생각하는 근대인류 앞에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어 무가치하게 보이는 노인들의 생이 쌓여가고 있다. 생산의 가치로만 그들의 노년을 바라보는 것은 젊은 우리의 삶도 역시 생산의 가치로만 바라본다는 뜻일 것이다. 생산할 수 없다면 인간의 삶은 무의미한 것인가? 그들의 고독한 시간은 머지않아 바로 우리의 시간이 된다. 일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잇을님은 세상에 대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퀴어-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 완전변태에 속해있습니다. -편집자 주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 게임은 시작됐다”는 오는 10월 21일 토요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9월 13일, 대회 장소인 양천구민체육센터가 공사를 이유로 급작스레 대관을 취소했다. 부랴부랴 다시 동대문구체육관으로 장소를 재확정하고 모든 대관 절차를 마친 것이 9월 19일이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또 다시 대관을 취소당했다. 9월 25일, 동대문구체육관 측은 대회를 주관하는 퀴어여성네트워크에 여러 차례 전화했다. 체육관에 항의전화가 들어오고 있으며 미풍양속, 안전관리상의 위해를 이유로 대관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동대문구체육관은 천장 누수공사를 10월 21일에 하게 되었다며 대관을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 체육관은 미풍양속, 안전관리상의 위해를 이유로 대관을 취소할 수 있다고 했다. ⓒ퀴어여성네트워크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 주최 측은 전화로 여러 차례 설득했고,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협의하기 위해 대관담당자, 체육관팀장과 면담도 진행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변명과 ‘죄송합니다’, ‘양해 바랍니다’와 같이 오직 알맹이 없는 사과뿐이었다. 체육대회를 하려 했을 뿐 체육대회였다. 여성성소수자들이 평소 스포츠를 즐기는 경우가 많고, 여성 스포츠선수, 커밍아웃한 스포츠선수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높다는 걸 알기에 즐거운 자리가 될 거라고 기대했다. 배드민턴, 풋살, 계주, 자유투대회 등을 하려고 했을 따름이다. 소규모의 준비인원으로 대회를 꾸리는 것이 버겁기는 했지만, 체육대회 앞에 연이은 ‘대관취소’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신체활동, 즉 몸을 쓰고, 내던지고, 구르고, 때로는 상대의 몸을 밀치거나 집어던지는 경험이 비(非)남성에게 긍정적이라는 것을 나는 자기방어훈련 프로그램에 여러 번 참여하며 느꼈다. 스포츠는 ‘여자가 어떻게 남자와 같이 경쟁할 수 있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작동하는 영역이지만,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기량을 늘릴 수 있고 경쟁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동시에 던진다. 그래서 여성들은 ‘약하게 태어났다’는, 신체적 성차를 강조하는 말 때문에 스포츠에 대한 의욕을 놓기도 하지만,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신체적 능력을 확인하고 증진시켜 보고자 하는 강한 의욕을 갖기도 한다. 특히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젠더표현 등으로 인해 조금 더 체육에 접근하기 어려웠다는 경험을 주위에서 여러 차례 들은 바 있기에,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가 기대됐다. 흔히 ‘여성들의 공간’이면 여성성소수자들도 편안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여성들의 공간이 ‘내 정체성과 젠더표현에 자연스럽고 솔직할 수 있음’을 약속하지는 않는다. ‘여성’ 대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주저하거나 불편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내 스스로도 그랬다. 여성성소수자들에게 가장 즐거울 수 있고, 누구나 같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행사를 희망했다. ▶ 여성들은 ‘약하다’는 인식 때문에 스포츠와 멀어지기도 하지만, 스포츠를 통해 신체적 능력을 확인하고 증진시키려는 강한 의욕을 갖기도 한다. (이미지: pixabay.com) 그런 체육관, 우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소수자가 전체인구 ‘10명 중 1명’이라거나 AB형만큼 많다고 이야기되기까지 하는데도(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운동선수를 찾기 어렵다. 또 있다 하더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실마리’가 너무 적다. 한국은 커밍아웃한 운동선수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미디어가 성소수자 운동선수들을 어떻게 보도할까? 그래서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 이후 장래에는 국제적 성소수자 체육대회에 출전 팀을 내자는 꿈을 꿨다. 얼마나 행복한 꿈인가? 멋진 첫 시작을 모금을 통해 해보겠다는데 대관취소로 걷어차 버리는 동대문구를 이해할 수 없다. 생활체육진흥법 제3조(국민의 생활체육 권리)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생활체육에 관하여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아니하고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너무나 그렇다. 하다하다 공차는 것까지 차별하다니.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는 2015년과 2016년 가을에 진행된, 여성성소수자 말하기 행사를 생활체육 형식으로 변주한 기획이다. 이를 주관하는 퀴어여성네트워크는 여성가족부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응하는 ‘성평등 바로잡기’ 활동 일환으로 “2015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를 마친 뒤 지속적 활동을 고민하며 만든 연대체다. 여성성소수자의 다양한 목소리로 성평등과 성소수자 인권, 여성주의 운동을 연결해나가고자 하는 지향을 가지고, 봄이면 무지개색 ‘성소수자 인권 없이는 성평등도 없습니다’ 피켓을 달고 100명 이상이 마라톤에 함께 참여하고, 가을이면 여성성소수자 가시화를 위한 200여명 규모의 행사를 연다. 그리고뜻밖에 올해는, 궐기대회도 하고 체육대회도 하게 되었다. 동대문구체육관의 대관취소에 분노하는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가 10월 18일 저녁7시에 열린다(장소는 추후 공지). 그리고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는 연내에 더 좋은 장소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체육관, 우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만약 천장에서 누수가 일어나는데 겨울에 접어들도록 공사를 미룬 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더 그런 체육관에서 우리의 중요한 첫 체육대회를 치르고 싶지 않다. ※ 퀴어여성네트워크-페이스북 facebook.com/queerwomen -트위터 @queerwomennw-전화 02-3141-9069-이메일 queerwomenkr@gmail.com 일다
※ 는 가족을 간병했거나 간병 중에 있는 비혼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10회에 걸쳐 보도하였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숨을 못 쉬게 되면 인공호흡기를 꽂아드릴까요?’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토혈을 하고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간 것은 지난 2월의 일이다. 이 사건은 90세는 물론, 100세도 너끈히 사시겠다고 믿었던 가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뭐든 너무 잘 드셔서 80이 넘은 고령이라는 사실을 잊고 아무 음식이나 드시게 했던 우리의 책임이 컸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조직검사를 통해 위암 판정을 받았다. 갑자기 아버지 일로 의논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산처럼 밀려왔다. 수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향후 아버지의 간호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문제 앞에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이 놓였다. 그동안 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진지하게 나누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 오고 나서야 나는 그중 한 가지 질문을 아버지께 드렸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아버지, 만약에 아버지가 너무 위독해져서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인공호흡기나 영양튜브 같은 것을 꽂아드릴까요?” 그러자 아버지는 분명하게 “싫다!” 하셨다. 당신 스스로 숨을 쉴 수 있을 때까지만 사시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이후에 바로 암 진단을 받았다. ▶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 가셨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정인진 암 수술도, 추가 정밀검사도 거부하다 아버지가 위암 진단을 받고 나서도 가족들이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와 다섯 자녀들은 과연 수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암세포가 다른 부위로 전이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추가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너무나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아버지를 위한다고 생각하면서 내놓는 의견이었지만, 그 방식이 다들 달랐다. 이러다간 제대로 뜻을 모으지 못한 채 배가 산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형제자매들이 각자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중단시키고, 원칙 하나만 정하자고 제안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정에 무조건 따르자는 게 그것이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아버지의 인생이고, 조금 넓게는 아버지와 반백년 넘게 동고동락해온 어머니, 두 분의 인생이니 두 분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날 밤이었나 보다. 자녀들의 입장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아버지께 당신의 현재 상태를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두 분은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셨다. 그날 밤 두 분이 나눈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저 아버지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정성껏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셨다고 했다. 아버지와 이별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술도, 더 이상의 추가 정밀검사도 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병원 측에 전했다. 그러자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며 아버지를 퇴원시키라고 했다. 수술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장에 있는 출혈조차 잡아주지 않고 퇴원을 종용했다. 그러면서 “수술을 하지 않으면 다시 토혈을 할 수 있고, 그걸로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어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현대 의학이 위장의 염증으로 인해 발생한 출혈을 수술 말고는 멈추게 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로선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으로 이전 신청하다 그렇게 위암 수술을 선택하지 않은 아버지는 병원에서 일주일간 입원하고 퇴원하셨다. 그러나 그날부터는 통증으로 괴로워하셨다. 퇴원한지 삼사 일이 지날 무렵, 부모님 댁에서 하룻밤을 보낸 나는 옆에서 아버지가 통증에 시달리는 것을 지켜보게 되었다. 이렇게 견디게 할 일이 아니었다. 이빨을 딱딱 부딪쳐가며 괴로워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보자, 당장 조치를 취해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날이 밝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내과에서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당장 고통을 잠재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더는 해줄 것이 없다는 내과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로 아버지를 이전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호스피스’는 임종기 환자가 좀 더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료시스템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말기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 말기에 해당하는 환자들이 호스피스 의료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치료가 아닌 고통을 감소시켜줄 목적의 처치인 ‘완화의료’가 결합되어, ‘호스피스 완화의료’라는 독립된 병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질환을 가진 환자들 중 더이상 공격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면, 병원에서 발급하는 진단서를 가지고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원이나 병동으로 이전 신청을 할 수 있다. 아버지의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닐 때,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더 사시도록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돌아가시도록’ 뛰어다니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의료화된 현대 사회에서 ‘잘 죽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걸 깨닫는 순간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었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고통이나 삶의 질에는 관심이 없고 돈이 되는 치료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의구심이 들었다. 수술도, 추가 정밀검사도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때, 그 환자는 상품가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 아버지가 이용하는 호스피스병동 풍경 ⓒ정인진 아버지의 대리인이 되다 마침, 아버지가 위암을 진단받은 병원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가 잘 되어 있기로 유명한 병원이었다. 드디어 호스피스 완화의료 담당 의사와 면담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수술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고통을 덜 느끼면서 편안하게 죽음까지 이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의사는 우선 집으로 방문해 환자와 면담을 할 것이며, 그 뒤에는 환자의 상황에 따라 의료진이 집으로 정기적인 왕진을 갈 거라고 말했다. 의료진이 집으로 방문할 거라는 소식에 엄마도, 나도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마치 구원자가 나타난 기분이었다고 하셨다. 호스피스병동의 담당의사와 면담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음날 바로 의료진들이 아버지의 상태를 점검하러 집으로 왔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전해들은 바로는 먼저 수술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환자의 자발적인 선택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담당의사와 환자의 단독 면담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버지는 의사 앞에서 더욱 단호하게 수술에 대해 거부 의사를 표했다. 의사가 “할아버지, 수술하면 더 사실 수 있는데, 왜 안 하신다고 했어요?” 하고 물으니, 아버지는 “살만큼 살았습니다” 하셨단다. 아버지는 집에서 임종 시까지 있고 싶다는 의견도 밝히셨다. 그리고 나중에 의식이 혼미해서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될 때 당신을 대신할 대리인으로 누굴 삼겠느냐는 질문에, 또박또박 분명한 어조로 ‘둘째딸’인 나를 지목하셨다. 나는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대리인이 되었다. 나중에 왜 나를 대리인으로 호명했냐고 여쭈었더니 아버지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가장 잘 하잖아!” 사실 아버지가 나를 대리인으로 삼은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내가 한 노력이 아버지의 바람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고는 조금 안도했다. 혹여, 아버지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기 때문이다. 죽음 워크숍에서 배운 것들 그러나 호스피스병동 측의 방문을 받은 다음날, 위의 출혈을 잡지 못한 상태로 있던 아버지는 다시 토혈을 하고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당시는 늦은 밤이었는데, 호스피스병동에서 담당의사가 달려와 아버지를 직접 살펴주셨다. 그리고 ‘제발 이번 한번만 살려 달라’ 매달리는 어머니의 소원대로 즉시 입원실로 옮겨 치료에 들어갔다. 이후 호스피스병동에서는 아버지를 꼬박 40일을 입원시켜 위의 출혈을 잡았다. 암수술을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내과의사의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해 있는 중에도 아버지는 매일매일 바꿔가며 오는 자원봉사자들과 꽃 심기, 공작, 음악 감상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다. 상주해 있는 간병인들의 친절한 보살핌은 아버지를 편안하게 해주었지만, 무엇보다 옆에서 간병하는 가족들의 수고를 많이 덜어 주었다. 환자의 가족들도 휴식이 필요하다며, 좀 쉬었다 오라고 어머니를 먼저 채근한 사람은 병원 측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인연을 맺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진들과 연결이 된 이후에는 모든 상황이 편안해졌다.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했지만,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지도 모를 큰 사건 앞에서 비교적 차분하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지난겨울에 열린 ‘죽음워크숍’에 참가한 덕분이다. ’죽음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무엇보다 가슴 깊이 새긴 것은 ‘우리는 모두 죽을 존재’라는 사실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는 마치 죽지 않을 존재인 것처럼 삶에 매달리고 있다. 더욱이 이런 심리와 의료시스템이 잘 만나서, 오늘날 사람들은 정말 잘 죽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사전 의료의향서’를 꼭 작성해 두어서, 의식이 없는 상황이 도래했을 때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을 미리 해놓아야 한다는 것도 이 워크숍을 통해 알았다. 무엇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있다는 것과, 그에 관한 정보를 얻은 것은 정말 좋았다. 아버지 일과 관련해, 재빨리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생각해낼 수 있었으니까. ▶ 지난 봄 호스피스병동에서 ‘가족 봄나들이’ 갔을 때 부모님 모습 ⓒ정인진 간병을 전담하지 않고 분담하기 아버지가 호스피스병동에 40일 입원해 있는 동안, 주변 침상에서는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바로는 호스피스병동에서 뵌 분들은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하나같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계셨다. 그것은 ‘죽음워크숍’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직접 호스피스병동에서 목격한 것이다. 그분들의 모습이 어찌나 평안한지, 아버지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임종을 맞는 것을 당신의 상황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집보다 여기가 좋다!”고 얘기하실 정도였다. 호스피스병동에서 살아서 퇴원한 사람은 한명도 보지 못한 가운데, 아버지는 많이 회복되어 주변의 축하를 받으며 퇴원을 하셨다. 기적이라고, 축복이라고 하나같이 축하해주셨다. 퇴원한 뒤에는 일주일에 한 번 간호사와 의사가 번갈아가며 집으로 방문했다. 가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방문해 아버지의 상태를 점검해주시고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 위장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죽과 다진 반찬들로 식사를 준비해주신다. 어찌나 아버지를 잘 돌보셨던지, 예전에 비해 살은 좀 빠졌지만 현재 진통제 없이 생활할 만큼 아버지 위장의 염증은 진정되었다. 아버지의 간병과 관련해서는 어머니가 책임지고 계시며, 다섯 자녀들이 시간이 되는 대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부모님은 현재 남동생 집에서 살고 있지만, 남동생 내외는 맞벌이를 해서 아버지 곁에 매달려 있을 처지가 아니다. 또 네 명의 여자형제들은 비혼, 이혼, 기혼 등 다양한 상황에 있지만 누구 한 명이 일방적으로 간병을 떠맡지는 않는다. 다들 직장이 있고 할일이 있는 이유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드나들면서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를 간병하고 있다. 물론, 어머니 역시 연로하신 상태라 간병인의 도움을 추가로 받고 있다. 어머니가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 오면, 다섯 형제들은 시간을 분배해 아버지를 간호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마찰 없이 의논이 잘 되고 있다. 단 하루를 더 살더라도 평안하게 만약 호스피스병동에 문의하지 않고 수술을 했더라면, 또 그 후 항암치료를 받았더라면, 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죽으려고, 잘 죽으려고 한 선택이 살 길을 밝혀준 것이다. 평소 죽음과 관련한 성찰의 기회를 외면하지 않은 것도 중요했다. 내가 죽음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존재를 모르는 건 물론이고,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사람과 어떻게 동반해야 할지 몰라 실수를 엄청 많이 하고 후회도 많이 했을 것이다. 물론, 처음으로 경험하는 가까운 사람의 임종을 앞두고 나는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그래도 죽음워크숍에서 배운 원칙과 자세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아버지를 대하고 있다. 실제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누구라도 시간을 내어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권하게 된다. 그 방법은 독서일 수도 있고, 나처럼 워크숍에 참여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 간단하게는 하루 이벤트라고 하더라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상태와는 분명히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현재 근육도 많이 빠지고, 움직임도 둔해지고,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실 때도 생겼다. 위암 때문이라기보다 노쇠로 인한 다양한 증상들이 늘고 있다. 우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발짝 한 발짝 아버지의 죽음이 다가옴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더 살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속에서 아버지가 단 하루를 더 살더라도 그날이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비혼여성들이 부모나 조부모, 형제를 간병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개인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는 가족을 간병했거나 간병 중에 있는 비혼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공유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드라마에서나 보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50세의 비혼(非婚), 그리고 가난한 프리랜서 예술가. 누가 나를 소개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두 줄로 요약되는 ‘나’라는 사람. 20대 초반부터 집을 나와 독립했다가 여의치 않아서 다시 들어가기를 네 차례, 이젠 그냥 안면몰수하고 부모님 집에 얹혀서 살고 있다. 그러나 얹혀살고 있다고 말하기가 무색하게 점점 더해지는 부모라는 무게…. 어머니가 60세가 되던 해 뇌졸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던 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교대로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신다. 지금부터 십 몇 년 전의 일이다. 그 날은 집에 어머니와 나 둘만 있었다. 나는 거실에 있었는데 갑자기 안방의 문이 덜컥 열리면서 어머니가 푹 쓰러지셨다. “혜원아,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러시면서. 순간 나는 패닉에 빠졌다. 119에 전화해서 비명을 지르듯이 벌벌 떨며 주소를 불러줬다. 손이 덜덜 떨려서 휴대폰을 떨어뜨려가면서 오빠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응급차가 왔고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새벽에 도착한 응급실은 야전병원 같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와본 응급실은 의사와 간호사, 환자들과 보호자들로 북새통이었다. 세상에나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다니, 충격이었다. 안양에 사는 오빠가 가장 일찍 도착해서 오빠와 같이 이 검사 저 검사하는 곳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밤새 돌아다녔다. 뇌출혈이었다. 아침쯤 되니 여행 갔던 아버지와 분당 살던 여동생도 도착했다. 우리 식구들이 모두 원무과로 불려가서 수술 중 환자가 사망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류에 네 번이나 싸인을 했다. 그리고 수술비와 입원비를 낼 수 있는 상태인지, 직업이며 수입이며 조사를 당했다. ‘아, 이래서 돈 없으면 수술도 못 받는다 했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날이 밝고, 식구들과 병원에 찾아와준 가까운 친척들도 모두 일단은 돌아가고 나만 남았다.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의 가족대기실 복도에 앉아 있었다. 희미한 불빛 아래 멍하니 앉아있는데 모든 게 꿈 속 같았고 현실감이 없이 몽롱했다. ‘이게 지금 나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란 말인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정말 나에게 일어났구나, 엄마는 정말로 돌아가시는 것일까…’ 그 순간, 공포와 두려움이 물밀듯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복받쳤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사나, 나는…. 엄마 없이 나는 어떻게 산단 말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놀라운 순간이었다. 돌아가실지도 모를 엄마가 아니라, 엄마 없이 살아갈 내 걱정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오후가 되어 아버지가 오시고, 나는 눈을 붙이러 집으로 향했다. 욕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욕조 옆 타일바닥에 어머니의 양말이 놓여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가슴에서 또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너무 가엽고 가여웠다. 우리 엄마,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는 건가. 가슴이 미어진다는 게 어떤 건지 이때 절실하게 경험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애간장이 타 들어가던 일곱 시간여의 수술과 두 달여의 입원 기간이 이어졌다. 중환자실에 들어가서 엄마를 면회하던 시간 역시 잊히지 않는 순간이다. 머리는 삭발이 된 채 온몸의 여기저기에 고무호스가 연결되어 있고 의식이 없이 시체처럼 누워있는 엄마. 그 모습을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서 비틀거리며 다가갔다가, 도저히 똑바로 볼 수가 없어서 곧바로 병실을 나와 버렸다. 그리곤 또 오열…. 이때에 거의 트라우마에 가까운 충격을 받은 듯하다. 안 그래도 싫어했던 병원이 정말 쳐다보기도 싫어졌으니. 지금도 대학병원 응급실, 중환자실, 입원실 모두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된 ‘간병’이라는 노동 ▶ 엄마가 몸이 안 좋은 후로 본인이 직접 장 봐다가 이것저것 해 드시는 아빠. 예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래도 엄마를 들들 볶아서 머리 염색은 꼭 집에서 하신다. 원래는 백발인 머리가 까맣다. ⓒ이혜원 어쨌건 두 달간의 입원 기간 동안 간병은 아주 자연스럽게 내 몫이 되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내가 결혼을 안 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오빠는 딸 하나를 둔 가장이고, 새 언니는 그 아이를 돌봐야 하고 집도 멀고 몸도 약해서 대중교통으로는 여기까지 오고 가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고, 여동생도 어린 아이가 둘이고 집도 멀었다. 결국 오빠와 여동생은 종종 병원에 왔다 갔고, 나는 아버지와 교대로 밤새 병실을 지켰다. (그래도 거의 내가 엄마 곁에 있었다.) 부모님의 간병에 대한 부담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에게 온 것에 대해, 나는 오빠와 여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들도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때로는 서로 곱지 않은 시선과 침묵이 오가긴 하지만 ‘너는 왜 이렇게 늦게 온 건데?’ ‘너만 바쁘냐?’ ‘그럼 돈이라도 더 내든가.’ 따위의 말들은 삼키고 그냥 서로 모른척하고 낮은 목소리로 할 말만 하고 지내는 정도이다. 어머니의 머리에는 호치키스 같은 가는 쇠심이 박혀 있었다. 엄마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도 모두 같은 처지였다. 그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었고, 계속 이어지는 크고 작은 검사들을 받으러 휠체어에 탄 엄마를 모시고 이곳저곳 다니는 것도 많이 힘들었다. 그 넓은 병원을 이리저리 물어가며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원 초에는 소변줄에 연결된 소변통을 계속 갈고 24시간 옆에 붙어서 이런 저런 심부름과 화장실 모시고 가기, 머리 감기기, 몸 씻기기 등등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밤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아침 일곱 시에 도는 의사들의 회진을 보는 것도 고역이었다. 의사들이 회진을 돌 때 보호자들은 병실 밖 복도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마치 군부대에 시찰 나온 사령관 같았다. 제일 앞에서 온몸으로 엄격함과 권위의 아우라를 내뿜는 신경외과 과장이 거침없이 휘젓고 걸어오고, 그 옆과 뒤에서 일반 의사들과 레지던트들이 뛰듯이 걸으며 이것저것 설명을 했다. 아, 맞다. 촌지를 줬던 것도 기억난다. 회진을 돌 때, 과장은 엄마에게 몸 상태에 대해 별 말도 해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곤 했다. 엄마가 뭔가를 물어봐도 듣는 둥 마는 둥 대꾸도 안하고 지나치는데, 뒷주머니에 뭔가를 찔러주면 다르다는 얘기를 주위에서 해주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우리는 뭔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 아버지가 봉투를 레지던트 편으로 과장에게 전달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회진에서는 엄마가 질문을 하지도 않았는데 엄마 어깨를 툭툭 치며 뭔가 위로의 말 한 마디를 하고 지나갔다고 한다. 기가 막혔다. 그 위로 한 마디가 150만 원 짜리였다. 때때로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건물 밖을 천천히 걷다 보면 응급실에서 들려오는 고함치는 소리, 울부짖는 소리에 기분이 참 심난했던 기억도 있다. 이렇게 두 달이 지나서 엄마는 퇴원을 했다. 하지만 머리 속 혈관이 복잡한 형태로 터지는 바람에 안정이 되면 또 한 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 후로 또 수술과 입원…. ‘너 없으면 어떡하니’ 분노와 연민이 교차하는 일상 그 후론 이제 아버지의 차례였다. 4~5년 전 새벽에 간질 발작으로 응급실행 이후, 후두암으로 입원과 수술이 이어졌다. 나는 계속 병간호를 전담하다시피 해야 했다. 지금은 어머니가 신장, 심혈관 이상과 그에 따른 부정맥까지 질병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어서 이제는 입술이 늘 파란색으로 들떠있고 5분도 걷기 힘든 상태이다. 이러는 가운데 부모와 나의 관계는 갈수록 애증으로 얽히고설켰다. ‘너하고 같이 사니 좋다’ 라든가 ‘너 없으면 우리끼리 어떻게 살았겠느냐’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쪼그라들어서 나마저 부정맥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다. 나에 대한 부모의 의존의 말과 태도들을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내가 고양이를 집에 데려와서 정을 주기 시작하자 두 분은 고양이에 대해 질투 섞인 말들과 태도를 보였는데, 그 역시도 참기 힘들었다. 한편으로는 안됐고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싶기도 한데, 또 마음 한 구석에서는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강하게 소리치고 있으니 내 마음은 지진이 났다가 다시 봉합되었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 김치냉장고 안에 있는 각종 건강식품들. 부모님은 건강식품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이혜원 얼마 전 어머니가 패혈증 증세를 보며 또 응급실에 갔을 때, 놀랍게도 이젠 병원 응급실 정도는 별것이 아니게 느껴졌다. 심지어 부모님이 당장 돌아가신다 해도 그다지 놀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쩌면 ‘침착하게 잘 보내드려야지’ 라고 평소 많이 다짐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의존적인 모습과 당당하게 ‘이젠 너에게 해 준만큼 받아야겠다’는 태도, 또 어떤 때는 눈물로 약한 모습을 보이며 한없이 초라해지는 모습을 번갈아 보이는 엄마. 그럴 때마다 분노가 치밀다가 연민에 빠지다가 하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 적응이 안 될 지경이다. 그때마다 ‘의연하자, 의연하자’ 속으로 계속 외친다. 내게 의존하는 부모,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나 이런 일들을 겪으며 나는 두 가지 결심을 하게 됐다. 첫째는 병원에서 죽지 않겠다는 것, 둘째는 비혼 여성들과 길냥이들의 주거공동체를 꾸리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마를린 호리스 감독, 1995)을 다시 보게 되었다. 기억 어딘가에 남아서 종종 떠오르곤 하던 영화였다. 영화에서 안토니아가 의도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안토니아의 집에는 동네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그 사람들을 모두 품어주던 안토니아와 딸들. 그리고 그 집안에 계속 딸들이 태어나는 설정도 감독의 의도이지 않았을까 싶다. 내게는 그것이 고대의 모계 공동체의 상징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비혼 여성들과 길냥이들의 주거 공동체의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마당을 개방해서 길냥이 들의 급식소를 만들고 실내의 방 하나는 아픈 아이들을 위한 격리 공간으로, 계단이나 옥상 같은 공용 공간에는 길냥이들이 마음껏 뒹굴고 그루밍하고 늘어져 낮잠도 자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래, 인생 뭐 있나.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서 무언가 남기고 떠나야지 하는 다짐. 이 도시에서 발붙일 곳 없이 쫓겨 다니고 피해 다니며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생명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어가는 외롭고 고독한 생명들. 그들에게 나의 고독과 외로움이 투사된 것일까. 나는 길고양이들이 너무나 가엾고,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그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 내가 키우는 고양이 ⓒ이혜원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혹은 제도적으로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은 나에게 참 먼 나라 일처럼 느껴진다. 왠지 나의 영역이 아닌 것 같은…. 그래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뭔가를 바란다면, 의료만이라도 무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 누구도 나에게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의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이러한 부담과 책임은 견디기 힘들다. 나 역시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 그저 태어나서 적당히 살다가 질병이 생기면 그것대로 받아들이고 갈 때가 되었다 싶으면 적당히 또 가고…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그저 작고 소박하게, 춤추고 즐기며 살고 싶을 뿐이다. 십 수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의료비는 이젠 평소에도 관리 차원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집의 규모를 줄여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모아두었던 돈도 거의 바닥이 나고 지금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그 돈으로 병원비를 댄다고 들었다. 나도 나름대로 힘닿는 대로 약간의 돈을 보태기는 했으나 그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부모님이 나에게 의존하는 것에는 경제적인 부분도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기에, 내가 더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것 같다. 사실 나는 내 고양이들 병원비 대는 것만도 벅찬 상황이다. 길고양이들 사료가 배달 오면 엄마 몰래 들여다 놓아야 한다. 사료가 올 때마다 “그 돈 있으면 나나 줘라” 하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하니 말이다. 지금의 나에겐 ‘때’–엄마의 불안한 정서와 하나가 되어 정신적 노예로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자각과 함께 분리 독립하려는-가 오기를 기다리며 그저 참고 견디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가족에게는 답이 있을 수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아” 하면 “어” 하고 맞받아 쳤지만 이젠 그저 침묵한다.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이라는 깨달음이 온 후부터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 외엔 없다는 것을. 어떤 일이건 닥치면 헤쳐 나가고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며 사는 것. 이것이 내가 부모를 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래도 부모님인데 왜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만약 내가 다시 독립을 하게 된다면 여동생 가족(여동생과 조카 둘)이 들어와 살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 내 마음이 좀 놓일 텐데…. 그런데 조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오빠네와 같이 살게 될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새언니가 시부모와 같이 사는 걸 극도로 싫어하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찌 될는지… 일다
※ 이 기사의 필자 나하님은 연세대학교 페미니즘 학회 Alice와 실천단 ‘97년생 김나영’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쌍년이 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원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쟁취하려 하고야 마는 년이 있다. 오랜 세월동안 ‘쌍년’이란 단어는 남성에게 있어선 기피하고 혐오하면서도 결국엔 구애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 이들을, 여성에게는 워너비면서도 닮지 말아야 하는 이들을 의미했다. 최근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이 단어를 ‘자신의 욕망을 발산하는 주체적 여성상’으로 정의하며 전유하기 시작했다. ‘원하는 모든 걸 실천하려는 여성’으로 역사를 걸어온 수많은 인물들이 ‘쌍년’의 칭호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착안해, 이 언어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미의 부정성에 대해 의문을 던진 것이다. 이에 대한 반영으로 트위터에서는 “#나는_쌍년이다”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하기도 했으며, 최근 저스툰에서 (민서영 작가)이라는 만화가 성황리에 연재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최근 이슈들에 힘입은 페미니즘 입문자라 하더라도, 사실 여성이라면 누구든 속으로 싫어할 수밖에 없는 ‘쌍년’의 기호가 아직 유효한 것 같다. 이때의 ‘쌍년’은 남성들의 사랑을 얻기 위해 온갖 수단들을 사용하는 여성들을 지칭한다. 그 남성들은 다른 여성들에게도 흠모의 대상이다. 그녀들은 경쟁자 여성을 알게 모르게 험담하기도 하고, 순진한 척 연기하며 남성들이 원할 만한 말과 행동들을 계산 하에 진행한다. 많은 남성들이 이에 매료되므로 ‘쌍년’을 제외한 다른 여성들은 그녀를 페어플레이 하지 않는 분탕종자, 자신들의 적으로 여기게 된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여자의 적은 여자’(여적여) 구도이다. ▶ 댓글 내용. 일상 속 여적여 구도를 엿볼 수 있다. 네이버 웹툰에서 기맹기 작가가 연재중인 에서도 이 구도를 스토리플롯에 차용한다. 성형 끝에 ‘고친 듯이’ 예뻐진 주인공 강미래는 캠퍼스 첫날 신입생 환영회에서 쌀쌀맞지만 잘생긴 남자주인공 도경석과 자연미인 현수아를 만난다. 당연하게도 경석은 이후 주인공과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는데, 이 때 수아는 미래를 은근히 공격하고 경석에게 아양을 떠는 등 ‘쌍년(혹은 여우)짓’을 하며 둘 사이의 사랑을 방해한다. 그런데 이러한 통속적 문법들을 기반으로 한 만화는 의외의 비범성을 드러낸다. 캠퍼스 생활, 이를 넘어 사회 전체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여성혐오의 맥락들을 잡아내고, 이에 등장인물들이 사이다 서사를 생성하는 것이다. 미래는 ‘강남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외모에 대한 경멸어린 시선들을 받고 편견과 차별적 언행과 위협의 대상이 된다. 다른 여성 등장인물들 역시 비슷한 경험들을 한다. 그러나 수많은 에피소드 내에서 주인공 미래는 둔해서 눈치 채지 못하거나,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성격 때문에 불합리한 상황들에 항변하지 못한다. 여기서 비련의 여주인공 대신 화를 내주는 건 까칠하고 눈치 빠른 도경석이다. 수많은 사이다 서사는 그의 질주를 통해 완성된다. 남성권력을 기반으로 부당한 일들에 목소리를 내는 ‘왕자님’이라는 점에서 도경석은 (특히 여성)독자들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그가 가장 빛나는 부분은 자신에게 엉기고 미래를 괴롭히는 수아에게 사이다 발언을 날릴 때이다. 약자의 편에 선 경석은 왕자님, 즉 선을 대표하게 되고 수아는 반대급부의 ‘마녀’, 즉 악이 된다. 이로 인해 페미니즘 스토리 플롯 내부에서도 오랫동안 수아는 여성독자들에게 있어 같은 억압을 받는 여성이기보단 ‘악녀’, ‘발암인간’, ‘쌍년’이었다. ⓒ기맹기 글 그림 중에서. 수아를 제일 싫어하는 건 도경수 이는 작가가 통속 연애담 장르의 주류 작법으로 작품 뼈대를 세웠고, 독자들이 이를 받아들였던 것과 관련이 있다. 많은 여성향 로맨스물에서 여성주인공에게 시련을 주는 것은 주인공을 시기, 질투하는 악녀 캐릭터이다. 왜 수많은 여성들을 위한 동화들에서, 공주는 ‘왕자님’을 추구하고 ‘마녀’에게 위협당했을까? 적어도 여성주의 관점에서 이는 그녀들을 더욱 유순하게 만들려는 시도이다.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팥쥐가 아닌, 인내하며 세상이 요구하는 과업들을 착실히 수행하는 콩쥐가 되라고. 그러면 부유하고 잘생긴 고을 원님이 너를 공주 취급하며 데려가줄 것이라고 주입한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가정 내에서 남성의 전유물로서, 수동적 객체로 인형처럼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 한편, 거의 모든 사회적 수행에서 남성의 열화판(하위호환)으로 여겨진다. 남성 혼자 생계 부양이 불가한 대다수 서민가정에선 일-가사 양립을 강요받으면서도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는 적어도 사회에서 가정 내 재생산(출산과 양육을 통한 노동력 확충)을 활성화하는 데에 도움이 되므로 묵과되거나 오히려 장려되었다. 이때 여성들은 자신의 경제적 책임자이자 보호자로 서있을 남성에게 간택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른 여성들은 자신의 라이벌이지, 연대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여적여 구도, 그 속에 내포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이런 식으로 사회구성원들에게 주입된다. 의 독자와 작가 역시 이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때 작가는 여적여 구도를 극사실주의적 방식으로 재현하며 불합리에 대한 떡밥을 깔지만, 독자들은 이를 통속적인 선-악 구도의 일환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문제의식을 포착하지 못하고, 포착하더라도 간헐적이다. 이에 따라 독자들은 웹툰 속 여성들이 겪는 수많은 억압들을 목도함에도 불구하고 ‘쌍년’ 수아에게만큼은 동정심을 좀처럼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적의 처단이란 명목 하에 통쾌해한다. 수아 역시 가부장제 사회 속 피해자라는 사실은 최근 에피소드(74화 )에 이르러서야 주목된다. ⓒ기맹기 글 그림 중에서. 미래는 수아가 곧 자신임을 발견했다. 이젠 적어도 거시적 차원에서 수아의 모든 ‘쌍년짓’들이 사회적 산물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외모 하나로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대우가 달라진다. 몸 구석구석이 해부되어 값어치 매겨진다. 수동적이고 상냥한 척 하지 않으면 욕먹는다. 결국 같은 과의 가장 잘생기고 따기 힘든 별(남성)이 나의 것이 되었을 때, 혹은 내가 그 별의 ‘것’이 되었을 때 자신의 지위가 올라갈 것을, 더 안전해질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이 모든 강박들에 얽매이는 게 수아만의 일은 아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이런 지표들에 익숙하며, 비슷하게 사고한다. 가장 둔하고 순한 주인공 미래조차 루키즘(lookism, 외모지상주의)을 내면화한 채 주변 여성들의 외모에 점수매기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 둘은 사실 웹툰 속 그 어느 캐릭터보다도 닮아있다. 이는 이어지는 전개, 먹토 에피소드(56화 ) 이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수아와 미래는 사회가 강요한 강박관념으로 자신의 몸을 묶는다는 점에서 너무나 비슷하고, 결국 서로의 공명을 알아챈다. 이에 미래는 수아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하고 계속 챙기며, 수아는 미래에 대한 (아마도 원래는 애정과 동질감이었을) 이유 모를 증오심과 괴롭히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둘 사이의 긴장 속에서 경석이 하는 일이라곤 미래의 관심을 오지랖이라 말하고 수아의 악녀성을 단죄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기도 하며, 사회가 그 두 사람의 관계성을 파괴하는 방식이다. ⓒ기맹기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맞잡는 것을 선택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이다. “왜 우리, 왜 살 찌지도 않았는데 빼고, 심지어 토하고, 칼 대고, 예쁘려고 노력하고, 얼굴로 나누고! 우리끼리 싸우고! 왜 그래야 하는 거야! 우리 탓 아니잖아. 그렇게 불행하게 살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게 이상한 거잖아. 그러니까 난 이제 어떻게 하면 진짜로 행복할 수 있는지를 생각할거야.” -76화 中에서 작가는 이제 자신의 패를 거의 꺼냈다. 이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여성들이 ‘미래’였고 따라서 많은 독자들이 미래에게 이입할 수 있었지만, 한편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수아’일 수밖에 없다는 외침이다. 가부장제 내의 프레임 속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사람을 욕하는 우리는, 곧 우리에게 맞닥뜨려질 불가피한 생존을 위한 선택들로 인해 같은 여성들에게 공격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조차 ‘우리(여성)의 탓’이 아니다. 따라서 그녀들을 진정으로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해야만 한다. 되살린 쌍년의 기록 속에서, 수많은 순정만화 속의 독자들은 이젠 자신들의 가장 통쾌해야 할, 그녀가 가장 지독하게 몰락하는 장면에서 눈물 흘려야 하며, 분명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녀들의 연대를 향한 여정을 바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이가현님은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머리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거지 ▶ 삭발 후 벌써 머리가 이만큼 자랐습니다. ⓒ이가현 지난 번 삭발을 한 후로 머리가 제법 자랐다. 이제는 샴푸를 반 정도 짜서 머리를 감는다. 잠을 잘못 자면 머리가 뻗쳐서 다소 귀여운 모습이 되기도 한다. 같이 삭발을 했던 한 친구는 머리가 좀 자라자 옆머리를 다시 시원하게 밀었다. 눈썹도 같이 정리해서 한결 강렬한 인상이 되었다. 요새 알바를 하러 갈 때마다 먼저 출근한 직원으로부터 듣는 인사말은 “머리가 많이 자랐네요”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 머리카락의 성장 과정에 대해 나에게 친히 알려준다. 나는 이제 ‘머리가 많이 길었죠?’ 라고 먼저 묻기도 하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모자를 쓰고 나가야 할지 말아야할 지를 고민하고 있다. 오히려 대머리였을 때는 덜 한 고민이었다. 머리카락이 자랄수록 머리통이 더 커 보인다는 생각도 들고, 머리가 조금 자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삭발일 때보다 오히려 더 ‘남성’같이(?) 행동하게 되었다. 이 느낌을 남성적이라고 해야 할지, 중성적이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걸음걸이는 좀 더 건들거리며 걷고, 표정은 더 무표정에 가까워졌다. 삭발한 머리보다 조금 자란 짧은 머리가 더 남성성과 가깝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삭발하고 제법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나 스스로 머리가 길었을 때와는 다른 젠더로 행동하는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면 삭발을 하기 전에도 나는 머리스타일에 따라 옷차림과 행동과 말투를 조금씩 바꾸곤 했다. 긴 생머리에 앞머리를 내렸을 때에는 여성스럽고 청순하게, 앞머리가 없는 긴 머리를 했을 땐 좀 더 시크하게, 단발머리는 발랄하면서 똑 부러지게. 사람들이 내 외모를 보고 기대하는 바를 그대로 재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어떤 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게 네가 잘하는 거지’ 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저씨’, ‘쩍벌남’ 오해에 ‘출소했어요?’까지 ▶ 다양한 머리스타일에 옷차림과 행동까지 맞추려 노력했어요. 매순간 다른 사람인 것처럼 살았답니다. ⓒ이가현 한 번은 담배를 피우러 나간 룸메이트를 따라 나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저 멀리서 담배를 피던 룸메이트는 이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당연히 나를 보고 오는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앞을 지나쳐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기분이 안 좋은가보다 생각했다. 내가 집으로 들어갔더니 방에 있던 그 룸메이트가 갑자기 놀라면서 “언니, 화장실에 있는 거 아니었어?”라고 반문했다. “응? 아니, 나 밖에 있었잖아!” “에? 언니 화장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룸메이트는 멀리서 나를 보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가, 오히려 가까이서 내 모습을 보고는 ‘옆집 아저씨가 팬티만 입고 나와 있네’라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나는 그 때 빨간색 반팔 티셔츠와 여름용 체크반바지 잠옷을 입고 서 있었다. 나는 정말 놀라버렸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가까이서 봤을 때 오히려 남성같이 보였다니, 그냥 남자도 아니고 남성성의 대표 격인 ‘아저씨’같아 보였다니! 이 사건도 한동안 나에게 충격이 되었다. 멀리서 볼 때는 남자 같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가까이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삭발 초기 때 지하철 화장실에서 마주친 것과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의 반응이기에 더욱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에서는 억울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좌석에 앉을 때부터 왼쪽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분이 나와 몸이 닿기 싫다는 듯이 몸을 움츠리고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불편하신가보다 생각했지만 가다가 어느새 꾸벅꾸벅 졸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왼쪽 여성분께 몸이 기울게 되었는데, 그 분이 나의 몸을 확 밀쳐내는 바람에 졸음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그때 밀려오는 불쾌감과 억울한 감정은 내가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후 지하철에서 마주치고 몸이 닿았던 수많은 남성들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쩍벌남들 사이에 앉아서 똑같이 쩍벌을 해서 그들의 다리를 오므리게 만들었고, 간혹 술에 취해 나에게 기대는 남성들을 세게 밀쳐내기도 했다. 남성은 어느 공간이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싫었고, 그런 남성들의 자신감이 여성들의 공간을 침해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의도가 없는데 오해받은 것이 억울했지만, 그 여성분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어느 샌가 나도 다른 사람의 공간을 침해하면서 나의 공간을 자유롭게 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짧은 머리에 내 태도를 맞추면서 그런 행동까지 몸에 배었던 것일까? 내가 몸에 닿기만 해도 불쾌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그 느낌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이번 달에는 친구와 여행을 가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함께 타시는 강사 분께서 농담으로 “언제 출소했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웃음이 빵 터져서 한참을 웃고 나서 “여러 번 했죠” 라고 답했다.(진짜다) 강사 분은 이후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다. 다른 때 같으면 외모 평가라고 기분이 상했을 테지만, 높은 하늘을 기분 좋게 날고 있으니 마음이 넓어져 감사하다는 말로 넘어갔다. 짧은 머리가 감옥에서 출소한 여자 같아 보인다는 건 또 새삼스러웠다. ▶ 언제 출소했냐는 말을 듣고 웃음이 터진 가현. ⓒ이가현 추석연휴 단기 알바 구직을 포기한 이유 더 놀랍고 기분 상하는 일은 새로운 알바를 구하면서도 벌어졌다. 9월 한 달을 돈이 없어 시달리다가, 추석 때 단기 알바로 가난을 조금이나마 면해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알바몬 사이트에서 호텔 연회장 서빙 알바에 지원했다. 이전에도 해봤던 알바이기 때문에 경력도 있었고 팔 힘도 자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연회장 알바를 할 때 여성은 무조건 구두와 머리망을 착용하도록 되어있는데, 나처럼 머리가 짧은 여성도 지원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다. 알바를 구하기 위해 문자로 지원을 하며 짧은 머리도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담당자가 가능하다며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한껏 친절하게 미소 짓는 얼굴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죄송하지만 지원불가하세요” 였다. 담당자는 서빙이 아니라 주방 보조는 지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난 이미 기분이 상해서 다른 업무에 지원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서빙 알바도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곳에서 기물청소를 하는 업무에 지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담당자가 ‘기물청소는 남성들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했다. 여성이면 서빙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도 덧붙였다. 내가 머리가 짧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물으며 ‘내 머리는 거의 스포츠 머리’라고 설명하자, 담당자는 “그럼 현재 가능한 곳은 없네요” 라고 답변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자 옷을 입으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라는 이 애매한 나의 성별은 그저 겉모습으로만 판단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두 번째 지원한 곳은 사진도 보지 않고 나의 업무 가능 여부를 판단했다. ▶ 짧은 머리라 서빙 알바는 안 된다고 거절당했습니다. 추석 연휴엔 일하지 않고 쉬려구요. ⓒ이가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서빙은 단지 음식과 식기를 나르는 일이 아니었다. 여성이라면 서빙에서는 응당 여성성을 드러내며, 긴 머리와 머리망으로 손님들을 놀라지 않게 할 의무라도 있는 것 같다. 결국 길고 긴 추석 연휴 기간에 많고 많은 추석 단기 알바 중에서, 나의 시간과 머리 길이가 모두 맞는 알바를 찾기는 어려웠다. 나는 추석 연휴 동안 푹 쉬며 드라마나 보게 되었다. 사실 머리를 막 밀었을 때보다 머리가 어느 정도 자란 지금, 좀 더 새롭고 놀랍고 한편으로는 불쾌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 남성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머리와 어울리는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할 것 같고, 내 몸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모자로 머리를 가리고 싶지 않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너무나 촌스러워 보이기에 나의 고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머리카락은 단순히 외모를 넘어서는 무언가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일다
※ , 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두 평 남짓, 작지만 자기 위엄을 지닌 공간 “영혼의 샤워를 한 것 같아요.”“다른 세계로 들어갔다 나온 느낌이야!”“고요히 자신과 대면하는 공간입니다.” 새 집에서 잠시 머물거나 하룻밤을 지낸 친구나 지인들의 말이다. ▶ 방. 작지만 자기 위엄을 지닌 견고한 공간. ⓒ김혜련 2013년 8월 1일에 상량식을 올렸던 집이 2년 반쯤에 걸쳐서 완성되었다. 전체 7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공간이다. 화장실과 다락, 그 사이에 놓인 마루 공간과 밖에 놓인 누마루를 빼면 2평이 조금 넘는 방이다. 그런데, 이 작은 공간이 주는 느낌은 예사롭지 않다. 이 작은 집은 일상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안채가 생활공간으로서의 편안함과 소박함을 지니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지인들의 느낌이 말해주듯 이 공간은 종교적 공간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들어서면 신성성, 내재적 초월성을 느끼게 한다. 이런 느낌은 일상의 공간에서는 느끼기 어렵다. 신전이나 종교적 공간에 들어갔을 때의 느낌이다. 거대한 나무 밑에 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든다. 자신이 낯설어지는 느낌. 익숙한 자기로부터 자기가 낯설어질 때 존재의 신성성은 드러난다. 자기의 몸에서 나오는 새로운 느낌을 느낀다. 일상, 외부와 단절이 느껴질 때, 즉 공간 자체의 내면성이 드러날 때 이런 느낌이 온다. 그래서 성당 같은 공간은 동굴처럼 만든다. #도시아이들이 ‘꿈꾸었던 집’ 사실 이 집은 그런 목적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지어진 집이다. 요즘 우리들이 살아가는 익숙한 공간과 다른 이질(異質)성이야말로 이 공간의 특징이다. 골조와 비례미, 쓰인 재료들 모두 집의 성격을 드러내는데 기여한다. 이를테면 한지는 빛을 은은하게 흡수해서 머금고 있는 느낌을 준다. 빛을 반사하는 것과 머금는 것, 그 둘의 차이는 크다. 실크 벽지는 빛을 반사한다. 그때 우리는 그저 매끄러운 느낌을 가질 뿐이지만, 빛을 머금고 있을 땐 뭔가 신성하고 따뜻한 것에 자신이 담겨있는 느낌을 받는다. 이 집에 다양하게 구성된 비례미도 그렇다. 특히 동쪽 창의 비례미가 돋보이는데, 창문의 폭이나 크기에 따라 공간의 느낌은 많이 달라진다. 지금보다 조금 작아지면 답답해지고, 커지면 벽면의 분할 자체가 이상해진다. 창의 높이 또한 창 밖 풍경을 어느 정도 들어오게 할 건지 고민해서 결정된 위치다. ▶ 마루의 복도로 작은 공간에 깊이감이 생긴다. ⓒ김혜련 이 집의 독특한 구성 중 하나는 마루를 복도처럼 놓은 것인데, 전통 형식인 마루를 방으로 끌어들여 와 본 것이다. 복도로 인해 한 공간이 두 개의 공간으로 선명하게 분리되고 공간에 깊이감이 생긴다. 마루의 폭은 맞은 편 문의 창을 통해 방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끌어오는데 적합한 폭으로 맞추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한 것이다. 서울서 온 한 손님은 이 마루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지 이런 편지를 보냈다. “화장실 앞 작은 마루의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받는 곳은 다락이다. 다락을 계단처럼 이층으로 만들어 공간의 차별성이 생겨나, 작은 두 공간의 느낌이 각각 다르다. 다락의 창들은 그 위치와 크기, 높이가 여러 모로 배려된 것이다. 크기는 다락의 크기와 비례가 맞아야 하고, 위치나 높이는 바깥 풍경을 어느 곳에서 가장 잘 끌어들일 수 있을지 고민된 것이다. 한 여름에 자귀나무의 분홍빛 꽃이 이 창을 가득 채우면 다락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몸을 떨게 되는 공간이 된다. 어른이든 아이든 동굴 같은 이 공간을 좋아한다. “와아, 이 집은 꿈의 집이에요. 꼭 이런 집을 짓고 싶어요!~” 대안 초등학교 교사인 아들이 아이들과 ‘들살이’를 왔다.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들이 이 공간을 자신이 꿈꾸었던 공간이라고 말했을 때, 놀라웠다. 처음 보는 집의 형태고 불편한 구조일 수도 있는데, 아이들은 집에서 자유롭고 생기발랄했다. 인간의 유전자 속에 이런 원초적 공간의 원형이 각인되어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감실처럼 처리한 싱크대나 책꽂이는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지혜다. 그 공간들이 그냥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면 방의 크기는 지금보다 훨씬 협소해지고, 느낌 또한 지금과 달리 산만해졌을 게다. 작은 공간이 스스로의 위엄과 깊이를 드러내는 것은 이런 장치들이 고려된 결과다. 덧붙이고 싶고 장식하고 싶은 것을 계속 덜어낸, 극도로 절제된 공간이다. 절제된 단순함, 거기에서 어떤 신성함이 드러난다. 아무도 없는데도 아무렇게나 행동하게 되지 않고, 아무것이나 들여놓게 되지 않는다. 함부로 늘어놓게 되지도 않는다. 이 공간에서 나는 고요해지고, 산만하지 않고 차분해진다.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 집의 동굴 다락 ⓒ김혜련 #예쁘고 편리한 집에 살아도 곧 권태로워진다 “어떻게 하면 멋진 집을 지을 수 있을까?”“내가 원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 잘 모르겠어요. 평생 본 게 아파트니 집에 대한 상상력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요즘 들어 지인들에게서 부쩍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집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할 지 잘 모르겠다는 말이다. 여기저기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어울려 집을 짓는다는 이야기들도 간간이 듣는다. 그런데 그 지향이 ‘편리’나 ‘효율성’, ‘아기자기’나 ‘예쁜’, ‘세련된’ 수준을 넘지 못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권태롭고 지루해질 것이다. 일상의 휴식과 안락뿐 아니라 ‘정신성의 추구’라는 집의 개념이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는 공간이 들어올 때마다 신성성을 느끼게 한다면 늘 새로워질 수 있다. 일상 속에서 바(非)일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문득 낯설어지는 삶의 단절이 생겨난다. 그것이 안 되면 삶은 쉽게 지루한 일상으로 떨어지고 만다. 시간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무화(無化)되어간다. 아무리 장식을 해도 나른한 나태, ‘아무 것도 아님’으로 간다. ▶ 밖이면서 안인 공간 누마루 ⓒ김혜련 #‘삶의 경건함’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의 힘 “다녀오겠습니다.” 깊은 산에 들어갈 때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가슴에 손을 모아 허리를 숙이듯, 집에게 합장하고 허리를 숙인다. “참 이상해요. 이 공간은 사진을 찍게 되지 않네요. 법당에서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 것처럼 말이에요.” 민감한 후배의 감각대로 집은 평화와 안온의 공간일 뿐 아니라 ‘자기 예배의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우리 할머니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하루를 신성한 의식으로 시작했듯, 일상의 나날이 자기를 내적으로 초월해가는 형형(炯炯)한 날이 될 수 있다. 먼지처럼 하찮아지는 내 존재가 문득 ‘삶의 경건함’이라는 낯선 감각을 맞이하게 된다. 관념의 세계 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어 허무하기만 했던 그 감각 말이다. 방에 홀로 고요히 앉아있을 때, 깊은 밤 감나무 그림자가 달빛을 타고 흘러들어올 때, 새벽의 여명이 한지 창으로 어슴푸레 밝아올 때, 삶이 경건하다는 묵직하고도 감동스런 느낌에 젖는다. 풀풀 날아다니는 먼지 같은 생이 아니라 투명하게 살아있는 생생한 삶의 감각이다. 두 평밖에 안 되는, 작지만 자기 위엄을 지닌 공간의 놀라운 힘이다. 일다
군 소재지의 작은 중학교. 아니 규모가 아주 작은 편은 아니었다. 한 학년에 일곱 반, 한 반에 30~40명가량의 학생이 있었으니. 군 안에서도 읍내라고 불리는 도심부에 여자중학교라곤 이곳 딱 한 곳뿐이었다. 읍내에 있는 3~4개의 초등학교를 졸업한 여학생들은 그대로 이 중학교로 진학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은 서로 이름이나, 혹은 얼굴이라도 모르는 사이인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학교에선 어떤 소문이든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안 좋은 소문일수록 더 빨랐다. 누군가는 또래집단에서 튕겨나가기도 했다. 원체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던 나도 숨죽이며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간간히 몇 반 누구랑 몇 반 누가 사귄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면 ‘더럽다’거나, ‘게이는 괜찮지만 레즈는 싫다’는 등의 소리가 나왔다. 친구들은 손쉽게 나를 이성애자로 단정했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 아닌 노력을 해야 했다. 있지도 않은 이성의 이상형을 만든다든지, 별 관심도 없는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는 척 한다든지. 그 중 가장 신경이 쓰인 부분은 스킨십이었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정도의 스킨십이야 흔한 일이었지만, 나는 거의 질색하는 수준으로 스킨십을 싫어했다. 아니, 스킨십이 싫었다기보다는 나중에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 됐을 때 그들이 보일 반응이 두려웠다.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별 생각 없이 했던 스킨십이 성애적으로 해석될 것 같았다. ‘헐. 걔가 레즈라고? 나 걔랑 손잡은 적 있었는데!’ 하며 경멸하는 표정을 짓는 친구들 얼굴이 상상됐다. 이 모든 게 망상이라면 좋겠지만 아직 내가 겪지 않았을 뿐 실제로 발생하는 일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정체성을 잘 숨기며 사는 것뿐. 성인이 된 지금,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은 나를 존재 자체로 봐주었다. 나는 그래도 굳이 불필요한 터치는 하지 않았다. 지인들이 나를 멋대로 판단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지만, 이미 스킨십이라는 것은 나에게 어색한 무엇이 되어있었다. 스킨십을 꺼리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어딘가 삭막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렇다한들 어쩌겠는가. 태도를 바꿀만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지냈다. 스킨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건, 올해 열린 대구 퀴어문화축제에서다. 마냥 신나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성소수자 부모모임 부스 앞을 지나던 참이었다. “괜찮아요.” 대뜸 괜찮다며 팔을 벌리는 활동가 분에게 나도 모르게 다가갔다. 그 분은 나를 꼬옥 안아주며 ‘괜찮아’, ‘너의 존재 자체를 사랑한다’, ‘많이 힘들었지?’ 같은 말을 해주었다. 나는 그동안 크게 힘든 일도 없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사랑받아왔다고 생각했지만 그 한 번의 포옹이 주는 어떤 위안을 느꼈다.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환대였다. 모든 게 무장해제 되는,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은 느낌. 스킨십이 가지고 있는 힘이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냥 존재 자체로 환대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또 생각하게 된다.나는 타인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환대할 수 있을까. ▶ hug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일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비혼여성들이 부모나 조부모, 형제를 간병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개인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는 가족을 간병했거나 간병 중에 있는 비혼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공유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나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수년간 함께 지낸 경험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하려니 할 말이 너무 많아 걱정이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에 적어둔 글을 그대로 옮겨보자. 치매 할머니와 실랑이, 욕이 나왔다 2년인가 3년째. 할머니의 둘째 아들인 내 아빠는 너무 효자라 ‘요양원에 보내는 건 현대판 고려장’이라며 엄마와 나를 포함한 자식들의 눈치를 보면서도 할머니와 같이 지낸다.(끼고 산다?) 나는 부모님이 농사일로 바쁘실 때, 약속이 있어 외출하시는 경우에 그녀를 주시한다.(‘돌본다’라고 말하기는 거시기하다.) 그리고 목욕탕과 미장원을 출입시켜드리는 것이 내 업무다. 할머니는 TV 같은 것에 관심이 없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주간요양보호센터도 가지 못하고 있다. 정신 말짱할 때도 지나친 아낌병 때문에 인간관계 맺기가 불가하셨다고 하니 뭐(노인정 가서도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보일러 끄러 다니고, 얼마라도 돈을 내야 한다는 이유로 점심도 먹지 않고 귀가하셨더랬다) 덕분에 현재 대부분의 깨어 있는 시간엔 밭에서 일하는 아빠를 (강아지처럼) 쫓아다니거나 늘 뭔가를, 누군가를 찾는 것이 주 업무다. 그밖에 유일한 취미생활이라면 아주 가끔 부엌에서 호짝질(호작질)을 하는 것인데(화재를 우려해 일찌감치 가스렌지 연결을 끊어두었다) 그럴 때면 세제 같은 걸로 음식을 만들기도 하신다. (저번에 나는 주스인 줄 알고 비누인지 세제인지 알 수 없는 화학약품 든 것을 먹다 죽는 줄 알았다. 오늘은 보니 고이 그릇에 담아 뚜껑까지 덮어둔 토마토가 썩어가고 있어 코를 틀어막고 급히 화장실 변기에 쏟아버리고 왔다.) ▶ 그래도 걸어다니실 때 할머니 모습. 내가 집에 들어가자고 아무리 말해도 끄떡 안하다가 아빠가 부르며 손잡으니 못이긴 척 슬그머니 웃으며 쫄래쫄래. (2015년 1월 24일) ⓒ박소혜 가장 큰 문제는 여기가 당신 집이 아니라 생각하여 항상 다른 어딘가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며 우리더러 데려다 달라고 한다든지, 더 심각하게는 본인이 직접 나가는 거다. 가족들이 자전거와 차를 동원해 밖으로 나가 찾아온 경우는 셀 수도 없다. 동네 사람들이나 경찰의 신고로 데려온 적도 여러 번이다. 국가에서 지원해준다는 배회기(위치추적기)를 구해 목걸이처럼 걸어드리기도 하지만 매일 충전을 해야 하는 것이 번거롭고, 게다가 그마저 매번 할머니 당신이 여기저기 숨겨두는 바람에 사실 큰 쓸모가 없다.(할머니 당신의 조심스러운 성격과 마을공동체를 믿을 수밖에.) 나는 집에서 독립해서 나가 살고 싶지만 지금 현재로선 할머니 때문에 불가하다. 독립하지 못하는 다른 수많은 이유를 비겁하게 할머니 탓으로 뒤덮어 버리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할머니 때문에 못 나간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다. 며칠 전엔 아이를 키운다는 심정으로 할머니를 대하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기분이 좋을 때의 할머니는 상당히 귀엽기도 하다.(몇 주 전 목욕탕에 갔다가 전신 거울 속에 비친 당신을 보고 한참 대화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알 수 없는 가스 냄새를 풍기는 할머니를 자주 씻기고 속옷을 갈아입히자. 어린 여자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아이와 할머니의 차이점이 부각된다. 고집이 더 세고, 힘이 더 세다.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 어제 오후엔 난데없이 악마가 되어 못된 눈빛으로 내가 자기 돈을 가져갔다고 몰아세우며 돈 내놓으라고, “여기서 씻지 말고 느그 집 가서 씻으라”며 쏘아댔다. 나한테만이 아니고 엄마에게도 그랬다 그러고 옆집에서 무늬목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한테도 그랬는지 사장님이 전례 없이 엄마한테 짜증을 냈다 한다. 게다가 성장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절망적인 차이점이다. 그래도 오늘은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으신 것 같기에 같이 목욕탕 가려고 깨끗한 속옷이랑 목욕용품까지 다 챙겨 나갔다. 그런데 안 간다고 고집을 피우는 게 아닌가. 왜 안 가려고 하냐 물으니 피가 나온단다. 어디 피가 있냐고 따져 물으니 “피가 계속 나오면 큰일이지” 이런다. 한참 실랑이하다 결국 포기. 욕이 나왔다.왜 욕이 나오는 걸까?내 선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래도 착한 사람이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어째서 이걸 받아들여주지 않는 것인가, 하며.목욕용품 도로 가져다놓고 할머니를 다시 찾아보니 안마의자에 얌전히 앉아 멍하니 나를 쳐다본다. 마알간 얼굴로. (2014년 6월 3일) 엄마에게 고된 시집살이를 시킨 분 ▶ 젊은 시절 할머니와 할아버지. ⓒ박소혜 할머니는 1931년생으로, 늘 술에 취해 있는 남편 대신 억척같이 농사 지어 3남 2녀를 힘들게 키운 분이셨다. 중년 이후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로워지셨으나 억척스러운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2001년경 남편을 떠나보냈고 2010년경부터 치매를 앓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함께 생활하고 있던 둘째 아들인 내 아버지가 부양과 간병을 자처해 6-7년 집에서 함께 생활하였다. 마지막 석 달 간, 입으로 식사를 못하게 된 때부터는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겨 지내다 작년 10월 19일 86년의 생을 마감하셨다. 할머니가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서울에서 대단치도 않은 프리랜서로 일하던 나는 고향 부산으로 내려와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보조해 할머니를 주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물론 의지와 능력 모든 면에서 아빠가 첫 번째 보호자였으나 두 번째 보호자는 엄마가 아닌 나였다. 엄마는 결혼 이후 거의 내내 할머니와 가까이 살면서 ‘혼수 하나 없이 시집왔다’는 이유로 고된 시집살이를 해온 터였다. 할머니의 치매 초기-지금 생각하니 엄마의 갱년기도 겹쳐있었던 것 같은데-에는 이상하게 엄마에 대한 악감정이 당신을 지배하고 있는 듯 성적인 모욕을 포함한 험한 말을 엄마에게 많이 퍼부었다. 속된 말로 귀신에라도 씐 듯 엄마를 향해 모진 말을 해대는 할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녹음해둔 것이 아직도 내 핸드폰 안에 있다. 그리하여 엄마는 가끔 할머니를 책임지는 시간이 있다 해도 그 시간은 비교적 짧았고, 아빠가 할머니에게 보이는 것과 같은 살가움은 (할머니가 완전히 아기처럼 된 때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할머니를 부양하기로 한 아빠의 결정에 반대하지 않고 삼시세끼 책임지면서 똥오줌 묻은 옷가지와 이불을 군말 없이 다 빨아낸 사실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엄마를 존경한다. 근처에 살았지만 큰 도움 되지 않았던 큰아버지 부부(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좀 더 자주 오셨다. 할머니에겐 재산이 제법 남아있었다)나 조금 멀리 살았던 작은 아버지, 큰고모, 작은고모의 이야기는 자세히 하지 않겠다. 결혼해서 멀리 강원도에 살던 막내 남동생은 물론, 집에서 살긴 하지만 돈 벌고 술 먹으러 다니느라 늘 바쁜 큰 남동생도 할머니를 돌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할머니, 왜 굳이 기저귀를 벗고 볼일을 보나요’ ▶ 2016년 5월 2일. 등받이 이동변기 위에 앉아계신 할머니. 이제 벽에 붙은 영정사진 속 아프지 않은 할머니의 모습은 내게 영 낯설다. ⓒ박소혜 할머니의 투병 초기, 나는 아빠가 하기 어려운 일인 목욕탕과 미장원에 데리고 가는 일을 주로 맡았다. 할머니가 영 잠드실 기운이 안 보일 때는 할머니를 차에 태워 (잠투정 심한 어린아이를 재울 때 유모차에 태우고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도는 일도 몇 번 했다. 아, 이 시기에 아빠는 넉넉히 남아있던 할머니의 계좌에서 매달 기십 만원씩을 뽑아서 내게 주셨고, 나는 그것을 못이기는 척 받아 챙겼다. 할머니를 돌보는 데 쓰는 내 노동량이 그만큼의 가치는 없는 것 같아 마트에 가서 쌀과자나 소세지, 율무차 같은 할머니 간식거리를 사오는 일도 열심히 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병세가 깊어져 자유롭게 걷지 못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된 때부터는 내 역할이 많아져 그 기십 만원의 돈도 과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다. 작년 1월에 기록한 글도 있다. 새벽 4시 40분, 내 방에서 일어나 새벽기도 가는 아빠를 대신해 할머니 방에 가서 누웠다. 아빠가 나가는 소리에 살짝 잠이 깼는지 할머니가 뒤척이는 소리를 냈다. 그녀가 깨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눈 꼭 감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는데… 뒤척이는 소리가 점점 커졌고 마침내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눈을 뜬 순간, 아무리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는 강력한 그 냄새가 확! 으아앙 그 뒤척이는 소리는 할머니가 누운 채 덮고 있던 이불을 (일부) 걷어내고 팬티형 기저귀와 내복을 중간 허벅지께로 내리는 소리였다. 여파는 기저귀와 내복은 물론 할머니 다리와 발 일부, 그리고 왼손가락 몇 개, 침대 시트와 전기장판 커버까지 미쳐 있었고… 얼른 불을 켜고 허둥지둥 수습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이런 용도로 걸어둔 쓰레받이를 갖고 와 침대 위 황금 배설물을 한 움큼 받아 올려 좌변기 안에 넣고, 키친타올과 물티슈 가져가 옆으로 누인 할머니 엉덩이를 대충 닦아내고 뜨거운 물을 받아두고 온풍기를 켜둔 욕실로 할머니를 데려와 씻기기. -감사하게도 이런 때 할머니는 참 순하다.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충분히 안다는 듯. 근데 왜 늘 굳이 기저귀를 벗고 볼일을 보나요? 깔끔한 성정을 가졌던 분이라서 그랬다는데, 이럴 땐 나처럼 깔끔하지 않은 게 더… 음- 씻긴 할머니를 잠깐 온풍기 앞 의자에 앉히고 방으로 돌아가 묵직하게 냄새나는 속옷이랑 침대 시트, 전기장판 커버 걷어 실외로 옮겨놓은 후 할머니를 방으로 데려와 아비규환인 침대 아닌 바닥에 눕히고, 다시 조명을 은은한 걸로 바꾸고, 대충 닦은 전기장판 위에 의류용 페브리즈 칙칙칙칙 뿌리고 화장실용 페브리즈도 가져와 방 천장을 바라보며 칙칙 또 뿌려 일단 마무리. 퓨- (2016년 01월 26일) 투병 중인 할머니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 입으로 밥을 못 먹게 되자 요양병원에 가실 수밖에 없었다. 햇살 맞으러 옥상에 갔지만 할머니는 기분이 영 별로다. (2016년 8월 29일)ⓒ박소혜 그러나 돌아가신 지 1년여가 되어가는 지금 할머니를 생각하면 어린아이처럼 말간 얼굴과 부드러운 피부가 떠오르며 마침내 마음이 먹먹해진다. 투병 전의 할머니는 내게 그저 ‘엄마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이었지만 당신이 아프고 나서 시작된 진짜 관계 맺기를 통해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당신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른 많은 간병 경험 가진 이들에 비해 돈이 없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고, 어디까지나 제1보호자인 아빠를 보조하는 것에 역할이 한정되어 있긴 했지만, 이 시기에 내가 썼던 글들을 읽어보면 잠시 잊고 있던 기억과 감정들이 와르륵 수면 위로 떠오른다. “치매 걸리면 몇 년” 같은 검색어를 검색창에 띄워 본 게 몇 번이었는지... 목욕탕에 데리고 가면 너무 민폐를 끼쳐 더 이상 목욕탕을 못 가고 집에서 매일 아빠가 할머니의 아랫도리를 씻어주던 시절, 내 눈에는 할머니 발목에 쌓인 때도 잘 보였지만 못 본 척 했던 기억, 죄책감, 죄책감보다 더 큰 ‘귀찮다’라는 감정, 내가 까준 천하장사 소세지를 손톱만큼 깨어 물고 오물거리던 모습, 어느 흐린 오후, 또 어디론가 가자고 조르는 할머니를 앉혀놓고 당시 우쿨렐레로 연습하고 있던 아리랑을 들려주고 몇 번이나 함께 부르다 눈물이 날 것 같아 멈췄던 순간… 늦은 감이 있지만 고백해야겠다. 나는 결국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5개월 전인 작년 5월에 나는 아픈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를 돌보는 늙어가는 부모님을 남겨두고 눈물 몇 방울 흘리며 부산에서 자동차로 4시간이 넘게 걸리는 시골로 이사를 와버렸다. 할머니가 그 상태로 오래오래 사실 것 같은데, 나는 부모님 집에서 사는 것이 너무너무 부자유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결정을 한 이후부터 할머니의 상태가 티 나게 악화되었다. 내가 그런 결정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건가 자책도 했었지.) 그 당시의 감정을 그린 일기를 찾아보니 “나는 아픈 할머니를 사랑하게 되었으나 그보다는 나의 자유를 더 사랑한다”, “후회는 없겠나? 후회할 것이다. 하지만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 따위의 말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 끝에는 “당신(내 엄마아빠)이 아프거나 힘들 때는 가까이 있어 드리리라 약속합니다. 그 누구보다 가까이.” 같은 말이 붙어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모순되지만 이 말은 진심이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할머니와 달리 내 부모가 내게 사랑과 정성을 넘치게 베풀어주었다는 것은 절절히 알고 있다. 돈은 없겠지만, 할머니의 경우를 보더라도 돈보다, 아니 돈만큼 중요한 것은 시간과 마음이다. 지금 이렇게 집밖에 나와 사는 것은 ‘나 아직 젊은 시절, 가능한 만큼은 나 혼자 자유로울 수 있게 해주시오!’ 라는 마음이랄까. 부모님은 할머니처럼 미운 환자가 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확신도 있다. 함께 늙어갈 우리의 앞날에 대해 얘기해보자 나는 엄마에게 이미 “결혼 안 한 딸만큼 이런저런 일 부려먹기 좋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결혼타령이냐! 엄마아빠 아프다고 하면 (남동생들인) OO이가 돌보겠냐, XX가 돌보겠냐!”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런 말에 콧방귀도 안 뀌는 엄마가 여전히 나는 이해가 안 간다. 할머니와 지내던 시절, 잠시 임시직으로 다니던 일터에 계시던 선생님들 중에 비혼여성이 두 분 계셨는데 그 분들이 마침 그런 경우였다. 당시 40대 후반이었던 한 선생님은 막내딸이었지만 그 전해 연이어 돌아가신 부모님을 마지막까지 정성껏 돌보다 집이라든가 재산 같은 것을 말끔히 정리하고, 1년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면서 상실의 감정을 진지하게 다독이는 시간을 가지셨던 분이셨다. 40대 중반인 또 다른 선생님도 혼자가 된 어머니의 가장 친한 친구로 많은 것을 공유하며 지내고 계셨다. 섣부른 결심일지라도 일단 60대 중반인 내 부모의 마지막은 내가 지켜본다고 치자. 그렇다면 30대 후반 비혼여성인 나의 마지막은 어떨까? 아픈 할머니와 보낸 몇 년 덕분에 나이 드는 것과 죽음과 삶에 관하여 여러 생각을 농도 깊게 많이 할 수 있었다. 답은 “저렇게는 살지 말자”였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엄마한테 한번이라도 따뜻한 칭찬 한마디 들었다면 이 일-할머니를 돌보는 일-이 더 기꺼웠을 텐데”라고 이야기하는 돌연변이 효자 아들을 둔 덕분에 그럭저럭 무난한 죽음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빠 외에 아픈 그녀에게 진정으로 신경 쓰며 마음 아파하는 친구나 친지는 거의 없었다. 한평생 돈에 집착해 살며 마음 나누는 친구나 취미 하나 없이 살아온 그녀의 삶은 어떻게 봐도 따라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나는 공동체, 나눔, 자연, 시골, 자유, 반성하는 삶, 안락사, 존엄사 같은 단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언니들의 벗이 되고 또 나보다 젊은 친구들과 벗이 되자고 생각했다. 1:1의 배타적인 관계를 맺은 이성이나 그로 인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인간(들)에게 의존하지 않더라도 그런 벗 한둘이 잠시나마 나를 기억해준다면 그 인생은 괜찮은 인생일 것 같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이 되는 오는 10월 19일 무렵엔 이 시골마을의 언니동생들을 초대해 할머니를 기억하고, 함께 늙어갈 우리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청해야겠다. 일다
(허5파6 글 그림, 비아북, 2017)에 대해 글을 쓰겠다는 결심은 금방 섰지만, 막상 어떻게 써야 좋을지 생각하면서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사랑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싫어하는 것을 욕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읽는 내내 목구멍을 지나쳐 혀끝에 맴돌았던 사적 소회를 감추어야 할지 내보여도 될지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 단행본으로 출간된 (허5파6 글 그림, 비아북, 2017) 의 주인공 장미래는 중3 여학생으로 교실에서는 좀처럼 반 아이들과 말을 섞지 않고, 집에서는 밤낮없이 일로 바쁜 엄마와 술을 좋아하고 폭력적인 아빠를 데면데면 스친다. 미래의 세상에서 색채가 깃든 곳은 교실이나 집이 아니라 게임 ‘원더링 랜드’ 속이고, 미래는 그곳에서 게임 세계 친구들을 사귄다. 도서부 활동을 하면서 책꽂이를 정리하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영화 감상 시간에 본인의 입맛대로 선택한 작품을 재생하는 일, 좋아하는 책을 몇 번씩이고 읽고 또 읽는 일도 미래의 세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미래가 학교에서, 집에서, 게임에서, 또 거기서 이어진 세계와 그 너머에서 사람을 만나며 자신의 생활을 더 튼튼하게 쌓고 단단하게 여미는 과정이 차곡차곡 를 채운다. 만큼 독자로 하여금 자기 얘기를 꺼내놓게끔 하는 만화를 만나지 못했다. 이 만화가 연재 중이던 2년여의 시간 동안, 댓글 창을 눌러 보거나 포털사이트에 제목을 검색하면 자신의 십대 중반을 회고하는 글들을 수북이 볼 수 있었다. 한참 터널의 가운데서 표류하는 고등학생도 있었고 이제는 양지바른 곳에 뿌리를 내리고 곪은 티눈을 빼듯 과거를 이야기하는 성인도 있었다. 결코 궁금해 할 수도, 기껍게 읽을 수도 없는 이야기를 마주할 때엔 큰 감정이 소모됐다. 그럼에도 타인의 기억을 읽어 내려가길 멈출 수가 없는 날이 있었다.누군가와 처지를 견주어 자기를 위안하거나 연민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건 결코 아니었다. 그건, 쏟아진 튀밥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저마다의 외로움을 견뎠고 또 견디는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중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더럭 슬펐던 순간은 나만 빼고 모두가 진정한 친구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였다. 그때는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며칠 전에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나는 친구를 사귈 수 없는 인간인가 생각을 했었어’ 라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 내 생각에는 세상사람 모두가 걔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십대 시절의 많은 시간이 쓸쓸해하는 데 쓰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버스 뒷자리에 앉던 학생과 선생님 옆자리에 앉던 학생이 보낸 시간이 다를 테고, 학교 안의 청소년과 학교 밖의 청소년이 보낸 시간 역시 다를 테지만, 그리고 그 차이는 무시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저마다 성장통을 앓고도 오늘을 살고 있구나 발견할 때마다 꼬박꼬박 애틋했다. 는 작품 자체로도 십대 시절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게 하지만, 그간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억지로 염색해 총천연색으로 만들거나 먹물에 수도 없이 담가서 명 없는 암의 상태로 만들어 놓은 이 시기를 실재하는 개개인의 서사로 고쳐 만나는 통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사이다’ 서사는 없지만 성장하는 주인공 주인공 미래는 감정적인 부침을 겪을 때 타인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자꾸만 돌아보고 책망하기도 한다.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내 탓을 하는 버릇을 고치기란 쉽지가 않다. 시간이 약이고 마인드컨트롤이 답이기만 한 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실낱만큼의 확신을 줄 계기는 있어야 빨리 아문다. 미래의 세상은 분명히 모질지만 는 한계까지 미래를 몰아붙여 극도의 부정적 감정이나 선정적 감각을 자아내는 대신 미래에게 다정함을 주고받을 수 있는 끈을 달아준다. 도피가 아닌 진정한 우주로서 미래를 견디게 했던 ‘원더링 랜드’의 길드 친구들부터 미래가 자신의 도서부 왕국에 초대한 태양과 미래의 글에 반해버린 백합, 같이 밥을 먹고 놀러 다니며 동성 친구와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친구 양선 유진과 하늘, 게임에서 만나 내밀한 고민까지 공유하게 되는 재희, 소심하던 미래의 어깨를 밀어주는 솔직하고 대범한 유리, 미래가 선망하던 어른이면서 미래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재현, 미래를 가만히 사랑하는 엄마, 조심스럽게 지지하는 담임선생님,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출판사 편집자까지. 사람들과 연결되며 얻는 여러 결의 사랑과 안정감은 미래 역시 일진 무리에 끼어 멀어지는가 싶던 재민과 연락을 주고받고, 백합의 현재에 순수한 감탄과 축복을 표시하고, 재희에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힘을 보탠다. ⓒ허5파6 글 그림 중에서 지속가능한 낙원을 꿈꾼다는 미래 책도 영화도 많이 보고 글 솜씨도 좋은 미래는 ‘내 글이 바로 나는 아니라는 걸 아는’, 작가로서 단단한 태도를 갖추고 글을 쓴다. 글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만큼 비판 받고 싶지 않아서 치장된 문장을 쓰는 백합과는 또 다르다. 미래는 재능이 있지만 그 재능이 미래가 친구를 사귀고 신의와 호감을 얻는 직접적인 원동력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미래가 멋지기 때문에 미래와 친구가 되고 싶고, 되길 허락한 것이 아니다. 그냥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친구가 된다. 따라서 미래의 이야기는 숨죽이고 있었던 능력자―재력, 권력, 인맥, 걸출한 재주 중 하나 이상을 가진―가 자신에게 망신을 준 상대를 비굴하거나 초라하게 만들며 비웃는 ‘사이다’ 서사로 완성되지 않는다. 더불어 미래가 가진 재능은 더 이상 반짝이지 않거나 작게 평가되는 순간 미래의 세상을 무너뜨릴 정도로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도 못한다. 미래가 호감을 느끼던 일진 유리를 돕고자 쓴 인터넷 소설은 미래가 ‘여중생A’로 보도되며 일순간 영웅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결국 속 시원한 응징을 가져다줄 수 없다. 다만 그것으로 미래가 절망하거나 무너질 필요 역시 없다. 그저 글쓰기는 미래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미래가 자립할 수 있는 돈을 벌게 해주는 일인 것으로도 족하다. 사람이라는 끈을 잡고 몸을 일으킨 미래는 글을 쓰면서 타인에게 내 자존을 의탁하지 않아도 되도록 지구력을 기른다. 미래 스스로 생각했듯 ‘사람을 낙원으로 삼아선 안 돼. 사람은 움직이는 거니까. 나는 지속가능한 낙원을 가꾸어야’ 하기 때문에. 미래와 엄마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또한 미래가 회심의 일격으로 퇴치하면 이내 비굴하게 꼬리를 내리는 악당으로서 최후를 맞지 않는다. 미래는 아빠가 남들에겐 웃으면서 넉살 좋게 말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여자에게 문자 메시지도 보내고, 쪼그라든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악마가 아니라 작고 초라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건 아빠가 절대적인 악인이 아니라는 면죄의 여지를 주는 게 아니라, 도리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어도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단 걸 보여준다. 미래가 칼이라도 빼들고 직접 폭력을 중단하고자 하거나 에필로그 없이 무 썰듯 똑 떨어지는 ‘사이다’를 날리는 것, 그도 아니면 관계를 회복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과연 죽음보다 더 ‘좋은’ 결말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와 비슷하게 작품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태양이 사람을 볼 줄 모른다는 원망, 백합이 이기적이라는 비난, 노란을 단죄하지 않느냐는 원성으로 댓글창이 시끄럽고는 했다. 만화는 태양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여동생이 있다는 것, 백합은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결혼으로 상대방의 힘에 의탁해 ‘편히’ 살길 바라는 어머니의 뜻과 달리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 노란은 친구를 독점하고 싶은 욕심이 많다는 것을 일러 주고, 다만 그 전사나 성격이 사건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는 걸 주지한다. 이유가 있다고 해서 잘못이 아니게 될 수는 없듯, 반대로 잘못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미워해야 할 평면적 악당으로 여길 까닭 또한 없다. 재희가 미래에게 ‘아직 16살이잖아요, 너무 어른을 이해하지 말아요’라고 말한 것을 뒤집어, 이들은 아직 열여섯 살이고 종종은 이해받지 못할 수 있다. 어떨 땐 다 컸다고 하고, 어떨 땐 아직 어리다고 하고, 안팎으로 갈팡질팡하는 시기의 흔들거림을 는 때로 그저 끌어안길 택한다. 그리고 그건 꼭 미성숙하기 때문에만 겪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겪는 일이기도 해서, 미래에게 ‘내가 그동안 배웠어야 할 건 그런 공략 같은 게 아니라, 그저 아이들하고 잘 지내는 법이었는데’ 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 사람을 마주하는 건 게임 루트를 공략해서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일이므로. ⓒ허5파6 글 그림 중에서 생리대 얘기를 하는 미래와 친구들 ‘중2병 오타쿠’들이 보낸 2000년대 중반 한편 는 1980-1990년대와 달리 아직 복고로 다루어지지 못하는 2000년대 중반이 배경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인 추억으로 자리 잡기엔 현재와의 거리감이 설익어서인지, 이 시기의 많은 것들은 ‘흑역사’로 불리곤 한다. 나 또한 이때 여중생이었다. 나는 차원을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대상이 하나씩은 있는 오타쿠였고, 이맘때는 가히 서브컬처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오타쿠라는 단어 하나로 나를 명명하지만, 그때만 해도 구구절절 변명을 붙여가며 만화며 아이돌 등등에 ‘호의를 가진’ 입장으로 스스로를 설명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 처음 ‘중2병’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다. 지금이야 오타쿠가 멸칭이 아니고 중2병이라는 말이 사춘기 청소년을 향한 혐오 단어가 될 수 있단 걸 알지만, 그땐 ‘중2병 오타쿠’만한 조롱 혹은 힐난이 또 없었다. 그즈음 문방구와 학교 앞 서점에서는 파티, 밍크, 윙크, 이슈, 케이크 같은 만화잡지를 팔았고, 동네마다 두어 군데는 있었던 비디오 가게는 만화책으로 시작해 판타지, 무협지, 인터넷 로맨스 소설 등 차근차근 대여 항목을 늘려갔다. 다음 카페와 제로보드 사이트를 주요 플랫폼으로 인터넷 커뮤니티가 성행했고, 일본문화가 둑이 터진 듯 유입되면서 라르크 앙 시엘이나 글레이 같은 밴드부터 쟈니즈 소속 아이돌까지 일본 가수들이 인기를 얻었다. 후에 ‘원나블’로 불리는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를 필두로 한 (고민 없이 차별적인 명명인) 이른바 소년만화의 르네상스가 찾아왔다. MMORPG 게임인 마비노기가 큰 인기를 끌었고 서울과 부산 코믹월드에 사람이 붐볐다. 선유도 공원과 양재 시민의숲에서 사진을 찍던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있었고, 10대에서 20대 여성 플레이어에게 마음대로 반말을 하거나 성희롱을 해서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받던 성인 남자사진사도 여럿이었다. 사람들은 msn메신저와 세이클럽 아이디를 공유했다. 동(방신기)슈(퍼주니어)(SS)501중 제일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을 고르는 것이 반마다의 과제였고, 열렬한 팬인 친구들은 그룹 멤버의 생일날 반 아이들에게 명함과 사탕을 나눠주기도 했다. 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중학생 시절과 더불어 이 2000년대 중반을 실감나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에는 이 시기 열대여섯 살의 청소년이 사랑했던 것들, 그로 인해 겪었던 세상의 기묘한 구석까지도 속속 녹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렇게 시대적 배경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이 어째서 가해자의 죽음으로 가정폭력을 종결하는지, 미래 주위의 아이들은 왜 명명백백 징벌되거나 더더욱 구체적인 악행의 주체로 드러나지 않는지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는 것이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이 곧 가치중립적이라는 뜻도 아니다. ‘사실’이나 ‘가감 없음’ 같은 말은, 실은 얼마나 불확실한가? 특정한 세부를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곧 진실을 담보하는가? 는 결코 중립적이라고 할 수 없다. 폭력은 인상으로 제시하는 데서 더 나아가지 않고 사유도 설명되지 않는다. 미래를 감싸는 다정한 우연과 인연 역시 기적적이다. 미래는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도 생기고, 엄마와도 화목하고, 존경하던 작가를 멘토로 만난다. 하물며 미래가 서울에 사는 것도 미래에게는 행운이다. 미래가 지방에 살았으면 재희도 만날 수 없고, 홍대도 출판사도 가볼 수 없고, 세상을 보고 시간을 겪는 감각도 달랐을 것이니까. 서글프지만 당연하게도 이러한 결말은 모든 십대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를 나쁘게 만드는 요인이냐면 그렇지 않다. 눈물겨운 비현실이라고 해도 좋다. 이 우주는 애정과 관심을 기반으로 건축한, 장밋빛 미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걸 충실하지 못하거나 나쁜 재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든 재현은 결국 보았거나 보고 싶거나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의 재현인 것일 테니까. ⓒ허5파6 글 그림 웹툰 83화. 친구 어깨에 기대는 미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속 장면은, 웹툰 연재분 83화에서 미래가 유진에게 머리를 기대는 순간이다. 작중에서 특별히 의미 부여되지 않는 한 컷일 뿐인데도, 여전히 그 장면만 떠올리면 눈물이 핑 고일 정도로.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는 일도, 기대온 머리를 아무렇지 않게 두는 일도 처음부터 퍽 자연스럽게 하기 어렵다. 미래처럼 관계에 자신이 없고 다른 사람과 체온을 나누는 일이 어색했던 사람이라면 아마 더 그랬을 것이다. 거절당하지 않을 걸 알고, 냄새가 난다거나 행동이 이상하다거나 하는 말로 시비를 걸어도 거짓이라고 대꾸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을 갖고, 아니면 적어도 개의치 않아하고, 이 관계를 없던 일로 하거나 망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야만 할 수 있는, 스스럼없어지기까지 각고의 시간이 필요한 그런 동작. 허공에 연습할 수도 없어서 반드시 친구가 필요한, 바로 그런. 내가 정말 무리에 낄 수 있을지 고민하던 미래가 한참이나 친구의 어깨에 기대어 불편함 대신 포근함을 느끼는 순간을 어떻게 흘려보낼 수 있을까? 웹툰 는 2016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다. 이 해 오늘의 우리 만화상은 총 다섯 작품이 받았는데 그중 와 , 이 모두 여성의 성장과 독립을 다루었다. 세 편의 만화 모두 댓글창에서 ‘남자 주인공은 없나요/누군가요’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았다. ‘이렇게 꾸미면/머리를 기르면/살을 빼면 예쁠 텐데 왜 안 그래요’ 라는 해맑고도 유해한 의견을 만만찮게 접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자연스럽게 비슷한 댓글이 줄어들었다. 여자의 이야기에 굳이 남자 주인공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한 사람이 자라는 데 갖춰야 할 것은 따로 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일다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도영원님은 영국 글래스고대학교에서 인권과 국제정치 석사를 전공하고, 현재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인권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9월 23일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분명 설레는 마음에 새벽부터 분주했을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 1회 부산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의 일출 시각은 아침 6시 12분이었다. 나는 6시에 숙소를 떠나 소원을 이루어주는 영험한 사찰이라는 해동용궁사를 향했다. 해돋이 바위 너머로 무리 지어 날아가는 비둘기들도, 바다를 지그시 바라보는 관음대불도, 사찰로 향하는 돌계단 하나하나도 절로 감사한 마음을 품게 만드는 섬세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두터운 구름 사이로 일출을 보고, 대웅전에서 108배를 드리며 부산 퀴어문화축제의 성공을 기원했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왔어요!” 경기 남부에 거주하는 나는 할인이 되는 KTX 표를 찾아서 금요일 아침에 서울을 출발해 일요일 아침에 부산을 떠나는 차편을 예매했다. 40% 할인을 받아도 차비가 꽤 부담되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지방 거주자들의 부담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차비에 드는 비용 대신에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호텔이 아닌 호스텔을 예약했다. 가장 저렴한 혼성 10인실 도미토리가 1박에 만 오천원. 어쩌면 부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온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특급호텔에 머무르는 것보다 기대가 되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준비해 간 대형 무지개 깃발을 배정받은 침대에 걸었다. ▶ 부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러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대형 무지개 깃발을 침대에 걸었다. ⓒ도영원 호스텔 관리자가 체크인을 도와주면서 무슨 일로 부산에 왔냐고 묻길래, 냉큼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다. 관리자는 그런 축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은 “아!”하고 탄성을 내지르며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후로도 택시기사 아저씨나 음식점 주인 아주머니들이 부산에는 무슨 일로 왔냐고 물을 때마다 꼬박꼬박 부산 퀴어문화축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이들이 성소수자와 관련된 행사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갖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빌었다. 두근두근 축제의 날이 밝다 해동용궁사에 갔다가 해운대로 돌아왔을 때, 시간은 이미 9시쯤이었다. 부스 행사가 시작되는 시간은 10시였지만, 준비하는 과정부터 함께하고 싶어서 곧장 축제가 열리는 구남로 문화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은 짐을 가득 채워온 가방을 풀고 현수막을 거는 등 부스 준비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울의 퀴어문화축제에서 보았던 친숙한 부스들도 상당수였지만, 처음 보는 부산 소재 대학교나 단체들의 부스도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무엇보다 유쾌했던 경험은, 분명 서울에 사는 걸로 알고 있는 지인들과 약속도 없이 해운대에서 계속 마주쳐서 난리법석을 떨며 인사하는 일이었다. 마치 명절을 맞아 고향에 오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금세 10시가 되고, 행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먼저 자신의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을 자유롭게 적어달라고 적혀 있는 커다란 판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아직은 텅 비어 있는 판 한가운데에 내 성정체성과 지향을 붙이면서 누가 읽어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나 잠시 걱정했지만, 물론 그런 고민은 필요 없었다. 내가 붙인 포스트잇은 곧 수많은 사람들이 붙인 솔직한 메모들 중 하나가 되었다. ▶ 1회 부산 퀴어문화축제 부스 중에서. 혐오 발언 스크랩 캔버스와 이를 훼손할 물감이 준비되어 있다. ⓒ도영원 그 옆의 부스에서는 혐오 발언을 스크랩한 캔버스를 두고 물감으로 자유롭게 이를 덮어 ‘혐오를 훼손’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캔버스에 낙서를 하고, 다른 부스에서 구입한 혐오발언에 반대하는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였다. 잠시 후에 다시 와보니 누군가 그 스티커를 펜으로 그린 예쁜 하트로 장식해둔 것이 보였다. 어떤 부스에서는 내가 들은 혐오 발언을 적어 붙이는 활동이 있었고, 또 다른 부스에서는 혐오 발언을 적어 준비된 종이 파쇄기에 신나게 갈아버릴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색깔의 종이는 곱게 갈린 채 통 안에서 섞여 무지개를 만들었다. 물론 가지고 싶었던 배지와 책, 스트랩 열쇠고리를 구입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퀴어문화축제의 재미였다. 읽고 싶은 자료집이 많았기 때문에 곧 가방이 안 닫힐 정도로 짐이 많아졌다. 이런 상황을 예견한 나의 예리한 한 수! 내가 잡은 숙소는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불과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일단 숙소로 돌아와 짐을 모두 비우고, 샤워를 한 뒤 준비해 온 ‘퀴퍼 의상’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혐오 세력과의 조우 양팔에는 금박 타투 스티커와 팔찌들, 그리고 방금 구입한 “무지개 조폭” 완장을 휘감고, 가방에는 성소수자 플래그 뱃지들을 주렁주렁 달고, 또 무지개 티셔츠를 입고 굽이 높은 검은 부츠를 신은 내 모습. 아까의 복장과는 달리 지금 나를 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숙소를 나서 축제 장소로 돌아가기 위해 시장을 통과하면서, 약간의 흥분과 긴장감이 내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처럼 몸을 휘감았다. 많은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그중 유독 적대적인 시선은 ‘동성애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한 무리의 해외 관광객들은 나를 향해 크게 환호를 보내기도 했다. ▶ 부산 퀴어문화축제 행사장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동성애 반대’ 시위자들의 피켓팅 ⓒ도영원 그런데 행사장에 거의 도착한 순간, 당황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부채 받아가. 덥지? 어때, 부채가 있으니까 시원하잖아. 부채 받아가.” 다정한 얼굴로 다가와 땀이 흐르는 내 얼굴에 부채질까지 해주는 나이 지긋한 여성이 내미는 것은 커다랗게 ‘동성애 NO’라고 적힌 부채와 전단지였다.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내가 퀴어라는 것을 알고서 일부러 ‘동성애 반대’ 홍보물을 들고 가게 하려는 것인가? 나는 난처한 미소를 흘리며 계속 고개를 돌리고 몸을 피했지만, 그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시종일관 웃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행사장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동성애 반대’ 시위자들의 피켓을 읽으면서, 그제야 이들의 ‘전략’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켓에는 ‘얘들아 돌아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같은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행위가 ‘좋은 의도’에서 나온 친절한 제스쳐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문구를 읽은 성소수자들이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릴 거라고 기대한 것일까? 그러나 퀴어인 나에게 다정한 태도로 접근해서 퀴어혐오 광고물을 받아 들게 만들려는 그 행위는 “동성애자 죽어라” 하고 욕을 하고 침을 뱉는 것보다 오히려 더욱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혐오시위자 중 많은 수는 자녀가 있을 법한 나이로 보였다. 아니, 나도 어떤 부모의 자녀로서 그냥 그들의 성소수자 자녀를 상상해보고 싶었다. 축제 참가자들을 향해 “정신 차려 이 녀석들아!”라고 호통치는 한 혐오시위자를 보면서,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이 ‘동성애 축제’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을 옳은 길로 계도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 이들의 폭력성에 대해 생각했다. 부산 퀴어문화축제에서 서울에 사는 지인들을 잔뜩 마주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지만, 그만큼 부산에 거주하는 성소수자들이 마음껏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축제에 왔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들켰을 경우의 리스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SNS에서 지방에 사는 성소수자들은 아웃팅(당사자의 의사나 동의 없이 타인에 의해 성정체성이나 지향성이 제3자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자기 동네에서 퀴어 행사가 열려도 참여하기 힘들다는 글을 보았다. 내 친구는 굴하지 않고 이 날 축제에 참여한 부산 토박이 중 한 명이었는데, 누구보다도 도발적이고 아름다운 차림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차례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받는 그는 축제의 별처럼 빛났고,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며칠 뒤에 크게 좌절한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사실을 알고 화가 난 엄마가 그 의상을 버리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에이로맨틱’ 깃발을 들다 부스 행사는 해운대구청 측과의 조율로 예정보다 30분 일찍 끝나고, 곧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스텝들이 고군분투로 싸워가며 혐오시위자들의 난입을 막아냈던 행사장을 벗어나, 우리는 천천히 혐오시위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거리로 나섰다. 다시금 흥분과 긴장으로 몸이 떨렸다. ▶ “퀴어 아이가” 슬로건으로 개최된 1회 부산 퀴어문화축제에서 에이로맨틱연대 깃발을 든 내 모습. ⓒ도영원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해 본 횟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이 날은 나에게 또 다른 의미에서 특별했다. 내 손에는 ‘에이로맨틱연대’라고 적힌 초록색 깃발이 들려 있었는데, 에이로맨틱(aromantic: 로맨틱한 끌림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 wiki.asexuality.org/Aromantic_FAQ) 플래그가 그려진 깃발만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서, 출발 하루 전날 부랴부랴 제작한 깃발이었다. 지난 4월 에 에이로맨틱 칼럼(당신의 로맨틱한 로망에 딴지를 걸어드립니다 ildaro.com/7848)을 쓴 뒤, 나는 최대한 많은 에이로맨틱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SNS 계정을 만들고, 에이로맨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리트윗했다. 지난 8월에는 에이로맨틱 수다 모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렇게 만나본 많은 사람들이 퀴어문화축제에서 에이로맨틱 굿즈나 깃발을 찾아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말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부스나 다른 행사를 준비할 여유는 없었지만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것 정도는 하고 싶었다. 부산 퀴어문화축제에 단 한 명의 에이로맨틱이 있다면, 적어도 그에게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보람이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정말 함께 변해가는 것이 맞나 보다. 2017년 부산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 나는 에이로맨틱 플래그 배지를 발견했다. 올해 서울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정체성과 지향성을 위한 배지를 다수 준비하여 호평을 받았던 ‘인권법률공동체 두런두런’의 부스였다. 행사장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벌써 이 배지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몇몇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SNS에서 봤어요”하며 에이로맨틱 깃발을 알아보고 다가와서 따뜻한 격려를 건넸다. 나는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준비해 간 에이로맨틱 스티커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어떤 사람이 “여기 계셨구나! 아까부터 찾고 있었어요.”하고 활짝 웃으며 스티커를 받아들었을 때에는 너무 반가워서 춤이라도 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축제의 꽃 퍼레이드, 자랑스러운 우리의 행진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참가자들은 경찰들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혐오시위자들과 나란히 행진했다. ‘동성애를 멈춰라, 에이즈를 멈춰라’ 따위의 피켓을 들고 있는 이들은 우리와 불과 1~2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경찰의 보호가 있어서인지 달려들거나 하지 않는 점만은 다행이었다. 확성기와 십자가, 심지어 성소수자혐오적인 내용의 동영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대형스크린까지 갖춘 혐오 시위의 규모가 놀랍기는 했다. 이들의 숫자도 퀴어문화축제의 규모에 비교하면 지나치게 많아서,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온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수가 많다 한들 한 자리에 모인 성소수자를 멈출 수 있을 리 없다. 우리는 혐오 발언 따위에 위축되기에는 너무 즐겁고, 행복하고, 신이 난 상태였다. 나는 성소수자부모모임 회원들의 바로 옆에서 행진을 하며 “혐오는 나빠요, 차별을 멈춰요”를 함께 연호했다. 통곡을 하며 동성애를 멈추라는 혐오시위자의 앞을 지나갈 때, 내 옆에 있던 누군가가 큰 소리로 퉁명스럽게 “와 울고 난리고!” 하고 맞서서 모두가 와르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 부산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혐오 발언에 위축되기에는 우리는 즐겁고, 행복하고, 신이 났다. ⓒ도영원 한참 행진을 하다가 깃대에 묶어 놓은 깃발이 미끄러져서 다시 추스려야 했는데, 5m가 넘는 깃대 끝에 달린 깃발을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순식간에 대열에서 낙오되어 혐오시위자들에게 둘러싸이나 했는데, 퍼레이드의 맨 뒤쪽에 있던 한 사람이 깃대를 함께 들고 내가 대열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 땀을 뻘뻘 흘리며 행진을 하는 나를 보고, 내 옆에서 나란히 걷던 다른 참가자 한 명이 “덥죠?” 하고 웃더니 손에 들고 있는 휴대용 선풍기를 내 쪽으로 들고 바람을 보내주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퀴어문화축제의 이런 점이 정말 좋다. 작년에 처음으로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했을 때, 잘못해서 옆 사람 머리를 풍선으로 몇 번이나 치고는 당황해서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그 사람은 상냥하게 웃으며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주었던 것이 기억난다. 시청 광장이 아닌 서울의 다른 곳에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바로 그런 정서가 나를 계속해서 퀴어문화축제로 데려오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40분 가까운 길고 즐거운 행진 끝에 퍼레이드는 무사히 행사장으로 귀환했다. 깃발들은 아쉬운 마음에 높이 매달린 채로 내려올 줄을 몰랐다. 나는 아까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찾아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먹었다. 뒤풀이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카페로, 바로, 주점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친구들과는 그간의 근황도 나누고, 지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앞으로 하고 싶은 활동들에 대한 단서를 찾기도 했다. 바쁜 하루가 끝날 때는 즐거운 시간만큼이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1회 축제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렇게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축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어 앞으로도 쭉 이어지게 된다면, 축제의 역사는 곧 나의 역사가 될 테니까. 나는 참가자 중 한 사람일 뿐이지만, 내가 잘 하고 열심히 하는 만큼 축제도 함께 성장할 거라는 사실에 두근거린다. 일다
※ , 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 아름다운 몸. 새끼 들고양이 ⓒ김혜련 몸에 관한, 불편하고 힘든 글쓰기 “혜련씨, 아픈 자랑 많이 했더군요~” 에 연재한, 몸에 대한 전반기의 글을 읽은 지인이 농담처럼 한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몸에 대해 글을 쓸 때의 내 상태가 떠올랐다.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숨 쉬기가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강한 저항이 올라오기도 했다. ‘왜 굳이 이런 글을 써야 하지? 그럴듯하지도 않고 자신을 너무 까발리는 것 같고, 도대체 우아하지 않은 글 아니야?’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난 몸과 마음의 오랜 분리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다. 거의 정신적 마비 상태라고 여겨지는 몸에 대한 무시와 학대에 대해, 그 결과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몸을 통한 자기인식을 분명하게 해야 하는 건 내 삶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아픈 다리 한 쪽을 질질 끌며 걷듯, 불편하고 힘든 글쓰기였다. 그런데 쓰면서 ‘쓰길 잘 했다’고 느꼈다. 쓰는 과정에서 막연하던 많은 것들이 선명해졌다. 깊고 치밀하게 사유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뿌옇게 흐린 시선이 말개지는 경험. 새로운 통찰과 창조가 일어나기도 했다. 몸에 대한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된 게 있다. 몸에 대한 무시가 결국 일상에 대한 무시라는 거였다. 내가 일상을 살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도 알게 되었다. 단지 일상이 지루하고 단순 반복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몸의 감각을 잃은 것은 일상을 잃은 것이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전환한 삶이 ‘몸으로 사는 삶’이라는 게 명료해졌다. 집을 가꾸고, 밥을 하고, 나무와 꽃을 심고, 비를 맞으며 감자를 캐고, 벼들이 자라는 들판을 매일 걷는… 이 모든 것들이 몸의 삶이었다. 나는 몸에 쌓이는 시간과 공간을 만나고 가꾸어 온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써 온 집, 밥, 자연에 관한 이야기는 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몸을 통해 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인 것이다. 나는 비로소 일상을 즐기고 일상을 통해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전환한 삶의 핵심에 ‘몸’이 있다. ▶ 아름다운 몸. 은행나무 고목 ⓒ김혜련 ‘몸으로 사는 삶’으로의 전환 몸은 삶의 곳간이다, 풍요의 곳간. 지성을 아무리 벼려도 몸의 느낌을 풍요롭게 쌓지 않으면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 충만한 자’가 되고 싶어서 온갖 심리학을 섭렵하고 영성을 찾고 수행을 했지만, 언제나 몸은 배재되어 있었다. 충만한 삶을 생각하면서, 그 삶과 몸을 연결시켜보지 못했다. 몸이 뭔지, 몸이 건강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보지 않았다. 몸은 감수성의 덩어리다. 죽어있는 몸, 백지장 같이 핼쑥해져 있는 몸으로 어떻게 감수성의 풍요를 누릴 것인가? 감수성의 풍요 없이 어떻게 삶이 풍요로울 것인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치를, 나는 온갖 관념의 세계를 헤맨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건강한 몸이야말로 감수성이 풍부한 몸이다. 그렇다면 어떤 몸이 건강한 몸인가? 안 아픈 몸인가? 건강검진에서 별 문제 없으면 건강한 것인가? 몸을 관찰하면 하루에도 수없이 변하고 있다. 일상을 잘 보면 단 한 순간도 몸에 완전성이란 없다. 손톱에 가시가 박히고, 머리가 띵하고, 배가 아프고, 허리에 뻐근한 통증이 있고, 무좀과 냉증에, 어깨가 결리고… 안 아플 때가 별로 없다. 천만가지 몸의 변화가 있다. 몸이 바로 그런 거다. 통짜로 산다는 게 이런 모습이다. 몸이 건강하다는 것은 안 아픈 상태가 아니라 아픈 상황에 대처하는 유연성을 말한다. 몸에 문제가 생기거나 아플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명민한 감각’을 갖는 것이다. 아픔에 대해 명민한 몸은 기쁨에 대해서도 명민하다. 몸이 섬세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섬세하게 대응할 수 있다. 평생 머리로만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명민한 몸을 갖기 힘들다. 그렇게 되면 평범한 일상에서 오는 기쁨을 누릴 수 없다. 그저 밋밋해 보이는 것들, 이를테면 날씨의 변화라든가, 몸의 변화 등 삶의 기초적인 것들에 둔감하다. 밋밋한 행위에서 빛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에 빛이 들어오기는 어렵다. 삶의 구십 프로는 그런 밋밋한,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당연한 세계가 근원적인 세계다. 이것을 무시하고 특별한 무엇을 아무리 해도 실은 허망하다. 늘 특별한 것을 추구하면 일상에 무뎌진다. 내가 그토록 공허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공허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다. 우리 삶의 근원적인 토대를 단련시키지 않으면 허무해지기 마련이다. 한 땀 한 땀 손바느질 하듯 걸어서 건강을 얻는 것과 비타민 한 알 먹어서 얻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 구체적으로 몸에 쌓이는 것과 소비하는 것의 차이다. 그 차이는 몸의 느낌의 차이로 온다. 걸으면 다양한 느낌이 몸에 쌓인다. 그 느낌들이 몸을 풍요롭게 한다. 산에 오를 때 걸어서 오를 수도 있고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 몸에 쌓이는 느낌의 깊이는 다르다. 걸어서 가면 구체적인 상황들을 만난다. 들꽃의 향기도 맡고, 새소리도 듣고, 스치는 바람의 서늘함과 들풀들이 발에 닿는 부드러움을 느낀다. 다양한 상황들을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내 몸의 풍요로움이 있다. ▶ 아름다운 몸. 규련 아기의 모습 ⓒ김혜련 얼마 전 우리나라 기타계의 일 세대인 분의 연주를 가까이에서 보고 듣는 호사를 했다. 평생 기타로 살아온 사람의 모습은 온몸이 기타처럼 보였다. 줄을 타는 손가락이 줄밖으로 나오는데, 음도 손가락을 따라 나오는 듯 했다. 거미가 거미줄을 뽑듯 음을 자유자재로 뽑아냈다. 모든 유위(有爲)의 끝에서 무위(無爲)를 이룬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연주를 하면서 계속 기타를 조율했다. 모든 연주자들이 그렇다. 피아노를 조율하고, 첼로를, 바이올린을 조율한다. 몸도 마찬가지다. 내 몸도 계속 조율해 가야 한다. 사실 몸보다 더 아름답고 섬세한 악기가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악기를 섬세하게 조율하듯 내 몸을 민감하게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평범한 일상을 만나도 빛이 난다. 일상의 평범하고 밋밋한 세계가 신성한 빛으로 가득 빛나게 되는 일, 그것이 내적인 초월이다. 몸의 경험이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 나는 몸에 대한 탐구를 하면서 나처럼 일찍 죽은 몸들을 수없이 보았다. 어릴 때의 생생한 기쁨 덩어리인 몸이 압살되어 버린 몸들 말이다. 청소년의 몸은 누구보다 명랑한 몸이다. 이십 대의 몸은 유쾌하다. 명랑함이 통통 튀기는 몸이다. 그런데 현실은 주눅 들고, 죽은 몸들이 너무도 많다. 집에 찾아오는 어린 들고양이는 먹이를 주면 즐거워 어쩔 줄 모른다. 먹으면서 계속 ‘양양양야아양, 야아앙, 양양양앙앙…’ 기쁨에 겨운 옹알이를 한다. 온몸이 통짜로 즐겁다. 내가 잘 아는 한 십대 아이는 배가 고파 밥을 열심히 먹는데, 몸은 먹는 행위와 상관없이 생기가 없다. 몸의 가장 기초적인 즐거움을 못 느끼는 몸이다. 거부당하거나 부정당하고, 학대 받은 몸들 또한 많다. 특히 여성들의 몸이 그렇다. 주변 도처에 비극적인 몸들이 서성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주눅 들고 죽은 몸을 만들어내고 있다. 몸의 경험이 점점 사라져 가는 시대에 ‘몸의 풍요’는 근원적 질문이 된다. 어떻게 풍요로운 몸을 만들 것인가? ▶ 장항리 아기 사자 ⓒ김혜련 악기 같은 몸이 되고 싶다 “흐린 날 산에 오른다. 날이 흐리면 숲은 더욱 고요하고, 어둑한 정기로 가득 차 있다. 보이지 않는 빽빽한 에너지 장을 뚫으며 나가는 듯 몸은 자신과 숲의 질감으로 벅차다. 날이 흐리니 산에 사람이 없다. 홀로 걷는다. 숲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 숲의 강한 향기가 폐를 찌른다.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정적을 깨고 지저귄다. 소나무 숲에 들어서니 어둡고 울울한 태고의 숲에 들어온 듯하다. 늘 앉던 자리에 앉는다.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육중하고도 모호한 몸의 느낌, 몸은 활짝 열려 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다 말다 한다. 우산을 쓰고 마당에 풀을 뽑는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촉촉한 땅에서 풀을 뽑아낼 때의 감촉, 청각과 촉각 모두 생생히 즐겁다.” (2015년 여름) 일상을 소중히 하면 몸이 풍요로워진다. 몸의 감수성이 깊어진다. 저절로 기뻐진다. 그러면 외부의 욕망, 소비 욕망, 타자 지향적 욕망이 줄어든다. 일상을 귀하게 다룰수록 그러해진다. 감각을 투명하게 벼려, 스스로 깊어지는 악기 같은 몸이 되고 싶다. 일다
퀴어여성의 체육활동과 ‘미풍양속’의 관계 다가오는 토요일(21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 게임은 시작됐다”의 대관 취소 사태(관련 기사:배드민턴 치려면 궐기대회 해야 하는 여성성소수자 http://ildaro.com/8019) 이후, 그 부당함을 알리는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가 18일 저녁 대관을 취소한 동대문구청 앞에서 열렸다. ▶ 성소수자에게 체육관을 열어라.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참여자들이 동대문구청 곳곳에 붙인 스티커 ⓒ일다 동대문구체육관 측은 생활체육대회를 주관하는 퀴어여성네트워크에 대관 취소의 사유로 ‘미풍양속’ 위배를 언급한 바 있다. 퀴어여성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하는 것과 미풍양속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어 미풍양속의 뜻을 한번 찾아보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미풍양속의 의미는 ‘아름답고 좋은 풍속이나 기풍’이다. 그리고 ‘풍속’의 의미는 1)옛날부터 그 사회에 전해 오는 생활 전반에 걸친 습관 따위를 이르는 말 2)그 시대의 유행과 습관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또 ‘기풍’의 의미는 어떤 집단이나 지역 사람들의 공통적인 기질이라고 나온다. 여성들이 근대 올림픽에 첫 참가한 것이 1900년, 한국여성들이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48년이다. 거의 70년 전이니까, 여성이 체육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옛날부터 전해 오는 아름다운 습관에 어긋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16년 리우 올림픽의 한국 선수단은 여성 101명, 남성 102명으로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거의 동일했다. 2016년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주 2회 이상 운동을 하는 여성은 49.3%, 남성은 49.2%다. 그러니 현 시대의 유행과 습관의 관점에서도 여성들의 운동과 체육 참여를 미풍양속 위배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여성들의 운동, 체육 참여는 증가하는 추세다. 왜 차별하나요? 그렇다면 문제는 ‘여성’이 아니라 ‘퀴어’여성이라는 지점으로 보인다. ‘퀴어여성은 여성이 아닌가?’ 지난 대선 토론에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동성애 반대 발언을 한 이후, 성평등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을 때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라고 외치며 항의했던 한 인권활동가의 외침이 떠오른다. 퀴어여성은 여성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가에 대한 ‘논쟁이 될 수 없는 논쟁’을 뒤로 하더라도, 퀴어여성에 대한 차별은 과연 정당한가? ▶ 퀴어여성네트워크에서 배포한 피켓 ⓒ일다 우리는 공공체육시설인 동대문구체육관과 그 관리 주체인 동대문구청이 “생활체육에 있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생활체육진흥법 제3조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 공공기관이 어느 개인들의 건강과 관련된 기본적인 요구를 거부한 것과, 미풍양속을 운운하며 개인의 몸과 건강에 대한 주체성을 억압하는 결정을 한다는 것, 이것이 명백한 차별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짚어야 한다. 미풍양속을 근거로,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혐오하는 이들의 ‘민원’을 이유로 체육관을 대여해 주지 않는 행위의 정당성이 있는지 동대문구청에 묻고 싶다. 생활체육하는 모든 이들에게 체육관을 열어라 궐기대회 중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를 위해 풋살팀을 만들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발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런 체육대회, 함께 모여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하는 마음을 더 일찍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실제로 <2016년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체육활동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설문에서 참가자들은 10점 만점에 평균 7.8점을 주었다. 체육활동이 행복감을 느끼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체육 동호회를 희망하는 이유’라는 질문에는 ‘여러 사람과 어울려 운동하는 것이 좋아서’라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지속적으로 건강 및 체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 체육활동 참여 유인책이 되기 때문에’가 그 다음 순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함께 운동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나 모임을 찾고 있다.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의 목적도 그것이었다. 동대문구청 측과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사람들은, 퀴어여성이 ‘미풍양속을 해치려고’ 운동을 하고 체육대회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역사에 어떤 기록으로 남을 것인가 근대올림픽을 만든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올림픽의 창시자로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또 다른 기록이 있다. 여성이 올림픽에 참가한다면 그건 비현실적이고 재미없고 미학적이지 않으며 부적절할 것이라며 여성의 올림픽 참여를 반대한 사람. 이 오명은 계속 회자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궐기대회를 지켜보면서 생각난 영화와 장면이 있었다. 나사(NASA)에서 일한 흑인여성 과학자, 공학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Hidden Figures, 2016)에는 ‘흑인’과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그것에 투쟁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나사(NASA)에서 일하는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에 도전하는 메리 잭슨이 당시 ‘백인’들만 입학할 수 있었던 학교의 차별 행정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후 법정에서 판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최초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제 피부색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전 선택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초로 나사에서 엔지니어가 될 계획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백인 학교에 가야 합니다. 오늘 있는 여러 심리 중에 어떤 심리가 판사님을 ‘최초’로 만들까요? 향후 100년간 어떤 심리가 중요하게 남을까요? 판사님 선택이면 가능합니다.” ▶ 불꽃페미액션에서 준비한 피켓. 어떤 역사로 남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이미 던져졌다. ⓒ일다 동대문구청은 여성소수자 혐오에 굴복하고 퀴어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며 체육대회도 열지 못하게 한 최초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인가, 혐오에 굴복하지 않고 퀴어여성에게 체육관을 내어주고 퀴어여성들의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일조하는 최초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을 매년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대여와 관련하여 오락가락하는 행정을 보이는 서울시 측에, 지난 9월 부산퀴어문화축제 장소 사용 허가를 하지 않았던 부산시와 해운대구 측에, 다가오는 10월 28일 열릴 예정이지만 장소 사용을 “제주 정서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취소한 제주시에도 던진다. 향후 100년간 어떤 선택이 역사에 남을 것인지, 그 역사에 어떤 기록으로 남을지 생각하고 결단해야 할 시점이다. 일다
올 여름 일본 사회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계획만 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이른바 ‘공모죄법’(테러 등 준비죄) 시행으로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국가가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커 ‘마음을 처벌하는 법’으로 불린다. 이미 안보법을 제정해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확대하는 등 ‘전쟁하는 국가’로의 길을 연 아베 정권이 한층 더 우경화되어 ‘감시와 통제 사회’를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크다. ‘말하면 안 되겠지?’ 새로운 공포심을 경계하라 ▶ 정신과 의사이자 릿쿄대학 교수 가야마 리카 씨. ⓒ페민 제공 정신과전문의 가야마 리카 씨는 “공모법죄가 성립되고 정신과 의사로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마음 속 자유의 침해”라며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정신과 의사로서, 마음가짐을 단속하는 이 법으로 인해 제 일의 존재 가치를 박탈당한 느낌입니다.” 가야마 리카 씨는 공모죄법이 성립하기 직전인 5월 31일, 도쿄 히비야 야외음악당에서 열린 공모죄 반대 집회에서 “이것은 인간의 존엄을 건 싸움”이라고 호소한 바 있다. “공모죄법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이 법의 위험을 깨달을 새도 없이 안보법제 이상으로 졸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공모법죄가 성립되고 정신과 의사로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마음 속 자유의 침해입니다.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가,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판단만으로 법에 저촉됩니다. 헌법은 사상과 신념의 자유,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자유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별로 우리가 논의하여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이나 아동 포르노 등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는 범위를 제한해왔습니다. 하지만 공모죄는 우리의 논의 없이, 수사 관계자가 자유의 제한 범위를 정해버린다는 점에서 너무나 위험합니다. 우리에게는 공모죄법보다 상위법인 헌법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헌법에 의지해야 합니다.” 가야마 리카 씨는 공모죄법이 현 정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얼마 전, 오키나와에서 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분이 전하기를, 현지에서는 시위 진압부대가 ‘공모죄를 적용하겠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건 말하면 안 되겠지’, ‘이런 문자를 보내면 안 되려나?’ 하는 새로운 공포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넷우익의 협박에 굴복하지 말 것 릿쿄대학 교수이기도 한 가야마 리카 씨는 (치쿠마신서), (치쿠마프리마신서) 등의 책도 다수 펴냈다. 그는 2014년, 아이누(일본 소수민족) 사람들에 대한 혐오 발언을 듣고 충격을 받은 이후, SNS를 통해 혐오 발언에 대해 적극 항의하기 시작했다. ‘자이니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재특회)의 혐한 집회에 찾아가 항의하기도 했다. 가야마 씨 본인도 혐오 발언의 대상이 되고, 보수 정치가로부터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다. “혐오 발언을 하는, 소위 인터넷 우익(네토우요)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갈 곳 없는 ‘살기 힘든 젊은이들’일 거라고 추측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평론가인 후루타니 츠네히라 씨의 조사 분석에 따르면 그들은 ‘대도시에 사는 30~40대 중산층’, 즉 성공한 사람들이며 ‘내셔널리즘과 신자유주의를 긍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이제는 혐오에 대항(카운터)하는 집회도 열리고 있고, 인권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이나 일부 보수 언론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역시 온라인을 중심으로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은 한결 같습니다. 지금은 한창 양측이 대항하며 싸우는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인기몰이를 위해 혐오 발언을 해대는 정치가들이나 작가들에 대해 비판하고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됩니다.” ▶ 혐한, 혐중 집회에 대한 대항 집회(상), 5월 31일 공모죄법에 반대하는 도쿄 히비야 야외음악당 집회(하) ⓒ페민 지난 6월에는 도쿄도 고토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사회복지협회 주최 강연회가 ‘개최를 방해하겠다’는 혐오세력의 협박에 의해 취소된 적도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만일의 사고로 자녀와 함께 온 청중들이 혐오 세력에 의해 피해를 당할까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강연을 취소하는 것은 차별주의자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행사가 취소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거나, 그에 대한 항의가 들어와 더 시끄러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최 측을 비롯한 기관들이 배웠길 바랍니다. 네트워크 사회론을 연구하는 릿쿄대학 기무라 타다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뉴스 댓글 중 혐한, 혐중 성향이 짙은 댓글이 전체 댓글의 25%이며, 전체 댓글의 20%는 겨우 1%의 사람들에 의해 작성된다고 합니다. 방해와 협박을 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줄 알았더니 실은 소수였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아베 정권은 오만증후군에 빠졌다” 안보법제에 이어 공모죄법도 졸속으로 처리시킨 아베 총리와 각료들에 대해, 정신과정문의로서 가야마 씨가 내린 진단은 “오만증후군”이다. ‘오만증후군’이란, 영국의 데이비드 오엔 의사가 명명한 것으로 ‘권력의 자리에 있는 자에게 일어나는 특유의 인격 변화’이다. 국가와 자신을 동일화시키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의견에 대해 무시하거나 깔보는 경향을 갖는다. 나아가 가야마 씨는 ‘불안의 확산’를 떠안고 아베 총리에게 열광하는 일본국민에 대해서도 분석하며, 공모죄 이후의 일본 사회 과제를 이야기한다.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이 중국에게 역전 당했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부상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도 확산되면서 벼랑 끝 상황에 몰렸죠. 불안한 존재인 스스로에게 억지로 자부심을 갖게 하고 아베노믹스로 생활비를 줄 것만 같은 아베 정권을 ‘믿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국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약자와 개인을 소중히 하자는 목소리들은 ‘편향적’이라며 업신여김 당합니다. 저는 평소 대학생들과 지내고 있어서 ‘취업이 어렵고 살기 어려운데, 자유나 평화나 인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이해합니다. 자신의 몫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는 상류층인 인터넷 우익과 밑바닥 사람들의 생각이 그런 점에서 일치하는 겁니다. 정작 미워해야 할 상대는 자본을 독점하고 개인을 통제하는 사람들인데 말이죠. 하지만 현재, 아베의 지지율은 급락하고 있습니다. 아베가 친구들에게만 편의를 봐주니, 더이상 시민들이 아베를 신용할 수 없게 된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아베 총리 말고는 누구든 나아 보일 정도로 우리의 기준은 낮아졌습니다. (웃음) 이제 우리는 공모죄법 등에 대해 저항하는 지금의 열정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가 라는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 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일다
2017년 개봉한 상업영화 204편 중에서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는 단 4편, 전체의 2%에 불과하다.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아니라, 총 제작한 작품이 4편뿐이다. 상업영화에 비해 훨씬 적은 예산으로 제작되는 다큐멘터리를 포함하여 다양성 영화의 경우엔 총 90편 중 14편. 이중에는 남성감독과 공동 연출도 있어서 여성감독의 단독 연출인 작품은 8편으로, 전체의 9%다. (출처: 2017 여성영화인활동백서)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 중 여성감독의 작품 단 4편 ▶ 2017년 개봉한 여성감독의 상업영화 포스터 상업영화도 다양성 영화도 전체의 10%가 안 된다. 특히 상업영화의 경우에는 이렇게까지 여성감독이 없었나 싶을 정도로 2%는 충격적인 수치다. 한국영화감독조합에 따르면 현재 조합에 가입된 감독은 약 330여명이며 그 중 여성감독은 약 30여명이다. (협회는 개봉 혹은 개봉 예정작이 1편 이상이어야 가입할 수 있다.) 단 4편의 여성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이주영), (이수연), (신수원), (장유정)로 각각 약 35만명, 120만명, 2만명, 150만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다.(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발권통계 기준) 가장 흥행한 작품은 로 올해 흥행 순위 약 20위 내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봉’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는 많은 영화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올해 영화제에서는 여성감독의 작품이 어느 정도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대표적인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 상영작 총 27편 중 6편(22%)이 여성감독의 작품이었다. 특색 있는 장르 단편영화를 보여주는 미쟝센 단편영화제의 상영작 총 70편 중 11편(16%),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독립영화를 보여주는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경쟁 단편 부문 상영작 총 28편 중 15편(54%), 본선경쟁 장편 부문 상영작 총 10편 중 2편(20%)이었다. 개봉된 상업영화 비율에 비해서는 높은 수치이고, 서울독립영화제의 본선경쟁 단편 부분의 54%라는 비율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장편으로 가면 그 비율이 뚝 떨어진다는 사실은 여성 감독들이 장편영화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극장 개봉할 수 있는 상업영화를 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 2017년 흥행 1~10위 영화 포스터. 여성의 모습이 보이는 건 ‘아이 캔 스피크’가 유일하다. 흥행 TOP10 영화 중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 단 1편 2017년은 여성감독뿐만 아니라 여성배우 및 여성배우가 연기하는 여성 캐릭터를 영화 속에서 보기가 특히 힘든 한 해이기도 했다. 10위 안에 들지 못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영화가 기억나는가? 김옥빈의 (정병길 감독), 김혜수의 (이안규 감독), 문소리의 (문소리 감독)…. 잘 떠오르지도 않을뿐더러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김옥빈이 연기한 ‘숙희’와 김혜수가 연기한 ‘현정’이라는 캐릭터는 킬러와 범죄조직의 보스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모성애로 귀결되는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강인하고 다양한 욕망을 표출하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기대했던 관객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는 관객수 약 120만명, 은 약 24만명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발권통계기준) 6월 개봉, 9월 개봉, 9월 개봉, 11월 개봉에서 알 수 있듯이, 올해 상반기 여성캐릭터 부재는 심각했다. 하반기에 들어와서 그에 관한 문제 제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이를 의식한 듯 (정지우 감독, 11월 개봉)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라는 홍보를 하기도 했다. ▶ 영화 ‘침묵’이 벡델테스트를 적용시켜 홍보를 진행했다. 출처 CJ엔터테인먼트 페이스북  벡델테스트는 1985년 미국의 만화가인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의 만화 (Dykes to Watch Out For)에 등장한 캐릭터가 자신이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졌다. 그 기준은 ‘첫 번째, 여성 캐릭터가 적어도 2명 이상 나올 것. 두 번째,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할 것. 세 번째, 그리고 그 대화가 남성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현재 벡델테스트는 영화에서 여성이 등장하는지, 발언의 기회를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유의미한지를 확인함으로써 성평등이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에는 자주 언급되고 있다. 여성캐릭터의 등장조차 보기 힘들었던 올해의 영화들 중에 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 작품은 과연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든 여성 제작자 1명 여성영화인에게 가혹하다 싶을 정도의 결과가 보이는 2017년의 가장 빛나는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건, 2017년 흥행 1위와 천만 관객 돌파 영화로 기록된 (장훈 감독)를 만든 제작사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다. 박은경 대표는 로 54회 대종상영화제 최우수작품상, 38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18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제작자상을 받으며 제작자로서의 능력을 대중에게 알렸다. 그리고 올해 흥행 7위의 , 8위의 또한 각각 여성 제작자인 김지연(싸이런 픽쳐스) 대표와 강지연(시선) 대표, 그리고 심재명(명필름) 대표의 작품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 더테이블, 재꽃, 용순 포스터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다양성 영화에서도 여성제작자들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김종관 감독, 구정아 제작), (박석영 감독, 안보영 제작), (신준 감독, 김지혜 제작)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2017 여성영화인활동백서 참조.) 이 영화들이 여성캐릭터를 내세웠다는 점에 특히 주목하게 된다. 많은 비용을 투입하여 흥행 여부에 매우 민감하고 위험부담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 상업영화의 구조에서는 빠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성 영화를 통한 여성제작자들의 도전은 더욱 눈여겨 볼만 하다. 이런 움직임들이 상업영화의 변화를 끌어올 수 있는 희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의 몫은?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영화산업 내 성희롱, 성폭력 실태도 고발되었다. 그에 따른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자체적으로 촬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고 모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노력하는 영화인도 생기기 시작했다. (참고: 남순아 ‘성희롱도, 욕설도 없는 촬영현장 만들기’ http://ildaro.com/ 8069) 나아가 영화산업 내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상담 및 피해자를 지원을 하고 해외 성평등 영화정책을 연구하는 등의 활동을 펴나갈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여성영화인모임 운영)이 내년 1월경에 오픈 예정이다. 여성영화인들이, 그리고 여성영화인과 관객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지도 못하는 올해의 양상들이 사라지고 내년에는 큰 변화가 생기리라 기대하긴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관객들의 몫은,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그 이야기를 하려는 이들을 응원하는 것일 것이다. 일다
※ , 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와아, 너 인간승리다. 이십대 때 그리도 먹는 걸 경멸하더니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에서 ‘새로 쓰는 혼밥의 서사’(ildaro.com/7921)를 읽은 대학시절 친구의 반응이다. “에이구~ 내 이럴 줄 알았지.” 어느 날의 밥상은 ‘어느 날’일 뿐이지 ‘맨날’이 아니다. 대부분의 날들은 밥하러 부엌까지 가는 일이 멀고도 힘든 일이다. 난 여전히 밥 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 그런 나를 자책하기보다는 당연하다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평생 지겨웠고 의미를 부여할 수 없었는데, 몇 년 노력한다고 바뀌나? 어림없다. ‘하찮고, 돈도 안 되고, 빛도 안 나고, 내가 바뀌든 아니든 특별히 달라지는 것도 없어 보이고…’ 그렇게 수십 년 몸과 마음에 밴 태도다. 밥에 대한 개인적 저항과 사회 역사적 하찮음의 무게와 육체를 경시하는 관념의 무게까지 다 얹혀있는 복잡한 영역인 것이다. 더구나 밥을 한다는 건 천리만리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니 몇 년 노력한다고 개과천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꾸준히 ‘애쓰고’ 있을 뿐이다. ▶ 마당에 차린 밥상. ⓒ김혜련 화려하고 과시적인 밥 이야기들 처음엔 밥에 대한 부정적 관념의 무게부터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했다. 밥을 부정해 왔던 나, 밥이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게 밥이 ‘별 거’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밥을 그저 한 끼 때우는 행위나, ‘한 입에 톡 털어 넣고 마는’ 행위로 여기면 밥을 하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그저 대충 때워도 되고 한 입에 털어 넣고 말 것을 정성들여 하는 일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좋은 음식을 먹어야 건강하다는 현실 논리 같은 것으로 오랜 밥하기의 저항을 밀어내기는 역부족이다. 밥이 왜 그리 소중한지 스스로 절감할 수 있는 언어가 내겐 필요했다. 밥에 대한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역사적인 ‘하찮음’의 무게를 극복할 수 있는 언어, 밥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깨어서 자각하고, 그 의미를 사유할 수 있는 언어 말이다. 도서관에서 밥이 뭔지 알려고 찾은 책들에서는 배운 게 별로 없었다. 대부분의 밥 관련 글들은 ‘밥의 소비자들’이 쓴 글이었다. ‘밥하는’ 일과는 상관없는 사람들이 하는 밥 이야기는 화려했다. 허나 거기엔 어떤 절실함도 없어 보였다. 또는 밥을 관념적으로 엄청 우대하는 글들도 있었지만 실제로 그게 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못하는 글들이었다. 최근 몇 년간 열풍처럼 불었던 먹방이나 쿡방의 밥, 또는 여러 블로그의 밥들은 밥이 우리 생활에 중요한 무엇으로 등장하게 해준 긍정적 측면이 있어 보였다. 밥하는 일이 이제 사회적 의제가 된 것도 같았다. 그러나 그 밥은 주로 ‘보여주기 위한’ 밥이기도 했다. 밥을 해먹는다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 역설적으로 너무도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시대적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죽기 전에 먹(이)는 밥 그러다가 만난 밥이 있었다. 프리모 레비의 에서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는 엄마들의 밥. 내일 죽으러 가는 열차를 타게 되는데, 밤새 아이를 위해 깨끗한 물을 찾고 정성들인 음식을 만드는 엄마, ‘죽으러 가는 엄마가 죽으러 가는 아이에게 해 먹이는 밥.’ 그 밥을 만난 순간의 충격을 뭐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텐데 난 왜 그리 충격을 받았을까? 몇날 며칠을 그 파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때때로 눈물을 쏟았을까? 거기엔 정성이라고는 찾을 길 없이 막 살아온 내 일상이 있었을 게다. ‘곧 죽을 텐데 깨끗한 물이며 정성들인 밥이며가 뭐 그리 중요할까?’ 라고 즉각 되묻게 되는 삶의 천박함. ▶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그렇다고 그것만으로는 경외(敬畏)에 가까운 충격을 설명하긴 어려웠다. 거기엔 어떤 ‘절대적인 것’이 있었다. 하찮게 여긴 세계가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 진실의 얼굴로 나타났을 때 받게 되는 낯선 충격, 놀라움…. 난 밥이 지닌 절대성에 맞닥뜨린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사람은, 생명가진 것들은 먹이를 찾는다. 죽기 전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생명의 마지막 순간에도 남아있는 욕망이 있다면 먹는 것이다. 법정 스님이 죽기 전 드시고 싶어 했던 떡국 한 그릇이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옆 침상에 있던 아주머니 생각이 났다. 그이는 위암 말기여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보리밥을 그토록 먹고 싶어 했다. 어린 딸이 주는 보리밥을 한 입 가득 떠 넣고 입에서 오래 씹다가 뱉어내는 그를 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렇게까지 음식에 집착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그저 비참하게 느꼈던 것 같다. 먹는 일의 절대성이 지닌 삶의 어떤 신성함 같은 것을 이해할 아무런 경험이나 사유도 내겐 없었다. 그 행위가 생명이 지닌 근원적 천진함, ‘살려고 하는 신성한 의지’라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먹는 것에 구차하게 매달리는 비참한 육체를 혐오하는 서구적 문학에 오래 경도된 탓이었을까? [할머니는 아참 하시더니 호주머니에서 뭘 꺼냈다. 크래커, 쿠키, 갑자칩 같은 사원들이 먹다 버린 과자들을 비닐봉지에 따로 싸 놓은 거였다. 할머니는 창문을 열고 여차 하며 과자를 한 움큼 던졌다. 비둘기들이 날아와 과자 부스러기를 쪼았다. 할머니가 다른 쪽으로 던지자 이번에 못 얻어먹은 놈들이 푸드득 날아들었다. “맨 날 모아두시는 거예요?” “응, 얘들이 이 시간에 매일 이걸 얻어먹으러 와, 이 시간이 되면 밥 먹는 줄 알고 으레 와.” 검게 번들거리는 비둘기 깃털들을 보며 나는 괜히 걱정이 됐다. “사람들 다 비둘기 싫어하지 않아요? 먹이 준다고 막 뭐라 그럴 수도 있는데.” 할머니는 한 번 더 과자를 뿌리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다 살겠다고 그러는데, 얼마나 이뻐. 살겠다고 하는 것들은 다 이뻐…”] -김현진의 김현진의 글에 나오는 청소부 할머니의 말이다. 먹는다는 행위의 근원적 천진성을 자기 삶에서 체득한 자의 언어다. ▶ 여름날의 밥상. ⓒ김혜련 생명에게 올리는 예배 사실 밥은 철학적 ‘사유의 영역’이 아니라 ‘당연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밥에 대한 사유가 부재(不在)한 오랜 역사 속에서 밥의 언어를 찾는 게 수월한 일은 아니다. 내가 찾은 밥의 가장 위대한 언어는 동학(東學)의 언어였다.이천식천(以天食天), 향아설위(向我設位). 이 언어를 얻고 나서 나는 밥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밥을 소중히 하는 것이 왜 그리 중요한 일인지 스스로 납득하게 되었다. 이천식천, 하늘님인 내게 하늘님을 주는 게 먹는 것이다. 하늘님인 나는 타(他) 존재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타 존재가 이미 하늘님이다. 향아설위, 나를 위해 위패를 모신다. 자신을 향해 올리는 예배다. 예배는 나 밖의 대상, 신이나 신성한 나무, 바위 등을 향해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예배를 이야기한다. 이때의 나는 주관적, 심리적인 내가 아니다. 우주생명인 나다. 우주생명이 나한테 들어와 있는 거다. 그 생명에게 올리는 예배다 .내가 단순히 오십 여년을 산 존재가 아니라, 수억 년의 오십년이라는 역사성을 지닌 ‘온생명’(장회익)이라는 것을 아는 이야기다. ‘신(神)이 신(神)을 먹는다’라는 사유의 스케일을 생각해 보라. 먹는 존재도 예배의 대상이고, 먹는 나도 예배의 대상이다. 이때 일상은 얼마나 거대하고 위대한 스케일인가. 내가 경멸하고 하찮게 여겨왔던 ‘밥’이 거의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장엄함으로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 M이 차린 정성스러운 밥상. ⓒ김혜련 밥의 의미를 체화해가다 동학의 이 언어를 처음 듣는 건 아니다. 생명운동이나 한살림 운동 등을 시작한 사람들의 바탕이 된 사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언어를 듣기는 들었으되 내 삶으로 스며들지는 못했다. 그러기에는 그 사유와 내 삶의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이 언어가 내 삶으로 들어온 것은 삶을 전환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구체적으로 이 사유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인 M을 만나서다. 그 말의 의미를 M을 통해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 그가 정성스럽게 해 주는 밥을 먹으며, 그 밥의 의미를 새겨가는 과정이 있었다. 그저 막연히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텍스트를 이해하는 차원이었다면, 감탄만 하고 내 몸을 움직이는 실천의 동력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주체가 그 이야기를 자신의 삶으로 살고 있었기에, 그 모습이 내 눈에 참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웠기에 나는 밥에 대한 그토록 오랜 저항을 뚫고 나가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의 밥을 먹으며 그가 하는 행위를 통해 들어온 언어는 나를 바꾸고자 하는 전환의 동력이 되었다. 나는 밥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고 밥을 하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비록 그 속도는 매우 더디지만 말이다. 일다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세 개의 뇌 신경과학자 폴 맥린의 삼위일체 뇌(Triune Brain)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크게 세 개의 층으로 나뉜다. 첫 번째 층은 호흡, 심장 박동, 체온 유지 같은 생명 유지 기능을 담당하는 원시적인 뇌로 “파충류의 뇌”라고 부른다. 두 번째 층은 감정적 행동을 담당하는 감정의 뇌로 “포유류의 뇌”라고 부른다. 마지막 세 번째 층은 추론하고, 논증하고, 판단하고, 창조하는 이성의 뇌로 “인간의 뇌”라고 부른다. ▶ 뇌의 3층 구조 ⓒ출처: pureaffair.com/triune-brain 우리가 안전에 위협을 느끼거나 감정에 휩싸일 때는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인간의 뇌”가 아니라, 두 가지 동물의 뇌 “파충류의 뇌”와 “포유류의 뇌”가 강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갑작스런 폭력과 위험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생각이 멈추고 몸이 굳는다. 즉 신속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좋은 결정을 내리기는 매우 힘들다. 3F 생존 반응 생존하기 위해, 또는 고통이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두 가지 동물의 뇌가 즉각적으로 취하는 반응이 3F라고 불리는 얼어붙음(Freeze), 도주(Flight), 투쟁(Fight) 반응이다. (관련 기사: ‘연습을 해야만’ 위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http://ildaro.com/7643) 실제로 인간을 포함해 동물들이 위험에 반응하는 방식은 흔히 얼어붙음, 도주, 투쟁의 순서다. 얼어붙음 반응은 포식자가 접근할 때, 또는 위험상황에 놓였을 때 발각되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것이 위험을 극복하는 데 적절하지 않거나 최선이 아닐 경우 뇌는 두 번째 방법인 도주 반응을 내보낸다. 얼어붙음 반응으로는 발각되는 것을 피할 수 없고, 거리를 벌리거나 도망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때, 이제 남은 것이 투쟁이다. 투쟁 반응은 최후의 수단일 뿐, 피할 수 있을 때 피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셀프 디펜스에서 모면과 회피가 최고의 미덕이라고 강조한다. 알아두면 좋은 몸의 말 인간은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을 사용해 의사를 전달한다. 흔히 언어적 표현은 “인간의 뇌”인 대뇌신피질과 연결되고, 비언어적 표현은 인간의 감정과 오래된 습관으로 “포유류의 뇌”인 변연계와 연결된다고 한다. 의식하든 안 하든 순간순간 우리는 반사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즉 몸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몸의 말을 더 잘 이해하고, 더 적절히 사용한다면 셀프 디펜스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우리의 생존 본능은 ‘눈 가리기’를 통해 정보를 차단한다. 걱정이 있거나 두렵거나 싫을 때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실눈을 뜨거나, 눈을 꽉 감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등을 돌려서 보지 않으려고 한다. 연인 사이나 엄마와 아기처럼 사랑이나 호기심이 있을 때는 서로의 눈을 응시한다. 그러나 상대를 복종시키거나 위협할 때도 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뇌는 사랑, 관심, 증오를 전달하기 위해 ‘강한 응시’를 이용한다. ▶ 본능적인 반응 ‘눈 가리기’ ( pexels.com의 CC0 라이센스 사진입니다.) - 손과 팔 직립보행을 하면서 우리는 손과 팔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됐다. 외부 위협에 대해서도 일차적으로 손과 팔이 반응한다. 물체가 날아오거나 사람이 가까이 올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손과 팔을 사용해 막으려고 한다. 심지어 누군가 총을 쏴도 손과 팔을 들어 방어하려고 한다. 팔로 총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 몸통 우리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지배하려고 할 때 가슴을 부풀린다. 화가 나서 흥분하거나 상대를 위협할 때 가슴을 부풀리고 헐떡거린다. 실제로 상대를 때리려고 할 때 가슴이 부풀려지는 사례가 많이 관찰된다. 몸통에는 심장, 폐, 간, 소화기관처럼 생명과 직결된 내장기관이 집중돼있고, 특히 몸통의 앞면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그래서 뇌는 위험한 상황이나 감정적으로 불편한 상황에 처하면, 몸통의 앞쪽을 보호하려고 몸을 돌린다. - 발과 다리 발과 다리는 수백만 년 동안 우리의 주된 이동 수단이었다. 인류는 발과 다리를 이용해 도망치고, 일하고, 생존했다. 예를 들어 바닥이 뜨겁거나, 해충을 만나거나, 열매를 떨어뜨리기 위해 발을 떼거나 멈추거나 도망치거나 차면서 발과 다리를 사용했다. 이러한 행동은 여전하다. 우리는 위험하거나 기분이 나쁘면, 발을 멈추거나 거리를 벌리고, 달리고, 무언가를 걷어찬다. 그리고 생존을 위한 투쟁 반응에 돌입했을 때 발차기를 배우지 않았다 해도 발과 다리는 싸우고 찰 준비를 한다. ▶ 본능적인 몸이 하는 말 ⓒ출처: flickr.com/photos/stuant63/2255781557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처럼 우리의 뇌에는 생존 본능이 내재돼있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누군가 갑자기 일직선으로 다가온다면,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뇌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위험을 느끼거나 불편하다면, 본능적인 반응을 무시하지 말고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발과 다리가 하고 싶은 대로 거리를 벌리며 멀어지고, 몸통이 하고 싶은 대로 몸통의 앞을 보호하고, 손과 팔이 하고 싶은 대로 민첩하게 막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때로는 본능적인 반응을 극복해야 한다. 두렵고 싫어도 ‘눈 가리기’를 해서는 안 된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지 않고 보면서 위험상황에 대한 정보를 인식할 때 제대로 대응하고 안전해질 수 있다. 증오심으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기보다는 시야를 넓게 가져 상대의 움직임과 주변 상황까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은 지금 이 글을 읽음으로써 정보를 얻었다. 직접 경험하고 연습할 기회를 갖는다면 정보는 지식이 될 것이고, 신뢰할 만한 효과적인 해법을 갖게 된다면 그것은 자산이 될 것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 ⓒ스쿨오브무브먼트 일다
※ 고령화와 비혼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비혼여성들이 부모나 조부모, 형제를 간병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개인의 영역에 머물고 있습니다. 는 가족을 간병했거나 간병 중에 있는 비혼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공유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엄마, 아빠가 돌아가실 것 같아.” 미동 없는 손가락에 연결된 모니터의 숫자들이 빠른 속도로 내려갔다. 폐를 둘러싼 근육이 무리를 하게 되면 피로가 쌓여, 어느 순간 갑자기 힘을 확, 놓는 경우가 있다며 모니터를 잘 지켜보라는 얘기에 꿈쩍 않고 모니터를 지켜봤다. �q �q, 거리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고 초점 없던 눈이 감겨있었다. 살짝 눈물을 흘렸는지 얼굴을 쓰다듬고 마지막 인사를 하던 엄마가 아빠의 눈 주위를 훔쳐 냈다. 푹 꺼진 양 볼에 위태롭게 매달린 산소 호흡기를 떼어내자 모니터의 숫자는 0으로 바뀌었다. 2016년 5월 29일 새벽 1시 9분. 호흡곤란으로 119를 타고 응급실에 도착 후 완화의료 병동에 입원한지 일주일,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이 조용히 마지막을 보내도록 마련된 1인실에서의 이틀째 밤이었다. 폐암 4기, 아빠에게 내려진 선고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비틀 걷는 모양새가 혹시 풍이 오는 거 아니냐는 엄마의 걱정에도 아빠는 쓸데없는 소리라며 도리어 화를 냈다. “술 한 잔 마시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니 걱정하지 말라”면서 역정을 냈다. 우리 집은 병으로 돌아가신 분이 한 분도 없는 장수 집안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술과 담배를 많이 하고도 별 일없이 장수 할 거라는 믿음의 근원은 큰 병 없는 가족력 때문이었다.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나서야 아빠는 동네 신경외과에 갔다. MRI를 두 차례 찍고 대학병원 검사를 권유받았다. 머리에 몇 개의 종양들이 보인다는 소견서도 함께였다. 정밀검사를 하기 위한 입원 결정이 내려졌다. 아빠는 자신의 몸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임을 인지했고 불안함에 연신 담배를 폈다. ▶ 며칠간의 정밀검사 끝에, 아빠는 비소세포성 폐암 4기로 뇌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미지: pixabay.com) 며칠 동안의 검사 결과, 비소세포성 폐암 4기로 뇌 전이가 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희고 고운 손을 가진 담당의는 A4용지에 폐암, 비소세포성, 수술, 항암, 여명… 이런 단어를 적고 하나씩 지웠다. 수술은 시기가 지나 불가능하고 암세포만을 공격해 죽이는 표적치료제는 유전자 검사 결과 맞지 않았다. 남은 건 항암제를 사용한 약물치료였다. 항암치료를 포기할 경우 아빠의 여명은 3개월, 항암치료를 한다 해도 여명은 겨우 1년 남짓이었다. 뇌전이로 한쪽이 곧 마비되니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항암치료는 받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죄 안 짓고 남한테 폐 안주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엄마는 울었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 암은 내 주변이 아닌 드라마에서나 생기는 병이었다. 암 병동의 수많은 환자들을 보고서야 하루아침에 날벼락 같은 일을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님에 위안을 얻었다. 경험을 같이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며 안심이 됐다. 교통사고로 아무 준비 없이 죽음을 맞는 사람도 많은데, 적어도 마지막을 준비할 시간이 있는 게 다행 아니냐며 서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청천벽력 같은 암 선고와 함께 이 사실을 아빠에게 전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받아 단 몇 개월이라도 생명을 연장하는 게 맞는가의 물음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결국 있는 그대로를 아빠에게 설명하기로 했다. 항암치료를 받을 사람도, 삶을 선택할 사람도 아빠였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 폐암이나 항암에 관한 정보를 찾아 아빠에게 전달하고 주변의 경험들도 들려줬다. 아빠는 고민 끝에 항암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억울하다” “화가 난다” 아빠의 분노 30년 동안 아빠와 함께 장사를 한 엄마는 단골손님들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없다 했다. 당연히 엄마가 아빠의 병간호를 하리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엄마는 단호했다. 무엇보다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아빠를 보기 힘들다고 했다. “나중에 어머님에게도 아버님의 모습이 트라우마로 남으실 수 있어요. 저희 엄마도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 굉장히 힘들어하셨거든요. 그냥 우리끼리 나눠서 해요” 라는 올케 의견을 참고해, 엄마는 간병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결혼과 함께 귀농한 언니는 간병을 하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고 여동생은 맞벌이에 임신 중이었다. 남동생은 학원일이 늦게 끝나 평일엔 시간이 없었고 올케 또한 임신 중이었다. 당시 나는 새로 시작하려던 일이 연기되며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부모님과 살고 있으니 짐 챙기기에도 수월했고, 비혼으로 돌봐야 할 자식도 없으니 다른 형제에 비해 주도적으로 간병을 맡게 됐다. 평일엔 내가 주말엔 동생들이 교대로 병실을 지켰다. 가끔 볼일이 생기면 동생 중 한명이 연차를 내고 교대를 해줬다. 어느새 병실에서 아빠는 아내 없이 자식들을 키운 훌륭한 아버지로,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돌아가며 간호하는 효심 가득한 자식들이 되어있었다. 이런 얘기를 하며 문병이라도 오라고 말하면 엄마는 피식, 웃고 말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혼자 묵묵히 아빠의 빈자리를 지키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렸음을 안다. 빨개진 눈과 멍멍한 콧소리가 엄마도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듯 했다. 엄마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돼보였다. 그런 엄마에게 무리하게 간병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체력으로나 병원에서의 일처리나 누구보다 내가 잘 할 자신이 있었고 감정 조절도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가끔 엄마는 “니가 있어 든든하다”거나 “너 없으면 큰 일 날 뻔했다”며 나에게 기대곤 했다. 엄마도 늙었다, 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나는 부모의 보호자가 되었고 책임감이 느껴졌다. ▶ 암환자인 아빠에게 찾아온 건 분노와 수면장애였다. ⓒ밀알 암 환자는 흔히 죽음, 장애, 의존, 외모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며 심리적 위기를 겪는다고 한다. 보통 시간에 따라 3단계로 나뉘는데 암을 진단받은 1주일 이내엔 분노, 부정, 불신, 절망 등을 경험하고, 두 번째 단계에선 암이나 죽음에 생각으로 우울, 불안, 불면, 식욕부진 등이 나타난다. 마지막 단계에 와서야 진단과 치료 과정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대처 방식을 찾아낸다. 아빠에게 찾아온 건 분노와 수면장애였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곧바로 잠을 자던 사람이 한숨도 자지 못하는 날이 계속됐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면 다시 잠들기 어려웠다. 그럴수록 예민해진 신경 탓에 자주 짜증을 냈다.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한 병원에선 침대가 딱딱하다고 화를 내고, 옆 사람의 코골이에 짜증을 냈다. 집에서 이부자리를 가져와 푹신한 침대를 만들면 이번엔 이불이 무겁다고 화를 냈다. 잘 먹는 반찬이 나오지 않으면 밥이 맛없다며 영양사를 호출했다. 혈관이 잘 안보여 주사 놓기 어려운 팔이라는 얘기를 듣더니, 실력이 없다며 간호사에게 면박을 줬다. 아빠에게 주사를 놓을 상황이 오면 주사 전담 간호사가 병실을 다녀갔다. 텔레비전 소리가 크면 크다고 작으면 작다고 화를 냈다. 무언가 할 때 전화가 걸려오면 “이럴 때만 딱 맞춰 전화를 한다”며 짜증을 냈다.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병원에 커피 마시러 왔냐”고 화를 냈다. 진료 시 생년월일과 이름을 물으면 “사람을 바보로 보느냐”며 인상을 썼다. 가끔은 왜 화를 내시냐고 말하는 병원 직원과 싸우기도 했다. 아빠의 분노가 암 환자에게서 처음에 나타나는 정상적인 반응이요, 나를 향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감정들이 요동쳤다. 어떨 땐 참지 못해 신경질을 내며 따져 묻곤 했다. 왜 자꾸 짜증을 내냐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아빠처럼 유별난 사람 봤냐고. 아빠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못하냐고, 이제 마음을 좀 다스려보라고. 간호사실에 부탁해 수면제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모두가 자는 새벽이면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수액 폴대를 밀고 병실 문을 나섰다. 피곤한 날엔 아빠가 비운 침대에 올라 눈을 감기도 하고, 때로는 아빠와 텅 빈 병원 로비를 걸어 다니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병원 로비에 앉아 아빠는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화가 난다”고. “고향에 가고 싶다”고도 했다. 항암을 시작하기 전 다녀오고 싶다고. 그래야 마음의 준비가 될 것 같다고. 그럴 때 아빠의 환자복은 아빠보다 더 크게 보였다. 낮 동안 요동쳤던 감정의 잔해들이 가라앉았다. 가끔은 아빠와 그렇게 화해했다. 간병, 끝이 있으니 아름답다는 말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이라 퇴원은 힘들다는 담당의를 설득해 집에 왔다. 의식불명 상황에서 인공호흡기나 심폐소생술과 같은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는 서명도 했다. 대중목욕탕에 가지 말 것과 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받았다. 퇴원을 했지만 방사선 치료는 외래를 통해 받아야 했다. 암이 더 진행되면 편마비가 오고 인지능력이 떨어져 혼자 보행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었다. 매일 3분씩 11번에 걸쳐 방사선치료를 시작했다. 두통이 나기도 했지만 뇌압을 조절하는 약을 먹으면 가라앉았다. 아빠는 치료를 썩 잘 받았다. 무엇보다 치료 시간이 짧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치료가 끝이 났을 땐 머리카락은 빠져 모자를 써야했고, 종양은 조금 작아졌다. 집에서 왕복 2시간 거리의 병원을 다니면서도 아빠의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병원에 있을 때보다 짜증도 줄어들고, 식사도 잘 하고 잠도 조금씩 자게 됐다. 머리의 종양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고 있는 걸 확인한 후였다. 치료가 끝나면 사람들로 붐비는 채혈실 앞 의자에 앉아 아빠는 생강대추차를, 나는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아빠는 “고맙다”라는 인사를 커피 한 잔 뽑아 먹으라며 동전을 건네는 것으로 대신한 것 같다. ▶ 항암치료는 체력 싸움이었다. 어느새 내 삶은 아빠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밀알 본격적으로 항암치료가 시작됐다. 다행히 항암제는 아빠에게 맞았다. 우려한 만큼 부작용은 심하지 않았다. 근육통이 있지만 구토나 메스꺼움은 없었다. 혀가 민감해져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지만 그 외에 먹고 싶은 건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항암치료는 체력 싸움이었다. 잘 먹고 잘 쉬어 몸을 회복시킨 후 항암제로 다시 커지는 세포를 억제했다. 암세포는 조금씩 홀쭉해졌다. 항암치료를 하고 회복하고의 과정이 3주에 한 번 씩 반복됐다. 입맛이 없으면 식욕촉진제를 처방 받고 근육통이 심해지면 진통제를 처방 받았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면역주사를 3일간 한 차례씩 같은 시간에 맞았다. 보통은 내 휴무에 맞춰 다음 항암 일정을 잡고 외래 진료 시간을 예약했다. 아빠가 5차 항암치료를 할 무렵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아빠의 병세는 계속 제자리였고 나는 경제적으로 빠듯해졌다. 항암 싸이클만 잘 맞추면 일하기에 무리는 없을 듯했다. 단지 아빠의 컨디션에 따라 병원에 다니는 날이 들쑥날쑥하다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일터에 간병사실을 먼저 알리고 양해를 구했다. 내 경우엔 1년여라는 시간을 생각해서 아빠의 병원 일정에 맞춰 쉴 수 있도록 직장에서 배려해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간병에만 매달리면 우울증에 걸린다며 민폐더라도 일을 쉬면 안 된다는 주위의 조언과, 지금은 아빠의 간병을 우선하라는 동료들의 배려도 있었다. 연차휴무를 다 쓰면 무급으로 쉬더라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출산휴가를 낸 여동생도 매일 집에 와 낮 동안은 엄마와 함께 아빠를 돌봤다. 어느새 내 삶은 아빠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다. 출근하기 전 아빠의 약과 식사를 챙기고, 퇴근하면 바로 돌아와 항암으로 검게 변한 발톱을 보며 팔다리를 마사지했다. 아픈 곳은 없는지 묻고 열이 나면 체온을 체크했다.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한 번에 쌍화탕을 두 병이나 마시고 잤다. 아빠에게 감기를 옮겨 폐렴으로 응급실에 가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일터와 집, 병원을 오가는 삶이 전부가 되어 있었다. 노래가 마냥 좋아 시작했던 합창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번역해보고 싶어 시작한 번역수업도 빠지게 됐다. 친구와의 만남은 수시로 어긋나기 일쑤여서 약속을 잡는 것도 미안했다. 가끔씩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끝이 있으니 아름답다”란 말을 반복해서 생각했다. 그럼 턱 밑까지 차오르던 숨이 조금은 내려갔다. 부모를 간병하는 일본 중년남성 28명의 인터뷰를 실은 (히라야마 료 지음, 류순미 송경원 역, 어른의 시간)이란 책에는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라고 간병해온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간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사람도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고 했다. 간병의 가장 큰 괴로움은 고독감이라 한다. 아빠를 간병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러다 너 나중에 후회한다”였다. 그러니 지금 잘하라고. 가끔 아빠에게 화가 나 잔소리를 하거나 투닥거려 짜증난 마음을 얘기하면 열에 아홉은 똑같이 그렇게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기서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어떻게 더 이상 잘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는 죄책감을 내게 굳이 심어주는지, 왜 내 감정은 항상 나중에 할지도 모를 후회에 가려져야 하는지, 더군다나 왜 꼭 후회를 할 것이라 생각하는지 묻고 싶었다. 아무도 내 마음은 들여다봐주지 않았다. 스스로 다독거리며 입을 닫았다. 한 친구는 내 간병 상황을 접하자 그때서야 자신도 20년 동안 아빠의 병으로 고통 받아 왔노라 얘기했다. 그리곤 20년이나 지속될지 몰랐을 간병 생활에 진저리를 쳤다. 나는 아빠와 다투고 화해한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는 싸우면서 감정을 알아챘고 화해하며 서로를 의지했다. 혼자만 쳇바퀴처럼 도는 간병이란 굴레에서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에게도 사회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영원히 기억될 오월, 아빠의 마지막 날 13차 항암치료에 더 이상 암세포가 반응하지 않자 병원에선 약을 새로 바꾸기로 했다. 새로운 항암제는 맞는 과정부터 아빠를 힘들게 했다. 숨이 가빠져 한 차례 쉬었다 맞고 항암치료가 끝나고 나타나는 통증의 강도도 훨씬 셌다. 결국 항암치료는 중단됐고 완화의료 진료를 시작했다. 통증 부위에 마약성 패치를 부치고 마약성 진통제를 먹었다. 항암을 중단한 후 아빠의 몸은 빠른 속도로 나빠졌다. 세 걸음 이상 걷기 힘들어 했고 말 한마디를 하려해도 기침을 하느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가래는 계속 끓어올랐다. 어제는 일어났다면 오늘은 겨우 앉아있을 수 있었다. 그 즈음 아빠는 집에서도 가정용 산소 호흡기를 사용했다. 칠순을 일 년 앞둔 2015년 봄이었다. 폐암환자들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본 적이 있다. 가장 고통스런 죽음이 폐암이라고 했다. 숨을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으니 문을 박차고 뛰어나갈 만큼 힘들다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 또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조금씩 나는 마음속으로 아빠와 헤어질 준비를 했다. 오월의 어느 날 아침, 아빠는 엄마를 통해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일터에 늦는다고 전화를 했다. 아빠는 힘겹게 이부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한 지 일주일이 되었다. 복수에 물이 차서 숨 쉬는 게 더욱 더 힘들어 보였다. 우리는 모두, 아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했다. 아빠는 꿈에 할머니를 만난 얘기를 하며 얼마 못 살 것 같으니 죽거든 화장하지 말고 고향 선산에 묻어 비석을 세워달라고 얘기했다. 유언인 했다. 각오는 했지만 아빠의 힘없는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다음에도 우리 가족 이대로 또 만나자고 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나는 오히려 씩씩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힘없이 누워있는 아빠에게 “다녀올게, 잘 견디고 있어. 저녁에 봐” 라는 인사를 남겼다. 서로 씩씩하게 견디자는 내 맘이 아빠에게 전달될 거라 믿으며… 그리고 그날 오후, 아빠는 호흡곤란으로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병원 침대에 누워 가끔 목이 타는지 물을 찾고 통증을 호소했다. 가래 삭히는 약을 최대치로 써도 다시 가래가 쌓여 숨 쉴 때마다 쇳소리가 났다. 모르핀도 수시로 맞았다. 눈동자는 노래지고 초점이 없어져 갔다. 축 늘어진 몸을 옆으로 한 번씩 뒤집어 가며 기저귀를 갈았다. 아빠는 이미 의식이 없어보였다. 다만 한 손을 자꾸 올려 문을 여는 동작을 했다. “왜 그래? 거기 뭐가 있다고? 밖에 나가자고?” 엄마가 물으면 고개를 미세하게 흔들었다. “그럼 집에 가자고?” 아빠가 눈을 깜박 감았다 뜨며 허공의 문을 열었다. “좀 있다 갈 거야.” 엄마는 마지막 거짓말을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편안한 노후를 원한다. 그리고 자신이 살던 집에서 죽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힘든 치료를 받고 가족이 아닌 의료진이 지켜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아빠도 집에서 죽기 원했는지 모른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익숙한 이부자리 위에서 크게 숨 한번 들이쉬고, 내뱉고, 그대로 조용히 숨을 거두기를 희망했는지 모른다.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 119를 부르지 않았다면 아빠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돌아가셨을까…. 하지만 “죽음이 바로 옆에 와 있는 자신의 가족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지켜보는 것”은 “어지간한 각오로는 할 수 없는 일”(오시카와 마키코 지음, 남기훈 역 , 세움과비움)이었다. 엄마는 눈이 뒤집혀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아빠의 모습에 119를 부를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마지막 아빠의 유언은 지키지 못했다. 매장 대신 화장을 택했고, 비석을 세우는 대신 납골당에 모셨다. 대신 아빠가 즐겨 입던 옷을 선산에 묻어 주었다. 아빠가 사랑했던 소나무 두 그루와 함께. ▶ 응급 수송된 아빠는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이미지: pixabay.com) 처음 아빠의 기저귀를 갈던 때 항암치료를 받을 경우 1년 정도 더 사실 수 있다는 의료진의 얘기보다 아빠는 3개월을 더 사셨다. 그동안 기다리던 손자들도 태어났다. 친손자의 이름은 지어주고 싶다는 아빠의 소망은 이루어졌다. 그렇게 나의 1년 3개월의 간병은 끝이 났다. 아빠는 종종 내가 없었다면 벌써 죽었을 거라 얘기하곤 했다. 그 말은 내게 부담과 동시에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노년에 노후를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해서인지 나의 비혼을 지지해서인지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아빠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내 말에도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한 명쯤은 시집을 가지 않고 같이 살아도 좋다며 오히려 기뻐했다. 지금은 아빠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간병 기간 동안 처음으로 아빠의 기저귀를 갈던 때가 떠오른다. 망설이는 나에게 젊은 간호사는 잘 부축하라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아빠의 옷을 내리고 한 쪽 엉덩이를 들어 올리며 기저귀를 시트에 깔았다. 처음으로 아빠의 민낯을 본 기분이었다. 의식 없이 누워있는 길고 큰 육체가 가여워졌다. 누구보다 자존심 강하고 멋 내기 좋아하던 아빠가 다른 이의 손에 갓난아이처럼 다뤄지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비틀대면서도 화장실을 가던 아빠였다. 의식이 있다면 누구보다 자신의 이런 처지를 괴로워할 것 같았다. 나는 아빠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주고 싶었다. 간호사의 동작을 잘 보고 배워 다른 이의 힘을 빌리지 않고 혼자서 능숙하게 아빠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 아빠가 내게 그랬듯이. ▶ 지금은 아빠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밀알 “이번엔 내 차례인 거지…” 최근에 이사를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는 여전히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혼자서는 식사를 거르는 눈치였다. 간신히 옷만 갈아입으면 방엔 들어가지 않고 잠은 거실이나 내 방에서 잤다. 아빠가 누워있던 방은 언제나 방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엄마에겐 새로운 환경이 필요해 보였다. 그리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항상 집에 돌아올 땐 현관 앞 계단 난간의 차가운 손잡이에 이마를 대고 머리를 식히던 아빠의 모습이 보였고, 옥상에 올라가면 나무에 물을 주고 청소를 하던 아빠의 모습이 그려졌다. 종일 텔레비전 소리로 시끄러웠던 거실이 조용할 때면 아빠의 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부재를 느낄 필요가 없는 다른 환경이 필요했다. 서둘러 이사를 결정하자 엄마는 ‘우리가 함께 살 집을 알아보라’고 했다. 엄마의 ‘우리’라는 단어에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엄마 또한 돌봄이 필요할 시기가 올 것이다. 그때에도 나는 다른 형제들보다 먼저 엄마의 간병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부디 그 시기가 최대한 늦게 오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들어 육아휴직 중인 여동생이 일주일에 이삼일은 집에 와 머무른다. 엄마의 외로움을 덜어주고자 하는 목적도 있지만 연년생인 두 아이를 혼자 돌보기 힘들어 손을 빌리러 오는 것이다. 덕분에 요즘은 엄마의 건강을 챙기는 일과 함께 육아라는 고된 노동도 경험하고 있다. 이어달리기 하듯 계속되는 돌봄이 힘들 때도 있지만 옆에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사람들을 보면 나 역시 힘이 난다. 얼마 전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과 통화를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자 친구는 어머니를 모시고 매일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고생이 많다는 나의 위로에 친구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했잖아. 이번엔 내 차례인거지…” 누구에게나 인생의 한 단계를 통과하는 시기가 있다. 나는 지금 돌봄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하는 시기를 통과중이고 부디 씩씩하게 즐겁게 해나가기를 바래본다. 죽음이 찾아오는 동안 누군가의 돌봄은 필요하다. 언젠가 누구에게나 보살핌을 주고 보살핌을 받는 시기는 찾아온다. 나는 이런 나의 간병의 기억이 개인적인 경험으로 머물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노화와 질병과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먼저 바뀌어야 한다. 나는 어떤 노년을 바라는지, 어떤 죽음을 맞고 싶은지,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터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일다
※ 지구별에 사는 34년산 인간종족입니다. 지금은 그림을 그립니다. [작가 소개: 아주] ▶ 아톰 라인 ⓒ아주의 지멋대로 일다
본지가 2016년 11월 7일 보도한 『문화예술계 성폭력…기록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 제하의 기사에서. ‘미성년자 문하생 대상 성추행’ 부분은 박진성 시인과 관련이 없어 일부 정정합니다. 일다
아침에 50분 더 잠을 잘 수 있게 됐다. 구리 친구 집에서 강남 고시원으로 거취를 옮긴 까닭이다. 출퇴근 시간 지옥버스,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되니 여유가 생겼다. 이 여유라는 것을 담보로 한 달에 32만 원을 지불한다. 32만 원짜리 공간은 주거 공간이라기 보단 서랍장 같은 느낌이다. 효율적으로 물건을 담기 위해 따박따박 칸막이 쳐진 서랍장. 효율적인 싱글침대, 효율적인 옷장(이라기 보단 옷걸이), 효율적인 책상, 효율적인 의자, 효율적인 미니 냉장고! 딱 이정도 물건이 아주 효율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단잠 자는, 효율성을 싫어하는 효율적인 인간 하나. ▶ 나를 위한 가장 티나는 돌봄, 빨래 ⓒ머리 짧은 여자, 조재 ‘구리에서 출퇴근이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리겠네, 수도권 사는 사람들은 다 그 정도 시간은 기본으로 들여서 다녀요.’ 면접 보는 날 사장님이 말했다. 그렇구나,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나라고 못할 것도 없어보였다. 짧은 기간 직접 생활해보니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게 마땅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일주일 중 5일은 오직 임금노동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노동시간은 10시간인데 출퇴근만 3시간이 걸리니 말이다. 이 불합리에 아침저녁으로 치를 떨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것이겠지. 마땅하지 않아도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런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구리를 떠나 강남 고시원에 살게 된 것이다. 나름 대안이라면 대안이겠으나 적은 월급에 월세까지 뜯기니 속이 좀 쓰렸다. 그럼에도 당장 몸이 편해지니 손바닥만 한 공간이라도 감사한다. 시간 여유가 생겨 다른 활동을 할 기력도 생겼다. 기력이 생기자마자 하고 싶은 건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활동을 한다든지, 아니면 나를 입히고 먹인다든지, 그냥 그 정도의 소소함. 장시간 출퇴근할 때는 기력이 없어 꿈도 못 꾸던 일이다. 빨래를 돌린다.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넣고, 다 된 빨래는 양 끝을 잡아 각을 맞춰 탁 털어준다. 섬유유연제 향이 배어있는 빨래가 바싹 마르면 차곡차곡 접어 침대서랍에 줄 맞춰 넣어둔다. 이 고시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티 나는 일, 나를 위한 돌봄이다. 별거 아니지만 만족스럽다. 서랍장 같은 공간에서 빨래 너는 행복이라니 어딘가 우습다. 동네 산책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버티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사는 곳’이 되려면 산책이 필요한 것 같다. 일다
지난 10월 23일, 미국 IT 잡지 와이어드(Wired)에서는 ‘로봇 완구가 소녀들을 과학과 기술에 관심을 가지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Can Robots Help Get More Girls Into Science and Tech?)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미국 내 여성 엔지니어의 비율이 12% 밖에 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실리콘밸리 내 성차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올해 실리콘밸리에서는 성차별 발언, 임금 불평등 문제들이 불거져 논란이 되었다. 실리콘밸리 내 여성 임원의 비율이 낮다는 점은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되어왔다. 왜 여성 엔지니어 비율은 이렇게 낮은 것일까? 여성들은 정말 과학, 수학, 기술 등의 분야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와이어드의 보도에 따르면 이런 젠더 스테레오타입은 어렸을 때부터 사회와 부모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어린 아이들에게 무심코 건네는 장난감부터 말이다. 여성, 남성의 능력은 과연 타고난 것일까? BBC에서는 지난 8월 “실험: 당신은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을 젠더 스테레오 타입에 따라 선택하고 있진 않나요?”(The Experiment: Are you sure you don't gender-stereotype children in the toys you choose for them?)라는 작은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 BBC의 실험 유튜브 영상 이 실험에서는 아직 언어를 익히지 못한 유아인 마니(Marnie)와 에드워드(Edward)에게 각각 다른 성별의 옷을 입히고 Oliver(올리버)와 소피(Sophie)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그리고 성인들이 이 아이들과 놀면서 어떤 장난감을 건네는지 살펴본다. 성인들은 소피에게는 ‘인형’과 ‘부드러운 장난감’을 건넨다. 올리버에게는 ‘자동차’, ‘조립 장난감’ 등을 건넨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장난감들을 가지고 논다. 또 성인들은 소피에게는 인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반면, 올리버는 자동차 장난감에 태우는 등 육체적인 운동을 시킨다. 실험에 참가했던 성인들에게 사실 소피는 에드워드이고 올리버는 마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이들은 놀라며 이렇게 말한다. ‘오. 그렇군요. 전 소피가 여자 아이니까 여자 아이의 물건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 제가 오픈 마인드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놀라워요’, ‘여자 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핑크색의 장난감이나 인형에 손이 간 것 같아요.’ 여성들은 조립 같은 걸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걸 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실험에서 아이들은 건네 받은 장난감을 잘 가지고 논다. 사실은 마니였던 올리버는 자동차도, 조립 완구에도 거부감이 없다. 인형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사실 에드워드였던 소피도 마찬가지다. 핑크색 장난감이 싫다고 울지 않았다. 젠더 구분하는 완구를 비판하는 목소리들 캘리포니아 대학의 교수이자 사회학자인 엘리자베스 스위트(Elizabeth Sweet)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젠더별 완구가 아이들의 놀이 취향과 스타일을 형성하며, 이것이 아이들의 자신의 취향,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탐험하는데 제한을 주게 된다’고 한다. 젠더를 구분하는 완구는 ‘남성성’, ‘여성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것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단순히 노는 시간이라고 생각되는 그 시간 동안 많은 아이들이 자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것은 어른들이 건네는 장난감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젠더별 완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왔다. 그에 따라 미국의 가장 큰 유통업체 중 하나인 타겟(Target)은 쇼핑몰 내 완구 코너에서 ‘남아용 완구’, ‘여아용 완구’라는 말을 없애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여아용, 남아용 완구라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에서 “완구가 완구일 수 있게”(Let Toys Be Toys)라는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은 시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 제조사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여름, 세계적 완구 제조사인 하스브로(Hasbro)의 CEO는 ‘저희는 예전의 젠더별 완구를 없애고 있습니다’(We eliminated the old delineation of gender)라고 밝혔다. 또 하스브로의 대표작 중 하나이며 여아 대상의 완구로 불려온 ‘마이 리틀 포니’(My little Pony)의 이용자 중 30%가 남아라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요즘 학부모 사이에서도 이슈인 ‘코딩’을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코딩 완구도 젠더리스(genderless)로 등장하고 있다. 남아용으로 강조되지 않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색을 쓰기도 하고, 그 동안 인형을 가지고 놀던 여아들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차나 트럭처럼 보이지 않는 로봇 코딩 완구도 나왔다. ▶ 여자 아이들이 코딩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완구 ⓒSmartGurlz 여아용, 남아용 테두리를 벗어나서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젠더리스 완구와 관련한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여전히 여아용, 남아용 완구라는 말이 만연하게 사용되고 있다. 젠더리스(genderless), 젠더프리(genderfree)라는 용어가 사회 전반에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완구 시장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 여아를 위한 로봇 완구가 나오지 않는지, 왜 고려조차 되지 않는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많이 보는 애니메이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분법적인 성역할이 강조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판도 제기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사로잡혀 있는 ‘여자용’, ‘남자용’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부지불식간에 한 사람을 그 존재가 아닌, 사회가 정해놓은 여성 혹은 남성으로 성장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곧 연말이고 크리스마스, 새해이다. 주변에 아이가 있어서 선물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선물을 고를 때 그 아이의 성별을 고려하는 대신 아이가 자신의 기호, 능력을 마음껏 탐험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선물을 전하면서 이런 메시지도 함께 전하자. ‘너의 성별이 뭐든 간에 네가 원하는 어떤 것이든 해볼 수 있고 될 수 있어.’ 우리는 이 말을 듣지 못하고 자랐을 수도 있지만, 이제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일다
① 페미니스트의 생일 파티 “내가 그렇게 재미없게 살아야 하나? 그 길은 너무나 재미없고, 고된 가시밭길입니다. 가기 싫어.” 올해 초 어느 웹툰 작가가 당신은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던 그 즈음, 나는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누군가에게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기 시작한 후 처음 맞이하는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 생일 파티임을 알리는 풍선을 벽에 붙였다 ⓒsyholic(인스타그램) 시작은 나의 페미니스트 모먼트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서 나는 페미니즘의 ‘페’도 모르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심지어 대학생 시절 한번쯤은 들어본다는 여성학 강의를 듣지도 않았고 관련 책을 읽은 적도 없었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했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다행이었을까? 나는 ‘여초’라 일컫는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회사를 옮겨도 그런 양상은 비슷하게 이어졌다. 눈에 띄는 성차별을 겪거나 직장 내 성희롱을 겪지 않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조금 더 큰 회사로 갈수록 성차별을 감지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어느 정도는 그런 것에 대응하는 방식을 스스로 터득해 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사소한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답답함 속에서 매일 친구와 카톡으로 오늘은 정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각성의 시간이 찾아온 건, 메갈리아 관련 논쟁이 일어나고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무렵이다. 나의 머릿속을 강하게 때린 건 내 고민이 나 때문에, 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 사회가 나에게 많은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고 불평등한 구조가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이후 나는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고 세미나와 강의도 다니기 시작했다. 작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촛불 집회가 열렸을 때는 ‘페미존’에 참여해서 집회도 열심히 나갔다. 신기하게도 삶이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물론 알면 알수록 절망스러운 현실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지만, 페미니즘은 나에게 절망을 발견하는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절망과 싸우는 방법을 알려줬다. 내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어떤 걸 해야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지, 어떻게 지금을 바꿀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가 페미니스트임을 알리고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페미니스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피냐타에는 우리가 타파하고 싶은 걸 각자 써서 붙였다. ⓒsyholic(인스타그램) 페미니스트의 생일 파티 생일 파티라는 걸 준비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했기 때문에 생일 파티 준비는 일단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과정이 설레기도 했다. 처음에는 간단한 게임이나 퀴즈를 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주변의 도움을 받아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이디어가 나오게 되었고 조금씩 형태를 잡아갔다. 생일 파티 당일, 풍선도 붙이고 피냐타(Pinata, 사탕 초콜릿 등으로 채워진 종이박스 형태의 인형으로 생일 파티 등 축제에서 사용되며 약간 높이가 있는 곳에 매달아 놓고 막대기로 두드려 부수는 놀이를 한다)도 만들어서 매달고 타코도 만들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생일 파티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받지 않는 대신 음료는 사서 마시게 했다. (음료 판매 비용은 어떤 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파티에 온 사람들은 나의 지인들이었지만 서로 간에는 아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초반에 어색함을 덜기 위해 가벼운 빙고 게임을 먼저 진행했다. 그리고 팀을 나눠 페미니즘, 여성과 관련된 주제로 ‘그림으로 말해요’ 게임을 했는데 생리컵, 가부장, 유리천장 등의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떤 이는 단어의 의미를 몰랐고, 한 단어를 두고도 다른 의미를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을 서로 알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우린 정해둔 게임이 끝나고도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나가면서 서로 여성으로서의 삶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비혼 여성으로서, 일하는 여성으로서 경험 등을 이야기하면서 나도 놀랐던 점이, 몇 년이나 알고 지냈던 사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서로 해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내가 무심히 그냥 흘려보냈던 것일지도 모른다. 각자 다른 생활, 경험을 하고 있는 친구들의 삶과 나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 게임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syholic(인스타그램) 생일 파티, 그 이후 파티 이후 단톡방이 생겼다. 단톡방에서는 페미니즘과 관련된 기사를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책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다양한 수다를 떤다. 그리고 우리는 그 뒤로도 만나 몇 번의 재미난 파티를 하기도 했고, 누군가 여행을 가면 그 집 고양이를 돌봐주기도 하는 작은 연대체가 되었다. 처음부터 이 모든 걸 목표하고 누군가를 모으려고 했으면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페미니즘을 통해서 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더 많은 친구들을 얻었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걸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페미니스트로 사는 게 쉽지 않을 수는 있다. 피곤하다고 하면 피곤할 수도 있다. 생각하고 고려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삶이 재미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페미니스트가 되고 나서 더 행복해졌고 내가 원하는 더 즐거운 삶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이전보다 그런 삶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나의 고민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에서 ‘어떻게 하면 될까’로 바뀌었다. 또 그 ‘어떻게’를 더 재미있게 더 신나게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걸로 변했다. 그래서 세간에서 딱딱하고 지루하다고 얘기하는 페미니즘을 재미있게 가지고 노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페미니즘을 더 깊게 파고들면서 또 가까워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그것이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두드리자. 뻔하지 않고 Fun한 페미니즘의 세계가 열리도록. 일다
※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건강(health)…음양의 균형 이루기 ▶ 음양 상징 “Health”(건강)이라는 단어는 고대 영어 단어의 “Whole”(전체)에서 나왔다. 즉 우리는 육체 뿐 아니라 감정, 정신, 에너지가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룰 때 건강할 수 있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좋은 상태”라고 정의했다. 동양 철학에는 어둠과 빛, 부정과 긍정처럼 완전히 반대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연결되고 보완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음양”이론이 있다. 음양 상징은 흰색의 양과 검은색의 음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색을 품고서 균형 잡힌 둥근 원을 이룬다. 하루 평균 10시간 46분 일하고, 하루 평균 6시간 12분 자고, 1주일에 평균 3.5회 야근(잡코리아, 2015년 11월)하는 생활은 너무 음(陰)한 몸을 만들고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양(陽)한 상태를 강요한다. 이어진 ‘회복 3부작’ 칼럼 , 〈손쉬운 셀프 마사지>, 는 상대적인 음이다. 육체적으로 양에너지가 필요한 몸을 우선 음의 방식으로 편안하고 가뿐하고 부드럽게 준비시키는 것이다. 역동적이고 힘찬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우리 운동할까요 시리즈’ , , 를 읽어 보라. 다섯 가지 요가 자세 다섯 가지 요가 자세를 정했다. 선정 기준은 아래 세 가지다. • 보상작용이 일어날 여지가 적을 것• 현재 상태와 발전 정도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 역동적이고 힘찬 활동을 위해 꼭 필요할 것 보상작용이 일어날 여지가 적은 자세는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것이 확실히 보인다. 그래서 발전 정도를 확인하기 쉽다. 이 자세들을 할 때 자극이 전혀 없다면, 좋은 것은 아니다. 역동적인 활동이 부족하거나 근육과 결합조직이 너무 느슨한 것이다. 둘 모두 역동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가슴 열기’부터 ‘완전한 휴식’까지 순서대로 하면 좋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면 한두 자세를 골라서 해도 좋다. 단, 어떤 자세를 하던 꼭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전에 ‘완전한 휴식’ 자세를 1분이라도 하는 것이 좋다. 초보자는 각각의 자세를 1~2분 정도, 익숙해진 경우 3~5분 정도 유지해본다. 시간을 알려 줄 타이머를 맞출 수 있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면서 호흡수로 시간을 알 수도 있다. 부드럽고 고요하게 숨 쉬면, 1분에 열 번 정도 호흡할 것이다. 현재 몸에 이상이 있다면, 요가를 하기 전에 의료 전문가에게 확인 받는 것을 권한다. 1. 가슴 열기 ▶ 가슴 열기 ⓒ스쿨오브무브먼트 ① 무릎을 골반 너비로 벌려 꿇고 앉은 다음 팔을 앞으로 뻗어 절하듯 엎드린다.② 엉덩이를 앞으로 보내고 이마를 바닥에 댄다.③ 손바닥을 맞대고 팔꿈치를 구부려 손을 머리 뒤통수 쪽으로 당긴다.④ 내쉬는 숨마다 허리, 어깨, 목의 긴장을 풀면 겨드랑이가 더 내려갈 것이다.⑤ 자세를 다 하면 천천히 팔을 펴고 엉덩이를 발뒤꿈치로 내린다. 2. 다운 독 ▶ 다운 독 ⓒ스쿨오브무브먼트 ① 무릎 꿇고 팔을 앞으로 뻗어 절하듯 엎드린 자세에서 시작한다.② 고개를 들어 손을 본다. 양손을 활짝 펼쳐서 어깨 너비로 벌린다.③ 턱을 당겨서 발을 본다. 발가락을 활짝 펼쳐서 양발을 골반 너비로 벌린다.④ 양손으로 바닥을 힘 있게 밀면서 엉덩이를 높이 밀어올리고 발뒤꿈치를 바닥으로 깊숙이 눌러 내린다.⑤ 몸무게가 어깨나 손목으로 쏟아지지 않고 골반에서 중심이 잡히며 척추가 뻗는 느낌을 갖는다. 3. 브레첼 ▶ 브레첼 ⓒ스쿨오브무브먼트 ① 편하게 다리를 펴고 누워서 호흡을 정돈하다. 다리를 모으고 왼다리를 구부려서 오른쪽으로 넘긴다.② 오른손으로 왼허벅지를 잡고 오른무릎을 구부려 왼손으로 오른발이나 발목을 잡는다.③ 코로 숨을 내쉬면서 상체를 왼쪽으로 돌려 몸을 깊숙이 트위스트 한다.④ 내쉬는 숨마다 긴장을 풀면서 양쪽 견갑골과 양쪽 무릎을 동등하게 바닥으로 내린다.⑤ 천천히 자세를 풀어 편하게 누워 쉰 다음 반대쪽을 한다. 4. 영웅의 휴식 ▶ 영웅의 휴식 ⓒ스쿨오브무브먼트 ① 양쪽 다리를 앞으로 뻗고 앉는다. 한쪽 무릎을 구부려 발뒤꿈치를 엉덩이 옆에 둔다.②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지탱하면서 천천히 뒤로 눕는다. 팔을 위로 들거나 아래로 내린다.③ 자극이 너무 심해 바닥에 누울 수 없다면 등 아래쪽에 베개를 쌓고 그 위에 눕는다.④ 내쉬는 숨마다 몸을 느끼며 어깨, 등, 허리의 긴장을 푼다.⑤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나서 구부린 다리를 풀고, 반대쪽을 한다. 5. 완전한 휴식 ▶ 완전한 휴식 ⓒ스쿨오브무브먼트 ① 척추를 중심으로 팔과 다리를 편하게 벌리고 눕는다.② 턱을 부드럽게 당겨서 목 뒤가 부드럽게 길어지도록 한다.③ 눈을 감고 코로 편하게 호흡한다. 호흡이 저절로 부드럽고 깊어질 시간을 갖는다.④ 숨이 들어올 때 저절로 배가 올라가고, 숨이 나갈 때 저절로 배가 내려가는 것을 느낀다.⑤ 몸이 바닥과 함께 넓어지면서 편안해짐을 느껴본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사람의 몸은 각자 다르다. 심지어 한 사람의 몸도 시시각각 변한다. 사진의 자세 모양은 그 사람의 몸이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자세를 위한 안내와 유의사항을 따르되 오늘 내 몸이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자세를 할 때 약간은 도전적이지만 끙끙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괴롭게 하지는 않는다. ‘다운 독’ 자세를 제외하고는 게으르게 한다는 느낌을 가져도 좋다. 코로 숨 쉬며 부드럽고 편안하고 고요한 호흡을 한다. 얼굴 전체를 부드럽고 편하게 한다. 자세를 할 때 자극은 있지만, 호흡과 얼굴을 부드럽게 유지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다. 몸의 반응, 느낌과 직관에 주의를 기울인다. 요가 자세를 하는데 마음이 불안하거나 두려운 느낌이 들면, 천천히 자세를 풀어서 ‘완전한 휴식’ 자세를 한다. 좀 쉬고 나서 다시 요가 자세를 도전하고 싶다면 그렇게 한다. 그러나 중단하고 싶다면, 편한 마음으로 휴식한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내 몸을 만든다. 회복에도 시간이 걸린다. 서두르지 말고 길게 보는 것이 잘 하는 것이다. “패스트 피트니스는 패스트푸드와 같다.” ―프랭크 포렌시치 일다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IMF 20년’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이야기 올 한해 ‘IMF 20년’을 조망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나는 IMF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돌 같던 그의 어깨가 떠오른다. 그를 만난 건 아픈 여성들과 함께하는 몸 워크샵이었다. 몸의 움직임을 통해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으로 춤과 요가 사이에 있는 움직임 워크샵 같은 형태였다. 워크샵 강사는 ‘척추는 몸에 새겨진 자서전’이라고 했다. 이어서 두 발을 벌리고 나무가 뿌리를 내리듯 발을 바닥에 밀착시키고 단단히 서보라고 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천천히 바닥으로 내리면서 척추 뼈 하나하나를 느껴보라고 했다. 그러기를 여러 차례 한 뒤, 다시 한 번 내려가면서 척추 뼈마다 관련 된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잊고 있던 많은 기억이 순간적으로 수면위로 올라왔다. ▶ 몸 워크샵. 척추를 천천히 움직이며 척추에 기억된 삶을 떠올리고 있다. (사진: 쎄실) 관련 감정을 잠시 느껴보고, 둘씩 파트너가 되어 기억을 나눠보는 시간. 나의 파트너는 강사의 지시에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느리게 말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마음이 아플 때마다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책상 밑에 박혀 있던 습관, 체했을 때 할머니가 손을 따고 등을 쓸어내려 주던 순간, 집회에 참석했다가 부상을 입었던 어깨, 힘내라며 등을 토닥이는 남자 선배 손의 끈적임에 소름끼쳤던 기분, 중증 장애가 있는 동료를 활동보조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던 기억 등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나의 파트너는 자신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는 나보다 열 살 쯤 많은 50대 여성이었는데, 거뭇한 혈색과 초췌한 머리카락은 언뜻 보기에도 건강이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뒤 그는 또박또박 말을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 때 권고사직을 통보받고 이후에도 출근하던 시기에 등에 꽂히던 동료들의 시선, 마트 캐셔로 일할 때 서 있는 내내 허리와 등이 아팠던 기억, 일당제로 일하던 식당에서 갈비판을 닦다가 허리를 삐끗했던 통증, 남편이 장난으로(?) 자주 등짝을 때렸던 순간, 아이를 키워야 하는 가장으로서 무거운 자신의 어깨가 기억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계속 살 수 있었던 건, 해고를 수용하고 퇴근했던 밤에 아이를 업었을 때 등에서 느껴졌던 따뜻함 때문이라고 했다. 잠시 뒤 강사는 서로의 파트너가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머리를 바닥으로 내리며 척추 뼈를 느껴보라고 했다. 그의 몸은 척추 뼈 하나하나가 아니라 통으로 바닥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그 뒤 내가 동일한 동작을 하자 파트너는 내게 유연해 보인다며 부럽다고 했다. 내 척추 뼈가 덜 굳을 수 있었던 건, 머리로나마 내 삶의 경험을 젠더 위계와 구조적 모순, 사회적 차별 같은 언어로 정리해 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소되지 못한 감정, 해석되지 못한 경험은 우리 몸에 분노와 슬픔이 되어 맺힌다. 이어서 서로의 어깨 근육을 손끝으로 섬세하게 만져주던 시간. 그의 척추 뼈가 하나씩 구분되지 않고 통으로 된 막대기처럼 움직였듯, 그의 어깨는 탄력이나 근육 결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돌처럼 단단할 뿐이었다. 내가 조금 놀라서 평소 어깨가 아프지 않냐고 물었는데,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한의원에 가도 침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견뎌야 했던 삶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 어깨를 돌처럼 만들었을까, 혹은 돌처럼 단단해야만 부서지지 않고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걸까. 강사는 프로그램을 마치며, 자신 몸과 연결된 단어를 하나씩 말해보라고 했다. 그는 ‘아이 엠 에프’라고 답했다. 그 짧은 음절에도 그토록 무거운 감정이 실릴 수 있는 인간의 목소리가 새삼 놀라웠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몇몇이 함께 식사를 했다. 서로 전혀 모르는 관계였고 아무도 그의 이야기를 듣자고 사전에 말한 적 없었지만, 모두 자연스럽게 그의 가슴속 가득한 이야기에 기꺼이 청자가 되었다. 정리해고의 칼날은 가장 먼저 여성을 향했다 ▶ 여성단체들은 여성우선 해고 반대운동을 펼쳤다. (출처: 한국여성민우회) 여상을 졸업한 그는 공기업에 취직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가 오면서 여성우선 해고가 단행됐다. 그는 해고에 불복하며 버텼으나 돌아온 건 이기적이라는 힐난이었다. ‘너 대신 남성 가장들이 해고돼야 겠냐’며, 회사에서 왕따를 당했다. 결국 해고를 수용했고 재취업은 어려웠다. 서른 살 넘은, 아이 있는 여성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고 자신의 퇴직금도 바닥났을 무렵, 작은 회사 경리 일을 시작했다. 그와 달리 재취업을 하지 못한 남편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돈 몇 푼 번다고 자신을 무시하냐며 폭군으로 변해갔다. 그는 아이와 남편을 부양해야했으므로 주중에는 경리 일을 하고, 주말에는 마트에서 캐셔 일을 했다. 그나마 경리 일도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몇 년 만에 그만둬야 했다. 백화점, 콜센터, 보험대리점 등을 전전했다. 재취업도 매번 어려웠지만, 직장 안에서의 관계도 늘 힘들고 쉽게 갈등 관계에 놓이곤 했다. IMF 외환위기 때 해고당한 이후 우울증이 반복적으로 찾아왔으나, 어쨌거나 꾹꾹 참으며 일했고, 한 번도 집에 돈이 떨어지게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몇 해 전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유방암 수술을 했다. 그 얼마 뒤 자궁암 수술도 했는데, 지금도 몸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말했다. IMF만 오지 않았어도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까지되진 않았을 것 같다고. 그는 헤어지기 전 이런 말을 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그래서인지 그는 계속 자신을 탓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 오빠에게 대학 진학을 양보한 것, 남편과 이혼하지 못한 것, 그 모든 자신이 싫다고 했다. 해고가 부당하다고 회사에 소리 한번 크게 지르지 못한 게 한이 되고, 평생 일하면서 자식과 남편만 돌봤지 자신 몸을 돌볼 줄 모르던 어리석음이 후회된다고 했다. 그리고 질병으로 가득 차버린 몸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부당한 현실에 대해 발화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존중 받지 못한 그의 분노는 내면으로 흡수되었던 것 같다. 그에게 IMF 외환위기는 부당함의 상징이었다. ‘남편 기(氣) 살리라’는 사회적 주문 20년 전 11월에 시작된 IMF 구제금융. 당시는 왜란(倭亂), 호란(胡亂)보다 무서운 환란(換亂)이라 불렸다. 당시 구조조정은 노동자를 희생양 삼아 자본의 질서를 회복,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명목으로 대량 해고가 자행됐고 가정 경제는 파탄 났다. 하지만 그 고통이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미친 건 아니었다. 기업은 말했다. ‘미혼’이니까 결혼하면 되지, ‘기혼’이니까 남편이 벌어오겠지, ‘사내부부’니까 아내가 나가야지, ‘출산휴가’ 다녀왔으니 이제 아이 키워야지. 정리해고 칼날은 여성에게 정조준되어 우선적으로 향했다. 당시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자료(여성해고 실태와 정책 과제, 1999년)에 따르면, IMF로 인해 집중적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20대 사무직여성’이었다. 그리고 사무직에서 해고성 비자발적 이직은 남성 9.7%, 여성 43%였다. 여성사무직 정리해고자 비중도 1997년 하반기 13.4%에서 1년 뒤 43.7%로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남성의 해고에만 주목하면서 ‘고개 숙인 아버지’를 위로하기에 바빴다. 수많은 언론은 여성은 알뜰한 살림으로 지출을 줄이고 남편 기죽지 않게 잘 보살피며 취업으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쏟았다. 여성들은 취업을 하면 실업자인 남편이 기죽을까 걱정하고, 취업을 못하면 무능한 아내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직장을 잃은 남편들은 그 고통을 아내에게 퍼부어, IMF 구제금융 시기 남편에 의한 아내폭력이 급증했다는 보고도 있다. ▶ “남편 기 살려야 IMF 이긴다”, 한겨레21 1997년 12월 25일자 기사. (캡쳐 이미지 편집) IMF 구제금융 시기, 여성은 우선해고를 통해 경제적 위험을 흡수하는 안전판으로 동원됐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는 남편 기를 살리는 아내, 알뜰한 살림과 취업으로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는 능력 있는 엄마 역할을 할당 받았다. 절대적 희생으로 가정 붕괴 위험을 막는 여러 개의 에어백 역할을 요구 받은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건 IMF 외환위기 때만이 아니라 현재도 계속되는 일상이지만, IMF라는 위기 상황은 그것을 더 극단화했다. 기록되지 못한 차별은 고통과 질병으로 쌓인다 건강은 고용, 임금, 관계, 학력, 주거, 돌봄, 지역 등등에 매우 민감하게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특히 돈을 벌어야 생존이 가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고’는 건강에 매우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노동자들은 해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만으로도 고혈압이나 심혈관계 질환 유병률이 증가한다고 보고된다. 비정규직일수록, 저임금일수록 건강이 나쁘다. 그리고 삶에 대한 통제권이 적을수록, 차별을 받는 사람들 일수록 건강이 나쁘다. IMF 구제금융 직후 소득 감소를 경험한 가구가 80%가 넘었다고 하니, 분명 전 국민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간이었다. 그리고 질병이환율를 비교한 조사에서도 IMF 이전인 1995년에 비해 1998년 전체 질병에 대한 이환은 2.8배, 급성은 2.2배, 그리고 만성은 1.9배 늘었다. (한국의 IMF 경제위기 전후 질병이환율, 의료이용 및 사망률 변화, 송영종, 2000년) 하지만 모두가 힘들었다는 말은 큰 의미가 없다! 모두가 힘들었지만, 그 중 누가 왜 더 많은 희생과 고통을 강요받았고, 그로 인해 그들의 삶이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 희생과 고통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기록되지 않으면, 더 쉽게 희생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역사는 반복된다. 올 한해 ‘IMF 20년’을 주제로 한 언론과 전문가 의견이 수없이 많이 쏟아졌다. 하지만 당시 제일 앞에서 희생을 분담하도록 떠밀려나갔던 여성노동자에 대한 내용이 잘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나는 의문과 분노가 든다. IMF 구제금융 시기를 한국 사회가 빠르게 극복했다면, 그건 분명 희생자들을 밟고 그 위에 선 결과다. 당시 사회의 위험에 대한 안전판, 에어백 역할을 하던 여성들은 그 고통을 온몸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었고, 세월이 쌓여 온전히 개인이 겪어야 하는 통증과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했을 것이다. 부당한 고통의 경험이 사회적으로 수용되지 못했을 때, 그 고통은 몸에 스며들어 질병으로 확장되기 쉽다.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건강이 더 나쁜 건 분명한 차별의 결과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더 길다고 하지만, 실제 건강수명은 그다지 더 나은 게 아니라는 보고들은 사회적 차별을 온 몸으로 흡수하며 살아야 하는 여성이 많은 것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다. 20년 전 IMF 구제금융 시기, 여성우선 해고와 일방적 희생 분담으로 삶과 몸이 아팠던 이들에게 나라도 작은 위로를 보낸다. 당신들의 고통과 질병이 개인의 운명이나 팔자가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폭력의 결과였음을 분명히 전하고 싶다. 일다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 단체를 중심으로 정부가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 가운데, 여성가족부의 정책 용어 사용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들은 ‘성평등’ 용어가 다양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있다며,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전통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관련 기사: ‘성평등’을 반대하는 사람들 http://ildaro.com/8078) 박근혜 정권에서 적극 사용된 용어 ‘양성평등’ 여성가족부가 개신교 측의 반발에 못 이겨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 용어를 쓰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논란이 일자, 여성가족부는 18일(월) 입장 설명 자료를 발표했다. ‘성평등’과 ‘양성평등’은 영어 “gender equality”를 번역한 용어로, 같은 의미라는 설명이다. 또 여성가족부는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에서 두 용어를 ‘혼용’ 사용한다고 밝혔다. ▶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설명자료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용어 사용 관련’ 중 ⓒ여성가족부 이 설명 자료를 살펴보면,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여성발전기본법 내 기본계획은 1차에서 4차로 지나오면서 ‘남녀평등’에서 더 포괄적인 용어인 ‘성평등’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때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법이 개정되면서, 다시 ‘여성’ ‘남성’이라는 말이 재등장하고 ‘양성평등’ 용어가 나오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2012년 12월 발표된 제4차 여성정책 기본계획(2013∼2017)에서는 기본적으로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권에서 ‘양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현재 일부 보수 개신교 세력의 엄청난 압력을 받으며 ‘성평등’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는 흔들림 없이 ‘성평등’ 정책 추진해야 두 용어를 ‘혼용’하겠다며 여성가족부가 보수 개신교 세력의 반발에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자, 여성-사회-인권단체들은 정부에 흔들림 없이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녹색당,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장애여성공감,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여성정치연구소 등은 지난 20일(수) 오전 10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가족부에 항의했다. ▶ 20일 여성-사회-인권단체들이 여성가족부에 흔들림 없이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다 “우리는 지난 정부에서도 성평등을 부정하고 양성평등을 운운한 정부의 정책이 양성평등을 가장하여 오히려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는 것을 외쳐왔습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에 대한 공격은 반영해야 할 의견이 아니라 근절해야 할 폭력입니다. 지금 이런 여성가족부의 움직임이 촛불민주주의로 탄생한 정부가 적폐를 청산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로 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성평등은 단지 성소수자를 포함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조건이 지금의 여성에 대한 차별의 조건과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입니다. 여전히 여성가족부가, 문재인 정부가 단지 성소수자를 배재하기 위해서,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보수 기독교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계산하고 있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문재인 정부에게서 박근혜 정부보다 한 치도 더 나은 상황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던, 적폐를 청산하고 민주 사회를 이루겠다던 이 정부는 왜 여성과 소수자 관련해서는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여성가족부가 지난 정권의 적폐에서 벗어나 당당히 ‘성평등’을 말하고, 정책의 근본 원칙과 내용을 명확히 하여 흔들림 없이 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의 ‘비전’(아래), 11월 16일 공청회 자료(위)와 비교 같은 날 오후, 여성가족부는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18~2022)을 발표했다. 기본적으로 ‘양성평등’, ‘성평등’ 용어를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성평등’ 용어 사용에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11월 16일 정책 수립을 위한 공청회 때 발표된 비전은 ‘함께하는 성평등, 지속가능한 민주사회’였으나, 이번에 발표된 비전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만드는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사회’다.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지워진 것이다. 여성운동이 제기해왔던 “gender equality”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왜 여성가족부가 ‘성평등’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주저해야 하는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한 문재인 정부는 “왜 여성과 소수자 관련해서는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는가?”라는 여성운동계의 외침에 화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일다
의 디스토피아가 남의 일이 아닌 이유 여성가족부가 향후 5년간 성평등 정책의 근간이 될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사용해 왔던 ‘성평등’ 용어를, 일부 보수개신교의 반발에 못 이겨 ‘양성평등’으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지난 15일(금) 연합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18일(월)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과 담당자와의 통화에 따르면, 기존에 사용했던 것처럼 ‘성평등’과 ‘양성평등’을 혼용하는 형태가 될 것이며,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내에서 ‘성평등’ 용어가 어떻게 될 지는 아직 정확치 않다고 밝혔다. 용어 혼용이 혼란을 불러오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성평등’과 ‘양성평등’의 용어에 별 차이가 없다고 답했다. 과연 그런 것일까. 차이가 없다는데,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 단체는 ‘성평등’이라는 말에 놀라울 정도로 과격하게 반대를 해오고 있다. ‘동성애 동성혼 개헌반대 교수연합’은 지난 14일(목) “여성가족부 성평등 정책 적법한가?”라는 포럼을 국회에서 개최했고, 13(수)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여성가족부가 현재 수립하고 있는 ‘제2차 양성평등 정책 기본 계획’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그 내용은,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과 양성평등을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며 ‘성평등’을 기반하고 있는 내용을 ‘양성평등’ 기반으로 당장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양성평등과 성평등의 차이를 ‘양성평등은 남성과 여성 간의 평등이지만, 성 평등은 동성애를 포함하여 다양한 성 정체성 간의 평등을 의미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성명서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또 다른 중요한 요구 사항은 ‘출산이 급감하여 인구 절벽으로 인해 국가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데, 여성가족부가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일에 앞장서지 말기를 요구합니다’ 라는 부분이다. ▶ 12월 13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측의 성명서 중에서 요구안 부분 ‘시녀이야기’가 보여주는 세상 출산과 인구 위기를 언급하며 ‘성평등’을 반대하는 종교단체들의 모습과 그것에 공공기관이 굴복하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The handmaid's tale)가 생각날 수밖에 없다. ‘시녀이야기’는 이 시대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는 마가렛 엣우드(Margaret Atwood)의 작품 중 하나다. 1985년 책으로 출간되었고, 1990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올해 4월에는 디지털 플랫폼 중 하나인 ‘훌루’(Hulu)를 통해 10부작 드라마로도 공개된 유명한 작품이다. 가까운 미래가 배경인 이 이야기는, 환경오염 등으로 불임이 급격하게 늘어난 시대에 강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자들이 정권을 차지하게 된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그린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 정권이 불임치료 연구에 모든 힘을 쏟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더라도, 저출산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 지금보다도 더 많이 여성들에게 재생산을 압박할 것이라는 정도는 상상된다. ‘낙태죄 폐지’ 같은 건 말도 못 꺼낼 정도로. ▶‘이 미래는 끔찍한 악몽이다’ 문구가 적힌 드라마 포스터. 여성은 같은 옷을 입으며 지위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 시녀는 혼자 외출할 수 없으며 앞이 아닌 주변을 볼 수 없는 하얀 모자를 써야 한다. ⒸHulu 하지만 그 사회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재생산 압박 정도가 아니라 여성은 모든 권리를 뺏기고 도구화된다. 그 사회에서 여성은 돈을 가질 수 없다. 모든 경제권은 남성에게만 주어진다. 공부를 하고 배울 수도 없다. 책들은 불태워지고 많은 학자들이 사형 당한다. 모든 여성들은 출산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라는 한 가지 기준으로 구분된다. 출산을 할 수 있는 여성들은 ‘시녀’(Handmaid), 출산을 할 수 없는 낮은 계급의 여성들은 ‘마사’(Martha), 출산을 할 수 없는 높은 계급의 여성들은 ‘부인’(Wife). 부인은 집에서 남편을 보좌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마사는 집안일 등의 노동을 하고, 시녀는 집안일을 도우며 임신하고 출산을 해야 한다. 배란일이 되면 시녀는 무조건 그 집의 남편과 강제적 관계를 맺어야 하며 임신 후 출산을 하면 그 집 부부에게 아이를 넘겨야 한다. 그리고 다른 집에 배정이 되어 시녀 생활을 이어간다. 그 과정의 반복이다. 시녀는 아이를 낳는 몸뚱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길리어드’(Gilead)라는 그 끔찍한 사회는, ‘전통적 가치’(Traditional values)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어떤 신을 믿는 집단이 국회를 테러하고 정권을 장악한 후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인공인 시녀 오프레드(Offred)가 배정된 사령관의 부인으로 나오는 세레나 조이(Serena Joy)는 길리어드를 구상한 설립자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여성이 있어야 할 진정한 공간은 가정이라고 설파하는 책 (A woman’s place)를 쓴 학자이자 활동가로 나온다. 그녀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가정을 버리는 여성들이 있었고 우리는 변화가 필요했어요.”(드라마 ‘시녀이야기’ 6화 중) 자신이 믿었던 신념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그 누구보다 과격한 활동함으로써 감옥에 잡혀가기도 했던 세레나는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길리어드가 실현되려고 할 때 배제된다. 이유는 물론 그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부인의 역할 외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그가 쓴 책, 는 불태워졌고 읽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처럼 길리어드에서는 여성의 신념, 종교, 직업, 능력 그리고 성정체성, 성적 지향 따윈 아무 상관 없다. 참고로, 예상되겠지만 길리어드에서는 출산을 할 수 있는 이성애자가 아니면 죄가 된다. 여성들은 그냥 ‘여성’으로만 존재해야만 한다. ‘전통적 가치’ 아래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 말이다. 바로 이것이 지금 어떤 이들이 ‘성평등’이 아니라 ‘양성평등’을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세상에 남성과 여성만이 존재하며, 양성 간에는 서로 다른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성평등’이 더욱 더 필요하다 ‘양성평등’, 진정한 남녀평등이라는 말 뒤의 의도를 읽어야 한다. 정말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이루겠다는 게 아니라, 진정한 ‘여성’과 ‘남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 아닌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 진정한 여성과 남성이 무엇인지, 그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특히 이 주장을 외치는 이들이 낙태죄 폐지 반대 또한 주장하고 있다면 말이다. ‘양성평등’이나 ‘성평등’이나 어쨌든 평등한 사회로 만들어 주겠지, 라고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이것은 단어 하나의 차이가 아니다. 여전히 ‘여성’과 ‘남성’을 강조하며 이야기하는 사회에서 ‘여자는 이래야…’라는 말을 뛰어넘고 성차별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꽤나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양성평등과 성평등 사이에는 크나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우리가 디스토피아로 갈지 유토피아로 갈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 길목 앞에서, 제대로 ‘성평등’을 외칠 더 많은 목소리가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 일다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비혼이라서, 채식주의자라서 몸이 아픈 거다? “비혼주의자라서 아픈 것일지도 몰라요. 원래 사람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거든요.”“면생리대 쓰는 게 꼭 좋은 건 아닐 수도 있어요. 적당히 나쁜 것에 노출되어야 오히려 면역력이 생기거든요.”“채식주의자라서 아픈 것일 수도 있어요. 고기도 먹고 둥글게 살아야 건강에 좋아요.”“사회운동을 해서 아픈 거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은 매사 부정적이잖아요.” 생각해보면 저런 말들이 시작이었다. 질병을 치료하는데 힘을 쏟기에도 부족했던 시기, 굳이 질병을 둘러 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던 이유 말이다. 7년 전 출혈, 갑상선암, 현기증을 비롯한 몇 가지 질병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도착했던 그때. 갑상선암처럼 비교적 흔한 질병은 수술로 해결됐지만, 그 외의 것들은 병원에서 원인도 찾지 못하고 치료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혼돈 속에 놓여 있던 시절이었다. 대형병원을 떠돌다가 결국 유명하다는 의사, 용하다는 한의사, 다양한 대체요법사들을 찾아 곳곳을 다녔다. 그 과정에서 각양각색의 이들을 만났고, 진료실에서 긴 상담 중에 반쯤은 농담처럼 던지는 ‘저런 말들’에 놀라곤 했다. 그건 술, 담배를 좋아했던 나의 생활습관이 문제라는 말과는 다른 것이었다. 내가 선택한 삶의 가치나 정치적 실천들이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그런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알게 됐다. 질병이라는 게 얼마나 많은 편견과 차별이 작동하는 정치적 영역인지에 대해서. ▶ 몸이 아픈 원인을 지목하는 말들. (이미지 제작: 조짱) 물론 저런 말들을 반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평등할수록 건강하다고 하는데, 현재의 불평등한 가족문화는 개인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쉽다. 결혼한 여성들이 맞벌이 부부임에도 독박 가사노동과 독박 육아로 과로사 직전까지 몰리는 현실이 건강에 좋을 리 없다. 무엇보다 시집, 친정 등의 복잡한 가족관계 안에서 겪게 되는 일상적 차별과 과도한 역할 강요 등은 정서적 건강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 또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 문제는 알다시피, 지난 20여년 간 여성 건강권 운동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주제다. 일회용 생리대 말고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포함해서 미세먼지, 환경호르몬 등에 우리는 이미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으며, 일상의 유해 물질에 의해 질병과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채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15년 전부터 페스코 베지테리안으로 살고 있는데, 채식이 총체적인 건강에 무조건 해롭다는 보고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많은 의사들은 점점 육식 섭취를 줄이는 걸 권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엔 신념에 의한 선택보다는 건강 때문에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 부정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이 진취적이고 자율적 경향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다. 사회운동을 하는 이들의 건강이 더 나쁘다면, 그건 과도한 노동과 대부분 최저 생계비 수준에도 못 미치는 활동비(임금)의 영향이 클 것이다. ‘저런 말들’을 했던 이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비혼주의자들은 자연스러운 사회질서를 거스른다. 면생리대를 사용하는 이는 유난 떠는 사람이다. 채식이라는 실천은 좀 과도하다. 그리고 소위 운동권에 대한 거부감 같은 것들 말이다. 사실 저런 태도는 너무나 익숙해서, 조금도 새로울 건 없었다. 다만 내가 놀랐던 것은 일부 의료인 혹은 준의료인 위치에 있는 전문가들조차 음주나 흡연처럼 건강에 해롭다고 의학적으로 입증된 생활습관이 아니라, 자신의 편견과 차별에 근거한 의견을 환자로 만난 이에게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이 사회의 강고한 문화였다. 의료인이 이 정도이니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차별이나 평등이라는 단어에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꾀하는 이들도 때로 마찬가지였다. 내가 베지테리안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이유 ▶ 원서 표지 이미지. 캐럴 J. 아담스는 이 책을 통해 남성지배와 육식 문화의 상관성을 밝혔다. 지인들에게 여러 차례 들었던 말은, 건강도 안 좋아졌으니 이제 베지테리안으로 그만 살고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종용이었다. 심지어 그 중엔 내가 왜 베지테리안으로 지내는지 잘 아는 이들도 있었다. 내가 처음 베지테리안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던 건 대학생이던 1990년대, 여성운동을 하면서였다. 아마 베지테리안-페미니스트들은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텐데, 성(性) 불평등이 종(種) 불평등과 연결되어있음을 알게 됐을 때 느꼈던 혼란과 자책감이 그 출발이었다. ‘여성이 몸’으로 환원되는 현실과 ‘동물이 고기’로 환원되는 현실의 연결점을 발견했을 때 만났던 감정. 더 많은 새끼를 생산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임신하고, 그 임신한 새끼를 평생 빼앗기는 암소, 암퇘지, 암탉의 현실에 내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여성을 ‘소유’하는 행위를 ‘먹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의 직접성과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고기가 된 기분이었다’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이어서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을 암코기 덩어리로 묘사한다’고 지적한 안드레아 드워킨의 말이 머리를 맴돌게 되었다. 그 말을 잊을 때쯤엔 ‘고기는 포르노와 유사하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되기 이전에 그것은 누군가의 삶이었다’는 캐럴 아담스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밤거리 바닥에 널려 있는 룸살롱 전단지에서 속옷 차림으로 웃고 있는 여성을 보면, 햄 포장지에서 웃고 있는 소의 얼굴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기도 했다. 당연히 공장식 축산이라든가 소의 식량은 87억 명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에 맞먹는다는 통계. 그리고 점점 고기 가격은 저렴해 지고 있지만 그 ‘비용’은 지구와 제3세계에 전가되는 현실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건 마치 내가 추구한 변혁에 ‘여성’이 없었음을 깨달았던 순간처럼 허망했고,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눈을 갖게 됐던 때처럼 눈부신 일이었다. 성불평등과 종불평등의 연결성을 알게 된 것은 세상이 다시 한 번 재구성되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언젠가는 채식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했고, 그러고도 몇 년을 서성이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미뤄둔 숙제를 시작하는 기분으로 페스코 베지테리안으로 지내기 시작했다. 나와 같은 이들에게 채식이라는 선택은 흡연이나 음주처럼 기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의 건강과 채식 간에 입증 된 사실도 없는데, 그토록 쉽게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단순히 육식중심 문화와 채식에 대한 몰이해에서 오는 것일까. 고백하건데 나는 열렬한 실천으로 채식을 하기보다는 이제 거의 관성적으로 하고 있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들은 나에게 너무 ‘자극적’이었다. 그 자극적인 말을 천천히 곱씹어 보던 중, 채식을 하던 초기인 10여 년 전 지인과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채식을 편식으로 이해하거나, 채식한다고 세상이 얼마나 달라지겠냐며 비아냥대는 태도에 대한 불쾌함을 토로했었다. 지인은 자신도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지인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였는데, 병역거부를 병역기피라고 비난하거나 군대 안가는 건 매국이라고 쏘아대는 이들 때문에 속상하다고 했다. 특히나 그는 가까운 이들의 모습에 힘들어 했는데, 그의 삶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마음도 있지만 다른 태도도 공존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그들로부터 병역을 마친 사람으로서의 억울함이나 너만 ‘양심적’이냐는 비아냥의 마음, 그리고 병역을 거부하지 않은 이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사람으로 평가될 거라는 불안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이 매우 완곡하게, 군대 다녀와야 사람대접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며 설득하는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그가 했던 말에서 연결점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채식주의자와 함께 밥을 먹을 때마다, 자신의 접시에 담긴 ‘고기’가 ‘동물의 시체’로 보일 거라는 불안감.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는 채식만이 올바른 실천인 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내심으론 채식이 정치적으로 더 올바른 행위라고 위계를 설정해 놓음으로서 겪게 되는 자기분열 같은 것들 말이다. 내재된 그런 태도들이 채식주의자가 질병을 겪는 상황적 계기를 통해, 이제 그만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 채식의 종류 (출처: 한국채식연합)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것 그러니까 이건 채식의 문제만이 아니다. 아픈 사람에 대한 여러 평가나 종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엄청나게 발전한 의학, 나날이 길어지는 평균수명 속에서 살고 있지만 동시에 질병에 대한 불안이 어느 때보다 강력한 사회에 살고 있다. 생명체로서 질병에 대한 생래적 불안 이외에, 질병에 걸린 건 자기 관리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무의식적 낙인이 존재하는 문화에 놓여 있다. 특히나 자기관리를 최고의 덕목으로 일반화시킨 신자유주의 체제는 아픈 사람에게 ‘루저’라는 평가가 들러붙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즉 아픈 사람이 지닌 삶의 방식, 신념, 태도를 의학적 근거 없이도 거침없이 질병의 원인과 연관 짓고 변화를 종용하는 더 구체적 배경 한 자락엔 이런 게 존재한다는 의미다.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적 선을 긋고, 위계를 형성하고, 낙인을 찍고, 그를 통해 자신의 불안을 회피하려는 태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가치와 신념을 추구하며 산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 중 하나는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어색함이나 불편한 느낌, 그것을 상대 탓으로 섣불리 돌리지 않고, 자신이 낯설고 불편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그 실체를 조물락거려 보는 것이다. 일다
2017년 10월, 뉴욕타임즈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이어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에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 여성들은 #미투(#Me too: 나도 겪었다)를 써 주시길 바랍니다. 이 행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라는 글을 띄우면서 미투(Me too) 캠페인이 시작됐다. (참고 기사: 용기 있는 고발이 할리우드를 흔들다 http://ildaro.com/8027) ▶ #미투(Me too) (출처: Pixabay) #미투(Me too)는 순식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졌고, 세계 곳곳의 여성들이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영화, 방송, 언론, 정치 영역에서 활약해 온 남성들을 성희롱/성폭행의 가해자로 고발했으며, 다양한 노동 현장에서 고발이 이어졌다. 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냈고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변화를 촉구했다. 현재까지 약 세 달 동안 #미투(Me too) 운동은 다양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어떤 결실을 바라는 많은 이들의 희망을 담은 격정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모인 건 처음 있는 일” 사실 #미투(Me too)운동은 시작되자마자 문제 제기에 부딪혔다. #미투(Me too)의 시작은 이미 10년 전에 있었다는 것. #미투(Me too)는 ‘흑인’ 여성 타나라 버크(Tarana Burke)가 성폭력 생존자를 지지하고 돕기 위해 만든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취약 계층으로 분류되는 유색인종의 소녀였다. 이후 그 활동은 범위를 확대하여 성인 여성과 남성 및 다양한 성폭력 생존자를 돕고 지역 사회가 그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당시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7년 ‘백인’ 여성인 유명배우의 언급으로 운동에 불이 붙게 된 것이다. #미투(Me too)의 진짜 시작이 타나라 버크였다는 사실이 곧 알려지고 그의 운동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이런 현상을 두고 미국 페미니즘 역사에서 흑인 여성을 비롯한 비(非)백인 여성들의 역할과 역사가 배제되거나 지워진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러한 지적은 흔히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백인 여성의 입장을 주로 대변해 온 미국 페미니즘 진영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해 12월 8일 보스턴에서 열린 ‘메사츄스 여성 컨퍼런스’에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지금 이렇게 많은 목소리가 모인 건 그 전엔 없었던 일이다”라고 말하며 #미투(Me too)의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1975년에 직장 내 성희롱(sexual harassment) 개념이 생긴 후 진행된 세 개의 소송의 원고가 전부 ‘흑인’ 여성이었던 점을 언급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또 현재의 페미니즘이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중요하게 포함하는 것에 실패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유색 인종 여성, 특히 흑인 여성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지 않았던 문제는 바로 그들이 백인 여성들보다 늘 좀 더 페미니스트였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제는, 그 동안 여성운동 혹은 페미니스트 운동이 백인의 것이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다양한 여성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흑인 여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이 전보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백인 커뮤니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 #미투(Me too) 운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종 간의 차이와 그로 인한 계급 차이 등을 세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것은 곧 다양한 여성들이 #미투(Me too)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자랑은 일 못해? 불어 닥친 ‘반격’(Backlash)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끝이 없이 이어지는 고발에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이 있었다. 가해자들, 누군가가 자신을 가해자로 고발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자신은 가해 사실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잠재적 가해자로 분류되는 것이 싫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과연 그 고발이 진실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면서, #미투(Me too)가 일종의 유행처럼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단순히 분노의 표출로 보기도 했다. 배우 맷 데이먼은 지난 12월 12일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분노와 상처의 사회에 살고 있어요. 우리는 일들을 바로 잡아야 하지만 ‘잠시만, 우리 모두가 사실 완벽하지 않잖아’ 라는 생각도 해야죠.”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브랫 스테판(Bret Stephens)은 12월 20일자 칼럼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너무 과할 때”(When #Me too goes too far)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모든 여성 그리고 모든 “사려 깊은” 남성들은 이 운동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 성공은 남성의 행동을 폭로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이룰 수 있다.’ 고발이 너무 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많은 고발 중에 ‘가짜’가 있다는 게 밝혀지게 되면 이 운동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조성했다. 일터에서 고발이 지속되면 여성을 고용하려는 회사가 줄어들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투(Me too)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을 위축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의 페이스북 포스팅 Ⓒfacebook.com/sheryl/posts/10159569315265177 이와 관련해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는 ‘이래서 여성을 고용해서는 안 된다는 백래시(Backlash, 반격)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여성을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장문의 글을 올려 백래시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셰릴은 남성 경영자들이 자신이 성추행으로 고발당할 것이 두려워 여성 동료나 여성 직원들과 함께 있지 못하겠다, 일하기 어렵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못하겠으면 여성들이 서로 멘토가 되고 조언을 하고 도울 수 있도록 더 많은 여성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면 된다고 말했다. 거대해지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을 해체하고 그 힘을 빼앗으려 하는 움직임이 꿈틀거렸지만, 그 백래시에 당하지 않겠다, 맞서겠다는 움직임 또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선 유력 공화당 후보, 성추행 전력 알려지며 ‘패배’ 지난 12월 13일은 미국 앨러바마주의 상원의원 선거 결과가 있는 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 공화당 후보로 나온 로이 무어(Roy Moore)은 LGBT와 무슬림 등 이민자에게 강한 반감을 가진 매우 보수적인 전직 판사였다. 앨러바마주는 보수 성향이 강한 것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로이 무어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던 선거운동 중에 몇몇 여성들이 과거 로이 무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그 중 두 명은 당시 14살, 16살이었다고 밝혔다. 로이 무어는 사건을 부정했지만, 그 여파는 컸다. 도널드 트럼프가 성추행 논란 속에서도 대통령이 되는 걸 목격했던 여성들의 절망은, 이번엔 강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성범죄자가 또 다시 권력을 가지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앨러바마주의 특성상, 그의 상대인 민주당 후보 더그 존스(Doug Jones)가 공화당 후보를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 워싱턴 포스트의 앨러바마주 선거결과 분석 중 Ⓒwashingtonpost.com/graphics/2017/politics/alabama-exit-polls/?utm_term=.10c3cd8924fb 하지만 선거 결과는 더그 존스의 승리였다. 1992년 이후 앨러바마주에서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한 일이 처음일 정도로 이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 배경을 세부적으로 살펴봤을 때, 더그 존스의 승리에는 여성들, 특히 흑인 여성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바탕이 됐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종종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당하지만, 이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의 선택과 영향력이 역사를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여성들이 함께 맞서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결과이기도 했다. 유색인종, 저소득층 여성을 위한 펀드 ‘타임즈업’ 2017년 메리엄 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로 ‘페미니즘’이 뽑히고, 타임(Times)이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자들’(Silence breakers)을 선택했다. #미투(Me too)는 예상하지 못한 커다란 영향력을 가져왔다. 다양한 논쟁 속에서도 여성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지원하고 본격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타임즈업’(Time’s up)이 올해 1월 1일, 발족을 알렸다. ▶ 타임즈업 홈페이지에 있는 성명서 ⒸTime’s Up 2017(timesupnow.com) 영화, TV, 연극 분야에서 활동하는 3백명 이상의 여성이 1,300만달러(약 138억원)을 모금하여(주요기부자는 리즈 위더스푼, 숀다 라임스, 메릴 스트립, 스티븐 스필버그와 케이트 캡쇼 부부 등이다) 만든 타임즈업.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에 맞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법 지원 펀드다. 이 단체는 대표 없이 자원 활동으로 운영될 예정이고, 주요 멤버는 미셸 오바마의 수석보좌관이었던 티나 첸(Tina Tchen)을 비롯한 여성변호사들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특히 블루칼라 여성들,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지원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이 펀드를 만들게 된 것은 라틴계 농업 여성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는 ‘농업 여성노동자 연합’(Alianza Nacional de Campesinas)의 공개 지지 성명이 큰 영감이 됐음을 알렸다. 다음은 2017년 11월 10일 타임(time.com)에 개제된 ‘농업 여성노동자 연합’의 성명서 중 일부다. “우리는 밝은 무대 조명 아래 혹은 큰 화면에서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관심이 덜한 이 사회의 그늘인 고립된 농장,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일은 사람들의 영혼을 채우고 기쁨이 퍼지도록 합니다. 우리의 일은 과일, 채소에 영양을 주고 곡물을 심고 그걸 재배합니다. 비록 우리가 다른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채용하고 해고하고 협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일자리는 제한적입니다. 그리고 어떤 피해나 불의를 신고하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성추행을 포함한 어떤 문제에 대해 불평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우리의 명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우리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타임즈업 창단 멤버로 이름을 올린 제작자 숀다 라임스(Shonda Rhimes)는 발족을 알린 뉴욕 타임즈의 기사에서 ‘만약 우리와 같은 위치의 사람들이 권력과 특권을 가지지 못한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도록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그런 일을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농업 여성노동자 연합’의 용기 있는 지지의 목소리를 그냥 흘려듣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으며 그 결과를 만들어냈다. 타임즈업은 성명서에서 모든 여성노동자가 남성과 동등한 가시화, 기회,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백인, 시스젠더, 이성애자 동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유색 인종 여성, 이주민 여성, 장애 여성,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여성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침묵도, 기다림도, 포용도 그만 둘 시간이 됐다 현재 타임즈업 웹사이트에는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그걸 멈추고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Know your rights)라는 제목의 소책자 올려놓았고,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하고 있다. 그리고 다가오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블랙 드레스/수트’를 입는 공동행동을 보여줄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보이콧을 하면 되지 않나, 소극적인 행동이다, 라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타임즈업 멤버인 배우 라시다 존스(Rashida Jones)는 인스타일(Instyle)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침묵의 시위가 아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왜 우리가 블랙을 입었는지를 말할 것이다”라고 당당히 의견을 피력했다. “이제 차별, 추행, 학대에 대한 침묵은 그만, 기다림도 그만, 포용도 그만 둘 시간이 되었습니다.”(No more silence. No more waiting. No more tolerance for discrimination, harassment or abuse. Time’s Up) 타임즈업의 목소리가 여성들에게 어떤 시간을 만들어주게 될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일다
※ , 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정예로운 것들이 고물이 된다 경주 불국사 아랫동네 구정동 고물상 뜰에는 온갖 낡고 헌 물건들이 모여 있다. 전국에서 날라 온 크고 작은 수백 개의 항아리, 옛 시골 부엌의 문짝, 한옥 띠살문, 집 뜯어낸 고재(古材)들, 낡은 엘피판, 녹 가득한 유기그릇들, 다듬이돌, 옛날 다리미, 대패, 구들장, 돌확, 옛 기와, 낡은 재봉틀, 궤짝…. ▶ 고물상 안은 온갖 고물들로 차 있다. ⓒ김혜련 물건만 고물이 아니라 사람들도 고물이다. IMF 금융위기로 부도 맞아 술로 세월 보내다 고물상을 하게 된 예순 넘은 김 사장, 김 사장 주유소의 직원이었다가 이제는 고물 고치는 기술자가 된 ‘최가이버’ 아저씨, 시골동네 구석구석 다니며 고물 실어다 파는 임 씨, 일 있을 때마다 따라 나서서 몸을 쓰는 강 씨, 모두 다 한 물 간 고물들이다. 세상 모든 고물들 모아 둔 것 같은 쓰레기더미 한편에, 낡아빠진 평상 펴 놓고 술추렴들 한다. 옥수수 생막걸리에 밭에서 뚝뚝 따온 고추, 시골 빈집에서 주워온 항아리에 들어있는 묵은 된장 찍어 거나하게 마신다. 언젠가부터 이 고물들 속에 나도 끼어들었다. 고물 놋사발에 따라주는 탁주 한 잔 마시고 고물들 틈에 끼어 있으면 문득 다른 세상이 보인다. 머리 곧추세우고 한 없이 위로 오르고자 했을 때 보지 못한 것들, 품지 못한 것들이 편안하게 들어와 앉는다. 고물 속에 못 들어올 게 무에 있으랴. 석양이 들면 문득 고물들의 다른 시간이 드러난다. 이 고물들 세상에 둘도 없는 진수, 더 덜어낼 것 없는 정수(精髓)가 된다. 변재(邊材)는 썩어 사라져버리고 심재(心材)만 남은, 까칠하게 빛나는 나무들. 윤기 다 빠져나가 오직 흙 자체로 굳어 있는 옹기. ‘늙음의 고요함’으로 빛나는 몸, 세상 헛폼, 헛발길질 다 버린 진지한 몸. 다른 아무 것도 아닌 몸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리하여 고물상은 갑자기 쓰레기더미 속 빛나는 생으로 환생(還生)한다.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고물들의 빛나는 공간이 된다. 고물이 되려면 진짜여야 한다. 가장 정예로운 것들이 썩지 않고 살아남아 석양빛에 알맹이들 반짝인다. ▶ 무엇이든 고쳐내는 고물 기술자 ‘최가이버’ 아저씨 ⓒ김혜련 낡고 오래된 것들에 담긴 ‘이야기’ 난 낡은 것, 오래된 것들을 좋아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끌린다. 좋아하는 것이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것이라면 끌리는 것은 수동적이고 스스로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다. 끌림의 역사도 오래다. 어린 시절 나는 쓰레기장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 종일 희열에 차서 산더미 같은 쓰레기를 헤집고 그 속에서 보물들을 발견하는 기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보물로 골라낸 것들은 머리가 다 빠져 나가고 팔도 한 짝 없는 인형이라든가, 쓰고 버린 화장품 통이라거나 했지만…. 할머니의 궤짝을 들여다보는 일 또한 늘 설레는 일이었다. 할머니를 조르고 졸라서 궤의 놋 자물쇠가 열리고 그 안의 것들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 안에서 나오는 건 오래된 무명천이거나, 실, 반짇고리, 버선, 저고리, 할머니가 참빗으로 곱게 빗어 모아 둔 머리카락 등이었다. 그것들이 풍기는 눅눅한 듯, 매캐한 듯한 냄새 또한 좋았다. 그 오래된 냄새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곳,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가는 것 같았다. 오래된 목화솜을 타서 다시 만든 이불을 덮을 때 느끼는 아늑함은, 세상이 별로 편치 못했던 내게는 드문 안락함이기도 했다. 오래된 물건들이 주는 다사로움, 거리감 없는 친밀감, 편안함, 아늑함은 가보지 못한 어떤 다사로운 곳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과 그리움을 가져다주었다. 새 물건은 정서가 깃들어 있지 않다. 그 물건이 지닌 자기만의 내력, 독특한 이야기, 어떤 표정이 없다. ▶ 개다리 밥상과 옛 놋그릇 ⓒ김혜련 이를테면 집에 있는 오래된 ‘개다리 밥상’은 자기만의 표정이 있다. 하도 낡아서 예전의 칠은 다 벗겨졌다. 한쪽 다리는 들려서 다리 밑을 덧붙여 놓았다. 살짝 불구인 다리를 깨금발처럼 들고 있는 밥상, 그게 안타까워 굽을 대어준 누군가의 마음. 한쪽 다리를 덧 붙여준 개다리 밥상을 볼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모자란 것들, 부족한 것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든다. 슬프고도 고적한 부드러움이 마음에 깃든다. 이름도 개다리 밥상, 흔하고 천한 밥상인데 그 ‘개다리’가 불구(不具)이기까지 한 이 물건의 삶에 대한 연민…. 집 뒤편의 흙돌담은 집과 같이 백년의 세월을 건너왔다. 오랜 세월, 바람과 비와 햇빛에 바래 모든 불필요한 것들이 다 빠져나갔다. 그 담을 바라보는 내 가슴은 서늘하다. 얼마나 많은 바람과 비와 햇살이 그 몸을 뚫고 지나갔을까? 얼마나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서 있었을까? 어떤 비바람의 요동도 그저 맞을 뿐인 저 온전한 받아들임, 숱한 세월의 부대낌 속에서 익혔을 단단한 고요함.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도 단단한 고요가 생겨난다. 군더더기 없는 정결한 마음이 싹튼다. 물질이 어떻게 정신으로 화(化)하는지 백년 된 담은 묵묵히 보여준다. 오래된 유기그릇도 그렇다. 옆에 두고 있으면 온기(溫氣)가 느껴진다. 따뜻하고 은근한 기운이 있다. 금(金)은 너무 번쩍이고, 은(銀)은 차가운데, 유기(鍮器)는 은은하다. 현대의 유기그릇도 좋지만 옛 유기가 더 좋다. 놋그릇을 주로 썼던 시절에 만들어낸 그릇은 현대의 세련된 유기보다 어수룩한 듯 제 맛이 난다. 물론 가격도 한 몫 한다. 현대 유기는 매우 고가(高價)다. 고물상에서 오래되고 낡은 유기그릇들을 싸게 구입해서 잘 닦는다. 닦는 품이 꽤나 들지만 녹이 쓸어 못 쓸 것 같은 그릇이 닦을수록 은은히 반짝거리며 살아나는 맛은, 닦는 수고를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잘 닦아서 제 빛을 살려낸 그릇은 자기만의 오랜 역사를 담고 있어서 쓸수록 정이 간다. 집도 마찬가지다. 새 집에는 없는 것들이 낡고 헌 집에는 있다. 백 년 전쯤 산에서 베어왔을 소나무들, 울퉁불퉁한 나무를 서까래로 한 집.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들은 자신들이 서 있던 산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마도 그 산에서 못생기고 잘 자라지 못했을 나무들, 굵고 씩씩한 나무들 사이에서 자라느라 구불구불 제 몸을 구부리며 해를 향해 얼굴을 열심히 내밀었을 나무들, 그 옆에 있었을 작은 관목들, 풀들, 가끔씩 숲의 고요를 깨고 ‘퀑 퀑’ 울어내던 장끼의 울음소리…. 집을 지을 때의 행복한 마음들도 떠오른다. ▶ 백년 된 뒷마당의 돌담 ⓒ김혜련 비고, 바래서 아름다워지다 새벽달이 서쪽하늘로 넘어간다. 빛바랜 아침 달은 모든 생(生)들이 다 빠져나간, 말갛고 가벼운 뼈 같다. 기름기 한 점 없는 해맑은 얼굴 같은 빛바랜 뼈. 물기 맑은 햇살에 깨끗하게 말라 바스러진 단풍잎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존재감도, 미련도 없이 제 길을 가는 존재. 어린 시절 혼자 잘 놀았다. 그런 내게 낮달은 뭔가 모를 서늘함으로 다가왔다. 뭐랄까, 슬픔과는 다르고 초연함과도 다른, 뭐라 규정하기 힘든 느낌. 다 바래어 비어있는데 그게 참 아름다웠다.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서 내가 느끼는 정서에는 그런 느낌이 있다. 비고, 바래서 아름다워진 것. 씻기고 씻겨, 빛바랜 말간 뼈를 눈앞에 보는 것 같은 낮달을 좋아하는 것처럼 바래고 낡은 것들을 사랑한다. 내 삶이 낮달처럼, 정예로운 고물처럼 비고, 바래어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한 생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박노해의 시 제목) 일다
흔히 ‘쉼터’라고 불리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은 폭력 배우자로부터 격리되길 원하는 피해자와 동반 자녀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다. 법적으로 임시보호는 최장 7일, 단기 보호시설은 최장 6개월까지, 장기 보호시설은 최장 2년까지 머물 수 있다. 가정폭력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곳이기 때문에, 쉼터 활동가들은 입소자의 신상 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는 등 피해자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일,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쉼터에 가정폭력 가해자가 ‘자녀를 보겠다’며 침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여성의전화 측에 따르면, 쉼터 활동가들은 입소자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찰은 ‘위해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격리 조치하지 않았다.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도착한 여성청소년계 경찰관들은 오히려 “자녀를 보기 전까지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가해자의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냥 자녀를 보고 싶다는 것뿐이라며, 경찰관 자신도 자녀를 둔 아버지라고 덧붙이면서 쉼터 활동가들을 매정한 사람들 취급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피신할 동안만이라도 가해자의 위치를 옮겨달라는 활동가들의 ‘부탁’도 거절한 경찰 덕분에, 사건 발행 후 3시간 30분이 지난 후에야 두려움에 떨던 입소자들은 활동가들이 가해자의 시야를 현수막으로 가린 틈을 타서 겨우 피신했다. 가해자는 활동가들의 사진을 찍으며 모욕했지만, 경찰은 이를 전혀 제지하지 않고 방관했다고 쉼터 측은 증언했다. 가정폭력을 4대악으로 지정해 근절하겠다고 공언한 지난 정권을 거쳐 ‘젠더폭력 방지 기본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이번 정권 하에 일어난 일이다. 올해는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보호·지원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법에 따르면 가정폭력은 ‘부부 싸움’이나 ‘가정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폭력이자 범죄이며, 피해자는 가해자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경찰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과연 무엇이 바뀌고 변화되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 11월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424개 단체들이 경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언제까지 가해자를 ‘아버지’의 이름으로 부를 텐가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않는 경찰의 대응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해 총 424개의 단체들이 강력히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열었다. 특히 참가자들은 이러한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니며 계속 반복되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 분통을 터뜨렸다. “매번 경찰의 무지하고 비협조적인 대응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경찰 내 교육을 요구하였지만, 아직도 가정폭력 사건을 ‘가정 문제’로만 생각하고 있다. 언제까지 가해자를 아버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쉼터는 피해자들이 찾아와 피해에 대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곳이다. 쉼터마저 안전하지 않다면 피해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위와 같이 말하며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가 경찰의 전문성 부재인지, 시스템의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라’고 촉구했다. 어제 있었던 일이라며, 또 다른 가정폭력 사건을 브리핑한 활동가도 있었다. 경찰이 가정폭력 피해자와 활동가를 내내 고압적인 태도로 위축시켰다는 것. 해당 활동가는 이런 일들을 겪으면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해나가는 데에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쉼터는 피해여성들의 마지막 피난처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지난 30년 동안 가정폭력 추방 운동을 해왔다. 가정폭력을 추방하기 위해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만나는 최초의 공권력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었다. 그러나 2017년 11월 2일, 이 일이 일어났고 여전히 전국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고미경 대표는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자식 한번만 보여주면 될 일이라고 했지만 정작 그 자녀는 쉼터에 들어와서 활동가들에게 몇 번이나 ‘여기는 아빠가 모르는 곳이죠?’, ‘여기는 아빠가 못 오죠?’라고 물었었다고 밝히면서, 누가 죽어야 그때서야 경찰은 보호에 나설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정폭력을 고발한 경험이 있는 피해생존자도 이렇게 호소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폭력을 당하면 그 가해자가 바로 잡혀가는데, 가정폭력은 그렇지 않다. 남편을 형사 고발한다는 것은 정말 최악의 상황일 때,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만큼 힘들 때, 내가 죽거나 죽일 것 같을 때 하는 일이다’ 라고. 자신은 형사로부터 ‘일도 많은데 왜 이런 일로 우리를 힘들게 하냐, 솔직히 말해서 이혼 소송에 유리하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 나중에 취하할 거 아니냐, 아줌마가 맞는 거 본 사람 있냐, 증인 있냐, 무고죄로 고발 당할 수도 있다’ 등의 발언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의 태도를 보며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오히려 범죄자 취급 당하고 모멸감을 느끼는 상황이 많겠구나, 그래서 결국 싸우고 투쟁하는 것을 포기하는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어 “제가 쉼터에 있을 때도 가해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어서 이틀 동안 밖에 나가지 못한 적이 있다. 이제 몇 년이 지났는데도, 딸이 그 때 일을 이야기하면서 무서웠다고 이야기한다. 쉼터는 피해여성들이 갈 수 있는 마지막 피난처다. 더 많은 경각심을 가지고 피해여성을 위해 노력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11월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 등 424개 단체들이 경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경찰이 변해야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어’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6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10월 26일 발표한 ‘2016년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 내 폭력을 경험한 응답자 중에서 100명 중 1명(1.0%)만이 경찰 등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41.2%가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집안 일이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29.6%),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14.9%), ‘자녀들을 생각해서’(7.3%) 순이다. 피해자조차 배우자로부터 겪는 폭력이 심각하지 않다고 여기고, 또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가정폭력을 ‘사적인 일, 개인사’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와 공권력의 태도에 큰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심지어 도움을 요청했을 때조차 경찰로부터 ‘왜 이런 걸로 신고하냐’ 등의 말을 듣게 된다면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을 비롯한 젠더폭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피해여성들이 용기 내어 도움을 요청했을 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일선에서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경찰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피해자가 만나는 최초의 공권력인 경찰의 변화를 촉구한 이번 기자회견은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징계하고 공식 사과할 것 ◇가정폭력 및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시설에 대한 경찰의 인식향상 교육을 실시할 것 ◇제대로 된 가정폭력 사전 초동대응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할 것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종사자의 안전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 ◇가정폭력 및 여성폭력에 대한 정책 및 시스템을 전면 보완, 개편할 것을 요구하며 마무리되었다. 일다
2017년의 할리우드는 여성 배우들에게 고통의 해로 기억될지 모른다.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줄지었고(관련 기사: 용기 있는 고발이 할리우드를 흔들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남성 감독과 남성 제작자, 남성 배우들에 의해 자행된 많은 젠더 폭력이 폭로되며 화려한 할리우드의 더러운 이면이 대중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배우들, 여성 스텝들은 그 고통에 머물지 않고 있다. 나 혼자 고통을 겪어내야만 한다는 압박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고 용기를 나누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사실 이전부터 여러 방면에서 조금씩 시도되어 왔다. 그 중 하나는 여성 배우들이 제작, 연출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 그레타 거윅이 감독한 영화 포스터 “나는 뮤즈가 아니다” 지난 9월 열린 토론토 영화제(Toronto film festival)에서 화제가 된 작품은 단연 (Lady bird, 2017)였다. 영화 (Frances Ha, 2012)에서 불투명한 미래에 허덕거리는 프란시스를 연기하면서 20대 뉴요커 여성의 자화상을 보여준 배우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이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보여준 영화다. 진솔하고 생생하게 10대 여성의 성장과 딸과 엄마와의 관계를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사실 그레타 거윅은 와 (Mistress America, 2015)의 감독인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과 공동으로 각본을 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 바움백의 뮤즈로 불리며, 함께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기보다 감독이 만들어 낸 창조물로 더 주목받았다. 그렇게 누군가의 뮤즈로 불리던 그레타 거윅이 오롯이 혼자 영화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고향인 새크라멘토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담은 각본과 연출을 담당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한 것이다. 미국 매체인 Vulture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뮤즈라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며(I did not love being called a muse), 작가나 감독이 되고 싶었다(wanted to be a writer and director in my own right)고 밝혔다. 카메라 뒤로 가는 여배우들 여성 배우들이 감독 혹은 제작자로 데뷔하거나 참여하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메리 타일러 무어(Mary Tlyer Moore)는 1974년에 자신이 주연이었던 TV쇼 (The Mary Tyler Moore Show)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하면서, 여성 배우들이 카메라 뒤로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후 2000년대 들어오면서 그런 일들은 조금 더 잦아졌다. 1990년대 많은 마니아 층을 만들어낸 드라마 시리즈 (The X-files)의 주인공 질리안 앤더슨(Gillian Anderson)은 7시즌의 “모든 것들”(all things)을 연출하고 각본도 썼다. 그는 제작자를 찾아가 자신이 극을 직접 써 보겠다며 기회를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 중산층 주부들의 이야기를 담아 인기를 끌었던 (Desperate Housewives)에서 주연을 맡은 에바 롱고리아(Eva Longoria)는 이후, 드라마 시리즈 (Devious Maids), (Telenovela)의 제작자와 감독으로 역할을 확장했다. 에바 롱고리아는 “만약 여성들이 제작자나 감독으로 카메라 뒤에 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야기는 제대로 얘기되지 않을 것이다”(If [women] don’t get behind the camera as producers and directors, our stories will never truly be told)라고 말하기도 했다. ▶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자로 참여한 TV 시리즈 스틸 컷 (출처: HBO Offical Website)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시트콤 (Friends)의 세 여성 주인공 제니퍼 애니스톤(Jennifer Anniston), 커트니 콕스(Courteney Cox), 리사 쿠드로(Lisa Kudrow)는 현재 모두 제작자로도 활동 중이다. 제니퍼 애니스톤과 커트니 콕스는 각각 에코필름(Echo Films), 코퀘트 프로덕션(Coquette Productions)라는 제작사도 만들었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며칠 전인 11월 8일, (Legally blonde, 2001)를 비롯해 다양한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경력을 가진 리즈 위더스푼(Reese Witherspoon)과 함께 TV 시리즈를 만든다고 발표해 기대를 모았다. ‘아침 TV 쇼를 만드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고 한다. 리즈 위더스푼 또한 몇 년 전 제작사를 설립하여 영화 (Gone girl, 2014), (Wild, 2014)의 제작자로 활약해오고 있다. 올해 에미 어워즈 시상식에서는 그가 제작자로 참여한 TV시리즈 (Big little lies)로 작품상을 수상하며 제작자로서도 그 능력을 증명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배우로 더 익숙한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 안젤리나 졸리(Angelina Jolie),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또한 감독으로서도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다. (Mad Max, 20)에서 최고의 전사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은 제작자로서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올해 넷플릭스 최고의 시리즈로 평가 받는 (Mindhunter)의 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어느 정도 탄탄히 쌓인 40대 이상의 배우들만 연출, 제작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건 아니다. 1986년생 레나 던햄(Lena Dunham)은 TV 시리즈 (Girls)의 각본, 연출, 제작을 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대중에겐 누군가의 부인, 유명 커플로 더 알려져 있지만 꾸준히 활동해 온 1978년생 케이티 홈즈(Katie Homes)도 2015년 단편 영화를 찍고 현재 장편 영화를 준비 중이다. 여성의 미와 패션 산업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을 던져주며 인기를 얻었던 TV 시리즈 (Ugly Betty)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1984년생 아메리카 페라라(America Ferrara) 또한 현재 출연 중인 쇼의 제작자로 활약하고 있다. 미혼모의 출산과 육아를 비롯해 여성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다룬 TV 시리즈로, 현재까지도 인기리에 방영 중인 (Jane the virgin)의 주인공인 1984년생 지나 로드리게즈(ina Rodriguez)도 얼마 전 방송국 CW에서 새롭게 편성한 TV 시리즈에 제작자로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20대 여성 네 명의 비밀 페미니스트 소셜 그룹 이야기를 담는다고 한다. 드라마, 로맨스뿐만 아니라 코메디, TV 시트콤 분야에서도 티나 페이(Tina Fey), 에이미 폴러(Amy Poehler) 등이 배우의 영역에 한정하지 않고 각본, 연출, 제작에 참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레타 거윅은 의 뉴욕 필름 페스티벌 행사 중에, 영화를 만들려고 투자자들과 이야기할 때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말했다. 그 투자자한테 아내와 딸이 있으면 ‘아, 이거 우리 부인이랑 딸 이야기네요’ 하고 이해를 하고, 여자형제가 있으면 ‘이거 우리 누나/여동생이랑 엄마 이야기네요’ 라고 이해하는데, 둘 다의 경험이 없는 남성들은 ‘정말 여자들은 이러나요?’ 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마 많은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빛나는 것만큼이나 카메라 뒤로 가고 싶어 하는 이유일 것이다. 에바 롱고리아도 말했듯이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의견을 내고 감독과 조율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남성 제작자나 연출자들이 만들어 내는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때로 이상하기도 하고, 배우가 의견을 내도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있을 것이고, 결국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 사라 폴리가 제작자로 참여한 포스터 물론, 제작에 참여하거나 연출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2016년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할리우드(미국 내 상영 수익) 상위 250개 영화 중 여성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고작 7%에 불과했다. 여성 총괄 제작자가 참여한 작품은 17%, 여성 제작자가 참여한 작품은 24%, 여성 작가가 참여한 작품은 13%이었다. 여전히 문턱은 좁고 사례도 많지 않다. 그렇지만 앞선 사례 말고도 더 많은 사례를 열거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들의 도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여성들의 연대와, 더 많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제니퍼 애니스톤과 리즈 위더스푼의 공동 제작의 경우, 여성 제작자와 배우로서의 협업으로 서로 시너지를 내는 것이다. 레나 던햄의 경우에도 현재 다른 여성 제작자와 협업하여 1960년 배경의 페미니스트 이야기를 다루는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이자 현재까지 마블에서 나온 영화와 TV 시리즈 중 유일하게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Jessica Jones)는 다음 시즌의 모든 에피소드를 여성 감독들이 연출할 것이라고 발표해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배우로 활동했으며 최근에는 연출과 제작에 조금 더 힘을 쏟고 있는 사라 폴리(Sarah Polley)가 제작자로 참여한 (Alias Grace)는 마가렛 엣우드(Margaret Atwood)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1843년 캐나다에서 있었던 살인 사건과 그 범인으로 지목당한 여성의 이야기를 가공하여 쓴 것이다. 리즈 위더스푼의 제작사는 와 가 그랬던 것처럼 여성 작가가 쓴 소설 두 편의 판권을 또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 묻혀진 이야기, 그리고 여성 작가들이 조명 받게 되는 기회도 덩달아 발생하고 있다. 하비 와인스틴 성추행 사건 이후, 생각치도 못한 더 많은 사건들이 지금까지도 밝혀지고 있어서 그 고통의 현장을 우리는 같이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고통에서 머물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소리 내고 있다는 것. 우리는 분명 ‘함께’ 나아가고 있다. 일다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열사 유가족을 위한 법률 지원 및 자문센터 ‘마린’(Marin) 2004년에 창립된 마린(Marin)은 베트남전쟁 당시 희생된 열사들의 유해와 무덤, 국립묘지와 관련된 정보를 유가족들에게 제공하고, 유해 발굴 및 무덤을 찾는 사업을 하고 있는 비영리단체다. 약 90만 명(베트남 전체 열사의 약 80%)에 관한 정보와 전국 각지의 국립묘지에 안장된 약 30만 명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하고 있다. 온라인 위령비를 설립해 유가족 간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0년에는 베트남 사회적기업 지원센터(CSIP)로부터 ‘올해를 대표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열사 유가족을 위한 법률 지원 및 자문센터 (Marin)의 부센터장 응오 티 투 항. ⓒ아맙 전쟁이 끝났지만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 평화의 봄은 왔지만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긴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것은 전사통지서 한 장이 전부였다. 허름한 통지서를 읽고 또 읽었지만 어디서 죽었는지, 시신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유가족들은 실낱같은 단서라도 있으면 죽은 이의 유해를 수습하러, 무덤을 찾으러 어디든 달려갔다. 불발탄과 지뢰가 묻혀 있는 과거의 전장을 누비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용하다고 소문난 주술사를 찾아가 매달려 보아도 헛수고였다. 복채를 대느라 재산을 탕진한 이들도 있었다. 평화의 시대가 왔는데 무덤을 찾느라 방방곡곡 헤매는 유가족들의 서러움을 누가 알랴. 언제쯤 망자의 거처를 찾아 향불을 피울 수 있을까. 전쟁 유가족들을 도와 유해를 발굴하고 무덤을 찾는 일을 지원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전쟁의 상처와 슬픔을 보듬고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구수정(아맙 前 베트남 본부장, 현재 한베평화재단 상임이사, 이하 수정): 의 이야기를 듣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벌이고 피해자 지원 사업을 해온 의 이야기와 이 걸어온 길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응오 티 투 항(마린 부센터장, 이하 항): 한국인이 베트남에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반갑고 놀라웠어요. 저도 군인들의 무덤을 찾으러 다니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민간인 피해자들의 무덤과 집단묘지를 보곤 했습니다. 그중에는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도 있었어요. 컴퓨터공학과 학생 여덟 명의 기행에서 시작된 일 ▶ 전직 기자였던 응오 티 투 항 부센터장. ⓒ아맙 수정: 과 이 이렇게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웃음) 어떤 계기로 이런 사업을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항: 2004년에 하노이의 대학생 여덟 명이 자전거를 타고 베트남전쟁 때 희생된 열사들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기행을 떠났습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었어요. 유가족을 위한 일이었는데 2004년에 베트남소리방송(VOV)에 소개되기도 했죠. 그때 저는 호찌민시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요, 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그 후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거나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열사들의 이름과 생년월일, 고향, 매장된 장소와 이들의 이야기들을 정리해 공개하는 웹사이트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열사들에 대한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구축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베트남 역사에 대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죠. 열사(烈士)를 의미하는 영어 Martyr의 베트남 식 발음이 마린(Marin)하고 비슷한데요. 사업의 의미를 살리면서 베트남 사람도 부르기 쉽고 국제적으로도 친근감 있는 명칭을 고민하다가 단체의 이름을 이라고 지었어요. 수정: 기자로 활동하다가 을 창립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항: 제 큰아버지도 항불전쟁(1946-1955, 식민지였던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와 벌인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때 희생되었어요. 할머니가 제 어머니에게 큰아버지 유해를 꼭 찾아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죠. 우리 남매가 유치원 과정을 마칠 무렵부터 어머니는 큰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 헤매고 다니셨습니다. 용하다는 무당과 주술사들을 두루 찾아다니기도 했어요. 하지만 끝내 찾지 못했죠. 어른이 된 저는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다시 유해 찾기에 나섰고, 결국 큰아버지가 누워 계신다는 국립묘지를 찾았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50위 가량의 무명용사의 묘들 가운데 정확히 큰아버지의 묘가 어느 것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영혼이 있다면 큰아버지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큰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계실 것이라 믿으며, 무명용사들의 묘비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향불을 피워드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큰아버지의 유해를 찾는 지난한 과정 속에서, 자연과학대 학생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를 만나게 되었고 저도 함께하게 됐지요. 그런데 학생들이 차례로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 웹사이트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어요. 저는 어떻게든 이 사업을 이어가야겠다고 생각했죠. 결국 기자직을 그만두고 하노이로 이주해 을 창립한 겁니다. 유해를 찾아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까지… 수정: 유가족들이 유해나 무덤을 찾을 수 있도록 에서는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나요? 항: 은 용사들이 전사한 장소나 매장된 장소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국방부는 물론이고 지방의 성, 현, 사 단위의 노동보훈사회부를 찾아다녔습니다. 국경을 넘어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전장까지 누볐어요. 이렇게 수집한 자료들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유가족들이 직접 유해나 무덤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죠. 하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요. 정보를 쥐고 있는 지방 관리들의 무관심이나 냉담한 반응에 상처를 받기도 했죠. 과거의 전장이 지금까지도 군사 지역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접근이 어렵고요. 아직까지 제거되지 못한 불발탄이나 지뢰도 많기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써야 할 때도 있었죠. 정보 공유뿐 아니라 은 유가족들이 정부로부터 받은 전사통지서를 바탕으로 유해를 찾을 수 있도록 자문을 해주고 있어요. 보통 통지서에는 군사 기밀을 이유로 군인이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 구체적으로 적지 않죠. 단지 “남부 전선에서 희생”이라고 적혀 있거나, “KT, KB, KN, KH, P2, P, 470, 471…” 등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암호나 군부대 번호만 기재된 경우가 많아요. 의 암호 해독과 안내, 자문이 없이는 유가족들이 전사자가 소속된 부대, 전사 장소 등의 구체적인 단서를 찾아내기 힘들죠. 에서는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유가족들을 위해 24시간 핫라인도 운영하고 있고요, 필요한 경우에는 유가족과 함께 직접 유해를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현재 에는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구자들과 지역전문가, 베트남전 참전군인, 대학생 등의 자원봉사자들이 유해 발굴 사업을 돕고 있어요. ▶ 무명열사의 묘지. 묘비에 적힌 LIET SY는 열사, CHUA BIET TEN은 이름 모름이라는 뜻이다. ⓒ아맙 수정: 베트남의 유해 발굴 사업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나요? 항: 항불전쟁에 이은 항미전쟁(1960-1975,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 과정에서 미국과 벌인 전쟁)을 거치면서, 그리고 그 후에도 캄보디아전쟁(1975년 냉전 체제에서 벌어진 베트남과 캄보디아 간 전쟁)과 중월전쟁(1979년 당시 중공의 국경수비대가 베트남령에 침공하면서 일어난 전쟁)을 치르면서, 수백만 명의 군인들이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희생됐어요. 하지만 이제 겨우 약 30%의 유해만이 발굴되어 신원 확인을 거쳐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을 뿐입니다. 이 가야 할 길이 아직도 까마득히 멀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정: 지금까지 의 웹사이트에 등재된 열사들의 통계 데이터는 얼마나 되나요? 항: 의 홈페이지에는 약 90만 명의 용사에 관한 정보가 등재되어 있는데요, 지금까지 확인된 베트남의 열사 총 110만 명 가운데 약 80%를 차지합니다. 또한 전국 수천 곳의 국립묘지에 안장된 약 30만 명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희생자의 행방을 전혀 모르는 유가족들도 웹사이트를 방문해 같은 시기에 동반 입대했거나 같은 부대원이었던 전우의 정보를 찾아서 그것을 단서로 유해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어요. 한 명 한 명 이렇게 모인 정보가 축적되면서 더 큰 효과를 발휘하고 있죠. 다른 유가족이나 참전군인들의 열성적인 도움으로, 수십 년간 찾아 헤매던 유해를 발굴하는 기적이 벌어지기도 해요. 정말 신기한 것은 실낱같은 단서가 하나라도 나오면 결국엔 유해를 찾게 된다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망자의 영혼이 우리의 발길을 인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 주최한 유가족과의 만남 행사 중에서. 열사의 유골을 찾아 유가족에게 전달하고 있다. ⓒ아맙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온라인 위령비’ 수정:의 홈페이지에 온라인 위령비가 건립되어 있더군요. 항: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열사들은 사회적으로 그 유지가 받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세월 따라 점점 빛이 바라고 분주한 일상사에 묻혀 잊혀져가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온라인상에서나마 이 분들의 이름과 나이, 본관, 이력, 사진, 전사 장소와 경위 등의 정보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위령비를 건립해 추모공간을 마련한 것이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은 정규군이었기 때문에,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도 쉽고 전사 장소와 전투명, 날짜 등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베트남은 유격대원으로 게릴라전에 참여하거나, 가명으로 비밀 결사조직에서 활동하거나, 인민들이 전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신원 미상의 전사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국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열사들의 명단이나 국립묘지에 안장된 묘비, 위령관에 새겨진 명단에도 누락된 희생자들이 많은 것이죠. ‘무명’으로 기재되거나, 이름이 확인되었다 하더라도 나이나 본관, 직책 등 세부 항목이 빠져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온라인 위령비는 희생자들의 정보가 아직 미확인 상태라 하더라도 언제든지 수정, 보완하거나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또 클릭 한 번으로 관련 정보를 열람하고, 쉽게 참배에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향이나 촛불을 밝히고 헌화를 할 수도 있고, 추모사를 남길 수도 있으며, 묘지에 직접 조화를 보내는 것도 가능해요. 열사와의 추억, 유가족과의 소통 등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게시판도 운영하고 있죠. 비록 사이버 공간에 존재하지만 온라인 위령비는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전쟁 세대와 현 세대 그리고 미래 세대를 잇는 추모와 소통의 장으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수정: 2010년에 베트남 사회적기업 지원센터(CSIP)로부터 지원을 받았더군요. 항: 사실 오랫 동안 의 활동이 법적 근거를 갖기가 어려웠어요. 정부가 해야 할 사업을 민간단체가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현재는 사법부 직속의 베트남빈민사법지원회 소속으로 단체로 등록되어 있어요. 2010년 CSIP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당시에, 저는 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답변했었죠. 하지만 CSIP는 의 온라인 사업 방식과 사회적 기여도를 높이 평가해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도 법률 자문을 통한 수익 창출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기존의 유가족을 위한 무료 법률 자문 서비스는 유지하되, 유료 법률 상담과 자문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도 구상 중입니다. 유가족들이 유해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거나 배상금을 갈취당하는 등의 사건도 많이 발생하고 있거든요. 묘지 관련 민원이나 국립묘지 조성 시 토지 보상 문제 등 법적인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도 적지 않죠. ▶ 마린은 지역 곳곳을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한 자문과 상담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맙 이편이든 저편이든,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전쟁의 희생자’ 수정: 신문 기사를 통해 을 이끌어 나가는 항 씨의 이야기를 먼저 접했어요. 의 사업 내용을 볼 때 민간단체에서 해결하기엔 어려운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정부의 협조나 국제기구 또는 다른 NGO 단체의 지원이 있나요? 항: 말씀하신 대로 의 사업은 국방부나 노동보훈사회부 등 정부의 협조가 없으면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죠. 제가 호치민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접고 수도인 하노이로 옮겨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행정 협력은 있었지만 예산을 확보할 순 없었어요. 옥스팜이나 CSIP 등의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사무실 운영비나 인건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했지요. 의 사업비는 대부분 유가족과 참전군인, 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준 후원금에 의존해 왔습니다. 사재를 터는 것도 한계에 이르러, 제가 취업을 해서 월급으로 사무실을 꾸려가기도 했어요. 새벽 다섯 시면 에 나와 업무를 처리한 후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 후엔 다시 으로 돌아와 자정을 넘겨서까지 일하는 강행군이 계속됐죠. 유해를 찾아나서는 출장이 많아 주말에도 쉴 수 없었어요. 급기야 2011년에는 쓰러져서 2년간 활동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2013년에 다시 문을 열었는데요, 합법적인 활동이 보장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2014년부터 다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수백만 명에 달하는 유가족들의 신뢰와 후원이 없었다면 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지금은 의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의 전환을 적극 고민하고 있습니다. 수정: 베트남전쟁 과정에서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의 피해도 정말 많았습니다. 민간인 희생자들의 경우에는 베트남 열사로 추인되거나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도 없고, 국가의 배상을 받을 수도 없는데요. 항: 열사의 무덤을 찾아나서는 길에 일반 군인들의 무덤, 한때는 적군이었던 남베트남 군인들의 무덤, 그리고 또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의 무덤을 만났습니다. 가끔 열사가 아닌 경우에도 시신이나 무덤을 찾아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도 해요. 처음엔 저도 열사, 일반군인, 민간인 등으로 죽음을 구분하기도 했어요. 전사, 사고사, 병사 등 사망 유형에 따라 행정 분류를 하기도 했고요. 그들을 추모하는 제 마음의 깊이도 달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점점 그런 구분이 무의미해지더군요.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차별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전쟁의 희생자이니까요. 그 사람이 북베트남 군인이든, 남베트남 군인이든, 혹은 민간인이든, 심지어 미군이든 한국군이든 그들의 어머니가 흘렸을 눈물과 고통에는 차이가 없겠지요. 인간의 모든 죽음은 추모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가 민간인들의 죽음까지 책임지고 배상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죠. 국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민간인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별도의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미군이나 한국군에 의한 학살 피해자에 대해서도 관련 국가의 배상과 시민 사회의 인도적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기록 정리: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베트남 지부 (AMAP) 팀장 -한베평화재단 베트남 지부 카페: cafe.daum.net/doanhnhanxahoi-후원 및 문의: 한베평화재단 kovietpeace.org 일다
